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113화 (113/208)

<--  -->  검호side.

데몬이 본래 오르비스에 온 목적인 물건 전달을 마친 뒤 - 그와중에 팬텀은 군단장에서 택배 배달부로 전직했냐며 시비를 걸었고 - 우리는 미네르바의 행방에 대해 조사해보았다. 님프들이 입을 다물었다는 팬텀의 말대로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없었지만, 루나픽시들이 득실거리는 정원 한복판에 떡하니 집을 세운 스피루나란 할머니에게서 자세한 전말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엔 피난민때문에 가라앉기 직전이 되더니 이젠 몬스터인건가……."

"하늘섬이란 것도 그렇게 낭만적인 곳이 못 되는군요."

"하아? 그때 왜 피난민이 여기에 몰렸는지 다 잊어버렸나봐? 그게 누구때문이었을까?"

"……."

투닥거리는 둘의 모습이 익숙해졌는지 에반은 그들을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며 물었다.

"픽시들을 처치해야 오르비스가 가벼워질거라는데, 어떻게 하실거에요 스승님?"

"좀 줄여놔야지."

미네르바뿐만이 아니라 오르비스 자체도 총체적 난국이었다. 갑자기 오르비스로 이주해온 대량의 픽시들때문에 무게가 급증, 머지않아 추락할 위기라고 스피루나 할머니가 경고하실 정도니 말 다했지. 인게임 퀘스트로는 아 그러세요~ 하고 넘겼는데 현실이 되니 이거 진짜 문제잖아.

[그보다 파파픽시라는 것부터 없애야겠지만.]

[그게 어디있는데요?]

"여신의 탑을 찾아가야지."

8백년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말도 안되게 거대한 오르비스 탑의 본래 이름이 여신의 탑이라고 스피루나 할머니가 말했다. 수 백년 전 여신을 추종하던 인간들이 그녀에게 탑을 바쳤다나? 실제로는 엘나스 지방과 오르비스 섬을 잇기위해 어떻게든 사람들이 발버둥친 결과라지만 대충 그런 전설이 있다고 했다.

왜 님프들이 쉽게 입을 않열었는지 알 것 같았다. 교통의 허브라고 불리는 오르비스가 이런 상황인걸 떠들고 다니면 어떻게 될지 잘 알테니까. 거기다 통치자인 미네르바는 파파픽시한테 당해서 봉인된 상황이고.

[그럼 이제부터 여신님이랑 도시를 구하러 출발~]

이 멤버로 정말 가도 괜찮을까. 나(스킬 없음), 에반(2차), 데몬(3차), 팬텀(1차)인데다 공략법도 모른다. 너무 옛날 던전이라 가본 적이 손꼽을 정도로 적다고. 알았어도 그게 현실에서 고스란히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아예 모르는것보단 나았을텐데.

개나소나 오르비스 탑을 통해 엘나스까지 내려간다지만, 정작 탑의 꼭대기로 가는 입구는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데몬이 지나가던 님프를 - 이름이 웡키인지 뭔지였다 - 붙잡아 위치를 물어 알아낸 우리는 꼭대기의 입구에서 기묘한 것을 보게 되었다.

"아아! 안녕하세요!"

[구름이 말도 하네.]

"모험가님들이시죠? 여신님을 구하러 오신거죠? 네? 맞죠? 네?"

"그렇긴 한데……."

"만세에─! 드디어, 드디어 여신님이 봉인에서 풀려나실 수 있게 됬습니다! 시종 이크, 감격에 겨워 쓰러질 것 같아요!"

저거 뭐야? 엄청 시끄러워. 다들 비슷한 생각인지 조금씩 인상을 쓴 가운데 데몬이 물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아, 제 이름은 이크입니다. 미네르바 여신님의 시종이었던 구름의 정령입니다."

"왜 시종이 여기있는거지?"

"여신님을 봉인에서 풀어줄 용사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와 다른 님프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서…… 못된 파파픽시녀석이 탑에 들어올 수 없도록 마법을 걸었다고요!"

이크라고 말한 모자 쓴 구름덩어리가 문 입구를 뱅뱅 돌았다. 문에는 콧수염 비슷한 그림의 마법진이 큼직하게 그려져 있었다.

[일정 이상의 힘이 없는 사람은 못 들어오도록 되어있어.]

"그것때문에 제가 들어가고 싶어도 못 갔다고요! 님프들도 마찬가지였고요. 저희가 뭐 바보라서 구하지 못한게 아니에요."

"이거 풀 수 있으세요 아스카씨?"

[당연히 가능하긴 한데─.]

콰직! 나는 살짝 당기기만 했는데 부서진 문손잡이를 든 채 굳어버렸다. 하하 이게 왜 부서졌을까. 수백년 된 물건답게 엄청 낡아버린 모양이다.

[…… 마스터. 그냥 문짝을 뜯어내는 쪽이 더 빠를 것 같아.]

"그러지."

뒤에서 날아오는 시선과 구름덩어리의 '뭐 이런 무식한'따위의 말을 무시하며 나는 문짝을 통째로 뜯어냈다. 아 먼지.

"이 탑의 구조를 알고 있나?"

"네? 네. 알고 있어요. 예전에 살았었으니까요."

"안내해라."

"예! 알겠습니다!"

좋아 일단 길을 잃지는 않겠네.

구름덩어리를 쫓아 탑을 올라가며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여신의 봉인을 어떻게 풀 수 있는지 알고 있어?"

"안그래도 제가 나름대로 알아봤어요. 그때 여신님은 석상에 봉인되셨는데, 고얀 파파픽시놈이 그 석상을 부숴버렸어요!"

[그렇게 했는데 안죽었어?]

"다 부수진 않고 일부분만 부쉈어요. 그러고는 석상 조각들을 여기저기에 뿌려서 봉인에서 풀려나기 어렵게 만들었죠. 그러니 모험가님, 이 주변에서 여신님의 석상 조각들을 모아주실 수 있나요?"

끼익, 열린 문 너머로 넓은 정원이 펼쳐졌다.

"여기에 조각이 있습니까?"

"오래되서 기억이 잘 안나긴 하지만 이 정원에 조각이 하나 떨어지긴 했어요."

"고작 하나……?"

"떨어진 조각 자체가 그렇게 안많아요. 석상이 엄청 컸거든요."

아 생각났다. 미네르바가 봉인된 그 석상 크기가 확실히 크긴 컸지. 그리고 미네르바를 본떠 만들었다고 했는데 전혀 안닮았었고. 라케리스 짝퉁이었어.

[석상 조각이라고 해봤자 그냥 돌덩어리 아니야?]

"아니에요! 애초에 그 석상은 인간들이 미네르바님을 본따 만들어서 바친 석상이었다고요! 거기에 여신님을 봉인한 파파픽시의 놈이 아주 그냥!"

"진정하고 일단 떨어진 조각이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말해라."

"그게…… 아마 머리카락 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이크는 빙글빙글 정원을 돌아다니며 석상 조각을 찾았다. 하지만 예전에 여기 살았다고 해도 수 백년 전인데 아직도 기억이 잘 나면 그게 이상한거고, 결국 우리들까지 정원을 돌아다니며 석상 조각을 찾아나섰지만 도저히 발견할 수 없었다.

"…… 여기 떨어진거 맞아요?"

"맞다고요! 확실해요!"

[떨어지면서 부서진거 아닐까.]

"무슨 그런 끔찍한 말씀을!!"

[아, 그건 아닐거야. 마법이 걸린 물건은 이전보다 더 단단해지니까.]

[그래요?]

[봉인류 마법이면 특히 더 그래.]

"하지만 아까 스승님은……"

"어─이. 그 석상 조각 여기 있는 것 같은데?"

멀리서 들려온 팬텀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확 돌아갔다. 그가 있는 곳으로 곧장 가보니 먼지가 쌓이다 못해 덩굴에 휘감긴 뭔가가 놓여 있는게 보였다.

"이건?"

"여신님의 오르골이에요…… 으흑, 이게 이렇게 처참한 꼴이 되다니!"

[아무도 관리 안하고 수 백년동안 방치했으면 이 꼴이 되는건 당연한게 아닐까.]

"미르. 아무렇지않게 그런 말 하지마."

"안에 뭔가 들어있는 것 같아서 말이지."

팬텀이 오르골 아랫쪽을 두들기자 묵직하고 둔중한 소리가 났다. 확인겸 열기위해 손잡이를 당기려고 했는데 이크가 옆에서 빼액! 소리쳤다.

"안돼요! 또 부수지 마세요! 이게 어떤 물건인데!"

"…… 시끄러워."

"이, 이건 노래를 틀고나면 레코드판을 꺼낼 수 있도록 자동으로 열리는 물건이에요! 지금도 작동할지는 모르지만 무턱대고 부수지는 말아주세요."

[않열리면 그냥 그때 부숴 마스터.]

"그래서 그 레코드판이라는게 어디 있습니까?"

"저 위에 있지 않을까?"

팬텀의 손가락이 위쪽으로 향했다. 손끝을 따라가니 여기저기 있던 구름섬과 발판에서 뾰족한 창날과 불꽃이 확 일어났고, 날붙이 같은게 날아다녔다.

"…… 작정하고 여기 숨긴 것 같은데?"

[그냥 부수자 마스터.]

"안돼요! 안돼요!"

"내가 갔다올게. 트랩 피하는건 식은죽 먹기─"

"아뇨. 당신은 그냥 있으십시오."

막 나서려는 팬텀을 데몬이 가로막았다.

"뭘 어쩌려고?"

"트랩 피할 시간도 아까우니 그냥 넘어가려고 합니다."

데몬은 펄럭, 접어둔 날개를 펼쳤다. 아 쟤 날 수 있었지?

"거기다 지금 당신은 한 대라도 잘못 맞으면 골로 갈만큼 약해지지 않았습니까. 괜히 위험부담을 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 나중에 힘 되찾는대로 제일 먼저 찾아간다 너."

"언제든지 와보시죠."

검녹색 포스가 데몬의 날개에 번졌고, 직후 그는 가볍게 자리를 박차 날아올랐다.

"다른 석상 조각들은 어디 있어요?"

"탑 안이랑 밖 여기저기에 합해서 6개 정도 있어요."

[그걸 다 외우고 있어? 수 백년이나 지났는데?]

"몇 개는 까먹긴 했지만 그래도 여신님이 봉인된 석상이라서 그 기운을 느낄 수 있거든요. 겨우 오신 모험가님들이니 다 찾으실 수 있도록 확실하게 이 탑을 안내하겠습니다!"

이놈도 물개족처럼 사실 파파픽시와 손잡고 미네르바를 통수친게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 리에나 해협때 일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했다 - 그래도 일단 당장 믿을 놈이 얘뿐이니 지금은 믿어보자.

"손에 그건 뭐지 팬텀."

"오르골 틈에 끼어있던거야. 좀 오래되서 읽기 힘들지만."

누렇게 뜨다못해 바스라져가는 종이조각을 든 팬텀이 그것을 찬찬히 흝어보고 있었다.

"'4월 19일. 인간들이 나를 위해 높은 탑을…… 석상을 만들어 주었다. 단단한 돌로…… 정말 뛰어난 것 같다. 정성이 고마워서 탑 안에 세워두기로 했다'."

[그거 일기 아니야?]

"여신의 일기장 조각 같은데요?"

"히엑?! 읽지 마세요! 읽지 마세요! 다른 사람 일기를 훔쳐보다니 최악이에요!"

"난 그냥 해독한거 뿐이라고. 거기다 훼손이 심해서 읽기도 힘들고."

"이젠 물건 훔치는걸 넘어서 남의 일기까지 보는겁니까?"

질겁하는 이크의 얼굴을 보며 장난스럽게 웃던 팬텀의 표정이 싹 굳었다. 때마침 그 잠깐사이에 레코드판을 한아름 들고온 데몬이 막 내려온 것이다. 또 싸우나 싶었지만 이어지는 말에 관심이 돌려졌다.

"뭘 가져와야할지 몰라서 그냥 다 가져왔습니다. 아무거나 재생하도록 하죠."

"이거 작동은 제대로 할까요?"

"하길 바래야죠."

에반이 색색의 레코드판들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멀쩡한가 살펴보는 사이 이크와 데몬은 오르골에 덕지덕지 붙은 덩굴들을 떼내고 먼지를 털어냈다. 겨우 오르골이란걸 알아볼 수 있을만큼 정리한 뒤에야 레코드 판을 넣었고, 아스카가 마력을 불어넣어 작동시켰다.

♪─♪─♬♩─♪

[뭔가 아기자기한 느낌의 음악이네.]

"여신님이 즐겨들으시던 음악 중 하나에요."

그러고보니 처음 미네르바 여신을 만났을때도 음악을 듣고 있었지. 그때 덜컹, 하며 오르골 아래쪽이 열렸다.

"이게 석상 조각이란 말이지?"

"맞아요! 확실해요!"

팬텀이 레코드 판과 함께 꺼낸 조각은 상당히 컸다. 에반 머리보다 좀 더 큰 사이즈였으며 흔들리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표현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런게 5개나 더 있다고?"

"방해되지 않게 제가 들고 있을게요! 모험가님들은 다른 조각들을 찾아주세요!"

"빨리 다음 장소로 가도록 합시다."

우리는 오르골과 레코드판을 정리한 뒤 다시 탑 안으로 들어갔다.

***

에반side.

데몬씨와 팬텀씨는 옛날에 적이었다는 말이 맞는지 사소한 일에도 부딪혔다.

"솔직히 당신이 제일 방해입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게 돕는겁니다."

"뭐든 힘으로만 해결하려 하는 그쪽도 만만치 않은데? 바로 앞쪽에서도 무식하게 공격했다가 실패할뻔 했잖아."

"아무것도 못하고 짜져있어야 했던 당신보다는 낫습니다."

"저기, 그냥 다같이 하시면……."

""입 다물어.""

"…… 네."

석상 조각들을 감싼채 잔뜩 움츠린 이크씨가 축 쳐져서 이쪽으로 왔다. 기운내세요 이크씨. 감사합니다…….

앞서 샐리온, 라이오너, 그류핀이라는 몬스터들을 처리할때 일정 수를 남기고 처리해야 하는 것을 데몬씨가 모르고 막 때려잡다가 탑에서 추방당할뻔 했었다. 그런 함정 마법이 걸려있을줄 누가 알았겠냐만 - 아스카씨가 외치기 전에 해버려서 -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투에 빠져있던 팬텀씨를 노리기 위해 숨어있던 놈들이 남아있어서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엔 산책로의 픽시들을 처리해야 했는데 전투 열외인 팬텀씨가 픽시 유령에 당해 떨어질뻔 한 걸 스승님이 간신히 붙잡으셨다. 대신 나중에 팬텀씨는 산산조각난 석상 파편을 모두 모아오는 역할을 했다. 데몬씨의 말을 빌리자면 '특기도 꼭 도둑같다'고 해야하나? 어떻게 파편만 보고 그게 석상 조각인지 그냥 돌조각인지 알아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기어코 서로 무기를 빼들려는 둘을 보고 한숨을 내쉰 스승님이 일어나셨다.

"가자 에반."

"네?"

"말리기도 귀찮으니 저 둘은 그냥 냅두고 우리끼리 올라가자."

"하, 하지만."

[애초에 둘은 서로 죽이기 위해 칼을 갈던 사이였는데 하루아침에 하하호호 거리는건 무리지. 마스터가 상당히 곱게 넘어간거였어.]

그 정도로 사이가 안좋았나? 정말 두 사람을 두고 갈 생각이신지 아스카씨는 어느정도 탑 안에 들어오면서 사람을 둘정도를 태울 수 있는 크기로 변해 있었다.

[거기 너희! 너희는 알아서 올라와!]

"예? 아니 잠깐만요!"

"먼저 가있을게요 데몬씨, 팬텀씨~"

[장애물에 걸려서 떨어지지않게 조심하고~]

…… 좀 미안한 일이지만 저 두 분이라면 알아서 올라오실 수 있겠지. 아스카씨는 방어막을 친 다음 가볍게 날개짓해 빠르게 탑 위를 올라갔다. 역시 날개가 최고구나.

중간중간에 공간 왜곡 마법같은게 걸린 발판들때문에 올라가는데 좀 걸리긴 했지만 우리는 순식간에 위쪽에 다다랐다.

[여기 이 레버들은 뭐야?]

"이건 저도 모르겠는데요……."

"이걸 여는게 아닐까요?"

나는 탑 한구석에 레버의 기계장치들이 연결된 먼지가 수북한 금고를 찾아냈다.

"아! 이 안에서 여신님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져요!"

[이걸 열면 석상 조각이 있겠네.]

"내가 하지."

스승님이 나서서 금고 손잡이를 꽉 잡으셨다. 움켜쥔 모양에 따라 손잡이가 우그러졌고, 천천히 당기자 비명을 지르는듯한 뒤틀린 소리가 울렸다. 금고고 뭐고 스승님 힘앞에선 의미가 없구나.

"잠깐! 더 이상 당기지 마!"

[벌써 올라왔네 저 둘.]

"…… 풋."

첫 번째 때와 마찬가지로 검녹색 기운을 날개에 두른 데몬씨와 팬텀씨가 막 함께 올라왔는데 모습이 퍽 웃겼다. 팬텀씨가 포대자루처럼 들려있어. 어떻게든 타협한 모양이다.

"그 이상 강제로 열면 함정이 작동해서 안에 있는걸 부숴버릴거야."

[이 상자엔 마법이 안걸려있는데?]

"그야 여기에 된 장치는 마법이 아니라 기계니까. 잠깐 비켜봐 검호. 내가 해볼게."

팬텀씨는 상자와 연결된 레버들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톡톡 두들겨 보시더니 몇 개를 당기고 올리고를 반복했다.

[…… 금고따는 것 같아.]

"그거 맞습니다. 어떻게 하는 행동이 모두 도둑같을 수 있는지. 아, 도둑 맞았죠 참."

"입 좀 다물고 있을래 박쥐? 이거 집어던진다."

데몬씨의 말을 부정하기 힘들만큼 굉장히 능숙한 팬텀씨의 손길에 10여개의 레버를 휙휙 오르내리자 마침내 금고가 녹슨 소리를 내며 열렸다.

[2개나 있다!]

[파파픽시란 놈 숨기는 방식 생각해내는게 퍽 귀찮았나봐.]

"애초에 몬스터인데 지능이 그렇게 좋을리도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 그런 몬스터한테 속아넘어가 봉인된 여신님은 뭐가 되나요 팬텀씨.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발견한 여신님의 일기장 페이지들을 통해 알아낸 사건의 전말이 황당하긴 했지만.

"아아! 드디어 조각들을 다 모았어요! 이제 여신님을 봉인에서 깨울 수 있어요!"

[빨리 가보자!]

"절 따라오세요 모험가님!"

잔뜩 들뜬 이크씨를 따라 탑을 좀 더 올라가 꼭대기에 다다르니 거대한 기둥 위에 서있는 석상이 있는게 보였다. 여러 부분이 부서져있긴 했지만 굉장히 아름답고, 상당한 크기의 것이라 믿기지 않을만큼 섬세한 조각상이었다.

"와아……!"

"이제 조각을 맞추면 되요! 모험가님들, 마지막 일이에요!"

[접착제같은건 없는데 맞춘다고 붙어 이거?]

[내가 마법으로 붙일테니 잘 맞춰봐.]

"어디에 뭘 붙어야 하는지는 내가 알려줄게."

아스카씨의 몸을 밟고 - 가까운 발판이 없었다 - 올라가 부서진 여신상에 하나 둘 조각을 맞췄다. 날개, 머리, 지팡이, 손 등의 조각들이 제 자리에 돌아가듯이 자연스럽게 붙었고, 마침내 여신상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돌조각임에도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것처럼 생동감있는 머리카락, 한쪽은 데몬씨의 것과 같은 피막의 날개, 다른 한 쪽은 님프들의 것과 같은 깃털 날개, 들고있는 긴 지팡이와 구슬 그리고 조용히 감고 있는 눈까지. 눈을 뜨면 어떤 모습일까?

[여신님은 이렇게 생기셨구나!]

"…… 아니 별로."

"네?"

"그보다 봉인은 언제 풀리는 겁니까. 여신상은 이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으우우우…… 왜 안깨어나세요 여신니이이임─! 겨우, 겨우 다 했는데! 어째서어어어! 이 시종 이크가 마침내 여기까지 왔는데에에에!"

이크씨가 비를 뿌리며 펑펑 오열하는동안 아스카씨는 침착하게 마법으로 석상을 조사하며 말씀하셨다.

[힘이 없어서 기절했는데?]

"예?"

[오랫동안 봉인되면서 기력이 남아있질 않아. 혹시 포션같은거 없어? 석상에 부으면 깨어날지도 모르는데.]

"수 백년이나 지난 탑 안에 포션이 있을리가 없잖아?"

"아, 비슷한건 있어요! 생명의 풀이라고, 옛날에 여신님이 세계수님에게 받았던 특별한 식물이 이 근처 정원에서 자라요!"

[생명의 풀?]

"그걸 찾아다 즙을 내면 포션하고 똑같은 효과가 나요! 염치불구하고 마지막으로 부탁드릴게요 모험가님! 생명의 풀을 찾아주세요!"

어쩐지 지쳐보이는 스승님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셨고, 다른 분들도 툭툭 옷를 털며 일어났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마무리는 지어야지.

꼭대기에서 나오자 또다른 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다만 자라는 식물이…….

[여신님 취향 참 독특하시네.]

"아니에요! 여신님은 아름다운 꽃만 좋아세요! 저건 파파픽시놈의 취향이라고요!"

"그래서 그 생명의 풀이란건 어떻게 생겼는데? 네펜데스가 저렇게 많으면 찾는데 힘들다고."

"생긴건 그냥 작은 풀이지만 아주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요. 씨앗을 심기만 하면 바로 쑥쑥 자랄만큼요."

"그러면 차라리 씨앗을 찾는쪽이 낫겠습니다. 사방에 널린게 풀쪼가리인데 어느 세월에 생김새도 모르는 풀을 찾고 있겠습니까."

데몬씨의 말은 일리있었다. 여긴 여신의 정원이었고, 식물이 자라라고 만든 곳이다. 네펜데스뿐만 아니라 널린게 풀이랑 꽃인데 특정한 풀 하나만 찾기엔 인원도 시간도 부족했다.

우리는 흩어져서 - 아 팬텀씨는 이크씨랑 같이 붙어있었다 - 네펜데스들을 처리하며 온갖 종류의 씨앗을 찾았다. 개중엔 네펜데스의 씨앗이 섞여 네펜데스가 순식간에 자라버리기도 했다.

"생명의 풀이란거 이중에 있긴 한거지?"

"있을거에요. 세계수님의 힘이 미약하게나마 서려있는 씨앗인데 고작 수 백년이 지났다고 죽지는 않을거라고요."

"그런데 세계수는 왜 미네르바한테 생명의 풀같은걸 준겁니까?"

"그건 저도 몰라요. 여신님이 생명의 풀은 받은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라니까요."

보기와는 달리 정말 수 백년을 살며 여신을 기다려온 이크씨가 '오래 전'이라고 말할 정도면 얼마나 옛날인지 상상이 잘 안갔다. 몬스터따위에게 봉인당한 여신님이지만 그래도 그 분은 이크씨보다 더 오래 산 분일텐데.

어느새 정원의 네펜데스는 모두 처치했고, 양 손이 가득 찰만큼 온갖 종류의 씨앗들이 모였다.

"…… 귀찮은데 그냥 한 번에 다 심어버릴까요."

"박쥐 머리에서 나온것 답게 정말 무식한 방안이네."

"하나하나 심고 처리할 시간이 아까울 뿐입니다."

[그럼 그러자. 네펜데스가 나오면 그냥 날려버리면 되고, 생명의 풀이 나오면 채취해가면 되니까.]

[땅 다 팠어!]

어느새 앞발로 구멍을 파낸 미르가 자랑스럽게 외쳤다. 미르, 넌 개가 아니야. 마법을 써. 나는 구멍에다 씨앗들을 쏟아붓고 흙을 덮었다. 이크씨는 졸졸 비를 뿌려 물을 주었다.

울룩! 불룩!

[오! 자란다!]

"이번엔 좀 맞으면 좋을텐데."

"네펜데스가 두셋쯤 나올지도 모르니 떨어지십시오."

"잠깐만요 이번엔 색이 좀 다른데……."

쑥쑥 자라난 줄기에서 한 송이 꽃이 피었다. 네펜데스와 같은 분홍색이 아닌 검붉은 색의─

"다크 네펜데스에요!!"

"Kyururururururu─!"

가래끓는듯한 소리를 내며 꽃이 마구 꿈틀거렸다. 세상에 저렇게 끔찍한 꽃이 있다니! 혐오감과 함께 본능적으로 그것에서 뒷걸음질 치려고 할때 갑자기 꽃머리가 나를 향해 확 고개를 돌리더니 누런 액체를 한 가득 뱉어냈다.

"으왓!"

"당장 이쪽으로 오세요 에반!"

간발의 차로 바닥을 굴러 액체를 피해냈다. 데몬씨가 있는 방향으로 도망치려는데 갑자기 발목 부근이 시큰거렸다. 아래를 보니 다리 쪽이 시뻘겠다. 살색뿐이어야 할 다리가 연홍색과 흰색 그리고 진득하게 흐르는 빨간색으로…….

아. 이거 설마.

"밑을 봐 꼬맹아!!"

다크 네펜데스의 용해액으로 녹아내리던 바닥이 푹 꺼졌다.

온통 붉은색만 보이던 눈이 순식간에 파란색으로 가득 찼다. 빠른 속도로 흐트러진 하얀 색이,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탑이 쒹쒹 지나갔다. 찢어질듯이 펄럭이는 옷자락의 소리가 고막을 두들겼고, 그때서야 내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았다.

떨어지고 있어. 오르비스 아래로.

그 사실을 깨닫기 무섭게 빠질듯이 턱이 벌어졌는데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상황은 비현실적인데 너무 현실적인 감각에, 한참 떨어져내리고 있는데 닿지 않는 땅에, 그리고 다리에서부터 흩뿌려지는 붉은 색에.

"……!!"

그때 어렴풋이 소리가 들려왔다. 고함치는 듯한, 비명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시끄럽게 공기를 가르며 날아들어왔다. 흩날리는 붉은색과 같지만 다른, 차가운 금속빛의…… 검?

쉬이이이이─ 콰앙──!

"큽!"

누가 확 멱살을 잡은 것처럼 목이 졸렸다. 내가, 내가 어떻게 된거지? 죽은거야? 하지만 살갛에 닿고 있는 금속의 냉기는 너무도 선명했다. 새의 형상을 한 금장식의 붉은 검. 누구의 것인지는 묻지않아도 알고 있다.

"에반!!"

그리고 두 번째 붉은 것이 떨어졌다.

두웅─ 하는 북 치는듯한 소리와 함께 갑자기 눈앞의 허공에 만들어진 푸른 발판 위로 스승님이 추락하듯이 착지했다. 극도로 절제된 무표정이 아닌,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조차 못하고 창백한 얼굴로 나를 보시고는 거칠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스승, 님."

"무사해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스승님은 압정으로 고정하듯이 내 옷을 꿰어 탑에 붙들고 있는 검은 뽑으시며 나를 발판 위로 옮기셨다. 땅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밟고 있다는 것이 그제서야 느껴졌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눈물이 나왔다. 방금 전까지 죽을뻔했고, 막 구해졌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뼈저리게 느껴져 스승님한테 매달려 한참을 울었다. 아스카씨가 내려와 우리를 데리러 오고, 다시 오르비스로 올라갈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스승님한테 고맙다고, 구하러 와줘서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말하며 그렇게 있었다.

========== 작품 후기 ==========

그리고 다크 네펜데스와 파파픽시는 데몬이랑 팬텀, 미르가 처리했음.

검호는 1부때와 마찬가지로 이동기를 제일 먼저 쓰는근요. 발판이란건 편리하죠.

당연하지만 소설과 실제 여신의 흔적 퀘스트는 많이 다를겁니다. 예를들면 레버의 수는 10개가 아니라 3개에요.

에반 다리는 용해액에 녹아 없어진게 아니라 그냥 가죽만 좀 녹아서 근육이 드러난거. 하지만 그런걸 처음보는 에반은 질겁.

@카한Kahan - 여신의 흔적이라고 파티 퀘스트가 있음.

@대어의예감 - 현실보정 받으면 그냥 날개 만만세가 되는거죠 뭐.

@라그실 - 많이 남았습니다. 진행시켜야할 이야기가 한 두개가 아니라서.

@qkzks135 - 참고로 군단장중에서 자취가 가능한 사람은 데몬 하나뿐이라는거. 구와르는 논외로 하고.

@레이단트 - 다음 화에는 미네르바&봉인석이 나오겠습니다.

@좀비라스 - 애초에 전직 군단장과 영웅의 사이가 좋으면 그게 이상한거죠.

@루엔시르온 - 최대한 퀘스트를 살려봤습니다만, 아는 사람만 알아볼 정도.

@salver000 - 저도 이 존재감없는 퀘스트 넘길까 했는데, 미네르바가 적어도 이 글에서는 나름 지분이 있어서 말입니다.

@비야BiYa - 쓰는 저도 진짜 오랜만임.

@JM132 - 템이 예쁘다. 끝.

@좌절거북이 - 전 한 번도 안했음. 이거 쓰기위해 공략 영상이랑 리뷰글 찾은게 전부.

@Blake117 - 그리고 팬텀은 렙이 낮음에도 나름 활약을 해줬음.

@Buche - 그 설정이 어디서 나온건지 알아봐도 될까요? 크리스탈 가든에 대해 정확한 설정은 팬텀이 구매했다, 가 전부라서. 일단 과거편에 크리스탈 가든이 언급되지 않았니 당연히 봉인에서 깨어난 후에 샀다고 생각했는데.

@Sisre - 그리고 소설에서 날개 있는 애들이 많아서 휙휙 스킵함.

@심온 - 이번엔 죽을까요 과연?!

@노란우산s - 주니어 부기를 해치웠다~ 같은걸 넣기엔 좀 그래서 그냥 패스했음.

@Eluines - 요즘 메이플은 안하지만 히오메 영상은 보고 있습니다. 에반이랑 미르가 확실히 꽤 귀엽더라구요 하하.

@karuma - 그리고 검호는 드디어 스킬 하나를 건짐.

@진홍빛사신 - 저도 솔플만 뛰다보니 파퀘는 거의 안했음.

@kyh0408 - 근데 루미가 있었으면 그게 더 문제. 중2너스잖아요ㅋㅋ 팬텀이 두고두고 놀렸음거임.

@레시코 - 여기서 문제! 검호에게 팔부상을 입힐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적현월 - 두 파티원들의 쌈질에 짜증이 난 검호는 그냥 버리고 갈까 생각을 진지하게 했습니다.

@리아카에린 - 빛오버라면 검마, 루미, 아이오나를 먹겠죠. 그리고 저도 이 파퀘 딱히 해본적이 없어서 공략 찾아봤음. 최신 것을 반영했습니다.

@ReFrante - 이번 편의 네 사람의 키는 검호:180 중반, 팬텀:180 초반, 데몬:180 후반~ 190 사이, 에반:160 초중반 입니다.

@패러디좋아 - 인게임과는 달리 현실반영 하면 반드시 클리어 해야하는 것이라.

@LostChildren - 하지만 여기선 한 방에 얻겠지.

@루서스 - 보여줄 시간이 없었음. 데몬이랑 치고받고 있는데.

@부농부농해 - 아직 어려서 순수하니까 막말하는거죠. 좀 자라면 나아질... 까요?

@지나가는니트 - 그리고 팬텀은 검마 봉인 후의 정보 + 답례로 비행선 제작 값 깎기 위해? 일까요.

@Ratios - 다른 영웅들도 마찬가지에요. 예를들어 팬텀도 지금 레벨 10(풋)이지만 기회만 잘 본다면 픽시 쓰러뜨릴 수 있음.

@케르닉 - 검호가 에반 구하는 사이 둘이 쓰러뜨림.

@허공말뚝 - 요즘엔 렙업이 엄청 쉬워졌죠.

@칼크래프트 - 정확히는 새로 바뀐 일러의 옷.

@신의약속 - 이 글에서도 몇몇 파퀘와 던전은 패스할거임.

@철륜성 - 지인이 있으면 한 번 가볼까~ 란 느낌으로 간다죠.

@Legendssj22 - 사이좋은 쪽이 이상해서 투닥거리게 했는데 루미 삘이 난다. 읭?

@소라루 - 저도 초딩때부터 했지만 해본적이 없음... 듣기만 했지.

@animaster - 구름 캐는 스테이지는 이제 없어졌다죠.

@WhiteTear - 팔찌 대신 깃털 머리장식(인게임엔 없음)을 줄듯.

@제시카블랙 - 쓰다보니 용량이 폭주했음.

@Racine - 전 솔플 위주라 파퀘를 탕윤밖에 안했다죠.

@평범한사람인데 - 뭐, 요즘 잘나가는 사업가~ 라는 식으로 까메오 출연 시킬까요?

@책벌레씨 - 현실보정을 받은 파퀘는 초고속 처리.

@넝기 - 힘내세요~

@여행자구름 - 그런데 팬텀이 도둑인건 사실임.(한때 비숍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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