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검호side.
인정할 수 없었다. 할 수 있을 것 같냐! 방법을, 어떻게든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발버둥쳤다. 분명 그놈은 그녀가 살아 있다고 했어! 그 꼴이 되었어도 살아는 있다고 말했으니, 어떻게든 원상복귀 시킬 수 있을 거야. 그래야 한다고……!
마침 내 손에는 오르비스의 봉인석이 들려 있었다. 본래 이런 용도로 쓰려고 미네르바에게 받아온게 아니지만, 상황이 이런데 안쓸 수가 없었다. 가방 한쪽에 박혀있던 프리드의 일기장을 꺼내 페이지가 뜯어질정도로 한참을 뒤지고 또 뒤져 봉인석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눈이 빠져라 찾아보았다.
─ 결과는 처참했다.
「봉인석을 사용해 아프리엔의 봉인을 풀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곧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포기했다. 내가 혼자서 그것을 사용할 수 있었던건 그가 멀쩡했을때, 그의 도움을 받았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니까.」
그랬다. 봉인석을 만든 프리드조차 혼자서 그걸 사용할 수 있었던 아프리엔이 멀쩡했던 시기뿐, 이후에는 그조차 불가능해졌다고 한탄하며 써내린 부분을 봤을때엔 일기장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 참고 대신 집어던졌다. 이후 다시 주웠지만.
원래 일반적인 봉인석의 사용법은 여러 사람이 어떤 한 가지에 간절히 염원하는 것이지만, 지금 판테온에 살고있는 그 누구도 파픈스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속이 뒤집히는 사실이지만 세피로트는 그녀가 그 지경이 된 건 수 년도 더 전의 일이라고 말했으며, 그녀와 함께 스펙터 군단과 싸운 사람들의 대다수가 언데드가 된 그녀에게 이미 죽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현재 살아남은 노바족들에게 있어 그녀는 그저 자신들의 친인척과 가족을 죽인 학살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물건이 있다는게 알려지면 그들은 그녀를 없애는데 봉인석을 써달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게 현재 상황이다.
"…… 미안하게 됬어. 형씨."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라 너.]
"그때 왜 거짓말을 한거지."
나는 아직도 부러진 팔다리에 부목을 대고 두툼하게 붕대를 감은 놈을 노려보았다.
내가 장대한 삽질에 시간을 쏟아붓는 동안, 놈은 - 침대에나 퍼져있을 것이지 - 노바족 전사들과 신관들을 설득해 나를 도울 특공대를 준비했다고 한다.
"말하고 싶어도 못 말한거야."
빨간 머플러 끝을 잡아 슬쩍 내린 놈이 여전히 목에 찍힌 차가운 색으로 빛나는 육각결정 무늬를 보여주었다.
"이걸 '누가' 찍었다고 생각했어 형씨?"
"……."
당연히 그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음을 사용하는게 그년뿐이었나?
"나도 그녀가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그냥 갑자기 이런걸 찍어버려서 말이지."
파내듯이 문양을 천천히 긁어내린 놈이 말을 이었다.
"디멘션 게이트가 대신전 안에 열렸던 날이었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녀가 와서는 이런 마법을 걸어버렸지. 자신에 관한건 당신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말이야."
"파픈…… 스타가?"
"아아. 당신에게 사실대로 말하는건 처음부터 불가능했단 말이지."
저 화법 생각할수록 화만 치밀어 올라왔다. 거짓말은 하지 않지만 단지 그것뿐인, 가장 중요한 사실을 쏙 빼놓고 착각하게 만드는 망할 화법은 그년이 태연하게 쓰는 거였다.
"카이저랑 엔젤릭버스터를 포함한 노바족 전사들은 당신의 전투에 방해가 안되도록 인근의 잡몹들을 처리할거야. 나도 그때까지 어떻게든 뼈를 붙일거고."
[마스터한테 떠넘기지말고 그냥 당신이 하는게 어때?]
"핑계로밖에 안들리겠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부상을 핑계로 댄게 고까워서 아스카한테 부탁해 힐링을 퍼부었음에도 그의 팔다리는 이상하게 낫지않았다. 오히려 심하게 악화되었다가 그가 어떤 스킬을 사용해서야 겨우 진정된 상태였다.
놈이 손가락으로 붕대를 감은 팔을 톡톡 두드리자 또다시 새빨간 모래 알갱이같은게 푸스스 올라왔다.
"시간내에 붙이는건 가능해도 전력은 못 낼거야. 이런걸 마구 쓰다니, 너무하잖아 형씨."
"그게 뭐냐."
"…… 됬어. 나도 잘못한거 맞으니까."
붉은 모래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화병으로 날아가자 병에 꽂혀있던 꽃들이 순식간에 갈색으로 말라비틀어졌다.
"얼마 않있으면 헬리시움은 우기(雨期)에 들어서. 그 이전에 끝을 봐야해."
물 마법사에게 비라는 어드밴티지를 주면 안된다고 놈은 덧붙였다.
언데드 군단과 그것을 지휘하는 그녀…… 는 평소엔 헬리시움에 대기하고 있다가 스펙터 군단이 판테온을 침공할때 포탈을 통해 대량으로 이동해 온다고 한다. 때문에 나와 아스카, 카이저와 엔젤릭버스터를 비롯한 특공대가 예전에 헬리시움에 세웠던 전초기지의 포탈을 써서 저쪽으로 넘어간다음 그녀…… 를 처치할 계획을 세웠다.
왜 굳이 헬리시움으로 넘어가야 하는지, 그냥 판테온에서 싸우면 안되냐고 물었을때 놈의 대답이─
'당신이랑 그녀가 싸우면 여파가 어느 정도일 것 같아? 가뜩이나 판테온은 계속된 습격때문에 너덜너덜한데 그거까지 뒤집어쓰면 망해.'
─ 였다. 확실히 숲 한복판에서 파도를 일으키는 그녀와 제네시스 난사를 즐겨하는 아스카가 부딪히면 확실히 도시가 날아가버릴지도 모르지.
하다못해 준비라도 좀 늦게하면 좋을텐데, 그런거 없이 내가 메이플 월드로 도망칠까 진지하게 망설이는 동안 초고속으로 특공대가 짜여졌다. 속절없이 휘둘리는 내 꼬락서니를 보다못한 아스카가 말했다.
[마스터. 정말로 그녀를 죽이러 갈거야? 그 일을 하고 싶어?]
"…… 그럴리가 없잖아."
[그럼 왜 거절하지 않았어? 아무리 저놈이라도, 노바족들이라도 마스터한테 뭐라고 할 권리따위 없다고! 정말 싫으면 그냥 거부하고 가면 되는데─]
"가면, 뭘 해?"
얼굴을 쓸어내린 손에 자괴감이 잔뜩 묻어나왔다.
"그녀가 저런 꼴이 됬는데, 그런 그녀에게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메이플 월드로 도망친다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까?"
무리다. 절대적으로 무리다.
해결방안이 보이지 않는데 문제에서 도망칠 수 없어. 거기서 눈을 돌릴 수도 없어.
며칠 뒤, 헬리시움으로 향하는 포탈이 열렸을때 나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채 나아가지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하지만 끝내 발을 내디뎌야 했다.
내 뒤에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
도착한 전초기지에는 과거 탈환전 이후 도망친 이후 지금까지 계속 비워뒀다는 놈의 말대로 인기척이라고는 없었지만, 제른 다르모어가 퍼뜨린 질병의 잔재가 있을지도 몰라 특공대는 전투적으로 기지내를 소독하고 청소했다. 그래도 나름 대우해준다고 나와 아스카는 아무 일도 안했지만 바깥에서는 엔젤릭버스터가 인근의 스펙터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있어 신경이 안쓰일 수 없었다. 뇌내에 울리는 삐걱거리는 소음에서 도망치고 싶기도 했고.
"랜드 크래시!!"
기합성이 묻힐만큼 묵직한 굉음이 울리며 내가 있는 곳까지 미미하게 흔들렸다. 이어서 분홍분홍한 검들이 고드름처럼 쏟아지고, 한 박자 뒤에 용의 포효 소리같은 것이 울리며 큰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마무리로 보라색 슈터에서 연달라 삼색 용을 쏘아내 스펙터와 함께 숲을 밀어버린 엔젤릭버스터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털썩, 망치 위에 걸터앉았다.
"하아아…… 어, 안녕하세요?"
"혼자 싸우고 있는건가."
"네? 네. 여기엔 판테온처럼 결계가 없어서 병사들이 바로 상대하기엔 스펙터가 좀 버거울테니까요. 헬리시움에 가기 전에 어느정도 정리해두게요."
"굳이 혼자할 필요 있나."
"성투사님은 몸 상태가 안좋으시고, 카이저는 당신을 도와야 하니까요."
"그 말이 아니라─"
"그리고 당신은 그 여자랑…… 싸워야 하잖아요."
목구멍에 뭔가가 올라와 콱 걸려버렸다. 소녀는 크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때문에 중요한 순간에 당신이 쓸 힘을 뺄 수 없잖아요?"
"…… 그렇, 지."
그 '중요한 순간'이 뭔지 소녀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서 입술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당신이 제발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약해서 그 여자 앞에서 5분도 채 버티지 못하거든요."
전혀 약해보이지 않는다만. 소녀는 반짝거리는 별가루를 날리며 싸우지만 그 결과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망치에 깔려 곤죽이 된 스펙터의 시체와 고드름 검에 난자당한 몬스터, 뼈와 살이 분리되거나 충격파에 전신이 찢겨나가 몹인지 스펙터인지 원형을 알 수도 없는 뭔가들의 시체가 헬리시움까지의 길에 쫙 펼쳐진 광경이 오늘 아침 식사를 도로에 쏟아버리게 만들어버릴만큼 호러였다.
"그녀에게…… 원한이라도 있나."
"네."
망설임없이 단호하게 대답하는 소녀의 모습에 폐에 돌이 차는듯한 갑갑함이 느껴졌다. 엔젤릭버스터는 플라스틱 인형같은 예쁜 색으로 굳어버린 눈으로 날 보았다.
"제 친구가 그녀에게 죽었어요."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가 진정되지 않아 손을 들어 가려야했다.
"벨데로스라고, 어릴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애가 기사단원이었거든요."
지지대 없이 자란 덩굴식물처럼 괴상하게 꼬여가는 뇌내의 잡음에 현기증이 핑 돌았다.
"그 애는 동쪽 성소의 성물을 지키는 담당이었는데, 그날 제가 오랜만에 놀러갔었어요. 그런데 하필 그날…… 항상 오던 스펙터가 아니라 그 여자가 와버렸죠."
연이어 닥친 정신나간 사실들에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아니, 생각하기도 싫었던 사실이 소녀의 입을 통해 튀어나와 고막을 두들겼다. 그녀와 같지만 우울한 빛의 푸른 눈이 뿌옇게 흐려지며 물이 맺혔다.
"저를, 저를 지키려다 벨데로스가 얼음이 되버렸는데……!"
"진정해라."
"제가 좀 더 일찍 성물을 만졌으면 벨데로스가 살았을거에요! 그랬으면 맞서싸우진 못해도 같이 살아서 도망갈 수는 있었을텐데 왜, 왜 나는─!"
절규하는 소녀의 모습에서 나는 결국 알아버렸다.
나에게 있어 그녀는 나를 위해 온갖 것들을 해준 고마운 사람, 그란디스에 와서도 노바족들을 위해 일하고, 제른 다르모어와의 싸움에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중 가장 나은 선택을 했으며, 종래엔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용당하고 있는 억울하기 짝에 없는 이에 불과하지만,
"결국 걔는 그 여자한테 밟혀서 산산조각 나버렸다고요……!"
눈앞의 소녀에게 있어 그녀는 그저 친구를 죽인 갈아마셔도 시원치않은 원수일 뿐이라는걸. 흐느끼는 엔젤릭버스터를 위로하지도 못하고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괜히 나와버렸다. 그냥 기지 안에 가만히 있었으면 나았을텐데.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부탁드려요."
그 여자를 없애주세요. 제 친구의 복수를 해줘요. 피맺힌 부탁에 나는 차마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못했다.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하지?
물 위에 떠다니는 부표처럼, 뒤에서 등을 떠미는 물결에 저항하지 못하고 계속 나아간 결과는 싫은 색으로 다가왔다.
"티어와 얘기하시던걸 봤습니다."
[넌 또 마스터한테 뭐라고 말하게?]
"…… 그녀를 너무 불쾌하게 보지 말아주십시오. 티어도 옛날엔 그분을 무척이나 동경했었습니다."
"동경……?"
"예. 그분은 멀쩡했을때엔 성투사님과 함께 숭배되다시피 했었으니까요. 여성이었고, 아름다웠고, 정말 강했죠."
투구를 벗은 카이저가 속이 쓰린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그래서 예전엔 다같이 공연에 가기도 했었습니다."
다같이. 아마 3명이서.
"티어는 아니라고 했지만 변신 모습도 그분의 영향을 없잖아 받은거고요."
아이돌이라는, 다른 사람들의 우상이라는 부분에서 닮았다고 카이저가 말했다.
"실례지만, 그분은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동료…… 은인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깊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소년에게 말하고 싶었다. 알면서 대체 왜.
"성투사님이 그렇게 되신 이후 그녀를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라 저희도 어쩔 수 없이…… 무척 괴로우시겠지만 부탁드립니다."
"그녀를, 처치하는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건가."
"예."
단호하게 떨어지는 대답에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무언가가 끊어졌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원래대로 돌아온다고 해도, 누구도 그녀를 예전처럼 바라보지 않을겁니다. 아니 못할겁니다."
잃은게 너무 많으니까요. 당연하고, 당연하고, 또 당연한 그 말에 무엇보다 비참한 기분이 되었다.
파픈스타. 당신이 목숨걸고 구해온 사람들이, 당신을 동경했던 사람들이 당신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바라지를 않아. 너무 화가 나는데 도저히 그들에게 따질 수가 없어. 친구를 잃어버린 애들에게 친구를 죽인 사람을 용서해라고 어떻게 말해?
한 사람의 슬픔이 여러 사람의 슬픔보다 얕다고 할 수 없듯이, 여러 사람이 흘리는 눈물을 한 사람때문에 외면할 수도 없다. 하지만…… 한쪽을 위로하기 위해선 다른 한쪽에게서 등을 돌려야 했다.
누구를?
***
아스카side.
어느때보다 상황이 최악이다. 연결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마스터의 감정이 불협화음을 넘어 끔찍한 소음 수준인걸 둘째치더라도 견인되다시피 끌려다니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하는 마스터 행동에 속이 터질 것 같다.
더 답답한건 마스터를 다그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이토록 한계에 몰려버린 마스터인데, 나마저 마스터를 몰아붙이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가버릴게 눈에 훤해서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아스카. 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주저앉아 벽에 기댄채로 눈가를 손으로 가린 마스터가 멍하니 물었다.
"노바족을 도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파픈스타를 죽여야 해."
[마스터.]
"어떻게든 그녀를 살리고 싶은데 방법은 없고. 거기다 난 그녀를 죽이고 싶지 않아. 그녀가 누군가에게 죽임당하는 것도 싫지만, 내가 그녀를 죽여야 하는 것은 가장 끔찍하다고……!"
마스터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2개뿐이었다. 노바족들을 위해 그녀를 죽이느냐, 아니면 그녀를 살려두고 방법을 찾아보느냐. 유감스럽게도 그녀를 살리면서 노바족도 도울 수 있는 이상적인 선택지는 없었다.
아, 1개가 더 있었다. 둘 다 무시하고 이 자리에서 도망치는거. 하지만 마스터가 그런 쓰레기같은 짓을 할 리가 아니, 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대답해줘 아스카."
[미안해 마스터.]
괴로워보이는 얼굴의 마스터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마스터가 생각하고 결정해야 해.]
과거, 그가 물었던 질문의 답을 나는 그대로 내뱉었다. 이 상황에서 마스터에게 가장 도움이 되지 않을 그 답을.
차라리 둘 중 하나에 등을 떠미는 쪽이 편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하는 말이라면 마스터는 쉽게 긍정할테니까.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 스스로 고뇌한 끝에 내린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휘둘려서 선택한 것의 끝이 좋을 리가 없다.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망할 흰머리 자식이 마구잡이로 견인하다시피 마스터를 끌고와서 생각할 시간이 부족했다. 아니, 어쩌면 이것마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한 노림수일지도 모른다.
"난……."
"헬리시움까지의 길이 열렸습니다. 가시죠."
타이밍 왜이렇게 거지같지? 망할 빨간 자식 확 박살내버릴까. 흉측한 색으로 녹아내리는 마스터의 감정에 속이 울렁거렸다.
노바족의 옛 수도 헬리시움의 앞에는 과거 파픈스타가 만들었다고 하는 거대 호수가 바다 못지않은 압도적인 푸른 물결을 뽐내고 있었다. 하필이면 장소도 뭣같아. 마스터한테 절대적으로 불리하잖아! 가뜩이나 헤쓱한 안색이던 마스터의 얼굴이 완전히 질려버렸다.
"지금은 썰물때니 호수에서 벗어난다고 바닷물을 끌어오진 못할겁니다."
그보다 천생 검사인 마스터를 물 마법사와 거대 호수 한복판에서 싸우게 한다는 니놈들 뇌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궁금하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너 나중에 꼭 나랑 면담하자.]
저 갑옷 반드시 박살내고만다 내가.
[마스터.]
"…… 응."
[싸우다 정말 싫으면, 더이상 견딜 수 없다 싶으면 나한테 말해.]
가장 슬픈건 마스터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상태가 되버린 그녀를 어떻게든 다시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곧바로 아무도 못 잡는 곳까지 도망쳐줄게.]
내 말에 마스터는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움켜쥐는 마스터의 손은 언제나 그랬듯이 세월을 이겨낸 바위처럼 단단해보였지만, 한 편으로는 힘이 다 빠져나가 금방이라도 부서져내릴 것 같은 형태만 남은 껍데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
검호side.
호수 위를 지나가는 내내 생각했다. 아스카가 마지막에 한 말이 악마의 유혹처럼 귓가에 웅웅 울렸고, 그런 충동이 갑자기 암세포처럼 기형적인 속도로 자라나버리기도 했다. 아스카는 그런 의도로 말한게 아니었겠지만 그랬다.
'만약 도망치면.'
어디 먼 곳으로 도망치면 편할까? 아마 그렇겠지. 이런걸 생각할 필요 없을테니까.
하지만 그건 적어도 도망친 그 순간에만 그럴 것이다. 판테온의 노바족들에게 등을 돌리고,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면 마음편하게 지낼만한 곳이 있을까? 몸이 편할 곳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과거 오르비스에서 군단장들의 공습을 막아내다 어쩔 수 없이 생기던 사망자들을 봤던 그때보다 수 십배, 수 백배는 더 비참해지겠지.
얼마나 노력해도, 어떻게 싸워도 결국 누군가가 죽는다면.
'난 정말 쓰레기구나.'
…… 그 숫자는 최소한으로 줄어야 한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꿈같은 얘기지만 프리드가 있었다면 뭔가 방법같은걸 짜냈을지도 모른다. 그는 마법으로 온갖 것들을 할 수 있었으니까. 초월자의 힘을 역이용해 봉인을 만들기도 했으니 분명 이런 상황에서도 어떤 묘안을 만들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프리드는 일찌감치 죽었고, 난 마법사가 아니다. 그녀가 원래대로 돌아올 방법은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도망칠 곳도 처음부터 없다.
'결국 이렇게 되버렸어.'
생명의 오버시어에게 부탁해 어떻게든 그녀와 잠시나마 얘기하게 해달라고 해봐야겠다.
제발 날 욕해줘요. 멱살잡고, 두들겨패고, 미친듯이 밟으며 저주해줘요.
이런 것 밖에 못하는 나라서 미안해요.
대신 어떻게든 약속은 지킬게요.
반드시.
폐가 터져라 함성을 내지르며, 정면에서 덮쳐오는 파도를 검으로 갈라 그 너머에 있는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 작품 후기 ==========
기말고사가 어제로 끝났습니다. 이제 겨울 방학 시작!
전투씬을 쓰려고 했는데 다음 화로 미뤄졌음. 호수를 통째로 쓰는 파픈스타와의 전투인만큼 표현이 힘들어서...
여태까지의 스토리가 검호가 정의를 휘두른 이야기였다면, 이 챕터에서는 반대로 정의에 휘둘리는 이야기.
@장웨인 - 애초에 죽은게 아니라 언데드의 형상으로 살아있는거라 리저렉션이 안먹힘. 부활 스킬자체가 게임적 허용이지 실제로는 불가능하기도 하고.
@Ascaron - 외양상 초안보다 더 비참해졌음.
@적월식 - 안그래도 생명의 오버시어가 방문 예정... 이지만 파픈 부활 가능성은 0입니다. 검호처럼 몸 설계도를 알면 모를까 아예 모르거든요.
@흑색궁극기 - 묘사에 상당히 공들였습니다.
@좀비라스 - 검호가 결정을 내렸지만, 글쎄요?
@ㅇㅇ군 - 진짜 이 글에 투표해주시는 분이 있네요... 감사합니다!
@나가군 - 파픈보다 비중있는 여캐는 없습니다.
@Sisre - 실시간으로 검호 멘탈은 더 부서지는중.
@박가현 - 둘 다 뛰지 못할텐데요 뭘.
@비탄의과학자 - 그래서 둘의 지분을 잠시 줬습니다.
@sadnesskiller - 그 작가님 개인적으로 존경스러워요.
@대어의예감 - 그분만큼은 못해요 하하!
@Rankes - 그냥 파픈이 중요 인물이니까 오랜만에 대문에 걸어두었는데요?
@네리의별하늘 - 그리고 전투 시작... 1주일 뒤에 봐요!
@Blake117 - 개인적으로 젠취가 더 좋습니다. 그쪽 축복 받으면 글을 더 빨리 쓸 수 있을텐데.
@가면광대 - 이번 챕터는 시리어스를 한 사발 들이켰으니까요.
@만월의마법사 - 쿠폰이 100장 날아와도 챕터 스토리는 안변합니다.
@아르코어 - 복귀 무리. 진짜로 무리입니다.
@마유즈미 - 챕터에서 검호에게 타격을 줄 진실은 2개입니다.
@레시코 - 아무리 검호라도 초월자는 무리.
@karuma - 결정을 내렸지만 본인 자괴감이 어마어마함.
@카르시디안 - 아마 검호 인생에서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겁니다.
@루엔시르온 - 그보다 생명의 오버시어가 찰지게 먹방을 찍길 기대하세요.
@오만의루시퍼 - 힘 없는데다 파픈 몸 설계도 몰라서 무리. 검호 복원이 가능했던건 구조를 알아서였습니다. 거기다 파픈 몸 구조랑 검호 몸 구조는 아예 다름.
@aeras - 출현 하기는 하겠지만 부활은 기대하지 마세요.
@qkzks135 - 전투씬 미뤄서 죄송합니다. 1주일쯤 뒤에 봐요~
@신월야 - 흠, 먹방 묘사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카한Kahan - 그 힘 일단 생오버 봉인 푸는데 거의 다 쓰였고, 찌꺼지나마 있던거 파픈이 생오버 찾는 기간동안 자기 목숨 연장하는데 다 썼음.
@하늘을보는바람 - 거절하겠습니다!
@mmo0522 - 음? 그분들 글이 뭐길래요?
@Alcamine - 하이랜더는 그냥 그랬다~ 라는 식으로 나오기만 할거임. 그냥 존재자체가 맥거핀.
@Fowl - 없는 사람 취급이군요.
@이년아 - 적어도 둘이 대립하는 이유는 봉인 해제의 수단때문입니다. 구체적인건 나중에 알려드리죠.
@루서스 - 그건 그거대로 비참해요!
@진달래X - 파픈이 그렇게 매력적인 여캐였나요? 특별한 모에속성같은건 딱히 준 기억이 없는데.
@뇌룡권황 - 못 넘어가고, 검호가 죽었다 깨어나도 못 가는 곳에 환생시킬겁니다.
@칼크래프트 - (달칵)닫으세요.
@클레리온 - 전 그저 스토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주연이 죽어도 상관없다 생각할 뿐이에요!
@류동지 - 애도. 이제 저는 전투씬을 상상하며 자겠습니다.
@트왈라 - 딱히 안귀여울텐데요?
@Monday - 10분 좀 넘게? 그렇게 오래는 안걸렸습니다.
@적현월 - 그보다 그 생오버가 파픈 원래 몸구조를 몰라서 힘이 있다 하더라도 복구도 못합니다.
@sonage - 아스카는 안죽여요. 아스카까지 죽이면 정말 돌이킬 수 없거든요.
@유성운 - 생오버가 부분적으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혐짤 수준의 먹방을 찍을 예정.
@크리잔 - 그 케어해줄 사람이 저 모양이 됬음.
@Sparda - 반전은 많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베이르타 - 요즘 파픈 주가가 참 많이 올라가네요ㅎㅎ
@Yoontlemin - 이제 파픈은 검호를 미친듯이 공격하겠지~
@리아카에린 - 부활보다 안락사가 필요할 지경.
@지나가는니트 - 그리고 모두에게 평등한 푸대접을 하는 생오버가 준비되어 있음.
@마서 - 예쁜 파픈 일러를 주웠는데 저작권땜에 표지로 못걸겠음.
@키하라스티카 - 물리적으로 못할 것 같아서 이 글은 연참 이벤트를 안한다죠.
@Eluines - 딥 다크으~? 그게 모에요오~? 무차린다는 그런거 몰라요오~
@kyh0408 - 거기다 상황자체가 굉장히 많이 몰려있음.
@신의약속 - 파/픈으로 할지 심장미인으로 할지 고민중.
@카즈사야 - 그런 장문의 말을 검호가 구사할 수 있을리 없잖아요. 검호는 이리저리 구른 경험상 싸우기 전에 수다떠는 만화에나 나오는 멍청한 짓 안합니다.
@라그실 - 지인에게 일찍히 받았지만 적절한때에 걸기위해 아낀 팬아트입니다!
@심온 - 이미 자비는 베풀었는데요? 만났잖아요?
@Ratios - 가슴 크기는 다르지만요.
@닝겐노히페리온 - 여기 버서커 한 분 추가!
@LostChildren - 앞서 환생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기억하신다면 그런 일 없다는걸 알겁니다. 유령은 매우매우 특수한 경우라는걸 기억해주세요.
@여행자구름 - 그리고 벨데로스도 죽었음.
@Legendssj22 - 히로인이 한 명 뿐이니까 신중하게 죽여야죠!
@멍믕멍믕멍믕지 -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님 닉넴 옮겨 쓰기 좀 힘드네요. 오타 날뻔.
@르틴 - 뭐, 충분히 이어졌네요. 좋아한다던가, 사랑한다던가, 포옹이나 키스같은게 한 번도 없었지만요!
@BlueDemon - 비숍의 부활은 어디까지나 게임적 허용 스킬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런거 무리죠.
@소라루 - 봉인석으로도 무리. 아니 검호가 혼자서 봉인석을 사용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흑접아 - 네크로모프와 좀비중 하나를 골라야 했는데 형체는 알아봐야 한다 생각해서 좀비로 고른게 이거임.
@크러운 - 그리고 제 기분은 High 해집니다!
@양갱어사 - 릴렉스~ 릴렉스~ 예쁘게 죽일게요.
@허공말뚝 - 봉인석 사용 못함. 하는 방법 모름.
@로리는사랑입니다 - 나름 방법을 찾아봤으나 실패했습니다.
@Buche - 버서커 또 한 분 추가! 그런 꿈만 가득한 전개는 거절하겠습니다!
@넝기 - 구르는 길에 뭔가 장애물이 장난아니게 많아보이지만 아무래도 좋죠.
@미리뉴아 - 누구한테 가시게요!
@ReFrante - 트립퍼인만큼 셋 중 하나에 가겠지만 문제는 시간대죠. 검호가 절대로 못 가는 시간대로 갈거임.
@노란우산s - 생명의 오버시어는 디멘션 게이트 안정될때를 기다리는중.
@적당주의 - 폰번호도 까먹었고~ 어쩐다냐 저 둘.
@건전한독자 - 언데드라는 비틀린 생명으로 쓰는거죠 뭐.
@쿠비엘 - 무리입니다.
@책벌레씨 - 어허이! 일어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