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겔리메르side
안부 인사같은 자잘한 사담을 나눈 후 그 남자와 함께 비밀리에 만든 통로를 걷다가 어떻게하다 저 남자를 신뢰하게 되었는가 잠시 떠올려보았다.
일 년쯤 전, 인형사 프란시스를 통해 그가 블랙윙에 접촉해왔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블랙윙의 목적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것을 도와주는 대신 대가를 요구했다.
오랜기간 평화를 누려온 메이플 월드이지만 그 때문에 숙련된 전사와 마법사는 몹시 귀했는데, 그는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상당한 수의 전사와 마법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계집애, 윙마스터 오르카는 뇌가 있긴 한지 심히 의심스럽지만 이 나를 제외하면 간부조차 소수를 제외하면 무능하기 이를데 없어서 그의 의도를 묻는 대신 대가는 얼마든지 지불할테니 일을 해달라고 했고 그들은 확실하게 일을 수행했다.
토끼를 개조해서 만든 말단이나 조무래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유능함을 보여주며 오르카의 신용을 차근차근 쌓은 그는 그런 활약을 하면서 결코 많은걸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이 요구하는 대가는 금품이 아닌 식량과 건축자재, 생필품류였기에 블랙윙이 제공해주는데 딱히 어려움이 없었고, 그러다 어느날 그 계집애가 제안했다.
"계속 의뢰받고 일하느니 그냥 우리 조직에 들어오는게 어때?"
…… 매번 내 연구를 재촉할때부터 알아봤지만 그때만큼 그 계집의 멍청함을 비웃은 적은 없었다.
그가 내건 합병의 조건은 지극히 심플했다. 광산 기지내에서 그의 부하들 - 스스로를 '용의 후예'라고 지칭하는 이들만을 위한 층을 내어주고 정기적으로 일정량의 물자를 주는게 전부였다. 전자는 그렇다치고 후자는 조금만 생각하면 무척이나 의심스러운 조건임을 알 수 있는 것을.
"또 나간다고 들었네."
"3일안에 성과를 가져오라고 들들 볶아댔어."
"그 계집애는 항상 말같지도 않은 말만 지껄이는군."
"항상 있는 일이지."
"뭐, 자네니까 당연히 성공하겠지만."
블랙윙에서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곳이 있다면 나의 과학부와 그의 부하 '용의 후예'가 사실상 전부다. 간부들중에서 제 역할 하는 놈들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 이베흐나 엘레오노르, 키르스턴 - 그보다 형편없는 놈들이 더 많으니까. 몇몇은 능력의 유용함때문에 써먹고 있을 뿐이지, 대체 가능하다면 바로 갈아치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아직도 조정이 덜 끝났나."
"남은 전투 실험이 한가득이네."
"…… 장기 손상. 손상률 측정중…… 39%. 위험! 전력 방전……!"
파지직! 제논의 부서진 부위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이거이거 조만간 재질을 좀 바꿔야겠군. 구조적으로 이 이상 단단하게는 무리겠어. 이래서야 완성하기까지 한참 멀고 멀었군. 어떻게 개조하든 팔을 쓰지도 않고 발길질만으로 제압당하다니…… 이건 그의 능력이 지나치게 높아서겠지만.
"베릴, 루티. 제논을 옮겨라."
"알겠습니다."
정말이지 어떻게 이런 힘이 아무런 개조를 하지 않은 인간의 몸에서 나올 수 있는지. 그가 '용의 후예'들의 수장만 아니었으면 무슨 수를 써서든 붙잡아서 해부해봤을텐데.
"자네 이번에 나갈때 내 물건들 몇 개 가져갈 생각 없나?"
"무슨 말이지."
"실험 좀 해달란 말이네. 여기서 하는 간단한 성능 테스트하고 실전에 투입했을때의 실험은 달라도 한참 다르니까."
그는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 부하들로 충분하다."
"대가는 충분히 주겠네. 이번에 만든 정찰용 드론을 포함한 정보채집에 유용한 기기 전반을 대여해주지."
어딜 가든 집요하리만큼 철저하게 사전조사하는 그의 성향상 거절하기 힘들겠─ 다고 생각했다. 그의 대답이 단두대의 칼날처럼 떨어졌다.
"거절한다."
"…… 어째선가?"
"그런게 필요할만큼 우리가 허투루로 일한것 같나."
숨기지 않는 자부심이 남자의 눈안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봉인석은 우리의 힘만으로 손에 넣을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거절하지. 그 동안 제네로이드나 완성해라."
기대하고 있으니까. 몸을 돌릴때 크게 펄럭이는 망토는 마치 날개짓과 흡사해 보였다.
…… 그래. 내가 저 남자를 믿게 된건 바로 저런 모습때문이다. 나의 능력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그 계집애와는 뿌리부터 완전히 다른 이상에 더 가까운 지도자.
에델슈타인 바깥의 놈들은 꿈에도 모르겠지. 그 시끄러운 계집애는 저걸 감추기위한 겉만 번지르르한 간판에 불과한 것을.
남자는 그때 갑자기 울린 전화를 받았다.
"…… 침입자?"
또 쥐새끼가 숨어들어 온건가. 질리지도 않는군. 하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 사전조사를 위해 멤버들이 사방에 여기저기 퍼진 상태였으니 슬슬 이곳저곳에서 더듬이를 곤두세울만도 하지. 리엔에서의 일도 있었고.
침입자들의 인상착의를 물으려다 곧바로 전화를 끊은 그가 물었다.
"겔리메르. 이곳에서 기지 전체에, 하다못해 '용의 후예'들이 있는 곳에만 방송을 할 수 있나."
"당연히 되네."
"잠깐만 빌리지."
한 편에 놓인 기기들을 잠시 손보자마자 그는 방송용 마이크를 몇 번 두들겨 테스트해본 뒤 입을 열었다.
"바쁜 와중에 미안하다. 현재 기지내에 있는 지하 7층에서 15층 사이에서 별달리 중요한 일을 하고있지 않는 '용의 후예'들만 들어라."
이번엔 또 어디에서 정보원이 왔는지.
"─ 토끼몰이를 시작해라!"
누군지 몰라도 정말 불쌍하게 됬군.
***
에반side.
광산에 들어오기전에 팬텀 씨가 말했던 간부 비서 르티에라는 여자분과 만나는건 순식간이었다. 어떻게 들어가자마자 바로!
"어머? 당신들은 누구죠?"
"저, 저희는─"
"이번에 바반님과 안소니님의 추천을 받고 들어온 페라리와 요한입니다. 당신이 르티에님이신가요?"
"네. 어떻게 알아보셨나요?"
"이렇게 아리따우신 분은 간부들중에 한 분뿐일테니까요."
"호호……."
머리위에서 미르의 '마스터, 나 속 울렁거려'라는 중얼거림이 들렸다. 나도 그래 미르. 혓바닥에 버터를 얼마나 칠한거지? 잠깐이지만 르티에의 큰 검은 눈이 기묘하게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바반과 안소니의 추천을 받았다…… 고 하셨죠?"
"예."
"그 둘의 추천을 받을정도면 유능하겠네요. 마침 할 일이 있는데 저 좀 도와주실래요?"
"물론이죠 르티에님."
"고마워요. 당신들은 빨리 승진하겠네요."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동굴벽에 부딪혀 크게 울렸다. 나와 팬텀 씨는 르티에의 뒤를 따라 깊숙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간부가 되면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겠죠?"
"물론이죠. 저같은 비서도 마음껏 부려먹을 수 있답니다."
그녀는 걸어가는 내내 간부들이 자기를 얼마나 혹사하는지에 대해 불평했다. 자기는 비서지 보모가 아니라는 말을 어떻게 저리 길게 말할 수 있는지, 비서 한 명에게 저렇게 일을 몰아주는 그들의 행태에 재차 블랙윙의 막장성을 알았다.
"여기는……."
"간부중 한 분인 프란시스님의 방이에요. 지금 그분은 장기출장을 간 상태라 비어있죠."
"유감이네요."
얼굴 한 번 보고싶었는데. 만약 팬텀 씨가 그 애를 만났다면 보이는데로 곧장 끝내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조심스레 들었다. 설마 나만한 어린애한테까지 그럴까…… 했는데 걔도 엄연히 악당이잖아. 팬텀 씨는 능글맞아 보이면서도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시니까.
"후훗! 아무튼 오래 방이 비워진 상태라 꽤 지저분하거든요."
"비워진거 맞습니까? 안에서 소리가 나는데요?"
문 너머로 달각달각거리는 소리가 희미하지만 분명히 들리고 있었다.
"안에 그분이 쓰는 인형들이 있거든요. 청소하면서 그것도 같이 치워주세요."
"간부의…… 것을요?"
"괜찮아요. 제대로 정리안하고 간 사람 잘못이죠 뭐. 만약 따져도 제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걱정마세요."
르티에는 카드를 꺼내 단말기에 그어 문을 열었다. 사방에서 눈을 번쩍이는 인형들이 한가득 보였다.
"이 일을 끝낸 다음 지하 7층으로 가세요. 거기 내려가면 다른 일을 하실 수 있을거에요."
그녀는 근처의 탁자에 키 카드를 얹어둔 뒤 곧장 나갔고, 문은 열릴때와 마찬가지로 작은 기계음과 함께 굳게 다물렸다.
인형들을 처리하는건 무척 쉬웠다. 감시 카메라를 신경써서 미르는 꺼내지 않았지만, 불 마법으로 나무 인형들을 숯덩이로 만드는건 순식간이었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 프란시스의 방에서 쓸만한 정보를 찾는거였다.
"…… 이놈 간부 맞냐?"
"일단 네임드니까 대충은 맞는 것 같은데……."
[얘 블랙윙에서도 적당히 쓰고 버리는 패 아니야?]
미르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린애라는걸 증명하듯 인형사가 적당히 쓴 일기를 발견하고 뭔 횡재냐 싶었는데, 그 내용이 심히 괴악했다.
"검은 마법사가 이걸 보면 웃다가 죽을 것 같네."
폭주하면 세계가 멸망할거라니. 글자만으로 멀쩡한 사람 손발을 오글거리게 했으니 어떤 의미로는 효과가 굉장했다.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던 팬텀 씨가 일기장의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 사이에 끼워져 있었는지 어떤 사진이 툭 떨어졌다.
[오, 얘 좀 예쁘다. 안그래 마스터?]
"이런 애도 블랙윙인건가."
인형사도 그렇고 왜 여기에서 나만한 애들이 보이는거지…… 했다가 나도 별다른 처지가 아님을 깨달았다.
"팬텀 씨도 보실래요? 프란시스가 좋아하는 애인 것 같─."
나는 별 생각없이 뒤돌아봤다가 완전히 얼어버렸다.
좀 재수없을 정도로 잘생긴 팬텀 씨의 얼굴이 귀신의 집 오브제 급으로, 아니 뭐에 씌인 것처럼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평소의 버터로 코팅한듯한 목소리도 거친 쇳소리처럼 변했다.
"…… 이놈이었나."
"아는, 사람이세요?"
"왜 이름이 블랙윙인가 했는데 윙마스터가 수장이라서였군."
"이 애가 그 군단장이라는 사람이에요 팬텀 씨?"
"한 놈뿐이지만 이놈이라면 다른 한 놈도 여기 어딘가에 있겠지."
[마스터. 이 사람 전혀 안듣고 있어.]
으아, 잘 보니까 팬텀 씨 눈 완전히 돌아가있잖아! 거기다 좀 전에 뭘 죽이겠다고 중얼거리셨어?!
사진을 꽈아악 움켜쥐어 완전히 구겨버린 팬텀 씨는 곧장 탁자 위에 있던 키 카드를 집어들고 빠르게 나가버렸다. 나는 그를 쫓아가며 여기에 오기전에 그가 썼던 방음 마법을 사용했다.
"그 여자애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침착하세요……! 이래서야 잠입의 의미가 없잖아요!"
대답 대신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난폭하게 울렸다.
"팬텀 씨!"
"이제부터 난 따로 행동할테니까, 넌 당장 나가든 다른 곳을 조사하든 마음대로 해."
"그러면 팬텀씨는!"
"놈들이 여기 있는걸 안 이상 넘어갈 수 없어. 그때 못 한 결착을 지을거야."
키 카드로 문을 연 그가 멈추지 않고 빠르게 걸어갔다. 그의 분위기가 얼마나 흉흉했는지 주위의 하얀 겉옷을 입은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쭉 가장자리로 비킬 정도였다.
[저거 못 말릴거야. 그냥 냅둬 마스터.]
"하지만 여긴 적진 한복판이라고!"
[명색의 영웅, 그것도 괴도라고 불리던 사람인데 제 몸 숨기고 내빼는건 잘하겠지. 오히려 걱정해야할건 마스터라고.]
어떻게 여기서 나갈거야? 미르의 말에 발이 꼬일뻔했다. 생각해보니까 여기 최소 지하 7층인데.
"…… 팬텀 씨를 찾자."
[벌써 놓쳤는데?]
"그렇게 멀리 가시지는 않았을거야."
리린이 가져오라고 했던 정보는 사실상 못 건졌지만 지금 상황에서 무사히 나갈수만 있다면 그게 다행인 판이다. 그나마 이 층에선 비전투원으로 추정되는 연구원들만 보이니 - 보이는 사람들이 죄다 하얀 겉옷을 입었다 - 당장 위협받을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복도를 걸었다. 그러고보니 키 카드는 팬텀씨가 들고 가버렸는데 벌써 아래층으로 가셨으면 어쩌지? 아까봤을때 여기의 문은 오갈때 모두 카드가 필요한 것처럼 보였는데. 정 안되면 부수고 가야하나?
[그냥 텔레포트 써.]
"아 맞다."
상황이 안좋아지니 머리도 잘 안돌아가는 것 같다.
팬텀 씨가 어디로 갔는지 한참 돌아다녀도 보이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날 흔한 조직원으로 봤는지 그냥저냥 지나갔지만 계속 이러고 있으면 눈에 띄는것도 금방이다. 바쁘게 눈을 굴리는다가 복도 저편에서 온통 흰 옷뿐인 와중에 나와 같은 검은 제복이 지나가는게 언뜻 보였다.
찾았다! 싶어서 황급히 뛰어가자 보인 것은 팬텀이 아닌 통상적인 블랙윙 제복과는 조금 다른 디자인의 제복을 입은 긴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장신의 남자였다.
[더 이상 가까이 가지마 마스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인데?
[위험해.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야.]
주춤주춤 뒷걸음질치며 몸을 뺄 준비를 했다. 옆옆방으로 텔레포트해서 일단 따돌리고, 탐지 마법을 넓게 써서 팬텀 씨를 찾아내자. 남자는 내가 근처에 있는걸 눈치 못 챈건지 제 갈길 가고 있었다.
그때 천장의 스피커에서 둔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아, 바쁜 와중에 미안하다.』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스피커를 올려다보았다. 근처의 다른 연구원들도 모두 고개를 들었다.
『현재 기지내에 있는 지하 7층에서 15층 사이에서 별달리 중요한 일을 하고있지 않는 '용의 후예'들만 들어라.』
[분위기가 이상해 마스터.]
'뭐가 일어나는거지?'
거기다 용의 후예라니, 그건 또 뭐야? 하는 생각은 스피커에서 들려온 다음 말에 끊겨버렸다.
『토끼몰이를 시작해라!』
갑자기 복도내에 폭발할듯한 열기가 터져나왔다. 여기저기 있던 연구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지르더니 동시에 연구원들의 눈이 고양이보다 더 가느다란 파충류과의 세로꼴 동공으로 변해버렸다. 뭐, 뭐야?
장발의 남자는 스피커를 노려보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하아…… 또 그건가."
"무, 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죠? 그, 방송에서 말한 '토끼몰이'라는건 대체……."
"간단히 설명하면 일종의 운동이지."
"…… 운동이었군요."
그런 것 치고는 반응이 너무 열렬한데.
"일때문에 바깥에 나가는 이들을 제외하면 항상 지하에 박혀있으니 가끔씩 나타나는 토끼들을 몰면서 몸을 푸는거다. 간만에 제대로 움직이는거니 기뻐할 수 밖에."
"아하하……."
고작 토끼같은걸 모는데 대대적으로 방송을 하다니. 역시 블랙윙.
"그런데 겨우 토끼 몇 마리 쫓는데 저렇게 많이 나설 필요가 있나요?"
"물론이다. 최근들어 토끼들의 수가 늘어난데다 꽤 재빨라졌으니까."
덕분에 운동이 아주 잘 되고 있지. 남자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 아저씨는 안가시나요?"
"난 딱히 갈 필요 없다."
남자의 소매 안에서 시퍼런 빛이 튀어나왔다. 잠, 저거!
"바로 옆에 토끼가 있는데."
끼이익─! 뒤에 있던 벽이 4등분 되었다. 간발의 차로 땅을 굴러 피해냈지만 남자는 이어서 녹빛에 휘감겨 거대한 짐승의 앞발같은 너클을 휘둘렀다. 바닥에 깊은 밭고랑이 파였다.
"지하 7층부터 15층까지는 '용의 후예'들을 위한 공간.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출입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르티에 그 여자가 처음부터!
"즉─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여기가 토끼굴인지 호랑이굴인지 모르고 들어온 놈들이란 말이지."
키리리릭!! 찢어지는 금속음이 울리며 보라빛의 낫이 벽과 바닥을 절단냈다. 황급히 몸을 틀어 피했지만 모자 절반이 뜯겨나갔다.
"미르!"
[윽…… 어떻게 저런 놈이 정령을 쓰는거야!]
무사하다. 넘실거리는 불길로 이루어진 여우들이 연이어 날아오는 모습에 더 볼 것도 없이 텔레포트했다.
텔레포트하기 직전, 순간이지만 낫을 날렸던 그 남자가 몹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째서?
***
팬텀side.
"저쪽이다!"
"게이트가 폐쇄되었으니 다른 곳으로 못 갈거다! 쫓아!"
"텔레포트 못하게 마력 역류진도 펼쳐!"
한 박자 숨을 고르며 사람들이 다 지나갈때까지 기다렸다. 어째 표정이 다들 즐거워 보이는군. 하나같이 뱀 비슷한 눈이라 기분나쁜 정도가 배가 되었다.
"…… 토끼몰이라고 했나."
그 방송이 나온 직후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변했다. 슈라우드를 해제하며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복도를 조용히 걸었다.
'블랙윙도 아주 바보가 아니었군.'
추측되는건 에반 아니면 르티에인데. 아니면 우리들 외에 숨어든 다른 정보원들일지도 모르겠다.
"누후후, 언제까지 저를 잡고 계실거죠 신사분?"
"일이 이지경이 됬으니 들을건 다 들은 뒤에 놓아주지."
"어머나. 듣던 것과는 달리 꽤 거친 분이군요."
방송이 나오자마자 열광하던 사람들과는 달리 제 할 일만 하고 있던 하얀 가운의 여자는 위험하게 빛나는 적금색 눈을 휘며 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윙마스터는 어디에 있지."
"어느 윙마스터를 찾고 있으신지?"
"둘 다."
"…… 블랙윙의 상황을 거기까지 알고 있었나요?"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연구실 안쪽이라 대거 빠져나간 사람들이 다시 오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것 뿐. 계속 있어봤자 좋을건 없다.
"오르카는 막 나가서 없어요. 하지만 다른 한 명은 있답니다."
"정말인가."
"기껏 대답했는데 의심하는건가요?"
"너무 순순히 답하니까. 블랙윙에 대한 충성심은 없는 모양이지?"
"저도 당신하고 비슷한 상황이랍니다."
제 계약자는 절 이런 곳에 떨어뜨렸으면서 아무것도 안 준다네요. 너무해라. 여자의 푸념에 가까운 투정에 헛웃음도 안나왔다. 하필 잡은게 같은 스파이라니.
"그럼 스우는 어디있지."
"스우? 그건 누군가요?"
"…… 방금 윙마스터 한 명이 여기 있다고 했잖아."
"제가 말한 사람은 소드 댄서입니다만?"
그건 또 누구야? 애초에 윙마스터라는 칭호 자체가 그 쌍둥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잖아. 날 속인건가 싶었는데 여자도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소드 댄서란 사람은 누구지?"
"그 전에 스우라는 사람이 누군지부터 말해주세요."
"난 시간이 없어."
"그럼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천천히 나누도록 하죠."
에레브에서요. 마지막 말에 반응하기도 전에 우드득! 여자를 붙잡고 있던 팔이 꺾이며 시야가 뒤집혔다. 내동댕이쳐진 몸의 절반이 통증을 호소하는동안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했으나, 뒤이어 사방에서 빛의 그물이 날아왔다. 슈라우드를 써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마법이 먹통이다.
"마지막 토끼 포획 완료. 곧 이송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붙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치고들어온 사람들은 좀 전에 나갔든 연구원들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아까 보았을때와는 또 달라져 있었다. 세로꼴의 동공은 물론, 뿔과 꼬리, 날개가 있었던 것이다.
그 여자 역시.
"바이바이~ 괴도 팬텀."
꿀빛에 가까운 짙은 금색의 뿔이 형광등 아래에서 빛나고 있었다. 하, 그 계약자에 그 여자란 말이군. 양쪽 다 성격이 굉장한데?
나는 마법을 해제했다.
그물에 붙잡힌 섀도우는 물에 푼 잉크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그럼, 용건이나 마저 볼까."
한참 감았던 눈을 뜨며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거대한 통 안에 담겨 몸에 온갖 선이 연결되어 있는 소년이 그곳에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팬텀.]
그리고 연기같은 걸로 이루어진 반투명한 소년의 유령 - 스우 역시.
========== 작품 후기 ==========
요즘 이거 쓰는게 점점 지치네요. 휴재나 할까.
@카즈사야 - 저도 앞으로의 스토리를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생각중입니다.
@좀비라스 - 솔직히 네임드 유령이 스우외에 몇이나 더 있을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E토 - 전 개그에 소질이 없어서 않웃길지도 모릅니다.
@흑월상흑천묘 - 그 제독 조만간 처리당할지도(웃음)
@Sisre - 스우는 몇몇 사람들에게만 보이고 그 외에는 느껴지지도 않음.
@대어의예감 - 세피로트는 바쁘게 메이플 월드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브라디온 - 루미가 이클립스가 되었긴 했지만 그렇게 막나가지는 않아요.
@루엔시르온 - 은월이 머리콱 할지도.
@Yootlemin - 이제 다 아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
@Dt월 - ???
@레시코 - 마법엔 재능이 없지만 영감은 좀 있음.
@심온 - 프리드라니, 그렇게 고생하다 갔는데 고인드립까지 당하는건 너무하잖아요 데헷.
@흑접아 - 그리고 영웅들은 거하게 삽질을.
@라그실 - 안나온듯한 주인공은 여전히 출연하고 있어요.
@유니레아 - 물음표의 효과는 굉장했다!
@Legendssj2 - 사실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반전이면서도.
@칼크래프트 - 당연히 '척'입니다.
@이년 - 나이를 생각해서 바꾼겁니다. 솔직히 겔리메르의 존댓말을 상상하기 어려워서 그냥 반말로 정정.
@Buche - 그 말을 들으니 더더욱 불타오르는!!
@qkzks135 - 메이플에 네임드 유령은 스우와 이피아정도밖에 없잖아요.
@ㅇㅇ군 - 쓰는 저도 가끔씩 헷갈림.
@연닢 - 프리드면 고인드립이죠.
@트왈라 - 레지스탕스는 깊게 다룰 생각이 없어서...
@Yukilan - 정답은!(두둥)
@에탄 - 루미는 현재 비보 모으는중.
@허공말뚝 - 휴일이 아니었습니다.
@wlgns414 - 말 그대로 날으는 검이 전부라 실상 다리를 활용한 격투기가 대부분.
@리아카에린 - 그리고 '용의 후예'들을 대차게 낚아버립니다. 현재 팬텀은 4차 코앞.
@적현월 - 프라이쉬츠는 상태가 영 안좋음.
@신월야 - 누구겠습니까.
@소라루 - 저기서 나올 유령은 스우뿐이죠.
@Eluines - 완결까지 갈 수 있을까 좀 걱정되기 시작.
@여행자구름 - 200화 안에 끝나면 기적임. 검호가 블랙윙에 들어왔을때 큼직한 프로젝트는 이미 끝난 상태였고(유니티 프로젝트) 제네로이드는 현재진행중. 자세한건 다음에.
@르틴 - 아스카는 외부에 나간 상태.
@류동지 - 일단 블랙윙같은 조직에 들어온다는 것부터 정상이 아니라는 뜻인데.
@크리잔 - 신사는 이베흐입니다.
@책벌레씨 - 그리고 이름은 언급 안됬지만 또 다른 영웅이 등장!
@케르닉 - 프리드는 죽었어요...
@Ratios - 팬텀은 원하는 정보를 얻었지만 결과는...?
@노란우산s - 누구인지는 이제 아시겠죠?
@키하라스티카 - 쓰는게 조금씩 벅차졌습니다. 다른걸 지르고싶기도 하고.
@진달래X - 이분의 통찰력은?!
@Blake117 - 그리고 에반은 열심히 도망치다 결국...
@ReFrante - 때되면 다 나올겁니다.
@SourcesMoon - 좀 맛이 가긴 했지만 겔리메르가 한 유능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