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환의 신호탄 --> 에반side.
스승님이 어딘가로 가신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렀다. 사실 2년 정도밖에 안지났지만, 농장에서 지내는 동안엔 전혀 겪어보지 못한 여러가지 일들을 겪어서 체감상 시간이 꽤 흐른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스승님이 어딘가로 가신 후 어느 분에게 갈까 오래 고민했었고, 리엔 섬의 아란 누나에게 가기로 결정했다. 팬텀 씨는 여러모로 바쁘신데다 다시 오르비스로 갈 표값도 없고, 비행선을 탔다가 또 그 몬스터가 나올지도 모르니 위험할 것 같았으니까. 데몬 씨도 생각해보긴 했는데…….
"에델슈타인으로 가겠다고. 어째서냐."
"만날 사람이 있어서─."
"누구를 말하는거냐."
"그게……."
데몬 씨가 사신다는 에델슈타인으로 가는 정거장에는 승무원 대신 온통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출입을 제한해서 갈 수 없었다. 외부인 출입 금지라나.
그렇게 어찌어찌 아란 누나한테 간 나와 미르는 리린의 눈총을 잔뜩 맞았지만, 스승님이 주신 편지를 전해주니 이를 갈면서 머무는걸 허락해주었다. 편지엔 뭐라고 쓰여있었을까?
리린과 아란 누나는 블랙윙이라는 조직을 추적, 조사하고 있어서 나도 그 일을 거들게 되었는데, 하면서 알게된건 이 블랙윙이라는 조직이 바로 데몬 씨가 살고있는 에델슈타인을 멋대로 점령해 주민들을 착취하고 있는 악의 무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에반, 당신은 그 조직에 직접 잠입해 정보를 가져오세요."
"내, 내가?"
"좀 위험할 것 같은데?"
리린의 말에 아란 누나가 조금 인상을 썼다.
"적진에 직접 가는 것이니 당연히 위험하겠지만,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선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에요. 트루 아저씨도 지금 이상의 자세한 정보는 구하지 못한다고 했고요."
"다른 마법사를 보내는건……."
"리엔의 마법사는 특징이 분명해서 곤란해요. 대부분 리엔 섬에서만 살아온데다, 마법사이기까지 하니 세상물정 모르는 정도가 심하거든요."
가뜩이나 폐쇄적인 리엔 섬인데, 성향 자체가 방구석 폐인인 마법사라는 직종과 합쳐지면 그 시너지 효과는 안좋은 의미로 굉장하다.
"내가 가는건?"
"아란은 거기 완전 찍혔잖아요."
에델슈타인 외에 세워진 블랙윙의 몇몇 거점들을 치러가는 과정에서 아란 누나는 완전히 얼굴이 까발려져 저쪽에서 먼저 피해다니는게 현재 상황이다.
"반면 에반은 얼굴도 거의 알려져있지 않고, 마법사치고는 꽤 개방적이기도 하며, 리엔 섬 출신처럼 생기지도 않았잖아요?"
완전 추운 섬에 사는 리엔 섬 주민은 기본적으로 피부가 눈처럼 희다. 가끔 아란 누나처럼 까무잡잡한 사람도 보이지만 아무튼 헤네시스 근방 출신인 나와 리린과의 피부색을 비롯한 전체적인 이목구비가 다른건 당연할수 밖에…… 랄까 확정되가고 있어?!
"그, 그런데 미르는? 나 혼자 갈 수는 없잖아? 미르를 어떻게 숨길 수도 없고."
[나 없으면 마스터 엄청 위험해질텐데.]
리엔 섬에서 지내는동안 마법 실력도 꽤 늘어 스승님과 헤어진 이후 미르의 크기는 상당히 커졌다. 이제는 나를 태우고 어느정도 나는게 가능해질만큼.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리린은 책상 서랍에서 손바닥만한 크기의 금색 뱃지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착용자의 크기를 조절하고 투명화할 수 있는 마법이 걸려있어요. 미르에게는 그걸 다세요."
"그런게 있으면 그냥 그걸 써서 잠입하는게 더 낫지 않아?"
"기능이 2개나 들어가서 마력 연비가 안좋거든요. 인간은 오래 못 써요."
마력이 차고 넘치는 드래곤이면 모를까. 이러다 정말 빼도박도 못하게 가게 생겼다.
"하지, 만 에델슈타인에 어떻게 가? 거기 비행선이랑 정거장은 블랙윙이 장악해서 외부인은 물론 현지인도 오가기 힘들잖아."
"그것 역시 걱정할 필요 없어요."
좀 걱정해줘. 왜 쟤는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 옆에서 미르가 '마스터. 리린한테 뭐 잘못했어?'라고 귓속말했는데, 짚이는게 좀…… 많았다. 여기서 이런저런 일을 돕긴 했지만 미숙하다보니 실수도 많이 해서.
따지고보면 아란 누나만 얼굴이 알려진게 내가 실수한걸 아란 누나가 수습하느라 그래서였지.
"블랙윙이 통제하는건 민간인들이 타는 비행선. 조직원들이 이용하는 비행선은 따로 준비되어 있어요. 거기에 타면 되요."
쿵! 책상에 큰 트렁크가 올려졌다.
"그걸 입고 조직원으로 변장해서 에델슈타인에 가세요. 거기서 정보들을 빼오는거에요."
…… 그렇게 나는 더이상 항변못하고 꼼짝없이 에델슈타인으로 가게 되었다.
며칠 뒤, 달빛이 거의 없는 밤에만 뜨는 까만 비행선의 짐칸에 숨어든 나는 겨우겨우 에델슈타인에 가게 되었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 자면 모르는 새에 들킬지도 모르니까 - 제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착륙 직후 누가 볼새라 후다닥 도망쳐 외진 곳으로 가 모자를 푹 눌러썼다.
이 제복 진짜 불편하네. 디자인은 그럭저럭 멋진데. 어깨 위로 팔을 올리는게 좀 뻣뻣하다. 엄청 작아져 머리 위로 올라가 모자로 몸을 숨긴 미르가 물었다.
[마스터. 이제 어디로 갈거야?]
"블랙윙들의 본거지를 찾아 봐야지."
건물 사이에서 빠져나와 겨우 그 정경을 눈에 담은 에델슈타인은, 헤네시스나 리엔 섬과는 다른 의미로 발전되어 있었지만 어딘가 황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런건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웃고있지 않아. 늘 미소가 끊이지 않는 헤네시스,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해 추위조차 잊은듯한 리엔과는 달리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있어 건물들의 멋짐과는 별개로 삭막하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나는 최대한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부츠가 어색해 굽소리가 어쩔 수 없이 크게 났지만 온몸의 털이 곤두설만큼 신경써서 주위를 둘러보며 애써 발을 움직여 거리를 살폈고, 조금 고개를 돌릴때마다 에델슈타인의 주민들이라 생각되는 이들에게서 쏘아지는 살갛을 찌르는 눈빛들을 받아야 했다.
[블랙윙에 대한 감정이 엄청 안좋은가봐.]
"당연히 그렇겠지."
이러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돌같은걸 맞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 괜히 지금 입었나. 그런데 원래의 로브같은걸 입었으면 외부인으로 보여져서 되려 블랙윙 조직원에게 걸렸겠지. 듣자하니 시티즌의 통제가 심하다고 했다.
그나저나 블랙윙의 본거지는 어디에 있지? 일단 이렇게 시민들의 적대감 충만한 마을 한복판에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랬다간 일찌감치 건물채로 테러당했을테니까.
"이봐. 거기 너."
일단 에델슈타인의 지도부터 얻어야 할 것 같은데…… 조직원들 몇 명의 뒤를 밟아볼까?
[마스터. 뒤에서 누가 마스터를 부르고 있어!]
"뭐?"
"그래 너말이다."
삐걱삐걱 목을 돌리니 나와 같이 블랙윙 제복을 입은 - 그러나 진짜 조직원일게 분명한 - 모자아래로 나온 금발이 눈에 띄는 남자가 있었다. 얼굴을 보고싶었지만 나처럼 모자를 눌러써서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처음보는 얼굴인데, 어디서 왔지?"
"바, 방금 막 빅토리아 아일랜드에서 돌아왔습니다."
"…… 벌써 그렇게 됬나. 따라와라."
가야하나? 눈치챈건 아니겠지? 격렬하게 고민하는동안 남자는 이미 저만치까지 걸어가있었고, 일단 블랙윙의 본거지가 어딘지 알아야 했기에 당장은 따라가기로 했다.
[스태프 준비하고 있어 마스터.]
"왜?"
[강한 마력이 느껴져. 저 남자, 상당한 실력자야.]
미르가 이렇게 말할정도면 진짜 강한 사람이라고 봐도 좋다. 위험한데…….
"혼자서 돌아다니다니, 정신을 어디다 빼놓고 다니는거냐."
"죄송합니다."
"여기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리를 적대시하고 있어서 무조건 2인 이상 모여서 움직이라고 듣지 못했나?"
전혀 못 들었어! 리린은 그런 말 안했다고! 여기 블랙윙 취급이 굉장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놈들에게 그런 취급을 할만큼 여기 사람들이 그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재차 알았다.
"빅토리아 아일랜드에서 막 왔다고 했지? 요즘 거기 어떻지?"
"별로…… 특별히 이상한건 없어요."
"내가 듣기로는 좀 시끄럽다고 했는데 말이야. 엘프가 나타났다느니, 영웅이 어쩌니 하면서 난리던데……."
"그랬, 죠. 하지만 그렇게 위험하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만."
"리엔 섬이 들고 일어날 기미가 보이는데?"
아 망할. 유도심문이었나.
그와 그를 뒤따르던 나는 어느새 건물들의 틈사이에 만들어진 어두운 골목길에 들어서고 있었다.
"블랙윙이 어떻게 에델슈타인을 관리하는지 알아?"
"…… 저는 말단이라 여기에 오는건 처음이에요."
"도시는 물론 곳곳에 CCTV를 달아서 주민들을 감시하는 거지. 단순하지만 확실하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감시카메라로 추정되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그걸로 '불온한 행동'을 하는 주민이 포착되는 즉시 현장에 있는 조직원들이 나서서 그들을 제압하는거야.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다소 물리적인 수단'이 사용되어도 오케이고. 이후 그 사람에겐 '약간의 벌금'이 부과되지."
내 상상이상으로 블랙윙이라는 조직은…… 쓰레기였다.
"벌금을 지불하지 못하면 '소소한 체벌'이 따르게 되는데, 뭐 죽을정도는 아니야."
"…… 저에게 그런 말들을 해주는 이유가 뭐죠."
"좀 알아두라는 뜻이지."
딱! 굽소리를 크게 내며 남자는 걸음을 멈췄다.
"정말이지, 변장을 할거면 똑바로 하란 말이야."
[마스터!]
"알아!"
불행인지 다행인지 주변에 다른 사람은 안보였다. 나는 즉시 숨겨둔 스태프를 꺼내며 빛나는 가시넝쿨 형태의 포박 마법을 남자에게 날렸─ 지만 남자 역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스태프를 휘둘러 넝쿨을 종이처럼 찢었다.
"꽤 빠른데?"
[여기도 있다고!]
원래 크기로 돌아온 미르가 크게 발을 굴러 땅을 갈랐다. 남자는 이크크, 소리를 내며 건물 벽을 박차 허공에 떠올랐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여기저기에 자라나있던 잡초들과 묻혀있던 이름모를 씨앗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자라나며 앞서 찢겨나간 포박 마법의 마력 잔해를 흡수, 그 자체로 살아있는 포박 마법이 되어 붕 떠있던 남자를 붙잡았다.
"휘유~! 한 방 먹었군."
"당신들의 본거지가 어디있는지 순순히 말하세요. 그러면 살려드릴게요."
"살려준다고? 죽일 수 없는게 아니라?"
미간에 골이 파였다.
"이렇게 요란하게 마법을 썼으면서 처리를 안하겠다니…… 무책임한건지 자신감이 넘치는건지."
[입다물어.]
"거기다 마법만 늘었지 보는 눈은 여전히 영 없구나?"
"뭐라고요?"
"이런─"
붙잡힌 남자가 검게 녹아내렸다. 속았다!
"─말이지."
목 뒷덜미에 차가운 금속 끝이 닿았다. 검은 아닐테지만, 그 오싹한 느낌에 절로 소름이 돋았다.
[마스터한테서 손 떼지 못해!]
"쟤도 꽤 많이 컸네. 처음 봤을땐 너만하더니."
아프리엔만큼은 아니지만. 뒤에 붙여진 말에 나는 그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 당신 누구에요?"
어째 나와 미르를 잘 아는듯한 투였다. 거기다 아프리엔이라면 분명─ 아니아니 잠깐만 생각해보니까 이 목소리 어디서 들어본 적 있어?! 특유의 능글맞으면서 속을 알기 힘든……? 뒷덜미를 누르는 지팡이를 신경쓰지 않고 곧장 몸을 돌리자 빛나는 카드들이 휘날리고 있는게 보였다.
카드의 소용돌이가 사라진 곳에는 검은 제복이 아닌 화려한 장신구들이 달린 흰 제복을 입은 남자가 자신만만한 빛을 띈 보라색 눈을 휘며 씩 웃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에반."
"팬텀 씨!"
보석이 박힌 케인을 카드로 바꾼 그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
팬텀 씨는 2년 전 미네르바 여신 구출 이후부터 쭉 메이플 월드의 정보를 모아왔다고 한다. 그러다 어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영웅들의 정보가 대부분 소실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 그때 여신님이 했던 말이 걸렸다고 한다 - 그게 살아남은 군단장중 누군가의 소행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군단장이라면……?"
"짚이는 놈은 둘 정도. 어느쪽이든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했어. 둘 다 교활하기 짝에 없으니까."
일정 거리의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는 마법을 쓴 그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서 크리스틴에게 부탁해 블랙윙 제복과 모자를 구해서 여기까지 왔다만, 영 실적이 없는 상태지."
[어째서?]
"마을의 감시자들은 말단중의 말단, 돈 받고 일하는 고용인들이나 다름없어. 충성심은 고사하고 블랙윙이라는 간판을 이용하려는 놈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거든."
"그럼 어떻게 하실거죠?"
"직접 본거지로 가봐야지. 말단이라도 들어갈 수는 있으니까."
[본거지가 어디있는지 알아?]
"물론."
날카롭게 벼려진 서슬푸른 빛이 보라색 눈에 번뜩였다.
"블랙윙이 에델슈타인에 쳐들어왔을때 가장 먼저 점령한 곳, 레벤 광산이야."
"레벤 광산…… 말이죠."
"놈들이 하필 광산을 점령한 이유는 아직 오르겠지만, 그들의 우두머리가 거기 있다고 조직원에게 들었거든. 확인해봐야 해."
꽤 걸어 마을에서 나온 우리는 발전된 도시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깎아지른 계곡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에반. 넌 어째서 여기 오게 된거야?"
"저는 리린이 시켜서…… 블랙윙의 목적이나 간부들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왔어요."
리린이 시켰다는 말을 했을때 팬텀 씨의 얼굴이 다소 한심한 것을 바라보듯이 변해 상처받았다.
"블랙윙의 목적과 간부들이라.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좀 알고 있지."
"정말요?"
"마을의 감시자 총괄 담당인 바반이란 놈이 승진의 비법이라고 열심히 떠들어댔거든."
황량한 계곡 사이의 길은 그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일단 비서 르티에. 다른 간부들과는 달리 대체로 본거지내에 있는 간부야."
[이름으로 봐서 여자인것 같아.]
"다른 간부들은 또 누가 있죠?"
"글쎄…… 다른 간부는 몰라."
나와 미르는 침묵했다. 아는 사람이 한 명 뿐입니까. 팬텀 씨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별 수 없다고. 다른 간부들은 메이플 월드 곳곳에 가있는 상태고, 이름보다는 코드네임 같은 걸로 불리고 있어서 본명은 몰라."
[코드네임?]
"별명같은걸 말하는거야."
"'신사', '인형사', '거인', '변신술사', '마녀'. 들은 것만 이정도고, 실제로는 몇 명이 더 있을지 몰라."
팬텀 씨가 말한 이들중에 몇 명은 알 것 같았다. 특히 인형사.
'너너, 너 두고봐!! 다음에 만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아!'
나만한 또래의 블랙윙 멤버가 있다는걸 알고 엄청 놀랐었지…… 결국 그 애는 아란 누나한테 호되게 맞고 울다가 숨겨두었던 귀환서를 써서 도망쳤다.
걔가 간부라니. 블랙윙이라는 조직 은근히 개판일지도.
어느새 계곡이 끝났다. 여기저기 잡초가 늘어진 평지에, 광산으로 향하는 입구만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표정 관리해. 모자 푹 쓰고."
"네."
우리는 입구에 서있는 제복입은 거대 토끼에게 간단한 신원확인 후 광산 안으로 들어갔다.
***
???side.
허리가 아프다. 앉은채로 자서 그런가. 책상에 놓인 컵을 들어 남아있던 물을 원샷한 이후 주위를 대충 둘러보았다. 당연하지만 지하라 햇빛도 뭣도 없어서 시간을 알 도리가 없었으며, 시계는 어제 약이 다 되서 멈췄다는게 막 기억났다.
"…… 몇 시지."
[10시 30분이에요. 한참 낮이죠.]
"너한테 안물어봤다."
[기껏 대답해줬는데 쌀쌀맞네요.]
"니놈에게 고운 말이 나올 것 같나."
눈앞에 보이는 헛것에 사람을 부를까 했다만, 저거에 대해 떠드는것 자체가 바보짓이라 일찌감치 포기한지 오래였다.
꽃송이처럼 곱상하기 짝에 없는 외모의 미소년은 어지간한 소녀 쌈싸먹을 미소를 지으며 날 보았다.
[하긴, 떨어질대로 떨어진 당신이 할 말따윈 없겠죠.]
"닥쳐."
겔리메르한테 제네로이드 연구나 더 하라고 해볼까. 그러면 좀 조용해질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연기처럼 떠다니는 소년이 말했다.
[지금 당신 꼴을 당신의 동료들이 보면 대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그만 좀 쫑알거려."
[긍지를 잃은 당신이 여태까지 한 일들을 부정하고 있다는걸 알면…… 하하! 기대되네요!]
반투명한 소년의 형상이 흩어졌다.
직후 벽에 걸린 수화기가 울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때문에 조금 늦게 들어 귀에 갖다댔는데, 직후 앵앵거리는 하이톤의 소녀의 목소리가 화살처럼 고막에 꽂혀들었다. 언제나와 같은 재촉과 폄하에 몇 번 예예거리다 겨우 수화기를 놓은 나는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제복을 대충 입고 문밖으로 나섰다.
저걸 빨리 몰아내든가 해야지. 안그러면 내가 못 견딜 것 같아.
"어머, 일어나셨어요?"
"르티에."
"여기 현황 보고서에요."
나오자마자 이걸 받다니. 안볼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숫자놀음을 확실하게 했는지 오차가 아예 없었다.
"오르카님이 빨리 일을 하라고 하셨는데, 언제 가실건가요?"
"3일 안에."
"몇 명 준비해둘까요?"
"10명."
"알겠습니다."
르티에는 우아하게 몸을 돌리며 제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는 계단을 통해 지하 깊숙히 내려갔다. 날 볼때마다 허리를 숙히는 조직원들을 지나쳐 갱도를 점검하는 경비로봇, 너구리들의 시체를 치우는 청소로봇들 뒤로하고 깊이 깊이 내려갔다. 중간중간에 있는 카드 단말기에 키 카드를 그어 몇 개의 게이트를 지나 보다 은밀하고, 어두운 곳을 향해 간 끝에 도착한 장소는─ 지상보다 밝고 시끄러운 곳이었다.
그곳은 거대한 공사장이었다. 너무 거대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수많은 안드로이드들이 붙어 작업을 하고 있으며, 역시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는.
"호오, 왔는가."
나를 반긴 이는 머리가 거의 다 벗겨진 백발의 흰 가운을 걸친,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곰인형을 든 늙은 과학자였다.
========== 작품 후기 ==========
벌써 2016년이네요. 늦었지만 해피 뉴이어!
@네리의별하늘 - 유에는 나중에 나올겁니다.
@신월야 - 출현이 뜸했으니까요. 언급된게 어딥니까.
@에탄 - 그럴 경우 군단장들의 견제를 무지막지하게 받을겁니다. 인게임에선 미친듯이 털려서 그렇지, 작중 군단장은 하나하나의 강함은 물론 말 그대로 군단을 거느리는 장이거든요. 걸핏하면 영웅들과 싸우고 발리지만, 달리말하면 영웅급이 아니면 상대할 수 없는 강자들입니다. 그런데 현재 영웅들은 전원 너프먹었고, 검호도 약화된 상태. 위험을 부담할 수 없죠.
@이휘안 - 행복해질겁니다.
@아르코어 - 은월말입니다 은월.
@대어의예감 - 많이 나았는데 이리저리 무리해서 상태가 그렇게 호전되지는 않음.
@귤10개먹고싶당 - 전 해피엔딩을 추구합니다.
@Ascaron - 과연 설정에 충실한 영웅...
@심온 - 모으면 모으는대로 문제, 못 모으면 못하는대로 문제.
@E토 - 루미너스는 그것과 관련되어 개그씬을 찍을 예정(?)
@소라루 - 똑같이 갈색피부에 백발이라 그런듯.
@비탄의과학자 - 실제로 그런걸요. 생물학적으로 어느쪽도 아니니까요.
@Blake117 - 간단히 말하면, 안전하게 오버시어를 깨우기 위해 메이플 월드의 봉인석을 모두 모으기로 했음. 그 과정에서 이쪽의 진의를 들켜서는 안됨. 이라고 할 수 있음.
@ㅇㅇ군 - 수단이 좀 바뀌었지 목표는 여전합니다. 시오버를 깨우고, 돌아가는거죠.
@봄빛결 - 루미너스 유인할때 그거 써먹을듯.
@이년아 - 블랙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에델슈타인을 통제했는지 언급되지 않아 많이 창작했습니다.
@노란우산s - 하나하나 언급될겁니다.
@라그실 - 주인공은 당연히 검호죠!
@Ratios - 사실 2부 주요 빌런을 언데드화 시킨 프리드로 할까 했는데 고인드립이 너무한 것 같아 취소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음.
@Sisre - 영웅즈 전원 깨어나 활동하는 상태. 2년동안 열심히 렙업하고 있었음.
@좀비라스 - 유령과 고약한 상사에게 시달리는 물음표씨.
@레시코 - 정체까진 안말했고, 목표와 그 방법등을 알려줌.
@책벌레씨 - 바뀐 에반 스킬 음성도 그렇잖아요. 미르! 100만볼트!
@ReFrnate - 팬텀, 메르, 아란에게 누구냐는 말 듣고 충공깽 상태가 되었음.
@火炎無 - 트립퍼라 죽지는 않았지만 그것뿐.
@dragoneel - 만약 팔이 맛이 안갔다면 소댄으로 위장을 못함.
@Buche - 하하. 그만큼 굉장한가봐요?
@류동지 - 중간관리직의 비해.
@넝기 - 초장부터 나왔으면 블랙헤븐 대신 그걸 전개했을지도 모릅니다만, 프롤로그 쓸때 히오메는 없었던 관계로.
@오하사 - 독자들에게마저 잊혀진 은월.
@지나가는니트 - 많이 안죽을거에요.
@루엔시르온 - 역시 인남캐, 대우가 험해.
@평범한사람인데 - 사실 저도 좀...
@문다이에 - 남자 얀데레는 사절입니다.
@썬키 - 좀 매달리는 성향이 생길지도 모르죠.
@Yoontlemin - 어지간히 이름있는 지역엔 다 있다고 보세요.
@적현월 - 연합은 조만간 결성될겁니다. 사건 하나 터지고.
@건전한독자 - 일기장에 좀 특별한 기록이 남아있거든요. 이건 나중에 공개.
@유니레아 - 아스카가 뇌는 맛이 없다고 합니다.
@키하라스티카 - 죄송합니다. 다시 달았어요!
@레티오네 - 진짜 소드댄서처럼은 무리이고, 어느정도 쓸만한 정도로 익히겠죠.
@마서 - 그 와중에 스우는 비웃고 있고.
@흑월상흑천묘 - 해피하게 끝날겁니다. 통수는... 뭐, 썩은 맛은 안날거에요.
@qkzks135 - 은월은 그렇게 또 옷을 갈아입는데...
@리아카에린 - 그래서 봉인 풀린 직후 생오버는 스킵 당했죠. 초장부터 이 캐릭이 나오면 인물 비중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거든요.
@허공말뚝 - 기분탓이에요 기분탓~
@arays - 상향이라기엔 미묘함. 하향도 받아서.
@크리잔 - 딱 거기까지 생각했으니까 그렇죠.
@칼크래프트 - 금융쪽이 아니라 신원 보증이지만 하여튼 보증이라는건 영 어감이 안좋음.
@Legendssj2 - 검호의 말에 아무 망설임없이 블랙윙 제복을 입었다고합니다(웃음)
@여행자구름 - 거기까진 안말했음.
@제시카블랙 -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존재의 시간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름.
@추억담 - 그건 생각할 필요자체가 없습니다.
@Eluines - 마음대로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