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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15화 (1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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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놈들이 오랫동안 플레이어 ‘최초의 왕’이 되겠다고 준비를 해 왔거든. 자랑도 오지게 했었단 말이야.”

“?!”

완식 ‘최초의 왕’을 언급하자 재호가 크게 움찔했다.

“응? 너 왜 그러냐?”

“으음? 내가 뭐? 그래서 어쨌다고?”

재호는 태연히 말을 돌렸다.

“뭐…… 문제는 플레이어 최초의 왕 칭호가 안 떴거든. 그 정도면 당연히 글로벌 알림이 뜰 거라던 게 대부분의 추측이었으니까.”

재호는 내심 안도했다.

‘국가를 선포하시겠습니까?’라는 알림을 수락했다면 전 세계에 자랑을 한 꼴이 되었을 테니.

“아마 그놈들 눈 시뻘게져서 찾고 있을걸?”

“찾는다고?”

“당연하지. 그놈들이 얼마나 집요한데.”

완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찾으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재호의 질문에 완식은 턱을 괸 채, 가만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아마 게임 접을 때까지 쫓아다니면서 죽여 대겠지. 그런 짓 많이 해 왔으니까.”

“…….”

“근데 말이야……. 혹시 서풍이 설레발 친 사건이 이거랑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어.”

“뭐?”

“뭔가 시기가 얼추 들어맞지 않아? 그 양반은 알고 있었던 거지. 이미 플레이어 최초의 왕이 나타났다는 걸.”

“어…… 너무 비약 아닌가?”

월드와이드 대표 서동혁이 ‘서풍전야’ 발언을 할 당시, 재호는 왕의 자격을 얻기 한참 전…….

‘……잠깐만. 그때면 나 정령화장이 될 때쯤 아닌가?’

뒤늦게 샘솟은 불안감.

‘아, 아니겠지…….’

애써 불안감을 덮어 버린 재호였다.

* * *

“최초의 왕 혹시 알시……아님 아니에요?”

“…….”

접속하자마자 훅 들어온 메이의 질문.

굳이 여기저기 알릴 만한 사실은 아니기에 완식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녀석은 좋은 친구지만, 남자들은 이따금씩 기발하고 화려하게 엿 먹이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었으니까.

반면에 메이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물어보고 있었다.

그녀 역시 불곰 길드에 대해선 좋지 않게 생각하는 평범한 유저였으니, 그들의 공든 탑에 똥칠을 한 재호를 향해 존경의 눈빛을 보내는 것이었다.

“알시……아님이 플레이어 최초의 왕 맞죠?!”

“아닌데?”

“아니……라구요?”

의심 가득한 되물음.

“그랬으면 당장에 난리가 났겠지.”

게다가 애초에 재호는 스스로 왕이라는 말은 한 적이 없었다.

사만다가 냅다 절을 하면서 떠든 것 말곤 왕임을 증명할 만한 게 없었던 것이다.

“아― 하긴…….”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메이는 쉽게 납득해 버렸다.

“왕관을 쓰고 있다고 다 왕일 리도 없죠. 사만다 씨가 조금 유난스러웠던 점도 있고.”

“그렇지…….”

그렇게 말하던 재호는 문득 뒤통수를 콕콕 찌르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윽! 저 여자…….’

시선의 주인은 바로 사만다!

‘확실해. 저 남자가 플레이어 최초의 왕이야!’

이미 그녀는 퀘스트 창을 통해 재호가 코페이의 왕위를 계승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최근 뜨거운 감자인 ‘플레이어 최초의 왕’ 역시 재호라고 확신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입을 막지…….’

재호는 걱정했고.

‘꽃집을 하겠다는 건…… 자신을 미치광이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위장일 뿐…….’

사만다는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래도 사만다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재호 입장에서도 그리 나쁘지 않은 방향이었다.

‘뭐, 상관없지. 불곰 녀석들이 그 꼴이 된 건 잘된 일이니.’

그녀 역시 불곰 길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알 수 없었던 재호.

“흠흠.”

헛기침을 흘리며 재호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저기, 사만다.”

“말씀하십시오.”

이젠 그녀의 존칭이 제법 익숙해진(정확힌 포기한) 재호가 태연히 말을 이었다.

“그…… 너는 알지?”

그녀는 자신이 플레이어 최초의 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리란 걸 짐작하고 있는 재호.

“……그렇습니다.”

“뭐, 알고 있으니 미리 말해 둘게. 난 그냥 조용히 있었으면 하거든. 별로 소문이 안 났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모른 척해 줘.”

“알겠습니다.”

“……진짜 알아들은 거 맞지?”

“알겠…… 아, 물론입니다.”

“…….”

“알시……아님! 엘프들이 돌아왔어요!”

그때 들려온 메이의 외침.

푸르르―

엘프들이 수십 마리의 정령마들을 이용해 통나무를 끌고 오고 있었다.

“저희 왔습니다, 알시아님! 또 보네요, 메이님.”

“헤헤…… 네에.”

헤실헤실 웃으며 인사를 받은 메이.

“말들이 사막을 다녀도 괜찮은 건가요?”

재호는 숨을 헐떡거리는 정령마를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초목이 우거진 곳에서 자유롭게 살던 녀석들이니 이런 메마른 대지를 횡단하는 건 상당히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엘프들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하하, 물론이죠. 정령마는 그렇게 약한 생명체가 아니랍니다. 무려 유니콘의 후손이니 말이죠. 엘프 대이동 당시엔 이보다 더 척박한 환경들을 헤쳐 나온 강인한 녀석들입니다.”

히히잉―!

수레를 풀어주자 펄쩍 뛰어 오아시스로 뛰어드는 녀석들을 보면 그 호언장담에 의문이 들었지만…….

“어쨌든 감사합니다.”

재호는 정령마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곤 엘프들이 가져온 수레를 살폈다.

[<월화수 원목>]

[등급 : 고급]

[사용 조건 : 없음]

[달빛과 햇살을 머금은 월화수의 원목입니다. 열에 특히 강하며 달빛을 받으면 자생하며 더욱 튼튼해집니다.]

바로 이곳에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

“부족하면 얼마든지 말씀하시죠. 그나저나 주변이 상당히 바뀌었군요?”

엘프들이 오아시스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벌써 이 사막에 푸르름이 돋아나고 있다니…….”

열심히 물을 퍼 올려 땅을 적시고, 거기다 이펠츠 꽃을 심은 결과였다.

“이제 시작이죠.”

재호의 눈이 의욕으로 불타올랐다.

마침내 집을 지을 차례였다.

바로 그렇게 바라고 또 바라던 꽃집을!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전직까지만 해도 두 달.

그리고도 몇 달을 더 소모했으니 여기까지 거의 반년이 걸린 셈이었다.

재호가 지금까지 해 온 퀘스트들이나 벌려놓은 사건들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짧은 시간이지만…….

어차피 그런 건 재호에게 큰 의미 없는 일이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저희도 돕겠습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정령화장이라 해도 월화수를 다루는 능력은 저희들이 나을 겁니다. 하하핫!”

두 팔 걷고 나선 엘프들.

재호는 그 도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 * *

전문가들인 엘프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월화수 원목 건축물.

사실 전문가가 만든 것치곤 여기저기 어긋나고 외벽에도 틈이 많은 것이 상당히 허술해 보였으나, 정작 엘프들은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

그 이유는 엘프들이 직접 설명해 주었다.

“월화수는 아주 다루기 어려운 재료지요. 이 녀석들은 밤이면 스스로 자라나며 저들끼리 빈 공간들을 메워 바위만큼 단단하게 된답니다. 심지어는 바닥으로 뿌리까지 내려 그 어떤 재난에도 끄떡없는 철옹성이 되지요.”

“아, 그래요? 대단하네요…….”

확실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만들었다간 큰일이 날법한 재료.

‘그래도 뿌리까지 내린다니…….'

판타지 세계라지만 그런 게 가능하단 건 경이로울 정도였다.

“와아― 이쁘다!”

물론 그런 사정은 조금도 모른 채, 그저 엘프가 만들었다는 사실에 순수하게 감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마, 말도 안 돼……!’

한편, 사만다는 충격에 빠져 있었다.

‘엘프와 이 정도의 친분을 쌓은 것도 놀라운데…… 정령마를 짐말로 부리는 데다 심지어 월화수라니!!!’

그녀가 알기로 월화수는 최상급 재료에 해당되었다.

길드의 절친인 크루와상이 상인 클래스로, 월화수를 아주 귀족처럼 모시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플레이어들 입장에선 월화수의 사용처가 그리 다양하진 않았다.

궁사 클래스의 최상급 활이나 화살 제작에 쓰이는 정도.

하지만 그런 궁사 랭커조차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귀한 것이 바로 월화수였다.

‘엘프들이 아니면 키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듣긴 들었는데…….’

대륙에 유통되는 월화수의 대부분은 하스퍼 대륙의 최강국인 루센 제국의 대정령탑.

뛰어난 정령사들이 모인 그곳에서 쥐꼬리만큼 재배가 되고 있긴 했다.

하지만 엘프들이 직접 키운 것만 할까?

그런 귀한 재료를 사막에다 집을 짓는 데 쏟아 부었으니 충격을 받는 게 당연했다.

‘어쩌면 어지간한 성보다도 더 비쌀지도…….’

“사만다.”

“……네? 아, 네!”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기던 그녀가 재호의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여기 엘프들과 같이 우물 좀 뚫어줘. 늘 하던 대로 구멍만 내면 나머지는 엘프들이 해 줄 거야.”

“아, 알겠습니다.”

그녀의 눈이 엘프들을 향했고…….

‘크윽…….’

아니라 다를까, 우물을 만드는 데도 월화수를 쓰려는 것을 확인한 사만다는 정신적 고통에 몸부림쳤다.

* * *

오아시스 옆에 만들어진 꽃집.

그리고 주변으론 생기를 머금은 잡초들이 자라났고, 재호가 심은 이펠츠 꽃들 역시 만개해 홀씨를 뿌렸다.

그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는 꽃다운 생존력이었다.

[<생기의 정령>이 ‘그렇다고 해도 사막에선 자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고맙다.”

재호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재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란 걸 상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생기의 정령>이 ‘하지만 지금 하려는 짓은 다시 생각해 보라고…….’]

“아냐. 망설이면 늦어질 뿐이라고.”

[<생기의 정령>이 ‘조금 늦어져도 괜찮…….’]

“아니!”

코페이의 왕위를 계승하는 시점에서 이미 결정을 내려놓았었다.

이곳이 재호의 보금자리이자, 이 귀찮은(?) 퀘스트를 처리해 버리기 위한 장소라고.

“<신기루 병사 소환>!”

모습을 드러낸 코페이의 병사들.

“부르셨습니까.”

최초에 소환되었을 땐 또다시 시작된 저주받은 삶에 절규했던 그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재호는 그들에게 이미 희미해진 과거의 일상이 무엇이었는지 되새겨 주었다.

브레잘과는 다른 의미로 미친 것 같은 사람이었으나, 썩 나쁘진 않다고 느낀 것이었다.

그래서 이젠 재호를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처지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주가 아닌 기회라고……!

“저기 가서 식토랑 똥 좀 퍼 와 줘.”

“……알겠습니다.”

그 기회가 좀 더럽긴 했지만.

신기루 병사들이 똥을 퍼 나르는 동안, 재호는 부지런히 삽질을 했다.

[<삽질의 달인>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힘이 2 상승합니다.]

[삽질의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그동안 놀고먹은 게 아니라는 증거!

넓고 깊게 파헤친 땅에 재호는 신기루 병사들이 가져온 식토와 정령마 똥을 고루 섞어 채워 넣었다.

“후우…….”

그리고 이 영양가 넘치고 포근한 침낭의 주인될 ‘물건’을 꺼냈다.

[<신목의 씨앗>]

바로 여기다 신목을 심을 계획이었다.

실패할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정도로 중요한 아이템이 실패한다고 해서 사라지진 않을 거야.’

안일함의 극치.

보통의 사람들은 불안해서 감히 시도도 못 해 볼 짓을 재호는 무식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나름 지금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다고 할 수 있었다.

생령이 충만한 럭시 숲의 흙과 정령마의 똥으로 만든 비료까지 준비했으니까.

“좋아……. 그럼 심는다!”

[<생기의 정령>이……!]

생기의 정령의 절규는 외면한 채, 재호는 씨앗을 놓고 흙을 덮었다.

팡―팡―팡―

그러곤 병사들과 함께 폴짝폴짝 뛰며 땅을 다지는 것으로 끝을 냈다.

[<신목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클래스 퀘스트*]

[신목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마침내 당신은 신목을 대지에 심었습니다.

신목을 키우는 법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결코 쉬운 일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오직 정령화장인 당신에게만 있습니다.

뿌리를 내리고 싹을 피울 수만 있다면, 신목의 의지가 당신에게 닿을 것입니다.]

“좋았어!”

퀘스트가 갱신된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무언가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

[<생기의 정령>이 ‘이건 뭔가 아닌 것 같다.’고…….]

이젠 부질없는 메아리였다.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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