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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청이 떨어져나갈듯한 소음이 아이의 고막을 뒤흔들었다. 사슬이 금방이라도 끊어져나갈 것처럼 위태로울정도로 팽팽히 당겨지는 소리.
"…… 이어준지 얼마 됐다고 왜 벌써 끊어지기 직전이야?"
어이없는 걸 넘어 승천하기 직전이다. 아이는 그놈이 뭔 삽질을 했길래 이 지경이 됬나 그 면상을 보러 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쪽 발을 들고, 가볍게 앞으로 내딛는다. 그 기초적인 행위를 한 것만으로 북극에서 시간의 신전 내부 - 현재의 문 안으로 이동해온 아이는 펼쳐진 광경을 본 순간 비웃기 위해 허파에 가득 장전해두었던 숨을 내뱉으며 짜게 식은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핏덩어리. 숨이 붙어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이래서야 지금 당장은 가망이 없다. 그나마 육체와 영혼을 이은 힘이 그 여자의 힘이 아니라 제 힘이라서 살아있는 거지 만약 이전과 같았다면 즉사했어도 이상할 게 없다.
'고치는게 아주 불가능하진 않다만.'
힘이 바닥이라 솔직히 무리인데. 아이는 피에 더러워지지 않도록 소매자락을 걷어올리린 뒤 사람의 형체에서 많이 벗어난 그것에 철퍽, 손바닥을 갖다대어 외형만 대충 복원했다.
푸른빛이 한 차례 휩쓸고 간 핏덩어리는 적어도 그 껍데기만은 이전과 똑같이 되었다. 미관상 아까보다는 나아진 그를 물끄러미 보며 아이는 피가 묻은 손을 휙휙 털어낸 다음 봉인의 기둥들을 쭉 흝어보고, 그중 하나에 박혀있는 봉인석을 뽑아다 입안에 넣고 츄파춥스마냥 쪽쪽 빨아먹다 으적으적 씹었다.
'대충 땜빵은 해뒀으니까 상관없으려나.'
어차피 내 힘인데 뭐. 100% 완벽하게는 아니라도 적당히 봉인이 유지될만큼의 힘을 박아넣었으니 당장 봉인이 깨지진 않을거다. 아이는 봉인진 안에서 부유하고 있는 검은 마법사를 보았다.
이놈의 몸은 시간의 힘으로 되어있다. 애초에 제작자가 그 여자이니 당연한 거지만, 그래서 데미지가 더 컸다. 몸의 근본적인 구조자체가 폭삭 무너졌다고 해야할까. 영혼 연결하면서 본 덕에 어떻게 생겼는지 다 외우고 있긴 한데…….
"무섭냐?"
이놈의 몸을 이루고 있는 시간의 힘-기둥을 뽑아다 제 상처 치료하는데 써먹고 있는 검은 마법사를 보며 아이는 삐딱하게 물었다.
"걱정마라. 난 널 잡아먹지 않을 거니까. 니가 가지고 있는 힘은 둘 다 내 것이 아니라서 먹었다간 소화불량 걸리거나 토하거나 둘 중 하나거든."
죽이자니 그랬다가는 저놈의 힘이 재투성이한테 돌아가버릴거고. 이래서야 그냥 냅두는쪽이 낫겠군.
아이는 검호를 질질 끌며 미련없이 현재의 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영웅들과는 달리 리프레로 튕겨나가지 않고 시간의 신전에 남아있는 파픈스타의 앞에 도착했다. 몸의 반이상이 얼음에 감싸여 절망적인 얼굴이던 그녀는 아이를 보았다.
"당…… 신."
"넌 그 저주랑 비슷한 힘이 있어서 아직도 버티고 있구나."
"도와, 줘……."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파픈스타를 옭아매고있는 저주를 가져와 소화시켰다.
"콜록! 콜록!"
"착각하지마. 그 저주도 내 힘 파편중 하나라서 가져간거니까."
"하아…… 고마워."
"인사는 됬고, 너 시간 회귀도 쓸 줄 알지? 이놈한테 써."
고맙다는 인사가 무색한 대답이었지만 파픈스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타를 들었다. 줄이 튕겨지며 부드러운 음색이 검호의 몸에 스며드는걸 아이는 눈을 내리깔며 보았다.
"오─케이 거기까지. 뼈대는 다 고쳤네. 빈 자리는 이제 내가 메꿀게."
"무슨 말이야?"
"이놈 몸을 이루는 힘의 중요한 부분이 빛의 초월자한테 뺏겼어. 그래서 지금 이놈은 뭐랄까…… 장기가 모조리 제자리에서 벗어나고 망가진 상태라고 하면 이해하나?"
아이는 새하얗게 질린 파픈스타를 보고 담담히 이어말했다.
"뭐 괜찮아. 방금 니가 그 장기들을 모두 제자리에 돌려놨으니까. 뺏긴 부분은 되찾아주진 못하지만 내 힘으로 채워넣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 시간도 별로 안걸려."
"하아……! 얼마나, 걸리는데?"
"한 8백년정도."
아이의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에 파픈스타의 얼굴은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왜 그래? 8백년따위 금방 지나가잖아."
"금방이, 아니라고!!"
"너한테는 그렇지만 나한테는 짧은 시간이야. 어차피 너도 불로니까 그때까지 버틸 수 있지 않나?"
"몸이 버텨도 정신은 못 버텨! 무리라고!"
울먹이듯이 하는 말에 아이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쩔래? 난 그 시간동안 이놈 고친다치고, 넌 그동안 뭐 할래?"
"그가 모은 힘으로 시간의 오버시어를 깨우면─"
"불가능해. 어찌어찌 모은 모양인데 빛의 초월자가 마지막에 다 엎었거든. 좀 남아있긴 하지만 그것뿐, 이정도로는 봉인을 풀 수 없어."
아이는 희미한 보라색으로 빛나는 팔찌를 손가락으로 휙휙 돌렸다.
털썩, 파픈스타는 주저앉았다. 눈물이 한가득 맺혀 후두둑 떨어졌다.
"뭐야, 뭐냐고 대체…… 그렇게 노력했는데 왜……!"
륀느는 힘을 뺏기고 유폐, 검은 마법사는 봉인. 초월자는 더이상 남아있지 않은데 시간의 오버시어는 어떻게 깨우라는거야. 그나마 믿었던 검호도 저렇게 되버렸고.
그녀의 처참한 심정을 아는듯 모르는듯 아이는 뚱하게 말했다.
"…… 왜 좌절하지?"
"초월자가 없는데 어떻게 봉인을 풀어……? 나 혼자서 어떻게……."
"메이플 월드에 더이상 니가 상대할만한 초월자가 더 없는건 사실이지만 그게 좌절할 일이야?"
"그걸 말이라고─!"
"초월자는 메이플 월드에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녀의 고개가 확 들렸다.
"이 세계는 세 개고, 메이플 월드는 그 중 하나야. 다른 세계에도 초월자들은 세 명씩 존재해."
"그, 말은."
"디멘션 게이트는 옛저녁에 열렸다. 할 일이 없어서 좌절하는 거라면 당장 자리털고 움직이는 게 어때? 할 일 있으니까."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사실들로 시간차 공격을 당한 파픈스타는 웃는 듯 우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아이를 보았다.
"뭐야 그 얼굴은?"
"…… 희망이 보이는데 왠지 짜증나."
"공감하기 어렵네. 계속 그러고 있을게 아니라면 그란디스로 가봐. 그쪽 시간의 초월자도 륀느처럼 유폐되긴 했지만 빛의 초월자는 멀쩡하니까."
아이는 파픈스타에게 팔찌를 휙 던져준 다음 디멘션 게이트 입구 하나를 열었다. 그녀는 팔찌를 주워 한쪽 팔에 차며 옷을 털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를 꼭 고쳐줘."
"내가 그것도 못할 것 같아?"
"통수맞는건 그 여자로 충분하거든."
쯧, 혀를 차며 아이는 누구와 누굴 비교하냐고 투덜거렸다.
"그리고…… 이 분을 꼭 살려줘."
"하아?"
"부탁이야. 내 실수로 죽은 사람이야."
그녀는 인벤토리에서 데몬의 어머니의 영혼을 꺼내 아이에게 맡겼다. 아이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았지만 왁 인상을 쓰며 외쳤다.
"내가 예전에 한 말은 뭘로 들었냐?!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건─"
"아직 환생 안했어. 그러니까 부탁해."
아이의 손을 꼭 잡으며 간절히 부탁한 그녀는 대답할 틈도 없이 바로 디멘션 게이트에 뛰어들었다.
"…… 뭔 올 때마다 짐을 한가득 맡기는 거야 이것들은?"
투덜투덜거리며 아이는 영혼을 놔주진 않았다. 이후 아이는 마스터의 고통이 일부 전해져 신전 한쪽에 널브러진 아스카까지 챙기고 자신의 속성에 맞는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땅, 빅토리아 아일랜드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아이는 먼저 섬의 힘을 끌어올리기 좋도록 섬의 중심에 거대한 나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지하에다가 일전에 제 몸이 봉인되었던 심해의 미궁─라비린스의 구조를 본뜬 또다른 미궁을 하나 만들어냈다.
뿌리 밑의 심연, 루타비스(Root Abyss)를.
***
프리드side.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신전 바닥이 아닌 새카만 땅. 한 때 이곳을 살았던 이들의 비늘과는 다른 메마른 검은색에 여기가 어딘지 곧바로 알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누군가 나를 통 안에 넣고 마구 뒤흔든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이 없어서 일어나는데 다소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아프리엔─!"
제일 먼저 부른 이는 영혼을 이은 하나뿐인 생의 동반자였고.
"메르세데스! 아란! 루미너스! 팬텀!"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소중한 동료들의 이름을 피토하도록 불렀지만 누구의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가버린 거야.'
분명 검은 마법사는 봉인되었을텐데, 절망과는 다른 종류의 어둠이 안개처럼 몰려와 나를 가뒀다.
그것의 이름이 고독이라는 걸 아는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리프레를 한참 돌아다닌 끝에 아프리엔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그가 나 대신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로 인해 순식간에 비탄으로 돌변했고, 다른 동료들이 저주의 얼음에 갖혀 메이플 월드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을땐 상당히 위태로운 내 몸도 돌보지않고 바로 뛰쳐나갈뻔했다.
상처를 치료하고, 아프리엔을 안전한 곳에 옮겨두기 위해 사람의 발걸음이 닿지않는 장소를 찾아다녔다. 거기다 마지막으로 남은 오닉스 드래곤의 알을 지키며 세상 여기저기로 흩어진 동료들을 찾는 일도 해야했다.
그러다 우연히 리엔이라는 몹시 춥고 척박해 사람들이 거의 가지 않는다는 섬이 있다는 사실을 옛 빅토리아 반도 부근에 살았다던 사람에게서 들었고.
"당신은 누구죠?"
[아리. 저 사람 굉장한 마법사야.]
생각지도 못한 이와 만났게 되었다.
현지의 주민들에게 눈꽃의 마법사라 불리고 있는 살아남은 오닉스 드래곤의 계약자 소녀를.
========== 작품 후기 ==========
결과적으로 프리드만 살았음.
@소르니아 - 그리고 호빗에서 전사 13명과 도적 1명으로 파티를 짰다가 개피보고 반지 원정대에서 전사 3명, 궁수 1명, 서폿 4명으로 파티를 짰다죠.
@패러디좋아 - 봉인이 차라리 나았음.
@Blake117 - 트립퍼들은 기억해줄거임.
@루엔시르온 - 아마 그럴듯?
@대어의예감 - 그리고 파픈은 혼자서 그란디스로.
@qkzks135 - 봉인당해도 절대 곱게 가지 않음.
@적현월 - 루미가 누굴 닮아서 힘법일까요?
@karuma - 그놈의 상처때문에 힘의 반이상이 까였는데 저렇게라도 해야죠.
@카르시디안 - 파픈은 혼자서 또 고생하러 감.
@vestie - 그냥 끔살당할뻔했음.
@Entro - 검마가 검호한테 크고 아름다운 빅엿을 먹였음.
@Eluines - 검호가 클났죠. 이제 진짜 눈뜨면 본편일듯.
@이년아 - 그리고 이어지는 생명의 오버시어 애프터 서비스.
@ReFrante - 설마 그렇게 될까요... 는 몸은 고쳐진다 쳐도 정신적 타격은 어찌될지 모름.
@칼크래프트 - 트립퍼라도 초월자 클래스는 어쩔 도리가 없으므로.
@적월식 - 그보다 진짜로 PTSD를 걱정해주시는데.
@Buche - 희망적? 일까요.
@여기돈까스요 - 낚시질은 성공했다고 한다!
@소라루 - 상처치료&봉인된 기간동안 힘 회복이 목표였음. 검호는 힘 뺏기는 과정에서 살해당할뻔했고.
@예리카 - 저 일격 먹은 직후의 검호는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음.
@오하사 - 그것보다는 회심의 일격?
@Ratios - 긴 설명 감사합니다! 확실히 햄에그가 필요해요.
@클레리온 - 음란마귀는 아니죠?
@허공말뚝 - 애초에 초월자는 존재자체가 치트키임. 오버시어는 그냥 규격외고.
@넝기 - 글고보니 모험가 애들 직업은 어떻게 정할까...
@루서스 - 프리드 ㄱㅈ 아닙니다. 글고 검마는 초월자라서 체력 단위수부터 차원이 다릅니다.
@노란우산s - 2차전이 아니라 게임 강제종료같은 스킬을 썼음.
@황태자파이터 - 그 무슨 권왕전생같은.
@레시코 - 생각해봤는데 2부에서는 파픈의 등장이 매우 늦을테니 동결된 트립퍼중 한 명을 출연시키기로 했음.
@라그실 - 파픈은 노가다 뛰어 혼자 그란디스로 감.
@베이르타 - 주인공대신 고생하러 갔어요.
@책벌레씨 - 즉사기를 날렸음.
@Sisre - 너무 놀라지 마세요. 평소처럼 구른거에요.
@핑구친구 - 과연 검은 마법사! 우리가 하지 못하는 일을 태연하게 해! 그래서 더욱 동경하게 돼!
@크리잔 - 파픈도 구릅니다. 어떤 의미로는 검호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