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피로트side.
한쪽 문짝이 날아간 현재의 문 안에 슬쩍 손을 집어넣어 보았다. 별다른 방해없이 손이 쑥 들어가 이리저리 움직여보기도 했다.
"…… 진짜 봉인되어 있는거 맞나."
검호에게 들은 검은 마법사의 봉인 과정을 생각하면 사실 문짝의 유무따윈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이렇게 뻥 뚫려있으니 뭔가 믿음이 안간다. 이데아의 말로는 전투중에 부서졌을거라는데……?
어쨌든 들어가는데엔 무리가 없어보이니 심호흡을 하고 현재의 문 안으로 발을 디뎠다.
문 하나가 없음에도 이상하게 내부가 보이지 않고 새카만 어둠만이 뭉쳐져 있던 현재의 문 너머는 비가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회랑과 이어져 있었다.
'과연. 나름 조치를 취했단 말이군.'
수 백년도 전에 벌였던 전투의 흔적이 쭉 이어진 복도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부서진 갑옷, 누군가가 입었던 옷, 기둥에 박힌 화살. 그리고 천장에 주렴처럼 늘어진 검은 사슬은 이곳의 지배자가 누구인지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것 같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대충 맞으며 한참 걷다 복도의 끝에 도착했다.
빛의 사슬로 길이 막혀 있었지만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닌 나는 의미없이 그것을 통과했고, 어째선지 천장이 반쯤 무너진 폐허와 같은 거대한 홀 안에 그가 있었다.
"검은 마법사."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자의 대리인.
빛의 봉인 속에 갖혀있는 그를 보고만 있음에도 오한이 든 것처럼 전신이 떨려와 애써 힘을 줘 진정시켜야 했다.
한 때 지금은 없던 것이 되어버린 시간대에서 그를 죽였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요행에 불과했고, 역시 직접 그를 마주하는건 두렵다.
"…… 아, 속 쓰려."
그가 우리들과 비슷한 처지인건 알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상대가 절로 동정심이 들만큼 안좋은 과거가 있든, 누가 강제로 시켜서 일을 저지르든, 그놈이 내 눈앞에 칼을 들이밀면 동정심이고 연민이고 싹 날아가는게 당연하다.
양 팔을 문질러 소름을 가라앉힌 나는 빠르게 주위를 살펴보았고, 곧바로 봉인을 지탱하고 있는 다섯 개의 붉은 빛의 기둥들 중 하나가 꺼져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기둥들마다 보석이 하나씩 있었는데 그 기둥의 것만 부서져 있었던 것이다.
'진짜 얼마 안남았네.'
다시 고개를 들어 봉인 속의 검은 마법사를 보았다. 빛의 막 일부가 깨어져 그 틈으로 어둠이 스멀스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일주일? 한 달? 아무리 늦어도 이번 달 안에 부활한다 분명.'
마법의 마 자도 모르지만 봉인은 척 보기에도 위태로워 보였다. 거기다 내 감은 꽤 좋다고 자부할 수 있을만큼 날카로운 편이고.
저 자리의 보석만 깨진 이유야 이미 알고있다. 아이가 말하길, 과거 저 기둥을 담당했던 봉인석은 자신의 힘이 많이 들어있어 그대로 뽑아다 먹고 대신 자기 힘으로 땜빵했었다나. 어이없지만 그 땜빵이 8백년을 버텼으니 그래도 제 구실은 다 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봉인석은 상당수 모았으니 그중 하나만 가져와 저기에 바꿔 끼우기만 하면 다시 봉인할 수 있을거다. 하지만 그랬다간 시간의 오버시어를 안전하게 깨울 수 없다.
"하!"
진짜 웃긴 상황이네.
훗날의 큰 재앙을 막기 위해 눈앞의 작은 재앙을 풀어놔야하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어이없었다. 심지어 그 '작은 재앙'인 검은 마법사는 오버시어라는 우주구급 사기 존재와 상대평가 했을때 작다는거지, 실제로는 그조차 못 당해내는게 우리의 현실아닌가.
하지만 어쩌나. 초월자는 편법이든 뭐든 써서 발목이라도 잡을 수 있지 오버시어는 그딴거 없는데.
'돌아가는 길에 교활한 영감탱이나 죽이고 갈까.'
남아있으면 두고두고 세상에 해악을 끼칠 군단장들을 살려둘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살인을 꺼리는 형씨조차 군단장이라면 기회가 생기는대로 죽여라고 말할정도니 내가 굳이 첨언할 필요는 없겠지.
내 시간대에선 나랑 영웅즈가 다 처리했었는데…… 연합이랑 같이 2회차 레이드 뛰라고 쿨하게 말하던 형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죽였던 놈들 또 죽여야 하는구만.
어쨌든 볼만큼 다 봤으니 이제 슬슬 돌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폐허같은 방에서 나가기 위해 발을 옮길때, 여기저기에 쌓여있던 천장 파편들 사이로 비죽 튀어나와있던 뭔가가 발에 턱 걸렸다. 슬쩍 내려다보니 뭔 문 손잡이 같은거였다.
"엥?"
왠 문 손잡이가? 잘 보니까 이거 들어오기전에 봤던 현재의 문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리고 그 말인즉 떨어져나간 다른 한쪽 문이 이거라는 뜻…….
아니 대체 뭘 어떻게 싸웠길래 이게 여기 있는거야? 문을 던져서 공격하기라도 했어 형씨?
아카이럼 처리하는 김에 신전 초입쪽에서 봤던 신관들에게 이거 좀 수리해라고 말해야겠네. 8백년동안 문짝 하나도 고치지 않다니, 양심이 있으면 시간이 부족했다는 변명은 하지 않겠지.
'거기다 잘 보니 여기 상태가 전체적으로 뭔가─.'
천장은 뚫려있고, 문은 날아갔고, 오는 복도와 방 안은 과거에 싸웠던 흔적도 채 안치운 옛날 그대로에 언제부터 내렸을지 모르는 비가 밤낮 가리지 않고 주룩주룩 쏟아지고 있다. 이런 곳에 검은 마법사가 8백년동안 봉인되어 있었다 이거지?
"군단장이라는 놈들은 자기들이 모시는 사람 방 청소도 안하는 것들이었군."
충성심을 어느 엿장수한테 팔아넘긴거지. 생각해보니 좀 웃긴 결론이 내려져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헛웃음이 나왔다.
그때 지옥에서 기어나온듯한 스산한 목소리가 폐허에 울렸다.
[하고싶은 말이 무어냐.]
"푸웁──?!"
심장이 떨어진다는 진부한 표현이 실제로는 어떤건지 생생하게 강제 체험당했다.
이 방에서 저런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 뿐.
[호기심따위로 이곳까지 기어들어온거냐. 어리석은 불나방놈…….]
아아, 나 예전에 어떻게 저놈이랑 싸웠었지. 기합이랑 근성으로? 식은땀으로 젖어드는 뒷목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주저앉으려는 다리에 힘을 줘 간신히 세울때 빛의 막 너머로 불길하게 타오르는 두 눈과 마주쳐버렸다.
미치겠네. 이 나이먹고 지릴것 같잖아.
'나중에 돌아가면 형씨랑 이데아한테 위험 수당 2배로 올려달라고 해야겠어. 이건 사람이 할 짓이 못 돼.'
뜬금없었지만 이 생각 덕에 그대로 놓칠뻔한 정신줄을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
[니놈……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로군.]
"보는 눈이 좋네."
봉인되었어도 초월자는 초월자란건가. 하기사 다른 트립퍼들을 부하로 데리고 있었다하니 대충 알아본 모양이다.
[그와 같은 편인가.]
"당연한 말을."
[니놈따위를 거두다니, 그도 변했군.]
따위라니. 분명 저놈은 여기서 날 처음보는걸텐데 첫인상이 얼마나 안좋게 박힌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아닌 것 같아도 형씨, 상당히 지쳐보였으니까.
수 백년 전 메이플 월드에서 영웅들과 함께 싸웠던 때의 그가 어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무렵의 그는 지금과 같진 않았을거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변하기 마련이니까. 좋게든 나쁘게든 말이지.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어."
나는 한때 내 손으로 죽였고, 직후 그 처지를 진심으로 동정해버렸던 상대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형씨는 여전히 당신의 적이라는거."
그리고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진이 난 것처럼 방 안이 뒤흔들렸다.
봉인의 틈 사이로 연기처럼 새어나오던 어둠이 활화산의 용암처럼 격렬하게 분출했고, 힘겹게 폈던 무릎이 허망하게 꺾여 땅에 찍혔다. 아픔을 느낄새도 없이 몸이 고꾸라지려해 겨우 팔을 뻗어서야 간신히 흙과 찐한 키스를 할 뻔한걸 막을 수 있었다.
나는 미친듯이 웃고있는 그를 채 올려다보지도 못하고 장기를 쥐어짜는듯한 어둠과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웃음소리를 정면으로 맞으며 재해가 지나가길 한참 기다려야 했다. 돌아가면 휴가내든가 해야지 진짜! 유일한 아군 트립퍼라고 이런 곳에 덜렁 혼자 보내는건 너무했다고 형씨!
[그 말, 틀림없는 사실이겠지.]
"난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만큼 간이 크진 않거든."
제대로된 공격은 받지도 않았는데 HP가 반토막 난 기분이다.
[기만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벌레따위가 잘도 나불거리는구나.]
"…… 표현이 좀 너무한데."
여기 오기전에는 대학에서 이미지 메이킹 수업도 받아봤는데 첫인상이 왜 저렇게 최악이 된걸까. 아 뭐, 좋게 인식되어서 진짜 득될게 있긴 하겠냐만.
[눈앞에서 꺼져라.]
"기꺼이."
날 공격하지 않고 굳이 나가라고 말한다는건 최소한 지금은 봉인이 유효하다는 뜻. 사지 멀쩡하게 돌아갈 수 있을때 썩 물러나야지, 괜히 혼자서 매달려봤자 초월자를 상대로는 승산따위 안나오는걸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대로 뒤도 안돌아보고 폐허에서 나왔다.
현재의 문 밖으로 나가는대로 이데아한테 상황보고를 때리려고 통신기를 꺼내들어 곧장 연결했다만, 반사적으로 주먹을 쥘만큼 따가운 적의가 꽂혀들어 발을 멈춰야했다.
[……(치직) 관찰은 끝났습니까 세피로트. 조금 늦었군요.]
"음, 이데아? 나 좀 나중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무슨 일이 생긴겁니까?]
"여러가지 일들이 생겼어. 지금 설명하기엔 상황이 영 안좋네."
[무사히 돌아올 수는 있습니까.]
"그건 걱정마."
내가 검은 마법사를 상대하지는 못하지만.
같잖은 뱀 신관들과 날개조차 없는 마족 병사들 따위에게 질만큼 약하진 않거든.
[무운을 빕니다.]
"고마워."
나는 통신을 끊은 다음 주먹을 내질러 제일 앞의 뱀 신관을 으깼다.
***
나인하트side.
메이플 월드 곳곳에서 정신없이 올라오는 서류들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서류들은 대륙, 섬 가리지않고 전 지역에서 날아들어왔지만 그것들이 알리는 바는 모두 동일했다.
갑자기 나타난 대량의 몬스터들과 군세의 습격, 그에 따른 피해, 각종 이변들.
8백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얼음 속에 잠들어 있던 영웅들이 하필 지금 이 시기에 깨어났다는건 그에 따른 이유가 당연히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죄송합니다 나의 마스터."
"됬습니다. 그래도 없잖아 건진게 있으니 다행이죠."
그것마저도 가짜일 가능성이 존재했지만 그녀가 한 노력을 폄하할 순 없다. 그녀가 모은 블랙윙에 대한 자료들은 지금 리린에게 가 있다니 나중에 요청해야할 것 같다.
메이플 월드의 주요 도시들이 습격당했다지만 의외로 그 피해는 적었는데, 지금 책상 위에 나의 키보다 더 높히 쌓여있는 서류들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루디브리엄:어디서 왔는지 모를 마족 군단들이 습격했으나 마침 그곳에 머물고 있던 영웅 루미너스와 각 직업들의 상위권에 드는 모험가들이 힘을 합쳐 물러나게 함.
엘나스와 오르비스:두 지역을 잇던 탑이 반파되는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간 영웅 아란과 메르세데스, 그곳에서 인명 구조중이던 에반이라는 마법사와 어느 마족이 둘로 나뉘어 해결.
아리안트:사막에 항상 내리쬐는 태양빛을 이용한 결계로 몰려오는 언데드들을 국경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구워버리는 중.
리프레:나인스피릿을 따르는 드래곤들이 날뛰는 혼테일 휘하의 용족들을 처리함.
빅토리아 아일랜드:각 마을의 전직관들이 사람들을 대피시킨 뒤 모험가들을 이끌어 몬스터들을 정리함.」
─가 된다. 물적피해는 상당했지만 인적피해는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지.'
이번 습격이 저쪽의 전력일리 없다. 수 백년 전이라고는 하나 메이플 월드 전역을 지옥같은 상황으로 만들었었다는 군단장들의 힘이 이게 전부면 그게 말이 안되는거지. 이번 결과는 어디까지나 요행에 불과하다.
거기다 테이아의 말에 다르면 저쪽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 하고. 사실상 이번 습격은 어디까지나 경고 혹은 간보기에 불과해보이니…… 다음에 진짜가 오기 전에 대비 아니, 확실하게 대항할 준비를 해야한다.
"여제님께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세요 마스터~"
"돌아오기 전에 저 대신 리엔에다 협조 요청서 좀 보내두세요."
서류를 처리하기 위해 종류별로 정리하려던 테이아가 웃으며 말했다.
"협조고 나발이고 마스터의 여동생분에게서 쌍욕만 빼곡히 적은 종이들을 보내올텐데요?"
"이번 일은 리엔의 도움이 없으면 안됩니다."
"진지한 얼굴로 가출한 집에다 용돈 달라고 손뻗지 마세요 마스터."
"돈이 아니라 인력 요청입니다."
"더 최악이네요."
…… 대체 왜 저런 여자랑 계약이 된건지 모르겠군. 오닉스 드래곤의 마스터 선별 기준이 대체 뭔지. 생각해보니 리엔을 탈출하게된 계기도 테이아와 계약하면서 늙은이들이 저를 떠받드는게 3배쯤 더 심해져서다.
"아무튼 보내두세요."
"알겠습니다 나의 마스터."
탈출했다고는 해도 자력으로 에레브의 책사 자리까지 올라온 저를 또 '역시 시조 아리에스의 후손다운~' 이라고 태세변환하던 늙은이들이니 리린도 아주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집무실에서 나온 뒤 연무장을 가로지를 무렵, 저 멀리서 옅은 옥색 깃털로 뒤덮힌 거대한 동체가 보였다.
"나인하트……?"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여제님."
신수의 곁에서 얕게 자고 있던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괜찮아요. 그런데 무슨 일이죠?"
"현재 메이플 월드의 주요 도시와 마을들이 정체모를 이들에게 습격을 받고 있다는건 여제님께서도 들으셨을겁니다."
일단 서류를 처리하기전에 간략하게 요약한걸 보내드렸으니.
"네.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냈나요?"
"물증은 부족하지만 십중팔구 군단장들일 겁니다."
"군단장…… 이라면 예전에 나인하트와 신수님이 얘기했던 수 백년 전의 존재들 말인가요."
"예."
직접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각 군단장들의 본거지로 추측되는 지역에서 나타난 몬스터들의 유형들을 보고 반쯤 확신했다.
"그렇다는 말은……."
"'그' 역시 깨어날지도 아니, 어쩌면 벌써 깨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최악의, 그러나 당연히 해야하는 가정을 세워야했다. 리엔에서 책을 통해서나마 간접적으로 알게된 '그', 검은 마법사의 힘이 절반이라도 사실이라면 우리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으니까.
"일단은 다음 습격이 있을지도 모르니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기사단을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잘하셨어요. 그 다음은요?"
"습격을 막는데 가장 앞장선 이들과 습격받은 마을과 도시들의 대표들을 모아 일차적으로 회의를 가질까 합니다."
빅토리아 아일랜드에서는 이미 각 직업의 전직관들이 모여 작게 회담을 했다고 한다.
"이번 습격을 막아내는데 크게 활약한, 그리고 과거 그들과 실제로 싸웠던 영웅들을 불러 말을 들어봐야합니다."
"다시 또 습격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건 위험하지 않나요?"
"그 부분은 리엔의 도움을 받을겁니다."
리린 그 아이가 허락해야 가능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까지 개인감정을 휘두르지는 않을거다.
"대륙회의가 열린다는 말이군요."
"예."
"만반의 준비를 해주세요 나인하트."
"물론입니다 여제님."
이제 밤새 서류와 전쟁을 치뤄야 한다.
***
은월side.
마지막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가른 후 철조를 털어내 사이에 낀 뼛조각을 빼냈다.
"이제 남아있는 놈은 없나."
"예. 없습니다."
"겨우 끝났군."
노바족 마법사들이 아리안트에 결계를 설치한 것까진 좋았는데 제대로 가동이 되기도 전에 언데드들이 들고 일어나 한바탕 모래사막을 뒹굴면서 놈들을 쓰러뜨려야 했다. 그래도 제때 끝나서 다행이다.
"평생치 모래는 여기서 다 먹은 것 같습니다."
"이하동문이다."
"전 돌아가는대로 샤워하고 싶어요……."
다들 사막이 지긋지긋했는지 그동안 일때문에 속에다 묵혀두었던 말들을 내뱉으며 투덜거렸다.
"그래도 보물을 찾았으니 그 공으로 한 일주일은 쉴 수 있겠지?"
"아마 그럴거야. 이데아님은 상벌이 확실하시니까."
"판테온으로 돌아가고 싶다아~"
"뒤에 계시지 말고 빨리 오세요 은월님!"
"곧 가지."
뒤집어쓴 모래를 대충 다 털어낸 나는 그들을 향해 뛰어갔다. 모래에 푹푹 발이 꺼져 영 속도가 안났지만 이 정도쯤은─
"음?"
잠깐, 다리가 잘 않움직여? 지치거나 다쳐서가 아니다. 마치 이 일대의 모래에 파묻히고 있는듯한…….
"은월님!!"
다음 순간 나는 바닥없는 모래 구멍에 머리까지 삼켜졌다.
하수구에 빨려들어가는 금붕어가 그럴까. 거대한 손에 꽉 쥐어짜여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끝없이 추락하는 느낌에 정신줄을 놓아버리기 일보 직전, 바람의 정령을 불러냄으로 겨우 숨이나마 쉴 수 있었다.
그렇게 길진 않았겠지만 체감상 몇 달 같았던 모래감옥에서의 시간은 거대한 지하 공동에 다다르며 끝났다.
나는 폭포처럼 떨어져내리는 모래에 휩쓸려 그대로 머리부터 땅에 심어지기 전에 칼날의 정령을 불러냈고, 최대한 멀리 낫을 날려 기괴한 모양으로 층층히 쌓여있는 탑과 같은 바위를 하나 찍음으로 간신히 유사(流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
죽을뻔했다. 진짜 어이없이 죽을뻔했어.
싸우는데 더럽게 불편하다고 욕한 블랙윙 제복 원단의 튼튼함에 경의를 보내며 삐걱거리는 몸을 애써 움직여 땅에 내려왔다.
'여긴 어디지?'
아까 떨어지면서 잠깐 보긴 했지만, 이 지하 공간은 너무 넓었다. 힐라가 있는 아스완보다 더 넓어보인다.
나는 위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찾기위해 하나같이 물리법칙을 무시하면서 쌓아놓은듯한 바위탑들을 지나며 지하 공간을 둘러보았고, 그러다 마침내 대략 문으로 추정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째 나가는 길이라기보단 뭔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같이 보였지만.
========== 작품 후기 ==========
히오메는 스토리를 진행하기보단 부분부분을 가져다가 변형해서 쓸겁니다.
인게임에서 나인하트는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영웅을 기다리느니 세계의 안정을 위해 여제를 찾겠다! 란 이유로 섬을 나갔지만 여기선 시조 아리에스의 후손으로서 과한 관심과 기대에 지쳐 이 망할 섬에서 나가겠어! 입니다. 물론 여제의 후손을 찾아내 자리에 올리는건 똑같지만요.
@Buche - 엄밀히 다지면 라테일의 소드댄서와는 다릅니다. 검호가 어검술을 쓰는 방식은 본인의 힘이라기보단 검에 특수기능을 단거니까요.
@세이카엔 - 네. 그대로 뚫려있어서 비도 셉니다.
@허공말뚝 - 검마:나한테 따지지 마라.
@핑구친구 - 알파&베타:8백년이나 시간을 줬잖아!!
@좀비라스 - 이번에 고쳐질겁니다 아마.
@키린이 - 그러나 군단장들이 나타나면서 문짝은 그대로...
@칼른 - 뚫려있으니 환기는 잘 될 것 같습니다.
@Legendssj2 - 검호:... 아직도 안고쳤어?!
@savere000 - 정확히는 면상 옆으로 날아가 박살났음.
@노란우산s - 노바족은 블랙윙들이 있는 곳에서는 검호를 소드댄서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테이아는 팬텀 있는지 모릅니다.
@Jaiha - 대충 찍어서 비슷하게 맞춤.
@지나가던해덕 - 아뇨 지금은 소시민은 아니고 꽤 강하다고 믿긴 한데 역시나 팔이... 나중에 나을거에요. 그리고 거하게 싸우겠죠.
@sjdjabqh - 저도 가끔 정주행을 해야합니다 하하.
@익재공 - 서로서로 귀찮다고 미룬 결과 아닐까요.
@원나중독 - 그리고 날아온 문짝에 아카이럼 의문사.
@caballa00 - 자세한 정황은 나중에 다 밝혀지겠습니다. 차원의 도서관에서~
@Yoontlemin - 저도 관심없습니다만, 파픈과 검호때문에 이 글 마지막쯤에 키스씬을 한 번쯤은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레이단트 - 발은 아니고 주먹.
@썬키 - 당연히 아스카입니다. 계약자들의 힘을 보세요.
@SourcesMoon -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안고침.
@라그실 - 수리비는 군단장 앞에 달렸습니다(웃음). 현 거주자가 군단장&검마라서.
@Dulcet - 관광객이 현저히 줄어들어서 예산에 쪼들리는중.
@류동지 - 더 자세한 정황은 대략 신관1:일단 이거 고치긴 고쳐야겠죠? 신관2:그렇겠죠. 신관1:그런데 이 떨어진 문짝 어디있지. 신관2:경첩이 부서진 형태로 보아 현재의 문 안쪽에? 신관1:... 그냥 냅둡시다. 저길 누가 들어가요.
@카한Kahan - 하지만 안고친건 신관들 탓이에요 하하.
@Eluines - 한 두 분이 그런게 아닌듯.
@Blake117 - 차마 안에 들어가서 부서진 파편을 주워올 용기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Sisre - 발로 찬게 아니라 '힘껏' 민거였습니다. 맥뎀맞고 날아갔죠.
@루서스 - 그런데 검호라면 그것만으로 어지간한 문은 다 열(?) 수 있다는거.
@대어의예감 - 하지만 신관들이 죄다 신학 전공자라 fail.
@책벌레씨 - 고칠 사람이 없었음. 8백년 전에는 데몬한테 신관들이 몰살당했고, 그 뒤에는 그런 일 할만한 사람이 안나왔고.
@갓타치 - 검호의 멋진 등장을 위해 희생당한 그 문짝입니다.
@좌절거북이 - 천장 파편&문짝 파편&빗물의 콜라보를 이루며 폐허 한복판에 봉인당한 검마. 군단장중 누구도 와서 청소 안해줌.
@ReFrante - 하지만 현재 에반의 얼굴(개구쟁이 얼굴)을 성형할 이유가 없음.
@황태자파이터 - 봉인당한 내내 비맞고 계셨음ㅋ 농담이고, 봉인 막 속이니 아무래도 상관없었겠지만요.
@칼크래프트 - 신전관리인:안쪽은 여전히 황폐화된 상태라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고 초입에서 관광객들과 모험가들에게서 입장료 받으며 돈 버는 중입니다...
@레시코 - 다음 ng외전에서 써먹어봐야 겠습니다.
@건전한독자 - 그보단 예전처럼 강성하지 않다는거죠.
@적현월 - 어차피 시오버한테 먹히는거 확정인데요.
@육합 - 뜰에 올려져 있습니다.
@여행자구름 - 큰 역할보다는 자잘한 것들을 할겁니다.
@Ratios - 더 제대로된 이유를 말하자면 전 스타 세계관을 잘 모릅니다.
@melsi - 당기시오라고 붙여야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