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185화 (185/208)

<--  -->  side out.

단 한 문장만으로 전투를 위해 에레브에 소집된 장내의 사람들을 모조리 프리징 상태로 만드는 대 업적(?)을 달성한 그, 소드댄서 - 검호는 경치 구경하듯 주위의 흉흉한 빛을 뿌리는 마법과 무기들을 쓱 둘러보았다. 어째 예상에서 한 치의 빗나감이 없냐.

특히 나인하트의 얼굴이 가관이다. 제 말에 완전히 얼어버리더니 서서히 그 말 뜻을 깨닫고 안색이 시허옇게 변하다가 이내 푸르죽죽해지고, 뒤늦게 어떻게든 대책을 쥐어짜내려고 고뇌하는 모양새가 참 안쓰러웠다.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그런 그들의 심정을 십분 대변하는 말을 한 사람은 연합의 누군가가 아니었다. 그의 뒤에서 상황이 잘 조성되었는지 확인하던 이데아였다.

"물어볼 필요도 없이 소(小) 회의장일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이 여자마저 뭐라는 거야.

"일전의 청문회 사건으로 대 회의장은 반파되었고, 중 회의장은 저희 인원에 맞지 않으니 남는 건 소 회의장 뿐이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말은 확인을 구하고 있는데 실상은 연합의 의사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다.

"소 회의장은 저쪽이니 빨리 갑시다."

에레브의 지리는 또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대로 일행들을 안내하듯 앞장서서 정말 소 회의장으로 가려는 이데아의 모습에 나인하트는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자, 잠깐만요! 아까부터 뭐라는 겁니까 당신들?!"

"뭐긴요. 협상 장소에 가려는 건데. 혹시 소 회의장이 아니라 다른 곳인가요?"

"그게 아니라, 아니, 협상이라니 대체 무슨 소립니까!"

만약 나인하트가 좀 더 정신을 다잡았다면 이데아의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에 은근히 비웃음이 스며들어있는 걸 눈치챘겠지만 자신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그들의 모습과 말에 거기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의 절규에 가까운 물음에 검호는 표정 하나 바꾸지않고 무뚝뚝한 얼굴로 반문했다.

"일주일 전에 예고하지 않았나."

"무…… 슨 말을! 당신들이 한 건 선전포고─!"

"이봐, 헛소리 작작해."

검호의 뒤에 서 있던 세피로트가 인상을 쓰며 으르렁거렸다. 흡사 거대한 사자 조각상이 살아움직이는 듯한 위압감에 나인하트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예정 다 알리고 시간까지 줬으면 됐지 이제와서 뭘 몰랐다는 투로 징징대는 거야. 그 나이 먹고 그러고 싶냐?"

순식간에 나잇값 못하는 사람으로 격하된 나인하트는 곧바로 반박하려 했으나, 맹수처럼 번뜩이는 청록색 시선에 몸이 마비되어 그러지 못했다. 그런 그를 보다못해 다른 이들이 나섰다.

"내가 보기에 우기는 건 너희같은데?"

"그 짓을 선전포고가 아니라고 하는 게 더 말이 안되는 것 같다만."

검호가 특공을 할 경우 상대하기로 했으나 정작 등장한 그의 모습이 생각했던 것과 한참 달라 잠시 얼이 빠져있던 아란과 루미너스가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쏘아붙였다. 여기서 밀리면 주도권을 뺏긴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검호는 본인이 직접 대응하기도 귀찮다는 듯 이데아쪽으로 눈을 흘겼다.

"이데아."

"예."

"번거롭지만 말해줘라."

"알겠습니다. 여러분이 계속 아니라고 하시니 직접 알려주는 수고를 해야겠군요."

이어서 그녀는 흠흠, 작게 헛기침을 하는가 싶더니 일주일 전 에레브를 강타했던 창에 쓰여진 예고장의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을 시작으로 한 정중하면서 오만한 그 예고가 그녀의 입에서 우아한 어조로 흘러나왔고, 많은 이들이 다시 적개심을 띄기 시작했다. 말을 끝맺을 쯤엔 대부분의 이들이 날 선 무기들과 파괴적인 마법들이 당장이라도 쏘아질듯 다시 그들에게 겨누어졌다.

그 살갗을 뚫을 기세의 적의에, 이데아는 당황은 커녕 안경을 살짝 올리며 날카롭게 웃어보였다.

"귀가 있으신 분은 잘 들으셨겠지만, 방금 전의 그 예고 어디에도 '에레브와 싸우겠다'는 말이나 단어는 하나도 없습니다."

"음……?!"

"예. 단 한 마디, 한 글자도 없다고요."

봉인석을 받으러 찾아가겠다. 그뿐이었다. 정확히 어떻게, 무슨 수단으로 봉인석을 받아간다는 말은 아예 쓰여있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침공할 거라 예상하고 전투만 준비한 너희가 어리석은 거다. 그녀의 뒷말까지 유추해낸 루미너스는 빠르게 반박했다.

"잠깐, 그렇다면 협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힘든 거 아닌가. 구체적인 방식이 명시되지 않았다면 대상의 전적에 따라 추론할 수 밖에 없는데, 너희 블랙윙이 여태까지 한 일은 일방적인 강탈뿐이지 않나."

"아니죠. 전적이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엔 굳이 예고장을 보내주는 친절함을 베풀었잖아요?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이전과 같은 방식이라면 그냥 급습하고 말지 왜 일시, 장소, 용건 다 알려주고 일주일씩이나 시간을 줬겠냐고. '이번에는 다르니까' 그렇지.

"대상의 전적만 보고 '이제까지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거다'고 확단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죠. 거기다 하나 더, 저희는 봉인석을 '받아가겠다'고 했지 '가져가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어쨌다는─!"

"두 단어의 의미상 차이를 모르시겠습니까? 가져간다는 건 대상을 옮긴 이가 그 대상의 소유의 주체가 된다는 거고, 받아간다는 건 물건을 주는 이가 소유의 주체이며 그의 허락 없이는 물건을 가질 수 없다는 겁니다."

사소한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이 두 단어의 차이는 컸다. 용의 후예들이 '봉인석을 받아가겠다'고 말했다는 즉, 봉인석의 소유권을 가진 에레브에게서 허락을 받고 봉인석을 가져가겠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이 말의 뜻은 '너희의 허락을 구하겠다'─ 즉 이제까지 써온 무력적인 수단이 아닌 상대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 요컨데 협상을 쓰겠다는 암시인 것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렇게 알 수 있도록 암시를 해줬는데, 설마 전혀,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나요?"

뱀처럼 서늘한 황록색 눈이 나인하트와 시그너스 여제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용의 후예들이 뜬금없이 예고장을 왜 보냈는가 의구심을 가지긴 했지만 이런 이유에서일 줄은 미처 몰랐거나 그럴 리 없다고 일찌감치 단정해 현 상황을 초래시킨 장본인들이었고, 때문에 더욱 격하게 반발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애초부터 저희는 당신들이 협상을 걸든 협박을 하든 봉인석을 내주지 않을 겁니다."

"그건 만에 하나 있을 참사를 대비한 메이플 월드의 보물입니다! 그런 걸 테이블에 올릴 것 같습니까?!"

"…… 라는 데요?"

이데아를 내세우고 그녀와 다른 이들의 언쟁을 강건너 불보듯 지켜보던 검호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협상이 그렇게 싫다면 지금 우리랑 싸워도 상관없는 모양이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검호의 몸에서 눈이 아플정도로 선명한 붉은 색의 기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붉은 기류에 닿은 풀들은 순식간에 누렇게 말라비틀어졌고, 그 광경에 검호와 비교적 가까이에서 무기를 겨누고 있던 이들은 반사적으로 붉은 기류에서 떨어지기 위해 뒷걸음질 쳤다.

검호는 자신을 향해 창을 겨누고 있는 한 병사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흠칫 놀라는 병사를 신경쓰지 않고 창날 하나를 붙잡아 붉은 기류로 휘감았고, 창은 눈 깜짝할 새에 시뻘겋게 녹쓴 고철덩어리가 되어 그의 손아귀에 으스러졌다.

손안의 붉은 녹가루를 툭툭 털어낸 그는 그대로 팔짱을 끼며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을 한차례 쭉 훑어보았다.

"보아하니 우리가 예고한 협상의 준비대신 저것들을 모으느라 시간 낭비를 한 모양인데,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직접 깨닫게 한 다음 우리 손으로 직접 테이블에 앉혀주길 원하나."

당장 튀어나가려는 아란을 팬텀과 루미너스가 급히 제지했다. 이거 놔!! 조금만 참아라. 결정을 내리는 건 우리가 아니야.

"─선택권을 주지 시그너스 여제."

모든 시선은 그에게로 몰렸다.

"그대가 봉인석 협상을 원치 않는다면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물러가줄 수 있다."

조금 전까지 하던 말과는 반대로 너무나 순순히 물러가겠다는 말을 입에 담는 그의 모습에 몇몇이 당혹성을 내뱉으려는 찰나, 다음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봉인석을 포기하지 않을 거다. 그것을 가져가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이곳에 다시 올 것이며, 그때는─"

지금처럼 얌전히 협상따위의 수단을 쓸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물러나달라고 말해야하나 망설이던 시그너스는 파리해진 입술을 꾹 다물었다. 지금 그들을 물린다면 오늘의 피해는 없겠지만 그 다음에 정말 본격적인 공습을 받을 것이다. 거기다 봉인석을 가져가는게 목표인만큼 한 번 지켜낸다 해도 이후에 계속 공격을 가하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뻗어가는 사이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대가 협상에 응해 우리를 이긴다면, 다시는 봉인석을 가져가기 위해 에레브에 찾아오지 않겠다."

어느 쪽도 섣불리 고를 수 없는 선택지였다. 시그너스는 떨리는 눈썹에 힘을 줘 애써 인상을 쓰며 나직히 물었다.

"……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죠."

"증거를 원한다면 보여주지."

검호는 유에에게 눈짓을 보내며 비행유적을 가리켰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유에는 정령 하나를 불러다 선상 위로 보냈고, 얼마 지나지않아 비행유적은 섬으로 내려둔 빛의 계단을 없애고 서서히 섬에서 떨어졌고, 그대로 저 멀리까지 가버렸다. 스스로 퇴로를 차단하는 행동에 뭘 하려는 건가 지켜보던 이들은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이걸로 지금 에레브 섬에 발을 디디고 있는 용의 후예는 우리 5명이 전부가 됐다."

"무슨 생각인 거야?"

"오늘 우리가 온 목적이 어디까지나 협상이며, 내가 방금 한 말들을 거부한다 해도 너희쪽에서 강제 이행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지. 비행선이 떠남으로 현재 우리는 고립되었고 여기는 너희의 홈 그라운드니까."

고립된 거라 보기엔 여유가 흘러넘치는 걸 넘어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 같은데. 팬텀의 중얼거림을 들은 여러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증거가 부족하다고 느낀 건지 검호는 이데아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녀는 검호의 옆으로 갔고, 그는 왼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렸다. 이번엔 또 뭘 하려는 건지 지켜보려던 이들 중 몇몇은 이어진 상황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의 왼 손등에서 삐죽삐죽한 빛의 가지가 자라더니 이데아의 목을 휘감는 게 아닌가. 저 빛의 가지가 무엇인지 알아본 마법사들은 경악했고, 알아보지 못한 이들도 다음 순간 그의 말에 당황했다.

"만약 내가 방금 한 그 말들을 어기면 그녀는 죽는다."

"그, 갑자기 무슨?!"

"그녀는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데 큰 공헌을 했고, 또 앞으로의 일에서도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내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지. 내가 그런 이를 죽게 할 것 같나?"

용의 후예의 책사 이데아. 그녀의 목숨을 걸고 내 말이 사실임을 보증하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데아의 위치가 중요 간부인 건 물론 아무리 못해도 그의 최측근임을 파악하는데엔 충분했기에 그의 말을 더이상 마냥 허세나 속임수로 치부할 수 없음을 깨달은 이들은 침음을 흘렸다. 동시에 그런 이의 목숨을 태연하게 걸어버리는 그의 모습에 거부감을 가진 이도 있었다.

"정말 그 정도로 떨어진 건가 검호."

"뭐가 말이냐."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진 믿기 힘들었다만, 이렇게 보니 싫어도 믿어야겠군. 무슨 생각으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지."

루미너스는 예리한 창날처럼 새파랗게 빛나는 눈으로 검호를 노려보았다. 반면 그의 날선 시선을 받은 검호의 붉은 눈엔 별다른 감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답할 이유 없다."

"검호……!"

"무기 치워 마법사 양반. 우리는 싸우러 온 게 아니지만 당신들이 먼저 무력을 쓴다면 그에 따라 '정당방위'로 대응할 수 밖에 없으니까."

그의 손에 들린 샤이닝 로드가 치켜올라가며 날카로운 빛 조각이 맺히는 걸 본 세피로트가 바람처럼 빠르게 검호의 앞을 막아서며 마법을 콱 움켜쥐어 부쉈다. 그를 공격했다간 나와 싸워야 할 거야. 그 좋은 머리로 신중하게 판단하라고. 루미너스를 뒤따라 검호를 추궁하려던 아란도 이를 갈며 마하를 콱 움켜쥐었다.

한편 이데아의 목을 휘감은 빛의 가시나무가 무엇인지 한 눈에 알아본 하인즈는 혀를 차며 기함했다.

"제정신인가. 그런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면서 자신이란 존재 자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리다니."

"그게 어때서요?"

"지금 자네의 목숨이 보증금으로 걸리는 걸 보고 그런 말이 나오는 겐가."

최상위급 계약 마법 기아스. 스스로의 의지로 자기 자신에게 목줄을 채워 타인에게 바치는 그 마법이 실제로 사용된 걸 본 적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어딘가 나사가 빠졌거나 조건을 완화시킨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저건 아주 제대로 사용된 거다.

그리고 그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면서 자신의 자아를 타인에게 바치다니. 혀를 차는 하인즈에게 이데아는 콧웃음치며 대꾸했다.

"별로 상관없습니다만?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지킬 겁니다. 그래서 이 마법을 쓸 때도 망설이지 않았죠."

그가 목줄을 쥔다 해도 제 자아를 부수거나 죽이지 않을 거란 걸 아니까 순순히 넘긴 겁니다. 아니었으면 그런 일을 할 리 없잖아요? 당신 말대로 전 이런 마법을 쓸 수 있을만큼 뛰어난 마법사인데.

"그보다 이거 밝기 좀 줄여주실 수 없습니까. 안경알이 빛에 반사되서 앞에 잘 안 보이는데요."

"알았다."

검호는 살짝 손을 움직여 빛의 가시나무를 작게 줄였다. 물론 줄어들기만 했지 그가 제 말을 어기면 이데아의 목을 날려버릴 거라는 건 변함없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여제를 보았다.

"이 정도면 내 말이 아주 못 믿을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결정을 내렸나 시그너스 여제."

"…… 시간을 줄 수 있습니까."

"어느 정도 필요하지."

설마 진짜로 또 유예시간을 줄 줄은 몰랐던 시그너스는 당황하는 표정을 그대로 보였다가 빠르게 지우며 머리를 굴렸다. 터무니없이 많은 시간은 애초부터 무리.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으면서 최대한 피해가 적은 답을 고르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대략─

"반나절 정도 가능합니까."

"안된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고 싶지 않은데요. 2시간은 어떠신지?"

고작 2시간으론 각자의 의견을 듣는 것만으로 훅 가버리기에 당연히 못 들은 척 흘려넘겼다. 처음부터 크게 부른 것도 저쪽 한계치를 알기 위해서였지 진심도 아니었고.

"5시간. 그 밑으로는 곤란합니다."

"알았다. 그럼 5시간 뒤에 소 회의장에서 보도록 하지."

"그 시간동안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바랍니다 시그너스 여제."

고도의 조롱인지 의례상 행동인지, 귀족처럼 품위있게 인사해보인 이데아는 그대로 당당한 걸음으로 인파를 가르며 소 회의장으로 향하는 일행들의 뒤를 따라가다 갑자기 걸음을 멈춰 살짝 고개를 돌렸다.

"참, 한 가지 더 물어볼 게 있는데 답해주실 수 있으신지?"

"이번엔 뭡니까."

이데아는 스산한 나인하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빙긋 웃었다.

"이곳에 흡연구역은 어디 있죠?"

"…… 예?"

"혹시 없나요? 설마 에레브에 흡연자가 한 명도 없을 리가 없는데."

"아, 그, 소 회의장 근처에 하나 있긴 합니다만."

"그렇습니까. 대충 찾아보면 되겠군요."

그럼 이만 실례하죠. 정말 물어볼게 저것뿐이었는지 그녀는 다시 일행들을 뒤따라갔다.

***

검호side.

"─그렇기때문에 시그너스 여제는 결국 협상을 받아들일 겁니다."

이데아는 말을 끝맺으며 손가락으로 휙휙 돌리던 만년필을 정장의 가슴주머니에 꽂아넣었다. 아까 얼굴에 힘 빡 주던 게 완전 연기였는지 세피로트는 의자를 반쯤 젖힌 건들건들한 자세로 물었다.

"엄청 자신만만하게 장담하네. 만약이라도 거부하면?"

"그럴 리 없습니다."

"확신의 근거가 뭐냐."

"간단합니다. 그 책사가 저와 같은 방식으로 사고한다면, 그 소녀는 검호 당신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하거든요."

"뭐?"

나랑 그 어린 여제 사이에 공통점이란게 있었나. 이데아는 쭉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당신은 이 세계의 사람들이 최대한 죽지않길 원하고, 또 그렇기때문에 자신이 손해를 입을지언정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않도록 노력하죠. 방법이 엇나갔어도 예나 지금이나 그 부분은 변하지 않았고요."

"그게 나와 여제의 비슷한 점이란 거냐."

"그녀는 메이플 월드의 황제에요. 누구보다도 메이플 월드에 사는 사람들을 안위를 걱정하고 또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스스로의 안전이 다소 위태로워지는 것도 기꺼이 감수하는 '선한 사람'. 여기까지면 각이 나오지 않습니까?"

하하…… 이거 참. 내 옆에 앉은 유에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검호. 새삼스럽지만 저 여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적으로 돌리지 마라. 적의 선의마저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걸 무슨 수를 써서든 가져가는 권모술수에 능한 타입이다."

"나도 잘 안다. 그리고 다행히 지금은 우리 아군이지."

"그녀의 입장에서 두 선택지의 리스크를 계산해볼 때, 전자의 선택지는 막대한 피해만 예정되어 있어요. 반면 후자의 선택지는 아~주 잘하면 적 하나를 영구히 막을 수 있고, 못해도 물건 하나 잃어버리고 끝이죠. 물론 그 물건이 무척 귀중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당장 사람과 섬 모두 무사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망설인 것이다. 만약 봉인석을 더 우선시했다면 시간을 달라고도 안 했겠지. 단호하게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거기다 협상이라는 자리에 올릴 패가 없는 그들의 입장에서 봉인석을 걸기만 하면 저희의 정보를 어떻게든 알아낼 기회이기도 하죠. 물론 저희도 어느정도 정보를 줄 용의가 있고요."

"베베 꼬거나 중요한 부분을 뚝뚝 잘라낸 것들을 말이지."

"그게 협상의 기본이랍니다."

저 여자가 지금은 노바족의 부흥을 위해 분골쇄신을 넘어 영혼까지 갈아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노바의 수호자지만, 스펙터와의 전쟁이 터지기 전엔 고위 귀족출신에 노바 왕가를 지키는 수호자로서 다른 귀족들과 아가리 파이팅을 하는 게 일상이었단다. 무슨 기만과 통수를 호흡처럼 쓰더니 전직이 그래서였어.

"무엇보다 봉인석은 물리적인 피해는 복원할 수 있지만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다는 한계가 명백합니다. 오늘 협상을 거절했다간 공습을 받을게 분명한데, 그 공습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섬은 복원될지언정 그들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거죠. 예, 이쯤이면 시그너스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다 나왔군요."

"역시 우리 책사 씨는 한결같이 악랄하다니까. 존경스러울 정도야."

"만약에 대해선 고려하지도 않는 건가."

"간단하게 당신이 여제의 입장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신이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겁니까?"

나라면 어쩔까─라.

"먼저 그딴 선택지를 들이미는 놈 머리를 박살낼 것 같은데."

"…… 힘이 없다는 가정 하에 말이죠."

"제대로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을 경우? 그럼 일단 주고 봐야지. 주고 나서 뜯어낼 수 있는 건 최대한 다 뜯어내기 위해 노력할테고. 더 나아가 가능하다면 되찾기 위한 방법도 알아보겠지."

"시그너스 여제도 그렇게 할 겁니다. 충분히 답이 됐죠?"

"그래."

애시당초 거절할 능력이 없다는 거네. 에레브 입장에선 그게 가장 손해이기도 하고. 좀 전에 전령으로 썼던 바람의 정령을 손안에서 놀아주던 유에가 물었다.

"허나 만약에라도 저들이 테이블에 올릴 패가 있고 또 그중에 우리에게 치명적인게 있다면 그땐 어떻게 할 거지."

"그것도 좋죠. 아니, 오히려 가능한 한 많은 패들을 올려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유가 뭐지."

이데아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는 아이같은 얼굴로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저들이 저희에 대해 모르지만, 저희도 저들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요. 이 기회에 저들이 얼마나 알고 있고 또 어디까지 가능한지 볼 수 있겠죠."

상황이 어려운만큼 동원할 수 있는 건 다 동원해야 하니까. 때문에 그녀의 말대로 이번 협상은 달리 보면 에레브-연합이 가진 패가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에의 표정은 썩 좋아지지 않아 이데아는 미소를 지우며 물었다.

"걱정하는게 나쁜 건 아니지만 과한 우려는 오히려 독입니다. 설령 에레브가 가진 패중에 저희에게 굉장히 치명적인 게 있다 해도, 그게 무엇이든 간에 무효화 할 수 있는 비장의 패 역시 준비해 왔잖아요?"

"그렇, 지."

"당신도 잘 알면서도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 겁니까?"

유에는 손가락에 달라붙는 바람의 정령을 조심스레 떼어내며 말했다.

"…… 감이 좋지 않다."

"당신 직감이 말입니까?"

"그래."

"흐음……."

다른 사람 말이었으면 쓸데없는 불안이라고 일축했겠지만 유에는 영웅 중 한 명이다. 그리고 영웅쯤 되는 이의 직감은 단순한 감이 아니라 통찰력의 일종이다. 실제로 유에의 감은 몇 번 맞은 적도 있고. 팔짱을 끼며 손가락으로 팔을 몇 번 톡톡 두드린 이데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피로트. 잠시 저랑 같이 담배 좀 피러갔다 옵시다."

"엉? 왜 하필 나랑?"

"여기 사람들 중에서 흡연자는 당신과 저밖에 없잖아요."

"너도 흡연자였냐."

"…… 나 담배 끊은지 꽤 됐는데."

"그러니까 간만에 피우자고요."

무슨 논리야 그거. 정작 세피로트는 그럴까~ 흥얼거리며 그녀와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 무례한 인간의 이마를 조금 지져주고 올테니 잠시 기다리고 있으세요."

"잠깐 하필 나인 이유가 그거였어?!"

"당신 말대로 저는 악랄하고 뒤끝 긴 여자거든요. 빨리 따라오세요."

"악, 악! 머리 당기지 마! 이거 겨우 만든 헤어라고!"

"이 비싼 정장 구겨지느니 머리 좀 망가지는게 더 낫습니다."

"내가 정장만도 못해?!"

그야 물론이죠. 이게 얼마짜린데. 세피로트는 좀 전에 에레브 사람들 앞에서 간지나게 폼 잡았던 모습이 죄다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들만큼 꼴볼견으로 이데아에게 끌려갔다. 근데 진짜 저 올백머리는 어떻게 수습할까. 더벅머리라 저렇게 넘기는데 왁스 엄청 썼던 걸로 아는데.

그녀가 하필 세피로트를 데려간 이유는 단순히 같은 흡연자라서 일 리가 없다. 아무래도 유에가 말한 불길함이 무엇인지 알아내는데 저놈이 필요한 모양이다.

거기까지 생각할 때 나는 문득 주위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는 걸 알았다. 유일한 여자인 이데아와 말 많은 세피로트가 가버린 회의장엔 나와 유에, 카이저 세 사람이 자리에 남았고, 이 중에서 먼저 말 꺼내고 남은 시간동안 수다 떨어줄 분위기 메이커따위 없다. 거기다 우리 셋 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다.

"……."

"……."

"……."

결국 우리는 숨막히는 침묵 속에서 이데아가 돌아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

side out.

용의 후예들이 소 회의장으로 간 이후, 5시간의 유예를 어찌어찌 얻어낸 에레브 - 연합의 분위기는 뒤숭숭하기 짝에 없었다. 각자 생각은 달랐지만 적어도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먼저 입을 연 이는 뜻밖에도 무릉의 무공이었다.

"무슨 생각을 한 겐가 시그너스 여제."

늙었지만 아마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손꼽힐만큼 강한 무도가인 늙은 팬더는 검은 털에 뒤덮힌 눈을 가늘게 떴다. 시그너스는 한 차례 숨을 길게 내뱉으며 무공과 다른 이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여러분께 정말 죄송스럽게도 저는 저들이 이렇게 나올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아무것도 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상황이 닥쳐버렸고, 이런 상태에서 어느 쪽이든 함부로 결정해선 안된다고 생각해 다소 굴욕적이지만 그들에게 시간을 요청한 겁니다."

"본인들이 잘못했다는 건 인정하는 군요?"

용의 후예 최고 간부들이 온다는 사실에 전력에 가담하러 왔으나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해 지켜보았던 지그문트가 날선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이제 어떻게 할 거죠? 시그너스 여제 당신의 말대로 지금 우리는 협상에 전혀 준비되어있지 않은데, 이런 상태에서 협상에 응해봤자 봉인석을 제대로 지키는 건 불가능할 게 뻔하고, 그렇다고 거절했다간 섬이 사라질때까지 지긋지긋한 블랙윙들의 공습을 받을 텐데."

"말이 심합니다!"

"심하다고요? 하! 책사라면서 예고장 하나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이 상황을 만든 인간이 그딴 말을 지껄일 자격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이야말로 아무것도 한 게 없으면서 제 마스터에게 소리만 높이는 군요."

"뭐라고요?!"

평소 사이가 안 좋았던 나인하트와 지그문트, 테이아까지 합세하며 고성이 높아질 낌새에 그들과 가까이 있던 메르세데스가 세 사람을 가르며 제지했다.

"그쯤해둬라. 많은 말을 하고 싶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하지만……!"

"저들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하지 못한 건 에레브의 잘못이 맞다. 허나 이후 에레브는 저들에게 받은 예고장을 여기있는 사람 대부분에게 알려주었지. 그 중에서 예고장의 내용이 이상하다던가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어보인다고 말한 사람이 있나?"

그제서야 지그문트를 포함한 불만과 불신을 품은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아무도 없었다. 일주일이란 촉박한 시간속에서 전투를 대비하기 바빴으니까. 메르세데스는 자신의 말을 정리했다.

"그들이 판단을 잘못한 건 맞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에레브의 탓만 할 수 없다. 결국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건 똑같으니까. 그렇기때문에 지금 시그너스 여제가 우리 모두에게 의견을 구하려는 거다. 알겠나?"

"…… 알겠습니다."

"알았으면 됐다."

적어도 납득은 다 된 듯한 사람들의 모습에 시그너스는 상황을 빠르게 정리해준 메르세데스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메르세데스 님의 말대로 제가 시간을 요청한 건 앞으로 해야하는 결정에 여러분과 논의할 필요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어느 쪽을 택하든 여러분께 직접적인 영향이 갈 게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협상을 거부하면 오늘은 아무 일 없이 물러난다지만 여기에 또 함정이 있다.

"'오늘'물러난다고 했지, '내일' 어떻게 나올지는 말 안했다는 겁니다."

"현재 시간은 오전 11시 10분. 유예 시간은 5시간 뒤니까 약 오후 4시. 다음 날까지 8시간 기다린 다음 공습해도 자기는 말을 지켰다고 할 거고 또 딱히 틀린 말도 아니란 거죠."

테이아는 회중시계를 확인하며 덤덤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저희는 8시간 만에 블랙윙의 총 공세를 막아낼 준비를 할 수 없습니다. 싸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한 모험가가 손을 들어 물었다.

"그럼 협상을 받아들일 겁니까?"

"이제부터 그걸 논해야죠."

"조금 전에 놈들의 우두머리로 보인 그 남자가 누군지 압니까?"

"그는─"

나인하트는 말하기를 망설였다. 지금 말해도 되나? 어차피 알려졌어야 하는 사실이고 또 더 이상 숨길 수 없지만 이 상황에서 적의 수장이 과거 최강의 전사이자 영웅이었다는 것을 알리기엔 타이밍이 심각하게 좋지 않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직후 무의미하게 되었다. 다른 이가 먼저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 검호라 불렸던 이로, 8백여 년 전 검은 마법사와 싸웠던 영웅 중 한 명입니다."

서슴없이 핵폭탄을 터뜨린 사람은 데몬이었다.

"영웅?!"

"그게 뭔 말이야?"

"영웅이 왜 블랙윙에 있어?"

"저 말이 사실입니까!?"

메르세데스가 겨우 가라앉혔던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너……!"

"설마 언제까지고 숨길 생각이었습니까? 코앞에서 봤으니 애매했던 가정도 확실해졌을테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할 일이 그를 상대하는 건데 그에 대해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구구절절 맞는 말 뿐이라 메르세데스는 이를 갈며 데몬을 노려보기만 할 뿐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저, 저 말이 사실이야 테스 형?"

"하아─ 그래. 그 남자는 과거 영웅 중 한 명이자 당시 최강의 전사였던 사람이야."

아마 지금도 최강이겠지. 굳은 얼굴로 론도에게 대답해준 테스는 거칠게 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두 쪽으로 갈라진 메이플 아일랜드에 남겨진 흔적을 보고 혹시나했는데 역시나였냐. 하필 그 사람이 적이라니 최악이네.

"영웅이 왜 블랙윙 수장이 되어있는데?"

"내가 아냐? 아니 솔직히 내가 제일 궁금하다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은 절대 타락할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 헤아릴 수 없을만큼 군단장과 싸우며 당시 사람들을 가장 많이 구한 영웅이란 단어의 표본. 검은 마법사와 싸워 처음으로 유효타를 먹인 장본인. 그가 검은 마법사에게 상처를 남김으로 봉인을 시도할 수 있었다지. 동화 속 용사의 활약상같은 이야기를 짤막하게 들은 올리비아는 감탄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서 그렇게 잘 생겼던 거구나."

"…… 의식의 흐름이 뭐가 어떻게 이어지면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거냐."

"그 상황에서 그가 미남이라는 사실에 주목한 니가 더 놀랍네."

"시, 시끄러! 나도 기세때문에 좀 쫄았다가 잘 보니까 엄청 잘생겨서 그쪽으로 신경이 쏠렸던 거라고!"

"그런 식으로 두려움을 이겨낼 수도 있구나. 대단하네 올리비아."

비꼬는 건지 감탄하는 건지 모를 말을 하며 슈가는 텅 빈 웃음을 흘렸다. 아 슈가 너까지! 우스운 방식이었으나 이들은 적이 영웅이라는 충격을 어찌어찌 이겨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왜 영웅이 블랙윙에 들어간 겁니까!"

"그 자가 블랙윙이 되었다는 사실을 당신들은 알고 있었습니까?!"

"그는 얼마나 강한 겁니까? 우리가 상대할 수는 있습니까?"

그들의 상당수는 편린이나마 영웅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눈으로 본 이들이었다. 청문회 사건과 미스틱 게이트 일로 영웅들은 제 힘을 발휘해 적들을 물리치며 사람들을 구했었기에, 그들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아는만큼 그 힘이 적으로 돌아서면 얼마나 끔찍해질지 대략적이나마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폭우처럼 쏟아지는 질문에 시그너스는 한 마디도 답하지 못했다. 본인은 물론이고 영웅들도 모르는 걸 어쩌란 말인가. 알았으면 옛저녁에 무슨 수든 썼겠지. 대답 하나 못하고 쩔쩔매는 그녀의 모습에 질문은 점점 과격해지더니 서서히 비난에 가까워져 갔다. 우리더러 영웅과 싸우라는 거야?! 영웅이라면서 동료가 저렇게 될 때까지 뭘 한거야!

숫재 마녀재판에 가까워지는 장내의 분위기를 정리해준 건 상황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쿠웅──!

"예. 하고싶은 말 다 했으면 이제 입 좀 다물어주시죠."

뭔 병주고 약주고냐며 기가 찬다는 얼굴로 자신을 보는 메르세데스를 무시한 데몬은 바닥을 내리찍은 셉터의 포스를 거두며 가볍게 털어 들아올렸다.

"시그너스 여제와 영웅들을 계속 추궁해도 나오는 건 없을 겁니다. 그들도 딱히 아는 건 없으니까요."

"하지만 조금 전에 그 자와……!"

"그가 블랙윙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선 어렴풋이 짐작이나마 했었습니다. 블랙윙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본 목격자가 에레브에 제보를 했었거든요. 하지만 생각해보시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영웅이 과거 죽도록 적대시했던 놈들의 조직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제보 하나로 믿으실 수 있습니까?"

못 믿지. 상식적으로. 심지어 영웅과 여제같은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런 정보를 다루는데 신중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함부로 넘겨들을 만한 것도 아니었고, 또 목격자도 하나가 아닌 여럿이었는데다 지금까지 베일에 쌓여있던 블랙윙 최고간부에 대해 조사를 해야할 필요성이 있었기에 시그너스 여제와 영웅들도 비밀리에 알아보았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슬리피우드 조사가 바로 그 건이죠."

"그건 갑작스럽게 발생한 지진의 원인을 조사한다고……."

"그 지진의 발생원인이 군단장들의 충돌로 추측되었었습니다. 아직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마족 군단장과, 그와 맞설만큼 강한 또다른 강자가 지하에서 부딪히며 지진이 발생한 게 아닐까 하고요."

고작 두 사람이 부딪혔는데 어떻게 지진이 발생할 수 있냐는 많은 이들의 의구심에 데몬은 시큰둥하게 답해주었다.

"뭘 놀랍니까. 당장 저만 해도 옛날에 스킬 한 번 써서 산사태도 일으켰는데."

[자연파괴 했었다는 말을 정말 태연하게 하네.]

"당신은 좀 다무세요."

왜 안 끼어드나 했네. 짜증이 났지만 에반이 필사적으로 미르의 입을 다물어주어 그는 말을 이을 수 있었다.

"그들은 적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했습니다. 여러분을, 메이플 월드를 위해서 말이죠. 그 수확이 많지 않다 해서 그들의 노력이 폄하되어선 안됩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위기상황이고, 당장 해결해야할 사건이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가장 고민하고 어려운 선택을 하셨을 분을 아무것도 안 했다고 몰아가며 하나로 뜻을 합칠지도 못할망정 분열하는게 옳다고 생각합니까?"

저 인간, 아니 마족, 아니 반마족 진짜 말 잘하네. 그러게. 군단장의 자질중에 선동도 있나봐. 그럴지도 몰라. 군단의 수장이라는 자리에서 먹은 짬밥이 폼이 아니었어. 저런 식으로 옛날에 부하들 사기를 올려 이끌었었겠지.

뜻이야 어쨌든 에레브와 영웅들이 자기들만 중요 정보를 알고 비밀 행동 하다 이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을 번지르르하게 메이플 월드를 위해서라고 포장하고 현재의 위기 상황을 부각시켜 스리슬쩍 넘겨버리는 모양새가 아주 능숙하다. 옆에서 보고있던 메르세데스는 물론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고민하던 아란과 루미너스의 표정은 짜게 식었고 팬텀은 참 대단하다고 놀라움 반 비꼼 반으로 감탄했다.

"그럼 당신은 이 상황에서 뭘 해야한다고 생각합니까?"

"제 생각 말입니까.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저들과의 협상을 받아들이는게 낫다고 봅니다."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야 너?"

위엄있는 왕의 말투마저 잊어버린 듯 메르세데스는 상당히 빡친 얼굴로 그에게 반문했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던 분위기는 아까와는 다른 의미긴 하지만 어쨌든 가라앉았기에 시그너스는 몇 번 심호흡을 하고 데몬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단적으로 말해서 현재의 에레브에는 그 5명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겨우 그런 이유로……!"

"'그런 이유'?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이유인지 모르겠습니까? 힘이 없는 자는 선택권조차 없단 말입니다."

지키는 것도, 저항하는 것도 힘이 없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다분히 마족다운 힘의 논리였지만 이 상황에서 가장 옳은 소리이기도 했다.

"나약한 자는 자기 죽을 자리도 고를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들이 내준 협상이라는 또다른 선택지는 참으로…… 평탄하고 얌전한 길이죠. 거기서 져봤자 봉인석 하나 잃는 걸로 끝나니까요. 자비롭다고 생각될정도로 온건한 방법임을 왜 모르는 건지."

"그건 니놈 생각일 뿐이잖아!"

"그리고 현실이기도 하죠. 잊으셨습니까? 저는 과거 그와 가장 많이 싸운 군단장이었습니다. 제가 거느렸던 마족 군단은 여기 모인 전력보다 배는 더 강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다른 군단장들과 합공해서 그와 싸우기도 했죠."

그럼에도 그가 이긴 적은 사실상 없었다. 전략상 이긴 적은 있었을지언정 힘에서 이긴 적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여기 온 그는 무기도 들고있지 않고, 그 재앙같은 오닉스 드래곤도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약해진 것도 아니잖습니까. 정말 전투가 벌어진다면 무기 하나 뺏어다 메이플 아일랜드처럼 에레브를 두동강낼지 누가 압니까."

"메이플 아일랜드가 쪼개진 게 그 사람때문이었습니까?!"

"당장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니 넘어가도록 합시다."

아니 그게 중요하지 않은 거면 뭐가 중요한 거야. 어차피 지금은 복원됐으니 넘어가자고요.

"우리가 지금 해야하는 것은 빠른 결정입니다. 협상을 하자는 건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이고, 실제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건 시그너스 여제, 당신이죠."

"…… 예. 그렇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들과의 협상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거부하시겠습니까."

후우─ 시그너스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작게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받아들일 겁니다."

"여제님!"

"유감스럽지만 우리에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들과 싸우는 것보다 협상하는 쪽이 차라리 더 나아요."

"그렇다 하더라도 블랙윙에게 저희 손으로 봉인석을 내주는 건─!"

"미하일. 그리고 여러분. 제가 협상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불만스럽습니까? …… 꽤 많군요."

대놓고 고개를 끄덕인 이들부터 은근히 불만스럽다는 표정인 이들까지 다양했다. 그런 이들을 쭉 흝어본 시그너스 여제는 힘빠진 웃음을 지었다.

"저는 어떨 것 같습니까?"

"……."

"……."

그리고 그런 결정을 내려야하는 시그너스의 심정은…….

"여러분께 죄송하지만 저는 그가 협상을 하자는 말에 솔직하게 기뻐했습니다."

여제님?! 옆에서 당황하는 나인하트에게 그녀는 잠시 조용히 해달라고 손짓했다.

"그 이유는, 조금 전 전직 군단장 씨가 말한 '처음부터 봉인석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불가능했는데 다른 방법을 받아서'나 '만에 하나라도 운이 좋으면 봉인석을 지킬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언제나 연약해보였던 시그너스는 그 어느 때보다 몸을 꼿꼿이 펴고 또박또박 말했다.

"제가 여러분을 확실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생겨서였습니다."

그녀는 황제였다. 언제 어떤 상황이든 메이플 월드의 안위를 우선시하고 또 생각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이.

"누군가는 이 결정이 불만스러울 겁니다.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제 손으로 봉인석을 내줘야 한다는 것이 달가울 리 없죠. 하지만 저는, 봉인석과 여러분의 목숨을 저울에 올리고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하는 제 입장에서 여러분을 택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시그너스의 결정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 싸우길 거부하고 협상을 택했다는 말인 즉─ 에레브의 체면보다, 마지막으로 남은 봉인석보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목숨이 더 소중했다는 뜻이다.

"저는 연합의 대표이고, 메이플 월드의 황제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결정하면서 정작 앞으로 나선 적은 거의 없었죠. 항상 기사단과 여러분의 보호만 받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녀는 무슨 결정을 내리든 그로인해 생기는 사건과 그 여파에서 가장 멀고 안전한 곳에서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여러분을 사지에 내모는 선택만은 하고싶지 않습니다."

제 입으로, 제 손으로, 저를 지켜주고 또 제가 지켜야하는 사람들에게 죽으라고 지시할 수 없어요. 그럴바엔 차라리 제가 몇 번이고 굴욕을 감내하는게 낫습니다.

그리 말하는 시그너스 여제에게서 연약함따위 보이지 않았다. 메이플 월드를 짊어진 황제. 어떤 상황에서든 결코 꺾이지 않은 의지를 품은 이만이 그곳에 있었다.

"테이아.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죠."

"예? 아, 그게 저, 4시간 10분정도 남았습니다."

멍한 얼굴로 시그너스를 보고있던 테이아가 퍼뜩 회중시계를 들어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리 많이 남지 않았군요. 루미너스 님, 팬텀 님. 여러분이 보기에 이번 협상에서 저희가 반드시 알아내야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당연히 봉인석을 가져가려는 이유과 그들의 목표지."

"거기에 왜 이런 일을 하려는 건지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까지도 추가하고."

"목적과 목표, 이유, 앞으로의 계획이군요."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소 2개는 알아내야 한다고 본다."

"그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겠네요."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에 영웅즈는 물론 그녀를 무한히 신뢰하는 기사 단장들마저 여제님 그게 무슨? 이라는 얼굴이 되었다.

"제가 협상을 받아들인 이유는 아까도 말했듯이 여러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싸움이 아닌 협상이라면 이쪽에도 승산이 없잖아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승산이 있다는 거지?"

"일주일동안 제가 한 일이 마법 방공 시스템 설치 지시만이 아니었으니까요. 테이아와 레지스탕스 분들이 알아오신 블랙윙에 대한 정보와, 에반이 조사해온 그에 대한 정보를 조합해 그들을 궁지에 몰 수 있는 정보가 혹시라도 있지 않을까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수확이 적잖아 있었구요.

"수확이 있었다고……?"

"예. 그래서 알아낸 사실들을 바탕으로 당장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협조해주시겠습니까 지그문트 씨?"

"또 저희의 도움이 필요한 겁니까."

안 그래도 그녀가 블랙윙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고 조사를 부탁해 에레브에 오기 전까지 요 일주일동안 다른 레지스탕스들과 함께 뛰었었던 지그문트는 인상을 썼다.

"예. 무조건 레지스탕스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대가는 반드시 지불해야 할 겁니다."

"물론이죠. 이번 일이 잘 된다면 블랙윙의 에델슈타인 장악력이 떨어질테니까요."

"그 말, 꼭 지키시길."

고개를 끄덕이는 여제의 모습에 지그문트는 다소 인상을 누그러뜨리며 이후 시그너스가 하는 말을 잠자코 들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시그너스의 말에 그녀는 물론이고 주변의 사람들 대부분의 표정이 기하학적으로 변했다.

========== 작품 후기 ==========

"여제…… 님?"

"왜 그러시나요?"

"진심으로 하시는 말입니까?"

"물론이죠.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에델슈타인에 연락을 보내 가능하다면 4시간 안에 준비를 끝내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저희가 놈들에게서 얻은 건 어디까지나 유예 시간이지 이런 걸 해도 된다고 한 적은─!"

"아니죠 지그문트."

시그너스는 온화한 - 그러나 어딘가 서리가 낀 미소를 지었다.

"구체적으로 '이러이러한 일은 하지 마라'라고 안 했으면 해도 되는 겁니다. 나중에 저들이 태클걸어도 '그런 말은 안 하지 않았냐'라고 받아치면 되요. 저들도 좀 전에 똑같이 했잖아요."

금지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저들 잘못이에요. 그러니 빨리 움직여주세요 지그문트 씨. 꽃처럼 웃으며 하는 말이 참 비단처럼 고왔다. 지그문트는 좀 전과는 180도 다른 여제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리다 뒤늦게 나인하트가 건네준 통신구를 받아들고 레지스탕스로 연락을 보냈다.

[저분은 정말 황제가 맞구나.]

"그러게……."

[놈들이 보여준 현실맛이 엄청 썼나봐.]

어떻게든 똑같이 맛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저 기개를 봐. 진짜 황제다워. 나 여제님이 저러는 모습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데. 내가 알아낸 스승님 관련 정보를 들으실 때도 저런 얼굴은 아니었다고.

"참, 에반?"

"예예, 예!?"

"협상 테이블에 앉을 사람 중에 당신도 넣으려고 하는데 괜찮나요?"

"제, 제가요?! 제가 어떻게 그런 자리에……!"

"당신도 충분히 자격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에 대한 정보들을 스스로 발로 뛰며 알아내 저에게 알려준 사람은 당신이잖아요."

농담이 아니야. 시그너스 여제의 제안이 진심임을 깨달은 에반은 어버버 말을 잇지 못하다 잠시 고민하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줘서 고마워요. 아니요, 저야말로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한 인원은 7명 정도입니다. 상대가 5명인만큼 그 숫자와 큰 차이가 나면 안되니까요. 저와 루미너스 님, 아란 님, 하인즈 씨, 지그문트 씨와 데몬 씨, 당신까지. 이 중 아란 님은 동행하긴 하되 테이블에 앉지는 않고 호위 전담을 부탁하고자 하는데 괜찮습니까?"

"괜찮아. 내가 테이블에 앉아봤자 여제님처럼 말을 능숙하게 할 수 있지도 않고, 같이 가는 것만으로 족해."

"승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똑같이 전사이긴 하지만 전 군단장이었던 데몬 씨는 조금 전에 발휘한 능력만 봐도 협상 테이블에서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호위 담당이 아닌 모양이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움직입시다. 저들이 봉인석을 받아가기 위해 어떤 패들을 올려놓을지, 또 협상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같이 예상해보도록 하죠."

저들의 오만한 얼굴이 부숴봅시다.

***

"호오……?"

"저쪽에서 이번엔 또 뭐래?"

"어린 나이에 의외로 꽤 강단있는 사람이네요 시그너스 여제는."

옛날에 모셨던 저희의 왕이 생각나는군요. 그분도 자애로우면서 강인한 사람이었는데. 과거 전쟁이 터지기 전, 다른 수호자들과 함께 목숨을 다 바쳐 충성했던 노바족의 왕을 떠올린 이데아의 입꼬리가 씁쓸하게 내려갔다.

"설마 요 일주일 사이에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패를 만들었을 줄이야. 심지어 저 에반이라는 꼬맹이는 루타비스에서의 기억을 다 지웠는데 용케도 많은 걸 알아낸 모양이네요."

"어찌됐든 오닉스 드래곤의 계약자니까. 프리드도 그렇고 오닉스 드래곤의 계약자는 모두 어디 하나 특출난 사람들이잖아."

"그렇긴 하죠."

당장 검호만 해도 세계 최강의 검사…… 인데 그건 오버시어한테 받은 힘이잖아. 그런 것도 계약 조건을 충족시켜주나? 되니까 계약된 거겠지만.

은월이 느낀 불안감의 정체를 알고자 이데아는 나름 편법을 쓰기로 했고, 그렇게 사용한 방법이 흡연 구역에 설치되어 있는 감시용 수정구의 해킹이었다.

본래 이 수정구는 흡연 구역에서 농땡이 피우는 기사의 감시를 위해 설치되었지만, 이데아의 손에 해킹되어 역 감시용으로 훌륭하게 이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이런게 있을 줄은 어떻게 알았어?"

"그야 저였어도 당연히 휴게실같은 곳에 감시 카메라를 달았을테니까요."

아랫 사람들이 노는 꼴을 좋아하는 윗 사람은 없답니다. 그건 그렇지.

"아, 자세한 토론을 하기위해 이동하네요. 시점을 다른 수정구로 옮겨야……."

"어디로 가는데? 나도 보여줘."

세피로트는 다 핀 담배 꽁초를 밟아 끄며 이데아 옆에 갔다.

"그 머리 좀 치워주시죠. 왁스냄새 심하게 난다고요."

"누구때문에 다시 다듬었는데. 거기다 여기 바람 잘 불어서 냄새 많이 날아갔잖아."

"그래도 납니다. 어쨌든 비키세요."

"당신만 보지말고 나도 좀 보자. 궁금하다고."

"나중에 알려줄테니까 비키라고─"

의외지만 에레브의 감시 수정구 해킹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제의 섬에 설치된 물건인만큼 불량일 리 없고, 아랫 사람 감시용이라 쓸데없이(?) 고급이기 때문이다. 해킹이 성공한 것도 철저히 이데아의 마법 능력이 뛰어나서지 물건이 허접해서가 아니며, 역 감시용으로 기능을 조작해서 시점을 휙휙 돌리는 것도 꽤 집중해서 정교하게 해야한다. 그런데 세피로트가 끼어들며 집중력이 분산되버린 결과…….

쨍!

"어, 엉?"

"이 인간이……!"

"잠깐 뭐야? 왜 터진 거야?"

"당신때문에 실수로 마력 과다주입해서 터졌잖아요오─!!"

빠아악!! 호쾌한 어퍼컷이 세피로트에게 작렬했다.

***

그리고 검호는 이데아와 세피로트가 빨리 돌아오길 제발제발젭ㄹㅏ 기다렸다고 합니다.

이번 화 내에 협상 중반부까지 쓰려고 했는데 어째선지 용량이 마구 늘어나서 실패했습니다. 어느샌가 항상 하는 말이 되버렸지만, 이번에도 늦어서 죄송합니다.

사실 크리스마스에 와서 '본편이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라고 할까 했다가 독자님들을 너무 기다리게 해서 그냥 이틀 빨리 왔습니다. 다음편은 어떻게든 빨리 써볼게요(아마도)

이번 화의 포인트는 시그너스의 황제다움입니다. 다른 메이플 패러디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전 시그너스의 황제다움을 묘사하고 싶었어요. 공주가 아니라 황제를요.

1월에 신직업이 나오네요. 생긴게 괜찮은데 복귀할까... 참, 코멘트 달아주시는 건 정말 감사합니다만 도배성 코멘트는 자제해주세요.

@류동지 - 일부러 노린거라는게 함정.

@하양네코 - 그래서 왔습니다!

@ERUDITO - (뜨끔!) 정주행 몇 번째 하셨다는 분의 말을 보면 어떻게든 빨리 써보려 하지만 제 손이 느린고로...

@디자울 - 왔습니다! 왔다고요!

@카네kawai - 그리고 올해가 가기 전에 왔다고 한다.

@by상담사 - 초반부를 갈아엎고싶은 작가의 입장에서 치명타인 정주행 n회차 알림.

@KRamiya - 시그너스가 안 나서줬으면 나인하트는 자살하려 했을걸요.

@로퓔랜 - 시그너스가 준비한 패란 과연...?

@킴마령 - 자리에 맞는 옷이었을 뿐 절대 저의 개인적 취향이(츄릅) 아닙니다.

@밤일 - 그렇게 헛고생하라고 일부러 애매하게 예고장을 쓴 겁니다.

@Alinnalae - 옆동네 숱한 이세계물들의 주인공이 죄다 일본인인 이유와 동일합니다. 변명같지만 트립퍼중 한 명은 한국인이 아니기도 하고요.

@마서 - 기사단장 이상, 카이저&엔버 급과 비슷. 몇몇은 영웅급과 비벼볼만함.

@칼크래프트 - 방법 없었으면 아마 '저 잠시 자살하고 오겠습니다', '말의 앞뒤가 안 맞아요 나인하트'같은 만담 비슷한 대화가 있었을걸요.

@호시구마유기 - 그러나... 연참은 없었다고 한다...

@에니네 - 전편보다 분량 많았던 적은 여러번 있었습니다. 용량제한이 50kb라 그 안으로 내용란을 채우고 넘기는 건 후기란에 넣는 식으로 꽤 여러 편 올렸었어요.

@노란우산s - ts외전은 제 뇌내에서 아웃됐습니다.

@Ratios - 시그너스 여제는 작전타임을 알차게 써먹었다고 합니다.

@쌀벼르 - 사이가 그걸 못하는 이유가 나중에 나옵니다.

@sick한짜객군 - 그때의 느낌을 10배이상 뻥튀기하면 나인하트의 심정.

@털쒸 - 시오버가 알려줬지요. 대충 그 몸은 누구누구로 불렸다~ 는 식으로. 근데 파픈스타부터는 안 알려줬는데 파픈은 라테일 해봐서 알았고 검호는 걍 모른거.

@tuscany - 꽁지머리도 생각했지만 어째선지 포니테일이 더 끌렸습니다.

@ㅎr늘ㅂrㄷr - 오닉스 드래곤의 지적능력은 마스터의 영향을 받습니다.

@J스티카 - 올리는 순간까지만 해도 연기 될 줄 몰랐는데...

@Faceless - 엔버의 랜드크래쉬를 잠시 떠올립시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

@미카츠키아이코 - 그거 검호가 보면 전신에 닭살이 돋아 쓰러질듯ㅋ

@끝의유무 - 쿨타임을 채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Sisre - 딱히 안 풀립니다. 저 포지션이 프라이쉬츠 속이는데 더 좋아서 그냥 유지하기로 결정.

@개문 - 이데아는 반쯤 장난, 반쯤 강태공의 심정으로 저 예고장을 썼었습니다.

@Legendssj2 - 실상:(오 준비 잘 됐네. 이제 털기만 하면 되겠군)

@니벨샤니 - 제복도 좋지만! 정장은 그거하고는 또 다른 멋짐이라고요!

@갈매기둥지 - 이래서 사람은 문서를 잘 봐야합니다. 중요 문서라면 더더욱.

@네임0306 - 당연히 안 쓰고 있죠. 정장인데.

@스핀샥 - 그리고 지신의 가호로 수능은 연기되었다고 한다.

@서월마을 - 그 이미지를 역이용해 낚은겁니다.

@anquer - 나인하트와 계약한 오닉스 드래곤입니다. 몇 화부터 출연했는지는 저도 기억이 잘 안나네요.

@ReFrante - 졸지에 에반과 시그너스가 밤새 준비한게 비장의 패가 되버림. 만약 에레브가 예상했던대로 공습이 벌어졌다면 꺼내지도 못하고 묻혔을텐데.

@하일로D - 제가 적었지만 참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비유죠.

@이루카이저 - 이번엔 루나 아이기스를 또 키우고 있습니다!

@안재형 - 사실 인게임에도 딱히 밝지 않았던 메이플(웃음)

@찬양천사 - 저런 문서는 단어 하나하나마다 속임수가 듬뿍 들어가있어서 해석하는데 엄청 주의해서 해야합니다.

@Yoontlemin - 아스카는 다른 중요한 역할을 담당.

@마늘마느리 - 표지 본 순간 싸해졌다가 첫 장 읽고 수치심에 폭발.

@mmo0522 - 그리고 온 이번 편은 좀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농담)

@socns - 평범을 가장한 낚시였습니다~ 200화 외전은 어... 써야하나.

@Blake117 - 그것보다는 더 치열할걸요.

@wjasjvh -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뇌가 하얗고 깨끗하게 표백됨.

@AbViaLectea - 저도 올릴때마다 리코멘 달려고 한 분 한 분 찾음ㅋ

@소라루 - 하지만 그냥 쓰러지지 않았다!

@sanya - (독자 입장에서)끝내주죠!

@적현월 - 이걸로 스트레스성 원형탈모 확정!

@sanarone - 다분히 의도적이었습니다.

@트루베더 - 이 책 있는 곳을 통째로 불질러버리고 싶을 걸요.

@레인D레이븐 - 간접체험 하셨네요.

@대어의예감 - 저도 이 표지가 꽤 마음에 듭니다. 아마 본편 이해를 위해 간간히 바꾸는 거 빼면 이게 디폴트가 될지도.

@레볼레이션 - 한 화 미뤄졌습니다.

@프롤마룬 - 검호 기준에서 흑역사. 다른 사람이 보면 위대한 일대기ㅋ

@Mercurius - 가뜩이나 서구권 인종이라 젊은 나이부터 빠지는데!

@Harye - 어쩌면 메이플 월드 떠나기 전에 제발 태워달라고 부탁할지도.

@으히히ㅎ - 프리드 본인에게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말이니까요.

@stella - 그러나 거짓말같이 증쇄되었다고 한다.

@월하만향 - 아니요. 은근히 각색은 되었습니다. 말을 기억하는게 프리드라 큰 틀은 유지되었지만 드문드문 빠진 부분도 있고 그럽니다.

@리물 - 검호와 이데아는 뭐랄까, 허울없이 지내는 간부와 그 비서같은 느낌.

@천궁사월 - ... 나쁘지 않은데.

@ruin62 - 대 정답!!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