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72화 (72/208)

<--  -->  파픈스타side.

뭔가 순간적으로 굉장히 빡쳐서 일을 저지르긴 했는데 막상 생각해보니 이거 좀 미친 짓이잖아! 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돌려차기로 나무 격파라니! 이거 뭐냐고! 메이플 월드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세상에……."

"어, 음 있잖아 이건 나무가 좀 썩어있던 거라서 쉽게 부서진건데─"

믿을리가 없지 젠장. 말하는 나도 택도 없는 변명이라 생각중인데.

"…… 정말 굉장해요!"

"그래 굉장한─ 뭐?"

여자아이는 두 손을 꼭 쥐며, 초롱초롱 빛나는 파란 눈을 들이밀며 말했다.

"혹시 어릴때부터 비밀스러운 조직에서 훈련을 해왔다거나 뭐 그랬어요?"

"아니 그런건 아닌데……."

"그렇다면 외국의 전쟁터를 구르다 막 일상으로 돌아온 킬러? 그런 사람이에요?"

아, 과연 판타지는 존재했다. 이 여자애의 머릿속에.

"그러고보니 처음보는 얼굴인데, 혹시 오늘 온다는 전학생인가요?"

"뭐?"

어째서 교복도 안입은 날 전학생으로 착각할 수 있는거야 얜.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이 애의 옷차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하고, 지금 내 옷차림을 떠올려 보았다.

흰 블라우스, 붉은 넥타이, 붉은 치마, 구두.

'…… 착각할만 하잖아!!'

좀 우기면 이 학교 교복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딱히 생각없이 집었는데 하필 디자인도 교복 비슷한 것들을 입었어! 조끼나 가디건은 없었지만 이렇게 입고다니는 여학생도 종종 보였으니 여기 교복 제한은 상당히 헐렁한 것 같다.

아니라고 말하려했는데 이미 여자애는 자신만의 스토리를 다 진행했는지 나를 '특수부대에서 전역한 소년병'쯤으로 생각하고 김기사라는 사람에게 새로운 나무를 주문해서 심으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이거 좋은 상황인지 나쁜 상황인지.

"이름이 뭐에요?"

"파픈─"

잠깐만 나 무의식적으로 전직명을 이름이라고 말할뻔했어!

"한푸름이야."

아 미친 내가 지었는데도 네이밍 센스 진짜 거지같아. 왜 굳이 ㅍ자음을 넣은거냐고. 파픈스타란 이름이 그렇게 익숙해져 있었던거냐.

"예쁜 이름이네요! 앞으로 잘부탁해요~"

"아…… 응."

원래 온다는 전학생 미안하다. 내가 니 신분 좀 쓸게. 얼떨결에 플레이어의 역할이 되버린것 같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구체적인 신분이 필요했으니까.

그렇게 나는 순식간에 이 고등학교로 전학온 학생이 되어버렸고 - 불행인지 다행인지 진짜 학생은 어디로 갔는지 나타나지도 않았다 - 1학년 1반 교실로 가게 되었다. 전학생의 메인 이벤트인 이름 소개, 취미 소개가 이어졌고, 마침 메고 있는 기타도 있겠다 즉흥곡도 연주했다. 반응 좋더라.

내가 고1이 되다니. 뭔가 상황에 흘러가다보니 이렇게 됬는데 진짜 말이 안되는데.

…… 다 재쳐두고 나 원래 대학생이었다고! 슬슬 취업 준비하던! 그놈의 병에 걸려서 입원하지만 않았으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갔을텐데. 하여튼 병원에서 천장만 보며 하염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메이플 월드로 뚝 떨어져서 몇 년을 보내고, 군단장이 되서 또 몇 년을 보내서…… 아 젠장.

'내 나이가 왜 이렇게 됬지?'

잘 생각해보니까 슬슬 30줄이 가까워지고 있어 미친. 어쩐지 계속 기분이 이상하더니 이것때문이었냐. 일반적인 트립퍼였으면 이 라노벨스러운 상황에 기꺼워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내 기분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날아가버린 20대와 곧 다가오는 30대에 고등학생 코스프레라니! 그것도 프렌즈 세계관에서! 생각할수록 욕이 나왔다.

계속 이러다 책상을 박살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쉬는시간이 되자마자 바로 - 수업따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을뿐더러 수능까지 끝냈는데 다시 고등학교때 수업을 듣는 건 고역이었다 -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전교생 출석부같은거 없나? 얼굴은 거의 안변했을거라 하니까 사진만 있으면 바로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딱 복도에 나온 순간, 나는 누군가 내 머리 위로 시멘트를 부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아까 봤어? 회장이 등교할때 갑자기 어떤 애가 나타나서─"

긴 백금발에 푸르스름한 회색눈을 가진 소녀가.

"나무를 걷어찼는데 한 방에! 그걸 쓰러뜨렸어!"

평범하게 여자애들이랑 수다를 떠는 모습이.

"그거 잘못 본 거 아니야?"

"지금 밖에 봐봐. 나무 쓰러진거 그대로 남아 있어."

"에이~ 없는데?"

"뭐? 그루터기도 없어? 그새 회장이 사람 불러서 치웠나."

"솔직히 사람이 어떻게 발로 차서 멀쩡히 서있는 나무를 박살내냐?"

…… 정말로 당연하게 펼쳐져 있었다.

"사이키커?"

"응?"

소녀가- 사이키커가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입고있는 옷은 이 학교의 교복. 즉, 그녀는 여기의 학생이라는 말이다.

손이 떨렸다. 검호가 여기에 있는것처럼 먼저 죽은 사이키커도 어디 다른 차원, 다른 시간대로 날아갔을테니 극히 낮은 확률이라도 여기에 있는게 불가능하지않다. 그런데 이런데서, 이렇게 갑작스럽고 어이없게 만날줄은 꿈에도 몰랐다.

"야! 쟤가 아까 말한 그 전학생이야!"

"쟤가?"

"니가 완전 잘못본거네. 심지어 남자도 아니고 여자잖아."

"아 맞다니까! 야야 니가 아까 나무 부순거 맞지? 좀 줄기가 가늘긴 했지만 분명 돌려차기 한 방에─"

쿵! 나는 바로 그녀를 벽에 밀쳤다. 어떻게봐도 그녀가 확실했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무무, 뭐야 너?!"

"거기다 왜 그렇게 정상이야? 분명 예전에 넌……."

그냥 미친년이었잖아.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망설이지 않고, 온몸에 심각한 상처를 입어 피를 철철 흘려도 실실 웃는.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날 이상하게 보는 소녀의 모습에서 지금의 그녀는 내가 아는 그 미친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저 여학생에 불과했다. 자신이 누구였고,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 모두 잊은.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

"…… 미안. 사람 잘못 봤어."

그도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걸까.

"별 이상한 애도 다 있네."

"야 이거봐봐 벽에 금 갔어!"

"원래부터 금 가있지 않았냐?"

쑥덕거리는 애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이키커처럼 검호도 모든걸 잊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어떻게 메이플 월드로 불러들여야 하는걸까.

오버시어의 앞에서는 호언했지만, 피부에 와닿는 현실을 본 순간 그 막막함에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러 모든 수업이 끝났다. 이 학교는 야자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머릿속을 점령한 고민때문에 대부분의 수업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넘겼고 - 특히 수학은 1학년 수준인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대학생되면서 수학능력을 상실해서 - 아무 성과를 얻지 못하고 충격과 공포의 기분으로 학교 밖으로 나왔다.

"아……."

다행히 원래의 전학생은 기숙사에 배정되었는지 이 세계에서 지낼 숙소 문제는 어찌어찌 해결되었다. 그리고 기숙사 관리인에게 물어봐 기숙사에 현재 머물고 있는 학생중에 검호(로 추정되는 학생)은 없나 알아봤지만 없었다. 대체 어디있는거야.

저만치 걸어가는 사이키커의 뒷모습이 보였다. 따라갈까? 했지만 바로 그만두었다. 미친 마조히즘 소녀가 아니라 평범한 그녀를 쫓아봤자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을테니까.

근처에 있던 공원에 와서 져물어가는 노을을 보았다. 나중에 밤 되서 학생부실에 들어가 전교생 출석부라도 볼까.

한가하게 산책하는 노부부의 모습을 배경으로, 나는 기숙사로 발을 돌렸다.

***

???side.

까똑!

"…… 뭘 보낸거야."

폰을 켜서 카톡을 확인했다.

[야 대박! 오늘 울 학교에 전학생 왔는데 존나 이상함;;]

전학생? 지금 시기에 전학온건가. 보통 새학기 시작할때 오지 않나? 뭐 사람마다 사정이 있으니 그럴수도 있겠지.

[여자인데 니처럼 힘 드럽게 쎈지 뭔 나무를 한 방에 박살내고, 나한테 벽치기하면서 이상한 헛소리같은거 했음]

정신지체 장애인이냐고 물어봤다.

[모름. 하여튼 나중에 사람 잘못봤다면서 사과하긴 했음.]

그런데 보통 누굴 만났다고 벽치기하진 않을텐데. 심지어 여자가 여자한테.

[야 근데 걔 옆반임.]

[알아서 해. 어쩌라고.]

[동생인데 좀 신경쓰지?]

[누가 닐 건드리겠냐.]

생긴 것만 그럴싸하지 하는 짓은 남자애하고 다를게 없는 놈을.

[근데 오늘 저녁 뭐임?]

[알아서 드셈. 오늘 노래방 갈거임.]

아니 이년이?

[라면이나 드셈]

[오늘 아침으로 먹었다고.]

[2번 먹는다고 안죽어.]

…… 오랜만에 파이어치킨이나 먹을까. 몇 봉지 남아있던데.

아, 오늘 수업 언제 끝나지.

========== 작품 후기 ==========

와하하하. 파픈스타도 행복하지 않을지어다!

@루서스 - 님의 리코멘을 말씀하시는거라면 전 화의 코멘에서 님은 앞에 @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로레리루라 - 기억이 어정쩡하게 날아가서 원래의 기억과 검호때의 기억이 묘하게 절충된 상황.

@Racine - 일부만 진행할겁니다.

@sjdjabqh - 이번 챕터는 파픈스타가 중요하니까요.

@ghfkdqh - 큰 윤곽은 일단 다 짜두고 합니다.

@karuma - 후후후후 어떨까요?

@jkc9012 - 이쪽에서도 착각계인데 동생은 본모습을 안다는 설정.

@검은샤프 - 본편에서 검호는 뜰에 있는 팬아트처럼 눈매가 날카롭습니다.

@여행자구름 - 동생의 정체는 바로...!

@건전한독자 - 파픈스타의 새로운 차림은 프렌즈 이리나와 비슷했었다고 합니다.

@아토상자 - 기억이 상당부분 묻혔으니까요.

@jwh - 그래서 한 편 더 써봄.

@패러디좋아 - 가능성이 천원돌파!

@vestie - 최대한 할거 다 하고.

@Buche - 그냥 흔한 여동생 성격.

@적월식 - 그래서 본인도 깨닫고 자제... 하려 하지만 잘 될까 모르겠네요. 하필 소리계열이라 조금 조절못하고 왁 지르면 바로 마법 사용될 수도 있어서.

@ReFrante - 정답은 이미 나왔습니다.

@레시코 - 그리고 파픈은 코앞에 밥상이 차려져 있는데 빙빙 돌아가고있음.

@Ratios - 소설이니 그러려니 합시다.

@Eluines - 개강전에 손가는대로 쓸 예정.

@소라루 - 아마 20편안에 끝날거임.

@Raseuna - 제대로 읽으셨다면 검호의 동생은 바로...

@마서 - 음? 이전화에 파픈스타 화낸걸 말하는거라면 갑자기 밀려오는 쪽팔림과 낚임에 대한 분노, 어디선가 휘몰아치는 허무함의 삼중주의 결과입니다.

@허공말뚝 - 생명의 오버시어가 일부러 인과조절까지 해주고 있는거. 그런데 결과가 상당히 처참함.

@칼크래프트 - 아뇨... 더 굉장한게 동생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