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린side.
내가 태어난 리엔 섬은 메이플 월드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마법의 도시였다. 약 8백여년 전, 눈꽃의 마법사라 불리던 위대한 시조 아리에스 루비스타인이 사람들에게 마법을 가르쳐 퍼뜨리는 것을 계기로 차츰차츰 마법사들이 늘어났고, 척박한 환경과 대륙에서 떨어진 지리라는 특성으로 대륙의 전쟁에 거의 휘말리지 않아 오랜 시간의 역사와 기록을 보존해내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시조-아리에스는 살아남은 영웅, 드래곤 마스터 프리드의 제자이자 그를 제외하면 유일한 오닉스 드래곤의 계약자였다. 그래서 그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은청발을 물려받은 후손은 대대로 리엔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봤자 예쁜 얼굴마담일 뿐이지만.'
은청발은 유전학상 열성 형질이기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가 줄어갔고, 지금 리엔 섬에 남아있는 은청발의 인간은 나 하나뿐이다. 빌어먹을 오빠가 멋대로 섬 밖으로 나간 이후로 내 행동반경은 안그래도 좁았는데 지금은 외부로 나가는게 완전 금지당해버렸다.
골렘 엉덩이에 깔려 하반신 마비나 되버리라고 저주를 퍼부었지만 오빠는 나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이니 그런 일은 없을거고, 결국 섬의 방구석 마법 폐인들 사이에 둘러쌓여 하루하루 지루함에 몸부림쳐야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흥미를 가졌던 것은─
"아, 이제 왔어?"
장신의 여인이 시원스레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자 높이 올려묶인 그녀의 새하얀 머리카락이 물결쳤다. 사심없는 그녀의 미소에 나 역시 입꼬리를 올렸다.
"꽤 잘 어울리네요 그 옷."
"그래보여? 난 좀 불편한데. 특히 하의쪽이─"
"당신이 입고있던 누더기보다는 이 옷이 백배천배 더 나아요."
"누더기라니…… 전투복이었다고 그거."
"전투복치고는 노출이 너무 많았습니다. 참고로 그 옷 이미 버렸으니 다시 찾지 마세요."
여인-아란은 '버렸어?!'라고 소리치며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아란, 아무리 아란이 옛날에 입은 옷이라 해도 걸린 마법이나 디자인이 너무 구렸다고요. 8백년이나 지났는데 슬슬 새 옷을 입어도 되잖아요?
시조 아리에스가 활동했던 약 8백여년 전, 당시 검은 마법사라는 강대한 악의 존재에게 대적하기 위해 일어선 여섯 영웅들이 있었다. 드래곤 마스터 프리드, 엘프들의 왕 메르세데스, 괴도 팬텀, 빛의 수호자 루미너스, 선인 아란 그리고 용의 전사 검호.
검은 마법사의 가장 강력한 부하인 군단장들을 꺾고, 검은 마법사를 봉인시킨 영웅들은 마지막 순간 그에게서 강력한 저주를 받아 얼음 속에 갖혀버렸다. 그렇게 얼음에 갖힌 영웅중 아란이 옮겨진 곳 중 하나가 바로 내가 태어난 리엔 섬.
"아니 이 옷 엄청 덥거든? 이 방도 더운데 옷도 너무 덥다고."
"…… 그게 덥다고요?"
비키니와 차이가 거의 없는 상의에다가 허벅지의 반이 트여있는 바지를 입고 있으면서 덥다는 말이 나오다니. 방의 온도도 정신 집중을 위해 평균보다 낮게 맞춰놨는데.
"아하하, 나는 추운 곳 출신이라 더위를 많이 타걸랑. 거의 리엔 섬만큼 추운…… 아, 지금은 아니지 참. 여기가 예전보다 따뜻해져서 꽤 놀랐었어."
"저희 리엔의 장기 중 하나가 온도조절 마법이죠."
가볍게 지팡이로 바닥의 문양을 두들기자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던 문양이 초록색으로 바뀌며 방의 온도가 떨어졌다.
"후! 이제 좀 살 것 같네."
"그래서 힘은 얼마나 돌아왔나요?"
"막 깨어났을때보다는 나아. 여전히 한숨밖에 안나오지만 그래도 점점 강해지는게 눈에 띄게 보이니까 의욕도 나고."
그녀가 소파에 기대어둔 폴암을 한손으로 집어들어 손가락사이로 빙글빙글 돌리며 하는 말에 나는 질린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전사직의 힘은 마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초월한 것 같아.
아란은 얼음속에서 깨어난건 바로 며칠 전이었다. 본래 그녀는 섬의 깊숙한 곳에 엄중히 보호되어 있었지만, 어느순간부터 그녀가 들어있던 얼음은 의회 한복판에 관상용으로 배치되었다. 아란이 깨어난건 의회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던 날이었는데, 하필 또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와중에 깨어나버려 그 여파로 섬이 발칵 뒤집혔다.
그녀가 영웅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문제는 영웅이 깨어났다는 것 자체였다. 다른 영웅들도 하나 둘 깨어나기 시작한다는 뜻이니까.
"다른 동료들 소식있어?"
"없어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하나 있습니다."
"진짜?!"
"일단 자리에 앉으세요."
메이드에게 코코아를 타오라고 시키며 나는 가져온 책의 특정 페이지를 펼쳐 아란에게 주었다.
"응? 책은 왜?"
"얼마 전에 엘리니아에서 이 자료들을 요청했어요."
"이거 과장이 너무 심하던데. 미화도 굉장하고."
"여기 애들이 제일 많이보는 책중 하나인데 너무 평가가 박하네요."
"아니아니 당사자인 내가 부끄러울 정도라고. 마하가 이거보고 얼마나 웃었는데."
"고철덩어리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 없습니다. 그건 영웅님들을 직접 보고 들은 사람들과, 아란의 동료가 직접 쓴 책이니까요."
"…… 진짜 프리드가 이 책 쓴거 맞아?"
유일하게 저주에서 살아남은 영웅 프리드는 시조 아리에스의 스승이었다. 당연히 영웅들에 대한 책을 쓸때 그의 조언은 구한건 물론, 일부 서적은 그가 직접 썼을 정도다.
"8백년 전 것이다보니 몇 번 개정하긴 했어요. 그래서 다소의 변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원본에서 크게 변한건 없을걸요?"
아란은 불만스러운 눈으로 책을 보았다. 생사를 함께하며 싸운 동료들을 종이 위의 활자들로 본다는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이 책을 영 좋아하지 않았다.
"엘리니아에서 요청한 인물의 자료는 여기, 이 사람이에요."
"검호?"
펼친 페이지의 인물은 종이에 다 그려지지 않을만큼 거대한 오닉스 드래곤을 뒤에 둔 화려한 붉은 옷의 남자였다.
"하인즈씨께서 말한 인상착의와 특징들에 부합하는 사람은 이분 뿐이었어요. 갑자기 왜 이런 자료를 요청했나 싶어서 물어보니…… 직접 만났다고 하더군요."
"만났, 다고?"
"얼음에서 깨어난게 확실한거죠. 그래서 빨리 이곳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어요."
"정말이지? 고마워 꼬마 아가씨!"
나를 확 껴안는 그녀의 팔은 근육때문에 딱딱했지만 퍽 따뜻해서 기분나쁘진 않았다.
"그보다 아란. 검호라는 영웅은 대체 어떤 사람이죠?"
"이 책 다 보지 않았어?"
"아무래도 실물을 본 사람에게 묻는게 더 확실할테니까요. 다른 영웅들은 몰라도, 검호는 이 리엔에서만큼은 그 의미가 달라요."
"왜?"
"그는 시조님을 구하신 분이니까요."
입술이 비틀렸다. 메이플 월드에서 외지중의 외지라 할 수 있는, 척박하기 짝에 없던 환경이었던 리엔 섬을 여기까지 번영시킨 위대한 시조 아리에스의 업적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그녀의 영향력이 수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는게 마음에 안들었다.
방 한쪽의 거대한 나무…… 비슷하게 생긴 일종의 캣 타워에 긴 몸을 늘어뜨리고 있는 나와 계약한 오닉스 드래곤, 로야가 말했다.
[시조 아리에스는 영웅 검호의 손에 구해져서 리엔에 오게 됬어. 그리고 그가 준 마법서를 바탕으로 성장해, 검은 마법사의 봉인 이후 드래곤 마스터 프리드를 만났지.]
"로야의 말대로에요. 리엔에서는 시조님의 영향이 큰만큼, 그분의 생명의 은인인 그를 어떻게 대할지가 문제라는거죠."
"그건 고민할 가치도 없는데? 검호는 그런거에 신경쓰는 성격이 전혀 아니야. 불쾌하지만 않으면 될걸?"
"대충 어느정도면 되죠?"
"음…… 시끄럽지만 않으면 될거야. 예전에 리프레에서 우리 보러 인파가 몰려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좀 짜증이 났는지 위압감으로 찍어눌러서 길을 하나 만들었거든."
제일 힘든걸 요구하네. 무려 영웅이 직접 오는데 여기 사람들이 조용히 있는건 무리다. 만약 근시일내에 그가 여기 온다는게 알려지면 밖에 나가있던 사람들까지 황급히 뛰어와서 옷자락이라도 보려고 아등바등 할 것이다.
"부디 성격이 좋길 바래야겠네요."
그리고 이 바램은 바로 다음 날, 느닷없이 거대한 드래곤이 날아와 리엔 섬의 결계를 일부 박살내며 착륙하는 광경을 보고 - 도저히 착지라고 부를만한 크기가 아니었다 - 나는 황급히 뛰어나갔다. 내가 도착했을때엔 이미 사람들이 모여들어 드래곤을 제압하려고 마법을 준비했지만 누구도 그것을 날리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곧바로 알았다.
역사책의 삽화가 그대로 튀어나온듯한 생김새와 복장의 남자가 그곳에 서있었다. 그림으로 보았을때 대체 어떻게 저딴걸 입고 싸우냐고 혀를 찼는데 실제로 본 그는 전혀 그 옷이 불편해보이지 않았으며, 길게 늘어진 새카만 머리카락은 남자인데도 잘 어울렸다. 양 허리에 차고있는 화려한 금장식의 검은 찌꺼기처럼 남아있던 의심을 날려버렸고, 조각같은 얼굴에 박혀있는 강렬한 색의 그러나 고요한 붉은 눈까지 봤을때 확신했다.
[마스터. 이 사람들 어쩔까?]
장내에 웅웅 울리는 드래곤의 목소리에 나는 그제서야 사람들이 뭘 하고있는지 떠올렸다. 맙소사 누구한테 무기를 겨누고 있는거야!
"모두 무기를 내리세요."
일단 침입자이니 무기를 들긴 했는데 리엔 사람치고 그 역사책을 안본 사람은 - 그러니까 그 삽화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은 - 없다. 코스프레를 했다고 보기엔 남자의 분위기가 너무 살벌했다.
나는 의례상 그래도 혹시나 물었다.
"당신이 용의 전사, 검호입니까?"
[오! 또 동족을 보네? 마스터 쟤도 우리처럼 드래곤 마스터야!]
기다린 그의 대답대신 엉뚱한 이의 목소리가 명랑하게 울렸다. 그때서야 그 외의 다른 사람이 있다는걸 알았다. 갈색 더벅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순박한 인상의 소년과 어린 오닉스 드래곤……?
어?
"오닉스 드래곤이라는 종족 이렇게 흔했나요?"
"전혀 흔하지 않아."
어째서 저 소년이 오닉스 드래곤과 계약했지? 8백여년 전 검은 마법사에 의해 그 종족은 사실상 멸종당하고, 단 3개의 알만이 리엔에 남았는데? 그나마 알들이 부화한것도 최근의 일이다. 하나는 내가, 다른 하나는 망할 오빠가, 마지막 하나는 수 십년전 일찍 부화해 어떤 마법사와 계약했다가 후손을 남기지 않고 죽었다.
아니 잠깐만 있어봐. 설마 저 소년이─ 드래곤 마스터 프리드와 닮았어?!
당황해서 지팡이를 놓칠뻔했다. 재빨리 지팡이를 다잡았지만 캐스팅해둔 마법이 발동하며 바닥에서 솟구친 얼음이 남자에게로 쏘아졌다. 무려 얼굴에!
'…… 수습불가능이네요.'
정말 아슬아슬하게 단어그대로 눈앞에서 멈췄지만 심장이 그대로 멎어버리는 줄 알았다. 자신에게 닿지 않는다는걸 처음부터 간파했는지 남자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처음과 똑같은 자세로 서있었다. 뭐라고 말해야하지? 실수했다고?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이 용의 전사 검호입니까."
빼도박도 못하게 본인인게 확실했지만, 하인즈씨에게 요청을 보낸 그 순간부터 기다린 사람이지만 이번만큼은 아니길 바랬다. 그러나 그는 고드름을 두부처럼 으깨버리며 음산하게 대꾸했다.
"그렇다만."
긴장으로 쩍쩍 말라붙은 입안에 침이 고였다. 머리를 쥐어짜내 이 상황에서 할 말을 혀를 굴리며 만들어내다 혀차는 소리 비슷한게 나버렸지만 이거까지 수습하기엔 이미 상황이 끝까지 가버렸다. 이미 그의 머리속에 리엔 섬의 첫인상은 최악으로 찍혔을 것이다.
"섬의 대표자 리린이 영웅님께 인사드립니다. 리엔 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느때보다 간절하게 아란이 보고싶었다. 하다못해 그녀가 있었으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와 태세변환 쩐다.]
닥쳐요 이 도마뱀.
***
검호side.
정말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리엔 섬에서 신고식을 제대로 치룬 우리는 - 당연히 반어법이다 - 리린을 따라 시끌벅적한 번화가를 지나 홀로 우뚝 서 있는 엄청난 크기의 동양풍 건물로 가게 되었다.
"검호~! 오랜만이야!!"
"…… 아란?"
건물에 들어서자 노출도가 하락했는데 방어력도 같이 하락한 기묘한 옷차림의 아란이 엄청 환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팔로 감으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잠깐만 아파! 아프다고! 레벨 떨어진거라 믿기지 않을만큼 무지막지한 악력에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러야했다.
"정말 만나서 반가워. 정말로……."
입은 비칠비칠 웃음을 흘리고 있었지만 눈꼬리에는 약간의 물기가 보였다. 어깨를 휘감은 팔의 떨림이 느껴졌다.
아, 낯선 세상에 뚝 떨어진듯한 느낌. 그녀 역시 마찬가지로 그것을 겪은 것이다. 수 백년이 지나 아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고, 알던 것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을 대하는 그 느낌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정도로 막막하고 힘들다는걸 잘 안다.
잠시 뭐라고 말하지 않고 아란을 보다가 무심코 넘긴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았다. 그녀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 즉, 인게임과는 달리 그녀는 저주의 여파로 기억을 잃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째서냐는 의문보다 그녀와 유에를 어떻게 대면하게 만드냐는 문제가 생겨나 머리가 아파왔다.
"저기 스승님? 그 누나도 동료에요?"
아란과의 재회에 잠시 묻혀버린 에반이 물었다. 그때서야 에반이 있다는걸 안 아란이 크게 눈을 뜨며 놀랐다.
"─프리드?"
"에반이다. 이것저것 가르칠게 있어서 내가 잠시 데리고 있는 아이지."
"아니 잠깐만, 정말 프리드랑 닮았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니까 제발 착각하지 마라."
앞으로 영웅즈 만날때마다 이 대사를 말해야할 것 같은, 불길하지는 않지만 다소 귀찮은 예감이 들었다. 아란은 반쯤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당연히 프리드가 아니겠네. 그가 여기 있으리 없지."
"이미 알고있나?"
프리드가 죽었다는걸.
"아아, 응. 리엔 섬에는 책이 많더라고."
가슴아픈 사실을 내가 전하지 않아도 되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그걸 알았을때 아란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아란은 얼굴에 진 그늘을 빠르게 걷어내며 척척 에반에게 걸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녕 에반. 내 이름은 아란이고, 너의 스승님의 동료야."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너도 드래곤 마스터인 모양이네."
"그래서 스승님이랑 같이 여행하고 있어요."
유에와는 달리 프리드와 에반을 바로 분리해낸 아란은 곧바로 특유의 털털한 성격으로 쉽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다리 놔줄것도 없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를 '누나'와 '꼬맹이'라 부르며 친해지는 둘을 보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저 소년이 검호님의 제자인가요?"
"뭐, 그렇지."
내가 가르친건 아직 없고 아스카가 주로 마법을 가르쳐주고 있지만.
그것보다 아란의 기억이 멀쩡하니 이쪽은 내가 손 쓸 필요가 전혀 없을 것 같다. 힘이 약해졌어도 그녀가 블랙윙 따위에게 놀아날것 같지 않으니까.
"정말 허접하군요."
응? 방금 내가 뭘 들은건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보니 리린은 흥, 콧방귀를 뀌며 방 한쪽에 놓인 책상으로 가 턱 앉으며 만화와 소설에서나 묘사되는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 내가 스승으로서 그렇게 안좋다는거냐. 마법 배운지 며칠만에 저렇게 성장한 에반더러 허접하다 했을리 없으니 이쪽이 맞겠지. 직업이 다른만큼 내가 가르칠게 거의 없다는게 사실이라 반박도 못하겠고.
"아란. 수다는 그만떨고 이제 수련이나 하세요."
겨우 동료 만났는데 바로 수련시키는거냐! 인게임에서 슬리피우드의 누구처럼 몬스터 999마리 정도 퇴치시켜볼까~ 라는 대사까지 했는데 여기라고 뒤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레벨업 아니 강해지는게 더 빡센만큼 심하게 굴릴 가능성이 높다.
"응? 뭐 할만한거 있어?"
"리에나 해협쪽의 빙하들이 급격하게 녹아내리고 있다고 합니다. 리엔 섬은 마법으로 온도조절을 하고있어 피해가 거의 없지만, 다른 섬에 살고있는 펭귄족, 물개족, 말라뮤트족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해왔어요."
리린은 리에나 해협과 관련된 것이 쓰여있는 종이들을 꺼내 아란과 나에게 주었다. 양이 부족한지 에반에게는 주지않아 같이 봐야했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속도가 빨라 조만간 육지가 다 잠길지도 모르니 빨리 해결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있네요. 마침 영웅님이 두 분이나 있으신데 같이 가주실 수 있을까요?"
"오, 오랜만에 협동 플레이를 하네?"
딱히 아란이랑 팀플이란걸 해본 기억이 없는데. 그나마 찾자면 몬스터떼가 몰려왔을때 아란이 먼저 마하를 휘두르며 흡사 탱크처럼 전진하고, 난 뒤에서 자잘하게 뒷정리하던것 정도.
"에반. 좋은 기회가 될거다."
"예? 저도 같이 가요?"
"이런 경험은 드무니까."
아마 내가 아는대로가 맞다면 이 사태의 원인은 블랙윙일테니, 이참에 에반한테 블랙윙이 뭐하는 단체인지 직접 보여주고 절대 속아 넘어가면 안된다고 알려줘야지.
"…… 그럼 곧바로 리에나 해협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리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실내의 바닥이 번쩍이더니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눈덮인 얼음 위로 패대기쳐졌다.
순간이동 승차감 진짜 끝내주네. 롤러코스터 타다가 레일 끊겨서 추락한 느낌이야.
========== 작품 후기 ==========
영웅즈의 의상이 바뀐 설정은 본편에도 적용시키기로 결정. 아란의 경우 리린이 보기에 너무 누더기같아서 기존의 것을 버리고 딴걸 줬다고 합니다.
사실 리린이 허접하다고 말한쪽은 검호가 아니라 에반. 대략 '너따위가 영웅의 제자라니'란 느낌. 자기보다 약한 마법사라 실망했다? 고 할까요. 그와중에 에반이 프리드와 비슷하고 미르랑 계약했다는 사실에 어떤 사실을 직감하지만 믿지는 않음.
캐붕이라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리린의 성격이 원작과 다른건 어쩔 수 없습니다. 바탕이 되는 리엔 섬이 척박한 오지에서 마법도시로 바뀌었고, 아리에스의 후손으로서 사람들에게 떠받듬 받으면서 자랐으니... 성격이 다른건 당연합니다.
@마유즈미 - 하나는 성격 더러운 책사씨에게, 다른 하나는 수 십년 전에 깨어나 계약했는데 마스터와 함께 사망. 알은 남기지 않음.
@karuma - 오해와 착각으로 점철된 상황이었습니다.
@Sisre - 크기는 별로 안큽니다. 현재의 미르보다 좀 더 큰 정도?
@대어의예감 - 리린이 아란을 굴린다기보단 아란이 자처해서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깨어나자마자 약해진거 알고 엄청 좌절했지만 금방 일어나서 수련! 힘이 약해진거보다 8백여년이 흘렀다는 사실에 저 충격받음.
@류동지 - 드래곤 워리어하니까 케로로 극장판이 생각나버렸음.
@곰휴지 - 정확합니다. 참고로 처음부분에 리린 루비스타인이라고 말했는데, 루비스타인은 GMS에서의 성.
@qkzks135 - 환경 특성상 영웅에 대한 빠심이 더 강해졌는데 어떻게 감히 영웅을 해치겠습니까.
@노란우산s - 마법사가 됬지만 오빠에 대한 감정은 더 강해져버림. 나중에 만나면 말보다 지팡이질을 먼저 할 걸로 보입니다.
@레시코 - 검호를 보고 놀랐다기보단 프리드를 닮은&리엔 섬 밖에서 오닉스 드래곤과 계약한 에반을 보고 놀란겁니다.
@적월식 - 네. 어리지만 잠재력은 충분히 영웅급이니까요.
@심온 - 놀란건 검호가 아니라 에반쪽.
@ReFrante - 아란은 검호와 비슷한 시기에 깨어났습니다.
@루서스 - 바로 등장! 그때 파픈스타가 치료해준덕에 기억을 잃지 않았지만...
@좀비라스 - 하지만 그 블랙윙이 어디있는지 또 찾아야합니다.
@hakuya - 사람들이 오오오! 하면서 떠받들지만 본인은 이 빌어먹을 섬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원작과는 반대.
@트왈라 - 그냥 산업폐기물로 바꿔야죠.
@Ratios - 그저 하루하루 노가다하는 유저들.
@허공말뚝 - 솔직히 그 대본은 영웅즈가 직접보면 누구든 빵 터질 수 밖에 없잖아요?
@신의약속 - 마법 자체는 별로 안 강했음. 놀란건 마법이 쏘아졌는데 아예 움직이지 않은 검호와 누가봐도 프리드와 혈연지간같은 에반의 존재.
@그냥마법사 - 그리고 검은 마법사 대사만은 싱크로율100% 찍었을듯.
@건전한독자 - 환경이 바뀐만큼 리린의 성격도 바뀌었습니다. 쿨데레를 기대하셨다면 유감!
@Yoontlemin - 누님과 아가씨. 굿.
@kyh0408 - 남매 모두 드래곤 마스터지만 마법실력은... 떨어지진 않지만 영웅즈에 비하면 좀 낮을 수 밖에 없죠.
@여행자구름 - 주인공의 스토리에 모험가는 사실상 비중이 없고, 외전을 통해서 혹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행적이 언급되는 정도로 타협함.
@Blake117 - 몸싸움이 딸리니 머리싸움으로 가는 나인하트.
@철륜성 - 일단 대본에 언급되지 않은건 에반의 생각대로 제 3장의 것밖에 없기때문이라고 생각중입니다. 아직은.
@Legendssj2 - 시조 아리에스의 재림이라고 평가받지만 본인은 저 쉬키들 입술을 얼려버리고 싶다~ 입니다.
@칼크래프트 - 리린의 나이는 에반과 비슷합니다.
@책벌레씨 - 우리는 대화의 중요성을 다시금 절감합니다.
@로젤란스 - 디멘션 게이트가 맛이 가서 그란디스에 가기 힘듬.
@소라루 - 여기서 나인하트가 리엔 섬을 떠난 이유는 더 이상 여기 있는거 지긋지긋하다는 심리도 어느정도 포함되어 있음.
@Buche - 최소한 한 화를 모조리 소모할 것 같음.
@라그실 -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 남매싸움은 마법으로 도시 부수기! 가 가능해짐.
@Eluines - 그래서 한 화를 지웠습니다만, 그래도 리코멘은 합니다.
@arays - 블랙헤븐까지 가는 이유중 하나가 어떻게든 검호한테 블랙윙 제복을 입히고 싶어서, 라는 이유도 있음. 제복 간지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