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반side.
결국, 잡혀버렸다.
애써 텔레포트를 썼는데 그 위치가 미리 계산한 곳이 아니었던건 물론, 재수없게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사방에서 쏘아진 마법을 막다가 그 장발 남자가 날린 공격에 기절해버렸다.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감옥 안이었다.
"하아……."
[괜찮아 마스터. 그래도 팬텀은 아직 안잡혔잖아.]
"그렇긴 한데."
어째 불안하단 말이야.
"젠장! 이렇게 허무하게!"
"우릴 어떻게 할 셈이야?!"
나와 비슷하게 숨어들어온 여러 사람들이 철창을 두들기며 간수에게 소리쳤다. 간수, 그 장발의 남자는 이쪽을 힐끗 보았다가 별 대답없이 고개를 돌려 무언가를 종이에 썼다.
"서, 설마 우리도 실험체로 쓸 생각이냐!"
저건 또 무슨 소리야? 어째 넘겨들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감옥 안의 사람들은 안색이 싸해졌고, 처음으로 남자가 반응을 보였다.
"어디서 그런 말을 주워들어 온거지."
"니놈들의 그 악랄한 실험을 모를 것 같냐! 유니티 프로젝트 말이다!"
"…… 쯧. 어디서 들은건 있군. 그 영감은 극비정보를 어디다 마구 뿌리는건지."
그딴걸 그가 용납할리가 없잖아. 중얼거리듯이 흘리는 말이 걸렸다. 그?
"그가 누구죠?"
"…… 실수했군. 뭐, 상관없으려나."
어차피 알아봤자 소용없을테니. 간수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말하며 계속 종이에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앞으로 무슨 짓을 하려고 태연하게 제 입으로 저런 것들을 말하는거지?
"너희는 죽지 않을거다. 이런 일로 사람을 죽일만큼 그는 살인에 미치지 않았을뿐더러, 만약 그렇다해도 내가 용납하지 않아."
일단 우리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것에서 저 남자와 '그'라는 사람이 블랙윙에서도 높은 위치에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후 입을 다문 남자는 종이에 무언가를 다 썼는지 펜을 멈춘 후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거기 소년."
"예? 저요?"
"그래. 아까 공격때문에 너의 파트너를 다치게 한 건 미안하다. 설마 모자 안에 있을 줄은 몰랐다."
"아…… 네."
저 사람 정말로 악당 맞나. 좀 전에 정령을 팔에 깃들게 해 광폭한 일격을 날리던 모습과 눈앞에서 고개숙여 사과하는 모습은 잘 매칭되지 않았다. 하지만 바람의 칼날에 비늘이 크게 할퀴어진 미르는 아직도 으르렁거리며 남자를 노려보고 있어, 그런 말을 함부로 입밖에 내뱉을 수 없었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거죠?"
"죽이진 않을거다. 그뿐이지."
살려준다고 하는데 뒤에 붙은 말때문에 더 불안해졌다.
"블랙윙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건 결국 일어날 일이지만, 적어도 그 시기는 늦춰져야 한다는게 우리쪽 생각이라서 말이야."
"니놈들은 대체 뭘 하려는거냐!"
"우린……."
그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조금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않고 다물었다. 팬텀 씨처럼 보라색이지만 더 어둡게 잠긴 눈이 온갖 감정들로 엉켜있어 제대로 읽어낼 수 없었다.
"다음에는 이런 곳에 오지마라. 위장잠입이든 뭐든 그냥 근처에 오지않는게 좋을거다. 블랙윙은, 악한 일만 하는 조직이니."
"그걸 아는 당신은 왜 여기 있는거에요?"
"…… 얻고 싶은게 있으니까."
굉장히, 굉장히 음울한 목소리가 감옥내에 낮게 울렸다.
"소중했던 사람에게 빌린 긍지를 버려서라도 얻고 싶은게 있다. 무슨 수를 써서든 되찾고 싶은게 있어. 지금 이 방법이 옳지 않다는건 내가 가장 잘 안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어째선지 저 남자가 몹시 아파보였다. 그것이 무엇때문인지는 몰라도, 스스로 잘못됬다는걸 알면서도 이럴만큼 그가 궁지에 몰려있는걸 반사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이름조차 모르는 저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땅을 보고 있던 남자는 고개를 들어 한참 나를 보다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은 고맙지만 거절하지."
"어째서죠? 하기 싫은 일이면 안하면 되잖아요?"
"이 일에서 나는 절대로 빠지면 안되는 사람이니까. 아무튼 말은 고마웠다 에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너머로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이 들어왔다.
"더이상 잊혀지고 싶지 않은데, 내 손으로 잊게 만드는구나. 정말 미안하다."
잠깐, 나 저 사람한테 이름 가르쳐준 적 없는데……?!
직후 사람들이 쓴 마법으로 붉은 빛이 감옥 안을 가득 채웠다.
***
팬텀side.
스우는 허공에서 팔짱을 낀 채 생긋 웃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늦게 왔네요. 좀 더 일찍 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토끼몰이니 뭐니 하는걸 해서 말이야. 사람들이 마구 다녀서 몸 빼는게 쉽지 않더라고."
[아 그거요? 놈들이 하는 정기적인 첩자 정리 행사죠.]
이런. 에반이 잡혔을지도 모르겠군. 꽤 괜찮은 마법사가 됬지만 실전은 여전히 미숙해보이는 소년에 대한 걱정이 조금 들었다.
"내가 앞에 있는데 꽤 여유로운 기색이군."
[그야 다른 영웅이면 몰라도, 팬텀 당신은 두렵지 않으니까요.]
"뭐야?"
그 자리에서 케인을 휘둘러 놈이 든 통을 박살낼뻔했다. 아니, 그냥 그러는 편이 나았으려나.
[당신은 가장 영웅에 맞지 않는 사람이잖아요. 애초에 여기 온 목적도, 블랙윙에 고통받는 에델슈타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복수때문이 아니었나요?]
"수 백 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활개치는 군단장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맞는데."
[애써 거짓말하지 마세요. 당신은 그냥 날 죽여서 아리아 여제의 복수를 하고싶을 뿐이잖아요.]
반사적으로 케인을 내려쳤다. 공기를 후끈 달구는 폭발과 함께 스우의 유령이 있던 자리가 터져나갔다.
"…… 그래도 뭐 하나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참았는데 관두겠어. 그냥 죽어."
[역시 내가 아는 괴도 팬텀 그대로군요.]
위험! 폭발 감지, 배리어를 전개하겠습니다. 스우의 몸이 든 통에 부착된 기계가 삑삑거리더니 전자방어막을 만들어냈다. 그래도 믿는게 있었다는거군.
[왜 제가 있는 곳에 사람 한 명 없는지 의심한적 있어요?]
배리어를 박살내기 위해 모은 뇌격을 잠시 멈췄다.
그러고보니 이곳까지 오는데 경비는 물론 저 통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 저 배리어 하나를 믿는다고 보기엔 내가 아는 군단장 스우라는 놈이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아카이럼이란 책사때문에 밀려서 그렇지, 저놈도 만만치않게 교활하다.
[저도 나름 믿는게 있거든요.]
사방에서 보안 로봇이 쏟아져나왔다. 귀찮게……!
"고작 이딴걸 믿은거냐!"
[그럴리가요. 그건 시간끌기죠.]
저를 여기다 격리시킨 사람은 굉~장히 강하거든요. 그를 믿는거죠. 아까 모았던 뇌격을 날려 보안 로봇들을 고철로 만든 순간, 삐빅! 기계음과 함께 공동 한 켠에 있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자를 눌러쓴데다 이곳의 조명이 어두워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당한 키와 골격, 무거운 발소리로 볼때 남자가 틀림없었으며, 금속빛을 흘리는 한 자루의 검이 연상되는 위험한 분위기를 두르고 있었다.
[이제 오면 어떡해요?]
"여기까지 오는 길이 얼마나 꼬여있는지는 니가 더 잘 알텐데."
[당신의 발, 꽤 빠르지 않았나요? 내가 죽으면 가장 곤란한게 당신이잖아요.]
"그 입 다물어."
[싫은데요?]
더 대화하길 그만둔 남자는 스우의 몸을 등지고 서서 지휘하듯이 손을 뻗었다. 마법사인가? 하지만 몸을 보면 그건 아닌 것 같고. 의아함이 완성되기도 전에 남자가 등에 메고있던 검이 두둥실 떠오르며 나를 향해 겨누어졌다.
"일단 묻겠는데…… 그냥 물러날 생각 있나. 쫓아가진 않을거다만."
"전혀. 당신 등 뒤에 있는 놈을 꼭 박살내야 하거든."
"유감이다. 그렇게 둘 수 없다."
천창에서 유령의 웃음소리가 빙글빙글 돌며 춤췄다.
[빨리 안싸우고 뭐해요?]
"쯧!"
크게 혀를 찬 남자가 고개를 돌리자 신형이 사라졌……!
콰앙─! 아슬아슬하게 얼굴 바로 옆에 남자의 발이 발목만 보일만큼 깊이 틀어박혔다.
"다시 묻겠는데, 지금이라도 물러나면 쫓지 않을거다. 그냥 가면 안되나."
[소용없을겁니다. 그 사람, 나에 대한 원한이 진득하거든요.]
"니놈은 도대체가……."
빈틈을 노려 케인을 휘둘렀으나 캉! 남자의 주위에 떠있던 검이 멋대로 날아와 막아냈다.
관자놀이를 노리는 옆차기를 고개를 숙여 피하고, 얼음 마법으로 바닥에 빙판을 깔고 마찰력을 낮추는 마법까지 추가로 걸어 접근을 봉쇄시켰다. 다시 달려드려다 미끄러진 남자에게 마력탄을 날렸으나 우습다는 듯 손으로 쳐내고 기민하게 검 하나를 땅에 박아 재빨리 균형을 다잡았다.
"그쪽도 저놈이랑 사이가 나빠보이는데, 굳이 지키는 이유가 있나?"
[알면 당신은 기절해버릴걸요?]
"넌 좀 다물어."
또 하나의 검이 붕 떠올라 일렁이는 푸른 빛을 휘감았다.
처음, 새파란 검기가 애꿎은 종유석과 석순을 토막냈다. 이어서 방금 것은 예고에 불과했다는듯 미친듯이 검기를 난사했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황급히 발을 놀려야 했다. 슈라우드와 스위프트를 연계해 피하고 있지만 이거 접근이 쉽지 않군.
'그렇다면.'
더이상 실력 숨기기는 무리네. 저쪽의 패를 좀 보려고 했는데 정작 상대는 저거 하나로 끝내버릴 기세다.
그림자가 일어나고 이 시대에 와서 새로 손에 넣은 스킬들을 동시에 사용했다.
"유감이야. 당신한테는 원한없었거든."
한 쪽은 폭풍을 두른 4장의 날개를 가진 활을, 다른 한 쪽은 그의 손에 새겨진 검은 주문서를 노리는 거대한 수리검을.
스킬 2개가 한 명에게 일점사되며 일대의 공기가 터져나갔고, 공동은 당장이라도 무너질듯이 뒤흔들렸다.
***
스우side.
정말이지, 요란하게도 싸우네요. 하기사 둘 다 영웅이니 맞부딪힌 결과가 이정도는 되는게 당연하겠지만요.
자욱하게 일어난 흙먼지 구름 속에 서 있는 인영은 둘. 유감스럽게도 두 사람 다 무사하다.
"죽었나?"
뭡니까 그 부활의 주문? 비웃음이 절로 나오는 말에 기회를 엿보았다. 그가 쓰고 있던 블랙윙 모자는 폭발의 여파로 날아갔는지 안보였고…… 그거면 충분했다.
땅을 통째로 들어내 방벽으로 써서 몸을 지킨 남자-소드 댄서가 시력을 강화시켜 한 발 먼저 팬텀의 정체를 알았다. 둔하다고 비웃고 싶다만, 여긴 어둡고 블랙윙 모자는 크고 챙도 있어서 얼굴 보기 힘든 디자인이니까 아주 약간의 변호가 되겠지.
마찬가지로 팬텀 역시 소드 댄서를 보고 경악했다.
"…… 검호?"
아아, 이 때를 기다렸어요. 마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몸은 잔뜩 지쳤으며, 나의 육체와 가까우면서, 정신적으로는 크게 빈틈이 드러난 이 때를.
삐걱이며 열린 틈새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본래 있어야하는 거부반응이나 저항은 없었다. 그만큼 상대의 정체에 놀랐고, 지쳐 있었으니까.
동료라 믿어 의심치 않은 이가 반드시 죽이고싶은 복수의 대상을 목숨걸고 지키는 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고마워요 검호."
덕분에 오랜만에 좋은 몸을 얻었네요.
흉악하게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기분좋게 감상했다.
========== 작품 후기 ==========
개인적으로 군단장중에서 스우의 능력이 가장 위험하다 생각합니다.
... 독자분들에게 죄송하지만 휴재하겠습니다. 스토리는 짜여져 있는데 글로 못 옮기겠어요... 이게 슬럼프인가. 1달쯤 쉬다 오겠습니다.
@내꿀 - ?? 죄송합니다만, 뭘 물어보신거죠?
@LightAmongUs - 이번에 새로 뭘 하던것 같은데 관심이... 아니 최근엔 재밌는 게임이 없음.
@레시코 - 스우는 그런 검호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킬 놈입니다.
@ㅇㅇ군 - 그래도 이번건 올리고 쉴게요.
@진달래X - 그래서 좀 추가했습니다. 쓰고나서 깜빡한듯. 지적 감사합니다.
@animaster - 그란디스입니다.
@대어의예감 - 은월은 검호의 계획에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유는 차후 설명.
@심온 - 늦어서 죄송합니다...
@hakuya - 저도 슬슬 헷갈려서 정리를 좀.
@건전한독자 -콰쾅ㅇ쾅콰오
@소라루 - 팬텀은 그보다 훨씬 더 놀랐음.
@E토 - 스우 몸이 든 곳에 침입자가 들어왔다는걸 알고 쫓아내려 갔다가... 후새드.
@허공말뚝 - 이건 뭐 원래 스토리였음.
@류동지 - 실제로 검호는 겔리메르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능력은 인정하지만요.
@Sisre - 양쪽 다 영 상황이...
@노란우산s - 연중은 안합니다.
@Yukian - 팬텀과 재회해버렸음. 그리고 망함.
@좀비라스 - 여기서 스우는 악역미화 그딴거 없다는 사실.
@Ratios - 아니 그분들까진 필요없어요.
@Blake117 - 다음 달에 만나요오.
@ELuines - 정령=은월, 세로동공=노바족의 특징(오리지날 설정)입니다.
@루엔시르온 - 완결까지 다 정해져있으니 늦더라도 연중은 안할겁니다.
@키하라스티카 - 연중 안해요. 안합니다.
@여행자구름 - 정확히는 근육+일반인보다 더한 골밀도때문. 남검호는 실제로 100kg 넘어갈겁니다 아마. 아란은 그에 좀 못미치지만 그 키의 평균 여성보다 무거움.
@seyun - 하지만 결국 당해버림.
@밤일 - 조금 쉬다 돌아올게요...
@리아카에린 - 잠깐 이 코멘 굉장해?! 길이! 길이가! 이 글에서 비중 좀 있는 유령은 아무리 추려도 셋밖에 안되서 그 외에는 그냥 잡... 입니다.
@크리잔 - 제가 연애를 못해봐서 그렇습니다. 팬텀 까지 마세요.
@라그실 - 완벽하군요 스피드웨건!!
@신월야 - 겔리메르의 심장에 칼빵!
@qkzks135 - 아뇨 그거 은월입니다. 4차 은월.
@Legendssj2 - 카이저와 엔버는 봉인석 있는 곳 사전조사중.
@ReFrante - 그리고 침입자가 팬텀인걸 안 검호는 그 이상으로 충격. 생각해보면 팬텀인걸 쉽게 알 수 있었지만 아니었던적도 많아서...
@Buche - 죄송합니다. 쉬다 올게요.
@칼크래프트 - 핑크빈은 뭐, ~~모험가들이 격파했다! 정도로만 나올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