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78화 (78/208)

<-- 마법사는 머리가 좋다 -->  검호side.

물속에 잠겨진 몸이 거칠게 끌어올려지는듯한 느낌과 함께 나는 눈을 떴다. 꽃잎처럼 흩날리는 눈발과 차가운 얼음 바닥, 어디를 봐도 새하얀 비현실적인 풍경.

"일어났네."

나를 감쌌던 아름다운 푸른 빛과 똑같은 색의 머리카락을 땅에 끌릴정도로 길게 땋아 늘어뜨린 아이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넌……."

"그때 이후로 처음이지. 오랜만이다."

이곳이 메이플 월드임을 확실하게 증명해주는 존재가 시큰둥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정말로 돌아온 것이다. 바람에 마구 흔들리며 얼굴에 치덕치덕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확 떼내 넘겼다. 싸우는데 도움이 된 역사가 없는 화려하기만 한 붉은 옷과 털망토가, 머리장식과 옷에 달린 방울이 잘랑이는 소리가 더없이 익숙했다.

아, 나중에 원래 몸으로 돌아가면 되려 낯설 것 같아.

"니 몸은 그 여자가 부탁해서 내가 가능한한 고쳐놨다. 그렇다고 막 굴리지는 말고."

"잠깐, 파픈스타는?!"

"그 여자는 니가 걱정할만큼 약하지도, 멍청하지도 않아."

아이가 어딘가를 손가락질했다. 통신용 수정구로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멀쩡…… 해?"

"애초에 저 여자 직업은 힐러라고. 그런 상처따위 스스로 고칠줄 아는게 당연하잖아."

"하지만 좀 전에는,"

"그야 너랑 싸우느라 마력이 다 떨어졌으니까 그렇지. 돌아오자마자 포션 들이킨다음 바로 힐 써서 치료했어."

허무할정도로 간단한 대답에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뭐야 그게. 나는 눈가를 쓸어내리며 물었다.

"여기는 어디─"

[마스터어어어어어!!]

뭔가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얼굴에 철썩! 붙었다. 아픔은 둘째치고 무척이나 정겨운, 듣고싶은 목소리였다.

"…… 아스카."

[후으으으, 진짜 살아났어어……! 보고싶었어! 정말 보고싶었다고 마스터!!]

버둥버둥 매달려서 훌쩍이는 소리에 뭔가 굉장히 신기한 기분이 되었다. 내가 살아난 것에 이렇게 기뻐해주는 사람이 여기에도 있구나.

재회의 기쁨은 그렇다치고 나는 조심스레 아스카를 떼내며 물었다.

"왜 작아진거야."

"내가 작게 줄였어. 쓸데없이 크고 시끄러워서 말이지."

[마스터 쟤 좀 어떻게 해줘! 그 여자가 가있는 내내 계속 날 껴안고 비비적거려서 진짜 짜증났단 말이야! 비늘 까지는 줄 알았다고!]

마음은 알겠는데 부탁해야하는 상대가 잘못됬어. 난 쟤한테 개길 수 없는 위치라고.

"확 그냥 원상복귀 안해버린다?"

"지금 원래대로 해줄 수 있나."

안그러면 내가 정말 곤란한데. 얘가 이렇게 작으면 탈 수가 없다고. 머리에 당연하게 아스카=탈 것이라는 생각이 박혀있는게 좀 미안했지만 그 외에도 이렇게 작으면 몸집이 컸을때보다 위험해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하, 뭐 좋아."

아이의 가벼운 손짓 강아지만한 크기의 아스카가 순식간에 쑥쑥 불어나더니 본래의 크기로 돌아왔다. 아…… 어째 좀 더 커져보이는 것 같기도.

[만세! 내 몸 돌아왔다!]

"날개 좀 펼쳐봐. 바람 막게."

[응!]

지붕처럼 거대한 날개 하나가 펼쳐지며 닿지만해도 피부에 쩍쩍 갈라지는듯한 칼바람을 막아냈다. 아, 역시 아스카는 큰 쪽이 자연스러워. 작은 쪽도 귀엽긴 했지만. 나는 실실 웃고있는 아스카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물어."

[마스터 정신 제대로 안깨어났어?]

200% 제정신이다.

"내가 죽으면서 계약 끊어졌을테니 다시 계약해야할거 아니야. 예전에 계약했던 방법이 분명 니가 내 손을 무는 걸로 기억하는데."

[우으으으…… 마스터어어어어─!!]

잠깐 아까처럼 달려들지마! 고속철도에 치이는거하고 거의 같은 수준의 데미지를 받을거라고! 하지만 아스카는 펑펑 울면서 맞으면 시원하게 샤워할수 있을만큼의 물을 쏟아내며 기어코 나에게 달려들었고, 나는 아스카의 왼쪽 앞발에 깔려 상하반신이 동강난다는게 얼마나 아픈지 알 수 있었다. 허, 허리가……! 살아나자마자 임사체험을 하다니 이 무슨 참사냐고. 나는 아스카의 발을 겨우 들어 바르작거리며 기어나왔다.

"예전 계약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니가 그 오닉스 드래곤과 계약하고 싶다면 그애의 머리에 손을 올리는 행위를 하기만 하면 될거야."

그걸 쟤가 어떻게 아는거지? 했다가 오버시어니까, 라는 만능 답이 떠올랐다. 아이는 내 머릿속을 읽은것처럼 뚱하게 대답했다.

"애초에 오닉스 드래곤의 원종이 되는 생물종을 만든게 나야."

[니가?]

"창조주한테 좀 더 경외를 보내지 그래?"

[별로 안그래보여.]

얘 간은 몸밖으로 나와 공차기를 해도 될만큼 부어있는게 확실했다.

"…… 뭐 이제와서 창조주노릇 하는 것도 웃기겠지만."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신세한탄이야. 신경쓰지마"

나는 아이에게서 고개를 돌려 아스카의 머리에 손을 짚었다. 처음 보았을때 지렁이 춤추는듯한 모양의 무늬는 지금 보니 좀 멋져보이기도 했다. 이마부위의 무늬가 빛나며 그 빛이 손등에 똑같은 문양을 새겼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좋아 좋아, 이제 준비 끝났네. 앞으로 할 일을 알려줄게. 조만간 일이 벌어질거야."

막 통신을 끝낸 파픈스타가 물었다.

"당신 미래 예지도 할 줄 알았어?"

"그 여자만큼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할 줄 알아. 거기다 이 세계는 다섯 번이나 반복되서 시간선도 꽤 쉽게 읽을 수 있고."

그 다섯 번이라는 숫자가 그년의 삽질 횟수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 갑자기 빡치네.

"빛의 초월자…… 너희가 검은 마법사라고 부르는 존재가 영웅들에게 봉인되기까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네."

"벌써 그렇게 됬어?"

봉인? 알리샤가 없어서 힘이 깎이지 않아 봉인은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그곳에 있는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얼마정도 남았지."

"최대 일주일, 최소 삼 일."

나 몸 다 안고쳐진 것 같은데. 특히 청각이.

"여기서 리프레까지 저놈을 타고 가면 얼추 시간이 맞을거야."

"잠깐, 아까부터 묻고싶었는데 여기가 대체 어디지?"

예전에 생명의 오버시어를 찾기위해 메이플 월드를 샅샅히 뒤졌었다. 그런데도 못 찾았는데 대체 어디 박혀 있었던거야?

"북극."

"…… 하?"

"뭘 놀라는거야. 메이플 월드의 땅도 둥글다고. 지리학상 북극이 존재하는건 당연하잖아."

미친. 나 완전 개고생 했었다는거잖아.

"알았으면 빨리 가. 그 여자가 만들었던 팔찌는 내가 적당히 개량해놨으니까 그놈이 공격같은거 날리면 그걸로 막아. 힘 흡수는 그걸로 될거다. 디멘션 게이트는 그놈이 시간의 초월자-륀느의 힘을 가지면서 이미 열렸으니 그란디스로 넘어가기도 수월할거다."

그렇게 목표가 정해짐과 동시에 우리는 쫓기듯이 출발했다.

리프레로 날아가는동안 그 소녀와 함께 보냈던 일상이 떠올랐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분명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아쉬움을 탁탁 털어냈다. 평화롭고 행복했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없었으니까.

***

파픈스타side.

분명 돌아왔는데 그는 곧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어째서야?"

"이전에 그 여자가 만들어둔 혼과 육체를 잇는 연결이 부실해서 쉽게 끊어졌거든. 그래서 일단 영혼은 재워두고 이참에 연결고리를 새로 만들고 있는거야."

아이의 주위에서 반투명한 사슬들이 끝없이 만들어지며 그의 몸안으로 파고들어갔다.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지만 그래서 되려 기괴한 광경이다.

"하여간 그 여자는 잘나가다가 중요한 곳에서 삐끗한다니까. 그렇게 약해진 힘으로 이런 몸을 6개나 만들었으면서, 정작 연결은 영 부실하게 하고."

"그 여자가 잘하는게 있었어?"

"당연히 있지. 일단 뭘 만드는, '창조'에 관해서는 우리중에서 그 여자가 최고야."

영 믿기지가 않았다.

"너희는 아무렇지않게 다니고 있지만 오버시어인 내 눈에도 니들 몸은 기초적인 구조조차도 이해하기 힘들어. 그런 몸에 게임 시스템이라는걸 어떻게 연동시켰는지는 아예 모르겠고. 대략의 윤곽정도는 알겠지만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영역이랄까, 그렇거든. 그래서 함부로 손볼수도 없어."

"하지만 지금 하고 있잖아."

"이런 작은건 내가 그나마 건드릴 수 있는 거라서 하는거고. 이것마저도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다 망해."

어째 불길한데.

"옛날에 힘이 멀쩡했을땐 은하 한 개를 장난처럼 만들 수 있는게 그 여자였다고. 그런 여자가 공들여서 만든걸, 고작 생명이라는 영역이 조금 겹친다고 손보는게 위험한거지."

농담이 아니라 표현 그대로 스케일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말이다.

"나중에 오닉스 드래곤과 재계약하면 연결이 좀 더 견고해질테지만 안정되기까진 시간이 필요해. 이놈이 위험해지지 않도록 옆에 있어."

"그럴 생각이야."

"아니, 별로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아보여서 하는 말이야."

아이의 붉은 눈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어딘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말해도 소용없겠지. 어차피 이번같은 일은 다시는 못할테니까 알아서 몸 사리라고."

"힘이 그렇게 많이 깎였어?"

"니가 알아듣기 쉽게 비유하자면, 시간축 붙잡고 차원 구멍 유지하는데 mp가 초 단위로 억소리나게 깎였다."

…… 내가 며칠을 거기 있었더라.

"정말 고마워."

"인사따위 필요없으니까 니가 여기 불려온 목적이나 수행해. 우리의 봉인을 푸는 것. 그것이 니들이 해야하는 일이야. 난 이제 니놈들을 도와줄 수 없을만큼 힘이 떨어졌으니까 더이상 기대지 말고."

나는 아이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고, 영웅들에게 통신을 보냈다.

잠시 후 그가 깨어났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오닉스 드래곤과의 재회를 반기며.

========== 작품 후기 ==========

검호는 아스카와 재계약했습니다. 처음 둘이 계약했던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물론 감동이고 나발이고 곧바로 검마 레이드를 뛰러 가야했지만.

전 화의 뒷부분에 설명이 좀 부족한것 같아 수정했습니다.

@팬더토끼 - 글쎄요? 혹시 아나요. 좋은 방향으로 바뀔지.

@대어의예감 - 명심하세요. 모든 트립퍼들은 사망 플래그가 박혀있습니다. 그리고 외모의 경우 시간의 오버시어가 만든거라 불로입니다.

@Blake117 - 어차피 트립퍼틑 다 1회씩 죽음이 예정되어 있어요. 방식의 차이만 있을뿐이지.

@밀랍아이 - 제가 죽으면 다음 편은 없습니다.

@칼크래프트 - 안죽음. 진짜 쉽게 상처 치료하고 전화중이었습니다.

@마서 - 생명의 오버시어 서포트는 세계제이이이일!!

@나는야써니10 - 미안해요 독자님.

@적월식 - 돌아갈 몸이 박살났는데?

@패러디좋아 - 운나빴으면 진짜 죽을지도 모르... 가 아니고 인벤토리에서 포션 꺼내서 마시고 mp채운다음 힐 썼겠지.

@적현월 - 키네시스가 잘 했을겁니다.

@ReFrante - 사랑? 일까요. 아직은 좀 애매한데.

@노란우산s - 네. 어떻게든 다 한 번은 죽을겁니다. 지금 산다고 해도 나중에도 살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넝기 - 구르러 가는중~~

@Eluines - 키네시스가 끌어들여진 이유. 뒷처리 담당.

@Racine - 평범함에서 좀 벗어나게 되긴 했죠.

@루서스 - 혹시 압니까? 키네시스 서포터같은걸 하게 될지.

@Novel알케미스트 - 음? 보고 엔딩에 참조해볼까 하하.

@여행자구름 - 하마의 경우 난데없는 습격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때 빗자루 맞고 뇌진탕으로 진짜 골로 갈뻔했음. 그래서 좀 알아보려고 했더니 대형사고 치고 실종됨.

@Liura - 울 일만 잔뜩 있었죠.

@neve - 트립퍼들이 깽판치는데 거기에 끼어들 여지같은게 있을리가...

@소라루 - 응? 누가요? 누굴 죽일까요?

@책벌레씨 - 이제 혼자서 하드캐리하면서 뒷정리하고 하마랑 싸워야함. 시한폭탄같은게 되버린 사이키커와 은둔고수 플로우라 할머니는 덤.

@뭉글이 - 누군가가 '니놈 피는 무슨 색이냐!'라고 외치면 즐겁게 웃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Sisre - 다시는 안올거라면서 완전히 뒤집어놓고 가버림.

@아토상자 - 안죽어요. 아직은.

@BeyDun - 근데 스테이터스상 검호가 파픈보다 더 위.

@레시코 - 열심히 혼자 뛰었다고 합니다.

@Dt월 - 안그래도 후반부에 어색함이 느껴져서 다소 수정을 했습니다.

@허공말뚝 - 표지는 원래대로 검호로.

@루시드란 - 실제로 파픈스타의 성향은 어느쪽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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