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숨겨진 달과 붉은 검 --> 부제:동료
이데아와의 대화가 끝난 뒤, 검호가 그녀 다음으로 대화할 상대로 정한 이는 유에였다.
이전보다 가까워지긴 했지만, 이번 일로 알 수 있듯 그와 자신 사이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 거리때문에 알지못하는 부분들을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과 과거의 경험을 기초로 메꾸었고, 그 결과 이번 참사가 일어나는데 어느정도 묵인한 셈이 되었다.
그녀때와 마찬가지로 하늘이 보이는 휴게실에서, 두 남자는 벤치에 앉아 홀린듯이 밤하늘을 보았다.
'…… 뭘 말해야 하지.'
정정. 서로 마주보고 대화하기 뭐해서 뻘하게 천장만 보고 있는 거였다.
이데아와 대화했을 땐 그녀가 먼저 묵혀두었던 감정을 꺼내 대화의 물꼬가 순조롭게 트였지만, 유에는 애초에 그리 친하지도 않았고 그나마 가까워진 계기가 그를 기억하게 된 유일한 사람이 - 따지고 보면 세피로트도 포함이지만 유에는 이놈을 신경쓰지도 않는다 - 검호 자신뿐이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면 유에도 존재의 시간을 되찾을 수 있다는 이유로 협력하게 된 거였다.
즉, 필요에 의해 함께하는 것일 뿐, 감정적인 교류는 거의 없는 게 둘의 관계였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 이랬다간 이번같은 일이 또 생길 수 있기에, 조금이라도 가슴을 터놓고 대화를 해야 해서 검호는 이데아 다음으로 대화할 상대를 유에로 택했다.
'정작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이데아와 달리 유에는 옛날부터 봐온 사람이다. 8백여 년 전 영웅들과 함께하며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째서 모두에게 잊혀졌는지 실시간으로 모두 봤단 말이다.
'그런데도 잘 몰라서 이 지경이 됐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몇 년동안 함께하고 또 봐왔으면서 그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으니.
…… 아니, 당연한 건가. 보기만 하고 대화한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이제와서 이러는 거 엄청 뒷북이지.'
그냥 뒷북 수준이 아니다. 상기한대로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과거에도 상당 기간동안 함께했고, 현재엔 몇 년을 손발 맞춰 지냈는데 말문조차 못 열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자신이 얼마나 무관심하게 유에를 대했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저 서로 목적을 이루는데 필요해서 함께했을 뿐인 사람. 그게 두 남자의 관계의 전부였다.
필요라는 사슬은 언뜻 단단하게 보이지만, 실상 좁힐 수 없는 거리와 그 용도를 다하거나 다른 대체재가 생기면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끊어질만큼 약함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
"유에."
"검호."
공교롭게도 같은 순간 같은 결론을 내린 둘은 동시에 서로를 불러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침묵했다. 아 미친 너무 어색해!! 머리론 중요성을 확실히 이해했음도 친밀도 한 자리 수의 두 남자에게 솔직담백한 대화는 너무 어려운 퀘스트였다. 차라리 보스몹 100마리 잡는 게 더 쉽겠다 진짜!
이대로라면 본방 들어가는데 하루가 꼬박 걸릴지도 모른다는 오싹한 예측마저 들어 검호는 자폭하는 심정으로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 너는 대체 날 어떻게 보고 있었던 거냐. 아까 나라면 당연히 잘못을 깨닫고 고칠 거라 했는데 그 근거가 뭐였지?"
시작부터 너무 직구였다는 걸 깨달은 건 말을 다 내뱉은 뒤였다. 검호는 조금 일그러진 얼굴로 굳어버린 유에의 얼굴을 보고 뒤늦게 아차했다.
"다, 당장 말하기 힘들면 다른 걸─"
"─너를 진짜 영웅으로 생각했다. 우리와는 다른, 진정으로 세계를 구하고 사람들을 위하는 영웅이라고 생각해서 그 정도는 다 할 줄 알 거라고 믿었다."
상상을 초월한 대답에 검호는 '시방 그게 뭐시여'라는 얼굴로 유에를 보았다. 그 노골적인 황당함이 담긴 표정에 말한 유에도 괜히 무안해져서 시선을 피했다.
"…… 뭔데 그 엄청난 평가는."
"아, 아니 그렇지 않나. 세계의 진짜 창조신이 부른 사람이자 어떤 사리사욕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세계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이를 영웅이 아니면 뭐라고 하겠어? 자세한 건 나도 이 시대에 와서야 알았지만, 몰랐을 때에도 우리에게 너는 누구보다도 빛나는 영웅이었다."
안 그래도 이상했던 검호의 표정은 '그거 대체 누군데'가 되었다.
"사리사욕이란 표현은 좀 아니지만 어쨌든 난 나를 위해서 그랬던 건데."
"그건 몰랐으니까……! 거기다 너는 한 번도 우리에게 제대로 뭣때문에 사람들을 구하고, 검은 마법사와 싸우려는지 말해 준 적이 없었다."
"그야 물어보지 않았, 아, 아주 없지도 않았네."
옛날에 언제였더라? 영웅들이랑 같이 다니며 지역 별 봉인석 만들때 누가 그걸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난 뭐라고 대답했지?
"당연하고, 마땅히 해야하는 게 옳은 일이라고 했지."
내가 애써 기억해낼 필요도 없이 유에가 즉답해줬다.
"그걸 보고 우리는 확신했다. 우리 중 진짜 영웅은 너뿐이라고."
"…… 우째서."
"우리 모두 영웅이라 불리고 있었지만, 오직 너만이 올곧은 선(善)과 정의만으로 목숨 걸고 싸우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 말은 다소 이상했다. 마치 자신들은 안 그렇다는 투가 아닌가?
"그건 너희들도─"
"다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사정과 이유가 있어서 싸우기로 한 거였다."
아란은 힘을 가진 이였기에 싸웠다. 큰 힘을 가진 이라면 마땅히 그 힘을 약자를 위해 써야한다는 강자의 논리가 그녀를 움직였다.
메르세데스는 왕이었기에 싸웠다. 자신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세상의 평화을 위협하는 이들을 막아내기로 했다.
팬텀은 복수심때문에 싸웠다.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에 그녀가 지키고자 했던 세상이 부서지도록 둘 수 없어 어둠 속에서 나왔다.
루미너스는 숙명이었기에 싸웠다. 검은 마법사가 떼어낸 빛의 잔재에서 태어난 그는 날 때부터 검은 마법사를 상대해야만 하는 운명이었고, 오로라에서 배운 빛의 수호자로서의 의무는 그를 필연적으로 어둠과 대적하게 했다.
프리드는 아리아 여제의 부탁과 이대로라면 정말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싸웠다. 나이는 어렸지만 대마법사로서의 통찰력과 지혜는 그를 전장으로 이끌었다.
유에는 그런 프리드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싸웠다. 대마법사이자 선한 그가 하는 일이라면 분명 옳은 일이라 생각하며 그의 뒤를 받쳐주기로 했다.
"사람을 구하는 게 당연하니까 하고, 세계를 위협하는 이들을 막는 것이 옳기때문에 한다는 말은…… 그런 우리를 초라하게 만들었지."
"어, 그, 그랬냐."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어떤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당연히 옳은 일이기에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저런 사람이 실제로 세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생각해보라. 세계 최강급의 힘을 가지고 있는 이가 그 어떤 사심도, 대가도 없이 온몸을 다 바쳐 사람들을 구하고 나아가 세계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리고 끝내 항거할 수 없는 절망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가장 먼저 달려나가 검을 휘두르기까지. 가히 영웅이란 단어의 화신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다.
유에의 말이 이어질수록 더해지는 자기미화에 헛구역질까지 나오려 해 검호는 급히 항변했다.
"아니 나도 사연은 있다! 난 그냥 내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 고생했던 거고, 그게 아니었으면 그렇게까진 안 했을 거다!"
"그때는 그런 거 몰랐으니까."
말해줬어야 알지 당시 영웅들은 검호의 사연따위 쥐뿔도 몰랐다. 심상치 않을 거란 짐작만 했지 이런 세계구급 일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검호가 '사람을 구하는 건 당연히 해야해서'라고 한 이유가 '내가 일찍히 군단장을 못 막아서 이 지랄났거든'이였고, '군단장과 검은 마법사를 막는 것이 옳은 일이니까 한다'고 한 이유는 '예전에 그걸 못하고 도망쳐서 이제라도 해야 해'였다는 걸 당시의 영웅들은 전혀 몰랐다.
"거기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너의 행보가 대단하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어째서?"
"그런 상황에서도, 아니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자신의 목적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안위를 우선시 했으니까."
"……."
아니 내가 미래에 터질 폭탄들을 피하고 외면하다 그 대참사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던 때였는데 그 상황에서 내 목적만 우선시하고 다른 건 다 쌩까면 그게 사람이냐 짐승새끼냐. 양심이 있으면 최소한 도망만은 치면 안되는 거잖아.
대답이라기보단 혼잣말에 가까운 중얼거림에 유에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남자가 이런 부분에 둔한 것이 자신들이 그의 사연을 알지못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겠지.
"그게 대단한 거다."
"왜……?"
"검호. 너의 고향 세계는 어떤 곳이었지?"
갑자기 저건 왜 묻는가 싶었으나 그의 질문에 무의식적으로 지구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잠시 입을 다물고 그것들을 곱씹었다. 지금에 와서는 많이 흐릿해졌지만 간만에 떠오른 그때의 추억들을 잊고싶지 않기에.
"…… 좋은 세상이지. 메이플 월드에 비하면."
"어떤 면에서 좋다는 거지?"
"사람 살기에. 아 물론 내가 태어난 나라 기준으로."
지구에는 몬스터가 없지만 치안 안 좋은 곳은 있으니까. 거기다 한국은 치안으로 따지면 세계 1위였고.
생활수준은 메이플 월드와 비교하면 당연히 한국쪽이 월등하게 높다. 중세랑 현대인데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의식주같은 필수요소는 물론 교통 수단, 정보통신 수단, 교육 수준, 복지 등등 모든 분야가 뛰어나다.
아 젠장 늘어놓고 보니 내가 용케도 저것들 대부분이 없는 메이플 월드에서 잘도 버텼구나. 블랙윙이 적진임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나마 에델슈타인 기술 수준이 근현대, 몇몇 부분은 현대보다 더 뛰어나서였지? 심지어 블랙윙에 컴퓨터가 있는 걸 보고 감격하기까지 했었다.
"문명과 기술의 발전 정도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어땠지?"
"의식 수준은……."
한국이 경제적 발전이 급격하게 이루어져서 시민 의식은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사실 치안 1위라는 타이틀을 보면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다. 일단 동아시아 국가라 유교 사상이 전반적으로 깔려있다보니 예의범절은 어느정도 기본으로 익히고 있고, 주입식이긴 하지만 초중고 도덕이나 윤리같은 것도 가르치니까. 옆나라 짱개보다는 확실히 낫지.
질문 범위가 너무 넓어 더듬더듬 떠올리는 검호의 혼잣말에서 유에는 그의 고향을 대략적으로 유추해낼 수 있었다.
문명자체가 메이플 월드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발전되어 있으며, 몬스터라는 존재가 아예 없고 나라끼리의 전쟁는 물론 집단과 집단과의 무력적 다툼마저 드문 환경. 거기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인성함양을 위한 교육을 받는다니.
'이런 성격이 되는게 당연한 곳이군.'
어떻게 그런 곳이 있을 수 있냐는 의문따윈 그의 고향과 매우 유사하다는 키네시스가 온 세계에 대한 자료를 떠올리며 없앴다. 차원을 건널 수 없어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노바족들이 가져와준 자료들만으로 충분히 경악했었기에.
"검호.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 들어보겠나."
"어, 어."
유에의 말에 검호는 의아하면서도 귀를 기울였다. 그의 과거사는 자세히 들은 적이 없어서 좀 궁금하긴 했다.
"나는 고아였다. 너도 알다시피 8백여 년 전 메이플 월드는 전란에 휩싸여 있었고, 내가 기억이란 걸 할 때쯤에 나의 곁엔 양친 모두 없었다."
시작부터 굉장히 하드하다. 과거가 절대 순탄하진 않았을거라 예상했지만 이건 뭐.
"아마 전쟁으로 떠돌아다니던 난민들이 정착해서 만든 화전민 촌으로 기억한다. 부모가 없는 날 길러준 건 부상으로 은퇴한 용병이었지. 사실 길러줬다기보다, 이리저리 부려먹었다는게 맞지만."
당시 어렸던 유에에게 빨래, 청소는 물론 오만가지 잡일들을 마구 시켰던 그 용병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싸움을 가르쳐준 스승이기도 했다.
"날 용병으로 만들어 부려먹으려 했었는지, 아니면 그 험한 세상을 살려면 주먹질이라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내 최초의 보호자였고, 스승이었다."
"그때 어떤 느낌이었는데?"
"응?"
"아니 그, 얘기하는 표정이 좀 그래서."
과거에 잠긴 눈이 꽤나 아련(?)한 게 어릴 적에 자기를 가르친 용병에 대한 뒤늦은 감사의 마음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서 물어본 거였다. 유에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굉장히 싫었다."
"으, 응?"
"상식적으로 좋았을 리 없지 않나. 그때 나는 밥도 제대로 못 먹어 비리비리한 팔다리로 궂은 잡일들을 해야했는데. 그나마 싸우는 법을 배울 땐 '이거 다 익혀서 저 인간 먼저 때려눕힌다!'고 생각하며 이 악물고 배웠지."
당연하지만 화전민 촌의 고아 소년이 삼시세끼 다 먹었을 리 없다. 잘해봐야 하루에 두 끼, 운 나쁘면 아예 굶어가며 은퇴 용병의 수발을 들어야 했고 못하면 두들겨 맞기도 했다. 사실, 꽤 자주 맞았다.
"…… 미안."
"괜찮다. 다 지난 일이니까."
그리고 그가 용병에게 복수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용병의 심부름으로 잠시 화전민 촌을 떠난 사이,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사람들이 다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어……."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 죽이고 싶을만큼 싫어했던 그 사람덕에 나는 목숨을 건졌으니까."
어린 그는 몬스터들이 휩쓸고 간 폐허속에서 신체의 절반 이상을 뜯어먹혀 죽은 용병을 발견했고, 그를 포함한 화전민 촌 사람들의 시체를 태워준 뒤 돈과 옷가지를 챙겨 떠났다.
"그 뒤로 나는 용병이 됐다. 그 사람 덕에 용병이란 직업이 어떤 건지만은 잘 알았고, 또 그것말고 다른 할만한 일을 못 떠올렸거든."
사실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있었을 것이다. 어디 큰 마을의 여관이나 술집같은 곳에서 어떤 허드렛일이라도 할테니 밥만 달라고 했으면 주인들은 고아소년을 저렴하게 부릴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을 거고, 적어도 그런 곳에 갔었다면 용병처럼 하루하루 생사가 위태로운 인생을 살진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그가 배운 것은 싸움법이었고, 그가 보고들은 것은 은퇴 용병이 살며 겪어온 이야기들이었다.
"여기저기를 떠돌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고용되어 몬스터, 때때로 사람을 죽이며 살았다. 몇 년이 지났는지따위 세지도 않다가 어느 순간 내가 어른이 된 걸 알았지."
빼빼말랐던 팔다리는 십 수년의 전투로 다져져 군살하나 없는 근육질이 되었고, 못 먹어서 작았던 키는 평균보다 커졌으며, 나뭇가지 하나 못 부러뜨렸던 손은 굳은살과 흉터가 덕지덕지 붙어 어지간한 몬스터 머리도 우습게 으깰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리고, 한 때 자신을 학대하던 용병을 죽이고 싶은 생각으로 불탔던 눈은 아무런 열기없이 메말라 있었다.
"가고싶은 곳도, 돌아갈 곳도, 이룩하고자 하는 목표도 없었다. 살아있으니까 살았고, 계속 살려면 돈이 필요해 전쟁터를 전전하는…… 어느 순간 죽어도 그때의 나는 별 생각없이 받아들였을 거다. 죽는구나, 이게 죽음인가. 그렇게 말이다."
유에의 말을 듣고있던 검호의 눈가가 잘게 떨렸다.
"그러다 어느 귀족에게 호위 의뢰를 받고 일하던 중, 그를 만났다."
프리드. 그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준 이.
"프리드를? 걔가 귀족에게 고용될 애로 보이진 않았는데."
"고용된 게 아니라 손님으로 머물고 있었다. 나를 고용한 귀족이 아니라 그 귀족이 적대시하는 다른 귀족의 객으로 말이지."
"야…… 잠깐만 그럼."
"첫만남은 적대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진 셈이지."
당시 젊은 나이에 대마법사가 된 프리드와 어떻게든 인맥을 쌓기위해 한 귀족이 그를 손님으로 초청했고, 그 귀족을 적대시하는 관계에 있던 다른 귀족이 유에를 고용해 이를 망칠 계획을 세웠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혈혈단신 용병인 유에를 쓴 것이다.
"그런 의뢰를 왜……!"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아무래도 좋았거든."
살든 죽든, 자신의 삶임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던 시절이었다. 고용주의 치도살인에 이용당해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실패했다."
영웅이 되기 전 프리드의 타이틀은 '리프레 제일의 마법사'였다. 나중에 용의 마법사나 영웅의 리더같은 더 거창한 타이틀들이 생겼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대마법사였던 프리드를 유에가 쓰러뜨릴 수 있을 리 없었다.
'당신은 누구지? 여기선 딱히 원한 살만한 일은 안 했는데.'
'대마법사라면서 뭘 모르는군. 누굴 죽이는데 원한같은 거창한 감정까지 필요하지 않아.'
'그럼 왜…….'
'실패했으니 돌아가지.'
당시 유에는 고용주의 존재를 말하지 않았으나 프리드는 대마법사답게 그의 배후를 빠르게 추리해내 자신이 머물고 있던 귀족에게 습격에 대해 알려주었고, 이에 그 귀족은 유에의 고용주에게 항의하려했다고 한다. 그보다 더 빨리 고용주가 유에를 토사구팽하려 했지만.
"그렇게 죽기 전에 프리드가 날 구해줬다."
고용주 휘하의 기사들에게 죽임당하기 직전이었던 유에를 구해준 프리드는 '내가 습격당한 당사자니 내가 처리하겠다'는 논리로 그를 데려갔고, 그 뒤 별다른 처치 없이 풀어주었다.
'왜 나를 살려주는 거지.'
'글쎄. 당신히 했던 말을 조금 바꿔서 돌려주자면,'
누굴 살리는데 대의명분같은 거창한 이유는 필요없으니까. 그 말에 뒷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눈을 크게 뜬 채 자리에 못박힌 것처럼 서서 그만을 보았었다.
'나랑 같이 여행할래? 이런저런 경험을 쌓으러 여행중이거든.'
'나는 널 죽이려 했었다.'
'하지만 나한텐 아무 감정 없잖아.'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이를 살려주고, 노예나 하인이 아닌 동등한 위치의 일행이 되지 않겠냐고 제의하는 그 모습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편으론 눈부시게 보여서.
'받아줘서 고마워! 내 이름은 프리드야. 당신 이름은?'
'없다.'
'뭐?'
'원래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부모가 오래전에 죽어서 들어본 적 없다.'
'어…… 그럼 어릴 때 자주 불린 호칭이라든가 별명은?'
''빌어먹을 꼬마', '애새끼','밥버러지'?'
'…….'
그의 일행이 되었던 날, 프리드는 제게 유에라는 옛 언어로 달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을 줬다. 그때부터 그는 유에가 되었다.
"그와 함께하면서 비로소 삶에 의미를 느꼈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건 그 자체로 기쁘고 행복한 것이란 걸 그때서야 알 수 있었지."
드물게 들뜬 얼굴로 말을 잇는 유에의 모습에 검호는 그에게 있어 프리드가 정말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만약 유에가 여자였거나 동성애자였으면 프리드에게 육탄돌격했을지도 모른다는 그럴싸한 상상을 했다.
"만약 그 이전까지 겪었던 모든 불행과 고난이 프리드를 만나기 전에 필요했던 시련이었다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내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존재…… 그 이상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아 미친."
"음?"
"아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프리드를 더 소중히 여기고 있어서 놀랐어."
"그런가. 하긴, 너한테는 자세히 말해준 적이 없었으니."
다른 놈들에겐 들려줬었던 모양이다. 그놈들은 이거 듣고 무슨 생각 했을까. 슬슬 무서운데.
"시간이 지나 검은 마법사와 그를 따르는 군단장들이 준동하며 프리드는 아리아 여제님의 명에 따라 그들과 싸워줄 존재 - 영웅이 되어줄 이들을 찾았다. 나는 그를 돕고 싶었지만 당시엔 힘이 부족했었고, 잠시 떨어져 수련을 한 뒤 다시 합류했지."
그가 영웅이 된 이유는 단 하나, 프리드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하나 둘 다른 동료들이 늘었고, 나는 내가 이중에서 가장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왜……?"
"프리드와 너, 메르세데스, 아란, 팬텀, 루미너스까지. 모두 어떤 이유이든 간에 스스로의 판단으로 영웅이 되어 사람을 구했다. 하지만 나만은 아니었지."
군단장 스우는 복수심에 따라 움직이는 팬텀에게 곧잘 영웅답지 않다고 조롱했었지만 그 말은 틀렸다. 유에에 비하면 팬텀은 차라리 영웅다운 이였다.
"그저 프리드가 하는 일이면 옳은 것일테니, 가능한 한 그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 프리드의 뒤를 쫓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화를 하다 왜 사람들을 구하고, 검은 마법사와 싸우냐는 말이 나와 이에 각자 이유를 내놓던 중 검호가 답했다.
─당연하고, 마땅히 해야하는 게 옳기 때문에.
"다른 이들도 많이 놀랐었지만…… 내가 받은 충격에 비할 순 없었겠지."
한없이 올곧은 그 대답을 들은 순간, 유에는 처음으로 스스로가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대답이 과거 프리드가 자신을 구해주며 했던 말과 같아서인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 타인이 내린 결정에만 따를 뿐 스스로 뭔가 생각하지도 않는 자신이 과연 저들과 같은 위치에서 영웅이라 불릴 자격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그제서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은……."
"당시 상황이 상황인만큼 다른 동료들에게 말하진 않았지."
그렇게 의문을 내색하지 않고 제 가슴 속에만 묻어두었을 때 빅토리아 반도에서 그 사건이 터졌고─ 검은 마법사와의 첫 전투에서 검호가 죽었다.
"너의 죽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아나."
"…… 모르는데."
"그 사건 전에도 네가 유독 남다른 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날 이후 너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무력적인 면이든 정신적인 면이든 우리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뭐야 그거 무서워. 힘은 몰라도 정신이 더 높은 곳에 있다는 건 무슨 뜻이야.
"나 그때 엄청 무서웠는데……? 검은 마법사 그놈 보기만 해도 눈 아프고 다리 떨려서 주저앉을 뻔 했다고. 검 뽑아 겨누는 것도 겨우겨우 했었어."
"하지만 가장 열심히, 격렬하게 싸워 그 자에게 상처를 남겼지."
"그야 그때만은 도망치면 안됐으니까 싸운 거고!"
"모두가 공포에 질렸을 때, 가장 먼저 공포를 뿌리치고 나선 사람은 검호 너였다."
"그 전엔 몇 번이나 도망쳤었어!"
하얀 마법사에게서, 엘린 숲에서, 시간의 신전에서─ 이 세상이 현실임을 깨달은 순간 무지를 이유로 안일하게 했던 선택의 결과들이 어찌될지 알아버려서,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망쳤다. 그렇게 도망친 현실이 하나 둘 눈앞에 다가와 내 목을 졸라서야 위기감을 느끼고 겨우 마주섰다. 마주서지 않으면 안되니까.
"그렇게 도망쳐서! 잘못했는데! 더 도망칠 수 없게 되니까 발악했던 거라고!'
"검호."
"너희가 생각한 그런 굉장한 이유로 그놈 앞에 섰던 게 아니야! 나는, 나는 그저!"
몇 번이나 도망쳐서 세계의 혼란을 방치하거나 야기하고, 그로인해 생긴 피해자들에게 무슨 욕을 들을까봐 무서워서 사실대로 말하지도 못하고, 영웅이라는 호칭에 기대어 그들에게 다 떠넘기려 한 내가.
거기서까지 도망치면 두 번 다시는 그들[영웅]과 그[검은 마법사]의 앞에 설 수 없는 것을 알고나서야 간신히 나섰는데.
"내가 너무 싫었어……."
그런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서.
그 날 나의 도망을 막은 건 공포마저 뛰어넘은 나 자신을 향한 혐오였다.
"이런…… 이런 이유로 싸웠던 거야. 거창하지 않아. 너희가 생각했던 그런 굉장한 이유가 전혀 아니다. 그러니까…… 날 대단하게 여기지 마."
한 마디 한 마디 쥐어짜듯, 격정적이던 목소리는 끝에 가선 힘이 빠져 점점 작아졌다. 휘둥그레 눈을 뜨며 이를 듣던 유에는 저 말이 정말 오랫동안 그가 가슴속에 묵혀두었던 말임을 깨닫고 물끄러미 그를 보았다.
"검호. 너는 내가 봉인식의 제물이 되겠다고 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지?"
"뭐……?"
"그때 넌 날 막으며 물었지. '만약 다시 한 번 똑같은 선택의 기회가 온다해도, 똑같이 할 수 있을 것 같나'라고."
저걸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거냐.
"그랬……지."
"그런 질문을 했던 이유는 내가 어떻게 될지 알아서였을 것 같고."
"…… 그래."
존재의 시간을 모두 바친 유에가 죽지 않고 살지만, 그 대신 소중한 이들에게 잊혀져버리는 걸 알아서 그걸 막고 싶었는데.
나는 그 대신 제물을 되어줄 용기가 없었다. 그게 너무 미안했다.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내리까는 그의 모습에 유에는 잔잔하게 미소지었다.
"─제물이 한 명 필요하다는 프리드의 말에, 나는 기뻤다."
"어? 뭐?"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내가 정말 너희와 같이 영웅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검호가 죽은 뒤에는 더 심해졌고, 결전의 그 날까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프리드에게조차. 그에게 답을 구하려는 순간 정말 자신의 뜻도 뭣도 없이 누군가의 뒤만 따라가는 것 같아서.
"그러다 봉인식에 제물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고, 그 역할에 내가 가장 적합하단 걸 직감했지."
제 삶의 이정표라 할 수 있었던 프리드도, 누구보다 밝게 빛나는 루미너스도, 한없이 올곧은 검호도 아닌 자신이 세계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걸 알고.
"그 날 존재의 시간을 다 바치는 제물이 됨으로, 나는 비로소 너희와 동등한 위치가 되었다."
"너, 너……."
내가 정말 저들과 같이 영웅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답을, 누군가의 강요나 명령이 아닌 오직 스스로가 내린 선택으로 겨우 손에 넣었다.
"물론 그들이 나를 완전히 잊어버린 건 고통스럽지만, 이건 앞으로 잘하면 해결되는 문제고."
경악 반 불신 반의 얼굴로 저를 멍청히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꽤나 신기해 되려 웃음이 나왔다.
"자 어떻지? 어떤 예상을 했었을지 모르지만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아니 어떻게 그런 이유로!!"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뭐가 마찬가지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아 검호는 입을 다문 채 앓는 소리를 냈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자기희생 정신이 넘치는 영웅이 아니다."
네가 우리들이 생각했던 더없이 고결하고 정의로운 영웅이 아니었듯.
그도 유에도 자기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행동했던 것 뿐이다. 그 이유가 자기희생적이지 않으면 또 어떤가? 어쨌든 그때 그들은 사람을 구했는데.
"그러니까…… 너무 스스로를 혐오하지 마라."
"난, 진짜 많이,"
"스스로 잘못한 걸 알고, 그것에 피해입은 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반성하고, 다시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검호 너는 좋은 사람이 맞다."
네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넌 좋은 사람이야.
어깨를 두드리는 손은 어색했지만 진심이 담겨 있어서, 아스카와 파픈스타 외에 자신의 이런 부분들을 알고도 긍정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고맙…… 고마워."
"뭘 이런 걸로 감사 인사까지."
고개 숙인 그의 표정이 어떨지 예상이 갔지만 굳이 보려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놓은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달이, 정말로 밝았다.
"유에."
"응?"
"아까, 네가 가졌었다는 의문 말인데."
타인의 뜻에 따라, 누군가의 뒤만 쫓을뿐인 자신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나선 그들과 함께 영웅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가.
"나는 네가, 봉인식의 제물이 되지 않았더라도 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 어째서지?"
"넌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결국 프리드란 사람이 하는 행동이, 생각이 '옳다'고 판단 내린 건 너 자신이니까.
"도덕이나 윤리 책에서 많이 나오는 이야기지. 이러이러한 선행을 한 사람이 있으니 이를 본받으라고. 난 네가 그런 경우라고 생각한다."
굳이 스스로의 뜻이 아니더라도, 타인의 행동이나 뜻을 보고 따라가는 건 의외로 흔한 일이다. 중요한 건 그것을 따라가기 전에 해야하는 가치판단 쪽이지.
"만약 프리드가 우리가 아는 그런 선한 마법사가 아니라 군단장같은 악한…… 아니 그냥 자기 이익만 쫓는 그런 사람이었어도 넌 그를 따라갔을 거냐?"
"그건……!"
따라갔을까? 같이 가자는 그 손을 과연 잡았을까?
적어도 목숨을 구해준 것에 고마움을 느꼈을 순 있지만, 삶의 이정표로 여길만큼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내린 답에 왜냐는 의문부호가 붙었다.
"내 생각에 네가 프리드를 그리 절대적으로 여기는 건, 아마 네가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선함이나 양심, 인간적인 그런 것들을 가장 잘 보여주고 행동하는 게 그였기 때문인 것 같다."
"아까 전에 말했지만 그때의 난 그저─"
"환경이 나빴잖아. 나였어도 그런 일들을 겪었다면 지금같지 않았겠지."
허구헌날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세상에서 프리드같은 선함을 간직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따지고보면 프리드가 드문 케이스다.
"내가 생각하는 바른 것이나, 맞다고 여기는 것, 당연하다고 행하는 것들은 대부분 원래 세계에서 배웠던 거다. 그렇게 배우고 직접 행동해본 뒤에 이게 옳다고 여겨 여기서도 계속 지키고 있는 거지."
예절, 배려, 양보, 헌신 등은 배운다고 바로 행동하지 않는다. 배운 뒤에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행동한다.
"그의 행동이, 생각이 옳다고 판단내리게 한 건 목숨을 살려준 것에 대한 빚이 아니라, 유에 너의 생각이잖아."
"…… 하."
"네가 진짜 근본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람이었으면 모두가 널 잊어버려서 절망했을 때 마침 만났던 검은 마법사 보고 군단장 됐었겠지."
"하, 하하!"
두어마디 끊어지듯이 흘러내리던 웃음소리가 달이 걸린 천장에까지 울릴 때까지, 유에는 한참동안 웃었다.
이렇게나 쉬운 것을, 그때는 왜 그렇게 답을 못 찾았을까. 참, 생각해보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서 그랬구나.
"흐흐, 흐……."
"다 웃었냐?"
"큽, 그래. 간만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야."
"너 그렇게 크게 웃는 거 처음 본다."
항상 점잖게 입 다물거나 웃어도 입꼬리만 좀 올리는 걸로 끝나더니. 예외적으로 프리드 대할 때는 분위기까지 좀 좋아지고.
"검호."
"뭐냐."
"예전부터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는데, 대답해줄 수 있나?"
"말해봐라."
유에는 아직 웃음기가 남은 얼굴로 손을 내밀며 물었다.
나는 너의 동료인가.
"아……."
동료. 그 단어는 나에게 낯선 단어였다.
영웅들은 동료라기엔 거리가 분명했고, 노바족은 동업자라는 표현이 더 잘 맞았다. 내게 있어서 지금까지 동료는 오직 파픈스타 뿐이었다. 같은 세계에서 와, 같은 처지의,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동질감을 느꼈던 사람.
눈앞의 그는?
"당연히…… 동료지."
"그런가."
사실,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며 거리를 둘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단지 그때의 나는 하얀 마법사처럼 그들까지 바뀌어버리면 안된다고, 안 좋게 바뀌어서 그들이 영웅이 되지 않아버리면 -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지금은 아니다.
"잘 부탁한다."
"나도."
그가 내민 손을 맞잡고, 악수를 주고받았다.
========== 작품 후기 ==========
본편에 넣기 너무 어정쩡한데 어쨌든 필요했던 부분. 뜰에 올릴까 했는데 그럼 안 보니까 외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