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160화 (160/208)

<--  -->  검호side.

대피시킨 메이플 아일랜드의 주민들을 무사한 반쪽 섬에 보내며 반드시 복원시켜 주겠다고 사과한뒤 루타비스로 돌아온 순간, 갑자기 나한테 몰려든 이데아를 비롯한 이들이 한꺼번에 쏟아내는 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팬텀이 중상을─ 시그너스 여제■ 빙의당해─ 봉■석을 놓■─

스■가 이쪽의 정■를 흘■■─

은월■ 에■브에■ 도망■■ 못■─

■■■■■─

말소리들이 엉키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이 되어버렸고, 그나마 알아들은 사실들만으로 머릿속의 무언가가 끊어지기 직전이 되어 나는 잠시 한 손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 이데아."

"예."

"아까 말한 것들을 정리해서 보고서로 만들어라. 나는 잠깐 갈곳이 있다."

"또 어딜 가시겠다는겁니까?"

나는 눈동자만 굴려 그녀를 보았다.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물었던 그녀는 어째서인지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흠칫 몸을 떨며 뒷걸음질 쳤다.

"에델슈타인에, 당장 처리해야할게 생겼다."

"아…… 알겠, 습니다."

"금방 다녀오지."

몸을 돌리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주위에 모여들었던 노바족들은 희게 질린 표정으로 내가 가는 길을 쫙 열었고, 나는 그대로 디멘션 게이트를 써서 단번에 에델슈타인 기지에 도착했다.

기지를 내려가는 내내 초반에 나를 보고는 겁먹은 얼굴로 얼어붙었던 잡졸 몇몇을 제외하면 어떤 놈들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어째서인가하는 의문은 들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의문조차 가질 수 없을만큼, 지금 내 머릿속엔 딱 한가지 생각과 감정만이 터지기 일보직전처럼 끓어오르고 있었으니까.

얼마 않있어 광산의 가장 깊고 은밀한 곳에 다다랐을때, 고막을 괴롭히는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가 갱도를 타고 올라왔다.

"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겔리메르! 왜 내 허락없이 스우를 여기로 옮긴거냐고!"

"그, 그게…… 약간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오르카 님."

"딴소리말고 어서 설명이나 해! 스우는 오르카 방 옆에 두라고 했잖아! 스우는 오르카의 쌍둥이야! 오르카랑 항상 같이 있어야 한다고! 니 마음대로 옮겨도 된다고 한 적 없어!"

"소드댄서 님이 지시하셨거든요."

"뭐라고?"

저 망할 목소리. 제대로 닫히지 않은 문을 거칠게 열어제낀 순간 두 사람이 나를 보며 놀랐다.

"마, 마침 잘 왔네 소드댄서. 자 당장 설명해! 왜 스우를 여기다 옮긴─"

"입닥쳐."

콰앙!! 나는 즉시 그녀의 목을 틀어쥐어 벽에 쳐박았다. 벽이 좀 부서졌지만 그건 알바 아니고.

"커, 흐……!"

"니년의 쌍둥이때문에 일이 완전히 망했어."

"뭐…… 어? 스, 우를, 스우가…… 무슨."

"에레브의 봉인석 회수를 실패했다는 말인가."

"그래."

처참할정도로, 완전히.

간신히 얻은 에레브 잠입의 기회가 박살난건 물론, 스우가 시그너스에게 빙의하고 팬텀에게 중상을 입히는 희대의 짓거리를 벌여 연합이 눈을 뒤집으며 블랙윙을 밀어버리기 위해 전력을 다할게 눈앞에 선했다. 현재 딱 하나남은 봉인석의 보안이 급상승할건 말하면 입아픈 사실이고.

나는 오르카의 목을 조르는 손에 힘을 더 주며 고개를 돌려 방 한쪽에 있는 스우의 몸을 보았다.

마음같아선 이년보다 저걸 흔적도 안남을때까지 박살내고 싶건만.

"스우의 제네로이드 개조는 언제 끝나지."

"기본적인건 일단 다 끝났다네. 몇 가지가 좀 부족하지만."

"개조……? 너어, 니놈드을……! 무슨 말을, 하는거야!"

순간 그녀에게서 보라색 스파크가 튀었지만 가볍게 고개를 틀어 피해냈다. 위력도 보잘것 없고, 초라한 발악이다.

다시 고개를 돌려 오르카를 보았는데 어째선지 그녀는 경악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너, 뭐야……? 왜, 왜 니가……!"

왜 저런 얼굴이지? 했다가 좀 전의 스파크에 조금 그을린 모자가 발치에 떨어져있는게 보였다. 아까 공격을 피할때 벗겨져버린 모양이다.

그 말인즉.

더이상 지체할 시간도 없어졌다.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을텐데."

"뭣때문에, 왜, 니놈이……."

점점 꺼져가는 소리를 내는 오르카를 벽에 깊숙히 박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니년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겠지."

아마 내 말은 듣지 못했을것이다. 내 손아귀에 숨이 막혀 부들부들 떨던 이내 오르카의 몸이 축 처졌으니까.

"그래서, 부족한게 뭐지 겔리메르."

"에너지일세. 이 광산의 루 광석의 채굴량도 한계에 달해서, 이 이상 에너지를 구하는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거든. 광석 이터들을 복제할 시도도 해봤지만 광석이 자라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서 말이야."

이어서 겔리메르는 봉인석을 동력원으로 쓸까 했지만 제 허락없이, 불안정한 매커니즘으로 작동되는 그것을 쓸 수 없었다고 첨언했다.

"그럼 이걸 써라."

나는 기절한 오르카를 겔리메르의 앞에 내팽겨쳤다. 어느새 그녀의 목엔 먹물에 찍힌듯 새카만 손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그렇게 쌍둥이를 살리고 싶어했으니, '자기 힘으로' 살리면 만족하겠지."

"에너지를 모두 뽑아내고 죽여도 된다는 말인가."

"…… 아니. 최소한의 목숨만은 붙여놔."

"어째선가?"

오르카의 머리채를 잡아채 높이 들어올린채로 곤충표본 보듯이 이리저리 살피던 겔리메르가 물었다.

"그년은 일을 이지경으로 만든 놈의 쌍둥이야. 최소한 한 번은 연합의 이목을 끌 미끼가 될 수 있겠지. 곧 죽어도 군단장이란 간판이 있으니까."

"흐음, 알─겠네."

겔리메르는 내 지시에 몹시 기쁜듯 찢어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콧노래를 부르며 다른 통로로 오르카를 질질 끌고갔다.

스우의 제네로이드 개조가 끝나는대로 저 영감이랑 스우의 몸, 건조중인 블랙헤븐까지 모두 정리해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아까 내가 부순듯한 문을 뒤로하고 방에서 나오자, 그리 멀지않은 곳에 한 인영이 주저앉아있는게 보였다.

"르티에."

"아, 저, 그게…… 돌아, 오셨다고 들어, 보고할게 있, 어서."

언제부터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뚝뚝 눈물을 흘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흡! 숨을 멈추며 주춤주춤 몸을 빼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초식동물의 그것이라, 나는 그녀에게 일어나라고 손을 내밀지도 못했다. 그런 마음조차 어째선지 일지 않았다.

"보고할게 뭐냐."

"다, 다른 군단장이…… 협력, 협력 요청을."

"놀고있는 간부들 시켜. 어떤 일들인지 전부 적어서 내 책상위에 올려두고."

무슨 일의 협력인지 모르겠지만 이참에 열오른 연합원들에게 다 당해버리지. 내가 일일이 다 정리하기 귀찮았는데.

"아, 알겠, 알겠습니다!"

그녀는 안쓰러울정도로 휘청이며 황급히 일어나 도망치듯이, 아니 도망쳤다.

갱도를 올라가는 내내 나는 사람 한 명 보지 못했다. 어디선가 숨을 죽인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느껴졌지만 아무도 가까이오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마치 이 드넓은 기지에 나 혼자 있는것 같았다.

***

은월side.

몸이 무겁다. 마치 삼일밤낮 쉬지않고 전투를 한 것처럼 몸 구석구석에 피로가 찌들어있어 눈을 뜨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 여긴."

주위를 살피기위해 몸을 일으키려한 순간 철그럭, 묵직한 쇳소리가 들렸다.

"이제 일어났어요?"

"너는?"

낭랑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구불구불한 붉은 머리를 묶은 불꽃을 형상화한듯한 금색 자수가 놓인 빨간 로브차림의 소녀가 막 책에서 눈을 떼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불꽃의 기사단장 오즈.

어째서 그녀가, 아니 왜 나는 여기 있는거지? 불꽃의 기사단장은 기대어둔 지팡이를 들어 통신 마법으로 어딘가에 연결하며 말했다.

"네, 나인하트. 그가 깨어났어요."

[알겠습니다. 곧 그리로 갈테니 잘 감시하며 기다리십시오.]

"알았어요."

뭐가 어떻게 된거지? 그때 나는 분명 선대 여제님의 빙의를 풀고 에레브에서 도망치기 위해 움직였…….

"아."

어찌어찌 일어났지만 몇 걸음 못가서 다시 쓰러져버렸지. 연이은 전투로 극심하게 체력이 소모되었는데다 너무 피를 많이 흘려버렸기 때문이다.

"어디 아픈곳이 있으세요?"

"전신이 다 쑤신다만."

"그건 근육통일걸요. 그보다 상처는 어떠세요?"

손을 뻗어 살이 뜯겨나갔던 옆구리를 확인해보니 두툼하게 감긴 흰 붕대가 만져졌다. 그 아래로 통증이 느껴졌지만 심하진 않아 포션과 마법을 병행해 치료시켰으리라 짐작했다. 그 외에 전투에서 자잘하게 입은 상처들도 붕대가 감겨있거나 흐릿한 흉터를 남기고 아물어있었다.

"왜 날 치료한거지?"

"그, 당연하잖아요! 저희가 발견했을때 당신은 영웅 팬텀님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쓰러져 엄청 피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는데."

"난 블랙윙 소속…… 이다만."

실제 사정이 어떻든 팬텀을 공격했던 나를 주워다 이렇게까지 치료하다니, 역시 정보를 캐기 위해서일까. 불꽃의 기사단장 소녀는 온통 빨간색이 가득한 외양에서 유일하게 말간 연둣빛인 눈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원칙적으로 블랙윙인 당신을 살리는건 말도 안되지만 어째선지 당신은 그때 그 유령 군단장을 막으려고 했었고, 또 그 유령 군단장이 선대 여제님의 손에 처리되는걸 도왔으니까요."

"그런가."

이유는 모르지만 자신들에게 도움을 줬으니까, 인가.

"나중에 나인하트가 오면 당신한테 이것저것 물어볼테니 얌전히 대답하세요."

"내가 순순히 대답할거라고 생각하나."

"해야할걸요. 당신들때문에 에레브가 완전히 뒤집혀져서, 심문에 다소 과격한 수단이 쓰일지도 모르니까요."

"고문이라도 할 생각인가."

"필요하다면요."

어울리지않게 딱딱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소녀의 모습에 쓴웃음이 나왔다. 이것이 그 행위들을 한 대가라고 한다면 피할 수 없지 않은가.

"어떤 것들을 할거지? 손발톱을 뽑거나 마디마디를 다질건가?"

"예, 예?"

"상처를 치료시킨걸 보면 소금은 안뿌릴것 같고…… 아니지, 다시 상처를 내고 치료시키는걸 반복할건가? 그건 좀 견디기 힘들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하는거에요?!"

굳은 표정이 무너지며 그녀는 갑자기 언성을 높혔다. 왜 저러는거지.

"아까 날 고문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당연히 팔다리 두어개는 자를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잔인한 행위는 하지 않아요!"

"그것조차 하지 않을거면 대체 뭘로 날 고문할 계획이였지?"

"으으…… 그건, 그러니까."

무어라 말을 만들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지금 이 시대가 8백년 전과는 달리 몹시 평화롭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요 근래의 군단장 준동이 아마 저들이 겪은 가장 큰 사건일테고, 고문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실제로는 하는 방법도 모르는게 아닐까.

아니면 알아도 직접 할만한 - 사람에게 고의로 고통을 주고 원하는 정보를 쥐어짜낼 그런 어두운 행위 할 수 있는 심성이 아니거나. 불의 마법사인 그녀가 정말 작정하고 내게 고문을 할 생각이었다면 더 볼것도 없이 내 몸을 지진다는 편한 선택지를 생각해냈을테니.

"됐다. 그보다 몇 가지 궁금한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

"예? 어, 음─ 말할 수 없는 것들만 아니면 되요."

아무래도 기사단장이란 이들은 그 여제와 마찬가지로 올곧고 선한 심성을 가진 모양이다. 그런 이들만 뽑았던 것일테지.

"팬텀과 시그너스 여제는 어떻게 됬지?"

"…… 왜 하필 묻는게 그런거에요?"

"대답할 수 없는건가."

"해줄 수는 있어요. 여제님도 영웅님도 모두 무사하니까."

다행이군. 가슴 한켠을 누르던 짐이 내려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소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블랙윙인 당신이 그분들이 무사하다는 말에 안심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좋은 상황도 아니거든요?"

"무슨 말이지?"

"여제님은 그 유령 군단장에게 빙의당한 충격으로 지금 절대안정을 취하고 계시고, 선대 여제님에게 몸을 빌려드렸던 팬텀님은 며칠째 기절한 상태에서 못 일어나고 계시니까요."

"아……."

몸만 무사하다는 뜻이었나.

"미안, 하다."

"왜 당신이 사과하는거에요?"

"내가 스우를 제대로 막지 못했으니까."

일이 그 지경까지 치달아버린 것에는 내 잘못도 분명 있었다. 그때 스우에게 속아 팬텀을 찌르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면 이어서 도미노처럼 터진 사건들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심지어 도망치기위해 이 악물고 동료의 몸을 빌린 선대 여제님을 공격하기까지 했는데, 결국 잡혀서 여기있으니 여러모로 속이 쓰렸다.

"그렇게 사과하면 우리는 뭐가 되요? 바보취급하는거에요?"

"정말 미안하다."

"그러니까 사과하지 말라구요! 블랙윙 멤버에게 여제님을 지키지 못했다고 사과받다니, 농담하는 걸로 보이지도 않아서 더 기분나빠요! 애초에 왜 적인 당신이……!"

그녀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씩씩거리며 쏘아붙혔다. 감정이 꽤나 격양됬는지 그녀의 주위로 아지랑이가 일어났고, 훅 끼치는 열기에 나는 창살에서 좀 떨어졌다. 여제를 지키는건 본래 그녀를 비롯한 기사단장의 일. 그것을 수행하지 못하고 되려 적인 내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를 받는 지금의 상황은 무척 자존심이 상하는 굴욕적인 일이겠지.

몇 분 후에야 좀 진정한 그녀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마력을 갈무리했다.

"후우…… 아무튼 부탁이니까, 나중에 나인하트가 묻는 것에 얌전히 대답이나 하세요."

"그건 나인하트라는 이가 무엇을 묻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돼요?! 당신은 그 잘난 정령도 봉인당한채 감옥에 갇힌 신세라구요!"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거지?"

이곳이 감옥이며 지금 팔다리에 온갖 구속구가 채워져 있는건 일어나면서부터 알았다. 에레브 사람들이 뇌가 없지않은 이상 정령을 봉했을거라고 일찍히 예상했고, 이데아에게서 전해들은 나인하트라는 책사의 성격이 사실이라면 눈앞의 기사단장과는 달리 정말 안되면 손을 쓸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여기 붙잡혔다는 사실을 전해들었을 검호가, 가만히 있을리도 없다.

"무슨 배짱으로 그런 말을─"

"바깥까지 소리가 다 들리더군요 오즈. 그 남자가 뭐라고 했습니까."

"나, 나인하트!"

위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며 발소리들이 다가왔다. 한 명이 아니다.

"혹시 순간적인 화를 못 참아서 그를 공격한건 아니겠죠?"

"아니에요!"

"열을 품은 마력을 방출하긴 했지만 다치진 않았다."

"…… 제가 당신에게 맡긴 일은 감시지 위협이 아니었을텐데요 오즈."

"윽! 자, 잘못했어요!"

얼음색 머리카락을 내려묶은 외알안경을 쓴 지적인 인상의 남성, 에레브의 책사 나인하트가 두 인원 - 이 아니라 한 사람과 한 드래곤을 대동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니가 왜……?"

"오랜만이네요 블랙윙의 간수 씨."

다소 얼굴이 어두운 에반이 꾸벅 고개숙이며 인사했다.

"당신을 보더니 에델슈타인 기지에서 만났던 사람이라고 말해서 데려왔습니다."

[그때랑은 상황이 반대가 됐네.]

어린 오닉스 드래곤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 그러게 말이다."

근래에 들어서 무슨 마가 낀게 분명했다.

"오즈. 당신은 밖에 나가있으세요."

"알겠습니다. 조심하세요 나인하트."

"걱정마시길."

그의 지시에 불꽃의 기사단장은 밖으로 나갔고, 대신 에레브의 책사가 의자를 당겨 이쪽을 향해 앉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말하는게 예의지만, 당신들이 거하게 벌여준 일들 덕에 전혀 반갑지가 않군요."

미안하다고 말하려 했으나 앞서 불꽃의 기사단장이 내보였던 반응이 떠올라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일단 통성명부터 하죠. 제 이름은 나인하트, 에레브의 책사를 맡고 있습니다."

"…… 은월이다."

[어째 촌스러운 이름이네 마스터.]

"그런 말 하지마 미르."

저 오닉스 드래곤은 예나 지금이나 독설을 입에 달고 사는군.

"좋습니다 은월 씨. 먼저 첫 번째 질문을 하겠습니다. 군단장 스우가 말하길, 당신은 블랙윙 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이끌고있는 소드댄서의 직속 부하라는데 사실입니까?"

"대충은 그렇다."

일단 스우 그자식이 떠들어댄 것들이 있으니 무조건 입을 다무는건 소용없다.

"이번 일을 벌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미 잘 알고있지 않나. 에레브의 봉인석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회수~? 강탈이겠지.]

굳이 미르의 말을 정정하지 않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

"봉인석을 회수하기 위해─라 보기엔 너무 요란했다는 생각 안듭니까?"

"그 부분에 대해선 면목없다. 내가 제때 스우를 막지못해 일이 그 지경까지 커진거였으니."

"블랙윙 멤버인 당신이 군단장 스우를 막아야 했다는 말은, 당신들 소드댄서 세력이 윙마스터 오르카와 대립하거나 이용중이라는 스우의 말이 어느정도 사실이란 말이군요."

"……."

책사라는 것들은 왜이리 하나같이 머리회전이 빠른지. 그러니까 책사를 하고 있는거겠다만.

"그 침묵은 긍정으로 봐도 됩니까?"

"마음대로 해라."

강한 부정은 곧 긍정이라는 말이 언제나 사실은 아니지만, 이 상황에서 그러면 저자에게 확신을 심어주기밖에 않되겠지.

"스우는 검은 마법사가 부활해 당신의 상사인 소드댄서는 그를 만나러 갔다고 했습니다. 믿기 힘들었지만 현재 리프레의 용족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매우 흉폭해진 상태고, 연이은 이상현상들에 신수님과 전 군단장들이 그곳에 조사를 하러 청문회 당시 자리를 비우기까지 했죠."

만약 전 군단장중 한 명이 청문회때 있었다면 스우든 힐라든 막을 수 있었을텐데 하필이면 둘 다 자리를 비워가지고…… 아니, 둘 다 자리를 비워서 스우에게 빙의된 팬텀을 위험을 감수해서까지 보냈던거였지.

"그리고 이쯤되니 의문이 들더군요. 당신들, 더 정확히는 당신들의 수장인 소드댄서라는 남자가 대체 누구고, 어떤 목적을 가졌기에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가─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보며 남자는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처음엔 당연히 용의 후예 중 한 명일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군단장 스우는 굳이 그의 '정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죠. 그 말인 즉, 소드댄서는 단순히 용의 후예를 이끄는 이가 아니라 본모습이 알려지면 어떤 파장이 일어날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욕지꺼리를 억눌렀다. 말재간이 없는 나로서는 어설픈 거짓말을 하는것보단 그냥 무표정을 유지하고 최대한 침묵하는게 최선이다.

"여태껏 역사속에서 모습을 드러낸적이 없는 용의 후예중에 그런 명성을 가진 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건 힘들지만, 이번에 포션 납품업체를 만들어 돈을 벌던것과 마찬가지로 마법을 써 종족 자체를 속였을 가능성도 있겠죠."

……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는건가. 그나마 다행이군.

"그 남자는 봉인석이 필요해서 블랙윙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고 스우가 말했습니다. 군단장의 말이라 다 믿을 순 없지만, 협상을 위해 빼어든 카드인만큼 어느정도 진실이 포함되어 있었겠죠."

망할 자식. 죽어서도 발목을 붙들어매다니.

"현재 메이플 월드에 남아있는 봉인석은 이곳 에레브의 것을 제외하면 행방불명─ 당신들이 모두 가져갔겠죠. 그나마 오르비스의 봉인석은 영웅 중 한 분이 검호님께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받아갔다고 미네르바 여신께서 말씀하셨지만, 그분의 행적은 아직까지 묘연하니 사실상 에레브의 봉인석이 연합에 남은 유일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그 검호 덕에 블랙윙이 제일 먼저 손에 넣게된 봉인석이 오르비스의 것이라고 말하진 않았다.

"예전부터 준비했을거라 가정하더라도 빅토리아 아일랜드와 에레브의 봉인석을 강탈하기 위해 일을 벌인 시기를 생각하면 당신들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것은 꽤 최근, 아닙니까?"

"맞다."

"추측컨데 확신할 수 있는 정보와 준비를 모두 갖춘 뒤 대비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몰아치듯이 한꺼번에 강탈을 시작, 가장 어려운 에레브의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것이 마지막으로 남았다…… 로 판단되는군요."

이데아가 생각나는 통찰력이다.

"준비 기간이 길었다 하더라도, 군단장들의 역사 조작속에 의해 현 시대 정보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봉인석들의 위치를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알아냈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어서 꼭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건 물을 필요가 없어져버렸습니다."

"뭐?"

"당신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알아버렸거든요."

그는 옷안에서 어떤 물건을 꺼내어 보였다.

아.

저것이 왜.

"영웅중 한 명이자 그들의 리더였던 드래곤 마스터 프리드 - 의 일기장이라니, 이런 귀한 물건을 당신들이 대체 어떻게 입수한건지."

[거기에 봉인석의 위치같은게 쓰여 있었어?]

"예에. 거의 다 적혀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프리드 본인이 봉인석을 만든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었으니까요."

"어떻게 이걸 손에 넣은거에요 은월 씨? 거기다 당신이 왜 이걸 가지고 있─"

"…… 내놔."

그에게 받은 이후로 항상 가지고 다니던 물건이다. 마음에 들지않는 이 제복에 굳이 마법적 조치를 취한것도 저것을 품에 넣기 위해서였다.

가장 소중한 친우가, 모두에게 잊혀진 나의 존재를 알아주었다는 증거를.

"당장 내놓으란 말이야─!!"

그에게 달려들어 일기장을 빼앗으려 했으나 크게 창살에 부딪혀 더 갈 수 없었다. 이까짓거, 그냥 박살내버리겠어. 거치적거리는 창살을 부수기 위해 손에 힘을 준 순간.

"이거 생각보다 대단하신 분이군요."

화륵! 창살에 불이 붙었다. 본능적으로 손을 떼고 몸을 뒤로 빼내자 불꽃을 휘감은 창살 너머로 그 책사가 인상을 쓰고 있는게 보였다.

"특수재질인데 구속구를 찬 상태로 우그러뜨리다니…… 단순한 정령사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저그런 정령사였으면 그 무지막지한 도끼창을 든 여제님을 어떻게 혼자서 쓰러뜨렸겠어?]

"맞는 말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미르. 블랙윙이라는 이름답지않게 꽤 조용해서 제가 착각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가려는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안돼. 놓칠 수 없어. 저걸 저들에게 빼앗길 수 없어.

끼이이익─

"당장, 내놔……!"

"무, 무슨 짓을 하는겁니까?!"

"중요한, 물건이야…… 크윽! 무척 소중한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잠깐, 잠깐만 몸이 익고있다고 당신! 옷에 불붙고 있는거 안보여?!]

말하지않아도 잘 알고 있다. 손목에 구속구가 채워진 팔은 손 이상으로 창살밖에 나가지 못해 온몸에 체중을 실어서 창살을 구부러뜨리고 있었고, 당연하지만 불붙은 창살에 닿고있는 어깨와 허리등은 실시간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통증보다, 저걸 되찾는게 더 중요해.

"제발, 돌려줘……!"

"…… 그건 안됩니다."

냉정한 대답과 함께 뼛속까지 얼어붙을만큼 차가운 눈바람이 정면에서 불어닥쳤다. 다리에 힘을 주었지만 바닥에 깔린 빙판에 속절없이 뒤로 밀려나 등이 벽에 닿았다.

"사람을 보내 화상은 모두 치료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얌전히 있어주십시오."

"니놈……."

"저희는 당신에게 포로로서의 예우를 다할겁니다. 그러니 당신도 상황파악을 하시죠."

당신은 이번 일을 벌인 이들 중 한 명이자 저희에게 붙잡힌 신세에 불과하다는걸.

서릿발이 내린 목소리에 나는 눈에 파묻힌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가만히 냉기가 피부를 뚫고 스며드는걸 방치했다.

올라가는 책사를 뒤따르지않고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보던 에반이 조심스레 말했다.

"은월 씨. 저기이……."

"에반."

"네, 네?"

"날 걱정하지말고 이제 가라."

"하지만 지금 은월 씨는,"

"머리를 식히고 싶으니까. 그냥 가다오."

"…… 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소년은 제 오닉스 드래곤과 함께 올라가는 도중 힐끔힐끔 이쪽을 돌아보다 결국 밖으로 나갔다.

정말, 무슨 마가 낀게 분명하다.

***

키네시스side.

루디브리엄에서 사람들을 구해내 원래 세계로 돌려보낸뒤 겨우 온 루타비스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청문회 이후 돌아온 사람들이 하도 떠들어대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저한테 물어보러 온겁니까?"

"어떻게 된건지 들어봐야겠어. 분명 당신들의 목표는 봉인석을 모으고 오버시어를 깨워 세계를 재창조하는 것이지, 지금 검은 마법사니 군단장이니 하는 것들처럼 마구 죽여서 멸망시키려는게 아니라고 말했잖아. 그래서 나는 당신들과 협력하기로 했고."

"이번 일은 완전히 상정 외였습니다. 윙마스터 스우 하나때문에 사전의 계획이 모조리 틀어져버린 참사였고요."

"자세히 설명해봐. 납득할 수 없으면, 협력을 취소하겠어."

"하아…… 알겠습니다."

푹 한숨을 내쉰 그녀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으며 말을 시작했다.

약 한 달 전에 영웅중 한 명인 괴도 팬텀이 에델슈타인 기지에 잠입, 정보를 캐내던 과정에서 기지의 안쪽에 보관되어 있던 군단장 스우의 육체를 우연히 찾아냈고, 그를 없애려 들었다고 한다. 이에 검호가 그를 막아내는 과정에서 정체를 알아버려 경악한 사이 스우에게 빙의당하는 일이 벌어졌단다.

"군단장은 적이라며? 왜 그를 지키려 했던거야?"

"그의 몸에 응축된 에너지 때문이죠. 처음 그를 발견했을땐 저희도 그를 없애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겔리메르의 개조로 에델슈타인의 에너지란 에너지는 모두 쑤셔박힌 그의 몸을 잘못 건드렸다간 에델슈타인이 대륙째로 사라질 위험이 있어서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마법으로 어떻게 안됬어?"

"마법은 만능이지 전능이 아닙니다. 그만한 것을 막아내거나 축소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기엔, 저희 역시 상황이 좋지 않았으니까요."

노바족은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난지 아직 3년도 채 되지않은 상황이었다. 물자도 자원도 인원도 없는 이들에게 거기까지 바라는건 확실히 과한 일이다.

"거기다 하필 그때 저희는 봉인석 회수 작전을 시작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블랙윙의 간부인 소드댄서가 검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작전을 시작도 하기 전에 모두 그르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어쩔 수 없이 그를 기지내에 가두기로 한거죠."

"그 스우라는 군단장을 끄집어낼 수는 없었어?"

"불가능했습니다. 그는 보통의 유령이 아닌 군단장이 될만큼 강한 어둠의 정령이었고, 그런 영혼을 강제로 끄집어냈다간 몸의 원주인에게 피해가 갈테니까요. 실제로 스우는 팬텀의 정신에 충격을 줘 의식을 잃게만들기도 했었죠."

죽어서 유령이 되었다는 놈이 진짜 지독하네.

"정보가 누출되어서도, 영웅인 팬텀을 위험하게 둘 수도 없어 봉인석을 일정이상 회수할때까지 그를 엄중한 감시아래 감금해두자는게 그의 선택이었죠."

"검호가 그런 선택을 했다고?"

그래도 같은 영웅이자 동료 아니었나?

"…… 동료까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생각했으니까 그를 살리기위해 그랬던 것일테죠. 아무튼 저희는 그를 가둔 이후 봉인석 회수를 시작했고, 준비한만큼 그럭저럭 순조롭게 성공시켜갔습니다."

아직까지 회수하지 못한 봉인석이 에레브의 것 하나뿐이라는게 그 증거였다.

"봉인석의 대부분이 블랙윙의 손에 들어오면서 다른 군단장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중 붉은 마녀 힐라가 블랙윙에 찾아와 연합을 부수는데 협력해달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아 잠깐만,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왜 군단장 오르카고 힐라고 검호를 못 알아본거야? 8백년 전에 몇 번이나 싸웠을거 아니야."

"그의 모자엔 안면인식장애 마법이 걸려있습니다. 그 정도 조치쯤은 해두는게 당연하죠."

한참 말을 해 목이 마른듯 그녀는 책상에 놓인 물잔을 원샷한 뒤 숨을 골랐다.

"후! 힐라가 연합을 부술 방법은 현 여제 시그너스의 정통성이었습니다. 그녀의 황제의 혈통이 불분명한 점을 파고들자는 거였죠."

"그래서 이번 청문회가 열리게 한거야?"

"예. 그리고 힐라는 이 과정에서 과거 선대 황제인 아리아 여제가 아꼈다는 보석인 스카이아에 대한 소문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8백년 전 에레브의 보물이라고 소문이 퍼졌었지만, 현대에 와선 정작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정보가 대부분 없어졌으니까요."

하지만 실패했다. 괴도 팬텀에 의해.

"그녀의 계획을 망치기위해, 저희는 당시 아리아 여제와 알던 사이였던 팬텀을 쓰기로 했습니다. 봉인석을 모을만큼 모아 저희의 계획은 연합에 어느정도 알려졌고, 그를 가두는것도 무의미해져 갔으니까요."

"그는 놓아준다 치더라도 스우가 얌전히 나갈리 없잖아?"

"…… 예. 정말 마지막까지 저희한테 제대로 엿을 먹였죠."

이데아는 이를 뿌득 갈았다. 뿔 끝에 하얀 빛이 파직거며 세로꼴 동공이 열린게 어지간히 빡친 모양이다.

"저희는 이번 일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에레브에 잠입해 봉인석을 회수할 수 있는 기회였고, 동시에 팬텀과 스우 모두 손안에서 버릴 수 있었으니까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했다가 이도저도 못하게 된거란 말이네."

"그런…… 셈이죠."

의외로 순순히 그녀는 실패를 인정했다. 항상 얼어붙은 것처럼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지치고 어두워보였다.

"스우는 제네로이드 개조가 가속되며 원래 몸으로 끌려가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 빙의가 풀려버릴게 분명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스스로의 몸에 갇힌 인형으로 전락하게 되기에, 마지막 발악을 했죠."

"그게 이번에 벌인 그 일들이라고?"

"저희도 그가 에레브에서 일을 벌일거라 당연히 예측했습니다. 사실 그것조차 눈치채지 못하면 바보였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예측의 방향이 틀렸습니다."

그녀는 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았다.

"윙마스터 스우는 과거 그의 쌍둥이인 오르카와 함께 선대 황제 아리아를 죽인 전적이 있는 군단장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굳이 에레브까지 가서, 힐라를 만난뒤에 빙의를 풀겠다는 조건까지 걸어 무슨 일을 벌일지 쉽게 예측이 되었죠."

"…… 시그너스 여제의 암살?"

"예. 영웅의 몸으로 여제를 암살한다- 더 말할 필요도 없는 대형 사건을 일으킬거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막기 위해 본래는 스우를 감시하기위해 검호가 청문회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봉인되어있던 검은 마법사가 부활하며 그러지 못했죠.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거였습니다."

검은 마법사의 부활. 봉인된 상태였음에도 내가 사는 세계와 메이플 월드를 가르는 차원의 벽을 무너뜨리는 짓을 벌인 그가 끝내 풀려났다니.

"그는 아스카와 함께 검은 마법사를 만나러 갔고, 차선책으로 스우의 감시는 세피로트에게 맡기려 했습니다. 하지만 돌연 생명의 오버시어가 무슨 일을 하러 가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그 세피로트라는 사람까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이 은월이었습니다. 그는 다소 험악하긴 하지만 정령의 힘으로 스우의 영혼에 타격을 줄 수 있었으니까요."

인사 배치부터 꼬였던거냐.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열린 청문회가 어떤 꼴이 났는지는 더 말하는게 입아프겠죠."

삐걱, 의자 등받이가 젖혀졌다.

"스우의 목표는 여제의 암살이 아닌 저희의 계획을 망치는 것이였고, 그는 청문회에 온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최악의 형태로 군단장이란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지 대대적으로 광고하며 이를 성공시켰습니다."

루디브리엄에서 들은 소문들이 떠올랐다. 군단장에게 빙의당한 여제가 영웅을 공격해 죽일뻔했다고.

"은월은 스우라도 처리하기위해 엔젤릭 버스터를 돌려보낸 뒤 마지막까지 에레브에 남았고…… 결국 붙잡혀버렸죠."

그녀는 말을 많이 해서인지, 아니면 꼬이고 꼬인 지금의 상황때문에 피곤한지 잠시 눈을 감았다. 이데아가 입을 닫은 사이 나는 들은 것들을 정리해보았고, 온갖 일들이 뒤섞였지만 결과적으로 노바족에게 좋은건 하나도 없는 수라장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이래서야 앞으로 뭘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잖아.

"…… 검호는 어때?"

"그 말입니까."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무얼 하자는 말같은거 전혀 하지 않았어?"

내 질문에 슬며시 눈을 뜬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의 그에겐 말은 고사하고 가까이 갈 수도 없습니다."

"뭐?"

그녀는 습관처럼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을 정말 거하게 실패해버려서 신경이 굉장히 곤두섰다고 해야할까요, 누구하나 잘못 걸리기라도 하면 뼈와 살을 전부 분해해버릴 분위기거든요."

"그거 검호 얘기하는거 맞아? 다른 사람 아니지?"

"예에. 심지어 그 붉은색이 채워지기 직전이라 모두들 알아서 움츠리며 그를 피해다니고 있는 상태죠."

붉은색은 또 뭐야? 분노 게이지? 뭔지는 몰라도 그 붉은색이라는게 다 채워지면 뭔가 엄청 위험해지는 모양이다.

"키네시스 군 당신이라도 지금의 그에겐 가까이 가지 마세요. 살해당할지도 모릅니다."

"하……."

대체 어떤 상태이길래 저런 말까지 하는거지. 일단 당장 그를 만나는건 포기해야겠다.

"당신은 어쩔거야? 가만히 있을리 없잖아."

"그가 언제 이성을 되찾을지 모르겠지만, 그 전에 준비를 해둘 생각입니다."

"준비?"

"에레브에 붙잡힌 은월의 구출 말입니다."

그는 우리의 계획에 무척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그런 이유로, 협력해주시죠."

"…… 응?"

"당신이 저희 대신 에레브에 잠입해 은월을 구출하는데 한손 거들어 달라는 말입니다."

도망칠까.

========== 작품 후기 ==========

청소년 착취.

초반에 검호가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고 인게임에서 누가 말했는지 떠올려보면...

무슨 슬라네쉬의 사약을 한껏 빨고 검호하마로 (삐─)한걸 써버렸습니다. 아하하~ 어떻게 할까~ 올릴까말까~ 난 뭘 쓴거지~? 꺄륵!

모두 추석 잘보내세요!

@mmo0522 -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분과 이야기해서 잘 해결되었습니다.

@줄무늬인형 - 영혼이 갔으니 이제 육체가 갈 차례!

@cosy - 최고급 참고서가 넘어가버렸음(…)

@레볼레이션 - 해피엔딩 해피엔딩!

@SunRun - 진짜 충공깽은 다음이라는게 함정.

@Sisre - 이제 검호가 은월을 구출하러 가면 또…….

@paniculata - 그래서 바꿨습니다만, 솔직히 지상 최강의 여제님도 좋은데.

@밤일 - 영혼과 육체 따로따로 죽여주는 친절함이란.

@류동지 - 슬라네쉬?! 랄까 님의 글 보다보다 뭔가 꼴려서 진짜 검호x하마로 삐리릭하고 빠바박한걸 연성해버렸습니다. 근데 올릴 생각은 없다는.

@Legendssj2 - 어차피 다 4차 전직이었으니까 상관없음.

@에슷치 - 이제 아리아의 상징은 할버드가 되었군요.

@Ratios - 오르카를 고통스럽게 하기, 겠죠.

@Blake117 - 프리드:수백년 지나서 또 나타날줄은 몰랐지.

@루서스 - 창칼이 부딪히는 이야기.

@르틴 - 몸은 아직 있어서 블랙헤븐은 갈 것 같다는.

@귤푸딩 - 제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는 곧 굴림의 정도입니다!

@적현월 - 초장부터 검호는 정신줄이 거의 끊어진 상태였다는거.

@건전한독자 - 이 묘한 상성차이란...

@도서관열매 - 나중을 방지해 오르카를 바로 조짐.

@Eluines - 은월과 검호와 노바족의 혼파망.

@요녀석이 - 주인공 보정은 고사하고 악역이라 1순위 처치.

@Yoontlemin - 검호의 멘붕은 2개나 남았는데(깔깔)

@찬양천사 - 게임내에 구현되면 그 칭호 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먼산)

@갓타치 - 중간에 할버드를 마상창으로 바꿔 찌르기를 날리는 장면도 생각했지만 어찌어찌 쓰다 생략당함.

@천궁사월 - 뭡니까 그 끔찍한 혼종은. 메리수잖아.

@칼크래프트 - 살아남기만 했음. 안습.

@ㅇㅇ군 - 초반에 추가할 사건이 3개쯤 있어서. 텍본때 수정할 예정.

@노란우산s - 다음 파트는 은월 구출 작전! 이지만 짧게 끝날거라.

@대어의예감 - 분신이었죠. 그 분신이랑 싸우다 메이플 아일랜드 반파시킨거.

@루엔시르온 - 굴릴때마다 조심조심하고 있습니다. 애가 영 멘탈이 안좋아서.

@ReFrante - 아리아한테 몸 내준 반동으로 기절중.

@카한Kahan - 에레브의 봉인석빼고 다 모았음.

@신월야 - 이쯤되면 새드엔딩 냈다간 독자님들에게 돌맞아 죽을것 같음.

@socns - 어우 이걸 굴리는거라 하시면 다음 챕터 어떻게 보시려고.

@Liber720 - 실제로 나오면 팬텀이 장착하는게 제일 개그일듯.

@익재공 - 모험가 4인방은 어떻게든 나중에 나올겁니다.

@한국사고급 - 좀 그렇긴하지만 이 글의 주인공은 검호인걸요.

@Linener - 이성이 위태로운 상태라 죄다 도망침.

@리아카에린 - 스우는 진짜 오르카의 힘으로 살아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살아나봤자 빈 껍다구.

@SourcesMoon - 현재까지의 스토리를 이데아가 설명충처럼 모두 설명해줌.

@레시코 - 이겼다기보다는... 진짜 살아남은 쪽이죠.

@케르닉 - 팬텀이 말 안해도 곧 까발려질겁니다.

@키하라스티카 - 히오메는 부분적으로. 올해내에 완결하기위해 노력중이지만 될까 모르겠습니다.

@라이노아 - 스우가 말은 진짜 잘함.

@x흑란x - 거의 완치되었었는데 또 무리해서 악화.

@sadgfdfh - 스우가 신다!

@l초코빙수 - 호쾌하게 반으로 쪼개주심.

@책벌레씨 - 연합쪽 혼파망도 좀 있으면 벌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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