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105화 (105/208)

<--  -->  검호side.

다 죽은 풀밭에 버려진 인형처럼 나뒹굴고 있는 라니아를 보고 홧김에, 반쯤은 넋이 나갈만큼 어이없어서 일을 저질렀는데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저지른 일이 장난아니게 위험하단 걸 깨달았다.

나는 전사직인데, 약해졌어도 일반인보다는 훨씬 강한데, 어둠에 물들었어도 레벨이 10정도밖에 안되는 놈의 - 거기다 육체적으로 허약한 마법사다 - 머리를 나무에 쳐박아버린 것이다.

아아, 안 죽었지? 얘 힘법사잖아? 깨어난 이후로 전투라고는 해보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영웅으로 뛰었을 때 지팡이질로 몬스터 골통을 박살낼만큼 튼튼했었으니까 죽지는 않았을…….

그 순간 손가락 사이로 뜨끈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곧장 머리를 움켜쥔 손을 놓고 그에게서 도망치듯이 떨어졌다. 놈을 쳐박았던 숯덩이가 된 나무는 힘없이 뒤로 넘어가며 쿵! 쓰러졌고, 바닥에 흘러내린 그는 간신히 지팡이로 몸을 가누어 피가 뚝뚝 흐르는 머리를 치켜들었다.

"어떤 자식이 감히……!"

지옥의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눈의 기세가 실로 굉장했다. 어떻게 살아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그의 전신에서 거칠게 휘몰아치는 어둠과 둥둥 떠있는 부서진 사슬 파편들이 충분히 답해주고도 남았다.

이런 돌발적인 상황에서도 루미너스의 몸을 지켜낸 검은 마법사의 어둠에 감탄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알 수 없어졌지만 일단은 전자에 무게를 두기로 했다.

"하아……? 니놈이었냐?"

"작작해라."

더 이상 흑역사를 만들었다간 나중에 제정신 차렸을 때 매일 밤마다 이불킥을 해도 모자랄 거야. 거기다 지금 루미너스 나이가 슬슬 30줄에 들어서고 있다고! 아무리 검은 마법사의 힘에 침식되었다지만 저 나이 먹고 저러는 건 너무 비참하잖아!

"오랜만이군. 니놈도 살아있었나."

"당연히."

"거기다 이 와중에 라니아를 구하다니."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손발이 오그라들고 있었다. 검은 마법사 특유의 불길한 어둠과 보기만해도 눈이 따가운 붉은 눈은 정말 기분나쁠정도로 똑같았지만, 그처럼 공포스럽지는 않아 뭐랄까…… 코스튬 플레이어같다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이다.

"여전히 니놈은 역겨울만큼 고결하군 그래."

"……."

"잘나디 잘난 영웅이 기다렸다는듯이 나타나다니, 아~주 대단하군."

"……."

"크큭, 왜 아무 말도 안 하는거지. 설마 이 나의 힘에 겁이라도 먹은 건가?"

누가 나한테 항마력 올려주는 장비나 버프 좀 줘. 닭살때문에 검을 제대로 못 잡겠다고. 엄청 진지한 분위기인데 도저히 진지해질 수가 없었다. 지금 저놈 상태가 진짜 안 좋은게 확실한데 계속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이를 갈아가며 참는데 안간힘을 다해야 했다. 얌마 실시간으로 머리에서 피가 철철 나고 있는데 왜 상처 치료할 생각도 안 하고 입만 털고 있는 거냐!

아니 진짜 이거 엘리넬에 갔을 때 봤던 대본보다 더하잖아?! 현실이 픽션을 뛰어넘었어! 나는 힘겹게 표정관리를 하며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입을 애써 움직여 말했다.

"적당히 하는게 좋을 거다."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디멘션 게이트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시공간이 오그라들고 있어서 나는 불에 굽고있는 오징어가 된듯한 손에 힘을 꽉 줘서 검을 제대로 움켜쥐었다. 예전에 좀 했던 메이플 옆동네 클모 게임의 덕수씨가 생각나고 있어. 문장이 2배쯤 길어지면 정말 똑같을 것 같아.

"계속하면 돌이킬 수 없으니까."

"흐응? 설마 아직도 나를 동료라고 생각하는건가? 니놈의 정신력은 그래도 꽤 강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물러터지다 못해 썩어서 고름이 흘러나올정도로 나약할 줄은 몰랐군."

"그러니까 이제 그만 좀─"

"그래서 그때 검은 마법사에게 되먹지도 않은 헛소리를 한 거였나?"

그 말에 뇌내에서 새하얀 스파크가 튄 걸 넘어 번개가 내리꽂혔다.

"너어─."

"나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던 그가 이토록 나약해빠진 니놈과 대화따윌 할 리가 없지. 세상 모든 것이 발아래에 놓여있었을 텐데!"

말을 끝내자마자 한자 풀이 그대로 미친듯이[狂] 웃는[笑] 모습에 나는 중요한 사실을 두 개 알았다.

저건 중2병이 아니라 그냥 또라이야. 역시 어둠은 사람한테 해로워. 특히 정신에. 나는 손잡이가 우그러지도록 힘을 주었던 손에 힘을 풀어 가볍게 그에게 검을 휘둘렀다.

파삭─!

"정도껏 하라고 했잖아."

아슬아슬하게 얼굴에 닿지않고 다 탄 나무에 푹 박힌 검날에 한움큼 잘려나간 그의 은발이 나풀나풀 떨어졌다.

그래. 니 말대로 내 정신 약해빠졌다. 그래서 그때 하얀 마법사한테 말 한마디 제대로 못 붙이고 찌질하게 꽁해있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뭔 삽질을 했는지 깨닫고 땅파면서 후회하고 지금도 하고 있어. 만약 내가 어디 양판소나 팬픽의 주인공처럼 자기 지식 이용해서 마구 들이대고 이것저것 시도하는 타입이었으면 여기까지 올 리가 없었을 거야.

그러니까 그 나약해빠진 놈이 쪼잔하게 칼 헛방 날려도 따지지 마라.

"그놈을 닮은 얼굴이라서 기분나쁘니까."

하마같은 얼굴로, 검마처럼 어둠을 뿌리면서 하는 말이 저거라서 좀 빡돌겠거든.

난 마법사가 아니라서 어떻게해야 저놈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지 전혀 모른다. 게임에서는 어둠의 길쪽으로 가도 결국 2차때엔 빛의 길로 전향했지만 현실에서 그런 요행을 바랄 수 없고, 나중에 아스카한테 물어보든가 해야지. 유에가 지금 깨어나있는 루미너스를 만나면 자신이 동료에게 잊혀졌다는 걸 알아버리고 충격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상태라면 다른 의미로 충격받았을 테니 그걸 또 설명해야 하고.

"흐, 니놈 얼굴 아주 가관인데 그래?"

"너보단 낫다."

더이상 루미너스, 아니 루미너스라고 칭하기 뭐한 저놈과 대화를 잇는게 굉장히 불편해졌다. 라니아였나? 그 소녀는 무사할까. 아스카의 힐링은 뛰어나니까 지금쯤이면 충분히 치료됐을 거다. 시야 끄트머리에 간신히 들어온 반파된 집을 보며 저건 또 어떻게 고쳐야하나 고민했다.

"당장 여기서 꺼져라."

많이 유감이지만 지금의 루미너스를 유에와 만나게 하는 건 여러모로 굉장히 해로울 거다. 그렇다고 내가 이놈을 붙들어매고 있어도 원상복귀시킬 수 있는 방법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하인즈 할아버지한테 사정을 설명해서 이놈이 저지를(혹은 저지른) 짓을 좀 봐달라 해보고, 마침 리엔 섬이 마법도시가 됬다하니 그쪽에서 방법을 찾든가 해야지.

가뜩이나 세피로트가 말한 질문들의 답이 뭔지 알기위해 안 돌아가는 뇌를 굴려야하는데 은월 문제와 중2너스 문제, 에반 부모님 설득해야하는 문제들이 연이어 터지니 원래부터 용량 딸리던 머리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 같았다.

등을 돌릴 때까지 활활 타오르는 놈의 눈이 나를 잡아먹을듯이 노려보고있는게 정말 선명하게 느껴져서 빨리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걸음을 옮겨 이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가 발을 헛디뎌서 거하게 굴렀다. 좀 전의 폭발때문에 부분부분 땅이 꺼져 있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게 없냐 나. 혹여나 중2너스가 보고 쫓아올까봐 빠르게 일행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

루미너스side.

어둠의 힘을 받아들였다. 정확히는 받아들이겠다고 생각을 하자마자 몇 초 전까지 온몸을 태워버릴듯이 들끓던 그것이 무엇보다 기분좋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심리적으로나마 가지고 있던 장벽이 허물어지기 무섭게 그것은 순식간에 전신을 장악하고 있어 눈을 질끈 감았다.

"후우우……."

피대신 마그마가 흐르는 느낌이다. 그런 느낌과는 반대로 길게 내뱉어진 입김은 시체의 숨결보다 차갑고 습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거인의 손아귀에 잡아뜯긴 것처럼 흉물스럽게 타버린 일대의 나무들이, 어둠의 힘에 생기를 잃고 파삭파삭 메마른 풀이 그리고 조금전만 해도 불길하게 보였던 몸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기류가─

무엇보다 아름답게 보였다.

"크, 하하! 하하하하─!!"

왜 이걸 여태까지 몰랐던 거지? 이런 매력적인 힘을 내버려두고 빛따위를 연구하다니, 이제까지의 나는 바보천치였던게 틀림없어. 이 힘을 자신에게 심어준 검은 마법사에게 처음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라도 이 힘을 연구해내 이것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

"야 이 미친 자식아──!"

너무도 선명하게 감정이 실린 그 목소리의 주인이 있는곳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 정확히는 '미친'까지 겨우 들렸을 때 - 무지막지한 충격이 머리를 강타했다. 그 자리에서 두개골이 박살나거나 즉사했어도 이상하지않을만큼 엄청난 격통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단 일격에 머리가 핏물로 화할뻔한 것을 막은 건 갓 받아들여 어떻게 제어할줄도 모르고 무분별하게 방출중이었던 어둠의 힘이었다. 내 머리를 부술 것처럼 괴물같은 악력으로 움켜쥐고 있던 손이 떨어지자, 나는 샤이닝 로드에 매달려 이딴 짓을 벌인 놈의 면상을 보기위해 겨우 고개를 들며 피투성이 시야를 소매로 닦아냈다.

"어떤 자식이 감히……!"

말은 다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하아? 같은 멍청한 의문만 나왔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포커페이스의, 그러나 잔뜩 굳어있다는 느낌이 드는 얼굴은 익숙한 사람의 것이었으니까.

"니놈이었냐?"

"작작해라."

주변의 열기를 순식간에 날려버릴만큼 차갑게 내려깔리는 저음에 눈앞의 사람이 단순한 착각이 아닌 진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가 살아있다는 것보다 저딴 얼굴을 하고있다는 것에 더 놀랐다.

"오랜만이군. 니놈도 살아있었나."

"당연히."

그래그래 당연하겠지. 영웅중에서 첫손에 꼽히는 힘과 인성을 가진 그가 살아있는 건 참 당연하지.

"거기다 이 와중에 라니아를 구하다니."

멀어지는 발걸음과 사각거리는 풀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반쯤 의식을 놓았던 그 사이에 그외의 다른 사람이 라니아를 데리고 도망친 모양이다.

"여전히 니놈은 역겨울만큼 고결하군 그래."

언제나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위해 몸을 버리는 걸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내세우지도 않으며, 아무렇지 않다는듯이 의연한 얼굴을 치켜드는 꼬락서니가 지금보니 정말 가관이었다.

"잘나디 잘난 영웅이 기다렸다는듯이 나타나다니, 아~주 대단하군."

"……."

"크큭, 왜 아무 말도 안하는 거지. 설마 이 나의 힘에 겁이라도 먹은 건가?"

그럴리가 절대로 없었지만 말이 한 마디 한 마디 이어질 때마다 그의 검을 잡고있는 손은 작게 떨렸고, 무뚝뚝해보이는 얼굴도 미세하게 균열이 일었다. 조금전까지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부서질듯 유리가루가 푸슬푸슬 떨어져내리며 위태롭게 울렸다.

"적당히 하는게 좋을거다. 계속하면 돌이킬 수 없으니까."

"흐응? 설마 아직도 나를 동료라고 생각하는건가?"

돌이킬 수 없다니, 대체 무엇을? 이 강력하고 매혹적인 힘을 내가 포기할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저자는?

"니놈의 정신력은 그래도 꽤 강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물러터지다 못해 썩어서 고름이 흘러나올정도로 나약할 줄은 몰랐군."

"그러니까 이제 그만 좀─"

"그래서 그때 검은 마법사에게 되먹지도 않은 헛소리를 한 거였나?"

포커페이스가 소리없이 깨지며 잘게 조각난 파편이 바닥에 떨어져내렸다.

"너어─."

"나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던 그가 이토록 나약해빠진 니놈과 대화따윌 할 리가 없지. 세상 모든 것이 발아래에 놓여있었을 텐데!"

크게 확대된 동공이 폭풍우 속에 내던져진 조각배처럼 불안하게 흔들렸다. 상처가 들쑤셔진 그는 과거 절대로 닿지않을 것 같았던 고고한 존재가 아닌 그저 인간으로 보여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력으로 틀어막은 상처의 통증은 아까보다 덜하고, 이대로 결정타 한 마디만 더하면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저 자가 이토록 나약해빠진 존재라는 사실에 비웃음을 날리며 샤이닝 로드를 휘두를 준비를 막 하던 중, 갑자기 은빛이 휘날렸다.

"정도껏 하라고 했잖아."

대체 언제 뽑혔는지 모르는 검이 소리없이 나무를 가르며 아슬아슬하게 뺨에 닿지않고 멈췄음을 그때서야 알았다.

'…… 상처따위가 아니었나.'

용의 역린을 아주 제대로 건드려버린 모양이다.

햇빛을 받고 있음에도 조금의 생기조차 보이지 않는, 새카맣게 죽어 바닥없는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눈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 몸이 떨려왔다.

눈앞의 상대가 검에 있어서 예나 지금이나 대륙 제일일게 분명한, 설령 검이 없다해도 사람의 머리를 부수는 것따윈 물풍선을 터뜨리는 것만큼 쉬운 완력의 소유자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적의를 받는 대상이 되버렸기 때문이다.

"그놈을 닮은 얼굴이라서 기분나쁘니까."

한 글자 한 글자,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만큼 잘근잘근 씹어버릴듯이 내뱉는 말에 확실하게 알았다. 지금 저자는 이전까지의 루미너스와 지금의 자신을 완전히 분리해냈음을, 여차하면 검을 휘두를 적으로 취급할 것을 말이다.

물러터진게 아니라 판단을 내리지 않은 상태였다는 건가.

"흐, 니놈 얼굴 아주 가관인데 그래?"

찢겨나간 포커페이스가 빠르게 꿰메지며 차가운 저음이 다시 울렸다.

"너보단 낫다."

머리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핏물때문에 어느새 시야는 또 끈적한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 안의 검호는 사람 여럿 죽인것처럼 붉게 물들어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가 심하게 다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당장 여기서 꺼져라."

말하지 않아도 갈 생각이라서 말이지.

내가 뒤에 있다는걸 알면서도 태연하게 등을 보이는 그의 행동에 이가 갈렸고, 동시에 지금 어둠의 힘에 미숙하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이것을 제대로 연구해내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고, 저 오만하기 짝에 없는 얼굴을 박살내주지.

검은 털망토가 긴 궤적으로 그리며 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

은월side.

데리고 온 소녀는 무사히 치료되었다. 아직 의식은 되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상처만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저기, 이 애는 누구에요?"

"나도 잘 모른다."

"아까전에 있었던 폭발은 또 뭐에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에반의 물음에 나는 답하지 못했다. 내 두 눈으로 본게 과연 사실인지 의심스러웠을 뿐더러 - 눈앞의 소녀를 보면 사실임을 어쩔 수 없이 납득해야했지만 - 만약 사실이라면 난 대체…….

검호가 돌아온건 그때였다. 어째선지 그는 작게 다리를 절고 있었다.

"스승님!"

"엘리니아로 바로 간다. 유에, 그 애를 업고 갈 수 있나?"

"가능하다만 그보다 좀 전에 그 남자, 루미─"

"아니다."

내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떨어진 그의 말에 나는 얼어붙었다.

"그 놈은 루미너스가 아니야."

"그럼…… 누구지?"

"얼굴만 닮은 놈이다. 전혀 다른 사람이니까 나중에 만나도 오해하지 마라. 가능하다면 그냥 모른척하고."

그의 몸에서 마구 뿜어져나오던 어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주변에 떠다니던 사슬 파편들이, 한쪽뿐이라도 검은 마법사와 똑같이 타오르던 붉은 눈까지. 루미너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눈치채는데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놈과 대화해봤자 니 머리만 아플거다."

"…… 그렇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구보다도 뛰어난 빛의 마법사였던 그가 왜 어둠따위에 휘둘리고 있는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보다 겨우 만난 동료가 동료가 아닌 상태라니, 지독하기 짝에 없군.

"그리고 만약 그놈이 니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마 내탓때문일 거다."

"응? 무슨 말이지?"

"아까 너무 화가 나서 머리를 때렸는데, 생각해보니 좀 과할정도로 세게 때린 것 같다."

안 그래도 심각한데 정신이 완전히 맛이 갔어.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숯덩이가 됐다고는 하나 나무가 박살날정도의 힘으로 머리를 쳐박았는데 기억 일부가 날아갔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니까. 사실 미친듯이 웃고있던 그 시점부터 별로 제정신으로 안보였지만.

사람 망가지는데엔 순식간이군. 검은 마법사, 이 악랄한 놈 같으니.

========== 작품 후기 ==========

검호는 마지막에 혹시나 은월이 나중에 루미 만났다가 너 누구? 상황 겪고 상처받을까봐 저 말 했는데 머리 쳐박은 일격이 워낙 강렬해서 신빙성이 넘쳤다는게 함정. 나중에 루미가 빛의 길로 돌아와서도 은월이 검호가 니 머리 쳐박아서 나 기억못함, 이라고 말하면 본인마저 믿을지도.

영웅즈 신일러를 봤는데 다른건 넘어가고 은월 옷이 왜 대한제국 고종황제같은거죠? 미우미우에서 받은 동양풍 옷은 어쩌고?

@Riocel - 음, 겨울방학쯤에?〈퍽

@E토 - 그래도 지인이라서 경고하는걸로 끝. 나중에 진짜로 악당짓하면 또 모르지만.

@진달래X - 시오버가 안배해놓은 힘이 검호의 그 시간 가속 능력입니다.

@좀비라스 - 어둠의 힘 아니었으면 레알 죽을뻔했음.

@Novel알케미스트 - 사실 현실판에서 보면 중2병이라기보단 정신병자(!)에 더 근접.

@Blake117 - 연극 대본을 뛰어넘은 실사.

@늘근이 - 까딱 잘못했으면 진짜 소멸당할뻔했어요.

@비탄의과학자 - 4차였어도 발렸을거라는게 함정.

@류동지 - 옆동네 덕수씨와 중2너스가 나란히 있으면 항마력을 얼마나 찍든 부족할듯.

@노란우산s - 지나가던 마법사가 구해줬나봅니다.

@화뉴 - 일단은 풀어두지만 주변의 사람들에게 경고를 미리 해둠.

@적월식 - 고작 53만일까?

@베이르타 - 몸도 머리도 험하게 구를듯.

@Sisre - 나중에 두고두고 놀릴거랍니다. 저 상태로 팬텀이라도 만났다간...

@레시코 - 구라를 깠는데 너무 설득력이 넘침.

@이년아 - 오우... 장문의 추측글 감사합니다. 읽는 제가 재밌더라고요. 실제 사실들과 비교하면서 읽으니까 하하, 아무튼 길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개 말하고 싶은데 심한 스포일러가 될게 분명해서 미뤄두고... 하나만 말하자면 1번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본편에서, 작중 인물의 입을 빌어서 언급됬습니다.

@넝기 - 도발했다가 강제 이발당함.

@심온 - 진짜 시공간이 오그라들었으면 디멘션 게이트가 마구마구 생겼을텐데.

@적현월 - 중간에 잠깐 빡치기도 했음.

@루엔시르온 - 중2병이라 치부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닌걸 깨달음.

@철륜성 - 간단히 말하면 '특정 사실을 전달하고자하는 의사를 가지고 타인에게 전달하는' 행위가 불가능한 상태임.

@qkzks135 - 그런데 검호는 마법사가 아니라서 원상복귀 못 시켜요.

@핑구친구 - 루미너스 튜토리얼 해보면 둘이 마치 신혼부부를 연상케함.

@로젤란스 - 사망했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을듯.

@허공말뚝 - 차원의 도서관에는 기록됬을겁니다.

@Racine - 검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일밤마다 이불킥해도 모자랄 흑역사.

@흑월상흑천묘 - 본인도 일 저지르고 당황 엄청 했음.

@Yoontlemin - 상위권 직업이었는데 중위권으로 떨어졌음.

@SourcesMoon - 나중에 파픈 등장하면 독자님들 충공깽하실듯.

@소라루 - 2개 모두 작중 내에서 언급됬었음.

@건전한독자 - 전사가 INT찍을 일이 뭐 있겠어요... 라기보단 아무래도 머리굴리는 일보다 몸 써야하는 일이 훨씬 많아서 그랬을겁니다.(애도)

@Eluines - 하여튼 여러가지가 많았던 편.

@AquaRuby - 두고두고 놀려먹을 거리. 늙어서도 술자리에 꼭 안주거리로 나올겁니다.

@칼크래프트 - 현실부정끝에 그냥 굉장히 안쓰러워진 놈으로 취급.

@트왈라 - 뭐, 다른것보다 쓰는 제가 지금의 검호가 아닌 다른 모습이 된 모습을 상상하기 힘든 탓이 제일 크지만요.

@귤푸딩 - 그야 오버시어가 검호에게만 사전지식을 안가르쳐줬으니까요. 그나마도 추궁한끝에 겨우 안건데 그조차도 영 부실함.

@Buche - 파픈은 그래도 좀 이쁘게(?) 갈거에요 아마.

@ReFrante - 그래도 간다면 아직 얼어있는 에우렐을 갈까했는데 강제로 루미너스 흑역사를 구경하게됨.

@Legendssj22 - 아 공허의 유산, 요즘 유명하던데 대체 어떻게 결말이 났길래...?

@루서스 - 가지고있던 모든 것을 강제기부당하고 추위에 떨고 있을지도.

@Ratios - 공허의 유산 드립이 많이 보이네요.

@책벌레씨 - 그리고 이어지는 검호의 무력제압.

@여행자구름 - 일단 2부에서 검호가 겪을 큼직한 충격은 2개정도로 계획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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