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141화 (141/208)

<--  -->  스우side.

그 드래곤 정말 어지간히 마스터바라기인 모양이네. 애초에 그게 오닉스 드래곤의 종족 특성이지만 그 드래곤은 정도가 좀 심하다. 설마 마스터의 동료인 팬텀조차 거치적거리면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인드일 줄이야.

'기껏 빙의했는데 당신 가치가 고작 이정도라니, 실망이군요.'

[닥쳐.]

가시돋힌 대답이었지만 그 뒷면의 떨림이 손에 잡힐듯이 느껴졌다. 장시간 몸을 빼앗겨서 그런지 정신이 쇠약해진 모양이군요.

'뭐, 그만큼 그가 변했다는 뜻이겠죠. 동료였던 당신조차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 함부로 하지마!]

'내 말 틀렸나요? 애초에 당신을 여기에 가두라고 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해요?'

[그건 니놈때문에─!]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건 잘 알잖아요. 중요한건 그가 이곳에 있다는것 자체, 그리고 저와 오르카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

실상은 조금 다르지만 어떠하리. 애초에 사실대로 말해줄 필요가 전혀 없으니 애매한 부분은 그럴듯하게 꾸며내면 그만.

'당장 동료인 당신을 구하기위해 아무것도 안하고 여기 쳐박아놓은게 확고한 증거─'

말을 다 잇기도 전에 갑자기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역시나 그, 검호.

"마스터!"

"늦게와서 미안해. 갑자기 일이 많이 쏟아져서."

"그랬어?"

눌러쓴 모자를 벗어 벽에 걸어둔 그는 근처에 놓여있던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동안 힘든 일은 없었어?"

"없었어. 쟤가 시끄럽게 떠들어댈때 그냥 입 막아놨으니까."

그는 슬쩍 고개를 돌려 이 몸의 입에 물려있는 재갈을 보았다.

"…… 저거 풀어."

"알았어!"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쭉 물려있던 재갈이 드래곤의 손짓에 바스라졌다. 입 주변이 얼얼하다.

"간수 교육을 좀 똑바로 하는게 어때요?"

"아스카. 저놈한테 구속복."

"응!"

순식간에 전신 관절에서 우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래서야 방금 재갈을 푼 의미가 없잖습니까? 그 입 다물어. 쥐어짜듯이 온몸을 옭아매는 구속복의 통증에 나는 오감을 다소 둔하게 만듬으로 고통을 약화시켰다.

"가혹하군요. 그래도 동료 몸인데."

"댈 핑계가 그거뿐이냐."

"가장 잘 먹혀드는 핑계이기도 하죠."

[하아? 아까는 그가 나를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더니…….]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만.'

죽이고자 했으면 언제든 죽일 수 있었음에도 굳이 멀쩡히 살려 감옥에 가두고, 삼시세끼 꼬박꼬박 내오고, 그마저 내가 일부러 먹지 않을까봐 제 드래곤을 시켜 입안에 우겨넣게 하고, 혹여나 자해 시도라도 할까봐 무기를 빼앗는건 물론 마법을 못 쓰도록 만든다음 혀조차 못 깨물도록 재갈을 물린다.

이걸 동료애라고 칭하는건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왜 찾아왔습니까?"

"이제 그 몸에서 꺼져라."

"흐응?"

"일이 궤도에 오른건 물론, 거의 다 끝나가니까."

"그 말인즉 봉인석의 대부분을 회수했다는 뜻입니까."

삐걱, 등받이에 몸을 기댄 그가 작게 콧웃음치며 대꾸했다.

"이제 하나밖에 안남았다."

[뭣?!]

"정말 대단하군요."

농담이 아니라 손을 움직일 수 있었다면 진심으로 박수를 쳤을 것이다. 8백여년 동안 수많은 일들을 해야해서 우선순위가 한참 쳐지긴 했지만 1달도 안되는 시간만에 봉인석의 대부분을 가져오다니. 물론 그가 봉인석을 만드는데 거든 영웅중 하나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래도 상식밖의 무지막지한 속도다. 다른 군단장들더러 저거 좀 보고 배우라 말하고 싶을만큼.

"그리고 그것때문에 곧 연합이 만들어질 예정이고."

"또 그게 만들어진다고요?"

연합, 아리아 여제. 척수반사적으로 이어진 연상에 뒷목이 서늘해졌다. 검은 마법사에게서 육체를 받은 이래 처음으로 죽음의 구덩이에 나를 쳐박아넣었던 그 미칠듯한 강함의 여자는 여전히 뇌리 한구석에 두려움으로 각인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여자는 끝내 프라이쉬츠의 손에 죽었다.

"너희쪽은 그걸 가만히 두고볼 생각이 없어보였지만."

"당연한 말을. 그런데 여태껏 정보통제하더니 그걸 다 알려주는 이유가 뭡니까."

"듣고 해결책을 짜내란 말이다. 팬텀."

[뭐?]

이 남자 설마.

"지금 나한테 몸을 빼앗긴 그가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허세 부리지마라 스우."

금속음조차 없이 순식간에 검을 뽑아든 그가 목젖에 날을 겨누었다.

"니놈의 빙의 능력, 약해지지 않았나."

"무슨 헛소릴─"

"요즘 겔리메르가 니 몸을 제네로이드로 개조하는걸 앞당기고 있거든. 어쨌든 건강해진 몸은 밖에 나돌아다니는 영혼을 부르기 마련이라서."

"건강은 개뿔이……."

하 젠장. 어쩐지 빙의를 유지하는게 벅차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고 있었는데 설마 바깥 상황이 저렇게 돌아가고 있을줄이야. 너무 오랫동안 빙의를 하고 있어서 그런줄 알았건만. 그는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쓸데없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 오닉스 드래곤은 콧웃음치며 팔짱을 꼈다.

"그 영감이 무슨 바람이 분겁니까."

"제논이 도망친 것에 대한 반작용이겠지."

아아 제논. 대머리 영감이 가끔씩 중얼거렸던 일생의 걸작품이란 놈. 저 남자가 탈출시킨건가.

"힐라가 에레브에서 거하게 일을 칠 모양이니 그 전에 어떻게든 해결책을 쥐어짜내라. 난 여제의 혈통이니 족보니 하는건 전혀 모르니까."

"내가 다 듣고있는데 아주 대놓고 말하는군요."

"이제 니놈이 어쩌든 별 상관 없어졌거든."

느리게 살갗을 파고드는 검날이 불에 달군 쇠처럼 새빨간 색으로 물들어갔다. 검에 베인 상처는 손톱에 긁힌것과 별 차이가 없을만큼 작았음에도 불에 타는듯한 고통이 단숨에 치고 올라왔다.

육체가 아니라 영혼을 후벼파고 있는……! 망할 이 힘 진짜 뭐야?!

"계속 뻐기면 당장이라도 니놈을 원래 몸에다 쳐넣어주지. 어차피 돌아가는 것이니 상관없지 않나."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시간차만 있다뿐이니 결국 똑같이 될건데 왜 그래?"

파충류 특유의 세로꼴 동공이 황금색 눈안에서 희번뜩하게 빛났다. 드래곤의 손안에서 가지처럼 뻗어나오는 심상치않은 마력에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으득, 이를 갈았다.

"니놈은 니가 한 말조차 지키지 않을거냐."

"설득력 없는 설득이 여기 있군요. 이 상황에서 제가 이 몸을 포기하면 어떻게 될지 저 자신이 가장 잘 아는데 무슨 말을─"

"…… 설득?"

그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내 앞으로 걸어와 몸을 낮췄다.

쉭! 얕은 파공음이 귓가에 닿았을때 이미 새카만 손이 구속복의 앞섶을 움켜쥐고 있었다. 상황파악을 위해 머리가 굴러가기도 전에 그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나를 그 자신의 앞으로 바짝 끌어당겼고, 거리는 급격히 좁아져 창살이 없었으면 박치기를 했을만큼 가까워졌다.

"내가 지금 설득을 하고있는걸로 보이나?"

전혀.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상황의 우위에 있는건 처음부터 끝까지 그였고, 때문에 그는 설득이라는 말랑한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이건 협박, 그걸 넘어선 일방적인 통보다.

옷과 함께 살가죽까지 뜯어버릴 기세였던 손아귀는 서서히 풀렸지만 그 특유의 붉은 눈은 저를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릴듯한 색으로 저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하핫……!"

"왜 웃는거냐."

"정말 이상하네요."

새카만 블랙윙 제복을 온몸에 두르고, 부츠와 장갑, 망토, 모자까지 씀으로 살색을 극도로 적게 노출시킨 와중에 등 뒤의 조명으로 생긴 역광에 붉은 눈만이 유일하게 빛나고 있었다.

"분명 당신은 우리의 가장 강력한 적이었는데."

그의 목적은 아직도 알길이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위대한 그분과 비슷해보이는,"

말은 다 이어지지 못했다. 공기가 터져나가는 폭음과 함께 끼이익─!! 하는 목 비틀린 새같은 비명소리를 내며 철창이 뺑소니 당한것마냥 허리가 접혀버렸고, 머리 옆으로 무언가가 스쳐지나가며 발생한 무지막지한 풍압에 뺨이 찢어졌다.

이 무슨 정신나간 각력이지. 제복에 감싸여있지만 좀 전의 일격으로 창살은 물론 내가 갇힌 감옥 뒷편마저 뚫어버린 일격을 날린게 본인이라 증명하고있던 쭉 뻗어진 그의 한쪽 다리가 느리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여전히 낮지만 짐승의 으르렁거림같은 끓는 목소리가 울렸다.

"말조심해라 스우."

반사적으로 퍼뜩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긴 몰라도 역린을 제대로 후벼파버렸다. 본래라면 이런 약점을 어떻게든 뒤흔들어 이용해먹는게 제 특기지만, 이건 이용은 고사하고 무조건 피해야하는 초특급 지뢰라는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코트 펄럭이는 소리가 들릴만큼 거칠게 몸을 돌린 그는 신경질적으로 발을 한 차례 굴렸다. 진각이 방을 뒤흔들었다.

"…… 신종 자살방법이냐. 진짜 참신하네."

"실수한건 인정하겠습니다. 그런데 벽은 이대로 냅둘겁니까?"

"왜? 도망치게?"

"그럴리가요. 그랬다간 아까의 일격이 정통으로 꽂힐지도 모르는데."

저걸 제대로 맞았다간 아무리 팬텀 몸이라도 최소한 얼굴이 발자국 모양 그대로 내려앉을거다.

드래곤은 가볍게 손짓해 뻥 뚫린 벽과 고철이 된 철창을 마법으로 간단하게 복원시켰고, 굴러다니던 의자를 바로 세워 거기에 앉았다. 그리고 그 잠깐 사이 평정을 되찾았는지 살벌하던 분위기가 가라앉은 그는 밖으로 나가려는지 걸음을 옮겼는데─

"대체 무슨 속셈인거지 검호?"

입이, 멋대로?

"스우와 적대중인건 확실하게 알았는데, 지금의 당신이 아군이 맞는지는 모르겠어."

팬텀 이 남자가 기어코!

"내가 뭘 하길 바라는거야?"

눈앞에서 동료가 제정신을 찾았음에도 그는 당황조차 내비치지 않고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며 대꾸했다.

"항상 하던대로 일을 벌여주면 고맙겠다."

기왕이면 화려하게. 말꼬리에 덧붙이며 그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나는 그의 지나치게 무덤덤한 반응에 벙찐 팬텀을 어떻게든 다시 정신 안쪽에 구겨넣으며 그가 한 말을 곱씹었다.

화려하게, 화려하게라. 좋습니다. 그 부탁대로 해드리죠.

***

키네시스side.

한순간에 시야가 뒤집히며 나는 요란하게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전신이 욱씬거린다.

"오빠 진짜 못 싸우네."

"…… 니가 너무 잘 싸우는거라는 생각을 좀 해줄래?"

"그건 맞지만 키네시스 오빠는 능력에 비해 실력이 너무 허접하다고."

뭐라고 항변하고 싶은데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라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나마 위로 좀 해줬으면 하는 친구는 이젠 이런 상황에 완벽하게 적응했는지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며 키보드를 두들기는데 바빴다.

"축하해 키네시스. 하루동안 물구나무 모양으로 쳐박힌 횟수 신기록이 세워졌어."

"끄응, 말을 꼭 그렇게 해야겠어?"

"일어나기나 해 오빠."

소녀의 손을 잡고 겨우 일어난 나는 지저분해진 옷을 털어냈다. 이 교복 다시 못 입겠네.

"오늘은 여기까지야."

"그거 참 다행이네."

한 번만 더 대련했다간 내일 아침에 100% 지각했을거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날 보며 소녀 - 사이는 게슴츠레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오빠가 법사캐인건 알지만 그래도 체력 존나 거지같아."

"난 남고생 평균이상인데? 진짜 체력 거지는 저쪽 아니야?"

"저 사람은 전투원이 아니잖아."

내가 가리킨 제이를 흘깃 본 사이는 대체 누구랑 누굴 비교하냐며 혀를 찼다. 하긴 비교대상이 좀 그렇지.

"사이 넌 내가 얼마나 강해지길 원하는거야? 지금으로도 히어로 일을 하는데 큰 문제는 없─"

"아무리 못해도 노멀 핑크빈 5분 컷은 되야지!!"

가끔 얘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겠어. 핑크빈은 또 뭐야. 분홍콩? 어쨌든 지금보다 강해지라는 뜻은 알아들었기에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몰라도 대충 알겠다고 대답해주었다.

몇 주 전, 워터파크의 사건을 일으킨 그 여자와 검호가 함께 실종되었다. 여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검호는 마치 그라는 사람자체가 없었다는 것처럼 그에 관한 모든 흔적이 사라졌는데, 제이에게 부탁해 조사해본 결과 행정, 전산상 기록이 완전히 날아간건 물론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다른 모두의 기억속에서 그라는 존재가 지워져 있었다.

어떻게 봐도 정상이 아닌 이 상황을 그의 동생인 사이에게 알리려고 했는데, 당시 소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잠깐 사이?! 왜 그러는거야?'

'제가잘못했어요용서해주세요아니용서해주지않아도되니까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횡설수설하며 제 집안에서 염동력을 마구 휘두르는 소녀를 간신히 제압해내 지금까지 회복시키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사실 지금도 꽤 불안하지만 그래도 그때에 비하면 상당히 양호해진거지.

처음엔 나와 같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지금은 그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를 떠안고 있는 느낌이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싸우는데 굉장히 능숙하다는걸 안 이후로는 더 그랬다.

"Mya! myang!"

"옷 다 갈아입었어 오빠?"

"응."

"Myaaa~ng!"

"…… 또 교복이네. 오빠 컨셉은 교복전사야?"

"그럴리가 없잖아."

그새 얼마 전에 주워온 고양이 네로와 놀고있는 소녀에게 대답하며 나는 제이에게 갔다.

"암호 해독은?"

"거의 다 끝나가."

"의외로 오래 걸리네."

"이거 올라온지 2시간밖에 안됬다고. 기다리기 지루하면 정찰이나 하고 오는게 어때. 그 더러운 먼지 괴물들이 또 나타났을지 모르잖아."

"오늘은 할거 없어. 그 할머니께서 이번에 대대적으로 청소를 하신다고 했거든."

"그분이……?"

할머니 - 화남이라는 이름의 노부인. 일전에 해독한 암호를 따라 간 공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분은 우리보다 먼지 괴물을 처리해 깔끔하게 태우고 계셨으며, 스스로를 다른 세계에서 온 마법사라고 소개해주셨다.

이후 그분은 사이의 정신을 안정시키는데 여러 도움을 주셨고, 지금도 도움을 받고 있으며 간간히 우리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먼지 괴물들을 대신 청소해주시기도 하는 고마운 분이다. 처음엔 마법같은게 어떻게 실존하냐는 의문도 들었지만 따지고보면 내 초능력부터 비현실 그 자체이니 마법이 있다해도 그렇게 이상하진 않다.

당분이 부족하다는 제이에게 과일주스를 꺼내 갖다준지 몇 분 뒤.

"하아, 해독 끝났어 키네시스."

"이번엔 어디래?"

"좀 위험한데. 이번 장소는─"

[긴급 속보입니다. 서울 MS타운 지하철 역사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이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건물 밖 전광판들의 화면이 뉴스룸으로 바뀌며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목소리에 나는 제이의 뒷말을 더 들을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 젠장 내 노력이."

"실망하지마. 다음엔 더 빨리 하자고."

[실제 상황입니다. 인근 주민들은 외출을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계속 반복되는 말에 네로와 놀고있던 사이가 자리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라는데, 갈거지 오빠?"

"당연한 말을."

"그 할머니가 계시는데 굳이 너희가 갈 필요는 없지 않아? 거기다 너 방금 대련 끝나서 꽤 지쳤잖아."

"아무리 그래도 나이드신 분에게 일을 다 떠넘길 순 없다고?"

"걱정마 제이 오빠.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키네시스 오빠는 내가 지킬테니까!"

"아 그러면 안심."

"어이……."

아무리 사이가 나보다 강하다지만 친구인 니가 대놓고 그러면 안되잖아.

"빨리 가자 오빠!"

"알았어."

소녀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창문을 활짝 열어 그대로 뛰어내렸다. 좀 전의 방송때문인지 거리는 꽤 한산해져 있었고, 나와 그녀는 염동력으로 사뿐히 착지한다음 즉히 가까이 있던 지하도로 내려갔다.

***

기관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멈추지않고 그대로 가는 지하철 문을 염동력으로 날려 어떻게든 무단 승차한 나와 그녀는 지하철 안에서 날뛰는 먼지 괴물들을 쓰러뜨리고 사람들을 구해냈다.

"키에에엑!!"

바닥과 천장에 번갈아 쳐박혔던 먼지 괴물이 이내 단말마를 내지르며 펑! 하고 폭발했다. 아 먼지. 염동력장을 펼쳐 막아냈지만 확 일어난 회색 먼지때문에 앞이 뿌얘졌다.

"정말 지저분하게 사라지는군."

"그러니까 깔끔하게 죽이라고 오빠. 집어들어서 여기저기 패대기 치는건 너무 비효율적이잖아."

사이의 손짓에 붕 떠오른 먼지 괴물이 꾸드득 압축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짜부라졌다. 배구공만해진 괴물의 사체에서 나온 먼지는 염동력에 의해 지하철 밖으로 날아갔다.

"…… 그건 좀 잔인한데."

"사람은 몰라도 몬스터를 공격하는데 주저할 이유는 없잖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건 뭔가 아닌것 같아.

"하아. 저 괴물들이 이렇게 대놓고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다니, 오늘 저녁 탑 뉴스는 정해졌군."

"그것뿐이면 다행이지."

"아까 제이가 우리 얼굴이 알려질거라고 한게 걸리는거야?"

"그런 문제가 아니라─"

말을 하던 사이는 갑자기 홱 고개를 돌렸다. 더이상 아무도 없을거라 생각한 빈 지하철에서 구둣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으며, 동시에 예고없이 머리가 도끼에 찍힌듯 쪼개질듯이 아파왔다.

"크윽……!!"

"오빠!"

"머리, 머리가……."

"실제로 만나는건 처음이군요. 거기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도 있고."

머리를 감싸고 이를 악물며 고개를 치켜드니 한 남자가 보였다.

새하얀 백발, 지적으로 빛나는 푸른 눈을 가진 굉장한 미형의 정장을 입은 청년. 지하철내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 휘두른 염동력에 여기저기 뚫린 구멍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그가 걸친 하얀 목도리가 마구 날렸다.

"너어─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절대 가만안둬."

"가만히 안둔다 하면, 절 죽이기라도 할겁니까?"

흠칫! 사이의 몸이 크게 떨리는게 흐린 시야내로 보였다.

"과거 당신이 죽인 수많은 사람들처럼, 제 몸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터뜨릴겁니까?"

"그, 그만."

"아니면 좀 전의 더스트들처럼 절 으스러뜨릴건가요."

구둣발 소리가 가까워졌다.

"그 이전에 지금의 당신이 사람을 죽일 수 있긴 하나요."

"닥쳐어……!"

"설마 그 소년 옆에서 히어로 놀이를 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거야 저 둘은. 점점 심해지는 두통때문에 혼미한 정신을 부여잡는 것만으로 버거워서 지금 당장 저 정체불명의 대화를 이해하는건 무리였다.

"고작 수 십, 수 백의 사람을 구한다고 당신이 죽인 수 만의 사람을 죽인 죄가 사라질 것 같아요?"

"그마아아안──!"

콰과과과광!!

그녀의 비명과 함께 폭발하듯이 방출된 염동력에 지하철의 창문과 벽, 천장이 대부분 박살나버렸고, 내 몸도 둔기에 쳐맞은듯 뒤로 날아갔다. 그나마 미리 두른 방어막 덕에 피해는 없었지만 둘에게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버렸다.

"백 날 천 날 누군가를 구한다한들, 당신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목숨이란건 수학이 아니거든요."

"난, 나는, 나는 그저."

"열의 사람을 구해도, 죽은 열의 사람은 돌아오지 않아요. 그 둘은 전혀 다른 것이니까요."

"우으으……."

소녀가 양팔을 감싸며 주저앉는게 보였다. 그녀의 몸이 경련이 일어난것처럼 간혈적으로 들썩였다.

"이용당했다고 변명하지 마세요. 사이키커 당신이 선택했잖아요?"

그 말이 결정타였는지 그녀의 머리가 쿵! 바닥에 쳐박혔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대충 그런 말들이 부정확하게 숨 쉴틈 없이 쏟아져나왔다. 겨우겨우 유지되던 그녀의 정신이 또 부서져버린 것이다.

"…… 고약하군."

"그녀의 능력은 번거로우니까요."

"대체 그녀가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러는거야."

하얀 남자는 쓸데없이 잘생긴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어찌보면 저와 비슷한 짓을 저질렀거든요. 그녀는."

그딴식으로 말하면 아무도 못 알아들어. 점점 나한테 다가오는 하얀 남자를 어떻게든 상대하기 위해 일어나려 했지만 두통때문에 고개를 드는건 물론 염동력도 쓸 수 없었다.

"그녀와 같은 만들어진 존재도, 저쪽 세계에서 온 이방인도 아닌…… 이쪽 세계에서 능력을 가지게 된 최초의 인간."

하얀 남자의 손이 머리에 닿았다.

"당신이 바로 제가 찾던 기폭제입니다."

"그게 대체 무슨……!"

그리고 니놈은 누구야.

"알 필요 없습니다. 중요한건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하느냐죠."

남자의 손안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나왔고─ 간신히 억누르던 염동력이 제어를 벗어나며 폭주했다.

***

이데아side.

진동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건만 거대한 떨림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방금 그건?"

"자네도 느껴졌는가?"

"예."

"그렇다면 잠시 우리를 도와주게."

"그러도록 하죠."

만약 아까의 진동이 내가 생각한게 맞다면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거기다 그 오버시어에게 예전에 들은 것도 있고.

"엘윈."

"네, 네!"

"원래라면 당장 너에게 근신을 내려야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지금은 넘어가겠다. 니가 무슨 실험을 어디서 어떻게 했는지 모두 써서 보고하고, 협회 사람들과 함께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조사하거라."

"예!!"

엘윈이라는 청년은 그렇게 왔을때보다 더 빨리 밖으로 뛰쳐나갔고, 하인즈는 피곤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에 이런 사고라니……."

"부족하지만 저희도 한 손 거들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이후 수 시간 뒤, 엘리니아와 헤네시스를 중심으로 퍼진 진동에 대해 조사를 나간 동족들에게서 피투성이의 낯선 차림을 하고 있는 소년 소녀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 작품 후기 ==========

사이키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고, 죽을때까지 잘못을 빌겁니다. 그리고 죽을때까지 용서받지 못할거에요.

키네시스는 그동안 시한폭탄같은 사이키커의 임시보호자 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그녀는 옛저녁에 폭주해서 사단났을거임.

@suho8441 - 이 글에서 애정캐라는건지 게임에서 애정캐라는건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끝은 그리 좋지 않을겁니다.

@하늘연꽃 - 꽤 괜찮긴 하죠.

@키린이 - 키네시스 사건이 원작보다 좀 더 큰 사단입니다.

@Jaiha - 차원의 도서관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싹 다 나올겁니다. 캐붕 조심이라고 표시해야 할만큼.

@sjdjabqh - 음? 파픈은 에필로그까지 다시 안나와요.

@카한Kahan - 키네시스와 사이키커는 강력한 아군이 될 수 있거든요.

@루서스 - 그런데 정신병자라...

@허공말뚝 - 포탈이 열렸다기보단 벽이 일부 무너졌음.

@원나중독 - 데헷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칼른 - 본인은 메이플로 돌아오면서 프렌즈쪽 미련을 버렸지만요.

@노란우산s - 안면인식장애 마법덕에 안들킨겁니다.

@레시코 - 깨어난 시기는 인게임과 유사하지만 레벨링이 엄청 빠른겁니다. 일단 한 번 갔던 길을 다시 가는거니까요. 그리고 검호가 검호가 아닌 다른 직업이었다면... 내용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을겁니다. 스킬 사용이 초반부터 자유로웠을테니.

@리세니안 - 차원의 도서관은 메이플 세계가 창조되며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이전인 라테일 세계에 대한 일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Eluines - 키네시스 사건은 프렌즈뿐만 아니라 메이플 쪽에도 큰 사건이기때문에 검호의 조력이 없으면 근본적인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흑접아 - ... 제가 아스카도 같이 갈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나요?

@육합 - 솔직히 지금도 인간 최강인데 굳이 합칠 필요는...

@올블랙메인쿤 - 키네시스는 잠재력만 따지면 트립퍼급, 그것도 상위권까지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검호랑 싸우면 목 따이는데 몇 초밖에 안걸림. 전투 경험이나 그에 따른 마음가짐이 차원이 다르니.

@Ratios - 막 그으면 안되요!!

@좀비라스 - 이데아는 사이킥 콤비를 get! 했습니다.

@여행자구름 - 사실 검호의 이런 인간관계는 본인이 자초한것도 적잖아 있습니다. 검호에게 있어 메이플 월드는 어쨌든 이세계고, 결국 떠날 곳이거든요. 당연히 사람과 인연을 맺어도 지구로 돌아가며 다 끊어질거란걸 무의식적으로 알아서 깊은 관계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것의 예외가 몇몇 있었고 그거때문에 고통받았죠.

@케르닉 - 몇 개는 맞았습니다.

@대어의예감 - 출연 안합니다. 애초에 파픈은 프렌즈에 없다고 예전에 말했음.

@Mese - 그러면 검호의 (삐이)가 위험해요.

@ReFrante - 힐라는 검호를 직접 본 적이 있었습니다. 첫만남부터 아주 그냥 심장이 쫄깃했었죠. 그래서 그 뒤로 일부러 그를 상대하길 꺼렸고, 포지션상(후방, 병사 지휘) 직접 볼 일도 없어 현 시점에선 얼굴을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함. 그리고 프렌즈에선 파픈의 깽판이 약 한 달 전 일이라는거.

@Sisre - 팬텀? 스우? 누굴까요 하하.

@wlgns414 - 두어번쯤 그렇게 될겁니다.

@SourcesMoon - 절 나쁜 사람으로 몰지 마세요(웃음). 그리고 검호x시오버라니, 무슨 고문입니까?

@비탄의과학자 - 안나와요, 안나온다구요.

@책벌레씨 - 엘윈이 낸 구멍, 하마가 키운다!

@Blake117 - 검호:겨우 잠잠해졌다 싶었더니!

@Ascaron - 노바족의 마법이 굉장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슈엘리안 - 전혀요. 검호의 얼굴은 라테일 검호 일러스트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험한 일만 안겪었으면 딱 그 일러스트처럼 됬을겁니다.

@적현월 - 혼돈! 파괴! 망각!

@마서 - 등장과 함께 정신붕괴.

@레이단트 - 그런 마법에 걸렸음.

@땅콩양갱 - 대신 설명 감사합니다.

@익재공 - 별로 멀지 않았습니다. 힐라가 깽판치면서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날테니.

@키하라스티카 - 스우가 대형 트롤을 준비중이니 기대하세요.

@Legendssj2 - 본인이 정체를 드러내진 않을겁니다. 하지만 저쪽이 알아서 밝혀내겠죠. 그 과정에서 사생활같은 것도 덩달아 밝혀질지도... 하하.

@류동지 - 구멍 뚫리길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

@Yoontlemin - 안그래도 괴로운데 얀데레라뇨!

@갓타치 - 당시 상황이, 노바족:야 저거 잡아! 잡으라고! 하나라도 나가면 망한단 말이야!! 였습니다. 검호는 어검술에 쓰는 검을 일회용품처럼 마구 소모해서 예비품까지 있었는데 그것들까지 날아다녀서 개고생했다는 후문.

@철륜성 - 대신 키네시스를 오빠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심은 없음.

@리아카에린 - 아프리엔은 편히 갈겁니다.

@세이카엔 - 유전 맞을겁니다.

@라모니아 - 내용 이리저리 추가하고 수정해서 텍본으로 내볼 생각은 있습니다.

@칼크래프트 - 인게임에 따르면 소환 마법이었다고 합니다.

@건전한독자 - 그렇긴한데 저지른 짓이 너무 극악했습니다.

@melsi - 모자에 걸린 안면인식장애 마법 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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