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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호입니DA-119화 (119/208)

<-- 외전 - 기적의 이면 -->  side out.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황홀하리만큼 푸른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아이는 발치에 나뒹구는 남자, 세피로트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래. 뭐라고 지껄였냐?"

"그녀를, 살려줘……!"

"약이라도 했냐. 내가 왜."

한 움큼 피를 뱉어내며 흙투성이 얼굴을 든 세피로트는 아이에게 말했다.

"당신은 힘이 있잖아! 나나 그한테는 없는, 굉장한 힘이 있잖아……! 한 번 정도는, 딱 한 번정도는 써줄 수 있잖─ 커흑!!"

"말 참 쉽게 한다. 혀놀리는게 그리 쉽든?"

퍽, 콰직, 우득! 물장구치듯 툭툭 건드리는 아이의 발길질이라고도 하기 힘든 장난같은 행위에 세피로트는 처절하게 밟혔다. 특히 얼굴부분을.

"내가 아주 안도운거면 말을 안해. 겨우겨우 복구한 힘 박박 긁어다가 살려줬으면 됬지 뭘 또 살려달라고 니가 더럽게 매달리냐? 어?"

"제, 발……! 이런건, 이런건 너무, 하잖아……."

"지들이 못나고 무능해서 저 꼴 났는데 뭐가."

진흙탕을 나뒹구며 꿈틀거리던 세피로트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아이의 발을 붙잡았다. 확 인상을 쓰며 그것을 다시 밟으려던 아이에게 세리로트가 애원했다.

"사람, 들을, 당신들을, 위해서 노력했잖아…… 그렇게 뼈빠지게…… 죽도록, 노력했는데. 이런, 식으로……! 이런 식으로 끝나는건…… 너무, 잔인하다고!"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폐를 찔렀는지 쌕쌕 바람빠지는듯한 소리를 내며 세피로트는 간신히 말을 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오……! '생명'의…… 오버시어잖아! 딱 한 번만, 한 번, 만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손 써주는게, 뭐가, 어렵다고……!"

그 말에 와그작 얼굴을 구긴 아이는 그대로 세피로트의 손을 쳐내 으직! 밟았다. 직후 헛숨을 들이키는 세피로트의 진흙범벅의 머리카락을 잡아채 그대로 머리를 들었다.

"말 잘했다. 손 써주는게 뭐 어렵냐고? 나한테 있어서 니들은 손 써주는건 고사하고 만지려고 손을 내밀기만 해도 손톱에 스쳐 뒈지는 버러지같은, 아니 버러지보다 못한 놈들이야. 그런데 뭘 해줘?"

머리를 진흙바닥에 다시 쳐박은 아이는 크게 콧웃음을 치며 이어 말했다.

"흥! 내가 니놈들에게 주는건 딱 두 개 뿐이야. 푸대접이랑 죽음. 그것 외엔 제 분수에 맞지않아 터져 죽는 것들이."

작은 손짓에 머리카락과 옷에 묻은 물기를 단숨에 털어낸 아이는 제 조막만한 손으로 빈대떡이 되도록 두들겨팬 제른 다르모어의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며 막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세피로트가 아이의 옷자락을 붙잡지만 않았다면.

"야…… 작작해라."

"흐으, 번, 만. 제에발……!"

땋아내려진 푸른 머리카락이 풀어지며 허공에 파도처럼, 불꽃처럼 넘실거렸다.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밖에 안보이는 차가운 색채의 눈이 예리하게 날이 서며 세피로트를 난자했고, 온몸에 가해지는 미증유의 힘에 세피로트는 꺽꺽거렸다. 아이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듯 쯧! 크게 혀를 차며 홱 몸을 돌렸다.

"…… 뭐 좋아. 니놈 꼴이 꽤 웃겼으니 이번만은 손 써주지."

"저어, 마로……?"

"하지만 알아둬라."

아이는 손을 뻗었다.

"저 여자는 옛저녁에 죽었지만 내가 만든 고리를 카피한 것을 통해 썩은내 나는 반쪽짜리 삶을 유지시키고 있었고."

머리색보다 옅은, 그렇기에 보다 냉혹한 빛을 띄는 눈이 그녀를 직시했다.

"그렇기에 저 몸은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만큼 손상될대로 손상된데다, 만약 내 힘이 정상이었어도 설계도를 모르므로 애초에 복구 불가라는 사실을."

간신히 빛났던 세피로트의 청록색 눈이 얼굴과 함께 일그러질때.

"그러므로 내가 줄 수 있는건 오직 편안한 죽음뿐이라는걸 말이다."

아이의 손이 내쳐졌다.

***

세 사람 아니 두 사람의 공간에서 눈을 뗀 아이는 닭 쫓던 개가 된 세피로트를 보았다.

"질투하냐?"

"……."

세피로트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그의 입이 작게 웅얼거렸다.

"당연하잖아……."

"꼴값떨고 있네. 질투라는건 니가 가진걸 남한테 뺏겼을때 드는 감정이다. 저 여자는 니것이었던 적 없어."

아이는 세피로트를 비웃으며 말했다.

"그건 '시기'지."

감정을 학습하는 존재인 오버시어는, 특성상 타인과 공감이란 것은 거의 못하지만 그것을 분석하기는 잘 했다.

"니가 없는걸 남이 가졌을때 드는 감정 말이다."

"…… 그렇네."

"만약 저 여자가 온전히 살아났어도 니놈을 볼 일은 없었을거다. 아, 감사인사는 했을지도 모르지."

니가 이 지랄 떨면서 나한테 빌었다는걸 알게 된다면 말이다. 아이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그녀는…… 어떻게 됬지."

"벌써 환생했어."

"언제? 어디로?"

"알아봤자 의미없다. 프리드라는 놈이 빛의 초월자를 봉인하면서 만든 시공의 뒤틀림 이전의 시간대로 갔으니까."

아이는 다시 땋아진 푸른 머리카락을 머플러처럼 목에 돌돌 감으며 이어 말했다.

"그 뒤틀림은 시간의 오버시어, 이 세계의 시간선 위에 꽂힌 그 여자의 신물(神物) 불변의 정(釘:말뚝)의 힘을 일부 빌려서 만들어진거다. 용하기도 하지. 인간따위가 시간 마법을 그 정도로 깊이 익히다니."

입만 열면 나오는게 혹평과 욕설뿐인 아이의 성격상 굉장한 칭찬이었다.

"갈 수 있는 방법은─"

"당연히 없다. 애초에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뒤틀림이고. 나도 못 가는데 니들이 퍽이나 가능하겠냐?"

오버시어가 불가능하다 말했다. 그 말에 세피로트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포기했다.

"그녀는 행복해?"

"글쎄……."

아이는 세피로트에게서 눈을 돌리며 다시 두 사람의 공간을 보았다. 거참 지겹게도 오래 우네.

"대충 그래보여 뭐."

"다행이다."

"어쨌든 니놈, 이제 할 말 더 없지?"

"응."

깊이 침체되긴 했지만 아까보다는 한결 나아보이는 세피로트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저 팔병신한테 복수라도 할거냐?"

"…… 아니."

"시기하고 있잖아. 아무 감정 없을리가 없는데."

"당신 말대로 그렇긴 한데…… 이제 진짜 포기해야지."

세피로트는 웅크려서 한참 울고 있는 검호를 보고는 얼음결정 무늬가 찍힌 목에 손을 댔다.

"처음부터 가망이 없었던거야. 포기할래."

그는 파픈스타에게 고백했던때를 생각했다. 부드러운 거절 그리고 그와 함께 한 말.

'선약이 있어서 안돼.'

그래. 선약이 있구나. 아주 중요한 약속이. 그는 머플러를 내려 살점을 뜯어내듯 무늬를 움켜쥐어 없애버리며 여전히 비가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잘 했다. 만약 포기안하고 되먹지도 않는 시기심 불태우며 날뛰었으면 내가 손보려고 했는데."

"어떻게?"

"그 여자한테 거름으로 던져줬겠지."

"……."

아이는 어느새 반쯤 잊혀진 제른 다르모어를 들어올렸다.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번거로웠는지. 망할 디멘션 게이트."

아이의 몸에 얼음비늘이 돋아났다. 두 손은 갑각류의 껍질같은 것에 뒤덮였고, 작은 얼굴의 턱은 여러갈래로 쩍 나뉘어지며 톱날과 송곳같은 이빨이 빼곡히 드러났다.

"잘 먹겠습니다아─."

형언하기 힘은 흉악한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울렸다. 톱날같은 이빨이 살을 가르고, 파픈스타가 만들었던 얼음 촉수와 비슷한 -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위협적으로 생긴 절지동물의 다리가 뼈를 마디마디 잘게 부수었으며, 알 수 없는 힘에 피 한 방울조차 땅에 떨어지지 않고 남김없이 빨아마시는 그 과정을 세피로트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마지막으로 입가에 묻은 살 한 점을 아이는 손가락으로 떼어내 질겅 씹어삼켰다.

"왜 이놈은 다른 자식 힘을 뺏고 지랄인지. 불순물때문에 소화하는데 시간 걸리겠네."

"힘이 늘어서 좋은거 아닌가?"

"내꺼 아닌걸 먹어봤자 소화불량밖에 더 걸리겠냐. 나중에 뱉어야돼."

"그런가…… 아무튼 고마워."

그 자식을 천천히 고통스럽게, 잔인하게 죽여줘서. 아이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난 이제 간다."

"잠깐만."

"…… 또 뭐냐."

"당신에게 해줄 말이 있어."

"아깐 없다며? 귀찮은 부탁같은거 하면 진짜 거름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런거 아니야! 굉장히 중요한거라고! 이 세계에 관한 일이란 말이야!"

도끼눈을 뜨며 매섭게 노려보는 아이에게, 세피로트는 침을 몇 번 삼킨다음 천천히 말을 했다.

문장이 이어질수록 아이의 서늘한 눈이 경악과 분노로 차는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크리스마스 기념 제른 다르모어 먹방.

세피로트가 빌어서 살려준게 아닌가... 라고 단순하게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아닙니다. 생오버는 이번 일에서 검호가 파픈만큼 큰 상처를 입었다는걸 한 번에 간파했지만, 세피로트는 자기가 좋아하는 파픈만 살려달라고 빌어서 그에 대해 꽤 빡쳤습니다. 그래서 엿먹으란 심보로 파픈을 잠깐 살려줘서 둘이 염장질하는걸 보여준겁니다.

챕터 아직 안끝났어요! 그리고 외전이므로 리코멘은 안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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