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131화 (131/208)

<--  -->  엘레오노르side.

용의 후예들이 봉인석 회수 작전에 들어간지 이틀째가 되었을 때, 그들의 수장인 소드댄서로부터 협조 요청이 날아왔다.

그들의 능력이 부족해서 협조를 부탁했을거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들지 않았다. 블랙윙에서 가장 유능한 이를 꼽으려면 그 기분나쁜 대머리 영감과 함께 나란히 선두에 달리는 그와 무능이란 단어는 태양과 달의 거리만큼 멀었으니까.

"당신은 그분이 무엇때문에 우리를 불렀을 것 같습니까."

"글쎄. 가보기 전까진 모르지."

심지어 나뿐만이 아니라 이베흐에게까지 협조 요청을 하다니. 어제는 바로크를 부르더니 정말 무슨 일이 생겼나?

의문의 답은 그가 있는 곳에 도착하며 금방 알 수 있었다. 소드댄서는 본인 성격대로 사설따위 없이 곧바로 부른 용건을 꺼냈으니까.

"엘나스의 봉인석을 회수하는데 너희 둘이 필요하다."

"우리가 말입니까?"

"그래. 협조 가능한가."

"불가능하진 않습니다만, 꼭 저희일 필요가 있습니까."

이베흐의 질문은 타당했다. 거대토끼와는 비교도 안되는 유능한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는 그가 같은 간부급인 - 뭐, 직위상 같은거고 실제 위치는 우리보다 높지만 - 우리를 굳이 부를 이유는 없을텐데.

"이번엔 소수정예로 갈 생각이라서 말이야."

"…… 소수정예라면 저희보다 당신 휘하의 사람들이 더 적합할텐데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그는 검은 장갑을 낀 손을 깍지끼며 입을 가렸다.

"루디브리엄과 무릉의 봉인석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이쪽의 주요 전력들이 부상을 입었거든. 다음 지역의 계획을 진행하는데 문제가 생긴거지."

"그 정도로 심각해?"

용의 후예들은 전사는 물론이요 마법사마저 일반인을 거뜬히 능가하는 신체능력의 소유자들인걸로 안다. 그런 그들이 계획 진행에 차질이 생길만큼 많이 다쳤다? 봉인석의 보안이 그렇게 굉장했나? 그 정도일리 없는데.

소드댄서는 깍지 낀 손 뒤로 입을 가리며, 모자 챙 아래로 드러난 붉은 눈을 작게 휘어 웃음을 그려냈다.

"아아, 당분간은 움직여서는 안될정도로."

─거짓말이다. 우리를 끌어들이기 위한 구색이다.

전사는 무식하다는 통념을 보란듯이 비웃으며 그는 말을 이었다.

"거기다 너무 우리만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너희들도 좀 움직여줘야 뒤에서 말이 안나오지 않겠나?"

젠장. 본론은 저거였나.

현재 블랙윙에서 우리 간부들의 설 자리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각자가 지닌 특수한 능력은 여전히 강력했지만 물량은 겔리메르가 만드는 안드로이드들이, 섬세하면서 강력한 힘은 용의 후예들이 맡으면서 간부들의 필요성이 점차 줄어들어갔고, 조만간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 변덕스러운 윙마스터가 무능을 이유로 우리를 쳐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를 이 지경까지 내몬 당사자는 자선사업 하듯이 손을 내밀며 말하고 있었다.

"엘나스 봉인석 회수, 협조하겠나?"

"…… 참 악랄하시군요."

"싫으면 거절해도 좋다. 다만 이 경우엔 나 혼자 가게되겠지."

부하들 없이도 봉인석 회수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호언중인 남자는 유감스럽게도 실제로 그것이 가능한 이였다. 나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흥, 알았다고. 협조하도록 하지."

"엘레오노르 씨?"

"착각하지 마 소드댄서.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는 내가 뒤에 붙인 말이 우습다는듯 단정짓는 투로 말했다.

"어쨌든 받아들인걸로 알겠다."

정말이지 싫은 남자야.

나의 수락에 이베흐 역시 그의 협조 요청을 - 이라 쓰고 협박이라 읽는 - 받아들였다. 소드댄서가 오기전까지 윙마스터 다음가는 실권을 가졌던 그가 반 년만에 저렇게까지 몰릴줄은 그 자신도 몰랐겠지.

거기다 엘나스라…… 오랜만에 그 역겨운 곳으로 가는군.

오르비스 탑 아래에 펼쳐진 혹한의 설원 위에 세워진 마을, 방한준비를 제대로 안하면 마법사고 전사고 엿먹기 딱 좋은 땅. 그리고─.

"그가 제대로 일을 벌일 것 같은데, 아무 감흥 없으신 것 같습니다 엘레오노르."

"왜? 이제와서 내가 애향심따윌 불태울까봐? 쓸데없는 걱정말라고. 그런건 먼지만큼도 남아있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죠."

어쨌든 간만에 아는 놈들을 만나겠어.

나는 방한 마법이 걸린 로브와 혹한 지대용 지팡이를 챙겨 이베흐와 함께 다시 그가 있는 곳으로 갔고, 우리는 포탈을 통해 순식간에 엘나스 지방으로 도착했다.

폐속 깊이 스며드는 냉기, 숨쉴때마다 뿜어져나오는 입김, 눈돌리면 보이는 곳 모두가 온통 새하얀 정경.

"엘레오노르, 방음 마법."

"알았다고."

한가하게 감상에 잠길 시간은 없었다. 내가 지팡이를 휘둘러 일정 범위 밖으로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은 마법을 쓰자 이베흐가 그에게 물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 소드댄서?"

"봉인석을 회수하는동안 다른 전직관들이 낌새를 눈치채면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

"전직관? 몇 명을 말입니까?"

"전부."

겨우 대화를 이어가던 이베흐의 입이 다물렸다. 나 역시 기가 찬 표정이 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우리 둘이서 여기 전직관들을 다 상대하라고?"

"그건 아니다."

그나마 희망적인 대답이다.

"대체 봉인석이 어디에 있길래 전직관들을 모두 상대하라는겁니까."

"엘나스의 봉인석은 장로 관저 지하에 있다."

"하……?"

"샤모스로부터 열쇠를 입수했으니 들어가는데엔 문제없다."

들어가는 것'만' 문제없다는 말로 필터링되고 있는데 기분탓인가. 거기다 봉인석이 장로 관저에 있었다니.

'예전에 장로 관저 지하에 귀한 보물을 보관중이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설마 그게 봉인석이었을 줄이야.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와 엘레오노르 두 명이서 전직관들을 모두 상대하는건 좀 힘들지도 모릅─"

"아니, 문제없어."

"엘레오노르?"

"이베흐 니 도움없이 나 혼자서도 충분해. 전직관따위, 관저에서 폼 잡는 것밖에 못하는 허접한 것들일 뿐이니까."

그렇게 오랜만에 만날 놈들에게 격한 재회의 인사를 날려줄 계획은, 다음에 나온 소드댄서의 말에 끊겼다.

"……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봉인석을 회수하는건 내가 아니라 이베흐다."

"예?"

"그리고 전직관을 상대하는건 나와 엘레오노르다."

"아니 뭐?! 어째서!"

봉인석 회수라는 가장 큰 공을 이베흐에게 넘기다니, 대체 왜? 그는 장갑을 꽉 낀 다음 검은 털망토를 여미며 말했다.

"이 편이 가장 안전하니까."

징글맞을 정도로 냉정한 답이었다.

결국 그런거였다. 어차피 그는 공을 세울만큼 세웠으니 하나쯤 다른 사람에게 던져줘도 상관없었고, 우리를 끌어들이면 약간이나마 존재하는 실패 확률을 - 소숫점 단위로 낮을 확률 - 줄일 수 있는데다, 여차하면 뒤집어씌울 생각이었던 것이다.

망설임없이 지하로 가는 열쇠를 이베흐에게 넘긴 그는 장로 관저의 문을 열었다.

***

검호side.

이제 겨우 무릉과 루디브리엄의 봉인석을 회수했을뿐인데 지칠만큼 지쳐버렸다. 사실 회수할때 전투같은건 일시적인 것이니 푹 쉬면 된다지만 문제는 뒷처리다.

루미너스를 상대하고 돌아온 유에가 좀 빡쳐있어서 왜 그런가 알아낸 다음 해명해야했고 - 내가 진짜 인질을 잡았겠냐 - 다음에 갈 지역들의 계획과 정보들을 점검하고, 이번에 싸워준 노바족들에게 줄 특별 수당 계산하고…….

아직 일은 반도 진행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할 일이 많은걸까. 그마저도 이데아가 상당부분 줄여준거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해서 저희는 좀비들의 이빨에서 어둠의 힘을 채취하는 번거로운 일에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전혀 없었기에, 그냥 비밀리에 정제시킨 어둠의 크리스탈을 샤모스에게 주었습니다."

"그랬나."

"예. 그리고 이것이 그 대가로 받은 열쇠입니다."

이데아는 검은 열쇠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엘나스의 봉인석은 보안자체는 중간밖에 안되지만, 문제는 그 위치입니다."

이어서 그녀가 내민 자료를 쭉 읽어본 나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겨우겨우 삼켰다. 장로 관저 바로 아래라니!

"일단 그들은 봉인석이 어떤 물건인지 모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보관해온 보물이라 귀히 여길뿐이죠."

"그나마 다행이군."

"위치가 걸리시겠지만 사실 별거 아닙니다."

마을 한복판에 떡하니 있는 건물에 봉인석이 있는데 별게 아니라고?

"장로 관저는 엘나스 마을의 유일한 행정기관으로, 매일매일 여러 사람들이 오가는 곳입니다. 마을 주민부터 모험가까지, 외부인이 좀 돌아다닌다 해서 이상하게 보진 않을겁니다."

"그런가?"

"실제로 저희가 샤모스에게 접근해 열쇠를 받을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뭐야 그 콩가루 보안. 거기다 샤모스라는 놈 죄수 아니었냐? 외부인이 감옥의 죄수한테 접근하는데 아무도 재지를 안해? 이건 오히려 노바족의 은신술에 감탄해야하는거 아닌가.

"문제는 거기에 갈 사람입니다. 원래는 당신을 포함한 정예병 3명을 계획했으나, 시작부터 무릉에서 부상자가 속출, 엔젤릭버스터는 루디브리엄에서 귀환한 이후 기력고갈로 쓰러진 상태입니다."

아, 어째 불길하다.

"그나마 전력을 보존했던 은월은 남은 마법사들과 함께 현재 니할쪽에 간 상태입니다."

"그 말인 즉……?"

"이번 엘나스 봉인석 귀환작전에서 저희 노바족들 중 당신의 옆을 보조해줄 병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뭐야 그거. 가서 죽으란거냐.

"물론 병력을 만들고자 하면 못 만드는건 아닙니다만, 그 병력은 포션 제조쪽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전투원으로 돌리는거라 그랬다간 이번 달 협회에 납품해야하는 포션에 차질이 생깁니다."

해석:예산에 쪼들리게 될지도 모를뿐더러 노바족들에게 줘야하는 월급도 줄어들 수 있음.

'내 팔자야…….'

날 지지해주는 집단이 생긴건 좋은데, 사람이 여럿이 되면서 온갖 현실적인 문제들이 터져나왔다. 가령 지금의 돈문제같은거. 세상은 예산이 지배한다는 말은 진짜 농담이 아니라 초 현실적인 명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블랙윙에서 병력을 차출해서 쓰도록 하십시오."

"블랙윙에서?"

그 거대토끼를 어디다 쓰라고? 힘 쓰는데 말고는 쓸데가 없는뿐더러 그놈들은 모험가로 위장시킬래야 시킬 수가 없잖아.

"프란시스는 이런 일에 부적합하니 대충 다른 간부들중에서 아무나 불러다 쓰시죠."

간부? 아 걔들이라면 좀 괜찮겠네. 부르니까 즉시 왔던 바로크의 경우를 생각하니 엉킨 머리속이 밝아졌다.

사실 프란시스가 만인의 동네북이라 그렇지 다른 간부들은 꽤 유능한 편이니까. 무릉에서 돌발 상황이 일어나긴 했지만 다른 팬더들은 확실하게 유인했던 무명과 프란시스 다음으로 무능할 것 같았던 병신술사 바로크도 어제의 활약을 생각해보면 적어도 그 능력만은 확실했다.

그런데 내가 부른다고 걔들이 순순히 올까─ 라는 생각을 했던 때가 저에게 있었습니다. 내 머릿속을 읽었는지 이데아는 현재 간부들은 대부분 별다른 일없이 놀고있다고 알려준 것이다. 야 이 월급 루팡들아!!

나는 간부들중에서 그래도 좀 강하고 능력만은 믿을만한 이들을 불러 곧바로 용건을 말했다.

"엘나스의 봉인석을 회수하는데 너희 둘이 필요하다."

"우리가 말입니까?"

"그래. 협조 가능한가."

"불가능하진 않습니다만, 꼭 저희일 필요가 있습니까."

양심이 있으면 승낙해!! 왜 내 일이 이렇게 많나 했는데 니들이 일을 안해서 였다는걸 알고 얼마나 어이없었는지 아냐?! 물론 나같은 이유가 아닌 진심으로 검은 마법사를 부활시키기 위해 블랙윙에 들어온 시점에서 양심을 발바닥에 붙였을 둘은 어이없다는 얼굴이었다.

"이번엔 소수정예로 갈 생각이라서 말이야."

"소수정예라면 저희보다 당신 휘하의 사람들이 더 적합할텐데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계획이라는게 세워진대로 진행되면 그게 기적이라지만 아니나다를까 상당히 많이 뒤틀려버렸으니.

"루디브리엄과 무릉의 봉인석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이쪽의 주요 전력들이 부상을 입었거든. 다음 지역의 계획을 진행하는데 문제가 생긴거지."

"그 정도로 심각해?"

"아아, 당분간은 움직여서는 안될정도로."

나는 깍지낀 손으로 입가를 가려 절로 나오는 한숨을 숨겼다.

카이저는 무공에게 전신찜질당해 절대 안정중이고, 엔버는 시계탑 최하층에서 별빛 뽀개기를 몇 번이나 쓴 대가로 완전히 탈진 상태에, 다른 전투 마법사들은 무릉에서의 전투로 녹초가 되었다. 그나마 나은 유에는 니할 쪽으로 파견나가버렸으니.

대외적으로 노바족은 내 부하들이지만, 실제로 노바족과 나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동업자 - 수평관계라서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이 위험해지면 내가 나서서 도와야하는지라 환자나 다름없는 그들을 부릴 수 있을리가.

가장 쌩쌩한 세피로트놈은 군단장들 현황 살피러 메이플 월드 각지를 쏘다니고 있어서 지금은 어디쯤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거기다 너무 우리만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너희들도 좀 움직여줘야 뒤에서 말이 안나오지 않겠나?"

나는 최대한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물었다.

"엘나스 봉인석 회수, 협조하겠나?"

"…… 참 악랄하시군요."

그 정도로 일하기 싫은거냐 너희는. 아니 명령도 아니고 고작 협조 부탁하는건데 악랄하다는 말을 들어야겠냐 내가.

"싫으면 거절해도 좋다. 다만 이 경우엔 나 혼자 가게되겠지."

혼자는 진심으로 무리다. 아니, 봉인석 자체를 빼돌리는건 문제없겠지만 나 혼자 가면 전직관들에게 들킬 확률이 대폭 상승할거라고 이데아가 말해서 심히 곤란하다.

몇 초동안의 침묵에 심장이 쫄깃해지는 가운데 엘레오노르가 콧웃음치며 말했다.

"흥, 알았다고. 협조하도록 하지."

"엘레오노르 씨?"

"착각하지 마 소드댄서.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니까."

이 무슨 츤데레 대사.

"어쨌든 받아들인걸로 알겠다."

같이 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두 사람에게서 승낙을 받은 나는 추위대비용으로 오랜만에 원래 복장의 털망토만 꺼내 둘렀다. 예전엔 이게 그렇게 지긋지긋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반갑다니, 그동안 제복이 얼마나 질렸는지 확실히 알았다.

나는 두꺼운 복장으로 갈아입고 온 둘과 함께 포탈을 써서 단번에 엘나스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숨만 쉬는데 새하얀 입김이 풀풀 날리는 추위가 들이닥쳐 털망토를 꽉 여밀때 이베흐가 물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 소드댄서?"

아, 구체적인 작전을 말해줘야지.

"한 명이 봉인석을 회수하는동안 다른 전직관들이 낌새를 눈치채면 다른 둘이 그들을 상대한다."

"전직관? 몇 명을 말입니까?"

"전부."

둘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나도 이데아한테 그거 듣고 어이없었어.

"우리 둘이서 여기 전직관들을 다 상대하라고?"

"그건 아니다."

최악의 경우 장로 관저에 있을 모험가들까지 플러스해서 싸워야 할 수도 있다고 말하려 했으나 이베흐가 먼저 물었다.

"대체 봉인석이 어디에 있길래 전직관들을 모두 상대하라는겁니까."

"엘나스의 봉인석은 장로 관저 지하에 있다."

"하……?"

"샤모스로부터 열쇠를 입수했으니 들어가는데엔 문제없다."

다른 간부는 몰라도 엘레오노르는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녀도 꽤 놀란 눈치였다. 듣기론 그녀는 엘나스 출신이라고 하던데.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와 엘레오노르 두 명이서 전직관들을 모두 상대하는건 좀 힘들지도 모릅─"

"아니, 문제없어."

"엘레오노르?"

"이베흐 니 도움없이 나 혼자서도 충분해. 전직관따위, 관저에서 폼 잡는 것밖에 못하는 허접한 것들일 뿐이니까."

어째선지 그녀의 말에 인게임의 전직관들이 떠올랐다. 거기서 걔들은 자쿰 잡으러 갈때랑 3차 전직할때를 빼면 얼굴 볼 일이 없어서 그런가. 후드로 가린 얼굴이 무척이나 궁금했었지. 나는 이 와중에 그들이 하고있는 오해를 정정해 주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봉인석을 회수하는건 내가 아니라 이베흐다."

"예?"

"그리고 전직관을 상대하는건 나와 엘레오노르다."

"아니 뭐?! 어째서!"

나랑 같이 싸우는게 그렇게 싫은건가. 나는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가장 타당한 이유를 말해주었다.

"이 편이 가장 안전하니까."

내가 내려갔다간 지하에 있는 마법 트랩같은거 눈치채지도, 피하지도, 해제하지도 못하고 줄줄이 다 걸려서 단번에 들킨단 말이야! 누누이 말하지만 난 마법사가 아니다. 사실 이것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간부들 중 유일하게 마법사인 엘레오노르에게 이번 봉인석의 회수를 부탁할까 했지만 전투력도 그녀가 이베흐보다 더 높아서 별 수 없었다.

그렇게 열쇠를 이베흐에게 건낸 나는 장로 관저의 문을 열었는데…….

"한 줄로! 한 줄로 서주십시오!"

"대기표는 이쪽에서 뽑으세요!"

"새치기는 안됩니다!"

"어떤 자식이야 내 발 밟은 놈이!!"

"꺄악! 어딜 만지는거야!"

개판이다. 완벽한 개판이 여기있어.

관저에 외부인이 들어가도 아무도 신경 안쓴다는게 이런 뜻이었나. 내가 아는 엘나스 장로 관저는 이렇게 북적북적하지 않았는데? 설마 여기가 아닌건가? 마을의 유일한 행정기관이라더니 온갖 일이란 일은 여기서 다 처리하는 모양이다.

장로 관저라더니 주민센터잖아 이거.

"…… 그럼, 저는 봉인석을 회수하러 가겠습니다."

"알았다."

이베흐는 그림자에 스며드는 특유의 능력을 써서 인파를 무시하고 곧장 지하로 향했고, 나와 엘레오노르는 그 바글바글한 인파에 압도당해 한 발 짝도 앞으로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떤 자식이야 들어오면서 문 안닫은 놈이?!"

"죄송합니다."

"저, 정신 똑바로 차려!"

문 닫는것도 깜빡하고 있었네. 나는 불어오는 찬바람에 재빨리 문을 닫고 몸을 돌렸다.

"잠깐, 전직관들과 싸운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이베흐가 봉인석을 훔치는걸 다른 사람에게 들켰을때 뿐이지."

그게 아니라면 굳이 긁어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잖아. 뭐 어디 갈때마다 싸우면 몸이 남아나질 않을뿐더러 우리 여기있소~ 라고 광고하는 꼴이다. 하지만 싸우는걸 기대했는지 아니면 본래 호전적인 성향인지 엘레오노르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혀를 찼다.

전투광이라는거 픽션에서나 멋지지 실생활에서는 피곤하지 짝에 없는 속성이구나. 그나마 나 역시 그녀와 같은 간부라서 전투 명령같은거 안내려서 다행이다.

…… 아 그래, 같은 간부지. 내 인생 최초의 승진이 세계 멸망을 꿈꾸는 악의 조직에서의 간부 승진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라버려 새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거였다지만 나 왜 이렇게 됬냐. 나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어이 당신 이 상황에 잠─"

"설마…… 엘레오노르?"

그녀를 부르는 탁한 목소리에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짙푸른 로브차림에 엘나스의 눈을 모두 쓸어버릴 생각으로 기른 것 같은 새하얀 수염의 노마법사가 주름진 눈을 휘둥그래 뜨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내가 기억이 날듯말듯한 할아버지의 이름을 필사적으로 굴리는동안 엘레오노르가 반가운듯 한껏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참~ 오랜만이네요 알케스터."

아 맞다. 그 이름이었지.

"뭣 때문에 엘나스에 돌아온게냐."

"이번 임무만 아니었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을거에요. 그러니 착각마시죠."

"엘레오노르……!"

둘이 무슨 사이인지는 몰라도 꽤 안면이 있는건 확실해보였다. 엘레오노르는 갑자기 씩 웃으며 이쪽을 보더니 내게 물었다.

"어이 소드댄서, 내가 저 영감이랑 격하게 재회 인사를 해야할 것 같은데 허락해주겠어?"

"난 상관없지만 여기서 하지는 마라."

뭘 얼마나 격한 인사를 나누려는지 모르겠지만 마을 한복판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 뭐한건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아아~ 알았어."

"가능하다면 이베흐가 돌아오기 전까지 끝내줬으면 한다."

"힘내보도록 하지."

엘레오노르는 그렇게 말하고는 알케스터와 함께 어딘가로 텔레포트해 사라졌다.

블랙윙이 아니라는건 어련히 숨기든가 하겠지.

***

이베흐side.

봉인석을 훔쳐내는건 쉬운 일이었다. 보안이 허술한건 아니었지만 숱하게 걸려있는 마법 트랩들은 그림자에 녹아든 나를 감지해내지 못했기에 손쉽게 봉인석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월이라는건 정말 허무하군요."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다지만 이토록 중요한 물건의 가치를 사람들의 뇌리에서 다 지워버리다니. 뭐, 덕분에 매우 쉽게 이것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지만.

나는 눈꽃 결정의 모습을 한 보석을 상자에 넣은후 다시 그림자에 녹아들어 지상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고, 전직관들은 바쁘게 일하는 중이라 봉인석이 있는 곳에 침입자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다.

'한심하군.'

그들의 멍청함을 비웃으며 나는 장로 관저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있는 소드댄서를 찾아갔다.

"회수 완료했습니다."

"…… 정말인가."

"예. 꽤 쉬웠습니다."

"그럴리가 없는데."

그는 미미한 불신을 품은 눈으로 내가 들고있는 상자를 보았다. 가짜일 가능성을 생각하는건가?

"걱정마시죠. 확실합니다."

"알았다."

망토자락을 털어내며 일어나는 그를 보다 당연히 있어야하는 사람이 안보여 물어보았다.

"그런데 엘레오노르는 어디 있습니까?"

"사람들때문에 잠시 밖으로 나갔다. 아마 곧 돌아오겠지."

그때 저 멀리서 큰 폭음이 터져나왔다.

'마법?'

거기다 여기까지 오는 충격파를 통해 느껴지는건 분명 엘레오노르 그녀의 마력이었다.

"도우러 가시지 않습니까?"

"굳이 그래야할 필요가 있나."

"아니, 좀 위험한 것 같습니다만."

저 정도로 강력한 마법을 쓴다는건 상대도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고, 이곳 엘나스에서 그녀와 저렇게 부딪힐만한 마법사는 수 백년을 살았다는 현자 알케스터와 마법사 전직관 로베이라 정도밖에 없다.

"걱정되면 니가 가봐라."

"알겠습니다."

봉인석만 회수되면 우리따위 어째되든 상관없었는지, 아니면 그녀가 이기고 올거라고 믿는건지 별다른 반응이 없는 그를 뒤로하고 나는 재빨리 엘레오노르가 싸우고 있는 마을 밖의 설원으로 향했다.

수북히 쌓여있었을 눈은 난사되는 마법과 저주들에 의해 일찌감치 다 증발된지 오래, 악연으로 얽은 마법사들의 전장은 이미 끝으로 치달은지 오래였다.

"무슨 낯짝으로 이곳에 돌아온게냐!!"

"돌아와? 하! 이번 임무만 아니었으면 이딴 곳에 다시는 오지 않았어."

"임무?! 이곳에서 뭘 벌이려는 속셈이냐 엘레오노르!"

"그 잘난 머리 잘 굴려서 알아내보라고 늙은이!"

입고있던 자주색 로브가 다 날아갈정도로 격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그녀가 잔뜩 금이 간 지팡이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저주를 쏘았다. 명치에 저주가 꽂힌 알케스터는 그대로 쓰러졌고, 상태가 꽤 안좋아보이지만 어쨌든 그녀가 이겼다.

"끝나셨습니까."

"…… 늦었잖아 이베흐."

"부축해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녀를 부축하며 소드댄서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저 남자는 그녀와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얽혀있는지 알고 협조를 요청했던걸까. 계획을 세움에 있어 몇 달을 써서든 각 지역의 정보를 결벽증에 가까울만큼 긁어모으는 그와 용의 후예들의 특성상 분명 알았을 것이다.

엘레오노르와 알케스터가 사제지간이었고, 한때는 그녀가 이 마을의 전직관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왔나."

"예."

"몰골이 상당히 엉망이군."

"어쨌든 깔끔하게 끝냈다고."

사제간의 정때문인지 아니면 죽일 힘이 남아있지 않아서인지 끝내 알케스터를 죽이진 못했지만 당분간 그 노인은 우리가 이곳에 왔다는걸 알리지 못할 것이다.

"그럼 돌아가도록 하지."

그는 담담하게 귀환서를 찢었고, 우리는 밝은 빛에 휩싸이며 에델슈타인 아지트로 돌아왔다.

이번 엘나스의 봉인석까지 회수되면서 네 지역의 봉인석들이 블랙윙의 손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윙마스터 오르카는 오랜 시간동안 암약해온 그녀의 동료들에게 알리길 주저하지 않았고…… 유일하게 걸리는 것이 사라진 그들은 곧장 행동을 개시했다.

며칠 뒤, 오르비스 탑이 반파되었다.

========== 작품 후기 ==========

누가 탑을 날려먹었을까요. 힌트:붉은 코트의 그 남자.

엘레오노르 설정은 모바일 메이플을 살짝 참고, 다음 챕터는 놈이 돌아온만큼 진지해질 수 밖에 없겠네요. 또 구르겠네 검호.

아무 상관없지만 이번에 선물받은 블랙윙 제복버전 검호가 너무 마음에 듭니다. 잘 안보이시는 분은 뜰에 올려져 있으니 보세요.

@Jaiha - 각 질문에 대해 답해드리자면

1. 제로는 검호의 정체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감지해낼겁니다.

2. 제로 자체가 불완전한 초월자라서 1:1로는 알파든 베타든 검호한테 집니다. 2명이 다 덤비는 건... 경험치는 검호가 많지만 시간의 힘은 제로가 시간의 초월자라 상쇄되겠네요. 이건 진짜 싸우기 전까진 모름.

3.거울 세계에 검호는 없습니다. 그는 트립퍼 -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니까요.

@슈엘리안 - 열심히 썼는데 어느순간 100화가 넘어갔더라고요.

@대어의예감 - 연합에서 그렇게 부르면 되겠군요?

@카한Kahan - 이펙트가 딱 그거임.

@Legendssj22 - 바로크가 좀 병신같은 짓을 해서 그렇지 능력 자체는 굉장함.

@Sisre - 팬텀과 함께 제일 앞에서 블랙윙 척살을 외칠듯.

@Blake117 - 디바인 버스터로 할까 했는데 임팩트는 이쪽이 더해서.

@좀비라스 - 사실 좀 눈치있는 사람이면 알았을거임. 라니아는 루미너스를 이름 그대로 안부르고 '루미'라고 부르니까요ㅋ(히오메 참조)

@좌절거북이 - 마침 현재 엔버의 복장은 시니컬 콤팩트.

@레시코 - 겔리메르를 제외한 간부들 사이에선 성실하면서 악랄한 인물로 평가됨.

@ReFrante - 심플 이즈 베스트!

@아토상자 - 각 캐릭터별로 공식적인 직업들에 배치해봤는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됬네요.

@라그실 - 일이 잘 끝나면 은월은 원래대로 돌아올겁니다. 루미너스는 뭐... 나름대로 위력조절해서 날린겁니다. 죽일 생각은 아니었음.

@JM132 - 크고 아름다운 분홍색 기둥.

@류동지 - 목격하는 놈의 머리에 샤이닝 로드 풀스윙!

@적현월 - 의외로 많이 없습니다.

@Yoontlemin - 포격 색깔이 분홍인데?!

@루엔시르온 - 살아갈 희망을 얻음.

@그냥마법사 - 저 포격 날릴때 다른 모험가는 없었습니다. 다행이도.

@Eluines - 스토리에선 진짜... 어떻게 구제할 수 있을지 눈물나는 캐.

@Luye - 특히 팬텀이 같이 볼 걸 생각하면...

@노란우산s - 이분 추리력 좋으신 것 같네요.

@savere000 - 같은 마법소녀니까 한 번쯤 쓰게 하고 싶었습니다.

@칼크래프트 - 그리고 이어진 또다른 흐격사!

@영단어싫어 - 저거마저 없었으면 진짜 될대로 되란 식으로 살았을지도.

@허공말뚝 - 진지한데 웃기다는 느낌으로 쓰고 있어요.

@건전한독자 - 그 영상 pc방에서 나오면 진짜... 하아.

@책벌레씨 - 이것의 나의 전력전개!!

@미소녀가될꺼야 - 성광파괴포!

@Ratios - 임군님의 영상에서 2초만에 증발했다는 파풀.

@창공의보석 - 그거 맞습니다.

@Buche - 죽어서도 동료에게 힘을 주는 진정한 리더 프리드.

@socns - 어디 딸리는건 아닙니다. 단지 타이밍이 뭣같을 뿐.

@루서스 - 히오메만 봐도 프리드가 얼마나 쩌는지 잘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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