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란side.
에우렐에서의 요청으로 빅토리아 반도, 지금은 빅토리아 아일랜드라 불리는 그 섬이 대륙에서 떨어져나간 이후의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잠시 리프레를 비우게 되었다. 이 시국에 리프레에서 벗어난다는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지만, 엘프들이 엘린 숲의 상황이 이상하다고해서 어쩔 수 없었다. 전부 가는것도 아니고 메르와 프리드, 유에정도만 갔을 뿐인데…….
"끝이 없군!"
얼음 마법으로 몬스터들을 한순간에 얼려 부순 팬텀이 투덜거렸다.
"프리드는 아직이야?"
"곧 온다는 대답을 들은지 10분이 막 됬을뿐이라고."
"거 더럽게 늦네!"
나는 달려드는 거북이를 닮은 용족 몬스터를 마하를 휘둘러 단숨에 갈랐다.
"사람들은?"
"아직 많이 남았다."
막 텔레포트로 도착한 루미너스가 지팡이를 풀스윙해 어느 몬스터의 목을 꺾어버렸다. 처음엔 보고 좀 놀랬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마법사가 도적보다 힘 센 일이야 있을 수 있지 뭐.
"비행선이 모자라지는 않고?"
"많이 부족할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엄청난 숫자의 비행선들이 몰려와서 문제없다. 그리고……."
"그리고?"
새하얀 빛의 창들이 일제히 발사되며 몬스터들을 휩쓸었다.
"어떤 드래곤이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그것 참 고맙네. 이참에 여기에도 드래곤이 왔으면 참 좋을텐데!"
프리드 걔는 왜 이렇게 늦는건지. 이렇게 자잘한 몬스터들대신 큰 거 하나만 나오는쪽이 차라리 나을 것 같다. 아프리엔을 탄다해도 시간이 꽤 걸린다는걸 알고있지만 불평할 수 밖에 없었다.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게 아니다. 숫자가 지나치게 많아서 문제인거다.
'여기에 군단장까지 나타나면 정말 예술적인 상황─'
[크워어어어어어─!!]
불과 검은 연기로 보이지않는 숲 저편에서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짐승의 포효소리가 울렸다.
"…… 말이 씨가 되는걸 넘었군."
"방금 소리는 보나마나 그놈이겠네."
"이쪽으로 오기전까지 싸울 장소부터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새하얀 빛이 가지를 뻗는것처럼 퍼지며 일대의 몬스터들을 통구이로 만드는걸 넘어 벌레먹은 사과처럼 뻥뻥 뚫어버렸다.
나무들을 이쑤시개처럼 뚝뚝 부러뜨리며 불길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이는 군단장, 반 레온이었다. 피를 뒤집어쓴듯한 불과는 다른 새빨간색의 갈기에 나는 눈을 찌푸렸다.
[여기 있었던거냐 영웅들.]
"루미너스, 팬텀. 당장 사람들을 마저 대피시켜줘."
마하를 고쳐쥐어 그놈을 향해 겨누었다.
"잠깐, 혼자서 저걸 상대할 생각인가?"
"걱정말라고. 이 누님이 그런것도 못할리가 없잖아."
그 마족 군단장이면 모를까 반 레온이라면 상성이 나쁜것도 아니다. 1:多 싸움은 그렇게 꿀리지 않으니까.
"우리 세 명이 모두 여기있는것 자체가 전력 낭비야. 그리고 너희는 나보다 발도 빠르고. 빨리 가서 사람들을 구해줘."
"…… 알았다."
"무리하진 마."
동료들의 염려어린 말을 뒤로하고, 나는 주위를 둘러싸는 좀 전의 용족들에 비견될만큼 엄청난 숫자들의 골렘들과 기괴한 몬스터 무리들을 맞이했다.
[니년 혼자서 뭘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쪽수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군단장이 할 말은 아니지!"
두렵지 않은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나서야만 한다면, 기꺼이 그리 할 수 있다. 나는 마하를 휘둘러 몬스터들을 종이장처럼 가르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
파픈스타side.
"하아, 젠장……!"
검호한테 사과해야하는 일이 생겼다. 그가 한 부탁을 못 들어주게 됬다.
"괜한 손을 쓰게 됬군."
쯧. 혀를 찬 놈이 데몬의 어머니-였던 것에서 눈을 뗐다. 기가차서 헛웃음도 안나왔다. 누가 할 말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놈이 지껄일 말은 아니다.
아무리 나라도 아무런 전투능력이 없는 두 사람을 지키면서 저놈과 싸우는건 무리다. 처음부터 알고있었지만 그래도 상황자체가 이미 벌어진데다 피할수도 없어서 결국 패널티를 떠안고 싸웠는데 일이 터진 것이다.
'죄송합니다.'
내가 두 사람을 지키는것 위주로 싸운다는걸 알고 집요하게 그 둘을 노린 놈이 결국 데몬의 어머님과 데미안을 공격하는데 이르렀고, 단 한 방이었지만 공격을 허용해버렸다. 치료를 하려했지만 그럴새도 없어서 - 죽음과 거의 동시에 환생이 이루어지기에 - 급한대로 인벤토리를 써야했다. 고인드립이라면 고인드립이지만 이런 방법이라도 써야했다.
"두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거 아니었나?"
"그럴 생각이었는데 뭐, 이미 죽었으니 별 수 없지. 어차피 그 여자는 내가 아니었어도 아카이럼한테 죽을 예정이었으니까."
저 자식이. 놈의 발밑에서 눈꽃이 일제히 피어나며 다리를 옳아맸다.
"뭐가 '죽을 예정'이었다는 거야!! 니가 뭔데 그 사람의 미래를 확정짓냐고! 그딴식으로 책임회피 하지마! 니가 날 붙잡겠다고 나서지만 않았으면, 저분은 멀쩡히 살 수 있었어! 내가 그 영감탱이를 막았을테니까!"
마력탄에 복부가 뻥 뚫린 데몬의 어머님의 시신을 부여잡고 데미안은 흐느끼며 울고있었다. 저 아이가 약해서 이런 일이 생긴게 아니다. 거지같이 우리랑 엮여서 그런거겠지. 어떻게 보면 우린 데미안에게 있어 아카이럼보다 더한 재액(災厄)이라 볼 수 있다.
"다 떠들었나?"
다리에 힘을 주며 눈꽃을 박살내가는 놈이 물었다. 순간 기타줄을 전부 끊어버릴뻔했다. 만약 저게 도발이었다면 정말 훌륭했다고 말하고 싶다.
"니가 왜 그 두 사람을 지키려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더이상 건드리는건 내버려둘 수 없어. 둘 다 죽는건 곤란하지만 하나밖에 안남았으니 그거라도 지켜야해서 말이야."
"그 한 사람, 방금 니가 죽였거든?"
"실수인건 인정하지. 데몬이 배신하면 곤란하니까 그거라도 회수해야돼. 그러니까 순순히 내놓고 붙잡히는게 좋을거야. 그럼 다리 하나로 끝나게 해줄테니."
"좆까."
나는 뻑큐를 날리며 그의 발아래에 있는 눈꽃을 폭발시켰다. 고통이 둔화되어있다 하더라도 상처때문에 곧바로 쫓아오지는 못할테니 이틈에 데미안이라도 데리고 도망쳐야─
"이게 누군가?"
도망쳐야, 하는데.
저보다 더 능숙하게 휘둘러진 새카만 시간의 밧줄이 몸을 휘감았다. 힘으로 끊어낼 수 있었지만 그 잠깐동안 굳어있는 사이 철컥, 하는 살떨리는 기계적인 금속음이 울리며 공기를 태우는 탄환이 날아들어왔다.
탕! 탕!
"꺄아악!!"
왼쪽 어깨가, 무릎 아래쪽에서 피분수가 튀었다.
"내가 분명 공습이나 해라고 했을텐데."
"이미 내가 맡은 지역은 끝났네. 그래서 돌아가려는데 마침 자네가 싸우고 있는게 아닌가. 그래서 와봤을뿐이네."
숨이 가빠졌다. 어깨가 날아가면서 피가 엄청 튀어 한쪽 시야가 새빨갛다. 닦아내고 싶어도 팔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상당히 위태로워 함부로 움직일수가 없다.
진짜 최악이다. 저놈도 벅찬데 시간의 힘을 다루는것에 한해서는 힘의 크기는 부족할지언정 연륜으로 충분히 커버가능한 아카이럼까지 오다니. 이래서는 데미안은 고사하고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들다.
'와주면 좋을텐데…….'
내가 늦어도 그가 여기 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 만약 끝까지 가지 못해도 두 사람을 데리고 숨기느라 그렇다고 생각할것이다.
"위대한 그분께 좋은 선물이 되겠군."
"어디 건드릴 생각하지 마라. 이 이상 흠이 나면 곤란하니까. 그보다 저걸 들어."
저거라고 지칭된 데미안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기절한걸지도 모른다.
"호오, 이건 그 애송이의?"
"동생이다. 이용할데가 있으니 일단 챙겨. 나중에 기억조작도 해야하니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나 생각했지만, 정말로 없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무력하게 잡혀가서 검은 마법사를 치료시켜야하는게 앞으로 해야하는 정해진 미래라면 당장 혀깨물고 죽는게 나을거라는 생각에 진지하게 고민까지 해야했다.
그리고 기적은.
"우우……."
"정신이 든겐가?"
"마법 써. 용족들이 이렇게 만들었다고 기억 조작하라고."
"알겠으니 재촉하지 말게."
내가 생각하지 못한 형태로 일어났다.
[Kwaaaaaaaaaaaaaaaagh──!!]
검붉은 마기가 휘몰아치며 막 힘을 각성한 마족이 미쳐날뛰기 시작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피가 쏟아지는 다리를 질질 끌며 도망쳤다. 지근거리에 있어서 한 방씩 먹은 둘이 당황하는 사이 텔레포트를 연달아 쓰며 어떻게든 거리를 벌렸다. 데몬의 어머님 시체? 챙길 시간도 없었다. 그분의 영혼을 아이템으로 지정해 인벤토리에 챙기는게 고작이었다.
"파픈스타?"
숲을 가로지르다 우연히 만난 그와 마주친 순간, 그대로 그에게 뛰어들었다.
[마스터! 상처가!]
"당장 힐링을 써!"
말이 안나올정도로 안심이 되서 그대로 기절했다. 눈을 감기 직전, 따뜻한 녹빛이 춤추며 모여드는게 어렴풋이 보였다.
***
데몬side.
리프레 전역에 공습이 있었다는 소식을 회의에서 뒤늦게 들었다. 황급히 남부쪽에 있는 집에 찾아가봤지만…… 이미 모든게 끝나있었다.
"어머니…… 데미안……!"
집은 남아있지 않았다. 원래 그곳에 집이 있는걸 알지 않았다면 무심코 지나쳐버릴정도로 새카맣게 타버린 집터만이 덩그라니 있었다. 하다못해 벽이나 기둥의 조각조차 없었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기어코 꺾여 잿더미에 무릎을 꿇어버렸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누가 쏟은건지 모를 흥건한 피로 축축하게 젖은 땅만이 전부였다. 몬스터의 것인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고싶었던 가족들의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당신도 결국 똑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겁니다! 군단장!'
시간의 신전을 함락시키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신관을 죽일때 그녀가 외쳤던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울렸다.
'대신 그 힘으로 저지른 일엔 분명 책임이 따르지. 너는 니가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지게 될거다.'
그때 나는 뭐라고 대답했지?
'정말로 가족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으면, 군단장 때려치우고 그렇게 소중하다는 가족한테 가버리란 말이야!'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담긴 눈을 봤을때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는 소중한걸 잃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
차라리 그때, 그 말을 들었을때 군단장을 그만두고 가족들과 함께 어디 먼 곳으로 갔더라면.
"으아아아아아아아─!!"
불씨가 남아있는 잿더미 사이에 무언가가 빛나고 있었다. 표면이 좀 녹아내린 가족사진이 든 로켓이었다.
"검은 마법사……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 작품 후기 ==========
검은 마법사:에? 난닷테?
아란은 이후 반 레온+지원 온 힐라까지 상대해 초 물량러쉬를 맞아 중상을 입고 그로기 상태가 됩니다.
검호는 매그너스와 스우 둘 다 쓰러뜨린 후 방치해뒀고, 이 둘은 스우를 찾으러 온 오르카가 주워갑니다. 부상이 심해서 정신을 차리는 것도 늦어서 영웅들의 결전까지 검호가 부활한건 알려지지 않음.
@패러디좋아 - 해피하게 끝낼거에요.
@소라루 - 프라이쉬츠입니다. 여기에 아카이럼 플러스.
@대어의예감 - 페이크였습니다~ 만 차라리 여기서 죽는게 나았을지도.
@라그실 - 파픈의 멘탈은 나날히 튼튼해지고 있어요.
@여행자구름 - 누가 검마 누명 좀 벗겨줘!
@Fowl - 그런 기적 없습니다.
@화뉴 - 어깨 한쪽이 날아가고 무릎아래로 또 날아갔지만 어쨌든 생존 성공.
@나는야써니10 - 써야하는데 여기서 완결짓고 싶어요.
@소르니아 - 파픈스타의 히로인력이 올라간다!
@ReFrante - 데몬은 다 끝난뒤에 왔습니다...
@Ratios - 그리고 그 난국의 결말.
@노란우산s - 파픈이 여기서 살아난게 좋은건지는 나중에 두고볼 일이죠.
@적현월 - 거기다 이성이 날아가는건 덤.
@Sisre - 아무도 검호는 걱정안하네요.
@허공말뚝 - 뭘 던지시는겁니까!!
@레시코 - 데몬이 왜 파픈을 살립니까?
@Eluines - 그리고 데몬은 한~참 늦게야 옵니다.
@루엔시르온 - 데몬은 (표면적으로) 모든걸 잃었고, 파픈은 챙길거 챙기고 튀었고, 검호는 열심히 굴렀습니다.
@곰휴지 - 프라이쉬츠는 그렇게 또 복수 플래그를 세웠습니다.
@Pote - 데미안 아니었으면 본인이 자살했을듯.
@sonage - 아뇨. 몸 만드는데 힘을 너무 써서 정작 연결이 부실해진 부작용입니다.
@Dowha - 저도 쓰고나니까 뭔가 삘이 이상했습니다.
@루서스 - 빅토리아 아일랜드에 가있었습니다. 문제는 간 사람들이 하필... 프리드가 포함되어 있어서 대응이 늦었음. 그리고 리프레는 좁지 않음.
@BJ박카 - 파픈도 구릅니다.
@Buche - 회피!
@핑구친구 - 실제로 파픈 다리는 날아갔지만 생존 성공.
@마서 - 지금 죽는게 나았을지도... 나중엔 죽고 싶어도 못 죽으니까.
@darkdestiny - 검호의 고생을 절반정도 덜어간 느낌.
@Resuna - 권총으로 레이저빔 난사한거.
@Blake117 - 결혼시킬것 같습니까.
@칼크래프트 - 데몬의 가족은 원작의 아카이럼때보다 더한 꼴을 당한...
@ch3ng - 그래서 검마의 상처를 치료시키려고 파픈을 데려가려는거.
@책벌레씨 - 문제는 그걸 아무도 설명 안해줘요. 설명 뗑가먹는건 시간의 오버시어든 생명의 오버시어든 똑같은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