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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메이플 월드 전역에서 일어나는 산발적인 습격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시그너스 여제는 각 지역의 대표들과 습격 당시 가장 앞장서서, 가장 크게 활약한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아 회의를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습격이 있을 줄 몰라 몇몇 사람들은 함부로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들을 위해 나인하트는 오래 걸리고 다소 위험한 비행선대신 여동생의 구박을 감수하고 리엔의 도움을 받아 대륙 이동 포탈을 설치함으로 그들을 에레브로 오게했다.
"에레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책사 나인하트입니다."
"잠깐, 너 리린이랑 머리색이 똑같네? 혹시 니가─"
"그 얘기는 잠시 뒤로 해주시죠. 회의장은 저쪽입니다."
익숙한 은청발에 제가 머무는 집의 아가씨를 떠올린 아란은 역시 남매라고 생각하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메르세데스는 엘프의 왕답게 허리를 폈고, 에반은 처음 온 에레브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데몬만이 조용히 입을 다문채로 가장 뒤를 걸었다.
도착한 회의장에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와있었다.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전직관들 대표인 하인즈와 헬레나, 엘나스 지역의 전직관 대표 로베이라, 미네르바 여신과 티티모 촌장, 무릉에서 온듯한 팬더와 아리안트 출신으로 보이는 그을린 피부의 사람 등등이 모여 상당히 북적이고 있었다.
아란은 그중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우와~ 오랜만이야 루미너스!!"
"오랜만이다."
"너도 와있었네."
"당연히 와야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세 사람이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동안 에반은 이번에도 뭔가 영웅들과 관련있어 보이는 사람의 등장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도 와있었군요."
"저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데몬 씨?"
"빛의 마법사 루미너스입니다. 영웅들중에서 둘뿐인 마법사중 하나였죠."
"또 영웅인가요……."
에반의 얼굴이 영 안좋아졌다. 소년은 그들을 싫어하는건 아니지만 어째 그들이나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이 하나같이 저를 볼때마다 처음 하는 말의 레퍼토리가─
"아, 소개할게. 이쪽은 에반! 어리지만 상당한 마법사야."
"넌……?"
"프리드 아니에요."
이번에야말로 먼저 말하겠어! 생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으로 착각당하는건 지긋지긋하다고!
그리고 에반의 속마음을 모르는 세 사람은 소년의 말에 나란히 굳어 침묵했다. 다른 사람들로 시끌시끌한 와중에 그들의 주위에만 수 초간의 정적이 이어졌고, 루미너스가 조금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 누가 너같은 애를 프리드로 착각한다는거지."
"아란 누나랑, 메르세데스 씨랑, 팬텀 씨랑 그리고─"
막힘없이 나오는 이름들이 하나같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어설프게 웃는 아란에게 물었다.
"정말인가."
"아, 뭐, 많이 비슷하게 생겼잖아?"
"생긴 것만 비슷할 뿐이지 인상은 물론 가지고 있는 마력이나 마법 실력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처져 보인다만."
"틀린 말은 아닌데 꼭 애 앞에서 그런 말을 해야겠어?"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에반의 머리 속에 루미너스의 첫인상이 영 안좋게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눈동자의 하이라이트가 사라진 에반과 기계적으로 악수를 주고받은 루미너스는 조용히 서 있는, 그러나 푸른 피부색과 피막의 날개때문에 잔뜩 눈에 띄는 데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너는 왜 여기있는거지."
한 때 서로를 죽이기 위해 전력으로 무기를 휘둘렀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하하호호 지내는 일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저도 당신들처럼 이 사태의 관계자니까요."
"주동자가 스스로 잡혀온건가."
"군단장은 옛저녁에 그만뒀습니다만."
"말은 잘 하는군."
그래도 루미너스는 데몬이 시간의 신전 공략때 지대한 도움을 줬었다는걸 알기에 아란처럼 얼굴 보자마자 공격하진 않았지만, 오가는 대화는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루디브리엄을 습격한 놈들이 마족 군단인데 관련이 없다고?"
"그건 처음 듣는군요. 자세히 설명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니 군단인데 왜 나한테 묻는거지."
"그러니까 군단장 그만뒀다고 했습니다."
점점 한파가 몰아치는 분위기를 멀리서 구경하고 있던 모험가들이 속닥거렸다.
"뭔가 상당히 안좋게 돌아가고 있네 저쪽."
"당연히 그렇겠지."
"뭐 알고 있어요 테스 형?"
"…… 대충은."
데몬을 본 순간 심장이 철렁했던 테스는 적어도 지금의 그가 적이 아닌 상태임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군단장으로서 악명을 떨치던 때의 데몬을 기억하고 있기에 더더욱.
"저 뻘건 미역머리 남자하고 루미너스 님, 아란 님, 메르세데스 님 이렇게 세 사람은 사이가 끝내주게 안좋거든."
"헤에?"
"어떻게 된건지 미역머리쪽이 개심한 모양인데 그런다고 묵힌 감정이 사라질리가 없지."
[하지만 계속 저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지마─ 악?!"
테스의 목소리가 해괴하게 올라갔다. 다른 세 모험가들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뿐이지 갑자기 나타난 둥둥 떠다니는 기괴한 생김새의 바윗덩이에 놀란 상태였다.
[객(客)의 입장에서 소란을 피울 수는 없지.]
바위덩어리는 사람의 몸보다 더 큰 건틀렛같은 손을 들어 마력과 포스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두 사람의 사이에 쿠릉! 벽을 일으켜 떨어뜨려놓았다.
"이 힘은……!"
"구와르?!"
젠장 역시나! 테스는 오늘 무슨 날인가 생각했다. 날이라면 날이 맞았지만.
"어떻게 당신이 여기에 있는겁니까?"
[그대와 비슷한 이유로 왔다고 하면 대답이 되겠나.]
"예?"
"그는 저와 같이 요정, 정령 대표로서 이 자리에 왔어요."
새벽 풀잎에 맺힌 이슬이 떨어지는 것처럼 맑은 목소리였다.
백만송이의 장미를 모아 만든듯한 화려한 붉은빛의 나비 날개를 느리게 흔들며 걸어온 여인은 분홍색과 옅은 노란색이 섞인 꽃잎같은 머리카락을 넘겼다. 감출 생각이 전혀 없는 그녀의 얼굴은 그 자체로 빛난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름다웠다.
웅성거리던 회의장을 단지 제 외모만으로 침묵시킨 그녀는 영웅들을 향해 살짝 고개숙여 인사했다. 가히 살인적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의 정체를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꿰뚫어본 메르세데스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페어리 따위가……."
그녀의 말에 페어리 - 아마란스는 미미하게 인상을 쓰며 무어라 말하려고 했으나, 직후 회의장 입구쪽에 서 있던 기사가 외쳤다.
"여제님께서 들어오십니다!"
절도있는 발소리들이 다가왔다. 각자의 속성과 직업을 그대로 알리는듯한 다섯 명의 기사단장들이, 그리고 그들에게 빙 둘러져 보호받고 있는 우아하면서도 연약해보이는 긴 금발의 소녀 - 시그너스 여제가 회의장에 들어섰다.
사람들은 황제라기보단 공주라는 느낌이 더 강한 소녀의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일단 깊히 고개숙여 인사했다.
"모두들, 이곳에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긴장했는지 조금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두 눈만은 단단하게 빛나고 있는 소녀는 조금씩 운을 떼며 말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 자리에 와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이미 전해들었을거에요."
각자의 생각은 조금씩 다를지도 모르지만.
"지금 메이플 월드는 알 수 없는 무리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누구고,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대항해야할지 여러분과 의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직면한 현실에 대처할 필요가 있었으며.
"…… 그러니 이제 자리에 앉아주세요."
대륙 회의가 시작되었다.
***
은월side.
발견한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골렘같은 것이 갑자기 길을 막긴 했지만 그런 종류의 문지기를 어떻게 상대해야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다 조립되기 전에 부숴 파편을 대충 치우고 문을 열었다.
자잘하게 설치된 함정들을 적당히 피하고 거대한 건축물이라 추측되는 이곳 내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며 깊숙히 들어갔을 무렵, 아랫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윗층이 아니라 아랫층이라니……."
계속 들어가도 좋은가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했지만 별 수 없었다.
불여우 정령들을 불러내 시야를 확보해낸다음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도중, 짚고있던 벽에 고개를 들어도 다 살펴볼 수 없을만큼 거대한 그림이 새겨져 있다는걸 안 건 조금 시간이 지나서였다.
유감스럽게도 벽화는 마법사들이 쓰는 마법진처럼 복잡하기 짝에 없어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지언정 저게 뭘 그린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리고 다음 층을 내려가면서 벽화는 또 나왔다.
'사람?'
이번의 것은 많이 간략화되긴 했지만 확실하게 사람이었다. 사방으로 퍼지는 아우라와 사나운 눈매, 스태프와 입고있는 옷의 양식으로 보아 마법사가 틀림없었다. 다만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째선지 저 로브 형태가 루미너스랑 비슷해보이는데.'
…… 우연인가. 하기사 마법사들의 옷은 다 거기서 거기니까.
하여튼 벽화 자체는 신기했지만 별다른 의미는 찾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다음 층에 발을 디딘 순간 그대로 미끄러져 계단을 구르며 바닥까지 내려갈 뻔 했다.
사슬을 휘감고 있는 검은 옷의 괴인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여섯 명의 사람. 그리고 등을 보이고 있지만 위치상 정면으로 그와 마주하고있는 또 한 사람.
"저건……!"
어떻게 봐도 검은 마법사와 우리였다. 심지어 좀 훼손되긴 했지만 존재의 시간이 사라지며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잊혀진 나도 새겨져 있다!
검은 마법사와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는 사람은 긴 머리와 뼈같은 머리장식으로 볼때 100% 검호인 것 같고, 일단 벽화 자체는 8백 년 전 봉인의 순간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대체 누가?'
생각해보니 이 유적부터 벽화들까지 수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수 백년 전의 사람들이 이런걸 만들 수 있긴 한가? 검은 마법사와 군단장들때문에 메이플 월드 전역이 황폐화되어 있었는데? 아니 거기다 날 기억하는 사람이 프리드와 그 빼고 또 누가 있을 수 있지?
의문은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뭐 하나 확실한게 없었다. 나는 그림을 확실히 눈에 새긴 뒤 또 다른 벽화를 찾기 위해 더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다음 층의 벽화는 이전 것과는 달리 알아보기 힘들었다.
'저 여자는 누구지?'
아우라 라기보단 뭔가의 파편이나 조각같은 걸로 보이는 것들의 회오리를 휘감은, 예쁘장하지만 도저히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는 소녀가 누구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왠지 예감상 마지막일 것 같은 층에 도착하자마자 쿵! 하며 들어온 입구에 석문이 떨어졌다. 무슨 함정인가 싶어 문을 부수기 위해 주먹을 들었을 때, 천장과 벽에서 쏴아아─ 모래가 물처럼 떨어졌다.
"또 모래인거냐……."
이젠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쏟아지는 모래에 금화와 금가루가 상당히 섞여있는게 보였지만 여기 오기전까지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눈이 따가울만큼 금색으로 빛나던 모래 사막을 환각이 보일만큼 지겹게 봐서 정말 신물이 날 것 같았다. 저걸 한 양동이쯤 퍼다가 이데아한테 갖다주면 좋아하겠지만 지금 난 빈손이니 기각.
속으로 혀를 차며 고개를 들어보니 유일하게 모래가 나오지 않는 천장 구멍이 하나 있는걸 발견할 수 있었고, 나는 망설일것 없이 바람의 정령을 불러 강신시킨 다음 칼날의 정령들을 소환해 낫으로 벽을 찍으며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천장의 구멍을 통과했을때 나는 비로소 나가는 문이라 추측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오래도 걸렸군.'
여기가 대체 무슨 목적으로 왜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내부 구조가 개판인건 확실히 알았다. 내가 석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문에 새겨진 새 형상의 조각이 빛났고, 문은 묵직한 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갔다.
출구인게 맞았는지 햇빛이 내려쬐는 바깥으로 나오자 흡사 새와 램프를 합친 것처럼 생긴 정체불명의 건축물이 보였다. 그 앞에는 환영처럼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안녕?]
어떻게든 다시 만나고 싶었던 이가 그곳에 있었다.
***
뮤네side.
내가 막 눈을 떴을 때 장로님들은 날 보고 무척 놀라셨다. 왜 그러세요? 물어봐도 대답해주시지 않고 왕님을 찾으러 바삐 가셔서 내가 뭔가 잘못한건가 생각했다.
그러다 주위를 둘러보았을때 왜 그분들이 저런 반응을 보였는지 알았다.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과 어른들이 얼음 속에 갇혀있었던 것이다.
왜 나만 얼음에서 빠져나온건지 모르지만 장로님들과 왕님은 저주가 풀리고 있다며 엄청 좋아하셨다. 확실히 좋은 일인건 맞지만…….
"…… 훌쩍."
다니카 누나도, 필리우스 형도, 아스틸라 할머니도 모두 일때문에 바쁘시고, 왕님은 힘을 되찾기 위해 메이플 월드 이곳저곳을 다니고 계시느라 마을에 잘 돌아오시지도 않는다. 친구들이랑 선생님은 얼음에서 깨어날 기미조차 안보이였다.
왕님이 직접 나에게 '너는 장로들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깨어난 아이니 결계 밖으로 나가면 절대 안된다'라고 신신당부하셔서 다른 마을에 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처음에는 할 일이 없어서 심심했고, 뭘 해도 금방 지루해졌으며, 결국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나는 대충 쌓은 장난감 블록 탑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친구들이랑 놀고싶어.'
계속 이렇게 혼자 있을바엔 차라리 얼음 속에 갇혀 있는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종종 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혹시나 친구들이 깨어났을까 보러가려고 자리에서 막 일어났을때, 건물 사이로 희끄무래한 뭔가가 뿅뿅 돌아다니고 있는게 보였다.
"어?"
저게 뭐지?
혹시 몬스터라도 들어온건가 싶어 조심조심 발소리를 줄이며 건물 뒤로 숨은 하얀 무언가에게 가까이 가보았다. 다니카 누나는 지금 마을에 없는데 어쩌지.
최대한 그 건물에 몸을 숨긴채로 고개만 빼꼼 내밀어 보인 하얀 무언가는─ 토끼 인형이었다.
[안녕!]
"아…… 안녕?"
신기하게도 토끼 인형은 스스로 말하고 움직였다. 살아있는 것처럼 손을 흔들었고, 귀도 쫑긋거렸다.
[나랑 놀자!]
"뭐?"
갑자기 놀자고 말한 토끼 인형은 통통 뛰어와 다짜고짜 나한테 매달렸다. 놀자~ 놀자~ 나 심심해! 마침 토끼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이 인형을 가지고 장로님께 가야한다는 생각은 나지 않았다.
"뭐하고 놀아?"
[술래잡기! 그리고 니가 술래야.]
"에에…… 어째서?"
[이 손으론 가위바위보를 못하니까.]
토끼 인형은 뭉뚝한 손을 흔들어보였다. 확실히 저걸로 가위나 보는 못 만들겠네.
"알았어. 내가 술래할게."
[그럼 셋 세면 시작하는거다. 하나, 둘─]
"셋!"
매달려있던 토끼 인형을 잡으려 했지만 인형은 재빠르게 도망쳐 어느새 건물 사이를 빠져나가 큰 귀를 흔들었다.
[히히, 나 잡아봐~라.]
"너 거기 가만히 있어!"
그렇게 나는 인형을 잡기위해 마을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아스틸라 할머니는 어제 밤새 일하시다 지쳐 주무시고 계셨고, 필리우스 형은 엘리니아란 곳에 잠시 나갔으며, 다니카 누나는 인근 몬스터를 정리하러 가서 나와 토끼 인형과의 술래잡기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오늘 이 술래잡기가 얼음에서 깨어난 이후로 가장 재미있었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나는 숨이 가빠져 뛰기 힘들어질때까지 토끼 인형과 놀았다.
[잡아봐! 잡아봐!]
"못, 잡을 줄 알아!"
나를 약올리며 또 도망치려는 인형을 향해 달려들어 간신히 붙잡는데 성공했으나─ 인형을 붙잡은 순간, 인형에서 새카만 어둠이 보자기처럼 확 펼쳐지며 나를 덮쳤다.
어둠이 걷혔을때 보인 것은.
"나도 잡았네 꼬마야."
가느다란 양갈래 머리를 한 예쁜 여자애와.
"이제 물러나시죠 오르카님."
"싫어. 메르세데스가 않왔잖아."
"애초에 그녀는 지금 에우렐에 없습니다."
온통 새카만 색을 두른 무섭게 생긴 남자.
"당장 그녀를 기다려봤자 오지 않을겁니다."
"재미없게 그게 뭐야?"
"어차피 지금의 당신은 그녀를 못 이기지 않습니까."
"시끄러! 오르카는 메르세데스랑 놀려고 여기 온거란 말이야!"
여자애의 몸에서 새카만 어둠이 스멀스멀 올라와 내 몸을 내리눌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누구야 대체.
"저희는 봉인석을 회수하기 위해 온겁니다. 영웅과 싸우러 온게 아니란 말입니다."
"얘 죽이면 메르세데스가 올까?"
"흐끅!"
주, 죽여? 날?
"안됩니다."
"그럼 왜 이거 잡으라 했어?"
"마을에서 애가 사라진걸 알면 장로들이……."
"뮤네에에─!"
나무들 사이로 다니카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직접 올테니까요."
무섭게 생긴 남자의 새빨간 눈이 어둡게 빛났다. 그의 말에 예쁘지만 오싹한 어둠을 부리는 소녀가 활짝 웃었다.
"그럼 저것들과 놀면 되겠네."
"시간만 끄시면 됩니다. 괜히 쓰러뜨리겠다고 나서지 마시죠."
"잔소리 하지마. 오르카 마음대로 할테니까."
여자애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둘렀고, 지팡이에서 뱀처럼 튀어나온 새카만 밧줄이 나를 꽁꽁 묶었다.
"금방 다녀올테니 대충 상대만 하고 계십시오."
"흥!"
콧웃음치는 여자애를 한 번 더 보다 남자는 순식간에 어딘가로 뛰어갔다. 그리고 남자가 가버림과 동시에 다니카 누나가 수풀을 가르며 나타났다.
"뮤네!"
"다니카 누나!"
"아 뭐야. 혼자 온거야? 적어도 둘정도는 와주지."
어째선지 여자애를 본 다니카 누나의 눈이 확 크게 뜨였다.
"윙 마스터……?"
"딩동댕~! 정답이니까 박수쳐주고 싶지만 이게 있어서 무리네."
여자애가 밧줄째로 나를 잡아들어 컥, 몸이 조였다. 아파아!
"뮤네를 놔!"
"그런 말 한다고 놓는 놈이 어디있니?"
"대체 무슨 목적으로 애를─"
그때 저 멀리서 공기가 찢겨나가는 소리가 울렸고, 그것과 거의 동시에 커다란 무언가가 쿠웅!! 쓰러져 땅을 구르는 진동이 바닥을 흔들었다.
"서, 설마……?!"
"정말 빠르네. 벌써 결계를 부순거야?"
저 멀리 우리 마을을 감싸고 있던 옅은 분홍색 막이 꽃잎처럼 흩어져가고 있었다. 그걸 본 다니카 누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나도 다르지 않았다.
에우렐을 지키고 있던 결계가 사라져버렸어.
========== 작품 후기 ==========
오르카의 본래 캐릭터성은 얀데레+악녀+3인칭화 였죠. 블랙헤븐이랑 프렌즈이후 츤데레로 바뀌었지만...
예전에 검호가 에우렐의 결계가 깨져 메르세데스가 아직 얼음에 있는걸 보고 왔다~ 고 했었는데, 사실 그때도 결계는 건재했습니다. 프리드가 만들때 영웅즈 한정으로 무조건 통과 가능이라고 설정해뒀거든요.
@좀비라스 - 에우렐 무단침입(?). 그리고 은월은 마침내 재회.
@카한Kahan - 유감스럽게도 은월에게 벽화 해석의 능력은 없었습니다.
@Blake117 - 마가티아는 지상에 있습니다.
@레시코 - 안그래도 굵직한 전투가 4개씩이나 잡혀 있어서 머리가 아픕니다.
@라그실 - 정확히는 당시 데몬이 신관 몰살할때 신전에 없었고 외부에 있던 신관들이 후예들을 양성한겁니다.
@노란우산s - 영웅즈가 다 모이는건 조금 뒤의 이야기.
@적현월 - 저도 혹했습니다만, 그렇게 쓸 수는 없죠 하하.
@책벌레씨 - 고생한 보람이 있어요!
@익재공 - 하다못해 그때 대화시도를 했다면 무언가가 바뀌었을지도 모르죠. 그것때문에 후회중이기도 하고요.
@여행자구름 - 그냥 세피로트의 성향을 단적으로 말한겁니다. 선한 의도든 악한 의도든 본인의 필요에 따라 거짓말을 하거든요. 보통 사람들이 그러듯이.
@원나중독 - 아카이럼이 아니라 아카이럼의 부하인 뱀 신관들중 하나였습니다.
@오만의루시퍼 - 아 그건 아니에요... 아마.
@리아카에린 - 왠지 주간 연재가 되어가는 느낌이네요. 학년 올라가면서 시간표가 빡세진지라... 죄송합니다. 테이아는 나인하트와 성향이 같습니다. 나인하트가 여제 바라기라면 테이아는 마스터 바라기.
@Sisre - 정신차린건 비교적 최근이지만 하여튼 오래 생각한건 맞을듯.
@건전한독자 - 후후, 이래야 역시 제 독자님들이죠(코쓱).
@Legendssj2 - 그런 개그 외전에나 나올 행동을 할리가.
@류동지 - 유감스럽게도 유적에서 나오려면 빈손이어야 하는 고로.
@ReFrante - 문지기는 그냥 박살냈습니다. 은월은 선빵필승! 이 곧 싸움의 진리라 생각하는 무투가인고로.
@Ratios - 저 세 가지 일들은 거의 동시에, 큰 시간 차이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어의예감 - 본편과는 별 상관없지만 테이아는 소프트한 얀데레입니다.
@SourcesMoon - 그리고 현재 개이득.
@socns - 일차적으로 메이플 월드의 봉인석 전원 회수. 이차적으로 제네로이드 스우와 블랙헤븐 처리, 활동을 시작한 군단장들의 습격으로 인한 피해 최소화.
@Jaiha - 무쟈게 영향 줍니다. 잘못 건드리면 몸이 미립자 단위로 붕괴됨.
@핑구친구 - 그래서 단독으로 프리드의 사념과 만났음.
@칼크래프트 - 본편과는 달리 리엔 섬을 나온 이유가 축소된만큼 섬 내에서는 다소 요란한 가출로 취급됬으니까요.
@Buche - 이 글의 히로인은 한 명 뿐이잖아요?
@Eluines - 아브락사스 타고.
@허공말뚝 - 매우 좋죠! 구른만큼의 대가가 팍팍 돌아옴.
@갓타치 - 엔딩 컷에서도 혼자 조각이 부서진거 보고 은무룩했죠...
@이년아 - 검호:고등학교때는 확실히 힘들지. 초중때엔 적당히 놀면서 공부하면 됬는데 갑자기 올라오자마자 야자니 보충이니 하면서 12시간도 넘게 학교에 쳐박혀버리니까. 그래도 기운내라.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니가 웃을 수 있는 일은 반드시 생길테니까.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