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118화 (118/208)

<--  --> (코멘란에 쓴 브금을 들으며 보세요)

side out.

하늘에서 떨어진 폭포를 그대로 두들겨맞고 땅을 나뒹군 검호는 한참 비틀거리다 겨우 일어났다.

차박, 고작 한 걸음을 내디뎠는데 그의 눈앞이 핑 돌았다. 몸과 정신 양쪽 다 지칠대로 지쳐 계속 눈을 뜨고 있는것조차 버거웠지만 그래도 느리지만 한 발짝 한 발짝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는 발밑의 그녀를 보았다. 망가진 인형처럼…… 아니, 망가진 인형 그 자체가 된 그녀가 부서진 얼음 장벽에 걸려 볼품없이 널브러져 있어 제대로 눕히려고 했지만 팔이 않움직이는걸 깨닫고 이를 악물었다. 일어날때부터 휘청거리던 무릎은 결국 꺾여 그는 땅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녀. 파픈스타. 오직 검호 그만을 위해 수많은걸 해주고, 그 대신 그란디스에 가고, 노바족들의 영웅이 되었다가 결국 초월자에게 이용당해 지켜온 사람들을 죽이게 된 가엾은 사람.

"…… 미안해."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말은 결국 하나였다.

"늦게 와서 아니, 내가 실수해서, 잠깐 그것도 아니고 당신을 구하지 못해서……."

사과할게 많았다.

정말, 너무 많은데 그 말의 끝은 하나였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난, 당신을 구하려고 노력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게 이런 것 밖에 없었─

달싹이던 입술을 다시 다물었다. 말을 할때마다 점점 쳐지던 고개는 결국 푹 숙여져 있었다. 가닥가닥 붙은 머리카락이 잔뜩 앞으로 쏟아져 그녀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쓸어넘기려다 현재의 상태를 깨닫고 그만둬야 했다.

"파픈스타."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렇게 되버렸지만, 나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았어. 죽이고 싶었을리가 없잖아. 내가 미쳤다고 당신을……!

하지만 그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생각으로 움직인 검이 그녀의 심장을 찔렀다. 결과가 모든걸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가 당장이라도 땅에 쳐박힐듯이 수그려졌다.

비가 계속 내려서인지, 젖은 머리카락이 덕지덕지 붙은 탓인지 눈앞이 온통 뿌얬다. 뭔 물이 볼을 타고 흘러도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의 뜨거움을 느끼기엔 그의 몸에 심어진 냉기가 지독했다.

그녀의 앞에 웅크린채 그는 한참을 울었다. 간혈적으로 들썩이는 어깨와 상처입은 짐승의 신음소리 사이에 미안하다는 말만이 반복되었다. 심장이 부서진건 그녀뿐만이 아닌듯 했다.

─ 하기에 그는 조금 늦게 이변을 알았다.

"후으……?"

푸른 빛이 눈앞에 마구 명멸했다. 푸르다, 고 부르지만 온갖 색이 뒤섞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의 푸른색의 빛이 그녀의 몸에 한가득 몰려오는 광경에 그는 울음을 멈추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건 분명 기적이었다. 기적이라는 말 외의 다른 표현이 불가능했다.

"파픈스타?"

새카맣게 썩어버린 그 몸이 다시 흰 살이 차오르는 일련의 과정이.

일찌감치 사라진 부위들이 언제 그랬냐는듯 말끔하게 복원되어가는게 기적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겠는가.

그 거대한 기적에 가슴속에서 벅차오르는 감정에 그는 그녀의 몸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몸이 되돌아온건 맞았지만 어디까지나 허리어림 위의 상반신만이었고, 팔도 한쪽만 되돌아왔을 뿐이다.

"살아있어?"

그것들을 보지 못한 그를 눈 삐었냐고 욕할수는 없었다. 눈앞에서 다 죽은 시체가 사람이 되었는데, 심지어 그 사람이 소중한 사람인데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면 그쪽이 이상한 것이다.

떨어지는 빗물이 그녀의 긴 속눈썹에 맺히는 것이, 작게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에 결국 그것이 떨어져 옆으로 흐르는 과정이 하나하나 그의 망막에 새겨졌다. 그는 곧장 그녀의 몸을 일으켜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폐품이 되버린 양 팔이 장애물이었다. 덜컥거리는 다리를 끙끙거리며 움직여 그녀의 머리를 무릎에 눕히는게 그의 한계였다.

이내 눈꺼풀이 열리며 그녀의 파란 눈과 마주쳤다. 조금 전에 보았던 그 빛보다 더 아름다워보이는 눈과.

"…… 검호."

작게 움직이는 입술이 만드는 단어에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느리게 뻗어진 새하얀-그러나 그 느낌은 일전의 그것과 완전히 다른 손이 뺨에 닿았다.

손의 온기는 병아리의 것보다 못했지만 분명 따뜻해서, 진짜로 심장이 뛰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서 앞이 잘 안보일정도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음에도 그는 웃어버렸다.

"고마워. 날 위해 와줘서."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입에 걸린 미소는 생기어린 입술과 같은 분홍색이었다.

"그리고 미안해."

아무것도 해두지 못해서. 이어진 말에 그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열심히, 정말 열심히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버렸어. 나 제대로 성공해서 보란듯이 당신한테 보여주고 싶었는데……."

하고싶은 말은 많았다. 세피로트에게 마법을 쓰면서까지 제 정보를 그에게 알려지는걸 막은 이유는 그저 다 끝낸 뒤에, 나중에 깜짝 놀래킬 생각으로 했던거였다는 것부터 시작해 그란디스에서 어떤 고생들을 했고, 어떻게 이겨냈고,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등을 말하고 싶었지만 정작 나오는 말은 없었다. 너무 많아서 정리가 되지 않았을뿐더러, 시간도 촉박했기에.

그 역시 듣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당장 그것들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파픈스타를 보며 위로라고 부르기도 어설픈 말을 해주었다.

"괜찮아. 당신도……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니까."

상처투성이로 전락한 두 사람에게 남은게 대체 뭔지 알 수 없었음에도, 무엇이 괜찮은건지 알 수 없음에도 그는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파픈스타는 다시금 미소를 그렸지만, 그것은 위태롭게 금이 간 것이었다. 비유가 아닌 보이는 그대로.

그때서야 검호는 무언가 이상함을 알았다. 파픈스타의 전신에 금이 가고 있었다!

"잠깐 파픈스타, 뭐가 어떻게 된……!"

"나랑 하나만 약속해줘 검호."

설명의 시간조차 부족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천천히 또박또박 귀에 박히도록 말했다.

"부탁이야."

파란색임에도 조용히, 그러나 무엇보다 뜨겁게 불타오르는 눈이 간절히 그를 보고 있었다.

"만약에, 만약에 당신이 시간의 오버시어를 깨우는데 성공한다면, 그래서 우리 모두 멀쩡히 지구로 돌아가면."

뺨에 닿은 손은 어느새 슬슬 올라가 그의 머리 뒤쪽을 감싸고 있었다.

"─ 날 만나러 와줘."

그녀는 그의 머리를 확 끌어당겼다. 그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닿을듯 말듯한 거리에서 그녀는 그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세 글자로 이루어진 여자의 것일 이름과 한국에 살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들어는 봤을 대학의 이름. 이건 대체……?

"내 이름이야."

"뭐?"

"나 그 대학교 2학년이야. 전화번호는 나도 잊어버려서 알려줄 수 없으니까, 꼭 직접 찾아와줘."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때서야 하나 둘 알 수 있었다. 그는 몰랐지만 파픈스타는 트립퍼가 된 이래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원래 이름을 알려준 것이었다.

"만약 찾아오면 같이 괜찮은 식당에서 식사하자. 몇 십만원이든, 몇 백만원이든 돈은 내가 낼게."

나 매 학기마다 장학금 받으니까 걱정마. 자신만만하게 말하는듯 했지만 목소리에는 물기가 잔뜩 스며들어 있었다.

"대신 당신은 나한테 이야기를 해줘. 당신이 어떤 활약을 해서 이 무지막지한 일을 기어코 성공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해주는거야. 밤새도록, 몇 날 몇 일이든 들어줄 수 있어. 그리고─"

쉼표없이 쏟아낸 말을 끊어낸 그녀가 토해내듯이 외쳤다.

"당신의 이름을 알려줘……! 검호가 아니라, 진짜 당신의 이름을 나한테 알려줘!"

내가 그런 것처럼. 간신히 말을 끝맺은 그녀는 머리를 끌어안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울고 있었다. 곧바로 그가 이름을 말하려고 할 때, 그녀의 손이 확 내려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나중에, 나중에 지구에서 만났을때야. 그때 말해줘."

난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손으로 눈물을 쓱쓱 닦아낸 뒤 힘겹게 미소짓는 그녀를 향해 그도 어쩔 수 없이 웃어보여야 했다. 두 팔로 그녀를 껴안아 마지막으로 온기를 느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사실에 통곡하고 싶었지만 그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약속할게."

그리고 덧붙였다.

"이번엔 절대로 늦지 않을거야."

마지막 말이 전해졌을지는 알 수 없었다.

새하얗게 빛나는 나비가 눈앞에서 춤추며 흩어지는 그 광경에 간신히 지었던 미소가 무너졌고, 그는 결국 오열했다.

아스카는 그런 그의 옆에 소리없이 내려왔다. 가슴속에서 꾸역꾸역 솟구치는 감정들을 억누르고, 한쪽 날개를 펼쳐 그의 몸 위로 떨어지는 비를 막았다.

조금이라도 온기가 식는 것이 늦기를.

========== 작품 후기 ==========

머릿속에선 뭔가 굉장히 애절한 장면인데 쓰고보니 양산형 로맨스가 되었다... 이상하네. 좋아한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키스도 포옹도 심지어 악수조차 없는데.

파픈이 살아났던 시간은 실제로는 5분정도 밖에 안됬음.

파픈을 상반신만 살린 기적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할겁니다. 이 글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푸른색'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두 알테니까요.

@네리의별하늘 - 파픈 하차완료.

@노란우산s - 그리고 히로인이 마지막 힐링을 시도했다!

@qkzks135 - 뭘 줍는건가 했는데 오타였군요. 안죽었어요!

@hakuya - 이분 매번 고퀄로 팬아트를 주셔서 받을때마다 입이 귀에 걸립니다.

@단틱스 - 검호 멘탈이 완전히 나갔다가... 후후.

@도후 - 아주 그냥 강판에다가 갈아버림.

@Eluines - 그리고 갑자기 장르가 변해버렸다!

@대어의예감 - 그런 여러분의 멘탈을 위해 파픈이 상반신만 잠깐 살아났습니다.

@비탄의과학자 - 5분 살아있었어요.

@나가군 - 생명의 오버시어가 부활시켜주지 않을거임.

@hka7111 - 부활 없음. 환생은 하겠지만 기억 못할거고, 검호는 그 시간대로 가지도 못할거임.

@wlgns414 - 회복될겁니다. 주인공이니까요.

@가면광대 - 객관적으로 보면 5분정도 살아났었지만 그 동안 한 일은...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로번 - 현실세계에서라도 만나게 해달라는 분이 많아서...

@ㅇㅇ군 - 겉도 속도 이쁜 파픈.

@카놀라유씨유 - 그래서 다음 외전은 생명의 오버시어 외전!

@아르코어 - 아스카보고 하세요.

@소라루 - 이거 전설이었습니까?

@마서 - 파픈은 힐링을 시전했다! 효과는 매우 굉장했다!

@봄빛결 - 그래서 희망을 조금 줬습니다.

@가쿄인 - 이때를 위한 표현이었음.

@적현월 - 솔직히 팔이 멀쩡히 있으면 어검술따위 쓸 필요가 없잖아요?

@유니레아 - 너무 심한것 같아 이런 힐링 타임을 생각해뒀었죠.

@유성운 - 네. 그 외에 이전 리코멘에서 곧잘 좀비같다고 했었죠. 사실 이런건 본편에서 떡밥뿌려야 하는데 히로인이 그렇게 된다는걸 대놓고 예고하면 반응이 굉장할 것 같아서 말이죠...

@로리는사랑입니다 - 그래서 5분 살아난뒤 진짜 죽음.

@mmo0522 - 살리진 못했지만 약속을 했음.

@상상력자 - 부활 스킬같은거 없다니까요.

@Sisre - 검호가 너무 험하게 굴러서 멘탈영정 팬아트를 받음. 그게 또 고퀄이라 기분 진짜 좋음.

@적월식 - 이번 챕터의 잠깐! 있는 휴식 타임.

@Buche - 이분 요 최근 화때마다 버서커가 되시네.

@홍색의환상향 - 구글에서 여신급 파픈 일러를 주워서 이번엔 그걸 걸까 했지만 대문 바꾼지 하루도 안됬는데 또 바꾸는건 팬앝주신 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유지.

@낭류 - 네. 이거 하나에만 집중해도 완결까지 갈 수 있을지 미지수라.

@칸루멘 - 게임상에서나 있지 현실에선 그런거 없음.

@여행자구름 - 제가 받은 팬아트는 모두 뜰에 있습니다.

@Ratios - 에, 앞쪽이 잘렸는데 어디의 개판말이죠?

@brontrs - 비숍 있었어도 가망 없었을텐데.

@더잉 - 그리고 이어지는 힐링. 파픈의 직업은 힐러라는걸 잊지 마세요!

@Legendssj2 - 그런 일 절대로 없을듯.

@허공말뚝 - 팬앝이 너무 좋아서 바꿨음.

@키하라스티카 - 근데 그거 없었어도 국화꽃에 파묻힌 시점에서 뭐.

@케르닉 - 상대가 무척 나빴다는 것도 있었고요.

@릿다르크 - 왜요? 좋은데.

@좌절거북이 - 그래서 오늘은 한 화 더 올림. 좀 짧지만.

@베이르타 - 독자들의 항의에 따라(사실 예정된 스토리였지만) 5분간 파픈을 살렸음.

@HAHA맨 - 좋~죠. 이 표지 마음에 듭니다.

@sjdjabqh - 정확히는 멘탈 영정사진.

@책벌레씨 - 이번화를 보고 살려주세요.

@Blake117 -  코모라에서 사이킥 한 방 갈겨버릴까(웃음)

@ReFrante - 당연히 혼자서 못 다룹니다. 만든 프리드도 아프리엔 있었을때 겨우 가능했는데 마법사도 아닌 검호가 가능할리가.

@kang5339 - 그런 일 없음.

@넝기 - 양 팔이 고물이 됬음.

@흑접아 -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말이죠.

@루서스 - 검호는 이미 사망 플래그 회수도 했으므로 남은건 구르는것 뿐.

@신월야 - 유언은 남기게 해줘야싶어서 남기게 해줬음.

@양갱어사 - 마지막에 할 말 다 하고 간 파픈쨩.

@지나가는니트 - 마음껏 우세요(웃음)

@오하사 - 죽은건 정작 파픈인데ㅎㅎ

@좀비라스 - 이번화로 왜 파픈이 히로인인지 아시겠죠?

@이년아 - 아뇨. 매우 좋았습니다.

@Yoontlemin - 차라리 예전이 낫지... 컨트롤 진짜 어우.

@KnightDream - 그리고 희망이 대폭발!

@철륜성 - 그리고 만날 가능성 0%의 시간대로.

@카르시디안 - 검호 주변의 주요 인물이 그 둘뿐이라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