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132화 (132/208)

<--  -->  에반side.

나인하트 씨의 오닉스 드래곤 여자가 준 자료들을 모두 읽어본 나는 그중에서 레지스탕스들에게 쓸만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에델슈타인과 광산에서 빼돌린 에너지가 집중되는 지점들, 그중에서 요 최근들어 가장 많은 전력이 모이는 곳이 어디인지.

다른 것을 알려주려고 해도 그 오닉스 드래곤 여자 역시 깊이 알아내진 못했는지 정보들이 어딘가 구멍이 뻥뻥 뚫려 있었기에 별 수 없었다.

"이번에 알려준 정보는 잘 쓰도록 하지."

"좋은 거 알려줘서 고맙다 꼬마 대마법사!"

"아니, 그 정도까지는……."

"자자~ 이제 슬슬 출발 시간이야. 늦으면 안되니까 보내주자고."

벨 씨의 말에 사람들이 하나둘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나중에 또 보자! 고마워 에반! 등등의 말에 볼이 화끈화끈 해졌다.

[저 사람들 잘되면 좋겠다.]

"응."

저렇게 좋은 사람들을 착취하는 악의 조직따위, 힘이 생기는대로 반드시 없애버릴거야.

레지스탕스들이 블랙윙의 눈을 피해 빅토리아 아일랜드로 가는 법은 처음 생각했던 '사람을 택배로 붙인다'와 비슷했지만 달랐다. 모든 정거장과 비행선이 블랙윙의 손안에 있었지만 레지스탕스들은 힘겹게 니할의 어느 밀수업자를 포섭해 그의 도움을 받아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 혼자만 보내기 또 불안하다며 데몬 씨를 붙여준 그들에게 깊이 감사하다 문득 떠오른 사실을 중얼거렸다.

"그런데 밀수업이라는거 불법 아닌가?"

"불법 맞습니다."

[엑……?]

"어차피 이런 상황인데 불법이고 합법이고 따져서 뭐합니까."

그건 그렇지만 정말 이래도 되는걸까. 데몬 씨는 주변의 기척을 살피며 말했다.

"카르카사는 블랙윙에도 이런저런 물자를 보급해주는 사람이라 세세한 검사는 받지 않습니다."

"자, 잠깐만요 그렇다면 이 사람이 우리를 넘길수도 있다는 말─"

"괜찮습니다. 그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라면 한쪽만 편들어 다른 편의 고객을 모두 잃느니, 둘 다 손을 잡아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할겁니다."

뭔가, 뭔가 심하게 많이 걸리는 말들인데.

"…… 찝찝해도 별 수 없습니다. 그가 그런 사람이기에 우리가 무사히 빅토리아 아일랜드로 갈 수 있는거니까요."

[현실에 찌든 어른같은 대사다.]

"어른 맞습니다만."

그리고 데몬 씨의 말대로 블랙윙들은 화물 검사를 대충하고 쓱 통과시켰다. 우리가 숨어있던 짐쪽까지는 아예 오지도 않았다.

잠시 후 비행선이 한 차례 요동치며 하늘에 붕 떠올랐다.

"도착할때까지 자두는게 좋을겁니다. 오르비스까진 한참 걸리니까요."

"오르비스? 이거 빅토리아 아일랜드로 가는게 아니었나요?"

"아닙니다. 카르카사가 데려다주는건 어디까지나 오르비스까지, 에반 당신은 리엔으로 간다 했으니 그곳에서 다른 배를 타야 합니다."

데몬 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빅토리아 아일랜드 행 표를 주셨다.

"그럼 데몬 씨는요?"

"저는 니할에 볼일이 있어서 거기 갈 계획입니다."

[니할이라면…… 거기 사막 아니야?]

"맞습니다. 저는 그 사막 위에 세워진 마가티아라는 마을에 볼일이 있습니다."

마가티아, 연금술사들의 마을. 어째선지 낮이 찾아오지 않는 밤의 마을이라는 별칭이 있다고 들어봤었다. 그곳엔 왜? 데몬 씨는 거기까지 말할 생각이 없으셨는지 대충 벽에 기대어 잠을 청하셨다.

[우리도 자자 마스터.]

"으응."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아무튼 이제서야 겨우 돌아가게 됬으니 푹 자두자.

***

side out.

윙마스터 오르카는 네 지역의 봉인석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을 혼자만 알지 않았다. 물론 고생해 가며 비밀리에 그것들을 회수한 검호의 노력이 무색하게 널리널리 알렸다는건 아니고, 수 백년동안 때를 기다려온 이들에게 그 사실을 암암리에 속삭여 주었다.

그리고 봉인석이 오르카의 손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안 이들은 수면 아래로 숨긴 몸을 일으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아아~ 드디어 이걸 쓰는군."

"그건 뭐냐."

"내가 살던 곳에선 알라의 요술봉이라고 불렀던 거다. 꽤 이름있는 물건이지."

"그 쇠막대가?"

오르비스 탑의 외부, 애꾸눈의 남자 두 명이 날개없이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한 명은 너덜너덜한 붉은 코트를 걸친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펑키한 스타일의 제복을 입은 푸른 피부의 남자였다.

"이건 휴대용 미사일이라고. 얕보면 곤란해."

붉은 코트를 걸친 옅은 금발의 남성은 그리 말하며 들고있던 화기를 제대로 자세잡아 오르비스 탑을 향해 겨누었다.

"쓸데없이 겉멋만 들어서는……."

"겉멋이라니? 위력을 본 다음에 말을 해라고 꼬맹아."

"누구더러 꼬맹이라는거냐!"

"너말이다 너, 잡초 대가리."

그 말에 푸른 피부의 남자는 등에 멘 대검을 뽑아 휘두를 기세였지만 붉은 코트의 남자는 쿨하게 무시하며 오르비스 탑을 향해 화기를 조준했다.

"이걸 쏠땐 이 대사를 해야하는 암묵의 룰이 있지. 알라후 아크바르!"

장난스러운 외침과 함께 방아쇠가 당겨졌다.

탄두는 눈 깜짝할새 정확하게 오르비스 탑 중간지점을 향해 발사되었고, 명중과 동시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주홍빛 폭염이 굶주린 짐승처럼 빠르게 탑을 집어삼켰다. 폭발과 함께 일어난 폭음은 소리의 영역을 뛰어넘어 거대한 충격파로 화해 탑의 위아래 층을 모조리 뒤흔들었고, 그 순간 탑을 오르내리던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폭발과 진동에 크고작은 부상을 입었다.

"어때? 이래도 이게 그냥 쇠막대로만 보여?"

"…… 미쳤군."

"그래그래 미친 위력이지."

"그거 말고 니가 미쳤다고."

"야 잡초 대가리. 말 곱게 해라."

짜증나서 니놈 머리의 잡초 다 뽑아버리기 전에. 둘 사이의 기류가 금방이라도 서로를 죽여버릴듯 날이 섰다.

그리고 붉은 코트의 남자가 날린 미사일에 반파되어버린 오르비스 탑에서는.

"아아, 이걸 어쩐다냐. 형씨한테 뭐라고 말해야 하지."

겨우겨우 여기까지 추적했는데 다 말아먹었네.

비행선도 통과할 수 있을것 같은 특대 사이즈 바람구멍이 뚫려 금방이라도 무너질듯 불안하게 흔들리는 탑 안에서, 세피로트는 찢어질듯 펄럭이는 목도리를 뒤로 넘기며 허공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두 남자를 보았다. 둘 다 실물은 처음보지만 그들이 누군지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일단 하나라도 잡아놔야 면책을 피할 수 있겠네."

때마침 맞추기도 쉽게 둘이 딱 뭉쳐있으니.

그는 자세를 잡고 두 손에 기를 집중시켰다. 새하얀 빛무리가 별빛처럼 모여들었고, 이내 희다못해 새빨갛게 빛나는 에너지 구체가 되어 금방이라도 폭발할듯 일렁거렸다.

세피로트는 신경전 끝에 기어코 서로에게 총구와 검날을 들이밀다가 한 발짝 늦게 이쪽을 바라보는 둘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망설임없이 그것을 쏘아냈다.

투콰아앙──!

포격과 같이 쏘아진 기공파에 탑 주위에서 몰아치던 바람이 증발하다시피 날아갔다.

"…… 젠장. 역시 난 원거리 기술은 못 쓰겠어."

일대에 몰아치던 바람을 한순간에 날려버릴만큼 강력한 일격을 날렸음에도 세피로트의 표정을 결코 좋지 못했다.

강력하되 단순했던 기공파를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붉은 코트의 남자는 말라붙은 연홍색 눈으로 탑에 있는 세피로트를 조용히 응시하다 말했다.

"잡초대가리."

"뭐냐."

"지금 당장 돌아가라."

"하?"

"토달지 말고 여기서 빨리 꺼져. 거치적거리니까."

"지금 누구더러 거치적거린다는─"

푸른 피부의 남자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어느새 그의 이마에 철컥, 총구를 겨눈 붉은 코트의 남자는 다시 한 번 더 말할 뿐.

"말로 할 때 가라."

"……."

그는 당장이라도 남자의 목을 쳐내버릴 기세로 한 차례 더 쏘아본 뒤 이를 갈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푸른 피부의 남자가 물러난 것을 확인한 붉은 코트의 남자 - 프라이쉬츠는 들고있던 탄두없는 화기를 버리고 허리춤의 쌍권총을 뽑아들었다.

"니놈은 누구냐."

"알아봤자 의미 없을거고, 알려줄 생각도 없어."

"그럼 죽어."

방아쇠가 당겨지며 총구에서 금색 빛줄기가 일제히 쏘아졌다.

손가락이 움직이는걸 보자마자 튕겨나듯이 자리를 박찬 세피로트는 곧바로 탑 밖을 향해 다리를 뻗었다. 노바족들이 직접 신발에 새겨준 마법이 빛나며 그의 발은 허공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한쪽 발을 축으로 스프링처럼 튀어오른 그의 몸이 빠르게 솟구치며 단숨에 프라이쉬츠 코앞까지 접근했다. 그러나 프라이쉬츠가 그것을 손놓고 구경만 할 리 만무, 망설임없이 전면을 향해 총을 겨누며 불길을 쏘아내 몸을 뒤로 뺐다.

'총잡이라니, 나랑은 상성이 정말 안좋은 상대로구만.'

돌려차기의 풍압으로 불을 날려버린 세피로트는 꽉 움켜쥔 주먹에 검녹색 기류를 휘감은 뒤 힘껏 내질렀다.

주먹에 맞지는 않았지만 풍압에 직격당해 크게 휘청이는 프라이쉬츠를 포착한 세피로트는 그 즉시 온 몸으로 돌진해 프라이쉬츠를 탑에 쳐박았다. 쿠웅─! 불안하게 흔들리던 탑이 또다시 크게 진동했다.

팔을 휘둘러 흙먼지를 바로 걷어낸 세피로트는 한가득 쌓여있던 파편더미에 묻힌 프라이쉬츠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안죽은거 아니까 무기 버려라 총잡이. 이 거리에서 니놈은 나한테 못 이겨."

근접전 격투기에 한해서는 형씨한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그였다. 직업 자체가 맨손격투 전문이라 모든 공격의 사거리가 짧았지만, 달리 말하면 사거리 내에서의 싸움은 전적으로 그가 우위였다.

"니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순순히 항복하는게 좋을─"

찰칵.

발밑에서 작게 들린 기계소리에 그의 눈이 아래로 향했다.

반짝이는 해골마크의 무언가. 그게 무엇인지는 반사적으로 깨달았다.

'지뢰?"

퍼엉!! 사람 하나를 날려버리기 충분한 폭발이 일어났다.

간발의 차로 폭발의 범위에서 피했지만 프라이쉬츠에게서는 거리가 벌어져버린 세피로트는 다시 그쪽으로 가려 했으나, 이미 그는 파편들을 치워내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말이 많은 놈이군. 뭐, 나쁘지 않아."

그의 쌍권총에 녹색 바람이 휘감겼다.

"그 나불거리는 입으로 아는걸 다 말해줘야겠어."

타다다다당─! 대여섯 개의 총구가 일제히 총알을 토해냈다. 총알이 지나간 궤적으로는 돌풍이 일었고, 허공을 달리며 그것을 피해내던 세피로트는 정신없이 불어오는 바람이 몸을 흔들어대 속으로 욕지꺼리를 내뱉었다.

"피하는 솜씨는 일품이군."

프라이쉬츠는 그리 말하고는 쌍권총을 다시 허리춤에 찼다. 실성하지 않은 이상 항복하려는건 아니겠고,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나 노려보던 세피로트는 일단 한 방 갈기려고 주먹을 꽉 쥐려다 그가 구현해낸 다음 무기에 쩍 입을 벌렸다.

"…… 개틀링?"

직후 모터 돌아가는듯한 소리와 함께 정신나간 수의 탄환들이 그를 물어뜯기위해 발사되었다.

세피로트는 물론 떨어지는 탑의 파편들까지 덤으로 조약돌 수준으로 산산조각낸 프라이쉬츠는 서서히 부쳐오는 마력 고갈에 숨을 길게 내뱉으며 잠시 공격을 멈춘다음 시력을 돋워 연기가 일어나는 지점을 확인했고, 동시에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연기가 서서히 걷히며 벌집이 되어버린 새빨간 무언가가 나풀나풀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결국 못 피하고 고깃덩이가 되버린건가.

'대답은 못 듣게 되었군.'

범상치 않은 놈이 분명했는데.

프라이쉬츠는 구현하고 있던 개틀링을 흩어놓으며 인벤토리에서 귀환서를 꺼냈다. 어쨌든 일은 끝냈으니 돌아가야 하는─

콰직! 단단한 손이 그의 다리를 으스러뜨렸다.

"어딜가 임마."

"니놈……!"

건물 파편을 방패삼아 겨우 몸을 빼내며 뻥 뚫린 구멍을 통해 프라이쉬츠가 서있던 층 바로 아랫층으로 숨었던 세피로트는 그대로 그를 확 끌어당겨 바닥을 무너뜨리며 제 앞에다 패대기쳤다.

"내 머플러 어쩔거야!!"

그는 미끼용으로 던졌던 머플러에 대한 울분을 토해내며 프라이쉬츠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이어서 턱과 양 관자놀이를 빠르게 차 뇌를 뒤흔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건 좀 전의 실수로 얻은 교훈이었다.

여기서 끝나지않고 세피로트는 그의 쌍권총을 빼앗아 들어있는 총알들을 모두 바닥에 쏟아내 탑 밑으로 찼다. 더럽게도 많았다.

"미친 놈."

"이 자식이……."

"솔직히 이번에 한 짓을 생각하면 살려주기도 싫지만 니놈이 미친 사연은 들어야 하니까 운 좋은 줄 알아."

일단 움직이지 못하게 팔다리 뼈를 모두 박살낸 다음 들고 가야겠다. 트립퍼인만큼 총잡이라도 육탄전 소양이 꽤 있을거고, 중화기까지 손쉽게 다루는걸 보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세피로트는 검녹색 기류를 피워올리며 먼저 그의 어깨부터 뽑기위해 손을 뻗었다. 그때.

"흐."

프라이쉬츠가 바람빠진 웃음을 흘리더니 채찍처럼 다리를 쭉 뻗어 바닥에 버려져있던 권총을 올려찼다.

"두고 볼 줄 아냐!"

차올려진 총을 재빨리 쳐낸 세피로트는 도끼눈을 뜨며 다시 프라이쉬츠를 노려보았다가 흡, 숨을 멈췄다.

그는 이미 다른 총을 들고 있었다.

"난 권총이기만 하면 내 스킬 쓰는데엔 지장 없거든?"

세피로트가 눈 돌린 잠깐 사이에 인벤토리에서 일반 권총을 꺼낸 그는 보란듯이 마력으로 탄환을 구현해내며 총을 장전해 그 끝을 조준했다.

─ 저 뒤에서 날아오는 비행선에게.

"저기엔 몇 명이 타고 있을까."

"너 임마……!"

"어디 한 번 세어봐."

황금색 빛줄기가 비행선을 향해 쏘아졌다.

방아쇠가 당겨지기 전부터 세피로트의 몸은 이미 허공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고의인지 아닌지 빛줄기는 비행선을 격추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스쳤으며, 비행선은 크게 흔들렸을 뿐 떨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요동치는 선체를 보아 자칫 잘못했다간 탑에 들이받을지도 모른다.

'저 또라이 자식!! 내가 다시 그놈이랑 대화를 하면 사람이 아니다!!'

완전 말 많은 악당 클리셰잖아!

일단 장풍으로 탑에 부딪히지 않게 하기위해 비행선 가까이 뛰어갔을 때, 비행선에 난 창 너머로 아는 얼굴이 보였다.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지도 않는데 꽤 자란 것 같은, 그러나 여전히 동글동글한 인상의 갈색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소년.

"…… 에반?"

[뒤!! 뒤를 보세요!]

"뭐?"

언제 놈이 던졌는지 모르는 장난감처럼 알록달록한 알약 비스무리하게 생긴 것들이 그의 뒤로 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새 쌍권총을 집어든 놈이 이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멍청이."

프라이쉬츠는 신들린 사격술로 알약들 - 폭발물을 정확히 맞춰 일제히 폭파시켰다.

***

데몬side.

피를 뿌리며 추락하는 그 남자를 보고 에반이 소리치는 동안 나는 문을 박살내며 밖으로 나가 겨우 그를 잡아챘다. 얼마나 급하게 뛰어내렸는지 아직도 날개가 뻐근했다.

"살아, 살아 있는거죠……?"

"그건 모릅니다. 솔직히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요."

"그런……."

근거리에서 폭발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남자는 온몸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일단 가지고 있던 포션을 뿌려봤지만 상처가 너무 심해 쉽게 호전되지도 않아 당장은 상비되어있던 구급상자의 붕대를 모두 써서 상처를 막았다.

느닷없는 공격에 크게 흔들렸던 비행선이지만 어떻게든 균형을 잡는데 성공해 정거장까지 제대로 가고 있으니 몇 분 안에 오르비스에 도착할 것이다. 그곳에서 의사와 치료 마법사를 찾아야 했다.

기초적인 것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치료 마법을 쏟아붙던 에반은 마력이 떨어졌는지 숨을 헐떡이며 지팡이를 내렸다.

"하! 하아……!"

"그쯤하면 됬습니다 에반. 출혈은 많이 멎었으니 도착할때까지 숨만 붙어있다면 살려낼 수 있을겁니다."

내 말에 에반은 숨을 고르며 기이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뭡니까?"

"어떻게 그렇게 담담하실 수 있으세요?"

"예?"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데몬 씨는 당황하지 않으실 수 있어요?"

아, 그래서였나. 소년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 저는 사람이 죽는걸 꽤 많이 봤으니까요."

[얼마나?]

"기억하지 못할만큼 많이요."

"아무리 그래도 본인이 구하셨는데─"

"─윽!"

그때 피투성이의 남자가 막힌 신음을 내뱉었다. 날 보던 에반은 곧바로 눈을 돌렸다.

"정신이 드세요?!"

"아…… 진짜 아프네."

[구체적으로 어디?]

"전신이 다 쑤시는데."

"그건 당연합니다. 당신은 상당한 폭발을 뒤집어써서 만신창이가 됬으니까요."

"하 젠장."

남자는 작게 욕을 씹으며 느리게 숨을 쉬었다.

"임무는 임무대로 실패하고, 놈은 놈대로 놓치고…… 형씨한테 고개를 못 들겠네."

"당신, 오르비스 탑에서 일어난 참사와 무슨 관련 있습니까?"

아직 오르비스에 도착하진 않았지만 탑을 지나오면서 그곳의 살벌한 풍경을 똑똑히 보았다. 엘나스 지방에서부터 저 위의 하늘섬까지 쌓아올려진 그 거대한 탑이 무슨 공격에 당했는지 반파당해 있던 그 광경은 못 볼 수가 없는 것이었으니까.

"막으려고 했는데 못 막았고, 범인 잡으려고 했는데 못 잡았어."

"범인이 누굽니까?"

"군단장."

순간 뇌에 스파크가 튀겼다.

"군단장─ 이라면?"

"그보다 박쥐 형씨. 나 죽겠는데 좀 도와줄 수 있어?"

"잠깐만요, 방금 말한걸 다시─"

"좀, 도와줄 수, 있어?"

피를 뒤집어 써 온통 새빨간 가운데 유일하게 붉지 않은 청록색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이대로 계속 물어봤자 제대로 된 대답따위 안할거다.

"…… 알겠습니다."

"고마워."

"뭘 도와드리면 됩니까."

남자는 쌕쌕 바람빠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쓸 줄 아는 회복기는 딱 하나 있는데, 그게 일종의 드레인 계통이라서 말이지."

"드레인이라면?"

"다른 사람의 힘을 빨아들이는 겁니다."

그의 말에 안좋은 기억이 떠올라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내 표정을 본 그는 곧장 설명을 이었다.

"뭐, 내 기술은 힘이 아니라 체력 빨아들이는 거지만."

"제 체력을 빨아들이겠다는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저 빈약해 보이는 애 체력을 빨 수 없잖아."

"그건 그렇군요."

그의 말에 에반이 다소 인상을 쓰긴 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아직 어린데다 마법사인 에반이 드레인 기술에 당하면 빈사상태까지 갈 지도 모른다. 남자는 에반에게 잠시 나가라고 한 다음 느리게 한 손을 들며 말했다.

"내 상태가 상태인만큼 많이 흡수할거야. 이 악물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손가락이 매의 발톱처럼 가슴팍에 푹 꽂혔다.

"……!!…!……!"

"미안 박쥐 형씨."

이 무슨 거지같은!!

꽂힌 손가락을 통해 피가 주르륵 타고 흘러내리는 광경에 얼굴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이딴 기술이였으면 진작에 말 좀 할 것이지! 당연하지만 말했으면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손을 뿌리치고 싶어도 심장 근처에 박힌 손가락을 통해 상당량의 피가 빨려들어가고 있어 힘들었다.

수 시간과 같았던 몇 초가 지나며 그는 손을 거뒀다.

"하아~ 이제 살겠네."

"당…… 신!"

"너 전사라서 그런지 굉장히 튼튼하구나? 흡수당하고 쓰러질 줄 알았는데. 아무튼 고마워. 덕분에 목숨 부지했어."

당장 셉터로 싱글벙글한 면상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파도처럼 밀려오는 탈력감과 극심한 빈혈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대체 얼마나 피를 뽑아간거야 저 남자는?!

어쨌거나 중상들을 깔끔하게 치료한 남자는 툭툭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춤의 가방을 뒤적여 뭔가를 꺼냈다.

"답례로 줄게. '노바'제 엘릭서니까 체력 회복하는데엔 딱 좋을거야."

"병주고 약주고입니까……!"

그리고 그런게 있었으면 그걸 쓰란 말이야!! 엘릭서로도 다 낫기 힘든 중상이었다는 사실은 짜증과 분노로 거의 잊혀졌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됬네. 그럼 이만~"

그는 귀환서를 찢어내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결국 군단장에 대해서는 전혀 듣지 못했다.

***

이데아side.

오르비스에서 벌어진 사태를 듣는 순간 알았다. 저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듣고 계십니까?"

"…… 그래."

"다행히 첫 일격 이후 추가 공격은 없었고, 미네르바 여신이 님프들과 구조 비행선을 보내 빠르게 부상자들을 구출해내고 있기에 현재까지는 기적적으로 사망자는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그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뿐, 얼마든지 사망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다시 그의 얼굴이 굳었다.

"죽은 사람이…… 있나."

"그건 모르죠. 솔직히 아직까지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게 기적입니다. 당시 탑을 오르던 사람들의 수가 평소보다 적었고, 탑을 향한 추가 공격이 없어서 그 정도로 끝난 것이겠죠."

사실 오르비스 탑은 그 높이와 크기에 비례해 수 백년 전 건축 단계부터 수많은 마법들이 쏟아부어졌다. 어지간해서는 무너지지 않게 고정, 보호 마법들은 물론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 마법들까지 걸려 있었기에 이런 참사에도 무사할 수 있었겠지.

대신 군단장과 싸운 세피로트는 죽음 직전까지 갔었다지만 어떻게든 회복해서 보고를 올렸으니.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시멘트를 부어 굳힌듯한 딱딱한 얼굴. 하지만 그 뒤로는 단 한 명의 사망자조차 없길 바라는 무른 일면이 있었다.

"죄책감을 느끼십니까? 당신이 이 일을 초래한 것 같아서?"

그가 고개를 숙었다.

봉인석을 회수할때부터 검은 마법사의 부활 이전에 군단장들이 활개칠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은 예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 잘못 맞습니다."

"……!"

"인정할건 인정해야죠. 당신이 만든 각 지역의 보험이었던 봉인석을 훔쳤고, 군단장들을 가로막던 브레이크를 없앴습니다. 만약 당신이 봉인석을 모으지 않았다면 이번 오르비스 탑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그리고 남은 브레이크마저 없애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붉은 눈이 거센 풍랑의 조각배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당신이 이 일을 했기에 저희는 상황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감없는 사실.

"이 상황을 막는건 처음부터 불가능했기에, 차라리 통제하는게 낫습니다. 군단장과 그 조직, 다른 군단장들의 정보를 빠르게 얻으며 한 발 앞서 피해를 최소화하는게 우리의 일이죠."

우리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 심지어 우리가 없었어도 - 결국 시간이 지나면 군단장들은 반드시 활동을 개시했을거고, 검은 마법사를 부활시키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니 죄책감은 가지되 잠시 뒤로 미뤄두십시오. 미리 별도의 복구 예산을 편성해 두었으니 그걸 쓰도록 하겠습니다."

"…… 복구 예산?"

"사람들을 도우러 가고 싶으셨던거 아닙니까?"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렇게 강하면서 올곧은 사람이라니. 아무리 안전성이 문제라지만 저렇게 후회할거면 왜 이런 피곤한 방법을 꺼냈는지.

"소드댄서, 아니 검호."

나는 들고있던 자료들로 책상을 쿵! 내려쳤다.

"당신은 군단장들과 전면전을 벌이면 안됩니다."

흔들리는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건 현 시대에 깨어난 영웅들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역할이지요."

그들로도 충분하다. 이미 과거가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었고, 8백년이 지난 지금의 세상도 결코 나약하지 않다.

"잔챙이들의 도발에 반응하지 마십시오."

결국 군단장이라는 존재도 한낮 부하에 불과하니까. 이번 일도 보기엔 거창할뿐 실상 귀환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진짜가 돌아오는 그 날, 모든 판을 뒤집어 엎는게 당신의 역할입니다."

그러기 위해 작전들을 세웠고, 그것을 위해 걸어가고 있다.

결코 잊어선 안된다.

========== 작품 후기 ==========

두 트립퍼의 전투씬을 쓰다 마지막엔 이데아의 책사력을 강조. 별 상관없지만 세피로트는 나중에 어찌어찌 머플러를 회수했습니다.

대뜸 데몬의 피를 빤 기술은 세피로트의 유일한 회복기 흡혈권입니다. 스킬 툴팁대로라면 심장을 씰러야 하는데 그 전에 멈춘거.

알라후 아크바르란 대사를 치긴 했지만 전 이슬람에 대한 악감정이 없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적현월 - 다시 진지해질테니 대충 뿌려본겁니다.

@좀비라스 - 정답은 프라이쉬츠였습니다!

@Sisre - 붉은 코트에 애꾸인 총잡이!

@오만의루시퍼 - 요즘 출현을 안해서...

@건전한독자 - 사실 소드댄서가 되면서 약해졌습니다. 검호의 진짜 힘은 직접 검들고 싸우는건데 그걸 못하니...

@좌절거북이 - 에반도 출연! 지나가다가 세피로트 구조.

@루서스 - 그건 출연 안합니다.

@Eluines - 아뇨, 루미너스를 그지경으로 빡치게 한 유인수단이 뭐였나 해서... 유에는 이때 인질을 잡았나? 했습니다.

@리아카에린 - 그정도 까지는.

@노란우산s - 정확히는 폭발이 일어난 후에 미스틱 게이트가 생성된겁니다. 아니라고 하시면 뭐, 여기서는 그렇다고 해두죠.

@레시코 - 엔버:전력전개로 빔을 쏴서 봉인석을 찾았어요! 검호:(전력전개에 빔...? 별빛 뽀개기?) 이런 식입니다. 블랙윙 간부들 사이에서 검호는 성실하고 유능하지만 상종하기 싫은 남자.

@Jaiha - 그건 검호쪽이 좀 더 승산이 높음.

@라그실 - 우왓, 장문의 코멘! 참고로 은월이 검호에게 루미 흑역사를 물어봤던건 대략 은월:대체 그 흑역사라는게 뭐였냐 검호:(어째선지 빡쳐보인다)그리 심각한건 아니었다만 은월:심각한게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화를 낸거지? 똑바로 말해라. 검호:(진정해라고 어이)아니 그게, 예전에 너랑 같이 엘리니아 숲에서 어둠에 빠졌던 루미너스를 봤던거 기억하나? 은월:ㅇㅇ 검호:그거 가지고 유인한거다. 안오면 그 사실 메이플 월드 전역에 퍼뜨리겠다고. 은월:...(화낼만 했잖아!!)

@여행자구름 - 알라의 요술봉을 휘두르고 가심.

@socns - 처음엔 미숙했으니까요.

@Lucy - 위쪽의 리코멘을 참조해주세요.

@갓타치 - 우리의 총잡이!

@Ratios - 그리고 이동석의 등장.

@칼크래프트 - 그 양반은 시간의 신전에서 아카이럼과 함께 프리드가 만든 시공의 뒤틀림 없애려고 삽질중.

@ReFrnate - 만약 반 레온이었으면 붉은 머리라고 언급했을걸요.

@원나중독 - 사실 검호한테 일이 쏠린건 이데아의 공작 덕이지만.

@LostChildren - 그건 누굽니까?

@허공말뚝 - ... 요즘 해골 마법사하면 아인즈밖에 안떠올라.

@책벌레씨 - 딱히 길게 쓸 생각은 없었는데 두 트립퍼의 전투씬이 마구 길어졌습니다. 재미도 없는데(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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