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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월드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던전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존재했다.
하루에도 수 개씩 발견되는 새로운 던전들.
그리고 새로 발견된 던전을 최초 공략할 경우, 명성, 칭호 같은 특수 보상들까지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
오늘 레드가 공략에 참가하기로 한 던전도 고정 파티원이 발견한 곳으로,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공략 시도라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또 실패한다면, 다른 랭커 용병들이라고 고용할 생각이었다.
“근데 레드는 왜 이렇게 안 와?”
“뭐 어디 들렀다 올 곳이 있다던데? 아이템 주문 제작해 놓은 걸 찾아오겠다고.”
“아이템? 걔 지난번에 스태프 만들다가 돈 다 털어먹었던 거 아냐?”
“뭐, 어디서 또 빚냈겠지.”
“쯧쯧, 어차피 이제 아이템 바꿔 봐야 의미 없다니까. 그 녀석 어떻게든 승급부터 한 다음에 아이템 다 갈아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어, 저기 온다.”
마침 저 멀리서 다가오는 레드.
“……음?”
“뭐냐 저거?”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레드의 기이한 패션.
다름 아닌 마법사용 고깔모자 위에 얹은 화려한 화관!
“나 왔다.”
태연히 인사하는 레드의 모습에 그들을 말을 잇지 못했다.
“다들 표정이 왜 그래?”
“음……. 너 괜찮은 거냐?”
“갑자기 뭔 소리야?”
“승급하기 어렵다더니 혹시 미쳐버렸거나 그런 거냐?”
“미치긴 누가 미쳐? 설마 이거 때문이냐?”
레드가 화관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새로 맞췄다는 아이템이 설마 그거냐?”
“후후, 제대로 알아보는군.”
“미친 거 맞네.”
“승급 막혀서 정신줄 놓는 인간들 많다고 소문으로만 들었지, 설마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어.”
하지만 레드는 자신만만했다.
“나도 알아. 지금 내 꼴이 등신 같아 보이는 거. 하지만 곧 너희들은 생각이 바뀌게 될 거다…….”
“……미친놈.”
그들은 물론, 주변의 모두가 레드의 말을 미친 소리로 치부했다.
오직 레만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
“가자! 이 몸이 오늘 이 지긋지긋한 던전도 끝낼 테니까!”
* * *
“알시아님. 새로운 화관 제작 의뢰가 여러 개 왔는데요.”
“?!!!”
콜센터 직원의 말에 꽃꽂이 중이던 재호가 화들짝 놀랐다.
“……왜 또 그렇게 놀라시는 거죠?”
“아, 아니야.”
레드가 작업을 의뢰한 것은 대강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재호가 시제품을 선물로 주었었으니까.
헌데 갑자기 여러 사람의 주문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어떤 걸 원한대?”
“총 세 명인데 말입니다…… 각각 탱커랑 전사 두 명입니다. 그런데…… 가격에 대해서 좀 요구사항이 있는데…….”
“가격?”
“예. 너무 비싸다고…… 자기들이 홍보를 제대로 해 주겠다면서 싸게 해 달라고…….”
“…….”
이런 경우가 일어날 거란 생각은 이미 했었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찾아오긴 했지만.
“아, 그리고 또 하나 조건으로 레드님과 거래한 걸 비밀로 해 주겠다고…….”
“음? 그건 또 뭔 헛소리야?”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레드와 아는 사이라는 건 알 게 되었으나…… 그걸 굳이 왜 비밀로 한다는 건지는 이해 못 한 재호.
그들이 그런 말을 한 이유는 단순했다.
불곰 길드 소속인 레드와 거래를 한 게 비밀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아마 알려져선 결코 좋을 리 없으리란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재호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곤란해지는 건 레드뿐.
“쯧……. 레드 씨는 사람이 참 괜찮던데 동료들은 아니군.”
불곰 길드의 유저로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극찬이지만…… 동료들 상태가 그런 것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그 사람들 아이디가 뭐지?”
“‘글로리아’, ‘칼리’. ‘그롱그롱’입니다.”
“다 차단해 버리고 블랙리스트에 추가해.”
이런 일을 대한 재호의 방침은 명백했다.
바로 밀당 0룰.
“아무리 돈 벌어야 하는 입장이라 해도 저런 것 하나하나 받아주면 날파리들 엄청 꼬인다고.”
초장부터 호구로 잡힐 생각은 전혀 없었다.
* * *
콜센터 직원이 근무지(근무지라고 해 봐야 꽃집 근처에 마련된 낡은 천막이었지만)로 돌아간 뒤, 재호는 다시 하던 작업에 집중했다.
꽃을 찾는 손님은 없었지만, 관련 스킬을 계속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어 이렇게 짬짬이 꽃꽂이 중이었다.
―알시아님! 저 크루와상이에요!
그리고 때마침 재호에게 온 크루와상의 귓속말.
―아, 오랜만입니다.
―하핫,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네?
―알시아님 소식이야 전 세계인이 다 알고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렇군요. 헌데 무슨 일인가요? 포션 주문 수량은 다 채워서 보내드렸을 텐데.
―물론이죠! 알시아님이 만드신 포션은 언제나 최고 인기니까요. 하지만 오늘은 그 때문에 연락을 드린 게 아니에요. 실은…….
크루와상의 상단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은 테라스 대륙의 북쪽에 있는 시트라 대륙.
그리고 크루와상 상단의 본거지는 오톨크라는 도시였다.
―오톨크에서 매년 열리는 ‘꺼지지 않는 밤’이라는 축제가 있거든요. 저도 두 번밖에 경험해 보지 못한 축제인데 이게 꽤 커요. 인근의 젊은 귀족들이 많이 참가하거든요.
―그래요?
―알시아님도 한번 참여해 보는 게 어떤가요?
―음? 제가 왜요?
―제 상단이 본격적으로 크기 시작한 게 이 축제 덕분이었거든요. 어쩌면 알시아님의 꽃집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이미 재호는 대륙 전체에 이름이 알려진 상태.
하지만 어디까지나 새로운 나라의 왕으로 알려져 있을 뿐, 꽃집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귀족이라…….’
그제야 재호는 크루와상이 말하는 바를 이해했다.
그곳에서 귀족들을 상대로 꽃집을 홍보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여기 오는 젊고 철없는 귀족들은 쉽게 말해 호구들이거든요. 사실 이건 저만의 팁이라면 팁인데, 알시아님이니까 특별히 말씀드리는 거예요. 오랫동안 거래 관계를 이어가자는 뜻에서 말이죠! 호호호!
‘나쁘지 않을 거 같군.’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재호는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손님도 없고…….’
화원의 관리는 자신이 며칠 비운다고 해서 망해버릴 정도로 허술하거나 바쁘지도 않았으니까.
―좋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준비를 좀 해 놓겠습니다!
* * *
[시트라의 오톨크 지방으로 간다는 것이냐?]
오랜만에 찾아간 신목과 대화를 하던 중, 재호에게 그녀(엘프들이 어머니라고 칭했기에 재호는 여성체로 인식하고 있었다.)가 물었다.
‘아는 곳이에요?’
[알다마다. 대체 이 나를 무엇이라 생각하는 게냐? 중간계 어디든, 나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단다.]
신목의 목소리에선 자부심이 느껴졌다.
[물론 지금은 그때만 못하지만 말이다.]
‘…….’
[그래도 그곳에 있는 민트라임의 꿀은 아직 생생히 기억나는구나.]
‘뭐, 좀 챙겨올게요. 어차피 가는 김에 그쪽 대륙 꽃들도 좀 조사해 볼 계획이니까.’
[그럼 로필렌의 꽃가루와 돼지코 땅두더지 고구마, 그리고 또…….]
다시 시작된 신목의 주문.
‘네― 네―’
건성으로 듣고 있던 재호였으나, 어느 순간 나온 신목의 한마디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 방금 뭐라고요?’
[응? 엠베이 숲 말이냐?]
다행히 신목은 재호가 귀담아듣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악마들에 의해 오염된 장소이니라. 아마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여전히 그곳은 악마들의 소굴이겠지. 네가 가는 김에 한번 확인해 주었으면 하는구나.]
‘……뭐, 그러죠.’
라고 대답은 했지만 재호는 전혀 생각이 없었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따져 봤을 때, 악마들을 만나는 것이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었던 것이다.
엘프들의 고향이었던 리젤란 숲.
그곳은 아직 플레이어들이 가 본 적도 없는 위험 지역이었다.
뉴월드 세계의 NPC들 역시 그곳을 어쩌지 못해 방치해 두는 곳 아니었던가?
대체 얼마나 악마들이 강하면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일까?
아니, 어마어마한 무력을 자랑하는 엘프들조차 고향을 버리고 나올 정도였다는데?
‘당연히 내버려 둬야지.’
[음? 무엇을 말이냐?]
‘아, 내버려 둘 수 없다고요. 말이 꼬였네.’
재호는 급히 수습했다.
그 뒤로는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없었다.
신목의 입맛 취향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
‘슬슬 가 봐야겠네요.’
[벌써 가려는 것이냐?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며칠 만에 온 것 아니더냐!]
‘어차피 나 말고도 놀아주는 엘프들 많잖아요.’
명백한 사실.
[너는 자기 할 말만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상대와 이야기하는 게 즐겁다고 생각하느냐?]
‘…….’
재호는 말을 아꼈다.
바로 자신이 그런 입장이라는 걸…….
동시에 한 가지 확신도 얻었다. 엠베이 숲엔 절대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 * *
오톨크 대륙으로 함께 길을 떠나게 될 인원은 사만다 한 명.
약간은 의외라고 할 만한 조합이지만 그녀 말고는 같이 갈 사람이 없었다.
최소한의 화원 관리를 위해선 메이가 남아 있어야 했고, 완식 역시 그런 그녀를 도와야 했다.
하지만 사만다는 본래부터 포지션이 애매했었고, 새로운 클래스로 전직한 후론 사실상 재호의 비서나 다름없이 된 상태였다.
게다가 오톨크의 크루와상과는 절친하기도 했고.
―출발하자.
―알겠습니다.
사람을 바로 곁에 두고서 하는 난데없이 귓속말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이유인 즉…….
―엘프들한테 절대 걸리면 안 돼. 걔들이랑 같이 가면 골치 아파.
엘프들을 떼어 놓고 가기 위한 것!
엘프와 함께 가면 편한 점이 많긴 했다.
세상 어디에도 그들만큼 든든한 호위는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왜?
사만다와 엘프의 관계 때문에?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의 그녀는 사막의 정령기사로 전직을 한 탓에 이전만큼 엘프들의 미움을 받고 있지 않았으니까.
진짜 문제는 오톨크로 향하는 길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엠베이 숲이 있다는 점이었다.
‘악마에 대해선 개코나 다름없는 엘프들이 절대 놓칠 리 없어.’
다혈질 엘프들이 괜히 악마들에게 싸움을 걸었다 탈탈 털릴지도 몰랐다.
“앗! 알시아님! 외출하시는 겁니까?!”
“으응?!”
단 한 명의 엘프도 마주치지 않고 탈출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
“그냥 외곽에 초원이 어디까지 확장됐는지 확인해 보려고.”
재호는 이미 준비해 놓은 핑계를 태연히 늘어놓았다.
“아, 그렇군요! 늘 고생하십니다!”
재호 입장에선 그 누구보다 속이기 쉬운 것이 엘프들이었다.
그렇게 말을 걸어오는 22명의 엘프들을 완벽하게 속인 끝에 도착한 초원과 사막의 경계.
“……여기 언제 이만큼이나 커졌대?”
한 번도 체크해 보지 않았던 초원의 면적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세 배는 더 커진 것 같았다.
“덕분에 수월하게 탈출은 할 수 있겠군요.”
사만다의 말마따나 여기까지 나와 어슬렁거리는 엘프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출발해 볼까?”
지도와 나침반을 든 채, 재호와 사만다는 사막 횡단을 시작했다.
* * *
아무리 게임이라고 하지만 사막을 횡단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충분한 수분 섭취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땡볕에 장시간 노출이 되면 여러 디버프들이 이동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전직을 하고 나니 이런 점에선 불편하군.’
이전 클래스가 사막에 특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몰랐던 어려움.
레벨이 레벨인 만큼 체력적인 부담은 없었으나, 끝없이 걷는 행위 자체로도 정신적으로 피곤…….
붕―붕―
갑자기 허공에 대고 팔을 휘두르기 시작한 재호.
“뭐하시는…… 음?”
[<몽꽃의 정령>이 당신을 감쌉니다.]
[클래스 패시브로 인해 정령과의 교감도가 증가합니다.]
[열기에 대한 저항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설마 그 이상한 춤이 스킬입니까?”
“……모른 척해 주면 안 될까?”
재호라고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싶을 리가 없었다.
“저를 걱정해서 하신 거라면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 정도 디버프는 견딜 만합니다.”
“응? 아니, 내가 아파서 쓴 건데.”
“……?”
사만다는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재호 정도 되는 플레이어가 겨우 이 정도 열기에 곤란함을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잠깐, 설마?’
그 순간,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린 그녀.
하지만 도저히 그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가 없었다.
상대 입장에선 너무나 무례한 일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말도 안 되는데……. 으…… 궁금해…….’
“왜 그래? 뭐 할 말 있어?”
안절부절못하는 사만다의 모습에 재호가 물었다.
“저…… 혹시…….”
결국 호기심에 굴복해 버린 사만다.
“실례가 안 된다면 알시아님 레벨이 몇 정도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302입니다만…….”
혹시나 재호가 불쾌할까, 자신의 레벨을 먼저 공개한 사만다.
“헉?! 뭐야? 높은 줄은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높다고? 랭커야?”
“래, 랭커들은 훨씬 높습니다.”
점점 사만다의 추측은 사실로…….
“난 얼마 전에 100 찍었지.”
“……?”
크게 당황한 사만다.
예상보다도 훨씬 낮은 레벨!
“노, 농담 아닙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것이 진실임을 알려주는 여러 정황들이 있었다.
럭시 숲에서 메이와 함께 나왔던 것이나…….
단시간 내에 엄청난 사건들을 일으킨 것에 비하면 지나칠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나.
하지만 그 모든 게 사실은 뉴비여서 그랬다면?
‘괴물…….’
사만다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고작 100레벨로 뉴월드에 이 정도의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