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103화 (103/208)

<--  -->  검호side.

나는 유에에게 에반이 누구고 왜 내 제자가 되었는지 설명해야했고, 유에는 긴가민가한 얼굴로 에반과 미르를 뚫어져라 보다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겨우 납득했다. 확실히 둘이 닮았긴 하지. 블랙헤븐 스토리에서 후손이라고 밝혀지기도 했고.

"스승님, 저분은 누구세요?"

"예전에 같이 싸웠던─"

지금 이 말을 써도 될까. 나는 순간 망설였다가 이어말했다.

"─동료다."

"정말요?!"

[별로 안강해보이는데! 심지어 마스터보다 약해보여.]

어이 미르, 말이 너무 직설적이야. 쟤 지금 멘탈이 너덜너덜해져서 그렇게 말하면 상처받을거라고. 아니나 다를까 표정변화가 꽤 드문 그가 다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그런데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갑자기 바다에서 슬라임들이 엄청나게 많이 몰려왔어요."

[쉴새없이 마법을 썼는데도 별로 줄어든 것 같이 안보였어~ 어디서 슬라임들이 그렇게 많이 온건지 모르겠다니까.]

아 그거 예전에 퀘스트하다가 알았는데…… 뭐였더라? 기억이 안난다. 하여튼 뭔가에 의해서 슬라임들이 대량발생 했던걸로 안다. 자연적인 몬스터가 아닌 어떤 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서 죽인 순간 시체조차 남지않는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몬스터가 들끓고 있는건가."

"그냥 여기가 지독하게 불행한것 뿐이다. 갑자기 나타난 슬라임때문에 완전히 고립되서 어떻게든 우리가 일을 해결해야하고."

여기 리조트가 개장을 안해서 사람이 거의 없는 상태라 피해가 이정도로 끝난거지, 플로리다 비치같은 곳이였으면 인명피해가 지금보다 더 심했을 것이다.

우리는 객실에서 나와 호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배가 고픈건 에반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사람들을 도우니까 엄청 기분좋은거 있지! 마스터가 영웅이 되는것도 이제 시간문제야!]

"이런 일로 영웅까지는 좀……."

"니 나이치고는 꽤 대단한 일이다만."

"저, 정말요 스승님?"

갑자기 에반이 엄청 눈을 빛내며 날 올려다보았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데 어쩐지 굉장한 기세에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직후 에반은 와아아~ 미르를 껴안으며 칭찬받았다고 기뻐했다. 완전 애같아…… 가 아니라 진짜로 애잖아. 그것도 시골 소년.

"프리드와 웃는 모습이 닮았군."

이 상황에서 에반과 프리드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유에를 외면하며 나는 아스카에게 물었다.

"롯뜨는 어떻게 됬지?"

[슬라임들이 가져간 튜브 회수하러 갔어. 에반은 수영을 영 못해서 말이지.]

"잠깐, 그럼 그 사이에 슬라임들이 올라올 수 있다는─"

[못 올라오게 해변가에 벽 쳐놨어. 그렇게 튼튼하지는 않지만 시간은 충분히 끌 수 있을걸?]

마법의 편의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한 나는 아스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직후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그런데 이 시간에 식당이 문을 열까요?"

"만약 안하면 호텔 밖에 가게 있으니까 거기서 사면 될……."

""어서오십시오!!""

우렁찬 목소리에 나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어디 드라마와 영화에서나 나오던 레드 카펫은 그렇다치고, 정장 비슷한 유니폼을 빼입은 직원들이 쫙 늘어져있는 광경에 완전히 압도당해버렸다. 허리숙이고 있는건 저쪽인데 왜 이쪽이 쫄아버리는건지. 아니 진짜 왜들 저러는거야! 단체로 슬라임이라도 잘못 먹었나? 하는 의문마저 들 무렵, 아까보다 낯빛이 좋은 케리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 이제 내려오셨군요."

"무슨 일이지."

"별거 아닙니다. 저희 리조트를 위해 노력해준 고마우신 분들이니 이정도 환대는 당연하죠."

에반이랑 아스카를 위해서 전부 나왔다는거냐. 늘어서있는 직원들에게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저희 쉐프들에게 부탁해 특제 메뉴만을 엄선했습니다. 마음껏 즐기시죠."

그 말에 나는 완전히 굳어버렸다. 호텔에서 한 끼 먹는게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절대 싸지 않을것이다. 거기다 쉐프 특제 메뉴라니? 듣기만해도 가격이 굉장할것 같잖아!

"우와! 정말요?"

"물론입니다. 특히 저희 쉐프가 자랑하는 새우요리는 꼭 맛보셨으면 합니다."

"새우라…… 그러고보니 루미너스는 새우를 안좋아했지."

"그 사람은 누구에요?"

"그 역시 우리의 동료였는데, 그가 살았던 세레니티에서는 새우를 비롯한 해산물류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아서 퍽 싫어했지."

일행들의 대화소리는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벌컥, 식당 문이 열리며 호화롭기 그지없는 음식들의 향연이 펼쳐졌지만 감히 발을 디딜 수 없었다. 이게 대체 얼마냐고……! 완전 거지인 내가 이 굉장한 음식값을 감당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마스터! 이게 새우라는 거야?]

"미르, 그대로 먹으면 안되고 자기가 먹을만큼만 접시에 덜어가야해."

[그런거야?]

"뷔페라는건 그런거라고 들었어."

어느새 접시를 챙겨다 음식을 가져가려는 에반의 행동에 나는 반사적으로 애를 붙잡았다.

"…… 스승님?"

"먹지마라."

"네?"

"먹었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여기 숙박은 초대권으로 어떻게든 퉁칠 수 있어도 이런 밥값은 별도 계산일지 누가 아냐고! 그래도 은인이라고 싸게 깎아준다 해도, 일단 우린 거지란 말이야! 잘못했다가 너네 농장 팔아도 감당못하는 금액이 찍힌 영수증을 들이밀어도 모르는 일이다. 거기다 호텔에서는 별의별 서비스로 돈받는다고 들었는데.

내 말에 본인도 거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유에가 나서서 에반의 접시를 원위치시키며 나에게 고맙다고 인사했고, 나는 케리 아저씨에게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셨겠지만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한뒤 호텔 밖으로 나와 해변가의 가게를 찾아서 한끼를 해결했다.

***

유에side.

프리드를 닮았다. 소년을 본 순간 반사적으로 든 생각이 그거였다. 심지어 갈색머리에 푸른 눈이라는 외모만 닮은것도 아니었는데, 소년은 놀랍게도 이미 멸종했다고 생각한 오닉스 드래곤의 계약자였다.

"안녕하세요?"

"그래…… 만나서 반갑다."

"전 에반이라고 해요. 이쪽은 제 애완동물─"

[애완동물이 아니야 마스터!]

"─파트너인 미르에요."

재빨리 말을 바꾸는 소년의 모습에 절로 실소가 지어졌다.

"에반은 내가 헤네시스에서 만난 아이인데, 아직 어린 드래곤 마스터라 주의사항이나 가르칠게 많아서 잠시 데리고 있다."

[프리드가 아니니까 착각하지마.]

그의 드래곤이 한 말이 푹 꽂혔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저 소년과 프리드의 공통점을 찾기위해 바쁘게 눈을 굴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저 소년과 프리드를 완전히 분리해서 보는데엔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내가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자신들을 보고만 있자 결국 소년은 검호에게 작게 물었다.

"스승님, 저분은 누구세요?"

"예전에 같이 싸웠던 동료다."

뭐? 반사적으로 눈이 확 떠졌다.

우리중에서 가장 겉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군단장과 싸울때를 제외하면 함께 뭔가를 한 적도 사실상 없으며, 동료라기보단 차라리 동업자라 칭하는게 더 알맞을 그가 먼저 동료라고 지칭하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요?!"

[별로 안강해보이는데! 심지어 마스터보다 약해보여.]

소년이 미르라고 소개했던 오닉스 드래곤의 말에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속이 쓰려왔다. 그래…… 약하지. 뭣때문인지 깨어났을때 제 힘이 형편없이 약해진걸 알고 얼마나 좌절했는지 모른다. 검호 그는 전혀 약해진걸로 보이지 않는다만 어째서 나는. 다른 동료들도 다 이럴까.

그래도 여우신과 랑이에게 정령을 받아 나름대로 힘을 길렀건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내 힘은 저 에반이라는 소년보다 뒤떨어지는게 현실이었다. 미르가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나는 물었다.

"그런데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유리창으로 보이는 바다 저편에선 수를 헤아리는게 힘들정도로 많은 까만색 젤리덩어리가 물결쳤고, 롯뜨로 추정되는 인영이 바다위를 질주하며 펑펑 물기둥을 일으키고 있었다.

"갑자기 바다에서 슬라임들이 엄청나게 많이 몰려왔어요."

[쉴새없이 마법을 썼는데도 별로 줄어든 것 같이 안보였어~ 어디서 슬라임들이 그렇게 많이 온건지 모르겠다니까.]

"…… 그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몬스터가 들끓고 있는건가."

어느날 갑자기 몬스터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그리 많지 않다. 모종의 이유로 생태계 균형이 깨지거나, 살던 곳에 어떤 변화가 생겨 쫓겨난 몬스터가 단체로 이동하는걸 대량발생으로 착각하거나. 출현한 몬스터가 슬라임 계열이니 강력한 마법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다.

이 골드비치라는 리조트 특성상 두번째일 가능성이 꽤 높아보이는데…….

"그냥 여기가 지독하게 불행한것 뿐이다. 갑자기 나타난 슬라임때문에 완전히 고립되서 어떻게든 우리가 일을 해결해야하고."

그의 어조는 마치 나는 그 이유를 알고있다는 뜻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었다. 뭣때문에 여기가 그렇게 됬는지는 몰라도 나름 한 손 거드는것 정도는 할 수 있으니 나중에 물어봐야겠군. 객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라 불리는 기계로 내려가는 와중에도 아이들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을 도우니까 엄청 기분좋은거 있지! 마스터가 영웅이 되는것도 이제 시간문제야!]

"이런 일로 영웅까지는 좀……."

"니 나이치고는 꽤 대단한 일이다만."

실제로 사람들에게 영웅이라고 불리면 저 소년은 얼굴을 붉히며 어찌할지 모를거라고 나는 장담할 수 있었다. 그 호칭은 듣는 사람에겐 매우 낯간지럽고, 무거우며, 몸을 옭아매는 무언가가 있었으니까.

아니 것보다 맙소사, 저 남자가 칭찬이라니?

"저, 정말요 스승님?"

"그래."

수 백년이 흘러서인지, 아니면 애를 가르치고 있어서인지 그의 성격이 상당히 많이 유해진것 같다. 프리드를 제외하면 누구도 말을 제대로 붙이지 못했고, 하다못해 영웅이 되기 전에 안면이 있었다는 아란마저도 수년동안 무릉에서 그와 대련을 했었다지만 칭찬은 고사하고 대화마저도 많이 안했었다고 했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맑은 소리를 내며 멈췄고, 바로 문이 열렸다. 어째선지 쫙 도열된 사람들이 동시에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광경에 반사적으로 굳어버린 내가 문에서부터 식당으로 추정되는 곳까지 대놓고 즈려밟고 가라는 붉은 카펫이 펼쳐져있는 이유를 찾는동안 그가 먼저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런 대접이 매우 당연하다는듯이.

이들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아보이는 풍채좋은 남자가 다가오며 그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는 동안 에반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스승님은 뭐하는 사람이셨어요?"

"나도 그의 과거는 잘 모른다만…… 지금 모습을 보니 농담으로라도 평범한 사람이라고는 못하겠다."

아닌게 아니라 검호 특유의 화려한 옷이 이곳 실내 인테리어와 기가 막힐정도로 잘 어울리고 있었다. 원래부터 이런 곳에서 - 어느 귀족가의 연회장같은 곳 - 입는 옷이었던건가?

남자가 식당의 문을 열자 예술적이라 생각될만큼 다채롭게 진열된 음식들을 보고 나는 침묵했다. 이 무슨 극심한 낭비인지.

"저희 쉐프들에게 부탁해 특제 메뉴만을 엄선했습니다. 마음껏 즐기시죠."

"우와! 정말요?"

"물론입니다. 특히 저희 쉐프가 자랑하는 새우요리는 꼭 맛보셨으면 합니다."

새우라…… 그러고보니 루미너스는 새우를 안좋아했지. 나도모르게 생각을 그대로 말했는지 에반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 사람은 누구에요?"

"그 역시 우리의 동료였는데, 그가 살았던 세레니티에서는 새우를 비롯한 해산물류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아 퍽 싫어했지."

프리드를 닮은 얼굴로 루미너스가 누구냐는 묻는 모습에 어쩐지 슬퍼졌다.

이후 팔짝팔짝 뛰며 즐겁게 식당을 누비는 소년을 보던 나도 일단 배를 채워야 몬스터를 잡든 뭘 하든 움직일 수 있으니 접시를 들었다. 수 백년이 흘렀지만 식사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지 뷔페라는 것은 지금도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좀 전의 웨이터? 가 말한 새우요리를 발견한 에반이 바로 그것을 가져가려는 순간, 갑자기 검호가 에반의 팔을 붙잡았다.

"…… 스승님?"

"먹지마라."

"네?"

"먹었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저 소년에게 갑각류 알레르기라도 있는건가? 아니, 그런거라 보기엔 그의 표정이 너무 심각하다. 음식을 노려보는 붉은 눈이 굉장히 매서웠다.

아니 잠깐만. 좀 전에 그가 이 섬이 고립되어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신선한 해산물을 구해온거지? 바다는 슬라임들에게 점령당한거 아니었나? 재고를 썼다고 하기엔 음식의 양이 너무 많다. 거기다 아까 숙소의 창문 저편으로 본 슬라임들중에는 분명─ 나는 에반의 접시를 가져다가 원래 자리에 두었다.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줘서 고맙다."

사정을 모르는지 우리에게 왜 안먹냐고 당황하는 웨이터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며 그는 에반의 손을 잡고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나는 뒤에 남아있다가 망연하게 서있는 웨이터에게 말했다.

"주방장 관리가 소홀하군."

"무슨 말씀입니까?"

"저 요리, 아마 몬스터가 재료일거다.

"그런 말도 안되는!!"

"듣자하니 이 섬은 고립되어 있다고 하던데 어디서 재료를 구한거지? 거기다 숙소에서 바다에 있는 슬라임중 새우같은걸 얹은 슬라임을 봤다."

몬스터중에 식용가능한 놈이 없는건 아니지만 이렇게 막 사용하면 먹은 사람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몬스터 부산물의 상당수가 식용이 아니라 마법의 약 재료나 장비 재료로 쓰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이후 밖으로 나온 나는 해변가에 있던 어느 가게에서 검호를 찾았다. 그의 손에는 종이 뚜껑이 씌워진 그릇들이 들려있었다.

"그건 뭐지?"

"컵라면이다."

"바다에 왔는데 컵라면이라니……."

[아까 음식 진짜 아까운데 그냥 다시 먹으러 가면 안되요?]

[안돼.]

아무리 그래도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몬스터를 먹는건 자살행위다.

어째선지 건물 입구에 박혀있는 시계를 계속 곁눈질하던 그는 어느순간 시간이 됬다며 종이 뚜껑을 뜯어냈고, 그중 하나를 내게도 내밀었다. 이걸 어떻게 먹으란거지? 에반을 보니 길고 가느다란 나무조각을 반정도 쪼개고 있었다.

"그걸 부술건가?"

"아, 깔끔하게 2등분하는게 힘들거든요."

"줘봐라."

나는 에반에게서 나무조각을 받아 뚝 부러뜨렸다.

"에, 에?"

"몇 조각으로 내주길 바라나?"

"…… 유에.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쪼개는거다."

나는 루미너스와 팬텀이 싸울때 그걸 말려야하는 프리드처럼 굉장히 머리아픈 표정의 검호를 보고나서야 뭔가 잘못됬음을 알았다.

***

검호side.

뭐랄까, 8백년이라는 시간이 흐른걸 이런식으로 알게될줄은 몰랐어 진짜.

나한테는 오히려 눈물날정도로 정겹기 짝에 없는 컵라면이랑 일회용 젓가락이란걸 유에 저놈은 지금 여기서, 살면서 처음 보는거였다! 그러니까 무심한듯 시크하게 일회용 젓가락을 가로로 성냥개비마냥 똑똑 뽀아버리지! 그나마 이건 좀 나았다. 예전에 루디브리엄을 습격했던 프라이인지 양념인지 하는 놈이 가지고 있던 총이 그 당시 메이플 월드에 존재하지 않아서 프리드한테 설명하는데 애먹었던때를 제외하면 시간적 괴리라는걸 느끼지 못했고, 이게 오히려 이상한거였으니까.

하지만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으붑?!"

"사레들리셨어요? 물 드릴까요?"

젓가락이라는걸 또 처음 사용하는지라 이 자리에서 새로 가르치느니, 차라리 슈퍼로 가 일회용 포크를 갔다주는게 빠를 것 같아서 그걸 건네받은 컵라면이란걸 처음 먹은 놈의 반응이.

"─ 맛있군!"

"그, 러세요?"

"아란이랑 메르세데스 요리따위보다 더 맛있어!"

"다행…… 이네요."

에반은 어딘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유에를 보다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모습에 - 항마력이 딸려서 -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는 머리를 쳐박고 컵라면을 후루룩거렸다. 아아, 어째서 쪽팔림은 내 몫이냐고! 말린 오징어 다리를 마요네즈에 찍어서 하나 둘 질겅거리며 씹던 아스카가 작게 속삭였다.

[쟤 마치 촌놈같아 마스터.]

"그러게말이다."

[진짜 촌놈은 에반인데.]

"나중에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한숨이 흘러내렸다. 어떡하지? 에반보다 유에가 더 걱정이다. 동료들에게 잊혀진것과는 별개로 저놈이 8백년이나 시간이 흐른 메이플 월드를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라면 국물을 원샷때린 이후 놈의 '그런데 저 건물은 어느 귀족 소유의 저택이지?'라는 질문에 이 걱정은 더더욱 심화되었다. 하하하 그러고보니 저놈 호텔이란게 뭔지도 모르지 참? 내가 에반을 맡게되면서 블랙윙에 속아넘어가는건 에반이 아니라 유에가 되는게 아닌가 정말로 의심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스터, 여기 몬스터는 진짜 슬라임밖에 없어?]

"내가 알기로는."

[아 진짜…… 그 끈적하고 흐물거리는걸 먹을수도 없고.]

입으로는 오징어 씹으면서 배고프다고 하지 말아줄래. 나중에 빅토리아 아일랜드로 돌아가면 페리온이라도 가야하나? 거기 돼지 많던데. 에반이 경악하며 물었다.

"아스카씨는 몬스터도 먹어요?"

[그야 당연하지.]

[으엑, 그걸 어떻게 먹을 수 있어요?]

미르의 말에 아스카는 편식하는 애를 보는듯한 엄마의 눈으로 말했다.

[우리 이빨이 뭐 통나무 씹으라고 달려있는줄 아냐. 당연히 몬스터같은거 잡아먹으라고 있는거지. 몸 커지면 싫어도 그걸 먹어야해.]

[우에에…….]

"그러고보니 아프리엔도 가끔씩 몬스터를 먹고 있었지. 특히 와이번류를 좋아했던걸로 기억한다."

[난 드래곤터틀류가 좋아!]

언제 한 번 리프레에도 가봐야겠네. 나는 깨끗하게 비워진 컵라면 그릇을 정리한 다음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그런데 롯뜨는 어디서 뭘 하고있는─"

[마스터! 몬스터가!]

아스카의 외침에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아들었다. 마법으로 쳐놓은 장벽 너머로 커다란 문어가 서서히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맙소사 잠수함은? 왜 보스 몬스터가 직접 이동해서 오는거야? 같은 의문은 예전에 군단장들이 메이플 월드 전역을 돌아다니며 마을들을 날리는걸 봤을때 이미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무려 그 거대문어가 아스카가 손수 쳐둔 장벽을 아무렇지않게 뜷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에반은 곧바로 싸울 생각인지 스태프를 문어에게 겨누며 유에의 앞에 섰다. 공격을 하려는지 거대문어의 몸이 들썩이며 앞쪽에 늘어진 두 다리가 확 들어올려지며 뭔가가 튀어나왔고─

"후! 엄청 크네. 어라? 형씨들 여기 모여있었어?"

맥이 완전히 빠져버렸다.

우리가 시간보내는동안 혼자서 보스몹까지 처리한 롯뜨가 슬라임은 사라졌는데 어째선지 남은 문어 시체를 들고온거였다.

"자아~ 이거 호텔 쉐프들에게 주고 한껏 포식하자고!"

"저기…… 저희 막 식사 끝냈는데요?"

"에?"

"그리고 드래곤도 아니고 인간인 우리는 몬스터를 함부로 먹어서는 안된다."

"그, 그런거야?"

[그러니까 그거 나줘!]

결론은, 골드비치에서 제일 이득 본 사람은 아스카라고.

별 상관 없지만 반대로 제일 손해 본 사람은 골드리치 주니어다. 에반이 말하길 윌리엄의 공은 발견했을때 이미 터져있었고, 케리 아저씨한테서 리조트를 위험에서 구해준 대가로 받은 에반의 새 지팡이는 골드리치 주니어의 수집품중 하나라고 하니. 일단 벽에 먼지쌓인채 걸려있던 물건이라 슬쩍해도 절대로 모를거라고 케리 아저씨는 장담하셨다. 전시만 해두고 실제로 보러 가지도 않는다나.

어쨌든 내가 한 건 정말로 거의 없는데 어느새 모든게 해결되서 나는 바로 리조트에서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케리 아저씨가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으며 내일 아침에 떠나라고 정말 간절히 부탁하셨다. 점심때 실수를 만회하게 해달라나?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무료로 모두 제공하겠다고 해서 딱 내일 가기로 했다.

나는 파란색 하의와 빨간색 상의를 천천히 갈아있는 지평선을 멍하게 보았다. 사람이 저렇게 입으면 진짜 못 봐주겠는데 바다랑 하늘이 저러니까 아주 절경이네.

"멋지지 형씨?"

"그래."

발코니 난간에 위험스레 걸터앉은 롯뜨가 노을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바다도 정말 멋지긴 한데, 개인적으로 난 해운대가 더 좋아."

"난 거기 별로인……!"

잠깐 뭐? 방금 저놈이 뭐라고 한거지? 무심코 대답했다가 결코 넘길 수 없는 말이 있다는걸 알았다. 나는 더 망설일것도 없이 곧바로 검을 뽑아들어 그에게 겨누었다.

등뒤에 검이 겨누어져 있음에도 그는 붉은색으로 물들이던 흰 머리카락을 넘기며 유쾌하게 말했다.

"놀라지 말라고 형씨. 눈치 못챘을리가 없잖아?"

젠장. 그러고보니 이놈 유에랑 같이 그란디스에서 넘어왔다고 말했었다. 기억 안잃은 시점에서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소개할게. 내 전직명은 세피로트, 당신보다 먼저 이곳에 온 사람이야."

세피로트? 이름은 둘째치고 이놈은 누구 편이지? 또 그 총잡이같은 군단장이면 지금 당장 싸워야 한다. 나는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르기위해 몸이 뻐근해질 정도로 근육을 긴장시켰다.

"당신의 동료 파픈스타의 부탁을 전해주기 위해 잠시 메이플 월드에 왔어."

파픈스타를 알고 있어? 그란디스에서 왔다니 만났을지도 모른다. 마침 같은 트립퍼고. 아니 잠깐만, 예전에 그년이 첫번째와 두번째 트립퍼는 동결시켰다고 하지 않았나? 왜 동결된 놈이 지금 눈앞에 있는거지? 카오스가 되어가는 머리속에 세피로트가 쐐기를 박았다.

"그녀의 전언이야. '그란디스에 오지마'."

뉴클리어 버스터라는 쐐기를.

========== 작품 후기 ==========

작중내 메이플 월드에서 컵라면과 일회용 젓가락, 호텔이라는건 최근에 나왔다는 설정. 당연히 영웅즈의 시대때 저런건 없었습니다. 검호는 8백년이나 흘렀다는 시간의 흐름을 이렇게 또다시 체감하게 됨.

참고로 쉐프 요리가 몬스터인게 아닌가~ 하는 의혹은 실제 퀘스트에서도 있습니다.

@Yoontlemin - 게이라뇨, 그저 좀 깊은 우정일뿐이에요 하하.

@진홍빛사신 - 정답은 트립퍼였습니다.

@Blake117 - 2번째입니다.

@여기돈까스요 - 검호:유에의 메이플 월드 생활이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노란우산s - 봉인석을 어떻게 사용할지가 2부 스토리의 중요점.

@qkzks135 - 아무래도 같은 동료들중에서 제일 친했을테니까요.

@대어의예감 - 간신히 언급됬는데 전언이 흠좀무.

@라그실 - 그려주시는 독자분들이 완전 금손이에요.

@하늘연꽃 - 로트는 너무 딱딱하잖아요?

@마유즈미 -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요?

@좀비라스 - 은월캐 한정 칭호로 뿌리면 재밌을듯.

@레시코 - 주요 무대가 그란디스라서 그럼.

@넝기 - 얼마나 망하고 있나 위키를 찾아가보니... 이런 미친. 우리 에반이를 왜!!

@심온 - 아직은 동료들을 안만나서 다행인데 나중에 가면 다 알게될거라서...

@철륜성 - 그 파픈스타의 전언이 범상치않음.

@루엔시르온 - 지금 귀여워하는 에반에게도 잊혀질거임.

@곰휴지 - 참고로 다음 목적지는 엘리니아쪽.

@Sisre - 은월 스토리의 진히로인은 프리드라는 의혹이 있습니다.

@여행자구름 - 그래도 그의 행동이 영웅적이었다는건 사실이고, 트립퍼 보정 거하게 끼얹어서 노이즈를 만들어야죠.

@루서스 - 유에의 눈에 현재의 검호는 '어쩐지 성격이 좋아짐'입니다.

@소라루 - 확실하게 알고있죠.

@WhiteTears - 차원의 도서관이 기록되어 있을까요? 없을까요?

@이년아 - 첫 번째는 하이랜더입니다.

@Eluines - 오타 수정했습니다. 유쾌하고 배려심있는 성격이라는 설정임.

@허공말뚝 - 당시에도 영웅즈 덕질하는 사람 있었을듯.

@핑구친구 - 진짜 어떻게 된다해도 이상하지 않음.

@적현월 - 갑자기 왜 빛의 오버시어가 나오는건지 모르겠네요.

@건전한독자 - 옛날에 만들어놓고 포기해서 얼려놓은 냉동인간.

@Legendssj2 - 검호는 호텔에 가본적이 없어서(고딩이었는데) 요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류동지 - 그리고 현재 테섭의 에반은... 후새드.

@터우룩 - 본성은 굉장히 착합니다. 일단 지구에 있었을때 하던 일이 자원봉사.

@우후지로 - 세피로트 정답입니다!!(짝짝짝)

@soundname - 트립퍼입니다. 환생은 아니죠.

@Ratios - 디멘션 게이트가 생기는 이유는 초월자가 다른 초월자의 힘을 뺏어서, 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이플 월드와 그란디스 양쪽에서 그 일이 생겼죠.

@책벌레씨 - 은월 스토리는 제 글에서 다소 변형되었습니다. 이후 좀 감격적인 장면을 넣을까 생각중.

@칼크래프트 - 다른 위안도 하나 줄까합니다.

@ReFrante - 랑이는 아직 건드리기엔 아청아청하잖아요?

@미소녀가될꺼야 - 트립퍼입니다. 금방 퇴장할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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