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호입니DA-187화 (187/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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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데몬의 머리를 따서 뇌를 뒤지는 것(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다)이 결정되고, 현 시점에서 어찌할 순 없지만 용의 후예 - 노바족의 목적 역시 알아낸 연합측은 이제 다음 정보로 무엇을 요구할 지 고민했다.

그들이 이번 협상에서 반드시 알아내기로 정한 것은 용의 후예의 '목적', '목표', '이유', '계획'이었다. 이중 목적을 알아내긴 했지만 이는 자신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었고, 때문에 아직 알아내지 못한 것들 중에서 무엇이 가장 유용할지 계산해야 했다.

이데아는 자신들이 메이플 월드에 온 목적이 그들의 세계 그란디스를 멸망에서 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란디스를 멸망에서 구하기 위해 '무엇을' 하려고 메이플 월드에 온 걸까?

짐작가는 바는 이미 있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세계 그란디스를 구하기 위해 봉인석을 사용할 생각입니까?"

노바족이 블랙윙의 무력집단으로서 일관적으로 보인 유일한 행동은 봉인석의 강탈이었다. 처음엔 검은 마법사의 군단이자 향후 자신들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걸림돌을 치우려는 행위로 생각했지만, 현재 그들이 사실 이세계의 종족이며 자신들의 세계를 위해 메이플 월드까지 왔다는 걸 안 시점에서 그들의 봉인석 강탈 행위는 달리 해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

가령, 봉인석으로 멸망해가는 세계를 복원한다던가.

그러나 이 예상은 장렬히 빗나갔다.

"예? 아, 하하……! 설마 여제님은 저희가 봉인석으로 저희 세계를 고치기 위해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저희는 봉인석을 쓸 수 없거든요. 연합측 이들의 눈에 당혹이 스쳤다. 실제로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사용을 못하는게 아니라 사용해선 안되기 때문이라는 것까진 그들이 알 수 없었다. 봉인석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루미너스와 아란정도가 노바족이 타 차원의 종족이라 메이플 월드의 힘의 결정인 봉인석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가 조심스레 추측해볼 뿐이었다.

그런데 자기들이 못 쓴다면 왜 봉인석을 모은 거지? 루미너스는 이를 캐물으려다 충격적인 사실들에 문득 놓쳐버린 것을 퍼뜩 떠올렸다.

"그럼 왜 지금까지 봉인석을─"

"알았다. 그렇다면 그 부분은 잠시 미뤄두지."

한참 봉인석 강탈의 이유를 물으려던 지그문트는 제 말을 자른 루미너스를 노려보았다. 이 영웅이 갑자기 뭐라는 거야? 매서운 눈빛이 쏘아졌지만 그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이데아를 응시했다.

"대신 아까 했던 말을 해명해라."

"어떤 말을 말이죠?"

"좀 전에 너는 슬리피우드 기지가 마족 군단에게 점령당해 우리가 쳐들어가도 아무 상관없다고 했었지. 하지만 너희가 이종족이고, 거기에 너희 세계로 이어진 문이 있다면 - 기지를 마족들에게 빼앗긴 일이 절대로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닐텐데?"

이데아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은근슬쩍 넘기는 건 역시 무리였네. 정치는 별로라도 돌아가는 머리자체는 굉장히 좋은 마법사니 빨리 눈치챈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만. 그의 말에 다른 이들도 미처 간과해버린 사실을 깨달았다.

루타비스에 노바족의 세계 그란디스로 이어진 문이 있다면, 마족들의 습격과 아지트 점령에 이토록 의연한 자세로 연합에게 자기들 대신 마족들을 소탕해달라고 할 수 없다. 다른 무엇보다 자기들의 세계로 가는 문이 있는데! 허세를 부리고 있거나 마족들의 기지 점령자체가 거짓말이 아닌 이상은 현재 노바족은 태연해선 안되는 상황이란 말이다.

애시당초 에반이 거짓말 그만하라고 일어난 이유가 저것때문이었음을 생각하면 저 중요한 사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고 다른 쪽으로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린 이데아의 말솜씨도 보통이 아니었다.

"거기다 그가 있음에도 굳이 우리의 손을 빌려 마족들을 치려고 한 것 역시 이상하지. 나같았으면 빈사상태가 된 군단장과 마족들이 힘을 회복하기 전에 어떻게든 재반격해 아지트를 탈환하려 했지 굳이 또다른 적에게 손을 뻗어 차도살인을 꾀하는 번거로운 짓따위 하지 않았을텐데 말이야."

물론 탈환을 꾀할만큼 상황이 안 좋을 수도 있으나, 가장 큰 전력이라 할 수 있는 검호가 건재한 상황에서 연합이라는 외부의 힘을 끌어들이려 한다는 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만든다.

의도 중 하나가 읽혔음에도 이데아는 입가에 걸린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이 정도야 에반이 자신들이 이종족이라는 사실을 밝혀낼 쯤에 예상했다.

"그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깔려있을 때 통용되는 얘기죠. 현재 저희는 그 조건들에 해당사항이 전혀 없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추궁하던 루미너스는 물론 데몬과 시그너스 등이 덩달아 인상을 썼다. 그녀가 말한 '몇 가지 전제'에 무엇들이 필요한지 손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그 중 하나가─

"설마 저 '검호'가 빈사 상태의 군단장 하나도 처리 못한다는 개소리를 하려는 건가."

"아 그건 아닙니다. 이 남자가 얼마나 강한지는 저희도 굉장히 잘 아는 걸요. 처치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죠."

이데아는 불과 며칠 전, 루타비스 공동을 휩쓸었던 검의 광풍과 모든 것을 자르던 붉은 선을 떠올렸다. 상상한 것만으로 블라우스 아래로 소름이 돋아 남모르게 애써 진정시키며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을 만들었다.

"문제는 처치야 할 수 있는데 기지를 멀쩡히 탈환하는 건 조~금 힘들다는 겁니다."

파워도 오버 파워가 따로 없답니다. 닭잡는데 소잡는 칼 쓰는 격인데 함부로 휘두를 수 없죠. 그가 나섰다간 군단장은 둘째치고 저희의 소중한 아지트가 완파될 게 뻔한데.

"…… 이미 빈사 상태의 군단장을 잡는데 그 정도로 주변 피해가 심하단 말인가."

"새로운 마족 군단장은 꽤 강한 이였거든요. 힘을 꽤 빼놓긴 했지만 그래도 큰 힘을 들이지 않으면 반드시 쓰러뜨린다고 장담못할 정도의 강자고, 아랫것들도 병풍 수준이 아니더라고요.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나서주길 바랬습니다. 영웅들이라면 저희 아지트가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놈을 처치할 수 있을테니까요. 노바족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아지트의 무사 탈환일테니 저런 이유때문이라면 반 정도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를 너희 세계로 가는 문이 있는 아지트에 들이는 위험을 굳이 자초하는 이유론 납득되지 않는다."

"본인들 일도 아니고 적의 집안일인데 정말 걱정을 많이 해주시네요. 이 얼마나 사려깊은 마음씨인지, 고마워라."

말이 그랬지 고마운 마음따위 1도 안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졸지에 적들의 집안 걱정까지 해주는 사려깊은 사람이 된 루미너스의 미간에 굵은 주름이 푹 파였다. 이데아는 그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선수를 쳤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세상 누구보다 저희가 가장 잘 압니다. 결국 아지트는 뺏겼지만 설마 그 와중에 아무 조치도 안 해뒀을까봐요?"

"차원의 문이라는 게 임의로 조작가능한 물건이라는 말을 믿으란 겐가."

"물론 쉬운게 아닙니다. 하지만 준비만 되어있으면 충분히 가능하고, 저희는 늘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뒀죠."

프렌즈 월드와 이어진 차원의 균열을 틀어막으며 어느정도 그것에 대해 알게 된 하인즈는 이데아의 말이 영 미심쩍었지만 달리 더 추궁하지 못했다. 노바족의 세계와 메이플 월드를 잇는 문이 프렌즈 월드의 그것보다 더 전에 생겼다는 게 확실한만큼 지식도 노하우도 자신들보다 더 축적되어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로서 노바족이 연합의 손을 빌려 슬리피우드 아지트를 강탈한 마족들을 처리하려는 이유는 상당부분 설명되었다. 그러나 시그너스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 네 좋습니다. 만약 저희가 나서서 당신들의 아지트를 점거한 마족들을 처치했다 치죠. 그럼 당신들은 거기에 다시 돌아올 겁니까? 이미 위치도, 중요도도 뻔히 다 알려진 곳에? 그리고 그걸 저희가 뻔히 지켜만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요?"

"아니 그런 멍청한 짓을 할 리가요."

단지, 문은 닫았지만 '뒷정리'는 미처 다 못해서 그걸 할 예정이랍니다. 증거인멸을 노골적으로 입에 담는 모습에 시그너스의 푸른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희가 손놓고 구경할 것 같습니까?"

"지금 마족들을 내버려두고 있는 건 당장 쓸 수 있는 칼이 너무 강해서지, 칼이 없어서가 아니랍니다."

마족에 비하면 너희는 강한 적이 아니다. 그리 말하고 있었다.

"제 말을 듣고 꽤나 가시를 세우시는데, 어찌됐든 간에 당신들은 저 야만스러운 퍼런 피부 놈들을 토벌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저희가 떨어뜨려주는 정보는 한 단어라도 간절할테고…… 오히려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걸 고마워해야하지 않나요?"

"저게 뚫린 입이라고!!"

"가만히 있으십시오."

폴암을 콱 움켜쥐며 달려들려는 아란을 데몬이 붙잡았다. 그녀가 저들을 공격한 순간 저들 역시 자기방어라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공격권을 갖게 된다.

"여러모로 분위기가 달아올라 진행이 더뎌지는 듯 하니, 머리 좀 식혀드릴 겸 상황정리라도 해드려야 겠군요."

당신들이 에레브의 봉인석을 저희에게 내주는 대신 대가로 요구한 것 -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정보. 그것도 연합이 앞으로 할 일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양질의 정보였습니다. 그에 따라 저희들은 적지않은 양의 정보를 제공해드렸죠. 저희의 정체와 이곳에 온 이유, 현재 상황 그리고 앞으로 당신들이 상대할 적에 대한 현황까지.

"이 정도면 봉인석을 받는 대가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여제님 생각엔 어떠신지?"

시그너스는 침묵하며 그림으로 그린듯한 미소를 짓고있는 이데아를 보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언뜻 그녀의 말은 타당해보인다. 솔직히 그녀도 모든 부분에서 우위에 있는 저들이 이정도로 정보를 풀어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 안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실상 없었다.

그들의 정체? 알아봤자 상황은 안 변한다. 동기? 이건 자신들이 손 댈 수도 없는 무언가였다. 앞으로 상대해야할 마족 군단의 현황? 이건 그나마 쓸모있을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결국 저들의 손대로 놀아나는 꼴이다. 더 기분나쁜 건 그 사실을 아는데도 저들을 대신해 마족들과 싸워야한다는 거다. 군단을 빅토리아 아일랜드 한복판에 방치할 수 없으니까.

그나마 건진 건 마족 군단의 현황과 함께 어느 정도 알게 된 용의 후예의 상태인데 - 그들의 세계로 가는 문이 있는 아지트를 빼앗겼다는 것과 마족 군단과 싸우며 피해를 입었다는 것 - 정작 중요 간부진들은 이렇게나 멀쩡해보이니…….

'역시 준비가 부족했어요.'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여러 방법으로 저들을 더 몰아붙일 수 있었겠지만, 유예 시간이 너무 짧고 촉박했다. 본래 압박용으로 쓰려했던 패 중 하나는 별다른 효용을 발휘하지 못했고.

허나 그렇다고 여기서 끝낼 순 없다. 남은 하나를 이용해 보다 신중하게, 그러면서 확실하게 구석으로 몰아넣을 수 밖에.

"…… 이해가 안되는군요. 어째서 당신들은 쓸 수도 없다는 봉인석을 가져가기 위해 이런 일까지 하는 거죠?"

"해야하는 일이니까요."

모호한 대답이다. 해야하는 일이라는 즉 계획을 진행하는데 봉인석이 방해가 되서인지, 블랙윙으로 위장하는데 저 일을 해야할 필요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봉인석을 모종의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서인지 알 수가 없다.

조금 전에 저들은 스스로 봉인석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진실 여부를 알 수 없는만큼 신빙성은 떨어지지만, 적어도 아주 100%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만약 사용할 수 있었다면 일찌감치 써서 자신들의 세계를 복원했을 테니까. 그러지 않는다는 건 저들 말대로 사용할 수 없어서일지도 모르지만, 모종의 이유로 사용해선 안되는 상황 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

'아니, 잠깐만요.'

봉인석이라는게 구체적으로 어떤 물건인지 그녀도 자세히는 모른다. 그것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던 영웅 프리드는 죽은지 오래라서 그 다음으로 잘 아는 영웅들에게 알음알음 들은 게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들은 것들 중에는 봉인석을 지역 복원 이외의 용도로도 쓸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있었다.

'대마법사 프리드는 처음부터 그것을 검은 마법사를 봉인하는데 쓰지않고, 막대한 힘의 결정이라는 점을 이용해 군단장에게서 도시를 방어하는 결계의 핵으로 썼다고 했었죠.'

그런 형태로 쓰는데엔 지역 복원같은 거대한 기적을 행사할 때만큼 수많은 이들의 염원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루미너스는 말했었다. 오히려 봉인석이 그런 기적까지 일으킬 수 있는 엄청난 물건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나.

'그렇다면 저들은.'

노바족은 봉인석을 사용할 수 없다. 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조금 생각을 바꿔보면, 노바족은 봉인석을 통상의 사용법인 '간절한 염원의 구체화'는 쓸 수 없으나 다른 형태로 그것을 쓰려는 거라면? 말장난에 불과해보이지만 조금 전에 그 말장난에 속은 터라 간과할 수 없다.

'무엇보다 한 지역의 힘이 응축된 물건인만큼 여러 용도로 쓸 수 있을테니까.'

그러면서 봉인석을 지역 복원 외에 쓸만한 사용처는 한정되어 있다. 너무 거대한 힘의 결정이라 그만한 힘이 필요한 곳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전부다. 저만한 힘이 필요한 곳이 대체 어디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정들 속에서 노바족이 손에 넣은 봉인석들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가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봉인석이라는 강력한 물건을 버리기에 노바족의 상황은 그닥 여의치않아 보이니까.

'하지만…….'

혹시 모르므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용의 후예가 봉인석을 자신들의 계획에 '사용하기 위해' 모으는가, 계획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모으는가.

'이제부터 알아내야겠군요.'

생각을 정리하며 시그너스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이데아를 보았다.

"하나만 더 답해주시죠."

"흐응?"

직구는 포기. 약간의 변화구로 반응을 이끌어내야 한다.

"현재 에레브의 봉인석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당신들이 반드시 봉인석을 가져가겠다니 저희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만, 설령 가져가도 그것은 제 기능을 못할 수 있는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언뜻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것 같았지만 그 속내는 '너희가 사용하는데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상 용의 후예측이 봉인석을 사용할 거라는 전제를 깔고 하는 말이었다. 여기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저들의 봉인석 용처를 유추해낼 수 있게 한다.

그 떠보기에 반응한 쪽은 이데아가 아니었다.

"…… 흠."

말없이 마녀의 행동을 지켜보던 검호가 미미하게 인상을 쓰며 얕은 침음을 삼켰다. 동시에 일전의 청문회 사건 때 잠시 붙잡혔던 은월이란 남자 역시 봉인석이 왜 그런 상태가 되었는지 짐작되는 양 시선을 다른쪽으로 돌리며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원체 표정변화가 없는 두 남자라 신경쓰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는 작은 변화였지만, 그걸로 시그너스는 확신했다.

저들은 봉인석을 어디에, 어떤 식으로인지 몰라도 분명 '사용하기 위해' 그것을 모으고 있는게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선 저리 곤란하다는 반응을 보일 리 없다.

그렇다면 남은 하나의 패로 몰아붙일 수 있다.

"뭐,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가져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리 말하는 이데아는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이었지만 내심 뭔가를 들켰다고 직감했다. 질문부터 반응을 떠보는 기색이 강했으니까. 검호 이 인간은 연기 실력이 왜 이리 안타까운지. 하다못해 세피로트도 필요할 땐 얼굴에 철판깔고 연기를 휙휙 하는데.

거기다 봉인석이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라니, 이건 좋지 않다. 아마 청문회 사건때 봉인석의 핵이 되었던 선대 여제의 혼이 힘을 써서 그런 것 같은데, 당시 그녀와 싸웠던 은월의 말을 떠올려보면 힘이 상당량 소모되었어도 이상할게 없다. 이러면 에레브의 봉인석은 없는 것보단 낫겠지만 필요한 양에서 다소 부족할 확률이…….

"상관없다는 이유인 즉 - 스페어가 있기 때문인가요?"

"예?"

생각지도 못한 뜬금없다싶을 정도의 말에 이데아는 표정관리도 채 못하고 무슨 소리냐는 당혹감을 얼굴에 그대로 내비쳤다. 아니 스페어라니? 봉인석에 스페어가 어디있어? 그런게 있었으면 옛저녁에 우리가 찾아다 써먹었겠다! 검호측의 다른 이들도 조금씩 달랐지만 응? 저게 뭔 소리야? 같은 당황한 기색을 띄었다.

"이전부터 쭉 가진 의문 중 하나였죠. '왜 블랙윙은 하고많은 지역들 중 에델슈타인을 점령했는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일단 당시 블랙윙을 창설한지 얼마 되지않은 오르카는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스우의 육체를 8백여 년을 보존하느라 힘이 상당히 깎인 상태였고, 때문에 최대한 점령하기 쉬운 지역을 골라야 했다. 그래서 걸린 게 빅토리아 아일랜드와 매우 멀면서 오시리아 대륙과는 아예 다른 대륙인 에델슈타인이었다.

"블랙윙은 에델슈타인 습격 당시 가장 먼저 레벤 광산을 점령했고, 그 다음으로 발전소를 차지해 광산에서 나오는 광석과 전력의 대부분을 가져가고 있다죠."

그야 스우의 육체를 보존하고 되살리는 기기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했으니까. 레벤 광석에서 채굴되는 게 특히나 많은 에너지가 응축된 루 광석이 아니었으면 오르카는 에델슈타인 대륙 지력까지 뽑아다 썼을 것이다. 땅이 피폐해지는 거? 그 계집이 그런 거에 신경 쓸 리가.

"여기까지 봤을 때 '블랙윙은 현재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뭔가를 하기 위해 에델슈타인을 점령했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설마 이것도 부정하진 않겠죠?"

"그럴리가요. 어린애도 머리굴리면 알법한 사실까지 아니라고 우기진 않습니다."

실제로 시그너스 여제가 가지고 있던 블랙윙 관련 자료를 대충 쓱 흝어보고 저걸 알아냈던 에반은 왠지모르게 자신을 말하는 것 같아 작게 흠칫했다.

"처음엔 대체 뭘 하려고 저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가 했는데…… 생각해보니 간단하더군요."

봉인석이란 그 지역의 힘이 응축된 것.

블랙윙이 에델슈타인을 점령하며 해온 짓은 막대한 에너지를 갈취한 것.

"거기다 에델슈타인은 8백년 전 봉인석이 만들어지지않은 지역 중 하나였죠. 당시엔 오시리아 대륙 외에 다른 대륙이 있는 걸 몰랐으니까."

이데아는 다소 곤혹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여기까지만 듣고도 시그너스가 할 말을 대략 알아낸 그녀는 저걸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끼워맞추고자 하면 정말 어떻게든 맞춰지는구나. 별개의 두 사건이 합쳐지니 자신들도 생각못한 거대한 음모가 되었다.

"마법이 아닌 과학적인 방법으로 봉인석을 만들려 하다니, 상상도 못했습니다."

우리도 상상못했다. 검호는 저런 신박한 아이디어를 왜 못 떠올렸지? 같은 한탄 아닌 한탄을, 세피로트는 왠지 저거 될 것 같다는 직감을, 은월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과학계의 프리드 급인 겔리메르의 머리라면 아주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했다.

그리고 이데아는, 약간의 조소가 섞인 웃음을 다시 만들어냈다.

"이거 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지적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꽤 재미있는 가설이었습니다 여제님."

"부정하시는 건가요."

"이번 건 굉장히 참신하면서 놀라운 발상이라 해드리죠. 좀 전에 에반 소년보다 더 저를 놀라게 할 거리가 또 있었다니, 굉장하네요."

확실히 겔리메르의 머리와 지금까지 블랙윙이 모은 에너지를 생각하면 저 방법도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에델슈타인 기지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건 봉인석이 아닌 제네로이드이며, 그것에 힘을 주입하고 통제하는데 대부분의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는 실정이다.

거기까지 알 리 없는 시그너스는 이데아가 또 부정하는 걸로 보았다.

"아주 의연한 얼굴이군요."

"그야 여제님의 말은 모두 재밌는 추측에 불과하니까요."

혹시 또 다른 웃긴 가정 없습니까? 오늘 협상에서 정말 많이 웃게 되네요. 근래 들어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진 건 정말 오랜만인데. 실제로 이데아는 나름 즐거운 기분이었다. 역시 난 이쪽이 체질이야.

"제 말을 추측따위로 보신다면, 앞으로 벌어질 일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겠네요."

응? 이데아의 눈이 의문이 스쳤지만 시그너스는 이에 답하지 않고 지그문트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녀는 가지고있던 통신구를 꺼내들었다.

"참으로 공교롭게도, 몇 분 뒤 레지스탕스들이 에델슈타인 주요 발전 시설을 폭파시킬 예정이거든요."

"…… 뭐라고요?!"

"블랙윙 최고 무력집단의 간부들이 모두 기지에서 자리를 비우는 이 순간이 급습에 있어 절호의 기회나 다름없는데, 우리가 이걸 놓칠 것 같나?"

지그문트는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속이 꽤 쓰린 상태였다. 그녀는 여제의 지시아래 협상 시작까지 4시간 동안 어떻게든 레지스탕스들을 설득시켜 블랙윙에게 발각되지 않은 비밀 통로까지 동원해 폭파준비를 하게 했지만, 아니 따지고 보면 다 본인들 마을 발전시설을 제 손으로 날리게 생겼는데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리가?

그나마 시그너스 여제가 이후 에델슈타인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며, 얼마 전 제논을 통해 접촉한 옛 에델슈타인 연구집단 베리타스에서 협력을 받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선택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이데아의 얼굴은 왕창 구겨졌다. 현재 블랙윙에 상주하고 있는 용의 후예는 많지 않다. 대부분 메이플 월드에 흩어져 있고, 그나마 의미있는 전력은 미스틱 게이트 설치를 임시로 중단하며 잠시 기지로 귀환한 블랙윙 간부들 정도다. 그리고 그들만으론 발전소를 모두 지켜낼 수 없다.

아니 그녀도 이번 협상을 기회로 레지스탕스가 에델슈타인 기지를 습격할 걸 예상 못하진 않았다. 좀 전에 감시용 수정구를 해킹해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봐서 나름 저쪽에 주의도 날렸다.

'그래도 발전소와 시설을 노릴 줄은……!'

정확히는 레지스탕스를 움직여 습격할 것까진 알았다. 그러나 중간에 세피로트의 만행에 영상이 끊겨 정확한 타격 지점까진 알아내지 못했다.

노바족은 블랙윙에 합류하며 기지에 마법 방어진을 추가로 설치하긴 했지만 말 그대로 기지에만 깔았지 발전소에까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것들은 원래 에델슈타인의 것이었던만큼 시티즌과 레지스탕스에게 있어 반드시 되찾아야 할 중요 시설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슴없이 자기들 손으로 막 폭파시켜도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 사실을 양측 모두 잘 알아 발전 시설 등은 보안 경비는 두터웠지만 아예 박살내려는 공작 류에는 취약했다. 시그너스는 이 맹점을 파고들었다.

까짓거 이 악물고 폭파시키죠? 성공하면 저쪽 계획 하나 날리는 거고, 실패해도 제가 다 책임질테니까요! 에델슈타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여제씩이나 되니까 내릴 수 있는 화끈한 결정이었다.

"본래부터 존재했던 발전시설은 물론, 블랙윙 점령이후 새로 생겨난 발전시설과 그렇게 갈취한 에너지의 소모가 극심한 시설 등도 모두 터뜨릴 예정이랍니다. 운 좋게 블랙윙 기지내에서 주요 전력 소비가 일어나는 곳들의 위치 지도를 입수했거든요."

테이아가 레벤 광산 기지에 잠입해 있던 중 빼내어 에반을 통해 에레브에 전달한 서류 중에 그런 게 있었다. 제논의 탈출을 위해 일부 넘겨준 거였고,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위치는 제논이 있던 실험실뿐이었지만 레지스탕스는 여기서 멈추지않고 더 나아가 제논이 있던 다른 전력 소모가 심한 연구시설들을 기어코 찾아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노릴 타겟으로 삼기 위해.

그 중 스우가 보관되어 있는 실험실도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이데아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그야 물론이죠. 이 협상 이후 에레브의 봉인석을 당신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도 안되지만, 간신히 지켜내도 대신할 것이 남아있어 지금 이 노력이 무의미하게 된다면 더더욱 안되잖아요?"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아니 시한 폭탄 버튼을 얻은 격이었지만 어쨌든 시그너스는 이데아를 당황시키고 궁지에 몰아넣는다는 측면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 되었다.

"뭘 모르는 소릴……! 그것들을 한꺼번에 폭파시켰다간 어떤 일이 생기는지─!"

"어떤 일이 생깁니까?"

시그너스는 자신이 말한 '에델슈타인의 에너지를 이용한 봉인석 제작' 추측이 맞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현재 알고 있는 정보들을 조합해내 가장 그럴싸한 가설을 세운 것 뿐이다. 진실은 다를 확률이 높다.

허나 확실한 건 저들의 에델슈타인에서 하고있는 일은 수 년동안 엄청난 에너지를 모으고 또 이용하는 일이며, 따라서 발전소와 관련 시설들을 날려버리면 그 일에 막대한 지장이 생긴다는 거다. 그렇게 되기 직전의 상황으로 만들어 반응을 지켜보려는게 그녀의 계획이었다.

으득, 이데아는 작게 이를 갈았다.

발전소와 관련 시설이 한 번에 다 폭파되지 않더라도, 일부나마 갑자기 무너질 시 스우의 육체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현재 스우의 육체는 제네로이드 화(化)가 일시 정지되었지만 그동안 주입된 에너지는 에델슈타인 대륙을 날리고도 남을만큼 엄청나다.

그 에너지를 제어하는 시설이 절반일 정도인데 그걸 폭파시키겠다고? 우리도 엿될뿐만 아니라 댁들도 자살하는 짓이라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이걸 다 말하는 것 역시 성대한 자폭이다.

"당신들이 준비하고 있는 스페어는 지금 이 자리에서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유일하게 남는 건 저희가 가지고 있는 에레브의 봉인석 뿐이죠."

시그너스는 느긋하게 밑밥을 깔며 본론을 꺼냈다.

"그러니 온전하게 봉인석을 가져가고 싶다면, 저희가 원하는 것을 더 내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봉인석 몸값이 고작 그 정도냐? 더 불러. 우리가 오케이 할 때까지 더. 차디찬 서릿바람이 휘몰아치는 새파란 눈이 누구와 참 비슷해보여 검호와 세피로트, 은월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와 이데아를 몇 차례 번갈아 보았다.

검호는 에델슈타인 기지에 남아있는 병력과 발전소들과 시설의 위치, 당장 습격이 시작될 시의 피해 등을 간단히 예상해보고 결론을 내렸다. 이건 답이 없네.

군단장의 준동 이후 노바족은 메이플 월드에 흩어져 있거나 루타비스 아지트에 대부분 있어 오직 블랙윙 본래 병력만으로 레지스탕스를 상대해야 하는데, 간부들이 전원 아지트에 있는만큼 어떻게든 상대는 한다 쳐도 시설 보호까지 완벽하게 하는 건 무리다. 그놈들은 파괴나 특수 공작 전문이지 보호 쪽으론 영 아니니까.

"…… 거절한다면요?"

"그럼 협상은 여기서 파(罷)하고, 봉인석도 내어드리지 않을 겁니다.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스페어로 어디 잘 해보시죠."

그 전에 레지스탕스 분들에게 폭파당할지 모르지만. 고운 미소 속에 생략된 뒷말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스페어 아니라고! 만에 하나 과학의 힘으로 봉인석을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할 시간따위 없다.

상상 이상으로 '젊은 시절의' 이데아를 잘 몰아붙인 여제에게 감탄하며, 검호는 지금 자신이 결정을 내릴 때임을 알았다.

"그쯤해라 이데아."

"검호?"

"이 사안은 니가 결정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엘리전인데 우리도 그에 마땅한 각오를 해야지."

"아…… 하, 하하, 그렇군요. 예. 알겠습니다."

검호의 말에 섞인 키워드에 이데아는 밝아지려는 얼굴을 감추고 애써 좌절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상대가 엘리전을 걸어왔는데 이쪽도 똑같이 해줘야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허탈함과 좌절이 뒤섞인 눈으로 시그너스를 노려보던 이데아는 삐걱삐걱 고개를 숙이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겼다. 연합측의 이들이 머리속에 같은 생각이 스쳤다.

"후우……후, 흐후, 후후후!"

한숨과 자조섞인 웃음이 섞인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내렸다. 그 정도로 충격이 컸나? 싶을 생각이 들 때쯤 이데아는 단정히 묶여있던 제 올림머리의 끈을 풀어 내렸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다 손으로 가리기까지 해 얼굴이 아예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검호와 세피로트를 포함한 용의 후예 측의 눈빛이 바뀌었지만, 연합측 이들은 저 이데아가 무너지는듯한 모습에 집중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다.

"당신들이 진 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하아아아……."

시그너스의 사실상 선고와도 같은 물음에 이데아는 길게, 폐의 공기를 다 쏟아낼 기세로 숨을 내뱉은 다음 조용히 폐부 깊숙히 새 공기를 가득 채웠다. 검호측의 이들은 테이블 아래로 자신들의 양손을 들 준비를 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됐으면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벌떡! 갑자기 이데아의 고개가 치켜올라왔다. 쭉 째진 세로동공의 황록안이 당황하는 연합 인사들의 면면을 담으며─

"KYAAAAAAAAAAAAAAAK──!"

그녀의 입에서 터져나온 흡사 비룡의 것 같은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마력을 싣고 대기를 찢어가르며 회의장을 휩쓸었다.

예상치 못한 청각테러에 미처 반응도 못하고 직격으로 맞아버린 연합측과는 달리, 검호측은 미리 약속해두었던 그녀의 행동을 보고 잽싸게 귀를 막아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단순한 소리가 아닌 마력이 실린 외침이었기에 몇몇 이들은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했다. 특히 몸이 약한 시그너스는 눈앞이 핑 돌며 앞으로 쓰러질 뻔 해 잽싸게 에반이 붙잡아줘야 했다.

"이, 게…… 무슨."

"바라는대로 인정해드리죠 여제님. 당신은 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뛰어난 사람입니다. 설마 이 수법까지 꺼내들게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짓을 저지른 거냐!"

뛰어난 마법사답게 마력이 실린 외침에도 큰 타격을 받지않은 루미너스는 샤이닝로드를 이데아에게 겨누었다. 지팡이 끝에 맺힌 예리한 빛 조각들이 당장이라도 제 목을 꿰뚫을 기세였음에도 이데아는 입꼬리를 내리지 않았다. 그녀는 되려 양 손을 들었다.

"이럴 생각으로 저지른 거죠."

후우우웅─! 일대의 기류가 진동하며 둔탁한 파공음이 울렸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저것이 뭐가 내는 소리인지조차 몰랐지만 몇몇 이들에겐 꽤나 익숙한 소리였다. 저거 설마? 루미너스와 아란의 안색이 변했다.

그것은 지상의 종족들 중 가장 거대한 몸집을 가진 종족이, 그 거대한 몸에 걸맞는 날개로 하늘을 날 때 나는 소리였다.

[KUUUUUOOOOOOO───!!]

마치 그녀가 내지른 울음소리에 화답하듯, 무시무시한 성량의 용의 포효[Dragon Fear]가 에레브 섬을 강타했다.

***

쿨럭. 기침과 함께 루미너스의 입에서 피섞인 침이 주륵 흘려내렸다.

"루미너스 씨!!"

"이런, 이 망할 여자가……."

용의 포효가 일으킨 마나 브레이크 현상에 방금까지 끌어올렸던 마력과 사용하고 있던 마법이 강제로 부서진 루미너스는 내장이 토막나는듯한 통증을 고스란히 느껴야했다.

마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았더라도 뛰어난 마법사인 에반과 하인즈의 안색도 시허옇게 질렸다. 루미너스만큼은 아니지만 그들도 마나 브레이크로 체내 마력 흐름이 뚝뚝 끊겨 전신 혈맥이 돌처럼 굳어버린 것과 같은 상태였다.

"용의 포효는 그것을 사용한 드래곤의 강함에 따라 위력이 결정되죠. 방금 그 포효를 내지른 드래곤은, 현재 메이플 월드에 존재하는 드래곤 중 가장 강한 드래곤이랍니다."

그들의 측에 있는 드래곤은 단 하나, 오닉스 드래곤 아스카뿐이다. 그리고 오닉스 드래곤은 계약자의 힘에 따라 성장하는 특성이 있으며 - 아스카는 세계 최강의 검사인 검호를 계약자로 두고 있다.

"못해도 10분은 여파가 지속될테니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혹시나 싶어서 저희 전사의 힘으로 포효를 증폭시켰거든요. 이데아는 섬 아래에서 아스카와 함께 있을 엔젤릭버스터를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그녀가 소환할 수 있는 용의 성대를 모방한 기구는 확성기로도 응용할 수 있다.

"설명은 다 끝났냐."

"더 할 말이 없으시다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시길."

용의 포효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마법사들과는 달리 멀미같은 울렁거림만 있을 뿐 움직이는데 큰 무리는 없는 아란과 데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세피로트와 은월 역시 일어나 이데아의 앞을 막아섰다.

"아, 유감이지만 설명은 이제 시작입니다."

"그래? 들어줄 마음따위 없는데."

"들어야 할 겁니다. 아~주 중요하거든요."

"니년을 붙잡아 감옥에 쳐넣은 뒤에 들어보지."

살기등등한 얼굴로 폴암을 치켜드는 아란의 모습에도 이데아는 미소를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용의 포효로 발생하는 마나 브레이크 현상이란, 말 그대로 모든 마력의 흐름을 일시에 끊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의 측에 있는 전사들도 결코 약하지 않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발디디고 있는 이곳 하늘섬 - 에레브는 특수한 마력의 흐름으로 부유하고 있는 땅이죠."

순간 연합측 이들의 움직임이 쩍 굳었다. 말의 의미는 해석되었지만 뇌에서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나 브레이크란 마력의 흐름이 일시적으로 끊어지는 현상.

하늘섬은 특수한 마력 흐름으로 부유력을 가지게 된 땅.

"자아 그렇다면…… 방금 용의 포효를 직격으로 맞은 에레브는 '대체 어떻게' 떠있는 걸까요?"

참으로 즐거워 죽겠다는 듯, 이데아는 마녀같이 웃어보였다.

========== 작품 후기 ==========

이것이 바로 메이플ver 엘리전! 누구 본진이 먼저 폭파될 것인가!

에레브가 어떻게 떠 있냐고요? 음... 협상 전에 중요 임무를 받았는데 아직도 출연 안 한 두 사람이 있었죠? 둘에게 애도를(웃음)

늦게 올린데다 이번엔 용량도 그닥이라 죄송합니다. 사실 개강과 동시에 과제다! 조별과제다! 공모전이다! 시연이다! 자격증이다! 야간이다!... 살려주세요.

저 와중에 마지막 설명하며 이데아는 거짓말을 했는데 어느 부분인지는 노코멘트. 용의 포효나 마나 브레이크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화를 찾으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제가! 동영상을 선물로 받았어요! 제 뜰에 와서 쌀벼르님이 meme 만들어주신 거 봐주세요! 검호랑 세피랑 이데아, 아스카가 나와요! 영상이 좀 짧긴 하지만 진짜 제가 글 쓰면서 팬아트는 받아도 동영상까지 받을 줄은 몰랐는데 쌀벼르님 감사합니다!!

+시그너스는 발전소와 시설을 폭파시키면 에델슈타인 마을에 직접적으로 위험이 끼칠 가능성은 안 봤냐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애초에 발전소는 마을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지어져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발전소같은 걸 마을 바로 옆에 지을 리 없잖아(…) 거기다 실제로 터뜨리기보단 그렇게 하기 직전까지의 상황을 만들어 상대를 쫄리게 하는게 목적이라 진짜로 할 마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르아킨 - 만들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네요.

@ERUDITO - 아직 저도 이 글 텍본 완본이 없어요.

@파랑곰팡이 - 대사는 좋은데 설정오류때문에 기각입니다.

@막걸리파전 - 힘으로 따지면 특출나게 강한 편은 아닙니다. 레벨로 따지면 대충 170~180정도? 상위권인데 최상위권은 아닌 수준. 애초에 싸우는 이가 아니라 여왕인걸요.

@알사탕은데구르르 - 음, 정말 대사는 괜찮은데 파픈은 죽기 전까지 세계가 이 모양 이꼴인 걸 몰랐습니다. 세피로트가 안 말해줬거든요. 그녀가 싸운 이유는 원래 세계로의 귀환과 부당하게 습격받는 노바족을 위해서였지 세계는 아니었습니다.

@생명체는꿈을꾼다 - 엣...(횟수를 다시 본다) 40번 넘게...?

@tssddde - 조아라 한 편 용량 제한이 50kb인데 간간히 그걸 넘는 양으로 쓸 때가 있어서...

@드라몬 - 지구 오버시어는 자신과 세계가 감당가능한 수준내에선 엔간한 것들은 다 풀어놓습니다. 거의 방임주의. 그래서 영혼 한 둘 실종되거나 소멸되도 냅둠(…).

@ldh0720 - 곧 그런 편이 나올테니 그때 보시죠.

@로퓔랜 - 검마 레이드는 마지막입니다.

@찬양천사 - 극과 극은 통한다!(아니다)

@Ratios - 페그오 캐릭터와 스토리만 보지 성능은 관심없는 작가는 혼돈 상태에 빠졌다!

@광기마법사 - 엘리전이 되부렀으요.

@Dowha - 이데아 정장 팬아트 정말 감사합니다!!(점핑 큰절)

@익재공 - 좀 있다가 나오십니다. 나름 지분있으신 분이거든요.

@Legendssj2 - 살아계십니까─?

@레볼레이션 - 흑영 200됐다! 근데 이제 라테일 안하고 엘소드를...

@미카츠키아이코 - 영웅과 군단장은 적개심 만렙입니다. 이 글은 정직하게 팩트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람쥥 - 유렌스입니다. 이데아 스승이자 전 노바의 현자요.

@브라디온 - 지구가 있는 세계 담당 오버시어는 한 명 뿐이고, 꽤 오래 산 놈이라 나름 인간과 말도 통합니다. 그런데 초 방임주의자.

@서월마을 - 검호는 그놈까진 안 만날거라 생각하지만! 상식적으로 다른 오버시어와 조우한 시점에서 한 번은 대면하게 됩니다!

@Blake117 - 그리고 뒤이은 에레브의 위기.

@Faceless - 어떤식으로 말하면 속이 뒤집힐까(상상 후) 그래 이러면 속이 뒤집혔지.

@책벌레씨 - 검호의 머리에 띵복을 액션빔!

@Skyhappiness - 이번 화는 뭐... 밥상 뒤집기군요.

@ReFrante - 넵넵 그거요. 데몬은 그거 하게 생겼습니다. 누굴 거울 속에 보낼지는 아직 비밀. 단 영웅즈는 한 명도 해당 안 됨.

@랴누 - 윌이 화려하게 귀환했더군요. 여기선 귀환이고 나발이고 없는데(웃음)

@니벨샤니 - 아니요 데몬은 진짜 제대로 된 정치는 체질이 아닙니다. 단지 선동하고 진압하는데 능숙한거죠.

@Sisre - 가지마세욧!

@리아카에린 - 아마란스는 히로인적 지분이 날아간 대신 지워진 역사적 사실이나 과거부분 해설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시오버는 뭐... 초반에 연락 끊게 한 게 다행이라 생각해요. 계속 출연했다간 욕을 얼마나 먹었을지. 긴 코멘트 정말로 감사합니다!

@J스티카 - 에스페라 이전에 아케인 리버까지 안 갈테니 이상 무!

@대어의예감 - 재회하는 장면쯤은 넣을 겁니다.

@Raseuna - 표현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알았다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떠한지는 본인들 입으로 못 들어서 그런거.

@뻵쎫뗇쌻 - 이데아의 문제는 그 위급상황이 끝나고도 광신 짓을 한 거였습니다.

@이름일껄 - 조금 까발려집니다. 더불어 군단장 시절 얼마나 개짓거리들을 했는지도.

@디자울 - 그런 일은 없지만, 만약 그랬다면 아스카는 에반의 철저한 보호자가, 미르는 막말 자체는 고쳐지지 않지만 때와 장소는 가릴 줄 알게 되었을 겁니다.

@레인D레이븐 - 설정상 있긴 한데 나오진 않을 겁니다. 초반부터 레프족에 관한 상세 설정이 있었다면 얘기가 좀 바뀌었겠지만 후반부에 만들어진 애들이라 이제와서 출현하기엔 좀.

@칼크래프트 - 노바족은 기초 신체능력부터 인간을 뛰어넘는지라.

@사신기합 - 내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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