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픈스타side.
다음 날, 나는 바로 검호를 찾으러 사립 영재학교로 갔다. 원래는 등교시간을 노리려고 했는데 기숙사에 들어오는게 너무 늦어서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내가 지각하기 직전이더라.
왜 고등학생 신분따위을 얻은건지. 기왕이면 백수라고 오해받더라도 대학생이나 성인의 신분이 활동하기 좋은데. 하여튼 하교시간에 맞춰 곧바로 인적이 드문곳 위주로 텔레포트를 써서 그 학교에 다시 도착한 나는 때마침 똑같이 마쳐 쏟아지듯이 나오는 하교생들을 눈 빠지도록 살펴보았다.
진짜 여긴 진정한 의미의 두발자유화가 이루어졌는지 정말 머리색이 컬러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수국제학교도 남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계속 찾다가 나는 프렌즈 세계에 온지 약 사흘만에 마침내 그를 찾을 수 있었다.
"검호……!"
크게 이름을 부르려고 했는데 끝에 목소리가 사그라들더니 입술을 누가 본드같은걸 칠한 것 마냥 들러붙었다.
그가 교복을 입고 있어서가 아니다. 지금 나도 똑같은 상황이니까. 옆에 보기만해도 훈훈해지는 훈남이 서있어서도 아니다. 중요한건 검호인데 그런거에 신경쓸 시간이 없다. 그가 지나가는데 모세의 기적처럼 인파가 갈라져서도 아니다. 저건 메이플 월드에서도 있던 일이니까.
'왜?'
어째서 사이키커가 당신한테 달려가는거야?
"야 이쪽이 니 친구?"
"아니다."
"분명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아싸가 되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친구도 사귀고…… 제법이네."
"날 뭘로 보는거냐. 그리고 친구 아니다."
"이쪽은 누구야 검호?"
"내 동생."
"하이~"
나는 자리에서 도망쳤다. 무언가, 견디기 힘들었다.
사이키커가 그의 동생? 학생기록부에서 봤던 형제관계가 그였단 말이야? 잠깐 여기서 동생인거야 아니면 실제 동생인거야? 분명 루디브리엄에서 사이키커를 죽인 사람은 검호일텐데 왜……? 그것도 그냥 죽인게 아니라 참수했다고 윙마스터 쌍둥이에게 들었는데?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는걸 포기하고 의문들을 한쪽으로 밀어넣은 나는 몸을 숨기고 그들을 따라갔다.
"어제 도움을 좀 받았거든."
"어제? 피방가서 늦게 온줄 알았는데 학교 갔었냐?"
"날 뭘로 보는거냐."
"롤에 미친놈이지."
훈남은 학교 가까이에서 사는지 그들에게 인사하고는 어떤 큰 건물로 가버렸고, 남은 두 사람은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며 시덥지않은 얘기들을 했다.
저녁은 뭘로 만들까, 빨래는 언제 할까, 설거지는 니가 해라─ 같은 그런 얘기들이 이어지는걸 들으며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건 그냥, 흔한 남매들의 모습이잖아. 겨우 머리를 들어 보인 모습에 나는 무언가 탄식하고 싶었다.
결코 많이 봤다고 할 수 없지만, 볼때마다 대체로 감정을 띄지않거나 찡그리고 있던 그의 얼굴이 그 소소한 얘기들에 표정이 오만가지로 변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기분속에서 나는 머리를 쥐어뜯듯이 거칠게 쏟아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그의 앞으로 갔다.
"응?"
"전학생?"
"…… 오랜만이야. 검호."
나는 그의 붉은 눈과 마주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기대를 걸며.
"쟤가 니가 말한 그 전학생이냐?"
"어. 근데 너 쟤 알아?"
그는 나를 물끄러미 보고는 뭔가 떠올랐는지 살짝 눈을 크게 떴다. 기억하고 있……!
"그때 그 노숙자?"
"…… 뭐?"
"쟤가 왜 노숙자냐. 사람 잘못 봤겠지."
"그 정도로 기억력 나쁘진 않아. 얼마전에 골목길에서 자고있는걸 보고 경찰서에 옮겨다줬을뿐이야. 노숙자인줄 알았는데 니네학교 학생이었냐."
"저기, 잠깐만. 그것말고 기억하는거 없어?"
날 옮겨준 사람이 그였다는 경악은 최대한 뒤로 빼내고 나는 다급히 물었다. 환생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테니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오버시어가 말했는데.
"…… 난 너 처음보는데."
그 말에 나는 언데드 몬스터가 되버린것마냥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 그대로 축 쳐져버렸다. 그애는 기대하지 말라고 했지만,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다.
"그래. 그럼 됐어."
메이플 월드니 초월자니 하는 말은 나오지도 않았다. 그저 앞으로의 막막함에 절로 입이 다물렸다.
***
[그래서 그냥 왔다고?]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데 그런 말을 해봤자 날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을게 뻔하잖아."
[못하는게 아니고?]
얘가 무슨 말을 하는거야.
[너, 정말 그를 살려내고 싶은 생각이 있긴 하지?]
"당연한 말을─"
[그럼 수단방법 안가려야지 왜 이러고 있는데. 미친사람으로 취급받으면 어때? 어차피 거긴 너한테 잠시 들렀다 가는 게임 속 세상에 불과하지 않아?]
"…… 게임이 아니야."
젠장. 이거였다. 진짜 이 애는 다른 오버시어들의 말빨을 다 뺏은 것처럼 말을 잘한다.
"여긴 게임 속이 아니야."
내가 그때 그와 사이키커를 보고 느낀 감정은.
"지금의 그도, 그가 누리고 있는 일상도, 그 행복도…… 전부 가짜가 아니야."
[헤에?]
"난 그걸 부술 자신이 없어. 그가 메이플 월드에서 살아나봤자 할 일이라고는 검은 마법사와 싸우는 것 밖에 없는데, 차라리 아무 것도 떠올리지 않고 여기 있는쪽이 그에게 더 행복할테니까."
처음 생명의 오버시어가 이 말을 했었다. 괜히 했던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돌아올거야?]
"그건……."
[그리고 넌 지금 그가 행복해보인다고 했는데, 본래의 그도 그렇게 생각할까?]
"뭐?"
[말 그대로,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의 그가 지금의 제 모습을 보고 그대로 계속 살아도 된다고 할까 그걸 묻잖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건 그만 알고있을텐데!"
[그럼 물어봐.]
"어떻게?! 지금 그는 기억을 다 잃었다고! 날 기억하지도 않아! 보자마자 노숙자라고 말했단 말이야!"
다시 기억을 되찾게할 방법이 있었으면 진작에 썼지.
[너 마법사잖아. 마법 써.]
아니 그런걸 답이라고.
"난 그런 마법 몰라! 내가 쓸 수 있는건 소리를 이용한 마법하고 치료 마법, 물 마법이 전부라고! 이 전직이 쓸 수 있는게 그것뿐인데 어떻게 그런걸─"
[답 나왔네. 소리 마법을 써.]
"그걸로 어떻게 기억을 되찾게 해?!"
[소리로 자극을 줘. 그는 기억을 '잃은'게 아니라 '잊은'거야. 사라진게 아니란 말이야. 그 증거가 있잖아. 그는 여전히 검호라고 불리고 있어.]
나는 이마를 잠시 짚었다가 말했다.
"너…… 다른 오버시어들 말빨 니가 다 뺏은거 맞지?"
[좀 많이 가로채긴 했지. 그래서 세계에 제일 많이 녹아들어 있는동안 1빠따로 힘 다 뜯기고 가장 먼저 봉인됐어.]
"젠장 역시."
이놈도 정상이 아니었어.
어쨌든 소리를 이용한 마법으로 기억을 되살린다라…… 방법이 나왔지만 구체적으로 어째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납치해서 묶어놓고 그 앞에서 노래 부를수도 없고.
"…… 잠깐만."
분명 그때 그의 옆에 있던 사람이─
***
[진짜로 하는거냐.]
"어차피 그와 함께 돌아가기만 하면 다시는 안올 세계인데 뭐."
나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리고 눈앞의 문을 향해 세게 주먹을 날렸다.
콰앙─!
[그냥 마법 쓰지 그래?]
"안돼.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
[지금도 충분히 이상하거든?]
"얼음 날리는 마녀보다 괴력의 여고생이 더 그럴듯해."
[…… 아니 텔레포트 쓰라고.]
"아."
나 무식해진건가. 닫힌 문을 본 순간 부숴야한다고 생각했어.
절대로 고쳐 쓸 수 없을만큼 박살난 문을 밟으며 나는 건물에 들어섰다. 로봇들이 다나오는게 보였지만 적당히 발길질해 부수고 윗층으로 올라갔다.
"누, 누구야!"
"미안. 실례할게."
그냥 포기하고 눈앞의 문도 발로 차서 날렸다. 이쪽이 더 위압감을 줄테니 차라리 나으려나. 질겁하는 니트처럼 생긴 놈을 무시하고 나는 홱 고개를 돌렸다.
날아가던 문짝은 갑자기 허공에서 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뚝 멈췄다.
"이거 굉장한 손님이 왔는데? 교복을 보니……."
"니가 사립 영재학교의 회장 맞지?"
말을 다 들어줄 시간따위 없다. 나는 곧바로 달려들어 초능력을 쓰는 남학생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근시일내에 신수국제학교와 사립 영재학교 미팅을 잡아."
"…… 하?"
"그리고 그 미팅에 반드시 콘서트를 넣어서 짧은 시간이라도 좋으니 '내가' 공연을 할 수 있게 해."
"갑자기 쳐들어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리고 넌 대체 누구─"
콰드득! 우득!
바닥과 천장 가리지않고 실내에 얼음꽃이 만발했다.
"기왕이면 미팅 장소는 워터파크로."
만에 하나 모를 일을 대비해서.
"만약 안하면…… 아, 하지 말아봐. 내가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면 말이지."
소파에 남학생을 내려준 나는 그대로 찌그러진 문짝을 발로 우그러뜨려 고철로 만들고 밖으로 나왔다.
[와. 너 진짜 무식하다.]
"닥쳐."
메이플 월드에서 지내는동안 힘으로 밀어붙이는게 너무 익숙해진것 뿐이야!
========== 작품 후기 ==========
키네시스가 등장한 이유입니다. 파픈스타는 키네시스한테 전혀 관심없어요. 나이차가 10살 가까이 되는데.
@ReFrante - 검호가 작정하고 힘쓰면 파픈스타보다 더한 짓을 할 수 있음.
@노란우산s - 아뇨. 검호와 파픈이면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돌아갈 의사가 없거나 못하거나라서.
@레시코 - 그리고 키네시스는 어제에 이은 수난.
@Ratios - 전 화에 리코멘 마크 다셨는데 실수로 못보고 못했습니다.
@적현월 - 하마 맞아요. 죽진 않았음.
@Blake117 - 안전(?)과 안심(?)의 오버시어가 있는데?
@Racine - 그리고 진도를 파픈이 확 뺐음.
@루서스 - 동명이인이라 생각합시다.
@zeil - 협박당하기 위해. 저런거 할 수 있는사람이 키네시스랑 시그너스뿐이라서.
@neve - 검호는 태생부터 검마, 하마랑 영 안맞는듯.
@로레리루라 - 시간축이 달라서 검호가 돌아가는 곳은 검마 봉인무렵, 키네시스가 갈때는 검마 봉인 후 수백년이 될듯.
@칼크래프트 - 이 챕터는 길지 않아서 다 나오지 않음.
@아토상자 - 진짜로 끌고 갈 기세.
@여기돈까스요 - 파픈의 무대를 만들기위해 잠시 나왔을뿐임.
@lte23 - 절대로 얘 분량이 많을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Sisre - 시간대가 달라서 fail.
@건전한독자 - 그리고 파픈은 또 고생한다.
@바이휴런 - 걱정마세요. 잘 가고 있습니다.
@여행자구름 - 다 쓸려고 했는데 이 챕터 오래끌 수가 없어서 바로 넘겼음. 죄송합니다.
@좌절거북이 - 밤의 영웅쯤으로 착각당하는중.
@Kianato - 애초에 안갔는데요.
@허공말뚝 - 아후라와 함께 실종됬다고 예전에 언급되었죠.
@책벌레씨 - 아침시간에 짬을 내서 한 편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