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empest --> (후기가 깁니다)
키네시스side.
여제의 말과 함께 시작된 2차 대륙 회의는 몇 시간동안 이어졌다.
먼저 에레브의 책사 나인하트라는 사람이 이전 회의에 오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그때 나왔던 현 상황의 의문점이나 파악되는 것들, 중요한 정보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고, 그 과정에서 악마 날개같은걸 가진 푸른 피부의 남자와 둥둥 떠있는 암석덩어리가 군밍아웃을 했다.
대충 들어본걸 요약하면 약 8백여년 전 검은 마법사라는 80년대 마왕같은 사람이 나타나 세계를 멸망시키고자 했으며, 그런 그를 수많은 부하들이 따랐고, 그 부하들 중에서 가장 강하고 높은 지위에 있던게 군단장이었다고 한다.
당시 수많은 나라와 도시들이 그들의 발아래에 짓밟히고 으스러졌으며, 그때 크리티아스라는 곳은 나라째로 사라졌다고 한다.
'살벌하네…….'
마냥 판타지 게임같은 세계라 좋아할게 아니였다. 오히려 언제 군단장들과 전쟁이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게 현재 이곳의 상황인 것이다.
아무튼 메이플 월드를 아비규환으로 만드는 검은 마법사에게 대항하고자 일어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영웅이라고 한다.
'그 흰머리 남자와 아란이 말이지.'
두 사람 외에 엘프의 왕이라는 메르세데스와 메이플 월드 최고의 괴도 팬텀, 용의 마법사이자 영웅들의 리더였다는 프리드, 프리드와 똑같이 용을 데리고 있었지만 대륙 최강의 전사였다는 검호─ 가 검은 마법사와 싸웠으며 끝내 그를 봉인했다고 한다.
쓰러뜨릴 수는 없었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는데, 영웅들의 힘으로선 몇몇 군단장들을 격파하고 검은 마법사를 봉인하는게 고작이었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굉장한 것이지만 지금 돌아온 군단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겐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
미처 그들이 다 쓰러뜨리지 못한 군단장들이 수 백년에 걸쳐 힘을 회복하고 돌아와 사람들을 습격중인데, 기록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과거의 일이 지금의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전해질리 없었다.
"군단장들을 왜 그때 처리하지 못하신겁니까."
"우리는 시간의 신전을 공략할때 최대한 힘을 보존하며 검은 마법사에게 도달해야했다. 그 과정에서 단 한명의 군단장이라도 싸우게되면, 그때 생기는 힘의 손실은 이후의 결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테니까."
"그래서 한 명이 2번 이상 군단장과 싸우지 않도록 프리드가 작전을 짰고, 실제로 대부분 그렇게 됬어."
"……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당신들중에 윙마스터 오르카와 싸웠던 이는 누구입니까."
"윙마스터들이라면─"
"팬텀이었지 아마?"
"알겠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윙마스터 오르카. 에델슈타인 대표로 온 이들은 그 이름을 듣거나 말할때마다 분노의 기색을 내비쳤다. 그 군단장의 휘하 조직이라는 블랙윙에게 마을을 통째로 점령당했다니 화내지 않는게 이상하겠지만.
현재의 상황 - 군단장들이 귀환한 이유는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전직 군단장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오랜시간동안 큰 싸움이 없어서 대륙은 평화에 물들었고, 각 지역에서 복원점 역할을 하던 봉인석들이 대부분 사라졌으니 더할나위 없이 적기라나.
그리고 그 봉인석들을 강탈해간 이들이 윙마스터 오르카와 블랙윙.
"저희가 이들의 행적을 추적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추적의 계기는 이들이 리에나 해협에 무단 침입해 빙하들을 채굴해갔기 때문인데……."
에반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리엔의 대표라는 소녀가 그동안 블랙윙에 대해 조사해온 자료들을 발표했고, 현 상황을 만드는데 물밑공작을 벌인 이들이 블랙윙이라고 확정되었다.
"그들의 구성은 어떻게 됩니까?"
"윙마스터와 휘하의 간부, 이외 수많은 고용자들과 실험으로 만들어진 준 몬스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지금 사태를 만들었다는 말입니까?"
"당연히 아니죠. 블랙윙의 무력집단 '용의 후예'가 이번 일의 베스트였답니다."
황금색 뿔과 눈을 가진 여성이 미끈한 비늘이 덮힌 꼬리를 흔들며 말했다.
"용의 후예? 드래곤과 무슨 관련이 있나?"
"물론 있어요. 그들은 지금의 저와 같이 인간의 몸에 뿔과 날개, 꼬리가 달려있거든요."
"변신마법을 쓴 드래곤이란 말이야?"
"그건 아니에요. 드래곤과 비슷하지만, 명백하게 다른 종족이에요."
저 여자, 에레브의 책사와 무슨 관계인거지. 어쩐지 끈적하게 달라붙는데.
"'용의 후예'들은 방금 말했다시피 드래곤의 신체부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인 종족인데, 기이한 점은 이들이 메이플 월드 역사상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게 무슨 말이지?"
흰 머리의 남자, 루미너스가 물었다.
"말 그대로에요. 이들의 존재를 알았을때 저와 마스터는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었죠. 그런데 나온 결과는 '백지'였습니다."
"그게 가능해?"
"물론 오랜 전쟁으로 기록이 지워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과거의 사람인 당신들은 '용의 후예'와 같은 특성을 가진 종족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그녀의 물음에 영웅들과 전직 군단장들, 수 백년을 살아왔다는 몇몇 이들이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판타지라 해도 한 사람이나 한 집단도 아니고, 한 종족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다는건 말이 안되잖아.
"잠깐만. 잘 들어보니까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예?"
"아 왜, 군단장 중에 방금 쟤가 말한 것처럼 생긴 놈이 하나 있었잖아?"
"…… 매그너스."
악마처럼 생긴 전직 군단장이 중얼거렸다. 매그너스라, 어쩐지 폭군같은 이름이네.
"매그너스 그놈 변종이나 혼혈 마족 아니었어? 난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는 마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뭔데?"
"저도 모릅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검은 마법사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군단장이 되었으니까요. 저는 변신 마법을 쓴 드래곤으로 생각했었는데, 한 번도 드래곤의 모습을 보이지 않아 용족 돌연변이인가 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자세히 해주십시오. 어쨌든 이어서 중요한 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용의 후예'들의 주요 인물들입니다."
책사 씨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홀로그램처럼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세계의 과학기술이 영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마법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막 들때, 떠오른 얼굴들 중 하나를 본 순간 반사적으로 입을 쩍 벌어졌다.
저 사람은……?
"왼쪽에서부터 '용의 후예'의 책사 이데아와 그들의 최강 전사인 엔젤릭 버스터, 카이저입니다."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 외에도 그들을 알고있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세 사람의 얼굴 중 하나, 서리가 내려앉은 것처럼 희고 차가운 인상에 각 잡은 것처럼 정리된 청회색 머리카락과 독특한 황록색 눈을 가진 여자는 분명.
"'용의 후예'들은 대부분 상당한 마법 솜씨를 가지고 있어 환상 마법으로 곧잘 모습을 바꾸지만, 이들의 얼굴은 확실하게 진짜입니다."
"확실한가? 저기 저 왼쪽의 여자는……."
"예. 불과 약 한 달 전까지 마법사 협회에 포션을 납품하던 업체 '노바'의 대표죠."
술렁거림이 더 커졌다. 이데아 그 여자가 블랙윙이라고?
"참고로 '노바'가 포션을 팔아 번 돈은 '용의 후예'들의 자금이 되었습니다."
"그, 그 말은 그들이 포션에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겁니까?!"
"아니요. 혹시나해서 저희쪽에서 그들이 판매했던 모든 종류의 포션을 입수해 철저히 검사해봤지만, 여타의 포션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보다 더 작은 부작용으로 효능을 발휘한다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리엔의 소녀가 또박또박 말했다. 의외로 제대로된걸 팔았던 모양이지만 그걸로 번 돈이 악의 조직 자금이 되었다니 나아진건 없다.
"이들의 자금원이 포션임을 알고 운송루트를 조사해 제조하는 곳을 치려고 했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마법사 협회와 마가티아, 마이스터 빌이 같은 종류의 포션들을 판매하기 시작해 완전히 실패했었죠."
"잠깐만 그건─"
"예에, 압니다. 여러분은 몰랐겠죠. 그냥 그랬다는 말입니다."
심사가 완전히 꼬였군. 에레브의 책사는 입은 웃고있었지만 단안경 너머의 야근에 찌든 푸른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최근 행적을 아십니까 하인즈님?"
"…… 차원의 벽 사건때 이쪽으로 넘어온 저쪽 세계의 사람들을 구조하는데 잠시 협력했네. 하지만 리엔이 나선다는 소식에 더 이상 제가 할 일은 없을거라고 손을 뗐지."
"진작에 꼬리를 내뺐군요."
"영악한 여자니까요. 괜히 책사겠어요?"
책사, 책사. 머리를 굴려 책략을 짜내는 사람.
"다른 분들중에서 혹시 이들을 본 적이 있으신 분 있습니까?"
"저기…… 내가 저 가운데 여자애를 예전에 본 적이 있었는데."
생각해보자. 블랙윙인 저 그녀가 나와 사이를 구한 이유가 뭘까? 정말 단순하게 마법사 협회가 협력을 요청해서였을까? 그럴수도 있지만 그녀는 꽤나 우리한테 신경써줬다.
물론 나는 차원의 벽을 무너뜨린 기폭제였고, 사이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였기에 보통의 사람처럼 대하는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결코 좋지 않았던 그녀의 성격을 생각해볼때 구조 직후 우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는 선택지도 분명 있었을거다. 그러나 이데아는 직접 나와 사이의 교육과 치료를 맡았다. 이건 무엇을 뜻하는거지?
"엔젤릭 버스터를 봤었습니까? 언제 어디서요?"
"루디브리엄에서 일행들이랑 시계탑 내에서 퀘스트를 했을때 잠깐 봤어. 걔 분홍색 양갈래가 굉장히 인상적이라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거든. 그때 걔가 우리가 상대하던 엘리트 몬스터를 한 방에 잡아줬는데, 그 뒤에 시계탑 최하층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물어봤어."
"시계탑 최하층이요?"
"구해준 것도 있고 해서 길을 알려줬는데…… 이거 잘못됬으려나."
단순히 과민반응일 수도 있지만 그녀가 저들의 말대로 영악한 책사라면 무의미한 행동은 하지 않을거다.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우리를 잘 대해줘서 그녀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나나 사이나 이 세계에서는 이방인에 불과하니 이데아에게 줄 수 있는건 없는데.
아니 잠깐만, 이득이라는게 꼭 물질만 말하는게 아니잖아. 좀 더 광범위하게 그녀가 나한테서 얻을 수 있는게 뭐가 있을지 생각해보면─
"─네시스 형! 무슨 생각해요?"
"아, 응?"
"형도 저 이데아란 여자 본 적 있죠? 네로 누나가 꽤 놀라던데."
"어…… 그래. 내가 이쪽 세계로 건너온 뒤 눈을 떴을때 제일 처음으로 본게 그 여자였으니까."
"정말요? 어떤 사람이었어요?"
이데아가 어떤 사람이었냐고?
안면 근육이 얼었는지 항상 무표정으로 칼같이 정확하게 자기 일을 해내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 부려먹는 것도 엄청 잘하는 유능함의 화신같은 여자였다. 암암리에 협회내에 퍼져있던 얼음 마녀라는 별명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내가 폭주할 것을 대비해 구속 마법 전문인 네로를 붙여주고, 사이의 정신치료도 상당히 해둬 지금은 퍽 나아진걸 보면 우리한테 적의는 없었을거다. 오히려 방금전에 블랙윙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그 고약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꽤 믿었다.
'믿었……?'
그 사이에도 말은 계속 오가고 있었다.
"지금 띄운 얼굴중에는 없지만, '용의 후예'의 수장인 소드 댄서는 블랙윙의 실세라고 봐도 무방한 사람이니 혹여나 목격할 경우 각별한 주의를 바랍니다."
"얼굴을 모르는데 어떻게 주의를 해라는거야? 그리고 소드 댄서는 또 누구고?"
"블랙윙의 간부 중 한 명이랍니다. 소드 댄서라는 호칭도 다른 간부들처럼 이름이 아니라 코드네임이고, 잠입 기간동안 거의 보지 못한데다 항상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어요."
"그럼 어떻게 그 사람을 알아봐?"
"그 남자는 두 개의 검을 띄워 자유롭게 조종하는 특이한 전투법을 씁니다. 그리고 아주…… 새빨간 눈을 가지고 있죠."
마주치면 오싹할정도로. 드래곤 여자는 요염하게 웃어보였지만 입꼬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생각하는 것만으로 두렵다는듯이.
"현재 군단장들의 습격은 일시적으로 소강 상태입니다. 때문에 저희는 그들이 본격적으로 공습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블랙윙을 확실하게 소탕해야한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에델슈타인에 구원을 보내겠다는 말입니까."
"에델슈타인만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리에나 해협 사건 이후 리엔에서 2년동안 블랙윙을 추적했고, 메이플 월드 곳곳에서 그들의 아지트를 여럿 발견했습니다. 발견되지 않은 것들이 어디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릅니다."
여태까지 블랙윙에 대한 자료와 정보들을 집중적으로 말한 이유가 저거였나.
"그들은 다른 군단들처럼 대놓고 공습을 하지 않았지만, 이 상황을 초래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에 재고의 여지는 없습니다."
대충 듣고만 있던 나도 감이 잡히는데 저 책사라는 사람이 저걸 모를리가 없고. 여기까지 말했으면 자연스레 나오는 결론은 결국─
"그러므로 블랙윙, 나아가서 다른 군단들을 제대로 상대하기 위해선 여러분 모두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 말인 즉……?"
"메이플 월드의 안위와 평화를 되찾기위해선 저희들이 연합할 필요가 있다, 이 말입니다."
길고 길었던 사전 설명을 한 이유이자, 여제가 대륙 회의를 연 목적이 나왔다.
***
검호side.
은월은 엄청난 것을 가져왔습니다! 라는 환청이 들린 것 같다. 요즘 통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은월이 아리안트의 봉인석을 가져온 것도 대단했지만 이 비행 유적도 다른 의미로 굉장했다.
이게 어느 정도로 사기냐하면, 어제부터 에레브 근처에 계속 떠있는데 스텔스 하나 킨 것만으로 안들키고 있다.
"결국 차원의 벽 사건에 대한 논의는 내일로 미뤄진 모양입니다."
"그래도 연합이 만들어지는걸로 결정났으니 다행이군."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되는게 당연하죠. 그나저나 저 책사가 띄운 제 얼굴 사진이 마음에 안드네요."
문제는 그게 아니잖아. 아주 대놓고 얼굴이 팔렸는데 왜 이렇게 덤덤한 반응이야 이 여자는? 미리 예상했다 치더라도 불평의 포인트가 정상이 아니다.
"엔젤릭 버스터와 카이저는 잘만 찍었으면서 왜 저만……."
"난 사진조차 없다."
"그건 당연한거 아닙니까. 당신은 재활에 바깥 일에, 애초에 에델슈타인에 거의 없었는데다 그나마 있던때도 밀린 서류 처리한다고 방에 쳐박혀 있었잖습니까."
거기다 방에 있을 때를 제외하면 아지트내에서 항상 모자 썼고. 이렇게 땀내나도록 노력했는데 정면 사진이 찍히면 그게 이상한거라고 그녀는 말했다.
만약 찍혔으면 그대로 들켰겠지. 안면인식장애 마법이 걸린건 어디까지나 모자고, 지금 당장 나를 보는 사람들만 속일 수 있으니까. 사진이나 그림으로 남겨지면 못 속인다.
"키네시스는?"
"꽤 혼란스러운 모양입니다. 회의가 끝난지 몇 시간이 지나 밤이 됬는데도 숙소에서 나와 목적지없이 돌아다니는 중이에요."
"포섭이 불가능해보이나."
"아니요. 적어도 무턱대고 공격하지 않을만큼의 신뢰는 쌓였으니 이쪽에서 대화를 요청하면 최소한 한 번은 응해줄겁니다."
그 한 번으로 설득해야 하는건가. 빡세네.
"사이는 사정을 듣고 이쪽으로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저 소년도 그것들을 알게되면 그리 다르지 않을겁니다."
"그렇겠지……."
키네시스도 영웅즈처럼 히어로 체질이니까. 차원의 벽 사건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을 알면 그놈도 경악할거다.
"그녀에게 대륙 회의가 끝나는대로 키네시스를 슬리피우드에 데려와달라고 부탁했으니 그때 확실하게 포섭하면 됩니다. 내일 회의때 저들의 행동이 안좋을수록 설득될 확률이 높아지겠죠."
그러면 저희 일도 더 수월해질테고, 저도 좀 쉴 수 있을겁니다. 안그래도 지긋지긋하게 인력난을 앓고 있는데, 이런저런 흔적을 지우느라 며칠을 에스프레소로 삼시세끼를 떼웠던 이데아는 한시라도 빨리 키네시스를 영입하려고 안달이 나 보였다.
노바족이 약한건 절대 아니다. 제른 다르모어와 스펙터 군단과의 전쟁을 몇 년이나 치뤘던 그들은 전사와 마법사 가릴 것 없이 모두 베테랑이었고, 그 경험을 내세워 어떤 작전이든 못해도 평타이상은 칠 수 있을만큼 유능하다.
문제는 한 명의 강한 전력, 영웅즈처럼 한 분야의 일인자같은 사람이 없다는거다. 종족 최강의 전사인 엔젤릭버스터와 카이저정도가 저 기준에 겨우 턱걸이하고 있으니 말 다했지.
'그래서 세피로트랑 유에가 뼈빠지게 돌아다니는 중이고.'
둘은 군단장중에서 가장 요주의한 프라이쉬츠와 데미안의 행적을 쫓고있는 중이다. 프라이쉬츠는 말 할 필요조차 없이 강한 트립퍼인데다 하필 화기를 쓰는지라 광범위로 총격을 갈기기 시작하면 답이 안나온다. 양민학살이 특기인 놈이라고.
데미안은 지금 시대에 막 깨어났을땐 걔가 생존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는데, 루디브리엄을 습격했던 군단이 마족들인걸로 봐서 확실히 살아있는 것 같다. 그렇게 살아놓고 하는 짓이 제 형 절차를 그대로 밟으며 군단장이 된거라는게 심히 뭣같지만.
'걔도 설득할 수 있으려나.'
파픈스타는 끝내 그들을 구하지 못했다. 데몬의 어머니는 결국 돌아가셨고, 그 충격으로 데미안이 폭주한 틈을 타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고 그녀는 말했었다.
원망하고…… 있겠지.
"스텔스 결계는 태양빛이 굴절되니 지금은 고도를 낮춰두고, 내일 회의가 시작될때쯤에 오늘처럼 구름에 선체를 숨기겠습니다."
"알았다."
비행유적은 날개짓없이 조용히 움직이며 섬 아래로 몸을 숨겼다.
***
side out.
에델슈타인. 레벤광산 블랙윙 아지트내 한 남자가 들어섰다.
"누, 누구신가요?"
비서 르티에는 블랙윙으로 위장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당당히 들어선 저 남성이 범상치않은 이임을 한 눈에 파악했다.
너절한 붉은 코트 끝에 달린 금사슬은 그가 걸을때마다 부딪혀 찰랑거렸고, 휘장처럼 한쪽 어깨에 두른 탄띠와 몸 여기저기에 감긴 붕대는 위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후드를 눌러써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탈색된 금발사이로 희번뜩하게 빛나고 있는 연홍색 눈은 몬스터의 그것처럼 오싹했다.
그가 말했다.
"오르카는 어디있지."
"마스터를…… 찾아오신건가요?"
"알고있으면 어디있는지 빨리 대답하든가 안내해라."
르티에는 남자에게 누구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혀가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에게선 기세에 눌려 착각한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피와 화약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대답하든가, 안내하라고 했다."
갱도의 바닥에 내리깔리며 음산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죽은 자의 그것같았다.
"알겠, 알겠습니다. 절 따라오세요."
그녀는 황급히 몸을 돌리며 구두가 삐끗하지 않을까 싶을정도로 빠르게 다리를 움직였고, 그런 르티에를 뒤따르며 남자, 프라이쉬츠는 권총내에 구현했던 총알을 없앴다. 만약 그녀의 대답이 몇 초만 더 늦었으면 그는 위협사격을 했을 것이다.
그는 르티에를 따라 갱도를 쭉 내려가는 도중, 이곳이 굉장히 넓고 깊은 아지트임에도 이상할정도로 한산하다는 것에 의아함을 느꼈다.
프라이쉬츠는 몰랐지만 이전까지 아지트내에 있던 대다수의 노바족들은 돈을 벌기 위해, 군단장들의 준동에 따라 날뛰는 몬스터들을 막기 위해, 차원의 벽이 무너지며 이쪽으로 마구 이동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메이플 월드 이곳저곳으로 흩어진 상태였다. 이런 때에 그가 온 것은 그들에게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본래 이런 설명을 해주는 역할이던 르티에는 잔뜩 겁을 먹어서 오르카의 방에 가야한다는 생각만이 뇌에 가득 찬 상태였고, 마침내 방문앞에 도착하자 그녀는 숨가쁘게 문을 두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 마스터. 손님이 찾아왔, 습니다."
"뭐야? 누가 왔는데?"
"저기, 그, 이름이……."
"프라이쉬츠다."
"잠─ 뭐라고?!"
오르카가 당황하건 말건 프라이쉬츠는 그녀의 동의없이 문을 열어제끼며 방에 들어갔다. 소파에 있다 미끄러졌는지 어정쩡하게 일어나고있던 오르카를 힐끗 본 그는 그녀의 맞은편에 의자를 가져다가 앉았다.
"갑자기 왜 온거야 너!"
"니가 다음에 할 일이 있다."
"하아? 내 일은 끝났잖아?"
"봉인석 회수는 아직 덜 끝난걸로 알고있다만."
"알면 일거리를 두 개나 주지 말라고!"
본인이 한건 거의 없으면서 목소리를 높히고있는 오르카를 검호나 이데아가 보았다면 뒷목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금 이곳에 없었다.
"그래서 안하겠다는거냐."
그는 말라비틀어진 연홍색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응시했다. 오르카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이…… 일단 들어보고 정할게."
"머지않아 연합이 만들어질걸로 보이니 사람들의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그러니 니 부하들 굴려서 시선 끌어라."
"그 할망구가 연합 망치려고 하던데 못 들었어?"
"안될 가능성이 농후하니 하는 말이다. 그리고 연합이 생기든 말든 사람들을 우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주목시켜야 하는건 마찬가지이니 니가 할 일은 변하지 않아."
"그래서 너희는 뭘 할건데!"
프라이쉬츠는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이전의 방식은 너무 번거로우니 한 번에 끝내기로 했다."
"하아? 전쟁은 안해?"
"더 이상 기다리는데 지쳤어. 지지부진하게 끌어오던것을 끊어낼 계획이고, 이미 준비는 거의 다 되어가고 있으니 너희가 그동안 미끼가 되라."
대놓고 미끼라 칭하는 그의 말에 오르카는 잔뜩 인상을 썼다.
"왜 하필 우리야! 봉인석 강탈도 그렇고, 이번엔 반 레온이나 아카이럼 시켜!"
"아카이럼은 이번에 나와 함께 메인 플랜을 같이 주도중이고, 반 레온은 행동이 수동적인데다 소극적이기까지 해 미끼 역할에 부적합하다."
"그럼 이번에 들어온 신입들 시키든가!"
"그들도 각자 하는 일이 있다."
남는건 결국 그녀뿐이라는 얘기다.
"아 진짜……! 오르카는 놀고싶다고! 뒤에서 깔짝깔짝 움직이는거 이젠 지겹단 말이야!"
얼핏 어린아이의 투정같았지만 그 속뜻은 자신도 다른 군단장들처럼 본격적으로 나서서 사람들을 짓밟고 싶다는거였다. 그것이 오르카의, 어둠의 정령이란 존재의 본질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것들을 잘 알고 있지만 배려할 생각은 아예 없는 프라이쉬츠가 취한 다음 행동은 지극히 심플했다.
"닥쳐."
오르카가 기대고 있던 소파의 등받이가 그의 손아귀에 종잇조각처럼 찢겨나갔다.
"니 되먹지도 않은 투정들어줄 여유 없어. 도움도 안될만큼 약해졌으면 이런거라도 하라고."
"뭐야?!"
"다른 놈들의 반이라도 되면 이런 말도 안하지. 영웅 한 명도 감당 못하는주제에 나서고 싶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봐. 얼마 가지않아 다굴 쳐맞고 뒈질거다."
"너너, 너어어어─!!"
오르카를 중심으로 어둠이 물씬 피어오르며 방안의 물건들이 마구 떠올랐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의 말대로 지금의 그녀는 영웅보다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강했다. 그녀의 불운이라면 상대는 같은 군단장, 그것도 현 시점에서 최강의 군단장이라는 사실이다.
망각의 대가는 곧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중력이 뒤집히며 떠오른 물건들이 몇 배의 중력에 수 톤의 무게를 실은 흉기로 돌변해 그를 향해 일제히 날아들었으나, 팔짱을 꽉 끼고 있던 그는 잔상을 남길만큼 빠르게 총을 뽑아들며 손장난치듯이 한 바퀴 돌렸다.
동시라고 생각될만큼 순식간에 여러 번의 총성이 울린 직후,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파편들이 시끄럽게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번 것은 넘어가겠지만, 다음 것도 넘길거라 생각하지 마라."
"이이이……!"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며 피가 흘렀지만, 이 이상 그녀가 할 수 있는건 정말 없었다. 그의 말대로 약해빠졌으니까.
"이 정도로 약해져서 부하들을 긁어모은거 아닌가. 어중이 떠중이로밖에 안보였지만 그래도 여태껏 날뛴게 있으니 시선 끄는 역할은 잘 하겠지."
"너어, 너어어……! 나중에, 절대로!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거야!!"
"예전에도 그런 말을 했었지. 그래서 뭘 했나?"
과거 프라이쉬츠는 광전사처럼 날뛰는 아리아 여제 앞에 스우와 오르카를 마루타로 버려둔 전적이 있었지만 그걸로 두 사람에게 보복당한건 없었다. 그들의 사이엔 현격한 힘의 차이가 있었으니까.
하물며 지금은.
"니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우리한테 도움을 줘라. 그러면 나중에 니가 세운 공을 봐서 검은 마법사가 스우를 살려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프라이쉬츠는 분노로 새빨갛게 얼굴을 붉힌채 부들부들 떠는 그녀를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깥에 있던 르티에는 그가 나오자 뒷걸음질치며 떨어졌고, 얼마 지나지않아 닫힌 문 너머에서 울리는 하이톤으로 찢어지는 괴성과 요란하게 부서지는 소리에 차마 열어볼 용기를 내지 못하고 한동안 굳어있었다.
========== 작품 후기 ==========
극한직업 블랙윙 비서. 만약 저기서 프라이쉬츠가 검호나 세피로트와 맞닥뜨렸다면 에델슈타인 지형이 바뀌었겠지.
150화 외전은 하얀 마법사와 친구가 됬다면? 과 본편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컷당한 장면들을 쓰기로 했습니다.
설정편 리코멘은 #입니다.
@여행자구름 - 그러면 결과가 뻔할텐데?!
@육합 - 스우&팬텀은 현재 아스카의 감시를 받는중.
@리세니안 - 글쎄요. 친구가 되었어도 영웅즈는 결국 영웅이 되었을겁니다.
@신월의사신 - 안습한 착각계가 되었을듯.
@건전한독자 - 사실 힐라가 군단장중에서 약하지 꽤 하는 여자인데 말이죠.
@노란우산s - 열심히 쓰겠지만 재미는 보장 못하겠습니다...
@Racine - 가사이 유노?!
@Yoontlemin - 그랬으면 파픈은 시간 정지 마법을 이용해 감금플레이를 했을지도.
@Eluines - 이계인의 시점에서 본 메이플 월드 현 상황 = 막장.
@익재공 - 나중에 여러모로 활약시켜줄겁니다.
@마서 - 무엇을 벌일지 마음껏 상상해주세요.
@사_th - 검호가 법사가 되었다면? 스킬 쓰는데 무진장 고생했을겁니다.
@레니시야 - 예. 지금은 위장한 상태고 원래는 붉은 머리.
@갓타치 - 힐라는 아스완 팔아 검은 마법사에게 힘을 받으며 불로가 되었습니다. 화장도 없잖아 했겠지만 어쨌든 늙은거 감추려고 하진 않았음.
@칼크래프트 - 그리고 가짜 여제 사건에서 화장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
@Ratios - 사실 인게임에서 팬텀때문에 들켜서 그렇지 힐라는 꽤 머리써서 꾸민거였습니다. 만약 팬텀이 아니었으면 여제가 되었을지도.
@melsi - 하이랜더였으면 지금보다 좀 더 편했을지도?
@ReFrante - 파픈이 나오는 외전 쓰기로 했습니다. 다소 러브러브... 는 아니고, 어쨌든 검호와 같이 있는? 장면을 쓰도록 노력해보죠.
@크리잔 - 여러분들 ts 진짜 좋아하시네요...
@소라루 - 그걸로 결정됬습니다!
@Blake117 - 네에, 파픈 나올거에요.
@대어의예감 - 그건 에필로그 가서 나올겁니다.
@카한Kahan - 블랙헤븐 전 굵직한 사건만 3~4개라.
@책벌레씨 - 그거 쓸겁니다.
@시크병장 - 카이린도 쿼터엘프입니다. 엘린 숲의 유리스? 의 딸이죠.
@마도사지망생 - 솔직히 ts는 제가 영 안좋아해서리. 죄송합니다.
@ㅇㅇ군 - 많은 분들이 원하셔서 파픈이 나오는 외전도 쓸겁니다.
@Jaiha - 지위는 같은 간부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간부들을 능가했습니다.
@비탄의과학자 - 그 외전은 제 머릿속에서 아웃되어버렸습니다...
@SourcesMoon - ...제가 고통스러워 하는걸 즐기시는건가요.
@Sisre - 팬텀 캐릭터 만들면 바로 하는 튜토리얼이지만 실제로 글로 쓰면 앞서 써야할게 한 둘이 아닙니다. 크흑!
@류동지 - 다만 인게임과는 조금 다르겠죠.
@레시코 - 나라 팔아서 얻은 젊음을 좋게 볼리가 없죠. 하물며 종족의 수호자인 카이저에겐.
@하양네코 - 모험자들 나올때마다 나왔습니다.
@Ascaron - 그걸로 갈겁니다!
@키하라스티카 - 오르카는 검호와 겔리메르에게 거하게 통수맞을 예정. 본편 늦어서 죄송합니다.
@적현월 - 당연히 힘법사죠! 히오메 애니에서 마법 무기인 샤이닝 로드 들고 팬텀 팰때 얘가 힘법사라는걸 확신했습니다.
#Jm132 - 진짜입니다!
#청아c - 이 글 보고 라테일 하셨다는 분들이 종종 보이네요... 정작 라테일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는데.
#노란우산s - 트립퍼들이 ts되면 직업도 모두 바뀔걸요?
#건전한독자 - 결말만요~
#네임0306 - 본편 늦어서 죄송합니다!
#류동지 - 아직은 아닙니다. 그리고 검호는 마법적 재능이 없어요!
#ReFreante - 제 생각에 하얀 마법사가 초월자가 된건 말 그대로 초월, 벽을 넘은 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검은 마법사로 된건 그 다음.
#Jaiha - 써주세요오오오...!! 저는 제가 쓰는 것도 좋지만 다른 분이 쓰신걸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Sisre - 앞으로 두 번 남았다...!
#Dulcet - 과정까지 해피하면 엔딩이 해피하는데 임팩트가 없잖아요?
#박가현 - 웹툰 나이트런에서 주인공이 적과 싸우다 팬티는 입고 싸우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었죠. 실제로 스우의 옷 안쪽이 신경쓰여서 만든 설정입니다.
#레시코 - 전마도 파티를 결성한 루트의 검호는 아스카와 계약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파픈 플래그도 분쇄됨. 대신 친구를 2명 얻었지만 어느쪽이 좋은지는...
#Eluines - 겨우 기말이 끝나고 좀 쉬다 올립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비탄의과학자 - 나무위키를 참조하세요!
#대어의예감 - 배드 엔딩도 아니고 데스 엔딩?!
#네임0306 - 어떻게든 기말을 쓰러뜨렸습니다만, 결과는 모릅니다.
#x흑란x - 그리고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방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