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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윙들이 빠르게 몸을 뺀 이후의 일들은 일사천리…… 는 아니었지만 더 이상 검호가 나설것도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에반과 아란은 마녀 바바라가 사는 빙하 '클리오네'를 찾아가 힘으로 결계를 박살냈고, 폐기물로 오염된 바다때문에 변변한 먹을거리도 구하지 못해 결계안에서 아사하기 직전이었던 펭귄족, 말라뮤트족 그리고 인형에 세뇌되지 않았던 몇몇 물개족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후 그들은 마녀 바바라와 결박되어있던 물개족들부터 '범고래'에서 벌어진 만행을 자세히 알게 되었고, 마녀의 도움으로 단숨에 '범고래'까지 이동해 블랙윙이 미처 회수하지 못하고 그곳에 방치해둔 이동식 난로와 빙하 분쇄기를 보면서 그들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빙하 안쪽으로 들어갔다 검호와 다시 조우, 블랙윙이 이미 떠났음을 알고 분개하지만 적어도 더이상 빙하 피해는 없을거라는 사실이 위안이었다.
"어쨌든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처리할게요. 활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검호님, 아란, 에반."
리에나 해협의 전말은 리린의 귀에 한 글자도 빠짐없이 그대로 들어갔고, 그녀는 마법사들을 이끌고 즉시 달려와 물개족들을 전원 구속했다.
"물개족은 이제 어떻게 되나요?"
"'모비 딕' 소실과 다른 빙하들의 일부 소실, 외부 세력과의 결탁 등의 죄를 저질렀으니 매우 엄중한 처벌을 받을겁니다."
"세뇌당한건데도요?"
에반의 물음에 리린은 고운 이마를 찌푸렸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세뇌당한게 사실인건 맞지만, 그들때문에 빙하가 사라진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물개족들을 세뇌한 인형에 대한 분석은 일찌감치 끝났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인형에는 귀에 들리지 않는 미세한 소리를 통해 감정을 조종하는 기능이 있었고, 이때문에 물개족들은 비정상적으로 탐욕스러워져 블랙윙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알려졌기에 에반의 저런 반응도 아주 이상한건 아니었다.
검호는 시무룩한 얼굴의 에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왜 그들이 딱하다고 생각하는거지?"
"그, 그야 물개족은 원치 않았는데 조종당해서 그런 일을 하게 된거잖아요!"
"그들도 피해자다 이말인가."
"네에……."
리린은 '저 뭣모르는 촌놈이'같은 생각을, 아란은 '착하지만 아직 뭘 모르네'라는 생각을 했다. 둘은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상대해왔고, 에반이 가진 동정심이나 생각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저것이 무척이나 무르다는걸 경험상 잘 알고 있었다.
검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도 메이플 월드를 험악하게 구르며 여러 피해자,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을 봐왔다.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피를 보기도 했기에 지금 해야 하는 말의 단어들을 신중하게 골랐다. 어울리지도 않게 스승이라 불리고 있지만 제대로 된 뭔가를 가르치긴 해야하니까.
"에반."
"네 스승님!"
"약자가, 피해자가 항상 선한 사람일까."
"네?"
"그러니까, 약자나 피해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반드시 착한 사람일것 같냐고 물었다."
"그건……."
에반의 말끝이 흐려졌다.
검호는 피해자, 약자의 입장에 서있는 사람을 몇 번이나 보았다. 인간들에게 상품 취급당하던 페어리를, 혼혈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받았던 데몬을, 세계에게 봉인당해 힘을 빼앗기던 오버시어를.
그리고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해 무슨 결말을 맞이했는지도.
"약자라고 해서, 피해자라고 해서, 항상 착한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에피네아는 검은 마법사와 손을 잡아 독으로 빅토리아 아일랜드에 왔던 리프레의 피난민들을 죽이려고 했고, 데몬은 군단장이 되어 사람들을 학살했으며, 오버시어는 트립퍼들을 끌어들여 세계구급 민폐를 끼치고 있다. 물개족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인형사의 인형으로 인해 조종당한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착한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 그 말을 지금 펭귄족과 말라뮤트족 앞에서 했다간 싸대기 쳐맞을거다.
말의 뜻을 알아들은 에반은 다소 일그러진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전 어떻게 해야해요? 저는 제 힘을 사람들을 돕는데 쓰기로 했는데, 그 사람들이 착한 사람이 아니면 누구를 도와야 하죠?"
[마스터…….]
검호는 에반의 머리에 얹어두었던 손을 떼고 몸을 숙여 소년과 눈을 맞췄다. 그리고 한때 똑같은 궁리를 했던 자신이 나름대로 내놓았던 답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억울한 사람."
"억울한…… 사람이요?"
"그래."
제발 얘가 제 말을 잘못 해석하지 않고, 나중에 블랙윙따위에 이용당하지 않길 검호는 속으로 바랬다.
"흠흠, 얘기는 끝나셨나요?"
"그럭저럭."
"그럼 마저 말씀드릴게요. 리엔은 이번 사건의 원흉인 블랙윙이라는 집단이 왜 리에나 해협의 빙하를 가져갔는지, 그들의 목적은 무엇인지 알아낸다음 추적, 소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나도 돕기로 했고. 수련하기 딱 좋은 일거리라 생각했거든."
아란은 리린에게서 가장자리와 모자깃에 검은 털장식이 달린 흰 코트를 건네받아 걸치며 말했다.
"그렇다면 저도─"
"아 물론 외부인인 당신은 딱히 도와줄 필요 없습니다. 저희쪽에서 충분히 처리 가능하니까요."
"……."
"소식이나 정황이 어떤지는 전해드릴 수 있는데, 나중에 그거라도 받으실래요?"
얼빵한 얼굴의 에반을 감상하며 리린은 그녀와 계약을 맺은 오닉스 드래곤, 로야가 가져온 큼직한 트렁크를 받았다.
"많이 늦었지만 리에나 해협 사건을 해결에 대한 답례입니다. 받아주세요."
얼떨결에 드렁크를 받은 에반은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에 뒤로 자빠질뻔했고, 미르가 받쳐줘서야 균형을 잡았다. 트렁크를 열자 안에는 옷이 들어있었다.
"이건……?"
"마법사용 장비입니다. 개인적인 부탁이지만 어디가서 그런 옷차림으로 드래곤 마스터라고 떠들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같은 드래곤 마스터로서 창피하니까요."
"이 검은 왜 여기 있죠?"
"내가 개수 부탁한거다."
검호는 별로 티는 안나지만 떨떠름한 얼굴로 에반의 옷과 함께 들어있던 쌍검을 집어들었다. 부탁한지 몇 시간 됬다고 벌써 끝난거야.
무기없이 게오르크와 싸우다가 드릴 잘못 차서 신발 밑창 다 갈리고, 장갑을 꼈음에도 전자 방어막 두들기다 감전당할뻔한 경험을 확실하게 한 그는 리린와 아스카에게 원거리 무기 회수 기능같은걸 마법으로 추가해달라고 부탁했고, 둘은 이를 혼쾌히 들어준 것이다…… 만 그는 뭐가 바뀌었는지 몰랐다.
"검호님의 검을 직접 손볼 기회를 받아 영광이었습니다."
[리린이 엄청 열심이었어~]
"그래서 어떻게 마법을 쓰는거지."
난 마법 쓸 줄 모르는데. 누누히 언급된다만 그는 마법을 이해할 수도, 쓸 줄도 몰랐다. 일단 검면에 그림인지 문자인지 모를게 쭉 새겨진건 보인다만.
"그냥 생각만 하시면 원하는대로 움직일거에요."
이 무슨 귀찮음의 극치. 심플한걸 넘어 건성이기까지 한 설명에 그는 정말 제대로 된거 맞나 의심했다가 나중에 대충 시험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들은 리에나 해협을 떠났다.
***
검호side.
리에나 해협의 일을 끝낸 나는 에반의 실력을 좀 더 다듬어주기위해 함께 며칠동안 커닝시티 인근의 늪지대를 좀 정리했다. 라케리스 그 여자 진짜 민폐였어…… 킹 슬라임에 거대 악어까지, 사고는 다 쳐놓고 뒷수습 넘기는게 그년이 떠올랐다.
이제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오르비스에 가보기로 했다. 거기에는 봉인석과 미네르바 여신님, 팬텀이 세트 메뉴마냥 모여있으니 한 번은 가봐야 하는 곳이니까.
어느때처럼 아스카를 타고 갈까 했는데 그래도 이번엔 쉬게 하는게 좋을것 같고, 에반에게 비행선 타는 법을 알려줄까 해서 이번만은 비행선을 타기로 했다. 인게임과는 달리 - 빅뱅 패치전과는 마찬가지로 비행선은 정기적으로 오는 것이었다. 이게 현실적으로 당연한 것이겠다만.
"조심하게 모험자 양반."
"뭘 말이지?"
"오르비스로 가는 비행선에서는 가끔 악마가 나오니까."
그냥 노인네 헛소리라고 넘기려고 했는데 생각나는게 있었다. 아 잠깐만 그거……! 디멘션 게이트랑 프렌즈스토리 생긴 이후로는 잘 타지도 않아 새카맣게 잊고 있던게 떠올랐다. 오랜만에 비행선 타는데 아스카랑 같이 공중전을 해야하냐 나.
그런데 이 말은 다른 의미로 들어맞았다. 일단 비행선에서 악마가 나오긴 나왔으니까.
"엄마 저 형아 이상해!"
"쉿, 그런 말 하면 안돼."
"형아 뭐 먹어서 피부가 파랗게 됬어? 파란버섯 갓?"
"……."
이럴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 진짜로. 선실에 짐을 풀어놓고 갑판에 나오자마자 본게 저런거라니.
[마스터. 저 남자 분명─.]
"무시해. 그냥 돌아가자 아스카."
"아는 사람이에요 스승님?"
너무 잘 알아서 문제야. 왜 저놈이 여기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전혀 알고싶지 않았다. 오르비스에 도착할때까지 선실에 쳐박혀서 잠이나 푹 자자고 뇌에 30번쯤 새기며 몸을 돌렸는데 놈이 먼저 말했다.
"혹시 검호, 입니까?"
아 망할. 이 옷 걸어다니는 신분증급이잖아.
담걸린것 마냥 뻑뻑하게 목을 돌리니 휘둥그래 눈을 뜬 놈이 날 보고 있었다. 종족 특유의 청회색 피부와 바람에 출렁출렁거리는 붉은 미역머리, 접혀있는 박쥐 날개에 눈가의 문신까지. 지나가다 봐도 잊기 힘든 특징들이 한데모여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는 청년을 어떻게 잊을까.
"…… 오랜만이네."
나는 군단장중에서 손꼽히는 힘과 그보다 더한 검은 마법사를 향한 광신으로 무장했던 이, 데몬을 겨우 마주보았다. 그가 누구냐고 계속 묻는 에반에게 아스카와 함께 선실에 들어가라고 말한 나는 비행선이 고도를 높이며 점점 심해지는 추위와 바람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다 들어간 갑판 위에 그와 단 둘이 남았다.
저놈이나 나나 말주변 없는건 똑같아서 입을 여는건 좀 시간이 지난 후였다. 대화의 물꼬를 튼건 그였다.
"좀 전의 소년은 누굽니까."
"에반. 내 제자다."
마법 하나 못 가르치긴 하지만 하여튼 명목상 그렇지. 나는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움켜쥐어 털망토 안쪽에 넣은다음 망토를 여몄다.
"넌 왜 여기있는거냐."
음울한 검붉은색 눈은 예전처럼 무언가로 강렬하게 빛나지 않았다. 안봐도 뭔 일이 있었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만, 그래도 들어는 봐야할 것 같다.
"저는 얼마 전에 에델슈타인에서 깨어났습니다. 막 일어나보니 알 수 없는 기계에 의해 힘을 뺏기고 있었고, 힘의 대부분을 잃은 저를 레지스탕스라는 무리들이 구해줘서 그곳에서 신세지고 있습니다."
"그것 말고 다른건."
일단 난 왜 니가 오르비스행 비행선을 타고있는지 물어본건데.
"……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고 싶던 가족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그분에게 배신당하면서요. 그때서야 알았죠. 전 그저 도구에 불과했다는걸."
왜 갈수록 설명이 과거로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데미안은 살아있고, 검은 마법사는 저놈 가족 일과는 1g도 관련도 없으며 - 저놈이 배신했을때 속으로 '에? 난닷테?'따위 중얼거렸을지 누가 알아 - 그냥 아카이럼이 쌍놈이라는걸 알려줘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데미안의 경우 살아있는건 인게임에서의 일이지 현실도 그럴지 나도 확신할 수 없을뿐더러, 아카이럼이 쌍놈인건 나보다 같은 직장에서 일했던 데몬이 더 잘 알테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제가 용서받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가 뿌린걸 제가 거둬야하니 움직일 뿐입니다."
데몬의 스토리는 인게임이든, 현실이든 직간접으로 계속 봐왔다만 눈앞에서 이렇게 보는 기분은 기묘함의 끝을 내달리고 있었다. 왜 인게임에서 메르세데스가 데몬더러 친해지긴 힘들다고, 마족과 관련된 일이면 1순위로 그를 의심하는지 알았다.
목숨걸고 몇 번이나 싸운데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을 학살한 놈이 이제부터 속죄할거라는 말을 믿는다? 핼리캐리어가 추락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그럴싸한것 같다. 다 아는 내가 이런데 영웅들이 그를 어떻게 볼지는 뻔했다. 아란이 같이 있었으면 폴암으로 저놈 두개골을 쪼개지 않았을까.
"…… 오르비스에는 왜 가는거지."
"크리슈라마라는 수도승께서 그곳의 님프에게 물건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슬리피우드 퀘스트를 니가 다 깬거냐. 나는 다시 데몬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놈의 존재에 놀라서 눈여겨 보지 못했는데 지금의 그는 군단장때 입었던 화려한 제복대신 깔끔한 와이셔츠와 조끼, 바지 차림이었다. 어울리지 않게 한쪽 허리에는 셉터를 차고 있고, 반대쪽 손등에는 전개하지 않은 포스 쉴드가 있었지만 어쨌든 상당히 지금 세상에 녹아든 것 같았다.
"열심히 해봐라."
내가 저놈에게 구구절절 할 말도 없고, 속죄하기 위해 산다는데 그걸 말릴 생각도 없으며, 결정적으로 갑판위에 계속 서있기 너무 추웠다. 저놈 얼굴 더 보다가 검 뽑아버릴지도 모를 일이고.
사정을 알고있음에도 저놈이 불쌍하게 보이지 않는 내가 이상한건지 정상인지 알 수 없었다.
***
데몬side.
그가 선실에 들어감으로 혼자 갑판에 남게 되면서 제일 먼저 나온 것은 한숨이었다. 뿌연 김이 훅 올라왔다가 금방 사라졌다.
정말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상상조차 못한 장소에서 그와 마주칠줄 몰랐다. 손을 들어 앞머리를 쓸어올리자 송글송글 맺힌 식은땀에 손바닥이 다 젖었다.
'넌 왜 여기 있는거냐.'
그 질문은 장소를 묻는것이 아니었다. 왜 살아있는지, 왜 지금의 평화를 누리고 있는지, 누구보다도 충성스러웠던 자신이 왜 검은 마법사의 반대편에 서있는지. 그것들을 모두 합해서 묻는거였다.
'이것이 대가…… 군요.'
아마 자신이 그의 믿음을 사는건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는 몇 번이고 기회를 줬었고, 그 기회들을 모조리 걷어찬 결과가 지금이니까.
지나치게 힘을 갈구하지 않았다면.
검은 마법사의 군단장이 되지 않았다면.
하다못해 좀 더 일찍 군단장을 그만뒀다면.
가족들과 어디 먼 곳으로 도망쳤더라면.
……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텐데. 후회해봤자 변하는게 없는걸 알고 있음에도 가정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당신도 결국 똑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겁니다! 군단장!'
'대신 그 힘으로 저지른 일엔 분명 책임이 따르지. 너는 니가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지게 될거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름모를 마지막 시간의 신관과 과거 그가 했던 말이 끊임없이 울렸다. 자신이 해온 선택들에 대한 대가. 죽지않고 살아난 것도 그것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죽음'같은 편안한 결말을 맞이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어떻게 깨어났는지, 다른 영웅의 행방은 어떤지 감히 묻지 못했다.
'열심히 해봐라.'
마지막에 잘각거리던 금속음이 떠올랐다. 군단장이었던 자신에게 검을 뽑지않고 그런 말을 하는게 그로서는 최대의 자비였을 것이다. 오르비스에 도착할때까지 목이 계속 붙어있을지 진심으로 걱정해야하는게 현재의 처지였다. 검호 그가 무엇때문에 그곳에 가려는지 몰라도 근처에 가지 않는게 좋을─.
"저기, 춥지 않으세요?"
"…… 응?"
"이거 걸치실래요?"
갑자기 들려온 소년의 목소리와 함께 코앞에 내밀어진 무언가에 반사적으로 포스 쉴드를 전개할뻔했다. 그것이 곱게 접힌 담요라는걸 알았을땐 얼굴 붉히지 않게 노력해야했다.
갈색머리에 순한 푸른 눈, 붉은색을 기조로 한 겉옷과 익숙한 문양의 옷까지.
"…… 고맙습니다."
"존댓말 안써도 되요. 제가 더 어린걸요. 제 이름은 에반이고, 이쪽은 제 파트너인 미르에요"
[마스터 이 사람 신기해~ 나처럼 날개가 있어. 그거 진짜야?]
"진짭니다. 날 수도 있습니다."
정말 용의 마법사를 닮았군. 하지만 현명함과 이성으로 무장하고 있던 그와는 달리 눈앞의 소년은 순진무구해 보였다.
[그럼 왜 비행선을 탔어? 날아서 가면 되잖아?]
"…… 그 말은 비행선으로 꼬박 하루가 걸리는 거리를 뛰어가라는 뜻입니다."
[그런거야?]
"예."
가뜩이나 힘이 다 빨려서 장시간 비행은 물론 오래 뛰는것도 무리인데, 대륙을 건너라는건 가는 도중에 바다에 떨어져 죽으라는 뜻이다.
"저기, 당신은 이름이 뭐에요?"
"데몬입니다."
[우와 작명감각 개판이네. 토끼이름이 래빗인것 같아.]
"…… 제가 지은거 아닙니다."
참자. 어린애한테 셉터 휘두르면 안돼. 거기다 검호씨의 일행이야.
"데몬씨는 스승님이랑 아는 사이세요?"
"예전에 꽤 자주 만났습니다."
그리고 만나자마자 무기 뽑아들고 사생결단을 내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미친듯이 두들겨맞고 후퇴하는게 일상이었지. 겨우 한 방 먹였다 싶으면 자체 회복기로 말끔하게 회복해 이게 인간인지 신종 몬스터인지 진심으로 의심해보기도 했고. 순혈 마족도 그러진 못했는데.
"동료였어요?"
"…… 반대입니다. 적이었습니다."
[엑?]
"지금은 아니지만 그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군요."
냉엄하기 이를데 없었던 붉은 눈은 언제라도 다시 적으로 돌릴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에반이라 소개한 소년은 스승 - 검호에 대해 궁금한게 많은지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고, 나는 그의 사생활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아는만큼만 대답해주었다. 아무래도 그는 소년에게 별다른 자기 소개를 해주지 않은 모양이다.
소년에게서 데미안의 모습이 떠오른걸까. 한참 이야기를 하던 나는 서서히 배에 드리워지던 그림자를 눈치채지 못했다.
***
검호side.
선실에 돌아온 나는 책상머리에 앉아 어울리지 않게 펜을 굴렸다. 당분간 선실에 있어야하니 여태껏 뒤로 미뤄졌던 일을 다시 끄집어내야 했으니까. 무턱대로 떠올리는것보다 기록하면서 생각하는게 더 편했다.
나는 종이에 세피로트가 했던 3개의 질문들을 쓰고, 그것에 답을 달아보았다.
- 첫째, 왜 세계는 오버시어를 봉인했는가?
이건 모르지. 오버시어도 몰랐던건데 어떻게 내가 알아. 그런데 세피로트는 그걸 알고있는 눈치였다. 아니,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 둘째, 봉인을 풀어 자유로워진다는 같은 목적을 가진 두 오버시어는 왜 대립중인가.
일단 대립중인 오버시어가 누구냐는게 일차적인 문제인데, 사실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생명의 오버시어는 일찌감치 봉인 푼지 오래였고, 그 사실을 파픈스타가 세피로트에게 알려줬다면 세피로트가 그걸 모를 리 없으니까. 즉 대립중이라는 오버시어는 그년과 빛의 오버시어란 말인데…… 이거 예전에 시간의 신전에 갔을때 그년을 추궁하다 들었었다.
'그가 세계의 봉인에서 벗어나는 방식은 이 세계를 유지하는 지성체, 사람을 모두 죽임으로 세계를 멸망시키는거야. 그래서 검은 마법사는 학살을 하는거고. 나는 그것을 반대해. 그들때문에 세계가 유지되고, 봉인이 지속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 세계를 사는 생명들에게 죄는 없어.'
그년이 했던 말이 떠올라 펜을 박살낼뻔했다. 그래, 그랬지. 시간의 오버시어와 - 약칭 시오버 - 빛의 오버시어가 - 이하 빛오버 - 대립중인 이유는 봉인 해제 수단때문이다. 그년은 생명이 죽지않길 원하고, 그놈은 봉인을 푸는데 여기 사는 생명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결과가 같아도 방식에 극명하게 차이가 나니 대립할 수밖에.
그리고 놈들 사이에 끼인 나만 미친듯이 고생이고. 썩을.
- 셋째, 봉인에서 빠져나온 시오버는 어떻게 힘을 회복할것인가.
이건 앞서 풀려났던 생명의 오버시어때를 떠올리면 된다. 그때 생명의 오버시어는 알리샤를 먹어치움으로 힘을 회복했고,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그 힘을 추슬렀다. 시오버도 마찬가지 아닐까? 시간의 초월자라면 륀느가 있다…… 만 그녀는 검마한테 힘 뺏겼는데?
'그럼 제로인가.'
아니면 그란디스의 시간의 초월자를 먹을지도 모른다. 그년의 몸은 그란디스에 있다니 이쪽이 더 가능성이 높아보이는군 그래. 그런데 그쪽 시간의 초월자도 제른 뭐시기한테 유폐당했다고 하지 않았나? 어째 정상인 시간의 초월자가 없다.
"…… 잠깐만."
이렇게 되면 세피로트가 봉인석을 가지고 오라고 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는─ 악!
여기까지 생각했을때 갑자기 선실이 확 기울어져 나는 책상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 작품 후기 ==========
요즘 메이플에서 아무도 비행선을 안타죠. 그래서 저거 잊은 사람 꽤 있을듯.
다음 화부터 새 챕터에 돌입. 대충 이름은 '진실이 검에 빗대지는 이유'. 퍽 우울한 챕터가 될겁니다. 2부 들어서 안나오던 파픈이 등장할 예정.
@대어의예감 - 차라리 간부로 잠입하는게 더 쉬울거임.
@Sisre - 그리고 검에 특수 기능 인챈트 완료! 이제 위장이 더욱 쉬워졌음.
@레시코 - 그건 다다음 챕터쯤?
@루엔시르온 - 나중에 싫어도 연기하고 위장할 예정이지만.
@루서스 - 그거 블랙헤븐쯤에 진짜로 쓰게될거임(농담)
@좀비라스 - 금속장식에 맞아서 꽤 아팠다고 합니다.
@소르니아 - 혹시 압니까, 검호가 직접 블랙헤븐을 띄워줄지.
@허공말뚝 - 하드스우 솔플 뛸지도 모름.
@카한Kahan - 하늘베기 드립이 많이 보이네요.
@베이르타 - 슬슬 스킬 하나쯤 쥐어줄때가 됬음.
@칼크래프트 - 검호는 잠입체질이 아님.
@제6위 - 데몬 슬레이어가 나왔습니다... 썰렁하군요.
@심온 - 뜨끔.
@Eluines - 그리고 약속된 블랙윙 추적.
@Blake117 - 많은 분이 블랙헤븐을 한칼에 벨거라고 생각하시네요.
@신의약속 - 이제 모자까지 얻으면 블랙윙 세트 완성!
@마서 - 안걸겁니다. 그쪽에서 2명쯤 올 예정이다만.
@건전한독자 - 이후 리린은 나인하트에게 연락해 블랙윙에 대한 정보 좀 모아달라고 말합니다. 꼬박꼬박 오빠라 안부르고 '책사씨'라고 부르면서요.
@리아카에린 - 그리고 검호는 겔리메르의 충성을 받고 오르카를 쫓아낸다음 새로운 윙마스터로 등극하는데... 하하하 이거 막장이군!
@노란우산s - 여자입니다. 좀 더 디테일하게는 안경, 단발, 거유, 학자라는 속성을 장착한.
@Legendssj22 - 길게 끌어봤자 재미없는걸 알고 그냥 스피디하게 필요없는 부분을 모두 스킵하기로 했습니다.
@넝기 - 이번에 새로 업데이트되는 블록버스터 말입니다, 이 글 쓸때는 블랙헤븐까지밖에 없어서 딱 거기까지만 쓰기로 했어요. 히어로즈 뭐시기는 패스.
@Ratios - 검다고 해서 흑발미인인 파픈쨩이 생갔났었음.
@적현월 - 그야 당연히 부서지죠.
@월악산이재환 - 많은 분이 한 방에 쪼개지길 바래서 진짜 그렇게 할까 생각중.
@Racine - 블랙헤븐때 레티옥신?에 중독되서 사망하죠.
@책벌레씨 - 가끔씩 후꼬다! 까지 외치면 완벽.
@ReFrante - 새로로 쪼갤까요 가로로 쪼갤까요?
@qkzks135 - 솔직히 위장이라기보단 코스프레에 더 가까워 보였다는거.
@라그실 - 다음 챕터때 검호는 역대급 멘붕이 예약되어 있습니다.
@여행자구름 - 갑판위에 던져지면서 다리뼈에 금갔음.
@kyh0408 - 일단 까메오격으로 해당 테마던전의 엑스트라는 출연시키려고 노력중.
@소라루 - 블랙헤븐도 쪼개지고 스우도 부수고.
@soundname - 실례지만 예언가십니까?
@히드라면 - 비어완:... 루미너스님?(빛의 길로 돌아오셨는데 어째선지 더 어둡다) 루미너스:제발 말걸지마...(그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