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76화 (76/208)

<--  -->  검호side.

"미팅?"

"어. 회장이 니네 학교랑 단체 미팅 한다는데."

"너네 회장 할일 없냐."

"어지간한 일은 전부 부회장이 하고 있으니까."

소파에 퍼져 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양새는 그야말로 완벽한 백수였다. 여고생에게서 백수의 모습이 보인다니.

"어디서 한데?"

"워터파크. 근처에 있는걸 하나 샀다더라."

역시 부르주아. 서민들과는 돈씀씀이가 차원이 다르군.

"근데 하필 워터파크냐…… 난 수영 못한다고."

"그 나이먹고 수영도 못하다니, 애냐?"

"저번에 바다로 갔었을때 익사할뻔했다고. 그 이후로 물은 싫은데…… 그냥 미팅 빠질까."

"안돼. 이쪽에서 다 오라고 했는데 그쪽도 마찬가지일걸?"

이게 뭔 날벼락이라냐. 회장은 별 말 없었는데.

아, 그때 바다에 갔던 이후로 수영은 진짜 못하게 됐다고. 일단 가긴 가겠는데 물 근처에는 안가야겠다.

"야 근데 너 언제 바다에서 죽을뻔했지?"

"그야 최근에……."

나는 말끝을 흐렸다. 언제였지? 분명 바다에서 죽을뻔한 경험은 있다. 코와 입으로 짠물이 마구 들어오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었다. 근데 그 사람이 누구였지? 바다에 간건 또 언제였고?

머리를 감쌌다. 분명 몸은 기억하는데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때 나와 함께 있었던 사람도 구해준 이 뿐만아니라 다른 한 명이 더 있었다. 그녀는─ 잠깐 그녀? 그 사람이 여자였나?

"…… 야!"

"으, 응?"

"뭘 멍청하게 서있는거냐? 수영복 사러 가자고."

잡지책을 펼치고 있는 동생이 서있었다. 뭐라는거야 얘가.

"아무도 니 몸매에 관심 안가지니까 그런거에 돈낭비 하지마."

"뭐 임마?!"

길길이 날뛰는 동생놈을 보고 생각했다. 저놈은 대학가서도 남친 한 번 못 사귀다 학창시절 다 날려먹을거야.

딩동!

"아, 손님왔다."

"어딜 말돌려 짜샤!"

"떠있는 물건이나 원위치해."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 얼마전에 인터폰이 고장나서 화상이 안뜨는지라 직접 나와서 사람을 확인해야한다. 조만간 수리기사를 불러야겠네.

그렇게 동생놈의 난동에서 도망치듯이 나온 나를 반긴 것은 한 여학생이었다. 얼마 전에 봤던 동생놈 학교의 이상한 전학생.

"또 만나네 검호."

"넌……?"

"파픈스타야. 파픈이라고 불러도 좋고."

"그런 이름 아닌걸로 아는─"

"파픈스타라고."

이름을 묘하게 압박하듯이 강조하는 그녀를 얼떨결에 파픈스타라고 불렀다.

"좋아, 일단 나와서 얘기하자. 하고싶은 말이 있어서 찾아왔거든."

"회장 고백은 나한테 하지말고 직접가서 해라."

"…… 그런거 아니야. 널 찾아온거라고."

날?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회장을 찾던데. 걔들 입장에선 눈이 뒤집히는 미남이니까. 남자인 내 기준으로 봐도 꽤 반반하게 생기긴 했고.

손을 붙잡혀 끌려오다시피 나온 나는 그녀를 강렬한 시선을 한몸에 받아 잔뜩 쫄아있었다. 무, 뭐지 이 여자? 포스가 장난아니잖아?

"간단하게 물어보는 것에 대답해줘. 만약 누군가가 너의 일상을 부순다면, 그 뒤에 너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싸워야하는 곳으로 끌고간다면 어떻게 할거야?"

"거부하겠지."

"…… 역시 그렇지?"

당연한걸 왜 묻는거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걸 받아들일리 없잖아.

"그럼…… 일상을 부수고 어딘가로 끌고갈 사람을, 넌 어떻게 할거지?"

"매우 화를 내겠지."

보통 그러지 않나. 나는 이어 말했다.

"그리고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물어볼거다."

"물어본다고?"

"무슨 일을 하면 그에 따른 이유가 있을테니까.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이유를 알아볼거다."

"그 뒤에 죽이고?"

"…… 죽이진 않아."

분명 머리끝까지 화가 나겠지만, 일단 이유를 알아볼 생각이다. 사정이 있었다고 호구마냥 용서해주는 일은 절대 없겠지만, 그래도 이유정도는 듣고싶으니까. 그리고 난 사람을 막 죽이는 살인마가 아니라 그냥 고딩이라고. 아무리 화가 나도 정말 그 사람을 죽인다는건 무리지 않을까.

여학생은 뭔가 상당히 놀란 것처럼 파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렸다. 저러다 파리 들어가겠다.

"왜?"

"살인은 하면 안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누군가를 헤치는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기분나쁘고. 한 생명을, 나와같은 사람을 죽인다는건 끔찍한 일이잖아.

"그래…… 그렇구나. 정말 간단한 이유네."

당연한거에 뭐 그렇게 놀라는걸까 저 애는.

"당연히 미워할거라 생각했어. 원망이 쏟아져도, 증오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배에 칼침맞을 각오도 했거든."

뭔 흉흉한 얘기를 하는거야 얜?

"뭐, 말이 그렇고 실제로 벌어지면 모르는 일이지만 덕분에 결심이 섰어. 고마워."

"무슨 말을 하는거지?"

"이쯤되면 알아채줘 검호."

여고생이 몸을 돌리자 풍성한 양갈래 머리가 길게 흔들렸다.

"난 너의 일상을 박살낼거야. 그러니 마음껏 화내도 좋아."

"잠깐!"

손을 뻗은 순간 그녀가 사라졌다. 마치 마법처럼.

방금 생각난 사실인데, 난 그녀에게 내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었다.

***

파픈스타side.

아, 좀 떨리네. 역시 이렇게 사람이 많은 무대는 긴장된다.

[어차피 니 전직자체가 이런거 잘하지 않았어?]

"원래 난 노래 못 부르고 기타도 칠 줄 몰랐어. 뜬금없이 기타로 노래부르면서 마법쓰는 캐릭터가 되서 손가락에 피나도록 연습하다보니까 잘 쓰게 된거지. 원래는 인문계였다고."

나는 거울앞에서 빙글 몸을 돌려보았다. 정말 쪽팔리는데 이 옷이 너무 익숙하다. 생각해보니 이 옷만 몇 년째 입고있잖아? 단벌신사에도 정도가 있지.

[후회하지 않나.]

"응."

[그가 기억을 되찾으면서 넌 그토록 바랬던 일상을 부순 것을 알고 분노하는 그에게 죽임당할지도 모른다. 너는 그놈보다 약해. 힘의 절대량은 그놈이 훨씬 더 위다.]

"괜찮아. 다 알고 있지만 하겠다고 했으니까."

검은 마법사의 앞에 섰을 때의 그도 이랬겠지. 물론 지금 내 상황이 그때의 그와 비슷하다고는 못하지만.

[죽임당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미움은 받을거다. 인간은 미움받는걸 싫어하지 않았나.]

"사람 하나 살리는데 그걸로 끝난다니 정말 싼값이네. 다행이야."

[…… 대화가 안되는군.]

"오버시어가 그런 말을 하면 안되지."

"누구랑 대화하고 있는거지?"

나는 양갈래의 한쪽에 리본을 묶으며 목소리가 들린쪽을 보았다. 이 무대를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훈남이 상반신에 뭘 하나 걸치고 수영복차림으로 서있었다.

"혼잣말이야. 신경꺼."

"왜 이런 무대를 요구한거야."

"노래할 장소가 필요했거든."

"…… 그게 전부?"

"어. 그리고 어떻게든 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상황도 갖춰져야 했고."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논 다음에 누가 여기서 콘서트를 한다고하면 어찌됐든 듣게 되있다. 마치 수학여행때 장기자랑 타임처럼. 처음엔 길거리 공연을 생각했지만 그가 다 들을거라는 확신이 들지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로 이 상황과 무대를 마련해줘서 고마워."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야했을뿐이야. 당신같은 힘을 가진 사람이 작정하면 뭘 저지를지 알 수 없었으니까."

"밖에 경찰이나 안전요원이 좀 많다 생각했는데 그것때문이었어? 하, 돈낭비했네."

훈남이 인상을 쓰며 나를 노려보았다.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하는거지?"

"거창한 계획따위 없어. 그냥 그가 내 노래를 듣게 만들어야 했거든."

[니가 쓰는 마법은 엄밀히 따지면 지금 세계 이전의 마법 중 하나로, 찬트(chant)라고 불리던 거였지. 그 세계를 살던 이의 몸과 게임 시스템을 합치면서 기능이 극도로 제약되긴 했지만, 바램을 들어준다는 본질적인 효과는 그대로일거다.]

얘 목소리가 나한테밖에 안들려서 다행이다. 나는 머리카락을 마지막으로 리본이 바로 묶인 것을 확인했다.

어둡기 그지없는 대기실에서, 더없이 밝은 무대의 위로 나아갔다.

========== 작품 후기 ==========

파픈스타는 내심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다른 세계라 해도 그가 누리고 있는 일상(행복)을 부숴도 되는가? 그런 일을 한 뒤에 그에게 미움받지 않을까? 화가 난 그에게 공격받지 않을까? 같은. 특히 마지막의 경우 죽을 수 있다는걸 생각하면...

랄까 여기 브금같은거 어떻게 올리죠? 다음 화에 좀 필요한데.

@라그실 - 여러모로 뻘쭘하겠죠. 정확히는 키네시스만.

@대어의예감 - 유리라기보단 여기서 몇 년 지내면서 본래의 고딩스러운 멘탈로 어느정도 돌아왔다는게 정답.

@Sisre - 같이는 안감.

@레시코 - 일단 파픈스타의 힘이 최소 영웅&군단장 이상이라 키네시스를 거기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잔인한 일. 그리고 정상이 아니라고 한건, 생명의 오버시어가 셋중에서 그나마 정상적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역시 맛이 가 있어서 그런거.

@zeil - 누가 힘법사가 약하다 했는가!

@소라루 - 그야 트립퍼중 가장 약한 파픈이지만 육탄전으로 전사 영웅인 아란보다 세니까요.

@노란우산s - 오타낸겁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칼크래프트 - 마침 예전에 미팅했다는 사실을 알고 여기에 써먹은거.

@좌절거북이 - 안하면 친히 다시 방문한다고 함.

@비야BiYa - 나한테 이런건 니가 처음이야! 같은 전개는 없음.

@루서스 - 루미너스가 보고 눈을 빛낼 모습.

@여행자구름 - 글쎄요... 어떨까요.

@책벌레씨 - 그리고 이어지는 검호의 강제 기억 소생기.

@적현월 - …핫…!…힛…!!…♥

@Racine - 기억 안나는거 맞음.

@karuma - 10년입니다. 파픈스타 인생의 약 3분의 1.

@ReFrante - 마법도 잘쓰고 힘도 쎔.

@arays - 저기서 5차 스킬씩이나 쓸 필요가 있나요?

@Blake117 - 아니면 좀 미안해할지도.

@나는 죽지 않았다 - 올INT따위 버려라! 대세는 올STR이다!

@neve - 실제로 파픈은 저런 깽판치고 아무 뒷수습 안하고 그냥 갔음.

@아토상자 - 나중에 이 챕터 끝내면 외전으로 독립시켜놔야겠다...

@火炎無 - 다른 두 사람한테 가야할 것들을 모두 본인이 쳐묵쳐묵했으니 대가를 치룬셈이라고 해야할까요.

@뭉글이 - 그건 나중에 밝혀짐.

@MyloverL - 신캐버프 그런거 없다. 진정한 이고깽.

@Ratios - 게임에서 힘법은 망하지만 현실에서 힘법은 개캐.

@넝기 - 혼자 다 쳐먹었으니 1빠로 봉인되지...

@허공말뚝 - 당연히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생명의 힘을 가장 잘 다룬다는 이유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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