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129화 (129/208)

<--  -->  검호side.

무릉의 봉인석을 회수한 후 우리는 곧바로 귀환서를 써 빅토리아 아일랜드 - 루타비스에 도착했다. 세계수의 뿌리가 벽 곳곳에 기어다니는 지하공동에는 여러 노바족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나는 카이저와 지친 마법사들을 그들에게 넘기고 사실상 집에 가까운 큼직한 막사에 들어가 옅은 회색머리에 밝은 연둣빛 눈을 가진 차가운 인상의 여인, 노바족의 책사 이데아를 찾아갔다.

"이제 돌아오셨습니까."

"그래."

"다행히 스타트선은 잘 끊으신 모양이군요."

정말 파충류의 것과 흡사한 이데아의 서늘한 눈이 막사 밖에서 여러 마법사들에게 둘러쌓여 집중 치료를 받고있는 카이저에게 닿았다.

"그런데 대체 저분이 왜 저렇게 되신겁니까."

"무공의 저력이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고작 팬더따위가 카이저님을 어떻게 하셨다는 말입니까."

"정보가 부족했다."

"정보가─ 말입니까?"

그녀는 말을 길게 늘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 자세한걸 묻고싶지만 구체적인 정황은 다른 사람들에게 듣도록 하죠. 다음 계획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그녀는 벽에 걸려있던 메이플 월드 지도를 탁자 위에 펼쳤다.

"무릉이 완료되었으니 다음 목적지로 할 수 있는건 니할과 엘나스, 루디브리엄 이 셋입니다. 세 지역 모두 인지도가 고만고만하고, 봉인석의 보안 상태도 중간정도입니다."

이데아는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모두 꺼내 내게 주었는데, 그 양이 얼마나 방대한지 보는것만으로 질릴 정도였다.

다른건 몰라도 그녀에게 계획이나 정보처리에 대한 것을 대부분 넘긴건 근래 들어서 내가 한 것중에 제일 잘한 것 같네. 처음 부탁했을땐 너무 과하지 않을까 했는데 노바족 제일의 책사라는 이명이 거짓이 아니라는걸 증명하듯 그녀는 유능함을 한껏 뽐냈다.

사실 그녀가 아니라 내가 안 굴러가는 머리 백날 굴렸으면 얼마나 큰 사단이 일어났을까 싶어서 한 행동이었는데. 이래서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하는거구나.

"어디를 고르든 상관없습니다. 지역마다 계획이 세워져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엘나스로."

"엘나스……? 알겠습니다. 루디브리엄에는 엔젤릭 버스터를 보내도록 하죠."

이데아는 멀쩡히 있는 전력을 놀게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그 전에 잠깐."

"뭡니까."

서리낀 목소리가 내리깔렸다. 대면할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저 여자 진짜 오싹해……! 괜히 노바족의 얼음마녀라 불리는게 아니었다. 현 시점에서는 아군이 확실하고, 그 능력도 카이저랑 엔버, 유에와 다른 분야쪽으로 출중하지만 저 냉랭한 성격때문에 대하기가 좀 꺼려진다.

"이 지역들 정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나?"

"저희를 못 믿으시는겁니까."

"그건 아니다. 다만 이번같은 일이 또 생기면 무척 곤란해."

사실 곤란한걸로 끝날리가 없다만 직설적으로 말하면 저쪽에서 핵직구로 돌아올 것 같아 익숙하지 않지만 완곡하게 말해야했다. 이데아는 아니꼽다는듯 도끼눈으로 날 보다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파견 간 이들에게 현 상황을 보고해라고 지시하도록 하죠."

이데아는 그렇게 말하곤 몸을 돌렸다.

네 지역의 봉인석을 근시일내에 모두 회수하면 최종적으로 남는건 가장 가져오기 힘든 에레브와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것만 남는다. 그때쯤되면 바보가 아닌이상 웬만한 사람들은 블랙윙이 봉인석을 노린다는걸 다 눈치챌테니, 이쪽도 지금처럼 번거롭게 숨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겠지.

걱정되는건 다른 사람들이다. 검은 마법사가 깨어나면서 왕성하게 활동할 군단장들과 그에 따라 피해를 입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그 옛날 검은 마법사가 활개쳤을 때에도 실질적인 피해는 죄다 군단장들이 입혔었다.

땀이 찬 모자를 벗어 부채질하며 그들의 이름과 면면을 떠올려보았다. 데몬, 아카이럼, 힐라, 구와르, 오르카&스우, 반 레온 그리고…….

'프라이쉬츠.'

제일 걸리는건 그놈이다. 검은 마법사 봉인 이후 8백년이 지났지만 나와 같은 트립퍼인 그놈이 쉽게 죽었을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놈들이면 몰라도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는 감이 안잡힌다.

'세피로트한테 좀 찾아보라고 해볼까.'

마침 다른 군단장들이 어떻게 됬고 뭘 하고있는지 살피러 간 놈이니 겸사겸사 좀 알아내봐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아까전보다 온도가 영하로 20도쯤 더 떨어진듯한 그녀가 다가왔다.

"…… 보고드립니다."

고드름이 뚝뚝 떨어지는듯한 환상이 보이는 이데아가 내게 다가왔다. 설마 진짜 무슨 일 생겼나.

"현재 루디브리엄에 영웅 루미너스가 있다고 합니다."

"─역시."

내 일이 잘 풀릴리가 없지! 어째서 다음 목표인 루디브리엄에 하필 영웅즈중 한 명이 있느냐에 대한 불평보다 나의 진득한 불행에 감탄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어쩜 이리 한결같을 수가.

"예상하고 계셨습니까?"

"대충은."

"그럼 왜 제게 말해주시지 않은겁니까."

아, 그야 막연하게 계획대로 될리 없을거라 짐작하고 있었을뿐이지 루미너스 걔가 거기 떡하니 있을줄은 몰랐으니까. 반쯤 감으로 찍었다고 말하기엔 뭐해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나를 뚫어버릴듯이 쏘아보던 이데아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뭐, 그건 됬습니다. 혹시 루미너스를 처리할 방도가 있습니까."

나한테 그런게 있을리가…… 루미너스는 영웅즈중에서 제일 고지식했을 뿐만 아니라 마법사답게 머리도 잘 돌아가서 어설픈 속임수에는 절대 넘어가지 않을거다. 엔젤릭 버스터가 약하진 않지만 루미너스를 상대하기엔 많이 부족한데 어쩌지.

끙끙거리며 골머리를 싸맬때 갑자기 반짝, 머리에 전구가 켜졌다. 잠깐만…… 유인이라면 가능할지도?

"지금 그쪽으로 편지같은거 보낼 수 있나?"

"예. 당연히."

"그렇다면 편지를 써야겠군."

뭔 뜬금없는 말이냐는 눈으로 날 보는 이데아를 조심스레 뒤로 하고 나는 다른 사람이 가져온 편지지에 쓱쓱 글을 써내려갔다. 최대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 자 한 자 써낸 다음 깔끔하게 봉투에 넣은 나는 그것을 이데아에게 주었다.

"뭐라고 쓰신겁니까?"

"몰라도 된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좋은건 아니니까.

"어쨌든 그걸 루미너스한테 전하면 유인은 확실하게 될거다."

"…… 알겠습니다."

의심스럽다는듯 편지를 보던 이데아는 다른 노바족을 불러 디멘션 게이트로 그를 루디브리엄에 보냈다. 그녀가 물었다.

"대체 뭐라고 쓰셨길래 반드시 유인이 될거라고 확신하는 겁니까."

"그놈이 지금 제정신이면 그걸 보고 안나올 수 없을거다."

제정신이라면 말이지…… 나는 그에게 마음깊이 사과하며 편지의 내용을 떠올렸다.

미안 루미너스. 진짜로 미안.

몇 시간 후, 이데아는 편지를 읽은 루미너스가 길길이 날뛰며 지정한 장소로 달려갔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

이데아side.

노바족과 그란디스를 위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선택 가능한 것들 중에서 그나마 제대로된 해결책이라는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은 그가 내놓은 방법 뿐이었으니까. 달리 생각해봐도 그것밖에 없었다.

우리와 손을 잡은 그 남자는 우리들을 믿고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인지 목표를 달성하기위한 계획에 대한건 거의 다 나를 비롯한 참모부에 맡겼고, 그대로 실행했다. 아무리 손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어째서 그렇게 우리의 말을 믿냐고 물어보았을때 그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게 책사의 역할 아니었나?'

매우 당연한걸 말한다는 듯이 대답했다. 실제로도 정론이었지만 굉장히 놀랐다. 그가 그만큼 우리의 능력을 믿는다는 뜻이니까. 그래, 손을 잡은지 이제 일주일이 될 무렵에 말이다.

남자는 아직도 양팔이 완치되지 않은 상태라 다소 무리하다고 생각했던 것마저 깔끔하게 실행했고, 그 모습에 괜히 이쪽 세계에서 영웅이라 불린 이가 아님을 실감했다. 좀비가 되었다고 해도 그 분을 혼자서 처리했을 때부터 보통 실력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건 정말.

아무튼 그가 활약을 하는만큼 우리도 그만한 능력을 보여줘야했다. 프리드의 일기를 통해 봉인석이 만들어진 지역들을 알아내고, 각 지역에 사람들을 보내 정보와 자금을 모으고, 대륙의 정세와 향후 일을 예측하는등…… 판테온에 있었을때보다 더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이데아님."

"뭡니까. 전략을 구상하고 있을 때는 귀찮게 하지 말아달라고 했을텐데요."

"중요한 소식입니다. 그분이 움직이기 시작했답니다."

"…… 정말입니까?"

"무릉을 첫번째로 선택했다고 합니다."

무릉이라. 오시리아 대륙 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오지중의 오지, 봉인석을 보관하고 있는 지역 중 가장 보안이 허술한 곳이라는 정보가 단숨에 떠올랐다. 물론 그런 단순한 이유로 그가 거기를 선택했을리 없다.

앞으로 회수해야하는 봉인석이 몇 개인데 시작부터 들킬 수는 없지. 그런 면에서 외부와 사실상 고립되어 있는 무릉을 시작으로 삼은건 현명하다.

"그분이 실패하시진 않겠죠?"

"그럴리는 없습니다."

솔직히 그의 능력이면 실패하는게 더 힘들다. 오직 봉인석을 회수하는것만 따지면 그 혼자라도 어떻게든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으면 수많은 이들을 적으로 돌렸겠지.

대륙의 정보를 모으면 모을수록 얼핏 잔잔해보이는 수면 아래로 꿈틀거리는 시커먼 무언가가 보였다.

엘나스 산맥에서 몰아치는 눈보라 너머의 성, 니할 사막의 귀곡성이 울리는 지하 유적, 시간의 신전 한 귀퉁이에서 뱀처럼 기어다니는 어둠까지…… 그나마 다행인건 곧 날아오를 검은 날개가 이쪽의 통제아래에 있다는 것 정도인가.

잠시 후, 막 돌아왔을 그가 막사의 천이 젖히며 날 찾아왔다.

"이제 돌아오셨습니까."

"그래."

그가 아담해보이는 상자를 옆에 끼고 있는게 보였다. 저것의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굳이 안봐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스타트선은 잘 끊으신 모양이군요. 그런데 대체 저분이 왜 저렇게 되신겁니까."

실패할리 없다는건 알았지만 불안감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다만 그 불안은 그의 능력부족이 아닌 자신의 실책에 대한 것 때문이다.

신관들에게 둘러싸여 집중 치료를 받고 있는 카이저나 지쳐 나가떨어진 이들을 보니 제대로 당한게 확실해보였다. 무릉에서 저런 짓을 할 수 있을만한 사람은…… 설마.

"무공의 저력이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나는 예상했던 상황이 벌어졌음을 인정해야했다.

"고작 팬더따위가 카이저님을 어떻게 하셨다는 말입니까."

"정보가 부족했다."

"정보가─ 말입니까?"

니가 제대로 일을 못했다. 그는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무릉이 너무 오지라 정보원을 많이 심지 못한 것은 변명이 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안정화되며 어느 지역이든 순식간에 갈 수 있는 기적의 포탈, 디멘션 게이트가 있으니까. 그 긴 시간동안 일개 팬더 하나의 무력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해 봉인석 회수의 시작부터 돌발상황이 일어나게 만든건 철저히 나의 실책이었다.

그리고 공백의 정보로 발생한 돌발상황을 처리한건 그의 실력이겠지.

"…… 자세한걸 묻고싶지만 구체적인 정황은 다른 사람들에게 듣도록 하죠. 다음 계획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실책을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 계획의 성공뿐.

작게 이를 악물며 테이블에 지도를 펼치고 다른 지역들을 짚었다.

"어디를 고르든 상관없습니다. 지역마다 계획이 세워져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엘나스로."

"엘나스……?"

이 지역의 봉인석을 회수하기 위한 계획은─ 과연, 그래서인가.

"알겠습니다. 루디브리엄에는 엔젤릭 버스터를 보내도록 하죠."

남자의 오닉스 드래곤은 유령 군단장의 감시를 맡아야 하니 적합자는 그 여자애밖에 없다. 그는 엘나스에서 일을 마친 후 곧장 니할에 갈 예정인 것 같으니. 소녀에게 연락을 보내기 위해 몸을 돌린 찰나.

"그 전에 잠깐."

갑자기 그가 나를 붙잡았다.

"…… 뭡니까."

"이 지역들 정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나?"

"저희를 못 믿으시는겁니까."

역시 이번 일에서 생긴 돌발상황에 심기가 불편해진게 확실했다. 애써 항변해려고 했지만 그는 먼저 말했다.

"그건 아니다. 다만 이번같은 일이 또 생기면─"

블랙윙 모자 아래의 붉은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무척 곤란해."

거절은 용납치 않는다. 나는 혀깨무는 심정으로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파견 간 이들에게 현 상황을 보고해라고 지시하도록 하죠."

하아 젠장. 일거리가, 일거리가 늘었어! 내가 잘못한거라 따질 수도 없고 진짜, 아아……!

"그분이 뭐라고 말씀하신겁니까 이데아님?"

"지금 당장 각 지역에 파견나간 이들에게 그곳의 특이사항을 모두 보고해라고 하세요."

"예? 정기 보고는 바로 얼마 전이였는─"

"그 남자가 직접 지시했습니다."

내 말에 부관놈이 입을 다물었다.

"특히 곧 봉인석을 회수할 루디브리엄과 엘나스 두 지역은 집중적으로 살피라고 전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통신부로 후다닥 뛰어가는 부관놈을 보며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무공, 그 망할 팬더는 어지간해선 무릉도장에서 사실상 나오지를 않아 정보가 거의 없었다. 다만 무릉도장의 꼭대기층을 담당하는만큼 절대로 약자는 아닐거라 예상했고 - 일단 무릉자체가 무술을 익혀서 앞발 후려치기 한 방에 어설픈 전사의 머리를 으깰 수 있는 팬더가 널린 곳이다 - 대비했건만.

"그분이 아니었으면 이번 봉인석 절대로 회수 못했을 겁니다."

"그정도입니까?"

"예. 카이저님이랑 다른 사람들이 그 노인네의 힘을 빼놓긴 했지만……."

단 이격에 쓰러뜨렸다는 목격자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 남자의 본래 특기는 격투기가 아니라 검술이라는 사실이 덩달아 떠올라버렸기 때문이다. 일평생 무술을 익힌 팬더를 2년 내외로 격투기를 익힌 검사가 제압했다는 말이잖아 이거.

화가 났을만 했다. 현재의 메이플 월드에 영웅을 제외하고 그정도로 뛰어난 실력자는 사실상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군요.

"이, 이데아님!!"

"왜 그렇게 소란입니까."

"루디브리엄에서 긴급 전보입니다! 영웅이 그곳에 있답니다!"

얼굴이 파삭파삭 굳었다. 하필 영웅?

"영웅중 누구입니까."

"백발에 청홍 오드아이의 남성이랍니다."

그런 개성적인 외양의 영웅은 한 명뿐이다. 빛의 마법사 루미너스.

"루디브리엄 시계탑 최하층에서 알 수 없는 일들이 생기고 있어 그것을 해결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답니다. 그리고 시계탑 최하층에는─"

"예. 봉인석이 있지요."

시계탑 내부는 시간이 뒤틀려있어 봉인석 자체의 보안상태는 허술하지만 가는 길은 결코 허술하지 않은 곳이건만 이젠 영웅까지. 그는 이걸 예측하고 정보를 다시 확인하라고 했던건가? 엔젤릭 버스터에게 대기를 명령하며 그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니 '역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이지, 어디까지 내려다보고 있는걸까 저 남자는. 같은 영웅이라서 알 수 있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정보망이 있었나?

"예상하고 계셨습니까?"

"대충은."

"그럼 왜 제게 말해주시지 않은겁니까."

내 질문에 그는 귀찮은듯 게슴츠레 눈을 뜨며 나를 보았다.

이런건 책사인 니가 알아내야지 왜 나한테 묻느냐. 그런 시선이 돌아왔다. 괜히 찔려서 눈을 반쯤 깔았다.

"…… 뭐, 그건 됬습니다. 혹시 루미너스를 처리할 방도가 있습니까."

그래도 예전에 동료였다는데 뭔가 아는게 없을까~ 하는 심정으로 던진 말이었건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뜬금없이 편지를 보내야겠다고 말했다.

편지지를 갔다주니 그는 중간중간 고민하며 무언가를 적어냈다. 내용이 궁금했지만 한쪽 팔로 내용을 가리고 써서 알 수 없었고, 다만 쓰는 내내 찌푸리던 표정으로 보아 진지한 내용임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했다.

"뭐라고 쓰신겁니까?"

"몰라도 된다. 어쨌든 그걸 루미너스한테 전하면 유인은 확실하게 될거다."

확신이 가득 찬 목소리.

"알겠습니다."

설마 미치지 않은 이상 옛 동료라고 이쪽 사정을 냉큼 알려줬을리는 없고, 다른 장소로 유인시키는 것만으로 일을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치운셈이다.

수 시간 후, 루디브리엄에 대기중이던 엔젤릭 버스터로부터 몰래 전달한 편지를 읽은 루미너스가 길길이 화냈다는 소식을 들어 다시 안물어볼 수 없었다.

"정말 편지에 뭐라고 쓰신겁니까?"

"…… 그놈이 어떻게든 숨기고 싶어하는 깊고 어두운 과거."

약점잡고 뒤흔든거였습니까! 그래도 당신 동료 아니었나요?

무뚝뚝한 얼굴로 태연하게 악랄한 짓을 한 그를 보며 나는 질린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

엔젤릭 버스터side.

한참 준비중일때 갑자기 떨어진 이데아님의 대기 명령에 나는 툭툭 바닥을 차며 저 멀리 요주의 인물이 머무는 방을 응시했다.

"영웅 루미너스……."

멀리서 잠깐 본거였지만 상당히 특이한 생김새의 남자였다. 백발에 오드아이, 신관복과 비슷한 하얀 로브와 평균보다 더 긴 지팡이. 하지만 그런 생김새보다 더 굉장했던건 그저 보기만 했는데 숨이 막혀올정도로 압도적인 마력이었다.

태생부터 마력을 쓰지 못했던 나지만, 때문에 그쪽으로 더 발전한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저 남자에게 섣불리 덤볐다간 조금이 아니라 아주 거하게 피를 볼거라고.

[알면 함부로 부딪히지 마라 티어.]

"알아요."

무릉의 봉인석이 회수되었다는 소식은 막 들었다. 그 기세를 이어 바톤을 받는게 내가 해야하는 일인데 하필 시작하기도 전에…….

[빛과 어둠, 상반된 마력을 가지고 있는 놈이다.]

"그런게 가능해요?"

[지금 니 눈앞에 있지 않느냐. 거기다 어느쪽도 꿀리지 않아보이는군.]

에스카다가 이렇게 말할정도면 저 루미너스라는 남자는 정말 터무니없는 마법사라는 뜻이다.

'저것이 이 세계의 영웅.'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 힘이 약한지 않다는건 알지만, 매번 상대해야하는 적들이 나보다 더 강하다.

분해. 너무 분해.

[침착해라 티어. 입술에서 피난다.]

그제서야 내가 잘근잘근 입술을 씹고 있음을 깨달았다.

[미소녀는 얼굴을 소중히 해야지.]

"하하…… 알았어요."

힘을 끌어올려 상처를 없앤 나는 루미너스를 계속 관찰했다. 그러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가 시계탑 최하층에서 생기는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는걸 알게되었는데, 이변의 근원이 봉인석때문임을 아는 나로서는 더 기다리기 곤란해졌다.

그때 한 동족이 다가왔다.

"엔젤릭버스터님."

"무슨 일이죠?"

"그분께서 이 편지를 영웅 루미너스에게 몰래 전달해라고 하셨습니다."

"편지를요?"

갑자기 왜 편지를? 나는 여기에 뭐라고 쓰여있냐고 묻고싶었지만 상대도 아는 눈치가 아닌 것 같아 의문점을 뒤로하고, 투명한 리본을 휘둘러 편지봉투를 구겨지지 않게 루미너스가 머무는 방의 창문으로 던졌다.

그리고 잠시 후.

"어떤 자식이야아아아──!!"

우와아아아…….

[대체 뭐라고 쓰여있었길래 편지 한 통으로 저런 마법사의 이성을 증발시킨거지?]

"그러게. 굉장하다."

빛이랑 어둠이 막 번쩍번쩍거려.

편지 쓴 놈을 기필코 족쳐버리겠다는 의지로 활활 불타는 붉은 눈을 희번뜩하게 빛내며 남자는 어딘가로 빠르게 가버렸다.

"아무튼 그가 갔으니 이제 행동할 수 있겠네."

[하지만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니 속전속결로 간다.]

"맡겨둬! 그건 내 전문이니까!"

나는 곧바로 시계탑 안으로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참고로 검호가 쓴 편지의 내용은

『영웅 루미너스. XX시까지 ──에 와라. 그러지 않으면 너의 어두운 과거를 메이플 월드 방방곡곡 빠짐없이 퍼뜨리겠다.

힘이… 어둠이…… 넘★쳐☆흐★른☆다★↗↗↗↗아↗하→하→하→하→하↓!』 였습니다.

@적현월 - 그런 검호를 서포트하는 노바족들도 고생.

@이년아 - 정확히는 키네시스와 검호는 각자에게 도움이 되는 거래를 할 예정. 그리고 긴 코멘은 당연히 꼬박꼬박 봅니다!

@E토 - 이런식으로 코멘 다시면 어떻게 답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대어의예감 - 봉인석 회수팀인 카이저가 무공에게 두들겨맞았습니다.

@Ratios - 거기다 노인공격.

@적월식 - 다행히 탱크같은 무공의 맷집과 아직 검호의 팔이 덜 나아 데미지가 많이 안들어갔다고 합니다.

@레시코 - 이렇게라도 강적이 나와야 밸런스가 맞죠.

@좀비라스 - 약하진 않은데 상대하는 적들이 영...

@Sisre - 인게임과 동일.

@심온 - 엘나스, 오르비스, 니할, 무릉, 빅토리아 아일랜드, 루디브리엄, 에레브. 이 외의 지역들(리프레, 크리티아스 등)의 것은 검마 봉인때 쓰였음.

@좌절거북이 - 2단 변신을 생각했으나 엑스트라를 너무 활약시키지 싫었어요.

@모케코쨩 - 영웅즈 제외하면 진짜 쎈거에요 무공.

@반월유화 - 자주 못 올려서 죄송합니다.

@tlem000 - 라테일 세계에서의 영웅이었습니다.

@Legendssj2 - 좀 더 대사라든지 기타등등이 있었지만 다 가지쳐졌음.

@루엔시르온 - 200렙 넘은 카이저를 디버프 잔뜩 뒤집어쓴 상태에서 후드려 패심.

@라그실 - 3월에 개학이라 자주 못 올릴듯... 이번 학기 시간표가 아주 그냥.

@Dulcet - 물론 검호뿐만 아니라 노바족도 고생.

@노란우산s - 안막는게 아니라 못 막는거. 블랙윙 아지트 내의 누군가에게 빙의하려고 해도 주위에 있는게 노바족뿐인데 노바족 종특이 뛰어난 마력&항마력이라 빙의가 사실상 불가능. 그래서 팬텀 오자마자 꿀꺽했지만.

@osh9121 - 멀쩡해질쯤에 굴려서 완치를 늦출겁니다.

@루서스 - 상대가 넘 쎘어요.

@밤일 - 네. 파픈은 좋은 히로인이었습니다.

@류동지 - 아스카는 스우 감시중입니다.

@Blake117 - 개학하면 연재가 더더욱 느려질거에요... 으흐흑. 올해 안에 완결낼 수 있을까.

@괴상한이불 - 아스카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건전한독자 - 여기서는 주인공 보정을 받았으니까 날아다니는거죠.

@seyun - 검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되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피해를 받지 않길 바랍니다.

@ReFrnate - 안죽었습니다. 대신 디스크에 걸린 것 같지만요.

@칼크래프트 - 검호의 다음 킬은 애꿎은 팬더가 아니에요.

@리아카에린 - 오타는 수정했습니다. 쓰다보니 같은 표현을 두 번 썼네요. 키네시스는 뭐, 자기 얻을거 확실하게 다 얻을겁니다.

@Mese - 정말로 힘내면 대참사가 일어날 것 같지만.

@Eluines - 루미너스는 흑역사 갱신!

@책벌레씨 - 검호 혼자 고생하는건 아닙니다.

@darkdestiny - 뭐, 애초에 인생 자체가 고난의 길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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