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은월side.
귀고리형 통신기로 전해지는 변경된 계획에 절로 인상이 써졌다.
"엔젤릭버스터 혼자서 봉인석 회수를 한다고?"
[이번 일은 그녀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루디브리엄의 봉인석은……."
[그녀에게는 에스카다가 있으니 그렇게 위험하진 않을겁니다.]
"그렇다면 나는 아지트로 귀환해야 하나?"
[아니요. 만약의 상황을 위해서 은월 당신은 대기하고 있으세요.]
"…… 알았다."
나는 통신기를 끄며 벤치에 등을 기댔다.
여태껏 보아온 것을 생각하면 엔젤릭버스터 그 아이가 약한건 절대 아니지만 시계탑 최하층, 시간이 뒤틀린 그곳까지 가서 무사히 봉인석을 가져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수 백년 전부터 어딘가 망가져있던 그곳은 봉인석을 보관하기 위해 그것을 지키는 결계가 쳐지며 어딘가 한층 더 꼬여버렸으니까.
이데아 그 여자가 섣불리 이런 결정을 내렸을리는 없지만 - 지금까지 오는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건 그녀니까 - 이번 일은 조금 불안하군.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저쪽에서 먼저 연락이 올테니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되려나.
가방에서 다소 낡은 책을 꺼냈다.
"프리드."
나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게 맞나?
갓 태어난 신생아보다 더 조심조심 다뤄졌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이의 손길이 닿아 이제는 너덜거리는 프리드의 일기장을 천천히 넘겼다. 그래도 노바족들이 마법을 걸어 이정도지, 그마저 없었으면 옛저녁에 페이지가 다 떨어져나갔을 것이다.
검호, 그를 돕는 대가로 내가 받기로 한 것은 두 개였다. 하나는 봉인식을 가동시키며 잃어버린 존재의 시간, 다른 하나는 이 일기장이다. 단순히 프리드의 것이라는 이유로 받고자 했던건 아니다. 이 안에는…….
『─이상하다. 그때의 봉인식은 나 혼자서 가동할 수 있는게 아니었는데.』
봉인석의 위치를 알아내야했지만 유물이라고 봐도 좋을 일기장을 더이상 훼손할 수 없어 일기장을 통째로 복사되는 과정에서 찾아낸 숨겨진 페이지.
『몇 번을 확인해봐도 똑같았다. 그때, 검은 마법사를 봉인해낸 그 순간, 봉인식을 가동하기 위해 희생된 누군가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처음 이 부분을 읽었을때 오열했었다.
『우리에게는 일곱번째 동료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용기있는 희생을 해준 동료가.』
프리드. 나의 소중한 친구.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존재의 시간'이 모두 지워진다는게 이런거였나?』
나의 존재를 알아준 사람이 너라서 얼마나 기뻤는지.
『예전에 다같이 묻었던 타임캡슐을 찾아내 확인해보았다. 사진들 중 몇몇에서 어색하게 비워진 공간들이 보인다. 여기에 우리의 동료가 있었던건가?』
그는 그저 알아내는걸로 끝내지 않았다.
『이 세상의 모든 정보가 기록된다는 불가사의한 장소가 있다고 한다. 정말로 그런 곳이 있다면 우리의 일곱번째 동료에 대한 정보도 있을 것이다.』
아프리엔이 없었어도 그는 현 시대까지 존재해왔던 수많은 마법사들 중에서 첫 손에 꼽힐 대마법사였고.
『마침내 차원을 건널 수 있는 거울을 만들었다.』
변함없이 동료들을 생각하는 이였다.
『놀라워! 도서관의 형태라니!』
또다시 앞이 흐려졌다. 볼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랐고,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건 어쩔 수 없었다. 눈물샘이 제어되지 않아 투둑투둑 떨어지는 물방울에 페이지가 젖지 않도록 소매로 눈가를 닦아냈다.
『이런…… 정말, 정말로 미안해.』
아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잊어버려서 미안해 유에.』
나의 존재를 알아내기위해 노력하고, 기어코 알아준 것만으로 더없이 기쁘니까.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내가 하는거였는데.』
아니, 그런 말은 하지마라. 그때의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는 못한다. 모두에게서 잊혀진다는건 그만큼 괴로우니까. 하지만 그때의 선택은 분명 내 의지로 한거였다
『만약 유에 니가 살아있다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모두가 널 잊지는 않았어. 적어도 나는 너를 알아냈고, 죽을때까지 기억할거야.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일곱 번째 동료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기적에 감사를.
뜨뜻해진 눈가를 손으로 덮어 식히고, 소리나지않게 책을 덮으며 느릿느릿 숨을 고른 뒤 일기장을 다시 가방 안에 넣었다.
통신기가 울린건 그때였다.
"…… 누구지?"
[유에. 급한 일이 생겼다.]
그, 검호였다. 이데아가 아닌 그가 먼저 연락했다는 점에서 나는 첫 번째로 짐작가는 것을 물었다.
"엔젤릭버스터가 실패했나?"
[아니. 그녀가 안전하게 봉인석을 가지러 갈 수 있도록 이런저런 공작을 하다가 좀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는데, 니가 그걸 대신 처리해줘야겠다.]
"대체 무슨 일이─"
그 순간 갑자기 하늘과 땅에 새카만 마법진이 새겨겨지며 누군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쪽을 향해 날아오며 외쳤다.
"니놈이냐아아아아──!!"
"루, 루미너스?!"
격럴하게 타오르는 붉은 눈의 살의만은 검은 마법사와 판박이인 그가 이글거리는 보라빛을 휘감은 샤이닝 로드를 휘둘렀다.
더 볼 것도 없이 후방으로 미끄러지듯이 이동해 아슬아슬하게 마법진의 영역에서 벗어났다. 빛을 불살라버릴 어둠의 불길이 치솟은건 그 직후였다.
"대체 왜 그가, 아니 것보다 무슨 일을 벌인거냐!"
[루미너스가 루디브리엄에 있어서 그때문에 봉인석 회수에 차질이 안생기도록 다른 곳으로 유인시켰는데, 유인하기 위해 쓴 수단이 좀 그랬다.]
"'좀 그랬다' 수준이 아니잖아?!"
저렇게 이성을 상실한 루미너스는 이 시대로 오기 이전에도 본 적이 없다!
"쫑알쫑알 뭐라고 지껄이는거냐!!"
두개골을 박살낼 기세로 휘둘러진 샤이닝 로드 풀스윙을 머리를 낮춰 아슬아슬하게 피해내자마자 빛의 화살들이 연달아 날아왔다. 너클에 정령을 깃들여 화살을 부수고, 이어서 바닥에서 솟구치는 검은 사슬들을 발길질로 쳐냈다.
"대체 뭘로 루미너스를 유인한거냐?"
[그가 어떻게든 감추고 싶어했던 어두운 과거.]
"…… 약점을 아주 제대로 찌른 모양이군."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는 몰라도 지금 그의 반응으로 보니 절대 가벼운게 아닌것만은 확실했다.
[아무튼 엔젤릭버스터가 봉인석을 가져올때까지 유에 니가 그를 상대하며 시간을 끌고 있어라.]
"지원군은?"
[루미너스정도의 마법사에겐 노바족의 변신 마법이 들킬 것 같아 방금 남는 블랙윙 간부 한 명을 보냈다.]
"…… 프란시스는 아니길 빈다."
[그 애는 아니니까 걱정마라.]
그렇게 통신기가 꺼졌고, 직후 새하얀 날개의 대낫을 든 사신들이 내 목을 자르기 위해 날아드는 광경에 크게 숨을 들이키며 바람의 정령을 이 몸에 강림시켰다.
금방이라도 날 죽일듯이 분노하던 루미너스는 갑자기 몰아친 폭풍의 칼날에 사신들이 찢기는걸 보고 이성을 되찾았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살펴보았다.
"니놈…… 누군지 몰라도 보통이 아니군."
"그야 당연히."
너와 마찬가지로 영웅이었는데.
느닷없이 동료와 싸우게 된 작금의 상황에 헛웃음이 나올만큼 우스웠지만, 결국 언젠가 벌어졌을 일이라고 생각하며 위안했다. 봉인석을 빼돌리기 위해 블랙윙에 들어가기로 결정되었을때부터 오늘의 일은 예고되어 있었다. 단지 조금 일찍 일어났을뿐.
"어떻게 그 일을 알아낸거냐."
이건 조금 곤란하군. 검호가 루미너스를 유인하기위해 찌른 과거가 무엇인지는 듣지못했는데. 것보다 그에게 저 정도로 분노할만한 어두운 과거가 있다는게 더 신기했다. 내가 아는 루미너스는 답답할정도로 바른 빛의 마법사였으니까.
뭐라고 말했다간 이쪽 정보가 나갈지도 모르니 그냥 입을 다무는쪽이 나을 것 같다.
"…… 말하지 않겠다면 이쪽에서 직접 듣도록 하겠다."
나중에 돌아가면 대체 무슨 과거를 찌른거냐고 반드시 물어봐야겠어.
루미너스가 샤이닝 로드를 앞으로 내질렀다. 잠깐 저건?
"빛이여!"
몸을 뚫어버릴 기세로 쏘아진 새하얀 빛의 다발에 곧장 수호의 정령들을 불러내 막아냈다. 그래도 빛 마법은 여전히 사용하고 있어서 자세만 보면 뭘 쓸지 대충 예측이 되는군.
어이없게 간단히 마법이 막혀 당황하는 그를 보자마자 곧장 칼날의 정령을 불러내 그를 붙잡아 땅에 떨어뜨렸으나, 그는 바로 텔레포트로 거리를 벌리려 했다.
"도망치지 마라!"
정령이 깃든 두 팔로 땅을 내리찍어 쿠웅─ 둔중한 파동을 퍼뜨렸다.
"크……!"
대지를 타고 퍼진 파동이 그의 몸을 뒤흔들었다. 아마 전신이, 특히 다리가 꽤 저릴거다.
"일단 대신 사과하도록 하지. 이쪽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
"무슨 헛소릴 하는거냐!"
"정말로 미안하다."
루미너스가 마법사치고는 굉장히 뛰어난 육탄전 솜씨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봤자 진짜 전사인 검호나 아란, 나와는 비교할 수는 없다. 하물며 아직 저주 이전의 실력을 다 찾지 못한 지금이라면……!
기회를 잡느라 그의 얼굴을 제대로 못 보았다. 도망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당황해야할 그가, 더없이 냉철한 표정임을 뒤늦게 알고 아차했다.
"정말로 미안하면─"
머리 위로 빛과 어둠이 뭉쳐지며 거대한 검의 형태가 되었다.
수호의 정령? 아니, 그걸로는 못 막아. 강신? 시간이 없어! '저건' 대체 뭐야?!
"사라져라."
그대로 정수리를 향해 떨어지려는 흑백의 검을 보고 땅을 접어 이동하려는 순간, 뜬금없이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미너스?"
갑자기 검이 멈췄다. 나는 흐르는 식은땀을 채 닦아내지 못하고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그와 함께 끼릭끼릭 고개만 돌렸고, 그곳에서 보인 것은.
벼색 머리를 곱게 땋아내린, 한아름 꽃을 들고 있는 따뜻한 인상의 소녀. 예전에 잠깐이지만 본적이 있었다.
"…… 라니아?"
그래. 그때 루미너스가 어둠에 미쳐 날뛰었을때 그 여파로 쓰러졌던 소녀.
"뭐하고 있는거에요 루미너스?"
"니가 어떻게 여기에─."
"설마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한거에요?"
소녀의 푸른 눈이 젖어들어갔다. 몇 초 전까지 날 죽이려들었던 루미너스가 쩔쩔매며 소녀에게 뭐라고 해명하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놀라웠지만, 내 머리는 이 상황의 헛점을 짚어냈다.
상식적으로, 루미너스와 친밀해보이는 소녀가 이 자리에 갑자기 출현할 수 있는 확률이 있나?
"저놈은 적이야. 그러니까 여기서 떨어져 있어."
"그가 무슨 짓을 했어요?"
"나중에 말할테니까 일단은 떨어져 있─"
빈틈!
나는 한 걸음에 그의 뒤로 다가가 정령으로 강화한 주먹으로 뒷통수를 제대로 후려쳤다. 풀썩, 고꾸라지는 그의 몸을 붙잡았다.
어째 만날때마다 머리를 치는 것 같군. 미안하다. 다친건 다 치료해두마.
놀란 것처럼 크게 눈을 깜빡이며 조용히 손을 들어 입을 가린 소녀에게 나는 말했다.
"안어울리니까 그 변신은 이제 풀어라."
"─알겠습니다."
펑! 연기와 함께 소녀는 덩치 큰 남성으로 변했다. 아니, 돌아왔다.
변신술사 바로크. 지원 온다는 놈이 저놈이었나? 확실히 프란시스보다는 유능하지만 비겁하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 비겁함으로 살아남은거라 더더욱 기분이 나빴다.
"죽이지 않을겁니까?"
"지금 죽이면 안된다."
그럴 생각도 전혀 없고.
나는 가지고 있던 포션을 루미너스의 상처에서 붓고,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어 그가 머물던 숙소를 찾아 데려다두었다.
***
테스side.
"정말이지, 끝이 없잖아!"
"불평은 그쯤하고 몬스터나 잡아."
"화가 안나게 생겼어?! 본인이 잘못해서 시계탑 안을 몬스터로 들끓게 했으면서 그 뒷처리를 우리한테 떠넘겼잖아!"
"오, 올리비아. 떠넘긴게 아니라 정식으로 의뢰하신거야."
"아무튼!!"
신경질적으로 화살을 쏘아내 다가오는 로봇들을 순식간에 벌집으로 만든 올리비아를 보며 슈가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계속되는 그녀의 불평이 지겨운지 론도가 말했다.
"그래도 이쪽 구역은 거의 끝나가니까 그만 투덜거려."
"앞으로 몇 군데나 남았어 테스 오빠?"
"여기 공장 구획이 6개니까 앞으로 4개 정도……."
"아악! 그게 뭐야?!"
확실히 많긴 하지.
어째선지 시계탑 내부의 장난감 공장이 오작동을 일으켜 강력한 장난감…… 그냥 몬스터를 마구 찍어내서 공장장 카호가 우리에게 퇴치를 부탁했다. 사실 처음에는 우리 말고도 다른 모험가들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몬스터들이 강력해 상당수가 나가떨어지고 지금은 우리만 남게 되었다.
보수를 두둑하게 준다고 했지만 이렇게 몬스터가 많아서야. 올리비아는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계약하고 완전히 달라. 나중에 꼭 따질거야!"
"그래, 제발 그래라."
론도도 지쳤는지 근처에 굴러다니는 장난감 박스에 대충 앉으며 숨을 골랐고, 슈가도 어느새 앉아 마나 포션을 물처럼 들이키며 갈증을 달래고 있었다.
"슈가. 포션 하나만 줄 수 있어?"
"아, 여기요."
"나도 하나만~"
"포션정도는 니가 챙기지?"
"남이사 너도 얻어먹고 있잖아."
또 티격대는 둘을 말리는것도 이제는 지친다. 나는 묻지도 않았는데 포션을 준 슈가에게 고맙하고 말하며 적당한 상자에 앉았다.
"아, 이 포션 맛있네."
"역시 그렇죠?"
"뭔가 이온음료같은 맛이야."
파X 에X드처럼. 커닝시티에서 먹어본 음료를 떠올리며 다 마신 포션 병을 가방에 넣었다. 빈 병을 갖다주면 적지만 돈을 준다.
"마법사들이 포션 맛에 신경을 쓰다니, 세상 참 많이 변했어."
"예전 포션이 그렇게 맛이 없었나요?"
"슈가 너는 그쪽 분야가 아니라서 모르나본데, 이쪽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연금술사들은 포션을 뭐랄까…… 연료나 빨간약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심하거든."
효능만 좋으면 맛따위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놈들이 널려있어. 엘릭서 한 방울에 혀가 오그라들정도로 떫어도 상관을 안해. 그래도 마법사라고 슈가가 난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알기론 작년부터 새로 마법사 협회에 포션을 납품하는 업체가 생겼다더라고요."
"과연 그랬군."
"그 뭐더냐……."
그녀는 빈 포션의 뚜껑에 쓰인 라벨을 읽었다.
"'노바'라는 곳이네요."
"어느 단체인지 몰라도 참 바람직하네."
대충 예상해봐도 이 포션 납품업체는 대박을 터뜨리지 않았을까. 지난 수 백년간 효능과 반비례하는 맛을 자랑하던 오만가지 포션들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포션은 상당히 양호한 맛이라, 모험가들은 물론 일반인까지 상비용으로 사가고 있으니. 분명 떼돈 벌고 있을거다.
"야 내 모자 내놔!!"
"어디 가져갈테면 가져가봐~"
"…… 쟤들은 그새 팔팔해졌네."
론도의 모자를 빼앗아 휙휙 뛰어다니는 올리비아와 그걸 또 쫓아가는 론도를 보니 그저 웃음만 나왔다. 어째 저 둘은 매번 패턴이 똑같냐.
"여기까지 올라와봐! 그럼 줄─ 엄마야!"
"올리비아!"
공장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론도를 약올리던 올리비아가 장난감 상자더미에 착지한 순간, 갑자기 상자들이 마구 들썩이며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태껏 정리해온 로보들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큰 생김새가 마치…….
"엘리트 몬스터잖아!"
"대체 저런게 언제 생긴거야?!"
"불평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저것부터 붙잡아!"
말이 떨어지자마자 덮쳐오는 거대 로봇의 집게팔에서 몸을 뺀 론도가 그림자를 거미줄처럼 넓게 펼쳐 로봇을 옭아맸다.
"피해 올리비아!"
슈가의 전면으로 금빛 찬란한 마법진이 떠오르며 십자가의 형상에 창만한 크기의 화살이 로봇에게 쏘아져 우드득! 가슴 중앙을 꿰뚫었다. 한 발 먼저 뛰어올라 로봇을 피한 올리비아가 착지하며 이를 갈았다.
"이 고철덩어리가……!"
"분하면 너도 한 방 먹여."
"말 안해도 그럴거야!"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기며 눈에 마력을 집중시킨 그녀는 활대에 바람을 휘감아 4장의 날개를 펼쳤고, 한 박자 뒤 엄청난 수의 화살이 폭풍처럼 난사했다. 저 일격에 로봇이 순식간에 걸레조각으로 될거라 예상했으나─
새카만 눈과 같은 결계가 로봇의 위로 씌워졌다.
"잠, 멈춰!"
직후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피보라가 일었다.
올리비아가 자신이 날린 화살에 되려 당해버린 광경에 다른 둘은 경악한채 굳어버렸고 - 차라리 낫다. 복수한다고 날뛰었으면 똑같이 당했을테니 - 나는 곧장 슈가를 불렀다.
"슈가! 힐링!"
"아……."
"넋놓고 있지말고 빨리!!"
멍한 얼굴의 슈가를 잡아끌어 올리비아 옆에 던져두고, 이어서 내려쳐지는 로봇의 집게발을 발로 차서 쳐냈다.
"크윽!"
"테스 형!"
"무작정 공격하지마! 저놈 공격반사를 쓰니까!"
반사될걸 각오하고 찬거지만 고스란히 되돌아온 충격에 다리가 저릿저릿했다. 적어도 당장 이쪽 다리로 공격하는건 무리일 것 같다.
공격반사 마법. 방어마법에 통달한 몇몇 마법사나 정말 가끔씩 나타나는 엘리트 몬스터들이나 쓰는걸 하필 지금 저 로봇이 사용하다니. 운이 나쁘다.
"공격을 안하면 어떻게 저놈을 쓰러뜨려요!"
"마법 풀릴때까지 기다려. 오래 지속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
나는 힐끔힐끔 뒤쪽을 보았다. 겨우 정신을 차린 슈가가 올리비아에게 힐링을 쓰고있었지만 아직 다 회복되기엔 먼 것 같고, 둘이서 시간을 끌기엔 저 몬스터의 기술이 위험하다.
"…… 노익장의 힘을 보여주지."
숨을 들이마시며 두 주먹에 에너지를 집중했다. 저 망할 공격반사 마법째로 박살내버리겠어.
나는 아프지 않은 다리로 자리를 박차 로봇의 전면을 향해 뛰어들었다. 좀 전에 슈가가 꽂아둔 신성한 금화살을 발판삼아 한 번 더 점프해 정수리 위로 올라갔고, 뒤로 젖힌 주먹을 있는 힘껏─ 내지르지 못했다.
"햐앗!"
맑은 기합성과 함께 갑자기 날아온 붉고 푸른 드래곤이 로봇을 집어삼켜버려서.
졸지에 헛방을 날려 휘청이며 착지한 나는 아무렇지않게 공격반사를 씹어먹고 로봇을 으스러뜨린 공격의 주인이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고 그곳에 있던 사람은 분홍색 머리를 작게 양갈래로 묶은, 검은색을 기조로 한 제복차림의 몹시 귀여운 소녀였다.
"괜찮아요?"
"어…… 응."
"다행이네요! 저기, 실례지만 아랫층으로 가는 계단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 저쪽이야."
"아, 저기 있었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니, 우리가 고맙지."
소녀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 저 무지막지한 여자애는 누구에요 테스 형?"
"나도 몰라."
요즘 메이플 월드엔 엄청난 애들이 많구나. 새삼 세월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졌다.
***
엔젤릭버스터side.
시계탑을 내려가는 도중 어쩌다가 사람들을 구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일냈군. 사람들에게 얼굴 보이면 안된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모른척하고 갈 수 없었다고……."
[나중에 이데아 그 여자한테 한 소리 들을거다.]
에스카다의 말에 서늘한 눈으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는 이데아의 얼굴이 너무도 쉽게 떠올랐다. 그것만으로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 나 좀 살려주라 에스카다."
[일단 봉인석부터 회수해라. 이래놓고 임무 실패하면 정말로 가만히 안둘거다.]
실패하면 근신으로는 절대 안끝날거야! 이데아 그 여자가 나같은 멀쩡한 전력을 놀린다는건 말도 안되고, 온갖 험악한 임무는 다 하게 될거라고!
나는 가능한한 빨리 시계탑의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중간중간 보이는 자잘한 몬스터들은 스킬을 쓸 필요도 없이 가벼운 마력탄만 날리기만 하면 처리되었고, 그렇게 한참을 내려간 끝에 마침내 나는 시계탑 최하층에 도착했다.
루디브리엄 가장 아래에 있음에도, 마치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듯한 황홀한 전경이 펼쳐진 곳으로.
"맙소사……!"
입술을 비집고 절로 탄성이 나왔다. 감상에 빠져있지 말라고 지적해야할 에스카다마저 말이 없었는데, 그만큼 이곳의 풍경은 눈이 멀어버릴만큼 아름다웠던 것이다.
밤하늘 아니, 우주와 같은 배경 속에 색색의 장난감 블록으로 이루어진 탑과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시계의 문양이 말이 안나오는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심지어 저 아래에서 돌아다니는 몬스터들마저 마치 이 세계의 생물이 아닌 것처럼 생겨 - 우리 노바족과는 다른 의미로 타 차원에서 온 것 같은 -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건 정말…… 대단하군.]
"너무 아름다워. 만약 나중에 시간이 난다면, 다시 이곳에 와서 여기를 제대로 구경해보고 싶을만큼."
[일이 끝난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와보는게 어떤가?]
"그거 좋네."
누가 놓았는지 모르는 사다리가 쭉 내려져 있었지만 하나하나 밟고 내려갈 시간이 없었기에 날개를 펼쳐 그대로 뛰어내렸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임에도 마치 밤하늘에 뛰어드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가볍게 날개짓하며 어디에서부터 쌓아올려졌는지 모르는 장난감 탑들을 지나 계속 내려갔다. 이곳은 분명 시계탑 최하층이지만, 진짜 바닥에 도착하는데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풍경은 말 그대로 환상적으로 같이 변했다. 녹아내리거나 뒤틀린 시계가 곳곳에 보였고, 어째선지 광대인형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끼이이……!"
[함부로 가까이 가지 마라. 미약하지만 저것들도 시간의 힘을 쓸 수 있다.]
"알았어."
저런 것이 시간의 힘을 쓸 수 있다니. 이곳의 환경 때문인가?
기괴한 인형과 괘종시계를 짊어진 광대를 지나쳐 좀 더 내려갔을 무렵, 이번에는 뱃머리에 시계를 달고 공중을 떠다니는 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광대에 이어서 배?"
[상식이 먹히지 않는군. 이 공간 자체가 뒤틀렸어.]
"심각하네. 이게 봉인석때문이라고?"
[그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이 장소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
자세한건 모르겠지만 이곳이 몹시 기이하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았다.
나는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배들을 스리슬쩍 지나치며 한참을 또 내려갔고, 그러다 마침내 땅에 발을 디뎠다.
"드디어 도착……! 여기는 무슨 회랑이지?"
[하늘에 떠있는 태양의 심벌과 여기저기 널려있는 금고로 보아 뒤틀린 회랑이다.]
"여기에 봉인석이 있을까?"
금고=중요한 물건을 보관하는 것이니까 혹시 모른다고 말했는데 에스카다는 그걸 간단히 부정했다.
[그렇게 쉽게 보관했을리가 없지않나.]
"어째서?"
[수 백년 전이라고 해도 대마법사다. 하물며 시간 마법에 있어서 당시 최고의 권위자였다는 사람이 고작 금고따위에 보관할리가…….]
에스카다의 말끝이 흐려졌다.
"왜 그래?"
[티어. 당장 이 일대에 포격을 날려봐라.]
"에엑?!"
[웃긴 소리 내지말고 당장.]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에스카다?"
봉인석 회수의 첫째가 '소란없이 깔끔하게'잖아!
[생각해봐라. 젊은 나이에 시간 마법을 다루는데 있어서 정점에 올랐고, 영웅의 리더라고 불렸던 대마법사다. 그런 사람이 봉인석을 보관하는데 아무런 조치를 안했을까?]
"당연히 했겠지! 그러니까 여기서 찾아보려고─"
[일일이 금고를 뒤지고 다른 회랑에 있는 문을 열어젖히는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하지만 보안 마법이 걸려있을 곳을 찾는건 쉬워.]
그 말에 감이 왔다. 설마…….
[프리드라는 놈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봉인석을 보관하는데 외부의 충격에 대비한 마법쯤은 당연히 걸었겠지. 그걸 역이용하는거다.]
"내 공격에도 멀쩡한 곳이 곧 보호 마법이 걸린 장소라는 뜻?"
[바로 그거다.]
그러니까 전력으로 일대에 포격을 쏴라. 엄청 무식하면서 한편으로는 일리있는 결론에 항변할 거리를 찾지못한 나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고도 못 찾으면 에스카다 탓이야."
[일단 시도라도 해보고 그때 말해라.]
"알았어."
나는 심호흡을 하며 소울링에서 힘을 끌어올리며 소울슈터에 힘을 집약시켰다. 동시에 에스카다에게서 전해져오는 힘으로 전신을 강화했고, 소울슈터를 전면으로 겨누었다.
"─이것이 나의 전력 전개!!"
분홍색의 굵은 빛줄기가 쏘아지며 시계탑 최하층 밑바닥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몇 시간 후, 나는 그 포격에서 유일하게 무사했던 시간의 구 안에 숨겨져 있던 봉인석을 무사히 회수하고 귀환했다.
========== 작품 후기 ==========
왜 슈터를 장착했으면서 포격 스킬이 없는거야! 란 생각으로 썼습니다. 마침 똑같은 마법소녀 컨셉.
@대어의예감 - 그리고 바로크는 사망플래그 꽂았음.
@Dulcet - 뭐, 실제로는 까발릴 생각은 없고 적당히 유인하려고 했다지만요.
@Luye - 거기다 나중에 차원의 도서관 에피가 있을걸 생각하면...
@Jaiha - 언급이 안됬을뿐이지 검호도 밥 먹습니다. 특히 격하게 싸운 뒤에는 에너지 보충을 위해 더 많이 먹는다는 설정이 있음.
@루엔시르온 - 그리고 레알 사생결단내러 갔음.
@영단어싫어 - 진짜 인질을 잡는것 보다는...
@좀비라스 - 라니아가 약점이라는걸 알고있기에 되려 그걸 쓰지 않습니다.
@루서스 - 우리 모두 흑역사는 꽁꽁 숨겨둡시다.
@레시코 - 별빛뽀개기!
@Sisre - 검호에게 루미너스의 흑역사를 목격하게 한 이유가 있었음.
@라그실 - 은월에게 진짜 앱솔루트 킬 사용했음. 맞았어도 중상으로 끝났겠지만(영웅 퀄리티)
@qkzks135 - 이번이 넘어갔다 해서 방심하면 안되는게, 차원의 도서관이 있음.
@노란우산s - 더 진지하게 생각하면 루미너스가 보기에 검호같은 사람은 이딴 편지를 보낼리 없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이 있음.
@익재공 - 뭐, 지금도 도와주는 사람이 많고 앞으로도 생길겁니다.
@건전한독자 - 하나라도 남으면 두고두고 우려먹으니까요.
@darkdestiny - 나중에 또 이용될지도.
@칼크래프트 - 어쨌든 효과는 굉장했다!
@E토 - 수치심&분노가 살의로 발전해버림.
@Eluines - 검호:진짜 라니아를 인질로 잡을 리가 없잖아?
@여행자구름 - 한 번은 볼겁니다 아마.
@Legendssj2 - 아뇨, 기억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렇게 강렬한 쪽팔림을 느끼죠.
@NuimHylgi - 만약 그랬다간 루미너스는 노바족을 상대하는데 제일 앞장설겁니다.
@Blake117 - 은월:유인도 좋은데 너무 빡치게 했다.
@wlgns414 - 그리고 오늘은 진심으로 사라져라! 를 외침.
@리아카에린 - 데몬 보이스는 진짜... 예전에 데몬 키웠는데 그놈의 기분이 상쾌하군! 은 대체 뭐냐고... 생각할수록 눈물난다고요 그거.
@적현월 - 중2한 대사지만 진짜가 되면 중2가 아니게됨.
@양갱어사 - 뭐, 라니아를 인질로 잡는것보다는 나은... 건가?
@Ratios - 이번에 쿵푸팬더 보고왔는데 브금이 마음에 들더군요.
@반월유화 - 화살표와 별표까지 넣어주는 센스!
@류동지 - 실제로 루미너스의 모티브는 스타워즈입니다. 비어완이나 R2-B2같은 걸 보면 알 수 있죠.
@Mese - 안나가면 이상한 그런 편지.
@패러디소설사랑 - 다음엔 팬텀한테 알리기 전에 와~ 같은걸지도.
@책벌레씨 - 수치사 하기전에 범인부터 조지려 했음.
@창공의보석 - 제정신으로 돌아왔지만 그때를 떠올리때마다 이불에다가 윈드밀을 한다는.
@그냥마법사 - 별표도 추가했죠.
@허공말뚝 - 루미너스는 이런 중2한 자신이 싫어서 흑화도 안하려할듯.
@제레프 - 누가 막을 수 있으려나~
@ReFrante - 현실로 치면 고작 1, 2년전 일.
@비탄의과학자 - 검호는 엘나스 봉인석 회수하러.
@vlwk5656 - 예상하신 분이 많네요. 당연하면서도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