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155화 (15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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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씨의 아스카만큼은 덜하지만 현존하는 드래곤중 손가락에 꼽힐 거체의 드래곤, 아프리엔의 앞에 선 생명의 오버시어는 안그래도 아이의 모습인데 크기 차이가 너무 나서 한 입에 먹힐만큼 작아보였다. 실제로 둘의 힘은 정 반대지만.

아프리엔은 인기척을 느꼈는지 느리게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대들은…….]

"안녕 꼬맹아."

"음, 안녕하세요?"

일단 예의상 인사를 했지만 아프리엔은 눈앞의 오버시어에 경악하느라 내 존재에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다. 천천히 부릅떠지는 황금색 눈동자가 아이를 가득 담았다.

[당신은…… 대체, 누굽니까.]

"너희 오닉스 드래곤을 만든 신이다."

[저희 종족의 신…… 이라고요?]

"그래. 나는 너에게 제안을 하기위해 몸소 왔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

아깐 그냥 죽인다고 하지 않았나. 갑자기 무슨 제안타령이야.

"너는 빛의 대리인 녀석이 건 저주때문에 수 백년간 얼음에 갖혀있었고, 그동안 이 섬에 동화되어 버렸지. 지금은 얼음이 녹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신세. 이대로 시간이 흘러봤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채 자아가 마모되어 죽기만을 기다려야 할거다."

[……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안한다. 원한다면 널 고통없이 죽여주마."

무슨 신이 자기 창조물한테 자살을 권유하는거야.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든 말든 둘은 대화를 이어갔다.

[저는 아직 죽어선 안됩니다. 당신의 말대로 저는 이 섬과 동화된 존재, 제가 죽으면 이 섬의 모든 생물들이 살 수 없습니다.]

"겨우 그딴 것이 널 붙들고 있는거냐."

아이가 자그마한 발을 들어올리더니 한 차례 땅을 굴렀다. 발을 구른 곳을 중심으로 푸른 빛의 뿌리가 동굴 내, 나아가 섬 전체로 빠르게 퍼졌고, 퍼진 속도만큼 순식간에 사라졌다.

신은 말했다.

"너와 섬의 연결을 끊었다. 이제 니가 죽든 말든 섬의 생물들은 계속 살아갈 수 있을거다."

수 백년 동안의 문제를 장난치듯이 해결해버린 아이를 어이없다는 눈으로 한참 바라보던 아프리엔은 말을 이었다.

[…… 저는 제 계약자, 프리드의 뜻을 후계자에게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니 계약자가 남긴 의식의 일부를 너의 자식과 계약한 이에게 주는 것 말이냐. 그건 내가 해주마."

"당신 뭐 잘못 먹었어?"

"닥쳐라 흰머리. 끼어들지말고 구석에 짜져있어."

설귀도의 앞바다보다 더 차갑게 일렁이는 아이의 눈을 피하며 나는 구석에 쭈그려 앉았다. 괜히 왔나.

[당신께서 그 일을 해주신다 해도, 저는 앞으로 다가올 위험에─]

"니가 아니어도 된다. 지금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그 위험에 대항하기 위해 일어날거고, 이미 일어나서 대책을 짜내고 있다."

군단장과 연합을 말하는건가.

"과거에 너희가 힘들게 싸운건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그들이 돌아오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일테지. 하지만 걱정마라. 현재를 살아가는 생명들은 결코 니 생각처럼 약하지 않으니까. 애초에 삶을 향한 의지로 불타는 생명은 무엇보다 강하다."

쟤가 다른 의미로 미친 것 같아. 저렇게 정상적인 말을 하다니.

"이 내가, 오닉스 드래곤의 신이 직접 허락하마. 안심하고 죽어도 된다. 너의 계약자가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다."

[…… 그것이 사실입니까.]

"내가 나의 창조물에게 거짓을 말할 이유가 있나."

순간 시간의 오버시어가 생각났지만, 우리는 그 여자의 창조물이 아니었다. 따지고보면 굴러온 돌이지 젠장.

"누구도 너에게 삶을 강요할 수 없다. 누구도 너에게 죽음을 강요할 수 없듯이."

이제 어떻게 할테냐. 온기도 냉기도 없는 옅은 푸른색의 시선이 드래곤의 눈과 한참 얽혔다.

[하나만 더 물어보아도 됩니까.]

"말해보아라."

[제 계약자, 저의 동반자 프리드는 제가 이리 된 후 어떻게 살았습니까.]

"초반엔 동료들을 찾아다녔고, 그러다 큰 섬에 정착해 여자와 결혼해 대충 자식 몇 놈 만들어 키우다 이래저래 살다 죽었다."

[그랬, 습니까.]

"나는 너희에게 거의 공감하지 못하지만, 그놈은 너희들의 보편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행복하게 살다가 갔다."

그러고보니 생명의 오버시어는 힘을 회복하고 형씨를 고치기 위해 8백 년 동안 지금의 루타비스에 머물렀다고 했었나.

"뭐, 마지막에 눈감기 전에 너랑 다른 동료라는 놈들을 보고 싶다고 중얼거리긴 했지만."

[프리드가…… 말입니까?]

"너랑 동료 놈들과 보낸 시간이, 그 이후의 시간보다 확연히 적었음에도 잊지 못할만큼 강렬했었다는 얘기겠지. 충분한 대답이 됐나."

아프리엔의 큰 황금색 눈이 잘게 떨렸다. 그는 지금 무슨 심정일까.

[제가 이제, 저의 동반자를 만나러가도 됩니까?]

"아까 말하지 않았냐."

아이는 아프리엔의 문양에 조막만한 손을 올렸다.

"오닉스 드래곤의 신이자 이 세상의 생명을 담당하는 이 몸이 허락한다고."

신이 허(許)했다.

찬란한 빛이 쏟아진다던가, 아까처럼 무언가가 번지는 그런 연출은 없었다. 조용히 다시 잠에 빠지는 것처럼 편안하게 눈을 감았을뿐이다. 그와 함께 아이가 손을 얹고 있던 문양의 빛이 서서히 꺼져갔고,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한 드래곤의 기나긴 삶의 마침표가 찍힌 것이다.

"…… 진짜 의외네."

"뭐가 말이냐. 나의 행동? 아니면 꼬맹이의 행동?"

"둘 다. 당신의 이런 모습도, 아프리엔이 죽음을 선택한 것도. 이해가 안돼."

"니놈은 머리가 나쁘군."

반박하기 위한 말들이 입밖으로 튀어나가려는걸 겨우 참았다. 말해봤자 독설만 돌아올테니까.

"나는 기회를 준 것 뿐이다. 죽을 수 있는 기회를. 그걸 위해 자질구레한 것들을 치웠던거지."

"그러니까 이해할 수 없어. 섬과의 동화가 끊겼으면 이제 마음놓고 행동할 수 있잖아. 자유로워졌으니 프리드의 뜻대로 에반이나 영웅들을 도울 수 있었을테고. 그런데 왜 죽음을─"

"자유로워졌으니까 죽음을 택할 수 있었던거다."

아이의 황홀한 푸른색 머리카락이 길게 흔들렸다.

"그 꼬맹이의 삶을 연장시키고 있던건 본인의 뜻이 아닌 타인의 뜻. 이 땅에 발붙이도록 등을 누르던 추들을 치워냈으니, 죽음을 택하는건 당연한것 아닌가."

"당연하게까지는……."

"간단한거다. 그 꼬맹이에겐 스스로 계속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그저 다른 이의 생명과 의지를 이어야 한다는 사명감같은 것만 있었을 뿐. 삶에 대한 욕망은 8백년전 영혼의 동반자와 영영 떨어졌을때 이미 사라졌다."

듣다보니 좀 알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자살을 권유하고 또 그걸 받아들이는건 공감 못하겠어.

"그런데 당신, 오닉스 드래곤의 신이라면서 그 종족 다시 부흥시킨다던가 하는 생각은 없나봐? 안그래도 얼마없는 종족인데 알정도는 만들 수 있잖아."

"왜 내가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해야하지?"

"아니, 오닉스 드래곤의 창조신이라며."

"그렇지. 하지만 만들었다 해서 그들의 미래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나? 부흥하면 부흥하는거고 멸종하면 멸종하는거다.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또 생기는 종족이 몇인데 그놈들만 특별 취급해야하냐?"

"방금 아프리엔을 특별 취급했잖아."

애초에 아프리엔이 오닉스 드래곤이 아니라 그냥저냥한 드래곤이었으면 몸소 여기까지 올 것 같지 않은데.

"흥…… 그 여자만큼은 아니더라도 나 역시 내가 만든 종족에게 애착이란게 있다. 하지만 그것때문에 한 종족만 편애하진 않는다. 그건 불공평하고, 또 재앙이니까. 오늘 나선건 여러 상황이 중첩되었기 때문일 뿐이다."

"그래?"

"대답을 다 해줬으니 이번엔 내 질문에 답해라."

생명의 오버시어는 바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며 말했다.

"왜 날 따라온거냐."

"응? 그야─"

"감시를 위해서라는 핑계따위 대지마라. 날 따라오는 역할은 누구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넌 누가 먼저 할세라 가장 빨리 자청했지. 내가 모를거라 생각했나."

…… 독심술을 제외하더라도 오버시어는 상대하기 곤란하다. 특히 저 아이는.

"너는 비겁한 수를 썼지만 어쨌든 기회를 붙잡았다. 자, 말해봐라."

"─하나만 물어볼게. 사실만 대답해줘."

"이몸이 니놈같은 것에게 거짓을 말할 것 같나."

그 말에 나는 간신히 나는 아이에게 가슴 속에 묵혀두었던 어떤 가정을 물어보았다.

***

side out.

청문회의 날이 밝았다.

에반은 며칠동안 힐라가 군단장이라는 물증을 찾기위해 분투했지만 끝내 성과를 얻을 수 없었고, '병사들 모두 이성을 상실하거나 홀린 상태가 아니다'라는 현 상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를 입수하는걸로 끝났다.

이번 청문회가 연합의 중심이나 다름없는 시그너스 여제의 제위와 관련된 것이었기에 소문이 안퍼질 수 없었으며, 피요족 의원 전원은 물론 각 지역에서 대표들과 힐라의 수상함을 감지한 이들이 청문회의 자리를 차지했다.

"많이도 왔군."

"그럴 수 밖에."

"저걸 화려하게 망치면 된다 이거지?"

"그렇다."

에레브 대회의장의 가장자리를 두르고 있는 기둥형 건축물의 위, 에레브의 로브를 걸친 두 남자가 은신 마법을 쓴 채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망치는거야 당연한거지만, 너희는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이걸 시키는거야?"

"힐라의 주장을 반박할 지식이 있는게 너뿐이니까."

"그 이전에, 너희는 블랙윙의 일원아닌가? 블랙윙은 그 쌍둥이 놈들의 조직이고. 검호 그도 그렇고 너희는 대체 뭣때문에 이런 짓을 하고있는거야."

"알 필요 없다."

은월은 스우와 팬텀이라는, 본래의 계획을 징하게도 틀어놓은 두 인물을 한 방에 쫓아내기 위해서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이 자리에 없는 검호가 두 사람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어느정도인지 그도 잘 몰랐으니까.

"…… 당장은 뜻이 맞으니 움직여주겠지만, 다음에 만날때엔 절대 넘어가지 않아."

"그래라."

그 다음이란게 제대로 올지 의문이지만. 은월은 청문회에 에레브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린 사이, 엔젤릭 버스터가 에레브의 봉인석을 회수하기로 한 계획을 굳이 말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이번 봉인석만 회수하면 시간의 오버시어를 깨울 수 있고, 그걸로 게임 끝이다.

"그보다 스우는 잠잠한거 맞지?"

"당분간 못 나오도록 조치를 취해져있는걸로 안다만."

"검호한테 맞은거 말하는거야? 그거 더럽게 아팠다고. 뇌진탕 걸릴뻔했는데."

"고작 뇌진탕으로 끝나다니 대단하군."

당시 그가 분노한 상태였다는걸 생각하면 굉장한거다. 검호의 근력을 생각하면 두개골이 으깨져도 놀랍지 않은데, 그래도 팬텀이라고 눈 돌아간 그 순간까지 힘조절을 했던 모양이다.

"만에 하나 스우가 깨어나 니 몸을 차지해 소란을 피운다면, 나는 니 영혼에 피해가 가는걸 감수해서라도 널 공격할거다."

"하! 차라리 그게 나아. 난 지금 내 안에 놈이 있는 것만으로 속이 뒤집어지니까."

가능하다면 내 손으로 배를 갈라 그 자식을 뽑아내고싶은 심정이야. 팬텀은 습관처럼 달고다니던 능글맞은 웃음을 싹 지우고 스산하게 말했다.

"어째 처음보는 당신이 그보다 나은 것 같네."

"…… 잡담은 이쯤하지. 슬슬 청문회가 시작되려 하니까."

은월의 말에 팬텀은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휘장을 든 병사들을 대동한 힐라가 우아하게 회의장에 들어오고 있었다. 기품있으면서 한편으로 가녀려보이는 얼굴의 그녀는 이번 사건을 일으킨 주모자인걸 알면서도 큰 적대감을 품기 어렵게 했다. 물론 기사단장과 영웅들, 군단장의 존재를 잘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험악한 표정이었지만.

"시그너스님이 진짜 황제가 아니라니…… 정말일까요?"

"자네, 말이 과하군. 진짜 황제가 아니라니. 그럼 우리가 진짜 황제가 아닌 분을 모시고 있단 말인가? 시그너스님은 지금도 황제로서 계시네."

"진짜 황제이시기는 하지만 정통성을 의심받고 있는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만약 정말로 에레브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면……."

"아리아 선황님이 남긴 보물. 그 기록은 확실하오."

"어렵네요. 정말 그 보물이 진정한 황제를 증명한다면, 진짜 황제의 혈통이 시그너스님 외의 사람으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째야 할지…… 지금까지 에레브를 이끌어오신 시그너스님을 배신할 수는 없지만, 진정한 황제의 혈통을 모르는 척 할 수도 없고. 정말 답답합니다."

"이제야 메이플 월드를 하나로 모을 연합이 탄생했는데…… 그들은 모두 시그너스님을 믿고 연합에 가입한 사람들이오. 시그너스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 황제가 된다면 연합도 흔들리고 말것이오."

술렁이는 피요족 의원들의 말을 듣던 팬텀은 인상을 썼다.

"혈통을 증명하는 보물? 그런건 들어본적 없는데?"

"끝까지 봐라."

회의장 가운데의 길을 걸어오던 힐라는 시그너스와 기사단장들이 있는 곳에서 적당히 떨어진 곳에 멈춰서서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말했다.

"많은 분들이 모이셨군요. 제 말에 귀기울여 주셨다는 의미겠지요? 감사합니다."

사람들을 향해 한 차례 고개를 숙인 그녀는 이어 말했다.

"제가 바로, 진정한 황제의 혈통이라 감히 주장하는 힐라입니다."

의례상 몇몇 이들이 박수를 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상을 쓰거나 이제 뭘 하려나 지켜보았다. 오늘의 청문회 준비로 피곤에 쩔었지만 눈빛은 조금도 죽지않고 오히려 형형하게 빛나는 나인하트가 말했다.

"…… 그 말이 거짓임을 증명하기위해 모였을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아아, 물론 제 말을 단번에 믿어주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진실은 밝혀지는 법, 지금부터 에레브의 많은 사람들이 잊은 옛날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진실~ 대목에서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던 팬텀은 팔짱을 끼며 뭐라 지껄이는지 들어보자는 자세를 취했다. 은월은 미리 손에 끼고있던 철조의 날을 다듬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겁니까."

"여러분도 들어보셨을지도 모릅니다. 먼 옛날, 검은 마법사가 메이플 월드를 지배하던 그 당시의 황제 아리아에 대해서 말이죠."

아리아의 이름이 나오자 팬텀은 왜 그들이 자신에게 이번 일을 맡겼는지 확실하게 알았다. 감옥에 있었을때 검호가 여제의 혈통이니 족보니 뭐라 말했던 이유가 이건가?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8백년 전 검은 마법사로 인해 에레브의 많은 것이 파괴되어 제대로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전해져온 사실이 하나 있죠. 당시의 황제 아리아 여제는 스카이아란 보물을 갖고 있었다는 것 말이죠."

그는 은신해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리고 크게 웃음을 터뜨릴뻔했다. 하필, 하필 혈통에 제기하기 위한 물건이 스카이아? 저 마녀는 스카이아가 어떤 물건인지 모르는건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웃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동안, 잘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스카이아에 대한 소문은 에레브를 시작으로 퍼졌지만, 정작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제대로 알던 사람은 그것을 가졌던 당사자와 그 뿐이었으니까.

"아리아 황제가 갖고있던 에레브의 보물 스카이아…… 그건 메이플 월드의 황제에게만 대대로 내려오던 신비한 보석이랍니다. 황제를 보호하고, 황제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지요."

그녀의 말에 은월은 '저 말이 사실이냐'는 질문을 담은 시선을 보냈고, 팬텀은 고개를 저어보였다. 듣고있던 바람의 기사단장 이리나가 날카롭게 말했다.

"스카이아에 대한 기록은 확실히 존재하지만, 그 보석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어요."

"물론 그러시겠지요. 아까도 말했지만 에레브의 기록은 8백년 전 거의 소실되었고, 거기다 시그너스 님께서는 스카이아를 갖고있지 않으시니까요. 하지만─ 전 다르답니다. 저에게는 스카이아가 전해내려오고 있거든요."

팬텀은 반사적으로 품안에 손을 뻗었다. 소중한 사람을 허망하게 잃은 그날, 신수에게서 전해받은 그 보석은 여전히 그가 지니고 있었다.

"검은 마법사와 군단장들의 공격으로 인해 파괴된 에레브에서 스카이아가 사라졌다…… 가 여러분께서 알고 계시는 전부겠지요. 하지만 황제의 신물인 스카이아가 그렇게 쉽게 사라질 물건인가요? 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선조들께서 잃어버리게 놔뒀을까요?"

메르세데스와 루미너스, 아란은 잔뜩 인상을 쓰며 그 날을 떠올렸다. 검호의 연락에 급하게 왔을때 이미 아리아 황제가 살해당한 이후였고, 에레브는 거인의 손아귀에 찢긴 것처럼 반파된 상태였다. 그것들을 수습하기위해 며칠을 고생했던가.

"그럴리가 없죠. 스카이아는 아주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옮겨졌답니다. 검은 마법사와 그 수하들의 손을 피해 비밀스럽게…… 진정한 황제의 혈통에게. 그렇게 수 백년을 조용히 전해져왔지요."

"그게 너라고 주장하고 싶은건가?"

어둠의 기사단장 이카르트의 차가운 질문에 힐라는 아무렇지 않다는듯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일 뿐이랍니다."

"하, 하지만 당신이 갖고 있다는 그 스카이아가 진짜라는걸 어떻게 증명하죠? 당신이 가짜를 가지고 온 것일 수도 있잖아요."

"후훗, 잘 말씀해 주셨어요. 스카이아는 이름만 널리 알려졌을 뿐, 본 사람은 거의 없는 비밀스러운 보석이지요. 현재 메이플 월드에서 스카이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는 분은 스카이아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 여기 에레브의 여러분 뿐이죠."

수 백년을 산 이들이 이 자리에 몇몇 있었지만, 실제로 스카이아를 본 이는 없었다. 전 군단장인 데몬은 물론 아란과 메르세데스, 루미너스까지 그런 보석이 있다는 소문을 당시에 들은 적이 있다~가 전부였다. 이는 그 때 그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거였다.

"제가 갖고 있는 스카이아가 여러분이 알고 계신 그 모양과 일치한다면 답은 간단한 거 아니겠어요?"

"이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보석 생긴거야 어차피 거기서 거기고, 다른 지역에 스카이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거잖아?"

번개의 기사단장 호크아이가 예리하게 지적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각 지역의 대표들에게로 옮겨졌다.

"…… 죄송하지만 엘나스에는 그런 보석에 대한 정보가 전무합니다."

"루디브리엄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안하네만 무릉도 같다네. 우리는 지리상 외부의 정보가 거의 유입되지 않는터라."

"오르비스는…… 기록과 별개로 제가 그 보석에 대한 소문을 들어본 적 있습니다."

미네르바의 말에 여러 사람들의 눈빛에 만감이 교차했다.

"저희 지역은 8백여년 전에도 교통의 중심지였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정보들이 오가며 소문들이 돌았었죠. 스카이아에 대한 것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지혜의 여신은 반쯤 눈을 감으며 오래된 기억의 끝자락을 더듬었다.

"에레브에서부터 퍼졌던 것 같은데…… 아리아 황제에게는 스카이아란 몹시 진귀한 보석이 있다, 그것은 에레브의 보물이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을겁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인지도 아십니까?"

"죄송합니다. 거기까지는 모릅니다."

힐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수 백년 전부터 살아오신 분들도 스카이아를 본적이 없다 하시고, 솔직히 가능성이 적은 이야기이지 않나요?"

"뒤집어서, 저 사실이 당신의 하는 주장의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단지 그때 그런 소문이 돌았다. 그뿐이니까요."

"어머, 그럼 이번엔 반대로 해볼까요? 여러분은 시그너스님의 혈통을 증명하실 수 있나요?"

"그런걸 말이라고─!"

"하고싶은 말이 뭡니까."

호크아이의 입을 막은 나인하트가 서슬푸른 얼굴로 물었다.

"제가 듣기로 시그너스님은 태어났을적부터 신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에레브에서 자랐다─ 고 하던데 이것이 사실입니까?"

"…… 알면서 왜 물으시는겁니까."

"에레브 섬은 아리아 황제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계속 고도가 낮아져왔습니다. 불과 몇 년 전, 시그너스님이 황제로 즉위하시기 전까지 말이죠."

"그것이 바로 여제님이 황제의 혈통을 이었다는 증거─"

"이상하지 않나요? 시그너스님이 정말 황제의 혈통을 이었으면 애초에 왜 섬이 낮아졌던걸까요? 당신의 말대로 황제의 혈통을 이었을텐데 말이죠."

장내가 술렁거렸다. 시그너스의 안색은 창백해졌고, 나인하트는 작게 이를 갈았다. 대외적으로 낸 소문을 이렇게 이용하다니.

"거기다 나인하트 책사 당신은 시그너스님이 즉위하기 직전의 시기에 나타났다고 하던데, 우연이라 보기엔 타이밍이 너무 공교롭지 않습니까."

"제가 나타난게 뭐 어쨌다는겁니까."

"심지어 당신은 마법도시 리엔 출신의, 그것도 무려 눈꽃의 마법사 아리에스의 피를 이은 직계 후손중 한 명이지 않습니까. 이 정도면 그림이 나오지 않나요?

힐라는 몸을 돌려 사람들이 있는 쪽을 보았다.

"황제의 혈통을 이은 자가 없어 에레브 섬이 낮아지는 것에 불안해하던 피요족 분들이 리엔에 도움을 요청했고, 거기서 온 나인하트가 대충 여제의 역할을 할 시그너스님을 데려다 황제에 즉위시켰다─는 이야기가 말이죠."

"이 무례한─!"

"시그너스님이 즉위한 뒤에 섬이 다시 떠오른거야, 리엔의 마법을 동원했다고 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겠죠."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들어 달려들 기세인 미하일을 호크아이와 이카르트가 간신히 붙잡았다. 들끓는 마력을 이성으로 겨우 억누른 나인하트가 물었다.

"…… 지금 그 추측에 증거가 있습니까?"

"그야 물론이죠.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시그너스님의 연약하디 연약한 몸. 시그너스님께서 진정한 황제의 혈통이라면 신수님의 힘에 눌리지 않으셨겠지만, 지금 시그너스님은 어떠신가요? 하루에 몇 시간 깨어있지도 못하고 거의 대부분을 주무시는데 보내고있지 않나요?"

시그너스는 고개를 숙이며 옷자락을 힘없이 움켜쥐었다.

"지금 당장 저의 말을 다 믿어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에요. 하지만, 제 말에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면 최소한 듣고 한 번쯤 깊게 논의를 해보셔야 하지 않나요? 그것이 당신의 역할 아닌가요 시그너스?"

"…… 맞아요."

쥐어짜낸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꺼질듯 위태롭게 울렸다.

"지금의 내가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건……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이지요."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린 시그너스는 흔들리는 눈이 힐라를 마주보며 말했다.

"당신의 추측은 대부분 맞아요 힐라."

회의장에 충격이 번졌다. 의장석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물론 그녀의 가까이에 있던 기사단장들 마저 '여제님?!'이라고 외치며 경악했으며, 심지어 힐라의 호위를 하고 있던 노바족들도 투구 속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태어나서부터 에레브에서 자라지 않았어요. 어딘가에서 평범한 소녀처럼 자라다,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저희 조상들의 먼 고향이 에레브라고 말씀해주신걸 들었을 뿐. 그렇게 살던 저에게 나인하트가 찾아왔고, 제가 메이플 월드의 유일한, 그리고 가장 강한 여제의 혈통이라 말해주었답니다."

"여제님!"

"나인하트. 당신이 저를 위해 그런 소문을 퍼뜨린건 알아요. 사람들을 안심시켜서 제 정통성이 의심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겠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까지 거짓을 말할 수 없어요."

흔들리는 목소리와는 반대로 그녀의 눈은 단단하게 빛났다.

"옳은 일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끊임없이 싸움에 끌어들였어요. 그러면서 나는 이곳에서 모두의 보호만을 받고 있지요. 그건 내가 황제이기 때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그런데 만약 내가 황제가 될 자격이 없다면……."

한 차례 숨을 고른 그녀는 말을 겨우 끝맺었다.

"감히 메이플 월드의 많은 사람들을 움직일 자격이…… 없어요."

정적이 내려앉았다. 힐라는 입꼬리를 당기며 그 침묵을 부쉈다.

"자, 그렇다면 더 이상 구구절절한 설명을 할 필요 없겠군요. 이 자리에서 진정한 황제의 혈통이 누구인지 증명해보도록 합시다."

"그 전에, 당신이 황제의 혈통을 이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습니까."

"설명이 필요합니까? 뭐 좋습니다."

마지막 발악을 즐기듯이 웃으며 힐라는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8백여년 전, 검은 마법사와 군단장의 습격으로 에레브가 파괴되었던 당시 이 섬에는 아리아 황제뿐만이 아니라 여러 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섬이 부서지며 귀족들은 이곳에서 떠나야 했죠. 그렇지 않나요 영웅분들?"

갑자기 그녀에게 불린 아란과 메르세데스, 루미너스는 팍 인상을 썼다.

"그때 이곳에 왔었던 여러분이라면,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히 해주실 수 있지않습니까."

폴암의 자루를 쥐락펴락하는 아란과 살얼음이 내려앉은 얼굴인 메르세데스는 입을 아예 다물었고,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표정이던 루미너스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 사실이다. 그때의 습격으로 에레브가 반파된 이후, 대부분의 귀족들이 섬에서 내려가 지상의 여러 나라로 자리를 잡았지."

"예, 그렇다고 하는군요."

그 광경을 내려다보던 팬텀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걸 또 사실대로 말하는건 뭐야? 그냥 거짓말 좀 할 것이지. 하여튼 샌님은……."

"루미너스는 스스로에게 불리한 사실일지라도 거짓을 말하지 못하는 고지식한 성격이니까."

"헤에? 당신 샌님 처음보는거 아니었어? 굉장히 잘 알고 있네."

은월은 뭐라 더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지상으로 내려온 귀족가 중에는 황제의 혈통을 가진 귀족가 역시 있었고, 그들은 당시 가장 크게 번영한 나라인 아리안트에 자리를 잡았답니다. 저는 그들의 후손이고요."

무려 영웅이 사실을 인정했기에 힐라의 주장에 무게가 실렸다. 그녀는 하나의 물건을 꺼내 들어보였다.

추(錐), 펜듈럼의 형상을 한 과하지도 수수하지도 않은 장식이 가해진 붉은 보석.

"스카이아는 진정한 주인의 손에서 빛을 낸다고 합니다. 에레브의 여제 시그너스? 이 스카이아를 들어보세요. 당신이 진정 메이플 월드의 황제라면, 스카이아도 분명 빛을 낼겁니다."

힐라는 사뿐사뿐 걸어가 시그너스에게 선선히 보석을 넘겨주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았다.

그리고.

"……아."

"역시 조금도 빛나지 않는군요. 이걸로 증명은 충분하지 않나요?"

차가운 광택만 발하는 손안의 보석을 망연히 바라보는 그녀에게서 보석을 가져간 힐라는 사람들을 향해 그것을 들어보였다. 시그너스때와는 반대로, 보석은 빠져들 것 같은 노을빛을 뿌리고 있었다

"자, 다들 보십시오! 아리아 황제의 유품인 스카이아가, 제 손에서는 이렇게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황제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녀의 말에 좀 전의 시그너스가 했던 인정까지 더해서 사람들 사이로 말들이 오갔다.

"이제 아시겠죠? 에레브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저거 진짜 아니야? 여제님이 황제가 아니라니 그 무슨. 감탄과 경악으로 술렁이는 인파를 보며 힐라가 미소를 짓는 사이, 기사단장들은 시그너스에게 말했다.

"결론을 내리기엔 아직 이르십니다 여제님."

"그래요 여제님. 솔직히 저 빛이 가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어?"

"마, 맞아요! 그냥 빛을 내는 마법은 저도 쓸 수 있는걸요?"

"신수님이 귀환하시면 진실을 밝혀 주실 겁니다. 시그너스님, 절대로 저 여자의 말을 믿어서는 안돼요."

"당신이 흔들리면 우리 기사들도 흔들릴 수 밖에 없어. 정신을 차려."

그들의 말에 시그너스의 눈에 서서히 초점이 맞춰졌다.

"연합의 결성이 확정되고, 이제야 메이플 월드의 모두가 힘을 합칠 초석이 마련된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노려 우리를 흔들고, 그간의 신뢰를 무너뜨리려는 음모일지 모릅니다. 정체도 알 수 없는 여자의 확인되지 않은 말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모두들……."

"이런? 당신의 기사들은 진실을 부정하려 드는군요."

낭랑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다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지금까지 에레브에서 기사단을 이끌며 메이플 월드를 현명하게 이끌어온 시그너스. 당신의 노고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현명한 당신이기에, 더 늦기 전에 올바른 선택을 하기 바랍니다."

노바족들은 들고 있는 휘장과 창을 묵직하게 내리찍었다.

"진정한 황제가 누구인지 인정하고,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세요. 그리고 그 사실을 연합에 알리시고요."

사막의 태양과 같은 위엄어린 금색 눈이 그들을 내려다보았고, 기사단장들은 험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물론 재촉하는건 아니에요. 혼란스러우실테니 그 혼란을 수습할 시간은 얼마든지 드리도록 하죠. 제가 의심스럽다면 그에 관한 조사를 계속해도 좋아요."

그 어떤 위장 마법이 발견되지 않았고, 병사들 역시 홀리거나 세뇌되었다는 흔적이 나오지 않았다. 더 조사해도 어떤 증거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알게 될 거에요. 메이플 월드의 황제는 바로 저 힐라라는 사실을……."

여기까지 본 은월은 팬텀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니가 나설때다."

"알고 있어. 지금이 딱 적기잖아?"

"확실하게 저것을 짓밟아라."

"물론이야. 다른건 몰라도 아리아와 스카이아 얘기를 꺼낸 시점에서 그러기로 결심했거든."

팬텀은 간만에 손에 들어온 케인을 꽉 잡으며, 자리를 박찰 준비를 했다.

"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 꽤 괜찮은 것 같아. 블랙윙인데도 그렇게 불쾌하지 않고. 만약 나중에 마주치면 한 번은 넘어가줄게."

"…… 고맙다."

은월의 후드 안으로 지어진 옅은 웃음을 채 보지 못한 팬텀은 크게 외쳤다.

"잠깐! 결론을 내리기엔, 아직 이른 것 같은데?"

갑자기 울린 정체불명의 목소리에 당황한 사람들 중 영웅들과 전직 군단장 한 명만이 목소리의 범인이 누군지 알아냈고, 그중 루미너스는 홀로 얼굴을 구겼다. 망할 좀도둑.

***

검호side.

빅토리아 아일랜드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이었다. 메이플 아일랜드, 작고 평화로운 시골 섬.

"아스카."

[주민들 대피시키면 되지?]

"…… 매번 이런것만 부탁해서 미안해."

[괜찮아. 피해가 커지지않도록 결계도 준비해둘게.]

"고마워."

생각해보면 아스카도 나 못지않게 굉장히 강한데 매번 부탁하는게 이런 류의 것이었네. 그렇다고 내가 주민들을 피신시킬수도 없는게, 무려 그를 대면하는 자리에 아스카를 혼자 보낼 수 없었다.

내가 속으로 다시 한 번 아스카에게 사과할때 아스카는 섬에 착륙했다.

"다녀올게."

[응.]

인가(人家)가 있는 쪽으로 가는 아스카를 뒤로하고, 나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여기저기에 쌓인 붉은 단풍잎이 파삭파삭 밟혔다. 고개를 들어보니 에우렐의 신목이 떠오를만큼 크고 굵은 단풍나무가 혼자 불타는 것처럼 빨간 잎들을 자랑하며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게 보였다.

그리고 바람 한 점 불지않아 눈송이처럼 조용히 잎을 떨어뜨리는 단풍나무의 앞에, 한 사람이 있었다.

"오랜만이군."

평화로운 섬의 분위기와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불길한 검은 로브 차림의, 내가 기억하던 때의 모습과 완전히 반전된 색들을 두르고 있는 - 그래서 나와 무척이나 닮아보이는 남자.

"검호."

…… 검은 마법사.

========== 작품 후기 ==========

이번 편은 팬텀 튜토리얼 복붙이나 다름없어서 빨리 써졌네요(눈물). 오리지널 내용을 더 넣고싶었는데 여기까지가 한계였습니다.

@Jaiha - 답은 메이플 아일랜드였습니다. 인게임에서 검마의 분신이 나타나는 곳이죠.

@sanya - 고인능욕은 아니고 고인드립입니다(웃음). 사이키커는 과거에 사이코였지 지금은... 지금도 그리 좋은건 아니지만 끝은 좋을겁니다.

@sjdjabqh - 다음편에 본격적인 재회가!

@소라루 - 사실 오버시어의 육체라는게 반쯤 허상입니다. 물질이라기보단 개념적 영역에 들어있다는 설정이지만 그런건 본편과 별 상관없으니 패스~ 생오버가 아스카에게 빙의한건 일단 아스카의 동의를 얻었기에 수월했던겁니다.

@적현월 - 성형레벨의 화장.

@Eluines - 안락사? 존엄사? 뭐라고 해야할까요 저건.

@산들바람eh - 직감은 멋지게 맞을겁니다.

@비탄의과학자 - 마법의 영역에 들어간 화장.

@갓타치 - 변신 마법이 안된다고? 그럼 물리적으로 바꿔주마!

@책벌레씨 - 실제로 영웅즈랑 같이 일했던 데몬마저 힐라 얼굴을 보고 동일인물이라 인식하지 못했음. 그만큼 개쩜.

@Sisre - 에레브의 한가운데에서 핵을 꽂아넣을 스우.

@Blake117 - 신의 허락아래 편히 가셨답니다.

@하늘연꽃 - 영웅즈는 안죽어요.

@마서 - 그보다 굉장한 일을 할겁니다.

@Yoontlemin - 루시드 얀데레 포즈보고 제가 뿅갔었음.

@루엔시르온 - 취직 축하합니다! 전 좀 있으면 개학이라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전에 이 챕터라도 끝내기 위해 노력중임.

@ReFrante - 생오버는 뭔가가 죽는거에 별로 관심없습니다. 죽음은 당연한거니까요. 다만 아프리엔은 죽음이 아닌 삶이 강제로 연장되고 있었기에 죽여주러 간거.

@Blackcode - 레알 세계 제일.

@칼크래프트 - 진짜 괴도키드 변장술 수준입니다. 검호는 검마를 만났고요.

@슈엘리안 -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설정하진 않았지만 검호의 키는 184고, 데몬은 190 좀 넘고 카이저는 검호보다 약간 작음.

@인리연찬 - 아마란스> 메르세데스> 미네르바> 이하 여캐. 하지만 검호 기준으로는 파픈이 짱짱일겁니다.

@대어의예감 - 도트 수정을 강력히 요청합니다!!

@Ratios - 어떤걸 빌려왔다는 말이죠? 겔리메르제 홀로그램 장치들? +추가)심지어 다 돈받고 일하는겁니다.

@익재공 - 음, 화기애애가 아니라 화기애매일겁니다.

@노란우산s - 자폭으로 죽이고싶지 않아 편하게 죽여준겁니다.

@건전한독자 - 하지만 네크로멘서잖아? 안될거야.

@니미이런 - 아뇨아뇨아뇨.

@pio10세 - 거기까지 쓸 여유 없습니다.

@x흑란x - 핑크머리 만세! 엘프귀 만세!

@키하라스티카 - 헉헉... 지쳤습니다.

@레시코 - 다음화는 검호와 검마의 재회!

@cosy - 그게 상식이죠. 장수하는 요정족이 아니라면 8백년의 반도 못 사는게 메이플 월드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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