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데몬side.
빛의 수호자는 다른 마을에 블랙윙 아지트에 대한 단서를 찾으러 갔고, 나와 엘프의 여왕은 에반의 말에 따라 엘리니아로 다시 가게 되었다.
그녀와 함께 가야한다는게 심히 불편했지만 한참 바쁘다는 마법사 협회장과 당장 만나기 위해선 영웅정도의 명성이 없으면 힘들다니 어찌어찌 속으로 납득했는데…… 정작 이야기하러 나온건 이 어린애라니.
"엘프의 여왕님을 뵈서 영광입니다냥!!"
세 줄기의 흰 브릿지가 들어간 검고 동그란 정수리가 푹 숙여졌다.
"인사는 그쯤하고 고개를 들거라."
"네에……."
"미리 들었겠지만 우리는 너에게 묻고싶은게 있어서 왔단다. 그러니 정직하게 아는만큼 다 대답하거라."
"알겠습니다냥!"
앞서 네로라고 소개했던 소녀는 긴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대외적인 이미지인 위엄있는 왕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면 누구나 저러는게 당연하겠지만, 실상을 아는 입장에선 여자의 변신이라는게 참 대단하구나 싶다. 힐라도 화장으로 변신을 하더니 이쪽도 만만치가 않네.
"듣자하니 마법사 협회에서 니가 이계의 소년, 키네시스라는 아이와 가장 가까웠다는데 사실인가?"
"냐앙, 맞아요. 저는 키네시스가 협회에 머무르는동안 거의 같이 있었습니다냐."
"구체적으로 그 소년과 무슨 관계였지? 그 애를 어느정도 알고있고?"
"시작부터 너무 몰아붙이지 마시죠."
제 말에 엘프의 여왕이 띠꺼운듯한 시선을 보냈지만 신경쓸 가치는 없었다.
"아까전에 당신은 키네시스 소년이 협회에 있는동안 거의 같이 있었다고 했는데, 어째서였습니까."
"냐아…… 저는 키네시스가 만에 하나 또 염동력이 폭주할 때를 대비해서 그의 옆에 붙여졌었거든요. 저는 구속 마법 전문이니까요."
"흐음?"
그러고보니 이 소녀도 협회장의 수제자중 한 명이라고 했던가. 어린 나이치고는 꽤 실력이 있는 모양이다.
"키네시스가 차원의 벽 사건이 일어난 기폭제라는게 밝혀진 뒤 만에 하나 또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녀는 저에게 키네시스의 옆에 있으라고 했었습니다냥. 또 그녀가 그의 염동력 제어를 위해 이런저런 훈련도 시켰었고─."
"그녀가 누구지? 협회장의 지시가 아니었나?"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이데아…… 였어요."
하. 설마 이렇게 간단하게 단서가 나올줄은. 여기 오기전에 에반에게서 키네시스를 구했던 사람이 이데아였다고 들은게 떠올랐다.
우리의 심상치않은 표정에 소녀는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때는 그녀가 블랙윙인지 아무도 몰랐고, 또 실제로 키네시스의 염동력이 폭주하면 위험하니까 그가 능력을 제어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에 아무도 의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냥."
"훈련 자체는 이상한게 없었고?"
"없었습니다냐. 훈련이라 해도 협회 주변의 몬스터를 잡거나 무거운 짐을 옮기는 종류의 일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질문이 잘못됐다. 직접 본적은 없지만 이데아라는 여자가 한 조직의 책사를 맡을만큼 머리가 좋다면 다른 사람들이 수상하게 여길법한 일을 대놓고 저지르는 실수를 할 리가 없지. 하물며 사람들이 다 보는 것에 대해서는.
"그건 됐고, 사이키커─ 라는 이름까지는 모르겠군요. 그 소년과 마찬가지로 염동력을 가지고 있던 소녀에 대해서 뭔가 아는게 있습니까."
"냐? 그건 모릅니다냥. 저는 아까도 말했다시피 만약의 경우를 위해 대부분 키네시스 옆에 있느라 다른 초능력자라는 소녀는 본 적도 없거든요."
"그렇다면 협회 사람중에 그녀를 본 사람은 있습니까."
"꽤 있습니다냥. 무엇때문인지 키네시스랑 함께 발견된 그 소녀는 정신이 꽤 위태로운 상태여서…… 그, 노바의 마법사들과 협회의 마법사들이 돌봤었습니다냥."
정신을 어느정도 안정시키기까지 그녀의 염동력에 쳐맞고 중상을 입은 사람이 여럿 있었다고 고양이 소녀는 말했다. 이상한 일이군. 정신이 이상한건 둘째치고 왜 사이키커가 그 소년과 함께 발견된거지? 차원의 벽 사건의 기폭제인 소년의 근처에 있었다는 말은 곧 그녀가 다른 차원에 있었다는 뜻이잖아?
"현재 그 두 사람은 마법사 협회에 없는걸로 압니다. 그들이 이곳을 떠난 시점과 그 이유에 대해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냐앙, 물론이죠. 그건 잘 알고있으니까요."
고양이 소녀는 차분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키네시스가 협회에서 나간건 대륙 회의 직후였습니다냥. 정확히는 2번째 대륙 회의때 차원의 벽 사건으로 메이플 월드에 떨어져버린 그의 세계 사람들의 구조에 대해 안좋은 결과가 나와버린 뒤였죠."
"연합의 무능함때문이라는 말인가?"
"그 이유도 없잖아 있겠지만 키네시스는 적어도 회의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에 대해선 어느정도 납득했었어요. 지금 메이플 월드가 어떤 상황인지, 왜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잘 아니까요."
단순히 연합에 대한 실망감때문이 아니었던건가. 그럼 어째서지? 고양이 소녀는 말을 이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메이플 월드에 떨어져버린 그의 세계 사람들을 구하려고 했고, 그래서 연합이 구조를 시작할때까지 기다리는걸 그만두고 직접 나선겁니다냥."
"사이키커, 그 소녀는?"
"사람을 구조하는데 손이 모자란다면서 키네시스가 데려갔어요. 그때쯤에 소녀의 정신도 꽤 안정되어서 괜찮다고 판단되었고요."
안정이라는 말에 엘프여왕과 제 얼굴이 나란히 찌그러졌다. 대체 어디가?
"아까 그 소년은 능력이 폭주할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런식으로 밖에 보내도 되는건가?"
"그게, 아무리 저라도 24시간 걔와 같이 있는건 솔직히 무리거든요. 그래서 협회 마법사들이랑 같이 염동력을 어느정도 제어할 수 있는 리미터를 만들어서 줬습니다냥. 키네시스도 꾸준히 훈련을 해서 능력을 다루는데도 꽤 능숙해졌고요."
현실적으로 옳은 조치였지만 그 결과 소년이 다시 협회에 올 일은 사실상 없어졌다. 꼬리가 잘렸다는 말이다.
"지금은 어디쯤에 있는지 모르지만 여기저기에서 구조된 그의 세계 사람들이 차원 너머로 돌려보내지고 있으니까 어디선가 열심히 구조활동을 하고 있을거에요."
…… 그 소년이 바로 조금 전에 페어리의 영역에서 전 군단장과 블랙윙 멤버와 함께 있었다고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이 고양이 소녀는 아직 그와 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는듯 하니.
"그런데 왜 엘프 여왕님과 전 군단장께서 키네시스를 찾으시는죠?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굉장히 진지한 얼굴이셔서 물어볼 수 없었는데……."
보이지않는 고양이 귀를 까딱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녀에게 엘프 여왕은 작게 혀를 찬 뒤 입을 열었다.
"지금 그 이계의 소년은 브─"
"키네시스 군은 현재 꽤 곤란한 것들과 엮이는 바람에 어떤 사건의 조력자로 의심받고 있습니다."
"냥?! 그게 무슨 말이죠?"
저한테 말이 잘려 눈을 치켜뜬 엘프 여왕을 뒤로하고 나는 소녀에게 적당히 말을 만들었다.
"어쩌다가 그들과 엮였는지 모르겠지만 제 추측으로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다가 뭔가 약점같은게 잡혀서 그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걸로 보입니다."
"그, 그들이 대체 누굽니까냥! 그리고 어떤 사건이라는건 또 뭐고요!"
"자세한건 사안 자체가 위험해서 당신에게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중요 조력자로 의심되고 있는 사건이 꽤 심각한 것이라, 만약 그가 잡히게 되면 연합에서 엄중히 처벌할 수 밖에 없을겁니다."
"냐아아아……?!"
소녀의 뒤로 꼬리가 뻣뻣이 서는듯한 환상이 보였다. 저 소녀 진짜 고양이가 아닌게 맞나.
"그래서 저희는 키네시스 군을 그들에게서 빼내기위해 그들을 추적중입니다."
"제가,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됩니까냥!"
생각이 정말 잘 드러나는 타입이군.
"간단합니다. 만약 어디선가 키네시스 군을 목격한다면 당신이 가장 잘하는 구속 마법으로 그를 붙잡아 협회로 데려오세요. 일단 저희도 그가 진심으로 그들에게 동조했을거라 생각하지 않고, 당신의 말대로 그는 사람을 구하는데 열심히인 소년일 뿐이니까요."
"당연하죠! 좀 건방지긴 하지만 걔는 나쁜 애가 아니라고요! 반드시 키네시스를 잡아서 그 수상쩍은 놈들에게서 구하겠습니다냥!"
"높은 의지 감사합니다. 잘부탁드립니다."
나는 의지로 눈이 활활 불타오르는 고양이 소녀에게 인사한 뒤 기가찬다는 표정의 엘프 여왕과 함께 협회 밖으로 나왔다. 협회 건물에서 좀 떨어졌을때 그녀가 툭 내뱉었다.
"…… 태연한 얼굴로 거짓말을 잘도 하는군."
"특별히 거짓말한건 없었잖습니까. 개인적인 추측과 제 생각을 끼워넣었을뿐."
"굳이 그 소년을 감싸는 이유가 뭐지?"
"감싸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를 감싸는건 아까 그 고양이 소녀쪽이었죠."
옆에 있는동안 그새 정이라도 들었는지 그가 어떤 사건에 휩쓸렸다는 말을 듣자마자 놀라는 모습이라니.
"그리고 사실대로 말했다간 에레브에서 있던 일까지 어느정도 설명해야하는데, 그건 일전의 회의에서 기밀에 붙이기로 했잖습니까."
"그럼 아까 그 추측들은 다 뭐였지?"
"말 그대로 추측이죠. 제 생각이지만 이계의 소년이 블랙윙과 손을 잡은 이유는 아마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일겁니다."
무슨 생뚱맞은 말을 하냐는 엘프 여왕의 표정에, 생각해보니 이 여자 그렇게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는게 떠올랐다. 영웅중에서 머리쓰는 이들은 용의 마법사와 빛의 수호자, 괴도였지.
"그러니까, 차원의 벽이 무너지며 메이플 월드에 떨어져버린 자기 세계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블랙윙의 힘을 빌렸을거라는 말입니다."
"그건 말이 안되잖아. 블랙윙이 뭣때문에 사람을 구하지? 반대면 몰라도."
"저도 그 부분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블랙윙이라는 조직의 능력만 봤을때 그를 돕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최적이죠. 일단 메이플 월드 이곳저곳에 비밀 아지트와 부하들이 있으니 연합보다 빠르게 이계인들을 찾아내기 한결 수월할테고, 결정적으로 군단장 휘하 조직이니 다른 군단의 위협도 받지 않을겁니다."
에반의 말에 따르면 키네시스라는 소년은 일반인에 비해 똑똑한 편이라고 했다. 선악을 떠나 이용가치만 따졌을 경우, 각 지역의 상황때문에 당장 움직이지 못하는 연합보다 당장 행동을 개시할 수 있는 블랙윙이 더 유용하다는걸 깨달았다면 그들이 내민 손을 - 어쩌면 소년쪽이 먼저 손을 뻗었을지도 모른다 - 잡지 않는건 힘들거다.
내 말을 들은 그녀는 확 인상을 쓰며 외쳤다.
"거기까지 안다면 놈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잘 알거 아니야? 그런데 왜─!"
"메르세데스 여왕. 당신은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야할 중요한 전제를 빼먹고 있어요."
"내가 뭘!"
"키네시스 군은 이곳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거죠."
"…… 너 나랑 장난쳐!?"
허리춤의 듀얼 보우건을 뽑아다 쏠 기세인 그녀에게 나는 빨리 대답했다.
"장난이 아닙니다. 제가 한 말의 뜻은, 그는 메이플 월드의 사람이 아닌만큼 우리와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거라는겁니다."
"뭐가 다르다는거야? 한참 어린애일뿐인데."
"현재 시점에서 그 소년에게 가장 중요한게 무엇일 것 같습니까 메르세데스."
"그거야……!"
뭘 당연한걸 묻냐는 얼굴로 대답하려던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드디어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모양이다.
"예. 그에게 가장 중요한건 차원의 벽 사건으로 이곳 메이플 월드에 떨어져버린 자신의 세계 사람들을 구하는겁니다. 그게 1순위에요."
메이플 월드의 안위가 아니라.
"우리가 보았을때 상식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짓이, 그에게 있어선 제일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정 안될때 써볼법한 수단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런…… 터무니없는."
"거기다 사이키커가 정신병자인걸 뻔히 알면서 손이 부족하다고 데려갈만큼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그만큼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겠죠."
대륙 회의에서 블랙윙이 어떤 존재이고 뭘 저지른 놈들인지 다 알았으면서 그들과 손을 잡은 이유는 그 소년의 입장에서 볼때 그것 외에 생각하기 힘들다.
물론 전부 추측일뿐이고, 정말 블랙윙에 잘못 걸려서 협박을 당하고 있을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 해치는걸 못할뿐이지 능력만 따지면 어중이떠중이들 따위 손가락 까딱안하고 쓸어버릴수 있는 그 소년이 협박을 당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말이 안된다.
"하…… 그래. 걔가 놈들과 손을 잡은 이유는 그렇다고 쳐. 하지만 그애가 놈들과 손을 잡고싶은 용의가 있어도 그놈들이 그걸 받아줄 이유가 있나? 메이플 월드에 분탕질 치기 바쁜 녀석들이 어린애 부탁따윌 들어준다니."
상상만해도 어처구니없는지 그녀는 혀를 찼다.
"글쎄요. 저는 충분히 가능성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먼저 첫째, 키네시스 군은 보통 어린애가 아니라는 것."
폭주해서 그런거라지만 그 소년은 저쪽 세계에 거대한 싱크홀을 만들만큼 강력한 초능력자다. 번거롭더라도 부탁 좀 들어줘서 적당히 이용할 수 있다면 그쪽이 블랙윙에게 더 이득일만큼.
"그리고 둘째, 현재 블랙윙의 실질적인 수장이 '그'라는 것."
"윽."
미처 생각 못한건지 아니면 생각하기도 싫었는지 그녀는 허를 찔리듯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 블랙윙은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방금 놈들이 그럴리 없다고 말했는데, 그건 블랙윙이 군단장 윙마스터의 조직일때의 이야기지 그의 조직이라 생각해보면 어떻습니까."
"그건……."
"가능성이, 정말 하나도 없을까요?"
그의 현 상태를 모르는이상 단정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당장 영웅이었던 그가 블랙윙의 최고 간부가 되었다는 시점부터 이전과 같지 않다는걸 증명하고 있다. 일단 예전의 면모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이라고 가정을 했음에도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니.
"물론 제 말이 다 사실이지는 않을겁니다. 허나 만약, 정말로 그 소년이 그들의 손을 잡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다면─"
나는 과거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을 혼란스러운 얼굴의 그녀에게 해주었다.
"그는 그런 선택을 한 책임을 져야할겁니다."
내가 그러했듯이.
***
검호side.
쾅! 큰 소리가 울리며 문이 거칠게 열렸다.
"뭐가 어떻게 된건지 설명해보시죠."
갑자기 쳐들어온 이데아가 어째선지 살벌한 표정으로 코앞까지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닿을만큼 가까운 거리였지만 로맨스는 고사하고 그대로 내 멱을 따버릴만큼 흉흉한 기세로 스파크를 마구 튀겨서 다른 의미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 갑자기 뭘 말이냐."
"지금의 상황, 당신이 지시한거 아닙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내 중얼거림에 그녀는 이를 빠득! 갈며 들고있던 종이뭉치를 내 얼굴에다 집어던졌다.
"뭐하는 짓이야!"
"읽어보시죠. 그리고 그건 제가 당신에게 하고싶은 말입니다."
부리부리하게 치켜떠진 황록색 눈에 나는 일단 그녀가 내 면전에다 집어던진 종이를 - 전부 보고서였다 - 몇 장 주워 흝어보았다가 쩍 굳어버렸다.
씨발 이게 뭐야.
"현재 메이플 월드 전역에서 검은 마법사의 친위대라는 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출현중입니다. 이들이 출현하는데 사용된 미스틱 게이트는 그 미친 영감의 작품이고, 그걸 설치한건 블랙윙의 간부들이고요! 대체 어떻게 된겁니까?!"
내가 모르는새에 이런걸 진행할 사람은 블랙윙에 없다. 오르카는 그때 이후 겔리메르한테 넘겼고, 간부들이 전부 나섰다면 나한테 보고가 와야하는데 그건 듣지 못했─
"짐작가는게, 없습니까."
아아…… 이거 설마.
"그때 허가한건가?"
르티에가 말한 다른 군단장의 협력 요청을 반쯤 정신줄 놓은 상태로 허가해버렸었지. 스우때문에 빡친 연합이 간부들을 좀 정리해줄거라는 생각을 했던것도 같은데 시달릴대로 시달린 에레브에게 그럴 여력이 남지 않을거라는걸 생각하지 못했다.
"당, 신이 한겁니까아아아─!!"
수백마리의 새들이 일제히 울보짖는듯한 소음이 울리며 새하얀 전격이 거미줄처럼 쫙 퍼졌다. 그 실의 끝에 닿은 바닥과 벽이 새카맣게 그을렸고, 책상에 불이 붙었으며 내 머리카락도 살짝 탔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걸 허락한겁니까!! 여태껏 저희가 한 노력이 이거때문에 박살났다고요!"
그녀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전격의 뱀들이 나를 집어삼킬 기세로 달려들어 불타는 책상을 걷어차 막아냈다. 매의 발톱처럼 날아들어 내 멱살을 뜯어내려는 그녀의 손을 쳐내고, 채찍처럼 휘둘러진 그녀의 꼬리를 반대로 낚아채 그녀를 제압했다.
"정말 미안하다 이데아. 설명을 할테니까 일단 진정을─."
"진정같은 소리 집어치우세요! 당신의 그 실수 하나때문에 이번에 얼마나 많은 피해가 생겼는지 다 말하기 입아플정도입니다! 당신이 저질렀으니 당신이 수습하세요!"
"…… 뭐?"
"지금 이 구조물을 설치하고있는 망할 간부놈들을 다 조지고 오든가! 어떻게든 명령을 철회하든가! 알아서 하세요!!"
짜악! 붙잡힌 꼬리에 힘을 줘 내 손을 쳐갈긴 그녀는 통보하듯이 말했다.
"당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지란 말입니다!!"
그렇게 이데아는 씩씩거리며 들어왔을때보다 더 과격한 걸음으로 나갔고, 복도를 타고 괴기스러운 마녀의 울음이 들려와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 진짜 망했다. 그나마 멀쩡한 종이를 하나둘 주워 조금만 읽어보았음에도 눈앞이 아찔해졌고, 이게 나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에도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미쳤어 진짜. 내가 그때 왜 그런 짓을.
'일단, 일단은.'
이 구조물, 미스틱 게이트는 겔리메르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이것의 설계도는 적어도 에델슈타인 기지에 있을테고, 그걸 연합에 넘기면 저쪽에서도 대응을─ 아 잠깐만 연합에 과학자는 한 놈도 없잖아. 연합뿐만 아니라 메이플 월드 자체가 기술적으로 마법에 편중되어있고. 설계도를 봐도 해석 못할거다.
내가 직접 나서면 구조물에서 나온다는 몬스터나 친위대를 한 번에 정리할 수 있지만 그들이 나타나고 있는 곳이 너무 많다. 간부들도 한둘이 아닌데다 전부 움직이는 중일테고. 결론은 나 하나로는 안되니 다른 여럿의 힘을 써야하는데 이번 상황을 초래한게 나라서 노바족들에게 맡겼다간 불만이 폭발할테고 - 이들은 이미 싸우고 있다 - 다른 마땅한 사람들이…….
나는 통신기를 들어 핫라인으로 어딘가에 연락했다. 제발 받아라.
[─무슨 일입니까.]
"박사인가."
[이 선으로 연락을 받는건 저뿐입니다.]
"한가지 부탁할 일이 있다."
[블랙윙과 관련된 일이라면 거절하겠습니다.]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만. 내 말에 상대쪽의 침묵이 꽤 길게 이어져 연락이 끊어진게 아닌가 확인해야했다.
"박사?"
[연락은 안받은걸로 치겠습니다. 그럼 이만 실─]
"겔리메르의 발명품이 메이플 월드 여기저기에 나타나고 있다."
[잠깐, 뭐라고요?!]
"모르는걸 보니 바다속에는 나타나지 않은 모양이군."
이걸 다행이라 해야할지 모르겠네.
"연합에 합류해서 그것을 없애는데 협력해줬으면 한다."
[구체적으로 그 악마의 어떤 발명품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미스틱 게이트, 라는 물건이다. 자세한 기능은……."
나는 무사한 종이들을 뒤적여 미스틱 게이트로 일어난 일들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어둠을 방출하고, 그것에 물든 몬스터를 소환하며, 방출된 어둠은 검은 마법사의 친위대가 된다.
[허참, 이젠 이딴걸 만들다니. 그 영감은 대체 뇌에 뭐가 든건지.]
나도 궁금하다. 마법과는 쥐뿔도 인연없는 일개 늙은이가 혼자서 여기까지 해냈다는 것이 경이로울정도다. 순수하게 두뇌만 따지면 프리드급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확실히 연합은 이 구조물을 없애기 힘들겠군요. 하지만 저희가 나설경우 여기서 맡고있는 제논도 함께 전면에 드러나는데 그래도 괜찮습니까?]
"이미 한 번 나서서 이걸 처리하는데 힘쓴걸로 안다만."
엘나스에 나타난 친위대를 없애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제논은 직후 자리를 떴지만 목격자는 다수 남아있었다.
[그건 그의 독단 행동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좋아. 이제부터 어색하지않게 연합에 접촉해서 구조물을 완전 철거하는데 힘써주길 바란다. 그것의 설계도는 곧 넘겨줄테니까 어렵지 않을거다."
[알겠습니다.]
긍정의 대답에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일차적인건 해결되겠네.
[대신 저희도 하나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무엇을."
박사의 몹시 진지한 목소리에 나는 그의 부탁이 심상치않은 것인가 예상했다.
[이번 일 해드릴테니 저희 집세 좀 낮춰주시죠.]
"…… 그건 나 말고 이데아한테 부탁해라."
[그 여자는 한푼도 깎아줄 용의가 없으니 당신에게 부탁하는겁니다.]
"애초에 너희가 하필 라비린스에 연구소를 세웠으니 이렇게 되는거잖아."
[심해에 있는 공동에 8백년 전부터 임자가 있을줄 누가 알겠습니까?!]
내가 할말이다. 누가 거기까지 기어들어가서 연구소를 세울거라 예상하냐고. 베리타스 위치는 아쿠아리움에 더 가까운걸로 알고있어 옛날에 생명의 오버시어가 봉인되어있던 심해 공동을 노바족의 2번째 거처로 개조해 쓰려고 했는데, 이미 건물 서있는거 보고 얼마나 어이없었는데.
"어쨌든 조만간 설계도 보내줄테니 그때까지 미스틱 게이트에 대해 어느정도 조사해둬."
[알겠으니 집세 좀 어떻게…….]
"이만 끊지."
지금 이데아는 벼락을 뿌릴만큼 저기압이라 그런 얘기를 꺼낼수도 없다고. 연락을 끊은 나는 툭툭 옷을 털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이제 이번 사태의 밑밥을 열심히 깔고있을 간부들을 싹다 모아야겠군.
***
side out.
미스틱 게이트를 통해 나타난 카리아인의 습격을 시작으로 메이플 월드 곳곳에서 검은 마법사의 친위대를 자칭하는 이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의 습격의 방식은 마을의 근처 혹은 내부에서 여태까지 습격해온 몬스터와는 최소 한 단계이상 강력해진 몬스터와 짙은 어둠을 방출하는 미스틱 게이트를 통해 나타나고, 겨우 그것을 쓰러뜨렸다 싶을때 그때까지 뿜어져나온 어둠이 그들의 형상으로 변하는 식이었다.
그런 기괴한 형태로 나타난 이들은 괜히 검은 마법사의 친위대라고 자칭한게 아니라는걸 증명하듯 겨우 안정되어가던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현지의 모험가와 파견되어 있던 시그너스 기사단 등에 의해 간신히 쓰러졌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모두 오신 것 같군요. 급하게 만든거라 연결이 불안정할지도 모르니 목소리와 모습이 잘 보이는지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문제 없습니다.]
[이쪽도 통신에 지장 없습니다.]
[마찬가지라네.]
통신 연결이 잘 된 것을 확인한 나인하트는 작게 헛기침을 하며 긴급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면면을 쭉 훑어본 뒤 심호흡을 하고있는 시그너스 여제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의 시선을 받은 시그너스는 의연한 표정을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제, 긴급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마을의 대표 혹은 그의 대리인들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급히 회의를 연 이유는 모두 아시겠지만 현재 다수의 마을 인근에 수수께끼의 구조물이 출현, 그 구조물에서 방대한 어둠이 방출되며 그 어둠으로 강화된 몬스터가 나타나는 사건이 메이플 월드 곳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 몬스터를 겨우 쓰러뜨릴시 구조물의 작동이 정지되고, 그동안 방출한 어둠이 검은 마법사의 친위대라는 이들로 바뀐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저희 모두 똑똑히 목격한 것이니 굳이 재확인할 필요는 없을텐데요. 당신들도 마찬가지의 상황을 겪지 않았습니까?]
[진정하세요 로베이라. 정보의 사실 확인은 중요한겁니다.]
로베이라의 날선 말에 미네르바는 그녀에게 릴렉스하라는 제스쳐를 취한 뒤 시그너스에게 말했다.
[계속하시죠 시그너스 여제.]
"알겠습니다. 조금 전에 엘나스의 대표분께서 저희 에레브도 같은 상황을 겪지 않았냐고 말씀하셨는데, 에레브에서는 그것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뭐라고요?!]
[그게 사실입니까?]
"그래서 확인차 물어본겁니다."
각 지역의 마을에 파견나가있던 시그너스 기사단원들에게서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온 이번 사건의 보고 내용을 정리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 나인하트는 아직도 두통이 가시지않아 인상을 쓰고 있었다.
"보고받은 내용을 정리해본 결과, 구조물의 어둠으로 만들어진 검은 마법사의 친위대란 이들은 총 다섯 개체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들의 무기와 사용했다는 스킬로 볼때 모험가의 대표적인 다섯 전직에 대응할 수 있─"
[그보다 그것들이 검은 마법사의 친위대인게 사실입니까?]
"…… 죄송하지만 그건 모릅니다."
"안그래도 급히 영웅분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과거 그런 존재들이나 이번에 나타난 수수께끼의 구조물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왜 그런 것들이 나타났냐고 되물었다.
[그 말은, 그것들이 검은 마법사의 친위대가 아니라는 뜻인가?]
무릉의 대표 무공의 질문에 시그너스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오히려 높은 확률로 그들의 말은 사실일겁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겁니까.]
"일단 과거의 검은 마법사에겐 친위대가 없었습니다. 그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군단장을 여럿 거느리고 있었으니까요."
영웅들이 친위대의 존재에 제일 먼저 물음표를 던진 이유가 이것이였다. 현 시대에 와서는 군단장이 좀 줄긴 했지만 어느정도 영입해서 머릿수를 채웠는데 왜 친위대따위가 필요한가? 만약 군단장의 자리를 보충하기위해 만들었다면 그들에게 꿀리지 않을만큼 강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강하긴한데 군단장 급은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친위대란 이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말은, 최근에 봉인에서 풀려난 그가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만들었다는 뜻이겠죠."
[그 기괴한 구조물을 통해서 말인가.]
"아니요. 구조물에 의해 출현한건 맞지만 그것의 기능은 일종의 간이 포탈로 보고 있습니다."
[포탈이라고요?]
나인하트는 들고있던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불과 얼마 전에 그것과 같은 것이 출현한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청문회 사건때…… 용의 후예들이 퇴각할때 말이죠."
그의 말에 사람들은 몇몇을 제외하면 뭔가 떠올랐다는듯 탄성을 흘렸고, 시그너스는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안색이 다소 창백해졌으나 최대한 차분히 말을 받아 이었다.
"그때 회의장에 있었던 분은 보셨을겁니다. 군단장 힐라는 텔레포트로 물러났지만 용의 후예들은 그러지 않았죠. 그들은 기괴한 형태의 포탈을 설치해 그것을 통해 자리에서 벗어났고, 저희는 보고로 받은 이번에 나타난 구조물이 당시 그들이 사용했던 간이 포탈과 거의 동일한 형태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말인 즉 이번 일에도 블랙윙이 개입되어 있다는 뜻입니까.]
어느정도 침착해진 로베이라가 물었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시 구조물이 설치되는걸 직접적으로 본 목격자가 있습니까?"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갑자기 식물처럼 자라났네. 설치되었다고 표현하기엔 어폐가 있지 않은가.]
[저희는 설치되는걸 보지는 못했지만 그 일을 한걸로 추측되는 인물을 본 사람이 몇 명 있습니다. 아무래도 루디브리엄에서 인간은 눈에 띄일 수 밖에 없는데다 그것이 나타난 위치도 좀 문제였거든요.]
루디브리엄 대표의 말에 시그너스는 미리 받았던 보고를 떠올렸다.
"그곳에서 구조물이 나타났던 위치는……."
[시계탑 내부였습니다.]
인형족 남성은 그때의 상황을 차분히 설명해갔다.
그 날, 시계탑의 공장에 문제가 생겼는지 갑자기 엄청난 수의 장난감 몬스터들이 뛰쳐올라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장의 수리공들이 여럿 내려갔었다. 그런데 알아본 결과 공장에는 문제가 없었고, 몰려온 몬스터들도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고 무언가에서 도망치는듯한 행동을 보였다.
[심층에 내려가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죠. 그 몬스터들은 시계탑 깊은 곳에 사는 자기들보다 더 강한 몬스터들의 난동에 휘말릴까봐 도망친 놈들이었다는걸.]
구조물이 방출하는 어둠에 물들어 날뛰는 시계탑 심층에 사는 희귀 몬스터 '타이머'를 모험가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쓰러뜨려서야 그 난동은 겨우 끝났다.
[그래서 구조물을 설치한걸 이로 유력해보이는 인물이 누구였죠?]
[어떤 소년이었습니다. 어두운 청록색 로브로 온 몸을 가리고 후드에 앞머리까지 길러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난동을 부리는 몬스터들을 인형처럼 조종하고 있었다더군요.]
[…… 그거 설마.]
리엔의 대표 리린은 그의 설명에 가장 먼저 누군가가 떠올랐다.
[변이된 타이머를 쓰러뜨리자 친위대라는 이가 나타났고, 저희가 당황하는 사이 소년은 꽁지빠지게 도망쳤습니다.]
"저분이 말하는 소년이 누구인지 짐작이 갑니까 리린 양."
[네. 블랙윙의 간부중 한 명인 '인형사'로 추측됩니다.]
인형사는 간부들 중에서 가장 약하다고 평가되지만 어쨌든 간부는 간부다. 바꿔 말하면 어린 소년에 불과하면서 블랙윙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뜻이니까. 2년 전 리에나 해협 사건이 일어난 원인중 하나가 인형사의 인형이라는 점에서 그 소년의 능력을 결코 경시할 수 없다는걸 알 수 있다.
[결국 또 블랙윙이군요.]
"예. 그리고 루디브리엄 외 다른 마을에 구조물을 설치한 이들도 아마 블랙윙 간부들일겁니다. 만약 군단장이 직접 움직였다면 구조물이 설치되는 것을 눈치 못 챘을리가 없으니까요."
강력하다기보단 상대하기 까다로운 특이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블랙윙의 간부다. 이에 대해 몇몇이 말하려는 순간 무릉의 대표 무공이 입을 열었다.
[구조물을 설치한건 블랙윙이라 치세. 놈들이 메이플 월드에 친 분탕질이 한둘이 아니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네. 하지만 그보다 지금 중요한건 그 친위대라는 놈들 아닌가? 놈들은 몇이나 있고, 그 힘은 어느정도인지 알아야하지 않나.]
"안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선 각지에서 올라온 보고들을 종합해 정리해두었습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에레브에서는 구조물도 친위대도 나타나지 않아 실제 사실과는 다를 수 있으니 틀린 점이 있다면 나중에 하나씩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시그너스는 음음, 작게 헛기침을 한 뒤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먼저 첫째.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검은 마법사의 친위대란 이는 총 5명으로 파악됩니다."
[5명? 메이플 월드 대부분의 지역에서 나타났는데 고작 다섯이라고요?]
"중복되는 이도 있습니다. 아직 다 말하지 않았으니 끝나는대로 질문해주세요."
나인하트의 말에 마가티아의 대표는 일단 입을 다물었다.
"또한 이 5명은 각자의 기술과 전투방식으로 볼때 이들은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모험가 대표 전직인 전사, 마법사, 궁수, 도적, 해적에 어느정도 대응되는걸로 확인되었습니다."
[그 말인 즉 해당 전직의 공략법이 먹힐 수 있다는겁니까.]
"네. 실제로 그들을 쓰러뜨렸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상당부분 통한다고 합니다."
힘의 격차가 커서 1:1로 쓰러뜨리는게 힘들어서 그렇지 여럿이서 덤비면 어떻게든 상대가 가능했다고 한다.
"그리고 둘째. 구조물에서 출현한 친위대의 힘은 앞서 구조물과 함께 나타난 몬스터를 처리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강해집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아까도 말했다시피 친위대의 수는 5명이지만 다른 지역에 동일 개체가 중복으로 나타난 경우도 있었습니다. 허나 분명 동일한 개체임에도 어째선지 그 힘이 달랐는데, 이 차이의 이유를 저희는 어둠에 변이된 몬스터를 처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인하트는 대표들이 보고있는 화면에 전체적으로 주홍빛을 두른 칠흑의 기사 사진을 두 개 띄웠다.
"모카딘, 이라고 확인된 이 개체는 무릉과 리프레에 나타났었습니다. 하지만 두 지역에서 보여준 강함은 달랐죠."
칠흑의 기사 사진이 뒤집어지며 숲에 나무 밑동들만 남은 사진과 바닥에 큰 검흔이 새겨진 사진으로 바뀌었다.
"왼쪽이 리프레에서 출현한 모카딘1이 휘두른 스킬의 위력이고, 오른쪽이 무릉에서 출현한 모카딘2가 휘두른 스킬의 위력입니다. 사용 스킬은 동일한걸로 판명되었습니다."
[왜 변이 몬스터를 처리하는 시간이 이들의 강함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는겁니까?]
"친위대가 나타나는걸 직접 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이들은 구조물에서 방출되는 어둠이 뭉쳐져서 만들어집니다. 어둠이 많으면 많을수록 강해지는셈이죠."
[아!]
"그리고 구조물은 변이 몬스터를 처리하기 전까지 어둠의 방출을 멈추지 않습니다."
힘의 차이는 여기서 발생했다.
"리프레의 경우 변이 몬스터로 나타난 마뇽과 그리폰을 처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겨우 쓰러뜨린 이후 모카딘1과 또 다른 친위대 줄라이까지 출현해 이들을 없애는 과정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알고있습니다."
[…… 그렇네.]
"빠른 시일내에 복구 인력과 물자를 보내드리기위해 최선을 다할테니 안심하세요 티티모 촌장."
"반면 무릉의 경우 변이된 지네 요괴를 수련생들이 빠르게 처리했고, 뒤이어 나타난 모카딘2 역시 무공님이 처치한걸로 알고있는데 맞습니까?"
[맞네. 음산한 기운과는 달리 정정당당을 외치는 웃기는 놈이었지.]
무공은 끌끌 혀를 차며 제 힘을 끌어올려야했던 검은 기사를 떠올렸다. 하는 말과 풍기는 기운이 다른것도 웃긴데, 또 그렇게 말하면서 온갖 디버프를 걸어대 2차로 헛웃음이 나왔었다.
"여기까지로 볼때 친위대의 힘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키려면 구조물과 함께 나타나는 변이 몬스터를 일분일초라도 빨리 처리해야합니다."
[거기까지는 알겠습니다. 헌데 그보다 먼저 구조물을 처리하면 친위대도 변이 몬스터도 출현하지 않는거 아닙니까?]
"안그래도 그것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시그너스는 정리된 보고서를 넘기며 말했다.
"셋째. 변이 몬스터와 친위대를 처리해도 구조물은 일시 정지할뿐이며, 가까이에 몬스터가 접근하면 그것을 빨아들인 뒤 어딘가로 이동해 빨아들였던 몬스터를 어둠으로 변이를 끝내면 다시 작동하길 반복합니다."
[뭐라고요!?]
[그게 사실입니까?]
"이 역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 구조물은 일회용이 아니에요. 이미 마가티아에서 이런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안그렇습니까 대표님."
나인하트의 질문에 마가티아측 대표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에레브의 책사분이 말씀하신대로입니다. 저희 마가티아 역시 구조물이 출현했을때 몬스터와 친위대 모두 처리했었습니다. 그리고 즉시 구조물에 대해 분석을 하려고 했었죠.]
연금술사들의 마을다웠다.
[먼저 구조물을 연구하던 곳은 제뉴미스트 협회쪽이었습니다. 거기서 구조물이 나타났었으니 우선권이 있었죠. 그런데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 연구실에 두었던 구조물이 사라진겁니다. 어디로 갔는지 황급히 사람들을 풀어 찾던중, 알카드노 연구소쪽에서 갑자기 친위대가 튀어나오더군요.]
[잠깐만요. 그 말은 연구실에 몬스터가 있었다는 말입니까?]
[제뉴미스트 협회는 생체 연금술을 위주로 하기때문에 연구실에 몬스터 실험체가 있는건 당연합니다. 그렇게 연구실에 보관되어 있던 실험체중 하나를 구조물이 빨아들인거죠.]
아무튼 겨우 끝났다 싶었는데 두 번이나 친위대라는 홍역을 치뤄버린 마가티아는 현재 구조물을 아무것도 없는 방에 단단히 묶은다음 조심조심 연구에 돌입하고 있었다.
[구조물에 대한 분석은 아직 진척이 없지만 확실한건 그 구조물은 친위대 하나를 죽였다고 끝이 아니라는겁니다.]
[크흠…….]
[정말 곤란한 사실이군요.]
[그 구조물을 아예 없애버릴 방법은 없습니까?]
"아직까지 없습니다. 구조물내에 저장된 어둠의 양이 워낙 방대해서 흠집도 못내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당장은 다시 작동하지 않도록, 혹여나 몬스터가 접근못하게 엄중히 감시하는 것만이 답입니다."
그나마 방법이 있다는게 다행일정도다. 시그너스는 조금 지친 얼굴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구조물에 대한 사실입니다. 저희 에레브는 리엔에서 보내온 구조물에 대해 어느정도 분석한 결과를 받아보았고, 그것이 마법적인 도구가 아니라는걸 알았습니다."
[마법이 아니면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과학입니다."
다소 낯선 단어에 대표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띄워졌다.
"그 구조물은 마법적인 산물이 아닌 과학의 결정체입니다."
[과학, 이라면 그…….]
[예. 마법의 반대편에 있는 기술이죠. 때문에 저희 리엔은 그 구조물에 대해 지금 이상의 분석을 할 수 없습니다. 기술의 분야자체가 다르니까요.]
[굉장히 믿기힘들군요. 어떻게한건 둘째치고, 저희가 그것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기 몹시 힘들다는 말로 들리는데 틀린가요?]
미네르바의 질문에 시그너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여러분의 반응만으로도 알 수 있지만 과학은 저희에게 생소하고 또 익숙치 않은 기술입니다. 하물며 마법으로 착각할만큼 고도로 발전된 그것은 에레브는 물론 연합의 누구도 분석조차 못할 정도니까요."
[그, 과학이라면 마가티아의 알카드노 연구소가 일가견있지 않습니까?]
루디브리엄 대표의 말에 마가티아의 대표가 답했다.
[방금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이미 한 번 크게 데여서 연구를 빨리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알카드노의 지식으로도 그 구조물에 대해 완전히 알아내는건 역부족인 결론이 이미 나왔습니다. 너무 복잡해요. 누가 그런걸 만든건지 직접 놈의 면상을 보고싶을 정도라고요.]
마가티아의 대표가 우울하게 중얼거렸고 하인즈 대신 빅토리아 아일랜드 대표로 나온 헬레나가 물었다.
[하지만 이 넓은 메이플 월드에서 과학이 발전된 곳이 없지는 않을텐데요?]
"예. 있긴 있죠."
[거기가 어딥니까?]
"…… 에델슈타인입니다."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대표들의 얼굴에 낭패의 기색이 서리는 모습에 나인하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현재 그곳의 상황에 대해선 자세한 설명이 필요없을겁니다. 그들은 반대로 연합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니까요."
[에델슈타인의 기술자만 몰래 빼오는건 불가능합니까?]
"그 기술자들의 대다수가 블랙윙에서 강제로 일하는 중입니다."
레지스탕스에도 기술자가 없잖아 있지만 고도의 과학 기술로 만들어진 구조물을 분석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알짜배기라 할 수 있는 자들은 죄다 블랙윙에 억류되어 있으니.
[방법이…… 없는건가요.]
"아니요.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과거 에델슈타인이 블랙윙에 점령당하기 전에 그곳의 과학자들이 에델슈타인에서 대거 빠져나오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어디 갔는지는 모르나, 일단 그들을 찾아내 도움을 청할 생각입니다."
[그들을 찾는데 얼마나 걸릴것 같습니까.]
"당장 확답해드릴 수 없습니다만 최대한 빨리 찾도록 노력할겁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그들도 과'학자'인만큼 어딘가에서 계속 연구를 하고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연구라는건 그 깊이가 깊을수록 혼자하기 힘들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은 학자들을 모아 집단을 만들어야한다. 이때문에 나인하트는 에델슈타인에서 이주해온 이들에게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시그너스는 벌써부터 밀려오는 피곤한 기색을 억누르며 대표들에게 말했다.
"다음으로…… 친위대의 빠른 처치에 대해 여러분께 건의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시그너스 여제.]
"앞서 설명해드렸지만 검은 마법사의 친위대는 변이 몬스터를 늦게 처리할수록 더 강해집니다. 반대로 빨리 처리하면 꽤 상대하기 수월해지죠. 구조물을 완전히 멈출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대처법은 변이 몬스터를 가능한한 빨리 처리해 그 뒤에 나타나는 친위대를 조금이라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전투원이 적지 않습니까. 친위대에 비하면 약하지만 변이 몬스터도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각 지역으로 파견된 기사단도 있었으나 그들은 지금 하고있는 일도 벅차다. 마을 외부에서 간간히 습격하는 군단과 몬스터의 처리에도 바쁘니까.
"그러니 몬스터 상대를 전문으로 할 단체를 만들까 합니다."
[단체를 만든다니, 누구로 말입니까?]
"모험가들, 말입니다."
시그너스의 말에 대표들은 다양하게 변했다. 그런 방법이! 라는 표정부터 그건 좀 아닌데, 까지. 빅토리아 아일랜드 대표임과 동시에 궁수 전직관인 헬레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확실히 메이플 월드를 자유로이 다니는 모험가는 몬스터를 상대해본 경험이 풍부하죠. 하지만 모험가들은 대체로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변이 몬스터를 처리한다면 그에 따른 정당한 보수, 적절한 지원을 약속해드릴겁니다. 얽매이지 않으니 이번 일에 아예 관여조차 안하겠다는 말은 자유로움이 아닌 도피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모험가들을 쓰시겠다는건지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녀는 종이를 한 장 넘기며 차분히 설명을 했다.
현재 시그너스 기사단과 각 마을과 도시의 병사들은 외부에서 오는 군단과 몬스터의 습격을 막아내는데 바쁘다. 때문에 다른 전투가능 인력을 양성하기 힘들며, 그러니 이미 존재하는 이들을 쓰는 쪽이 더 좋다고 본다.
이에 메이플 월드 각지를 여행하는 모험가들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며, 물론 아무나 모험가를 뽑지는 않을 것이다. 변이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만큼 베테랑에 어느정도 인성이 갖춰져 있는 이들을 선별해 변이 몬스터를 전문으로 처리하는 단체를 만들 것이다.
"변이 몬스터를 처리하는 시간이 생명인만큼 모험가들의 빠른 이동을 위해 귀환서와 포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할 것입니다."
[취지는 좋아보이는데 그정도 실력의 모험가를 찾아내는데만 시간이 꽤 걸릴것 같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이미 목록을 뽑아놓았으니까요."
이 과정에서 나인하트와 테이아는 물론 다른 기사단장들까지 고생했다는 뒷사정까지 굳이 알리지 않았다.
[그 단체를 뭐라고 부르면 됩니까.]
"어둠에 물든 몬스터를 사냥하는데 특화된 집단…… '크로스 헌터'라 칭하도록 하죠."
여리지만 강인한 색을 띈 그녀의 눈이 굳게 빛났다.
========== 작품 후기 ==========
에반side.
"안된다."
"엄마!"
"난 절대 허락 못한다. 방에 들어가있어."
문앞에 떡하니 서서 팔짱을 낀채로 말하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또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벌써 세번째다. 엄마한테 가로막힌 것은.
"슬슬 포기하는게 어떠냐 에반아?"
"조용히해 형."
거실을 청소중이던 유타 형이 쓰레받이에 모은 먼지를 휴지통에 털어넣으며 물었다.
"아니 난 니가 왜 그렇게 나가려는건지 이해 못하겠거든? 지금 밖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잖아?"
"그래 에반아. 지금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데 굳이 가려는거니? 몬스터에 무슨 단장인가 뭔가 하는 것들이 날뛰고 있다는데."
"아빠까지……."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으며 신음했다. 간만에 집에 왔는데 설마 이런 복병이 있을줄은 몰랐다. 아니, 어느정도 예상은 했는데 이정도일줄이야.
에레브에서 집으로 막 돌아온 첫날, 엄마는 펑펑 우시며 나를 껴안고 어디 다친 곳은 없냐고 몇 번이나 확인했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살펴봐야겠다 하셨고, 하마터면 현관 앞에서 팬티바람이 될뻔했다. 뭐 여기까지는 엄마가 그동안 날 엄청 걱정했으니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집에서 며칠 쉬는동안 짐을 다 싸고 이제 슬슬 나가려하니 엄마가 저렇게 문앞에 서서 가로막는 것이다. 나는 몇 번 더 문을 흘겨보았다가 결국 2층으로 돌아와 메고있던 가방을 방 한구석에 던져두고 침대에 털썩 앉았다.
[또 실패야 마스터?]
"엄마가 비켜주지를 않아."
[그냥 텔레포트 써. 아니면 창문에서 뛰어내리든가.]
"그건 도망치는거잖아!"
[도망이 어때서? 도망이라도 쳐서 빨리 조사를 시작해야하는거 아니였어 마스터?]
백번 맞는 말이다. 미르가 보기엔 지금 내가 겨우 엄마한테 가로막힌걸 이해조차 못하겠지.
"내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다른 곳도 아니고 집에서 감옥 탈출하듯이 도망치는건 뭔가 아니잖아. 난 엄마한테 제대로 허락맡아서 나가고 싶어. 지금 내가 여기서 도망치면…… 엄마를 배신하는 모습이 되버린다고."
만약 미르의 말대로 도망치면 엄마가 크게 상처받으시는건 물론 다음에 돌아왔을때 날 어떻게 보실지 상상조차 잘 안된다. 확실한건 내가 일을 성공하든 실패하든 절대 고운 눈으로 보지 않을거라는거.
"어떻게 해야 좋을까 미르."
[뭘 어렵다고 고민해? 엄마한테 말해봐.]
"말이 통할리가 없다고. 그렇게 엄격한 얼굴의 엄마는 처음봤는데."
안그래도 위험한 시기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곳에 가겠다고 하는 나를 막아서는 엄마는 필사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왜 그러는지 잘 알고있어서 엄마한테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진짜 눈 딱 감고 도망칠까. 집에서 빠져나가는건 절대 어려운게 아니다. 당장 텔레포트 몇 번 쓰면 농장 밖으로 갈 수 있다. 지팡이는 엄마가 압수해갔지만 난 지팡이없이 마법을 못 쓸만큼 형편없는 마법사가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했을때 알았다. 나를 가로막고 있는건 엄마라는 벽이 아니라, 나의 양심이었다. 그걸 부수고 나아갈수가 없었다.
[마스터.]
"왜."
[엄마를 설득해.]
"그러니까 설득이 될리가─"
[아직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왜 단정짓는거야?]
미르의 말에 몸이 뻣뻣해졌다.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찾고 또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며. 꼭 하고싶다고 그렇게 말했으면서 아직 시도조차 못한채로 여기서 그만둘거야?]
"그럴리가 없잖아!"
튕겨나듯이 침대에서 박차 미르를 노려보았지만 미르는 눈도 깜짝안하고 되려 날카롭게 황금안을 치켜뜨며 내게 쏘아붙였다.
[엄마를 설득 못할거라는 말도 그래. 당장 눈앞의 사람조차 설득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대체 어떻게 그 사람을 설득할거야? 응? 되든 안되든간에 시도라는걸 해본 뒤에 말하라고 마스터! 그럼 납득해줄게!]
"하지만……!"
[하지만이라고 하지마! 핑계따위 달지말고 똑바로 보란 말이야!]
속에서 치밀어오는 감정에 뭐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걸 무의식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엄마를 설득하는 것이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만, 앎과 동시에 될리 없다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엄마가 날 막는 이유는 그분들이랑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어리니까, 위험하니까. 그리고─ 자식이니까.
앞의 두 이유때문에 나 혼자 행동하기로 했는데 엄마는 저것에 더해서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라는 엄청난 것까지 있으니 답이 안나오는 것이다.
[어쩔거야? 마스터.]
"…… 어쩌긴 뭘 어째."
설득, 해봐야지. 더이상 지체할 수도 없으니까. 나는 한숨을 푹 내쉰 뒤 던져두었던 가방을 툭툭 털어 다시 맸다.
"내가 엄마랑 말하는동안 넌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 미르."
[왜?]
"나 혼자서 해보고싶어."
말하는 것마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수는 없다. 아니, 이것마저 미르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된다.
[알았어 마스터.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빨리 와줘.]
"응. 오래걸리지 않게 할께."
나는 심호흡을 몇 번 해서 긴장을 풀며 하고싶은 말들을 머릿속으로 어느정도 정리한 뒤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얼마 되지않는 계단을 반쯤 내려갔을때, 아까처럼 문 앞을 막아서고있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도 나를 보았다.
"엄마."
"안된다."
요 며칠동안 반복된 대답이 돌아왔다.
"저 나가게 해주세요."
"절대 허락못해. 돌아가."
"왜 자꾸 안된다는거에요?"
내 말에 엄마의 눈이 확 치켜올라갔다.
"그걸 몰라서 묻는거니? 지금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데, 그중에서도 특히 더 위험한 곳 한복판에 가겠다는걸 안말리게 생겼어?!"
"하지만 전 꼭 가고싶다고요!"
"왜 니가 가야하는데? 연합에는 너 말고 사람 많을거 아니야! 전직관님들부터 영웅이라 불리는 분들, 기사들까지 많을텐데 왜 어린 니가 이렇게 가겠다고 설치냐고!"
엄마의 말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나말고 연합에 사람은 많았다. 나보다 강한 사람은 쎄고 쎘으며, 나보다 머리좋은 사람도 많다. 경험많은 사람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래도…… 그래도 난 가고싶어요."
"어째서? 누가 너보고 꼭 오라고 시키든?"
"아니요. 오히려 모두들 나서지말라고 하셨어요. 엄마가 말하는 것처럼 나는 어리고 그곳은 위험하니까 그분들도 안된데요."
나인하트 씨와 테이아 씨는 물론, 다른 영웅분들도 은연중에 더이상 깊게 파고들지 말라는 뜻을 내비쳤었다. 내 말에 엄마는 기가차는 얼굴로 물었다.
"그렇게 잘 알면서 왜 가겠다고 뿌득뿌득 우기는거니?"
"거기에 가서 반드시 해야하는, 하고싶은 일이 있으니까요."
고개를 똑바로 들어 엄마와 마주보았다.
"…… 그게 뭐길래 이러는거니?"
"한 사람을 만나야해요."
"뭐?"
나는 엄마에게 잘못들은게 아니라고 재차 또박또박 말했다.
"그곳에 가서, 한 사람을 만나야해요."
"겨우…… 그런걸로?"
"겨우가 아니에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요!"
내 외침에 엄마는 흠칫 놀라셨다.
"엄마 말대로 연합에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많아요. 마법은 루미너스 씨가 훨씬 더 잘 쓰시고, 결단력은 아란 누나가 더 좋아요. 전투경험은 데몬 씨가 몇 십배는 더 풍부하겠죠. 운좋게 블랙윙 아지트를 찾아 들어간다 해도 나는 큰 활약을 못할거에요."
숨이 차서 한차례 호흡을 고른뒤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 목표는 그들과 싸우기 위한게 아니에요. 나는 그 사람을 - 이번 사태를 일으킨 블랙윙의 수장인 그분을 만나서 어떻게든 대화를 할거에요! 왜 그렇게 되버렸는지, 무엇때문이 이 모든 일들을 저질렀는지, 그만둘 수는 없는지!"
만약 그만둘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든 설득해서 되돌리기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내가 직접 그분의 앞까지 가야해요!! 그런데, 그런데 아무도 안된다며 얌전히 집에 있으라하고……!"
"에반아."
한쪽에서 듣고만 있던 아빠가 끼어들었다.
"꼭 그 대화라는걸 해야겠니? 들어보니 넌 지금 악당들의 우두머리란 사람이랑 말 좀 하려고 이러는것 같은데, 세상을 요지경으로 만든 악당이랑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니?"
"있어요."
대화를 해야하는 이유.
"그게, 지금 상황을 해결하기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에요."
적을 죽이는 것도, 전투에 도움이 되는것도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이었다.
내가 가려고 하는 곳에 있는 이들중 나보다 약한 사람은 없다.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며 싸워도 모자랄판에 누구도 죽이지 못하는 나를 그곳에 가는 것을 허락하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 그걸 뻔히 다 알지만 이건 변하기 힘들 것이다.
내 손으로 나를 가로막는 적이라는 사람을 죽인다면 분명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겠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잃어버려 영영 되찾지 못할것 같다는 예감이 드니까.
"…… 왜 니가 하려는거니. 다른 사람들이 있잖아."
"내가 알고싶어요 엄마."
이유를.
"이런 일들을 한 이유를 들으려면 직접 찾아가서 물어봐야하고, 더 나아가서 설득하려면 그분의 얼굴을 봐야해요.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나서지 않으면 영영 알 수 없어요."
그리고 바꿀수도 없다.
"여기에 계속 있으면 확실히 안전하겠지만 그것뿐이잖아요. 내가 원하는건 답이에요.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이유고, 더 나아가서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해결하는건데 집에 가만히 있으면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알 수도 없어요."
아무것도 하지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다시 본 엄마는 절대로 쓰러지지않는 벽처럼 꿋꿋히 서있던 모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왜, 어째서 가려는거야."
"엄마."
"위험하다며! 너도 위험한걸 뻔히 알면서! 니가 약하다는 것도, 어린 것도 알면서! 다른 강한 사람들이 많다면서 왜 니가 가려는건데! 대체 그런걸 왜 알아야하는거냐고!"
"알아야해요! 알아야만 바꿀 수 있다고요!"
말하면서 나는 알았다. 내가 하고싶은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나는 스승님을 바꾸고 싶다. 예전의 모습으로, 무뚝뚝하면서도 자상했던 그때의 그분으로. 거기까지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블랙윙의 수장이라는 말도 안되는 직위와 이런 일들을 벌이는걸 그만두게 하고싶다.
"니가, 니가 간다고 뭔가 바뀔거라는 보장이 있니? 겨우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