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133화 (133/208)

<-- 싫은 이야기 -->  아스카side.

마스터와 노바족들이 봉인석 회수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숨어있던 군단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저 돌아왔다는 뜻으로 날렸을 폭죽 한 방이 오르비스 탑을 반파시켰다는 소식에 얼마나 어이없었는지

당장이라도 그놈들을 싹 쓸어버리고 싶은데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상당히 답답한 얼굴이네요."

"말 걸지마. 짜증나니까."

"그들이 돌아왔나요?"

나는 감옥 안의 놈을 쏘아보았다.

팔다리가 부서져 여기저기 부목과 붕대를 감은 채 마법을 봉인하는 수갑과 족쇄까지 주렁주렁 찬 팬텀 - 의 몸에 빙의한 스우가 씩 웃어보였다.

"현 시점에서 당신을 그렇게 찌푸리게 할만한 사건은 그 정도 일밖에 없으니까요. 거기다 그가 일을 궤도에 올렸으면 그들이 반드시 반응을 보였을거고."

눈치빠른 놈. 군단장들 중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상대하기 싫은 놈을 꼽으라면 스우 저놈은 아카이럼과 함께 1, 2위를 다툴거다.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러는 넌 못할거라 보는 모양이지?"

"옛날에 비하면 지역감정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것뿐이죠. 평화에 젖을대로 젖은 이 시대의 사람들은 때를 기다려온 우리를 막기엔 너무 나약해요."

"영웅들은 보이지도 않나보네."

내 말에 스우는 능청스럽게 당황한척 연기했다.

"아 참, 그들도 있었죠. 우리들이 나타나면 그 뒤를 따라다니면서 꼬투리 잡기만 하던 놈들."

"니가 누구한테 당해서 수 백년동안 그 지경이 됬는지 생각나지도 않나봐?"

"그러는 당신은 지금 내가 누구 몸을 차지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것 같고요."

…… 팬텀 이 한심한 자식. 아무리 복수하고 싶어도 적진 한복판이면 좀 자제할 것이지 왜 이 때 빙의나 당해가지고. 빙의당한 이유가 블랙윙 제복차림으로 스우의 몸을 지키던 마스터를 보고 충격을 받아서 였다는 사실은 뇌 한 켠에다 치워두기로 했다.

"누가 신호탄을 쏴올렸나요?"

"내가 그걸 왜 말해줘?"

"힐라? 아카이럼? 반 레온은 그런거 나서서 할 성격이 아니고…… 아."

재수없게 하필 똑같은 보라색 눈이 빛났다.

"프라이쉬츠군요."

하 망할, 왜 저런 놈이 머리가 좋은건지.

"우리중에서 가장 강했고, 맛이 가 있었던 그라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으니."

"강한건 알고 있는데 맛이 가 있다고?"

"그는 사람을 죽이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거든요. 과거의 데몬과 아카이럼이 광적인 충성심으로 무장했다면 그는…… 매그너스와 반 레온을 섞은 것 같았습니다."

같은 군단장이 바라본 다른 군단장의 모습.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 안 가리면서 - 그래서 같은 편인 우리마저 미끼로 쓰길 망설이지 않았죠 - 그 근본엔 복수심─ 아, 이 경우엔 증오라고 해야할까요? 누굴 향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네. 꽤 옛날이었지만 처음 루디브리엄에서 그놈을 만났을때 그 정도의 또라이로 안보였는데. 만나자마자 싸웠긴 했지만 대뜸 공격하지 않고 마스터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거기다 마스터의 말에 의하면 그 프라이쉬츠란 놈도 마스터와 같은 트립퍼라는 이들 중 하나. 멋대로 자신을 이곳에 불러들인 시간의 오버시어를 증오해 빛의 오버시어 아래 - 검은 마법사에게 간 건 충분히 납득이 가지만 애꿎은 사람들까지 죽이는건 이해할 수 없다. 뭔가 이유를 알아보면…….

"어쨌든 프라이쉬츠가 맞는거죠?"

젠장. 어느새 대화에 말려들어 저놈 추측이 맞다고 긍정해버렸다는걸 깨달았다.

나는 교활한 웃음을 짓고 있는 놈을 보았다. 저놈을 여기 가둬놓은건 빙의를 풀든 안풀든 밖으로 내보내면 큰 사고를 칠게 분명하고, 그 사고는 무엇이든간에 마스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절대로 좋은 것일리 없기 때문이지만…… 아예 사고를 못 치도록 만들어버릴까.

내 손에서 피어오르는 마력을 본 놈이 먼저 말했다.

"날 공격하면 당신 마스터가 가만히 않있을겁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몸은 그의 동료의 것이니까요."

"나한테 영체에만 타격을 주는 방법이 없을 것 같아?"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죠. 이 몸의 원 주인에게 타격을 주는 방법이 제게 없을까요?"

"…… 쯧."

마스터가 왜 겔리메르에게 하루빨리 스우를 제네로이드로 만들라고 하는지 잘 알았다. 미쳤지만 능력만은 확실한 그 영감이라면 과학의 힘으로 저놈의 몸과 영혼 둘 다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어째선지 당신은 그들이 돌아온 사실이 탐탁치 않아 보이는군요. 그들이 일어날 수 있게 도운건 당신의 마스터인데 말이죠."

저 질문만은 답해선 안된다.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직감했다.

"그라면 봉인석의 기능도, 그것의 역할도 다 알았을텐데 왜─"

"너는 왜 빙의를 그 따위로밖에 못 쓰는거지?"

뭐라고 답하든 정보가 새어나간다면, 일단 화제를 돌리는 수 밖에.

말을 하던 스우는 나를 지긋이 보았다.

"갑자기 무슨 말이죠 그건?"

"생각해보니까 이상해서. 니놈은 몸이 그 꼴이 되었어도 빙의 능력을 잘만 쓸 수 있잖아. 그런데 왜 그 능력을 써서 니가 그렇게 아끼는 쌍둥이한테 안간거야?"

걔는 너 부활시키려고 별의 별 짓을 다 하던데. 말 돌리려고 한 질문이었지만 그동안 궁금했던 것이기도 했다. 왜 저놈은 그토록 소중하다는 쌍둥이 남매에게 빙의 능력을 써서 대화 한 번 안한걸까.

말을 돌린 날 아니꼽게 보던 놈이 잠시 침묵하더니 느리게 말했다.

"…… 안한게 아니라, 하고 싶어도 못한겁니다."

"뭐?"

"제가 그런 시도 한 번 안해봤을만큼 멍청한 것 같습니까? 몇 번이나 해봤죠. 그리고 전부 똑같은 결과만 나왔습니다."

남자의 몸을 뒤집어쓴 소년 유령은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무슨 수를 쓰든 제 목소리는 오르카에게 닿지 않아요."

"어째서?"

"그걸 알면 진작에 해결했겠죠. 그리고 만약 오르카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면 옛저녁에 당신들의 정체를 오르카에게 말했을거고."

그건 그랬다. 우리가 별 탈 없이 블랙윙에 숨어들어올 수 있었던건 우리의 정체를 눈치채고도 빈정거리거나 도발하는걸 제외하면 아무것도 안한 - 저 대답으로 봤을때 못한 것 같은 - 스우의 공헌도 있었으니까.

필담도 무리냐고 물어볼까 했지만 설마 그건 가능한데 모르고 있는거라면 자폭하는 꼴이니 이건 얌전히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궁금한게 해결됬으면 제가 물어본 것에 대답해주는게 어때요?"

"싫은데. 내가 왜?"

"……."

저놈 패턴 뻔히 알았는데 또 휘말릴 이유가 없잖아.

"그리고 지금 너때문에 마스터가 무리하고 있어서 좀 짜증나거든. 마음같아선 감시가 아니라 두들겨 패고 싶어."

"이 몸이 당신 마스터의 동료 몸이라는건 잊으셨습니까? 저를 공격해봤자─"

"어쨌든 통증은 느낄 거 아니야. 팬텀따위, 마스터한테 소중한 사람이지 나한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놈이라고."

오히려 스우따위에게 빙의당해 짐짝이 되었는데 뭐 좋다고 예쁘게 봐줄 수 있겠는가.

"결과적으로 지금보다 악화되지만 않으면 되잖아? 그 정도는 쉬워."

회복 마법은 마스터때문에 매우 자주 써서 지금은 가장 잘 쓰는 마법이고, 저놈 현재 상태 외워놓은 다음 적당히 어루만져준 뒤에 딱 복구시키면 되겠지.

"…… 유감스럽지만 절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어서 주먹을 쓰려는거면 그만두도록 하세요. 헛수고니까요. 저는 제가 빙의한 몸의 감각을 조절해서 어떤 상태가 되든 움직일 수 있습니다."

"쳇."

아까워라. 그러고보니 오르비스에서 미네르바 여신이 뭔가에 씌인듯한 님프가 불타는 장서관 한복판에 웃으며 서있었다고 했는데, 저 말 들어보니 이제서야 긍정이 간다. 몸이 타는듯한 고통을 느낀다면 그런 짓 못하지.

혀를 차는 날 보고 스우놈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당신, 내가 아는 어떤 여자랑 참 닮았네요."

"그게 누군지 모르겠고 궁금하지 않으니까 안물어볼게. 이제부터 입 다물어."

나는 마법으로 팬텀의 제복 섬유를 조작해 재갈로 만들어 놈의 입에 물렸다.

아아, 마스터 보고싶어. 한참 중요할 때에 난 여기서 무슨 시간낭비람.

***

겔리메르side.

놀랍군. 정말 3일안에 성과를 가져오다니. 나야 당연히 해낼거라고 생각했지만 길고 길었던 - 사실 그렇게 길지도 않았다 - 정보수집 기간 내내 그를 들들 볶았던 윙마스터 오르카는 보란듯이 봉인석 4개를 가져온 소드댄서의 활약에 놀란 눈치였다.

물론 놀라는것도 잠시, 수고했다는 말도 없이 봉인석만 들고 쌩하니 어딘가로 가버려 항상 포커페이스인 그도 좀 빡쳐보였지만.

오르카 그년이 간 이후 돌아가지 않고 남아있던 그가 나에게 말했다.

"겔리메르. 당신에게 부탁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호오, 무슨 일인가?"

매우 진귀한 일이군. 거의 모든 일을 부하들과 스스로의 선에서 해결하는 그가 이번 봉인석 회수 과정에서 다른 간부들의 손을 빌렸다는 말을 들었을때부터 생각했지만 뭔가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이제서야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고 있거나.

"오르카가 봉인석을 폐기하지 않도록 설득해주셨으면 합니다."

"왜 그걸 나한테 부탁하는겐가?"

설득이라면 소드댄서 그가 더 잘할것 같구먼. 신용도로 따지면 나보다 그가 월등할테니.

"…… 봉인석의 이용가치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데엔 저보다 당신이 더 잘할테니까요."

"이용가치? 자네는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잘 아는가?"

윙마스터가 이런 조직을 만들어가면서 어떻게든 모으려고 한 것이었기에 그동안 궁금했지만, 실물을 보기무섭게 싹 다 가져가서 연구는 고사하고 관찰할 틈도 없었다. 대체 봉인석이 뭐길래 그년이 모으려고 하는걸까.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사용하는건 굉장히 힘들지만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매우 강력한 물건입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만…… 뭐, 알겠네."

"이걸로 충분합니까?"

"그년을 설득하는데엔 그정도면 충분하지."

자세한건 일단 폐기를 막은 다음 연구를 해서 알아내야겠군. 단편적이지만 '힘 덩어리'라는 사실은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잠시 후, 오르카가 돌아왔다.

"잘했어 소드댄서. 그런데 니할과 에레브,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것은 언제 가져올거야?"

"그것들은 시간이 걸립니다."

"어째서?"

"그 세 개는 앞서 회수한 네 개의 봉인석과는 달리 보안 상태가 매우 높으며, 찾기 힘듭니다."

"몇 달 동안 그놈의 정보 수집만 했으면서 찾기 힘들다고?"

봉인석 한두 개도 아니고 일곱씩이나 있다는 사실을 뇌에서 지워버린건가 저 여자는. 수 백년 전에 그 지역 어딘가에 보관되었다는 사실만 빼면 단서 하나 없는 상황에서 다른 일까지 병행해가며 저 정도의 성과를 가져왔다는게 얼마나 기적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원래 저런 종류의 일은 시간과 예산만이 답이거늘…… 얼마나 예산을 짜게 줬으면 저쪽에서 스스로 자금줄을 만드는 지경까지 갔을까.

"빅토리아 아일랜드와 에레브의 봉인석은 위치가 확실하지만 섣불리 손댈 수 없으며, 니할 사막의 것은 아직 조사중에 있습니다."

"대체 그것들이 어디있다고 이렇게 시간을 끄는거야!"

그는 관찰력 좋은 사람에게나 보일만큼 미미하게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봉인석은 엘프 마을 에우렐에 있으며, 에레브의 봉인석은 '신수의 눈물'이라는 이름으로 엄중하게 보관되고 있습니다."

"잠깐. 에우렐에 봉인석이 있다고?"

"예. 하지만 현재 엘프의 왕인 메르세데스가 깨어난 상태고, 결계가 쳐져 있어 접근이 몹시 힘든─."

"니 부하들 써서 부수면 되잖아? 그까짓 결계따위."

참고로 저년이 말하는 '그까짓 결계'는 지난 수 백년동안 만들어진 아래 한 번도 안깨지고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엘프 마을을 지켜낸 희대의 물건이다.

그는 결계를 없애도 메르세데스가 있다는 말을 했지만 오르카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메르세데스따위 내가 유인해낼 수 있으니까 넌 봉인석이나 가져와."

"알겠습니다."

도움이 아니라 트롤링으로 보이는건 절대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오르카님.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응? 뭐야 대머리?"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신경을 박박 긁는군.

"소드댄서가 회수해낸 봉인석을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당연히 없애야지. 그분과 우리를 여태껏 발목잡은 물건을 세상에 남겨둘 필요가 없잖아."

"으음, 당연히 그렇겠지만 당장 없애지 마시고 저에게 빌려주실 수 있습니까?"

"왜?"

그가 나를 지긋이 보았다. 걱정말게나. 자네 말대로 저년이 넘어올만한 건덕지를 만드는건 무척 쉬우니까.

"그 정도로 굉장한 물건이라면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서 말입니다."

"흥! 이런 일에 시간낭비하지 말고 스우나 살려내. 그것때문에 너를 고용했다고!"

"시간낭비가 아닙니다 오르카님. 만약 그것을 저희가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면…… 스우님을 더 빨리 살려낼 수 있을겁니다."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다른건 몰라도 이거엔 반응할줄 알았지.

"…… 정말이야?"

"어디까지나 가정이긴 합니다만, 봉인석이 거대한 에너지원이라면 스우님의 부활을 앞당기는데 쓸 수 있을겁니다. 루 광석으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로는 지금이 한계니까요."

내 말에 그녀는 갈등했다. 하지만 그래봤자지.

"알았어."

제 쌍둥이 남매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게 저년이니까.

"대신 성과를 내놓지 않으면 가만히 안둘거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찬란히 빛나는 네 개의 보석이 손에 들어왔다.

거기다 이번 일로 그에게 빚까지 만들었으니 정말 이득이군.

"나중에 이 빚 갚……."

말을 하며 그가 있는 쪽을 봤다가 입을 다물었다.

소드댄서는 아무렇지 않은 무표정이었지만 들고 있던 금속 차트판을 신문지처럼 고이 접고 있었다.

"무슨 말 하셨습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네. 나중에 말하겠네."

조만간 오르카가 그에게 살해당해도 전혀 이상할게 없겠군.

***

은월side.

걸핏하면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입 안이 까끌까끌하다. 만약 폐를 꺼내 볼 수 있다면 모래가 폐 안에 반쯤 차있지 않을까.

이데아 그녀의 말에 따라 니할 사막에 온지 며칠, 그동안 나를 포함한 노바족 마법사들은 밤낮으로 아리안트 주변만 뺑뺑 돌아다녀 짧은 시간안에 이 근방의 지리를 거의 다 외워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법진은?"

"오늘 안에 끝날겁니다."

"부디 그 말대로 오늘 안에 끝내주길 바란다."

"저희 역시 그럴 생각입니다. 여기 태양이랑 모래 진짜 지긋지긋하거든요."

노바족 마법사는 그리 말하며 지팡이를 다시 휘둘렀다.

아리안트는 군단장 힐라의 본거지인 아스완과 밀접해있어 군단장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타격을 받을 곳 중 하나가 될게 분명했기에 그에 따른 대비를 해야했다.

힐라가 부리는 군단은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쌍욕이 절로 나오는 언데드의 군세. 대비를 제대로 안해두면 시간이 흐를수록 이쪽 숫자만 줄고 저쪽은 그만큼 수가 늘어나는 악몽을 맛보게 된다. 다행히 노바족은 오랫동안 언데드들과 싸워온 경험을 살려 대(對) 언데드용 결계를 빠르게 만들고 있었다.

"티로 정찰병, 임무에서 복귀했습니다!"

"보고해라."

모래먼지를 한가득 뒤집어쓴 정찰병이 돌아왔다.

"말씀하신 지하유적 아스완을 발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현재 아스완은 엄청난 수의 스켈레톤과 몬스터들로 들끓고 있으며, 그때문에 중심부까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원견 마법으로 중앙의 탑을 관찰해보았는데……."

티로 정찰병은 긴장한듯 침을 한 번 삼킨 뒤 말을 이었다.

"붉은 머리의 미녀가 보였습니다."

마침내 깨어났군.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무척 아름다운 여자였음에도 몹시 위험해 보였습니다."

"정확히 봤다. 그녀가 군단장 힐라니까."

"정말입니까?"

"그래."

사실 군단장중에서 힐라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 개인의 무력은 군단장 중 최하위로, 여성인데다 직접 전투라고는 안하는 네크로멘서 계열이니 당연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악명만은 검은 마법사의 오른팔인 데몬과 맞먹었었다. 그녀의 언데드 군단은 메이플 월드의 절대다수인 양민들에겐 대재앙이었으니까.

'마음같아선 지금 없애두는게 나을 것 같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아리안트의 결계 설치가 우선이다. 마가티아엔 몬스터 방비가 철저하게 되어있으니 좀 안심할 수 있다지만 여긴 그렇지도 않을 뿐더러, 지금 이들을 데리고 힐라한테 가봤자 언데드와 몬스터들의 미칠듯한 물량에 쓰러질 것이다.

그녀를 미리 처리할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워 할때 한 노바족 마법사가 다가오며 말했다.

"은월님. 결계 설치 과정 중 아리안트 외곽에서 알 수 없는 시설이 발견되었습니다."

"시설?"

"예. 수 백년은 된 것 같은데, 구조로 봤을때 일종의 창고인 것 같습니다."

자세한건 직접 들어가봐야 할 것 같다는 말에 나는 그를 따라갔다. 오아시스에서 꽤 떨어져 있는 곳에 우뚝 서 있는 큼직한 바위들의 틈 안쪽으로 은밀하게 만들어진 화려한 양식의 문이 있었다.

"여깁니다."

"……응?"

아 잠깐만. 이거 왠지 익숙해.

내가 당황하든 말든 마법사는 힘껏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지하를 파서 만든듯한 동굴같은 넓찍한 내부에 또다시 금장 테두리를 두른 문이 떡하니 있었다. 흡사 귀족 저택의 입구같은 위용과 초승달 장식이 상당히 눈에 익다.

"열겠습니다."

말리기도 전에 노바족 마법사는 문을 확 열었고, 그 안에는─

휘황찬란한 금은보화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우와…… 이거 다 가져가면 저희 자금 사정이 꽤 나아질 것 같네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역시 여기 팬텀의 보물창고잖아!! 그가 메이플 월드 곳곳에 만들어뒀던 창고 몇 군데를 알고 또 몇 개는 직접 가봤던지라 바로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여기 것은 이전에 팬텀을 찾다가 제가 직접 자물쇠를 부숴서 들어갔던 그 창고다!

"이데아 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그러나 내 말은 한 발 늦었고, 뜻하지 않게 보물을 찾았다는 소식에 이데아는 평소보다 한 톤쯤 높은 목소리로 그것들을 전부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어떻게든 말리려고 했지만 오르비스 탑 참사에 쓴 돈을 메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그녀를 막을 순 없었다.

미안하다 팬텀. 보물은 못 돌려주지만 나중에 어떻게든 도와주마.

========== 작품 후기 ==========

빈집털이.

@이년아 - 엄청 긴 코멘 감사합니다. 읽는 내내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단 하나하나 답해드리려고 했는데 리코멘이 너무 길어져 쪽지로 보내드립니다. +추가) 작품 설정으로 올렸습니다.

@루엔시르온 - 원래부터 맛이 가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시오버 통수때부터.

@Jaiha - 그건 안쓰겠지만 좀 바꿔서 몇몇 요소를 집어넣을겁니다. 가령 아브락사스.

@비탄의과학자 - 프쉬는 화기 전문이거든요.

@Lucy - 둘 다겠죠.

@류동지 - 저쪽엔 유용한 힐러가 없어서 막 몸굴리기 힘듭니다.

@세이카엔 - 검호 이전의 트립퍼들은 봉인 해제 방식이 조금씩 다른것도 있지만 검호만큼 오래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Sisre - 세피:출연은 좋은데 왜 지는 역이지.

@레시코 - 중2라기 보단 스타트 선을 처음으로 자르는 느낌이랄까요.

@Legendssj22 - 예. 꼭 만날겁니다. 그리고 대폭주 예정.

@Blake117 - 프쉬는 총기&화기 전문이니까요.

@노란우산s - 검마 봉인때 파픈과 아란에게 입은 부상 겨우겨우 치료한다음 시간의 신전 어딘가에 잠들어 있었습니다.

@좀비라스 - 데미안의 공식 별명이잖아요ㅋ

@책벌레씨 - 암묵의 룰이죠.

@Ratios - 세피로트는 나중에 꼭 프라이쉬츠에게 한 방 먹일겁니다.

@키하라스티카 - 감옥에 있습니다.

@arays - 레전드 스킬 몇 개 추가할까 고민중입니다.

@칼크래프트 - 데몬은 나중에 돌려받으려고 벼르는중.

@적현월 - 2개 아니었나요? 피까마귀랑 뱀피릭 터치였나 그거까지.

@여행자구름 - 누군가 고인드립같은거 쳐줄겁니다.

@리아카에린 - 그리고 은월은 뜻하지 않게 빈집털이를 해버림.

@대어의예감 - 한 번쯤 넣고싶은 대사였습니다. 프쉬랑 싱크로율이 높을 것 같아서요.

@Yoontlemin - 사실 알라후 아크바르 말이 나쁜건 아닌데 테러리스트들이 시도때도 없이 사용해서 이미지가 아주 그냥.

@Eluines - 데미안은 여기선 조금 구원받을지도.

@천궁사월 - 검호 룩을 봤는데 꽤 재현률이 높더군요.

@건전한독자 - 아군이 지기만 하면 누가 보나요?

@갓타치 - 안그래도 이번 학기 시간표가 헬이에요 어우.

@허공말뚝 - 처음 계획은 바주카포였는데 이쪽 이미지가 더 강렬해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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