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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스 님."
"왜 부르지 나인하트."
"선대 여제님은 대체 어쩌다가 돌아가셨습니까."
"프리드가 말하길, 그녀를 이끌어내기위해 거짓 회담을 가졌던 윙마스터 스우와 오르카, 에레브 내부에 잠입하고 있던 프라이쉬츠의 배신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의 대답에 나인하트는 반쯤 썩은 눈으로 반문했다.
"…… 어떻게 봐도 군단장따위에게 죽임당할만큼 약한 분으로 안보이는데요?"
"나도 지금 혼란스러우니까 더 묻지마라."
"당장 거기서지 못합니까 스우─!!"
할버드가 휘둘러질때마다 박살난 나무파편들이 꽃잎처럼 휘날렸고, 단순히 그 여파만으로 땅이 총알맞은 유리창마냥 방사상으로 쫙쫙 갈라졌다.
"니놈들은 대체 저런걸 어떻게 암살한거냐고?!"
[말했잖아요, 죽도록 얻어터졌다고! 내가 그분께 몸을 얻은 뒤로 처음으로 죽을뻔했던게 저 여자한테 밟혀서였는데! 그래서 무섭다고요!]
"어쨌든 니놈들이 죽인건 맞잖아!"
[내가 아니라 프라이쉬츠였어요! 그 자식이 나랑 오르카를 미끼로 내던지고 혼자 내빼있다 나중에 어찌어찌 죽였던거라고요!]
"그놈이 저걸 1:1로 쓰러뜨렸단 말이야?"
프라이쉬츠가 군단장중에서 최강의 단일 화력을 가지고 있다는건 알지만 저걸 혼자서 상대하는건 아무리 놈이라도 무리인것 같은데.
[넋놓지말고 피해요! 사슬추가 온다고요!]
"젠─장!!"
할버드의 창대 끝에서 쏘아진 강철의 뱀이 거칠게 울며 일대의 땅을 모조리 헤집었고, 은월은 한 치의 망설임없이 땅바닥에 다이빙해 그림자 속으로 숨었다. 간발의 차로 사슬추는 그의 뒷머리카락을 뭉텅 자르며 반경 수십미터의 벌목을 눈 깜짝할 사이에 끝냈다.
보통의 그였다면, 아니 불과 몇 초 전의 그였다면 이런 짓따위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우를 강령시킨다니! 이론상 스우도 정령이니 가능한건 둘째치고, 시도는 물론 생각조차 안했을거다. 완전히 몸을 내주는 빙의가 아닌 신체 일부에 깃들게 하는 강령이었지만 하여튼 그것도!
그러나 지금은 해야했다. 스우고 오르카고 일단 해야했다.
"언제까지 도망만 치고 다닐겁니까─!"
제 목을 친히 참수하기위해 직접 할버드를 들고 동료의 몸에 빙의한 그녀의 도끼날을 피하려면, 무슨 수든 써야했으니까.
좁은 그림자의 공간내에 구겨지다시피 쳐박힌 은월은 목메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내가 왜 이 꼴이……."
[그래서 아까 에레브 아래로 뛰어내리라 했잖아요!]
"그랬다간 죽는다고!"
[저 여자를 상대하는 거랑 하늘섬에서 추락하는거, 어느 쪽 생존확률이 더 높을 것 같습니까?]
은월은 감히 전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되먹은게 후자의 생존확률이 더 높아보였으니까. 에레브 밑은 바다라고 들었는데 진짜 지금이라도 뛰어내려야하나?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정말 살기위해 해야할 것 같다.
[거기다 당신은 다른 정령들도 부를 수 있잖습니까. 바람이든 물이든 하여튼 뭘 쓰면 낙사만은 면할수 있고, 망망대해에 떨어지는 셈이지만 저걸 상대하는 것보단 낫잖아요?]
설득력이 넘쳐흐른다. 군단장이 하는 말따위 믿어선 안되지만 왜 이번만큼은 믿고싶은건지.
아니…… 아니아니아니 잠깐만 있어봐.
내가 왜 불과 몇 분 전까지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놈이랑 힘을 합쳐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거지?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다지만, 혼자서 유령 상태로 에레브를 뒤집어버린 스우 저놈을 밖으로 보내도 되나?
그건 아니잖아.
[이 공간은 금방 무너질겁니다. 대회의장에서 섬 가장자리까진 꽤 멀지만 당신 속도라면 금방 도착할 수 있을거고, 그동안 저 여자 도끼날과 사슬추를 몇 번 더 피하기만 하면─]
"아니. 그건 됬다."
[하?]
"나는 다른 방법을 쓸거다."
[괜찮은 작전이라도 나왔나요?]
"그래."
그는 강령시켰던 스우를 튕겨내 붙잡았다. 자연히 그림자 공간은 무너지며 둘은 밖으로 나오게 되었고, 자욱한 흙먼지 너머로 그들을 본 아리아가 희번뜩하게 눈을 빛냈다.
[무, 무슨 짓을 하는겁니까?!]
"아까 니가 말한 프라이쉬츠 놈과 똑같은 짓을 하려고 한다."
이자식을 미끼로 던져야겠어. 경악한 놈이 외쳤다.
[제정신입니까……! 내 힘 없이 당신 혼자선 저 여자한테서 절대 못 살아남아요!]
"애초에 일이 이 지경이 된건 순전히 니놈 때문아닌가. 니놈이 시그너스 여제를 헤치고, 팬텀을 죽이려고 했으니까."
그러니 선대 여제님도 눈이 돌아가셨겠지. 좀, 아니 꽤 많이.
"거기다 저분의 목표는 너지 내가 아니야."
[당신, 당신 혼자서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여자가 아니라도 다른 영웅들과 기사단장, 아직 남아있는 모험가들이 있다고요!]
"아무리 상황이 급박해도, 내가 살기위해 군단장인 니놈을 살리고싶진 않아."
[하, 하하…….]
그의 말이 오죽 기가찼는지 스우가 헛웃음을 흘리는동안 은월은 숨을 고르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폭풍 전의 고요처럼 팬텀 - 의 몸에 빙의한 아리아 여제는 늘어뜨린 사슬추를 붕붕 돌리며 뚜벅뚜벅 걸어왔고, 아래로 처진 할버드의 날은 서슬푸르게 빛났다.
스우는 발악했다.
[당신이 무슨 영웅 나부랭이인줄 알아요?! 이 상황에서 무슨 오기를 부리는겁니까!!]
"영웅이었다."
[…… 뭐라고요?]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어버렸지만, 옛날엔 다함께 그렇게 불렸었지."
그 칭호에 별다른 미련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그들처럼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 중 하나로서 결코 타협해서는 안될 무언가가 생긴 모양이다.
직후 은월은 스우가 뭐라고 말 꺼내기 전에 재빨리 그를 붙잡았다.
[잠깐, 잠깐 기다─]
"넌 여기서 죽어라 스우."
그는 스우를 점점 다가오는 아리아 여제를 향해 집어던졌다.
둘의 행동을 지켜보고있던 아리아는 갑자기 제쪽으로 날아오는 스우에 살짝 놀랐다가 바람보다 빠르게 할버드의 도끼날 반대편에 달린 갈고리 부분으로 그를 낚아채 땅에 쳐박았다.
[끄, 으……!]
"드디어 잡았네요 스우."
[저 미친 놈이, 거지같은 짓을.]
"이 상황에서까지 남탓이라니, 정말 새카만 근성이군요. 어둠의 정령이니 당연한걸까요?"
그녀는 한쪽 발을 들어 스우의 명치를 콱 짓밟았다. 유령에겐 물리력이 먹히지 않지만, 애초에 그녀가 사용하는 힘은 단순한 물리력을 넘어선 무언가였기에 그에게 고통을 주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커헉!]
"정말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나는군요. 그때 당신과 당신의 쌍둥이 모두 확실하게 끝냈어야 했는데, 후환을 만들어서 이 시대까지 피해를 끼치다니."
[오르카까지, 건드릴 셈입니까!]
"군단장을 살려둬야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하물며 저를 노리고 에레브를 습격했던 이들 중 하나였던 것을.
영체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아 굉장히 위태로운 상태가 되어가고 있는걸 알면서도 스우는 그녀에게 살려달라고 비는 어리석은 짓따위 하지않았다. 그녀는 절대로 자신을 살려줄 마음이 먼지만큼도 없다. 어떻게든, 설령 에레브를 또 조각내서라도 자신을 확실하게 죽일 심산이다.
애원도, 설득도, 회유도 못하는 상대.
그렇다면 내밀 카드는.
[지금 절 죽이면…… 이번 일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영영 모르게 될겁니다만.]
"목숨을 연장하려고 별 개소리를 다 하는군요."
콰직! 불안하게 일렁이던 스우의 영체에 금이 갔다.
[제가 뭐, 심심해서 여기까지 와 이 일을 벌인 줄 압니까아……! 큭!]
"그 간악한 혀로 절 어떻게든 속여보고자 했다면 오산입니다 스우."
내리누르는 발에 힘이 실리며, 아리아는 스우를 땅에 쳐박아 고정시키던 갈고리를 뽑아 창날부분으로 그의 목을 겨누었다.
[농담이 아닙니다! 저들에게 물어보시죠!]
"…… 이놈이 한 말이 사실입니까."
"아아, 예, 예. 아까전에 그가 상사라는 사람에게 지시를 받아서 이번 일을 벌였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이놈 입에서 나온 말이라니, 신뢰할 가치가 없군요."
창날이 천천히 스우의 목에 파고들어가며 영체에 실금이 번졌다.
[그가 메이플 월드의 봉인석들을 탈취해간 장본인입니다! 이번 일을 계획하고 나를 보낸게 그라고요!]
"잠깐, 아까부터 들었는데 '그'라 한다면 이번 일의 주모자가 남성이란 말입니까? 당신의 쌍둥이이자 블랙윙의 수장인 오르카가 아니라?"
[오르카는 그자식에게 속아나고 있다고요!]
꼴같잖게 날아다니는 검따윌 쓰며 위장하고 있지만 세계 최강의 검사인 놈이 오르카를 죽이는데 힘이 들리가 없다. 정체를 숨기기위한 간판이 필요해서 블랙윙 아래에 들어왔을 뿐,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에 필요가 다하면 그는 아무 망설임없이 오르카를 죽일 것이다. 때문에 스우는 더더욱 절박했다.
"아까 힐라를 호위하던 병사들은 인간이 아니었어. 내 눈이 잘못된게 아니었다면 분명 용의 후예란 놈들이였던 것 같은데, 그놈들은 블랙윙 소속이잖아."
아란은 당황했던 기색을 아직도 다 지우지 못한 얼굴로 아리아가 들고있는 할버드를 힐끔힐끔 보며 말했다.
[하! 당신들도 이제쯤 알았을텐데요. 용의 후예란 놈들을 이끄는 사람이 누구인지.]
"설마 소드댄서를 말하는겁니까?"
엔젤릭 버스터에게 맞은 충격파를 털어내고 인간형으로 변신한 테이아가 묻자 스우는 한가득 인상을 썼다.
[소드댄서라…… 웃기지도 않는 호칭이군요. 기왕 가명이나 가칭을 정할거면 좀 더 그럴싸하게 할것이지,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누구인지 알법한 이름을 대다니.]
"가명이란 말은, 본래 이름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까."
[물론이죠. 뭐어─ 따지고보면 그 이름도 이름이라기보단 칭호지만.]
어째 점점 시간을 끌고 있다는 느낌에 아리아는 창날을 스우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땅에 깊숙히 박았다. 스친 부위가 파스스 흩어져 그는 잘게 몸을 떨었다.
"말이 길어지는군요 스우. 본론만 말하세요."
[그는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블랙윙에 들어왔고, 우리와는 다른 어떠한 이유때문에 봉인석이 필요해 그것을 모으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요컨데 그는 블랙윙을 이용하는 사람이지 거기 충성하는 개가 아니란 말이죠.]
개는 고사하고 초특급으로 위험한 맹수다.
"그런걸 알면서도 놈을 간부로 올린거냐 니놈들은."
[나를 빼면 처음엔 다들 본색을 몰랐으니까요. 앞에서는 예스맨마냥 예예거렸고, 뒤에서 챙길거 다 챙겨가는 식이었고, 지금은 상당수가 낌새를 눈치챈것 같지만 감히 덤비질 못하고 있죠.]
조직내 최대 무력집단을 거느리는 양반을, 거기다 그 스스로도 말도안되게 강한데 어떻게 덤벼? 말이 같은 간부지 윙마스터보다 더 높게 쳐지고 있었다. 힘이 있으니까.
루미너스는 샤이닝로드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뭐냐. 소드댄서라는 심기 거슬리는 놈의 정보를 우리에게 넘겨줄테니 대신 그를 처리해달라, 아니면 나를 살려달라 뭐 이런 말을 하려는거냐."
[그럴리가요. 내가 그렇게 멍청한것 같습니까?]
교활하기로 따지면 아카이럼과 함께 투톱을 내달리는 스우와 멍청하다는 단어의 거리는 까마득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정령으로서의 힘을 불완전하게 되찾았다해도, 기본적으로 유령에 불과한 그가 에레브를 이렇게 초토화시킨건 그 비상한 머리가 있어서라는걸 알기에 더더욱.
스우는 아리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 부탁은 간단합니다. 소드댄서에 대한걸 당신들에게 알려줄테니─ 대신 오르카를 살려줘요.]
"…… 긴 헛소리 잘 들었습니다. 이제 죽으세요."
아리아는 차게 식은 눈으로 할버드를 잡고있던 손목을 비틀어 단숨에 목을 자르려 했다.
[원래 이 자리엔 그의 부하인 정령사대신 소드댄서 그가 오기로 했었습니다. 하지만 오지 못했죠. 어째서일것 같습니까?]
"알게뭡니까."
[─그는 검은 마법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툭 내뱉은 말 하나에 점차 경악이 번졌다.
검은, 마법사라고?
"방금 뭐라고 한거냐?!"
"검은 마법사라니, 그놈은 지금 봉인되어 있잖아!!"
[어리석군요. 위대한 그분은 이미 부활했습니다. 설마 당신들이 건 봉인이 영원할거라 생각한건 아니겠죠?]
"그가 부활했다면 왜 아직도 활동을 안한겁니까."
[깨어나신지 얼마 안됬으니까요. 이미 전조는 느끼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몇몇은 신수와 전 군단장인 구와르, 데몬이 이번 청문회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세사람 중 한 명이라도 에레브에 있었다면 스우가 여기까지 일을 벌이는건 불가능했을텐데, 공교롭게도 셋 모두 리프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이변들을 조사하기위해 가버렸다.
그리고 리프레의 상공에 떠있는 시간의 신전에는, 누가 봉인되어 있던가.
[저도 주워들은것에 불과하지만, 위대한 그분께서 소드댄서 그에게 직접 찾아오라고 불렀기에 간거라 하더군요.]
일대의 분위기는 긴장감과 초조감에 파삭파삭 말라붙으며 부서져갔다. 그는 결정타를 꽂아넣었다.
[하나 알려드리자면, 소드댄서 그는 위대한 그분과 무척이나…… 비슷한 사람이에요.]
정말 아이러니할정도로.
더이상 스우의 말을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나인하트는 끓어오르는 감정에 부들부들 떨고있는 아리아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하는게 좋겠습니까 선대 여제님."
"……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죠 스우. 그 소드댄서라는 놈의 정체와 목표를 아는 사람이, 당신 외에 또 있습니까."
스우는 여유롭게 답했다.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됩니다. 아까 전의 정령사는 그의 직속이라 조금 알지도 모르지만 이미 도망쳤으니─]
"아 그럼 됬습니다."
빛나는 잔상이 쉭 지나가며 쨍그랑─! 무언가 산산조각나는 소리가 맑게 울렸다.
시야가, 잘려나갔,
[아……?]
"말했을텐데요 스우."
할버드로 스우의 영체를 세로로 쪼갠 아리아는 느리게 다시 도끼날을 들며 말했다.
"이번만큼은 절대로 당신을 살려보내지 않겠다고요."
단두대처럼 내려쳐진 할버드는 절반 남은 그의 영체를 완전히 산산조각냈다.
"내가 당신들과 회담을 가지며 깨달은 교훈은, 군단장이라는 족속과는 절대로 협상같은걸 해선 안된다는 거였습니다."
아리아는 냉혹한 눈으로 흩어지는 영혼의 파편을 지켜보았다.
***
스우를 미끼로 내던지고 도망친 은월은 계속된 전투로 지친 몸의 신음을 애써 무시하며 다리를 움직였다. 놈은 저라면 뛰어내려도 괜찮을거라고 했지만, 이렇게 만신창이인 상태로 뛰어내려봤자 자살밖에 안된다. 그럴 수 없다. 자신은 반드시 살아돌아가야 한다.
'그놈이 지껄인 소리를 믿을 순 없지만, 그에게 물어봐야해.'
검호 그가 스우에게 이런 참사를 일으키라고 지시했을리 없다.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다. 최근 하는 행동을 보면 조금 불안하기도 하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이딴걸……!
"역시 아직 있었군요."
멀리서 들려오는 나직한 목소리에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던졌으나, 수 채의 나무를 박살내며 날아온 사슬추에 옆구리의 살이 한움큼 뜯겨나갔다. 머릿속이 새하얘질만큼 아찔한 통증에 은월은 헛숨을 삼키며 후두둑 피가 떨어지는 상처부위를 움켜쥐며 반쯤 주저앉았다.
그런 그의 앞에 팬텀의 몸에 빙의한 아리아가 우아하게 착지했다.
"당신의 이름은 모르지만, 당신을 에레브 밖으로 도망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
"…… 스우는 죽었나보군요."
"제가 그를 살려둘거라고 생각합니까."
그럴리가. 은월은 마침내 스우가 죽었다는 사실에 여러모로 속이 복잡해졌다. 아리아 여제가 이제서야 온걸 보면 어떻게든 시간을 끈 모양인데, 빙의 능력을 빼면 무력한 유령상태로 참 잘도 해냈구나 싶었다. 대회의장엔 더이상 그가 빙의할만한 상대가 없었을텐데.
"이름모를 블랙윙 씨. 저희는 당신에게서 반드시 들어야하는 말이 있기에, 당신을 붙잡기로 했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남은게 혀밖에 없었으니까요."
"하긴."
그 혀로 지금까지 시간을 끌다니, 죽어도 군단장은 군단장이군.
하지만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그를 갈아마실 분위기였던 아리아 여제를 여태껏 막았는지 은월은 숨을 헐떡이며 생각해보았다. 곧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만.
"묻겠습니다. 당신은 용의 후예라는 자들을 이끄는 소드댄서란 사람의 수하가 맞습니까."
은월의 표정이 굳었다. 스우가 뭐라고 지껄이며 시간을 끌었는지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렇, 습니다만."
"본래 오늘 이 자리에 당신 대신 그가 올 예정이었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까."
"…… 사실입니다."
"후우! 왜 이런 것들은 사실인지."
한차례 한숨을 내쉰 그녀는 할버드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그 간악한 자가 말했습니다. 검은 마법사가 마침내 부활했고, 당신의 상사라는 소드댄서란 사람은 그를 만나러 갔다고요."
"스우 그 개자식이……!"
"그것 역시 사실인 모양이군요."
머리가 아픈듯 작게 고개를 저은 그녀는 똑바로 은월을 보았다.
"소드댄서의 수하이자 그에 대해 잘 알고있을 당신을 놓칠 수 없습니다. 순순히 항복하세요."
"그가 누군지 스우 그놈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르카를 살려준다면 그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그놈과 협상할 생각따위 없었으니까요."
그럴만도 했다. 과거 아리아 여제는 군단장들과 회담을 가지다 암살당했었으니…… 사실 암살도 아니었다지만 아무튼.
은월은 옷의 일부를 찢어 살이 떨어져나간 옆구리를 감싸 묶었고, 철조의 날을 확인한다음 자세를 잡았다.
"저와 싸우실 생각입니까?"
"되든 안되든 순순히 잡힐 생각은 없습니다."
상대가 동료의 몸을 빌린 선대 여제라 할지라도.
아리아는 그런 은월은 고요한 눈으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왜 당신같은 자가 블랙윙이라는 집단에 있는지 모르겠군요. 당신은 스우와 같은 군단장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데 말이죠."
"저에 대해 뭔가 아시는거라도 있습니까."
혹시 봉인석에 있던 아리아는 제 존재의 시간이 소멸한 여파에서 벗어난게 아닐까 생각하며 물었으나, 그녀는 고개를 저어보였다.
"오늘 처음 당신을 보지만 저는 메이플 월드의 황제였던 몸, 사람보는 눈은 결코 낮지않다고 자부합니다. 당신은 그들처럼 본성이 악한 사람이 아니에요. 아까 스우를 제게 던지고 도망쳤던 모습도 그렇고, 왜 블랙윙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항복하신다면 인도적인 대우를 약속해드리겠습니다."
선대 여제가 직접 하는 말이다. 아마 저 말은 사실이겠지. 하지만 은월은 눈을 꾹 감았다가 뜨며 대답했다.
"거절하겠습니다."
"어째서죠?"
"저는 반드시 돌아가서 그를 도와야 하니까요."
정면으로 그의 자색 눈을 마주본 아리아는 더이상 그를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힘으로 당신을 제압하도록 하죠."
늘어져있던 할버드가 휘둘러지며 난폭한 참격의 폭풍이 일었다.
은월은 그녀의 공격을 피하는데 모든 힘을 다해야 했다. 안그래도 지칠대로 지친 상태. 아까전보단 약한 위력이라고는 하나 지금의 몸상태로는 하나라도 맞았다간 치명상을 입을것이며, 그녀에게 제압당했다간 설령 험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연합이 블랙윙의 정보를 캐내기위한 포로신세가 될 것이 자명했다.
터무니없는 힘의 상대와 싸우고 있음에도 은월은 놀랍도록 침착한 상태였다. 가장 큰 문제였던 스우가 아리아 여제의 손에 스러진 이유도 있었지만, 더이상 아리아 여제의 불가사이한 거력에 당황했다간 죽도밥도 못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선대 여제님이 이런식으로 싸우는걸 팬텀이 알았다간 굉장한 반응을 보이겠군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입을 다물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도 이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고싶지 않으니까요."
그는 아리아가 여기 오기전에 사람들에게 살포시 웃으며 팬텀한테만은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으며, 웃음과 함께 반짝이는 할버드에 기사단장이고 영웅이고 모두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어째 자연스레 상상이 되었다.
키리리릭─! 금속울음을 내며 독사처럼 쏘아진 사슬추를 고개를 꺾어 피한 은월은 앞서 머리카락이 많이 잘려나간것에 안도했다. 적어도 제 긴 머리때문에 시야가 가려지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아까와는 달리 냉정해진 눈으로 살펴본 아리아 여제는 강하긴 하지만 헛점이 많은 이였다.
창술은 의외로 상급. 과거를 기준으로 해도 정규군 이상가는 실력이었으나 힘의 출력이 너무 높아 되려 휘둘리는 감이 없잖아있다. 할버드로 공격할때 미묘하게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도 있었다.
'본인의 몸이 아니라서 그런가.'
현재 그녀는 생전의 몸이 아닌 팬텀의 몸을 빌린 상태. 육체가 다름에서 오는 괴리감은 어쩔 수 없으리라.
하지만 그런 헛점들을 알아도 소용없었다. 만전의 상태였다면 모를까, 지금 그는 한 번 공격을 피할때마다 이를 악물어야 할만큼 지쳐있었다.
'저런걸 무슨 방법으로 죽인거지 프라이쉬츠 자식은?'
과거 그녀를 죽인 장본인이라는 너절한 붉은 코트의 군단장을 떠올렸다. 당시엔 정체불명의 무기 - 현 시대에선 쌍권총이라 불리는 것을 주력으로 쓰며 원거리 섬멸을 즐기던 그놈이라 해도, 눈앞의 존재를 이기는건 제 눈으로 봐도 불가능해 보였다.
공격이 닿는건 고사하고 저 할버드 안쪽으로 접근할 방법조차 없는데 대체 어떻게─
"윽!"
참격을 피하기위해 몸을 튼 순간 좀 전에 크게 다친 옆구리에서 올라온 통증에 은월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앞서 상처를 묶어두었던 천은 피에 흠뻑 젖어 매듭이 풀리기 직전이었다.
갑자기 그가 쓰러지자 아리아는 당황하며 공세를 멈췄다.
"괘, 괜찮으세요? 잠깐만요, 금방 치료해드리겠습니다."
더이상 전투를 이어가는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그녀는 할버드를 내리며 은월에게 다가갔다. 그가 모르는사이 흩뿌려진 피가 땅에 점점히 찍혀있었다.
"미안해요. 치명상은 입히고싶지 않았는데……."
은월은 가물가물한 시야로 동료의 얼굴로 슬픈 표정을 짓고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자신을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 말을 배신하는 꼴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선대 여제님."
"예?"
약화의 정령이 그녀의 팔다리에 붙었다. 이어서 속박의 정령이 땅에 깃들어 그녀를 단단히 붙잡았고, 그의 두 주먹에는 스우에게 쓰기위해 아껴두었던 지옥불을 재현한 주홍빛의 화염이 깃들며 그녀에게 작렬했다.
폭음과 함께 불기둥이 치솟았다.
***
메이플 아일랜드.
몇 분 전까지 평화로운 시골 섬에 불과했던 이곳은 고작 두 사람이 싸운 여파만으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섬 자체는 마치 케이크를 자른 것처럼 반토막 나버렸고, 그나마 인가가 집중되어 있는 반쪽은 무사했지만 다른 반쪽은 불길에 타버리고, 바닷물에 부분적으로 침수된데다, 군데군데 쥐파먹은 치즈마냥 으깨졌다.
그 부서진 섬의 파편 중 하나에서 검호는 전신에 온갖 상처를 입어 피가 흐르고 옷은 누더기가 다 된 상태로 한숨을 내쉬며 풀썩 주저앉았다.
"하…… 겨우 끝났네."
반은 어떻게든 지켰는데, 나머지 반이 끝장났다. 분신이라고는 하나 검은 마법사와 싸운 여파가 고작 이정도라는 것은 분명 다행이지만 - 과거에 싸웠을때 빅토리아 반도가 절단났다는 걸 떠올리면 - 그렇다고 지금 이게 나은 상태라는 건 아니다.
이걸 어떻게 수복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전투가 끝남과 동시에 밀어닥친 격한 통증에 묻혀버렸다.
상대가 검은 마법사라서 그는 정말로 오랜만에 전심전력으로 싸워야했고, 양팔은 많이 양호해졌어도 여전히 덜 나은 상태였기에 상당한 무리를 해야했다. 결과적으로 검은 마법사의 분신을 없앨 수는 있었지만 이제서야 쏟아진 전투내내 참았던 부상들의 고통과 기술의 반동에 그는 앓는 소리를 내며 쓰러지듯이 드러누웠다.
주민들은 아스카가 진작에 다 대피시켜서 무사하고, 섬은 생명의 오버시어가 복구해주기로 한 영역에 포함되니 괜찮겠지. 천천히 녹빛이 모여들며 그의 상처는 아물어갔고,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걸레짝이 되었던 옷도 사락사락 복원되어갔다.
"에레브쪽은 잘 되었을까 몰라……."
옷이 다 고쳐지지 않아서일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꽤 차가웠다.
========== 작품 후기 ==========
그ㅋ럴ㅋ리ㅋ가ㅋ 이제 검호쪽 혼파망 시작!
분혼격참:화염의 정령을 강령시켜, 전방에 있는 적들을 공격한다. 공격에 당한 적은 '영혼이 분리된다'.
이전화부터 검호입니DA의 전체 코멘트 수가 1만을 넘었습니다... 진짜로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너무 놀라서 스샷까지 찍었어요.
이 글을 보고 사랑해주시는 독자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루엔시르온 - 솔직히 처음보면 저딴거라는 말이 나올수밖에...
@Arkmariel - 상상이상의 팬아트였습니다. 아무튼 굿굿.
@네넹 - 은월은 검호같은 트립퍼를 제외한 메이플 월드 주민중 톱급으로 불행합니다.
@산들바람eh - 눈물대신 피가 흩뿌려졌습니다.
@노란우산s - 봉인석은 완전히 소모되었다기보단 그것이 만들어질때 매개물이 되었던 아리아가 봉인석의 힘을 일부 썼다는 느낌입니다. 에레브의 봉인석 자체는 아직 남아있음.
@가면광대 - 여제님이 한건 올렸습니다.
@류동지 - 뭐, 뭔가 계속 보고싶은 내용이다.
@sjdjabqh - 어째 인게임과는 달리 이 글에서 아리아의 상징은 스카이아가 아니라 할버드가 됬음.
@ㅇㅇ군 - 가끔 정주행 하신다고 코멘 남기시는 분들보면 이게 그렇게 재밌는건가 의문이 듭니다. 초반부분은 보충할게 한둘이 아닌데.
@대어의예감 - 다시 읽어보세요. 아리아가 팬텀 치료했습니다.
@브라디온 - 나중엔 행복해질거에요. 전 해피엔딩을 지지하니까요.
@socns - 테크닉과 전투경험은 아란이 더 위입니다.
@책벌레씨 - 모두에게 기억된 할버드.
@릿다르크 - 에레브 생태계 대파괴.
@문다이에 - 은월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랑이와 프리드인데 둘다 지금 없는고로...
@앙스럽네 - 그리고 또 어찌어찌 묻을거라 합니다.
@루서스 - 상대가 프라이쉬츠만 아니었으면 진짜 발랐을텐데.
@라네루 - 반토막으로 끝날리가.
@Linener - 나~~중에.
@큐냥이 - 착각아닙니다(웃음)
@ReFrante - 기어코 입을 놀린 대가를 치뤘습니다.
@카한Kahan - 실제로 보면 진짜 충격과 공포일듯.
@Ratios - 그래서 할버드에 입의 반이 날아갔죠.
@레시코 - 이데아든 누구든 저런 변수는 예상 못합니다.
@익재공 - 실제 이 글에서 근력 스텟만 놓고보면 아리아는 검은 마법사를 능가합니다. 진짜로.
@칼크래프트 - 그리고 스우 끝!
@신월야 - 아리아뿐만 아니라 파픈급의 서포터가 하나나 둘정도 붙어야 가능합니다. 아무튼 진짜 아리아가 있으면 가능하다는게 함정.
@x흑란x - 이매진 브레이커!
@신령각 - 멋지지 않나요?
@SourcesMoon - 검호쪽 카오스는 이제 시작이라는거.
@Legendssj2 - 할버드의 화신이죠! 폴암은 아란한테 줍시다.
@레볼레이션 - 예? 윙마스터가 불쌍하다뇨?
@찬양천사 - 그리고 차원의 도서관 크리.
@케르닉 - 죄다 유체이탈 간접체험 함.
@적현월 - 죽이기로 한 대상이 스우에 한정되서 은월은 무사했지만 그 결과...
@Blake117 - 할버드가 더 멋져요!
@오하사 - 세기말의 여제님.
@sadgfdfh - 거짓말처럼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고 함.
@kain brunsterd - 황제특권!
@Sisre - 은월은 영고라인인걸요.
@LastㅡEmbryo - 스우의 눈에 비친 아리아일겁니다 아마. 그리고 오버시어를 제외한 이들중에 순수 근력은 아리아가 제일 높은건 맞아요. 륀느 흡수한 검마보다 더.
@갓타치 - 에레브 일은 이렇게 끝났지만 다른쪽은...
@육합 - 저런 능력이 있어서 대대로 메이플 월드의 황제가 된게 아닐까요?
@울트맨 - 신수의 힘을 넘어선 봉인석 빠와!
@요녀석이 - 오르카는 조만간 처리될겁니다. 꽤 비참하게.
@cosy - 친히 쪼개고 밟아주심.
@에누마엘리시 - 아리아:넌 이미 죽어있다.
@Eluines - 이어서 검호&노바족의 대혼란!
@Yoontlemin - 매지컬은 맞는데 얀데레는... 음... 아직은 아님.
@DIO루가 - 부상만 아니었으면 진짜 다 썰어버릴 수 있었죠.
@원나중독 - 그리고 진짜 하늘을 벤 할버드.
@wlgns414 - 제가 그쪽 계통 무기를 좋아해서.
@라그실 - 이제부터 또 암울해질 예정입니다.
@rkdgurwns - 아리아가 스우를 살려둘리 없죠.
@건전한독자 - 내가 대체 뭘 본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