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검호side.
입을 다물게하는걸 넘어 비늘사이로 피가 주르륵 흐를정도로 세게 우그러뜨린 뱀을 집어던진 직후 아카이럼의 가슴에 검을 꽂아넣기 일보직전, 차가운 마찰음이 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 반사적으로 뒤로 몸을 뺐다.
"변함없는 실력이군 그래."
비꼬는 방식도 예술적이다. 몇 년만에 검 잡는데다 감각까지 무뎌져서 싸우는 것은 물론 스킬 쓰는거까지 애먹고 있는데 뭐라는거야 저 영감탱이가.
그림자에서 기어나온 붉은 로브를 뒤집어쓴 뱀 사제들이 가느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아카이럼을 빙 둘러쌌다. 아까전에 소리가 저것들이었나?
"항상 뭔가를 끌고다니는군."
"'군단'장이니 당연한게 아닌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나."
늙은이가 입만 잘 턴다. 몸을 돌리며 제일 가까이 있던 이계의 사제 관자놀이 부근을 차 그대로 땅에 쳐박고, 쉭쉭거리며 뭔 마법을 쓰려는 뱀들의 스태프를 검을 휘둘러 고철덩어리로 만들었다. 저것들을 직접 베기엔 어쩐지 좀 꺼림칙해 몇 걸음 떨어져 참격을 날렸다.
"키에엑!!"
웁쓰. 참격에 대각선으로 썰린 놈의 단면에서 딱 봐도 몸에 안좋아보이는, '나는 독이요'라고 광고하는듯한 보라색 연기를 확 뿜어져나왔다. 가까이 있었으면 완전 좆됬겠네. 이어서 달려드는 사제들을 영감탱이가 있는 방향으로 힘껏 걷어찼다. 하필 보내는 것들도 이런 뭣같은 놈들이야.
퍽! 빠각! 검을 휘두르면 더 빨리 처리할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그 이상한 독가스같은게 뿜어져나올테니 결국 하나하나 주먹이랑 발길질로 때려잡아야했다. 뼈를 박살내는 느낌이 쓸데없이 생생해 주춤거리는 틈을 타 마법을 쓰려는 놈을 칼집으로 후려쳤는데 목이 폴더폰처럼 꺾였다. 이놈들 저 영감이 고의로 그래둔건지 모르겠지만 내구도가 약해……!
"전사는 전사라 이건가."
그래 전사라서 기초 근력만 무식하게 세다. 그나마도 군단장급에겐 잘 먹히지도 않아. 그나마 이번 상대는 다 늙어빠진 영감탱이라 명치에 스트레이트를 꽂아넣으면 갈비뼈는 전부 박살낼 수 있겠지. 기분은 더럽겠지만 저 영감은 세상에 살아있어봤자 해악만 끼칠 놈이다.
이계의 사제들을 다 처리한 나는 숨을 고르며 다시 검을 뽑아들어 늙은이에게 달려들었다. 거 연세도 있으신 분이 상당히 힘이 있어서 스태프로 검을 막아내 꽤 놀랐다.
'아니 잠깐만.'
왜 스태프가 멀쩡한건지? 아까 박살내지 않았나?
다음 순간, 아카이럼은 스태프를 빙글 돌려 나를 가까이 끌어들였고, 검에 힘을 주느라 앞쪽으로 쏠렸을때 비릿하게 뱀처럼 웃는 영감의 모습에서 오한을 느꼈다. 어째 감이 무지막지하게 안좋은데─ 할 때 갑자기 생겨난 반투명한 막과 그 막에서 퍼엉! 하고 폭발한 무지막지한 척력에 정통으로 맞아 뒤로 날아갔다. 악 내코! 거기다 순간 이빨 흔들렸던 것 같아! 젠장 꼴에 마법사라고 이딴 수나 쓰고 있어!
코피는 나지 않았지만 굉장히 얼얼한 얼굴을 문지르며 겨우 균형을 잡아 영감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그 영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밖이었다.
"이건 또 의외로군. 왜 드래곤이 계약자를 방해하는거지."
하? 뭐라고? 나는 아스카를 올려다보았다.
[마스터. 지금 저놈을 공격해도 별 소용없을거야.]
"무슨 말이지?"
"…… 눈치 한 번 빠르군."
영감이 혀를 차며 말했다.
[저놈 가짜야.]
"기왕이면 분신이라고 하게."
"…… 분신?"
"위대한 그분에게 상처를 입힌 자네를 내가 미쳤다고 혼자서 상대하겠나? 심지어 자네급의 실력을 지닌 전사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이 늙은이가 근접전을? 저 마족을 처리하는데 굳이 직접 내려올 필요가 없어서 분신으로 왔다만…… 설마 이런 굉장한 사실을 알게될 줄은 몰랐네."
과장하듯이 크게 팔을 벌리며 말한 아카이럼을 보고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뭐 이런 거지같은. 음흉하다 음흉하다 말만 들었지 몸소 체감하니 진짜 이렇게 기분이 더러울수가 없었다. 메이플 스토리의 책사는 정상이 아니라는 공식을 이딴식으로 알게될 줄은 몰랐다.
"그분의 손에 죽었을 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다니. 필히 알려야하는─"
더이상 듣고있을 수 없어서 팔에 힘을 줘 세게 휘둘러 몇 놈 남은 사제와 영감을 척력장과 방어막째로 한꺼번에 박살냈다. 완전히 망했다는 사실만 머리속에 왱왱 울려서 저릿한 손목은 신경쓰지 못했다. 무통증에 가까울정도로 고통이 무뎌졌는데 손목이 저릴정도면 실제론 얼마나 다쳤을지, 굉장히 심각한데 말이다.
[마스터……?]
분신이었음에도 베어내는 느낌이 섬뜩할정도로 살아있는 생명체같았다. 피 대신 방사능 폐기물같은 액체가 재에 뒤덮힌 땅이 왁 쏟아져나와 바닥을 흐물흐물 녹이며 시커먼 구덩이를 만들었고, 곧장 거기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다행히 아스카가 나한테도 방어막을 만들어 중독되지는 않았다. 나는 잔뜩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검을 털어냈다.
"아스카. 저 마족, 죽지 않을정도로만 치료해둬."
[에? 아, 응.]
나는 이를 득득 갈며 서서히 사그라드는 보라색 연기를 노려보았다. 손수 칼빵을 먹인 내가 살아있다는걸, 심지어 여기에 있는게 저쪽에 알려진 이상 검은 마법사가 진짜 여기로 내려올지도 모른다. 매우 높은 확률로 직접. 앞쪽으로 흘러내려 거치적거리는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넘겼다.
파픈스타가 깨어나는대로 즉시 검은 마법사 레이드를 뛰러가야하잖아 망할.
***
아란side.
낯선 천장이다…… 가 아니고, 여긴 어디지?! 말 그대로 낯선 천장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전신에 찌르르 퍼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몸 곳곳에 붕대가 감겨있고, 몇 개는 까맣게 굳은 피가 들러붙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바닥에 놓여있던 나의 폴암-마하가 붕 떠올랐다.
[아란! 이제 일어난거냐!]
"마하, 여긴 어디야?"
[리프레 임시 막사야. 니가 쓰러진 이후에 그 빛나리 녀석이 널 찾아 여기로 데려왔어.]
"동료들은?"
[그놈들은 지금쯤─]
"아란님!!"
입구쪽의 천을 확 젖혀지며 엘프 소녀가 뛰어들어왔다.
"헬레나?"
"드디어,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내 손을 잡으며 펑펑 우는 헬레나의 모습에 당황했다가 그제야 쓰러지기 직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힐라와 반 레온이 계속해서 쏟아내는 몬스터들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한계까지 지친 몸을 이끌다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치명상을 입어버렸었다. 헬레나의 앞에서.
"다치신 곳은 괜찮으신가요?"
"그럭저럭. 그보다 상황은?"
"마지막 피난 준비가 끝났어요. 태울 수 있는 사람은 모두 태웠고, 이제 곧 비행선이 출발할거에요. 같이 가요."
날 부축하며 이끄려는 헬레나의 손을 놓았다.
"아란님?"
"동료들은 어떻게 됬지? 그걸 설명해줘."
"그분들은……."
헬레나는 말꼬리를 흐리다 내 눈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말했다.
"…… 검은 마법사를 향해 떠났어요."
"뭐?!"
"시간의 신전을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면서, 아란이 쓰러져있는동안 준비를 하고 아까전에 갔어요. 지금쯤이면 신전에 도착했을거에요."
"왜 날 두고……!"
[그야 지금 주인이 환자니까 그렇지.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지만 속은 아직도 상처투성이잖아.]
"아란 아직도 안나은거에요?"
여기에 더 있을 시간이 없다. 나만 두고 가다니! 그럴 수 밖에 없다는걸 알면서도 화가 났다. 그때 왜 다쳐가지고!
"지금 당장 거기로 가야해."
[어떻게? 비행선은 지금 사람들이 피난가기 위해 있는 방주 하나밖에 없어.]
"드라코 변신술을 쓸 줄 아는 하프링을─"
[어느 세월에 찾을거야. 리프레의 불은 아직도 꺼지지 않았어. 생존자들을 찾기위해 주인 동료들이 얼마나 열심히 리프레를 쏘아다녔는지 알아? 남아있는 사람은 없어.]
손톱자국이 새겨지도록 손을 꽉 움켜쥐었다. 동료들에게 가야하는데, 가장 중요한 신전까지 갈 수 있는 이동 수단에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제발……."
눈망울이 그렁그렁한 헬레나를 내려다보다 결국 폐부의 공기를 모두 쏟아내며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포기, 해야하나.
"빅토리아 아일랜드는 아직도 위험해요. 검은 마법사와 싸우지는 못해도, 저희들을 지켜주세요 아란."
간절히 날 바라보는 소녀의 눈빛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게 이것뿐이었다.
잠시 후 비행선이 출발하기 전, 피난민들의 목록을 확인하다가 아이 한 명이 빠진 것을 알고 인근을 둘러보게 되었고.
[어? 마스터, 저기 저 여자─]
기적을.
"아직 남아있었나."
발견하게 되었다.
***
파픈스타side.
시간의 신전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게 보였다. 분명 예전과 같을 하얀색의 기둥들은 따뜻하기보단 핏기가 빠져나간 시체의 색처럼 보였다.
예상외의 동행인…… 아니, 예정된 동행인의 떨떠름한 시선을 무시하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검호. 저기 내려가면 따로 행동하자."
"어째서지."
"같이 가면 검은 마법사를 쓰러뜨릴 수 있는 확률은 높아지겠지만, 영웅들이 위험해져."
봉인을 진행할 이들은 어디까지나 영웅들. 그들은 군단장과 맞붙는건 가능하지만 얼마나 만전에 가까운 상태로 현재의 문에 도달할 수 있는지 모른다. 원작 스토리에는 없는 끔찍한 변수, 프라이쉬츠가 있으니. 어쩌면 벌써 전부 당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놈을 상대할게."
"…… 위험할거다."
"괜찮아. 이번엔 저번과는 달리 튼튼한 보디가드가 있으니까."
나는 동행인, 아란을 보았다. 내 특제 힐링으로 단숨에 회복한 그녀는 그놈과 싸우는데 굉장히 도움이 될것이다. 나에게 부족한 근접전&육탄전 부분을 어느정도 메꿔주는게 가능한 전사니까.
[마스터. 이제 착륙할게.]
"알았어."
우리는 신전에 도착했다.
========== 작품 후기 ==========
원래 스토리에서 아란은 대체 어떻게 시간의 신전까지 갔을까. 다른 영웅들은 아프리엔 탔다 치고.
아스카가 죽지않을정도로 치료해준 마스테마는 고양이 모습대신 로리가 됬다고 합니다.
@대어의예감 - 분신이라서 fail.
@Sisre - 시간 흐름이 대략 리프레 공습→ 데몬 가족 참사→ 데몬 배신→ 마스테마 영웅 방문 순이라서 마스테마가 리프레에 내려올쯤에 데몬은 이미 검은 마법사한테 가고 있었음.
@레시코 - 아카이럼이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siue - 영감님이 언제 돌아가실지는 모르죠. 욕을 이렇게 많이 먹으니 오래 살지도.
@노란우산s - 그리고 약속된 동행. 데미안은 나중에 나올겁니다.
@적월식 - 소리 마법을 썼다면 좋았겠지만 그건 피아구분이 거의 안되서 못 씀. 썼다간 데몬 가족이 휘말리는고로.
@나는야써니10 - 이건 분신이야 멍청아! 였습니다.
@넝기 - 시간나면 정주행해봐야겠네요.
@Ratios - 버☆서☆커☆ 소울!
@홀리스 - 참고로 검호한테 분신이 단 일격에 박살난 아카이럼은 마력이 역류해서 피토하셨다고 합니다.
@키하라스티카 - 군단장중에 살아남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신 군단장도 포함해서 말이죠.
@Buche - 게이 볼그가 두개?!
@소라루 - 실제 스토리라는게 함정.
@책벌레씨 - 검은 닌텐도도 아니고... 전체 이용가 게임 맞나 생각이 가끔씩 듬.
@Kianato - 그리고 이 어두운 스토리는 메이플2도 고스란히 이어받음.
@여행자구름 - 니놈의 피는 무슨 색이냐 넥슨!
@루서스 - 아란하고만 만났음. 다시말하지만 리프레는 넓습니다.
@허공말뚝 - 분신이라 죽지는 않았지만 데미지는 받았습니다.
@패러디좋아 - 일단 군단장 누구를 살릴지부터 고민하고요.
@darkdestiny - 근데 본 스토리에서 데몬도 잘한게 없는지라.
@Blake117 - 페이크였으니까요.
@Eluines - 검마 레이드 스타트!
@칼크래프트 - 분신이었던고로 덤볐습니다.
@적현월 - 음? 해적 무기없어도 괜찮음?
@Racine - 사이키커:미쳤다, 프라이쉬츠:연륜, 군단장:이기는건 포기하고 시간끌기.
@마서 - 사실 저대로 말려들었으면 중독당해서 호흡기가 완전히 맛이 갈 수도 있었음.
@로미루스 - 여러분 아카이럼은 음흉합니다. 그걸 떠올리세요.
@ReFrante - 파픈과 검호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수백년을 버틸겁니다.
@Dowha - 메이플 최악의 레이드를 해야한다는 시점에서...(절래절래)
@여기돈까스요 - 사실 오버시어 부탁 들어줘도 보상이 좀 짜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