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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쿠웅―
멀리서 들려오는 묵직한 발소리.
엘리시아에서 뜨거운 땀을 흘리며 일하던 사람들은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 저, 저거……!”
가장 먼저 발견해낸 사람이 지평선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헉?! 몬스터?”
“아, 아냐! 저건 알시아님이 부리던 골렘과 비슷하게 생겼어!”
비록 사이즈는 많이 작아졌지만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 골렘은 사람들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된 상태였다.
게다가 골렘 위에 걸터앉은 한 사람의 실루엣.
거기서 흘러나오는 범상치 않은 아우라는 이제 엘리시아의 모두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아, 알시아님이다!”
사람들의 예상대로, 막 엘리시아에 도착한 재호.
골렘은 슈아르 산림에서부터 소환을 한 상태로 데리고 온 것으로, 쉰들러를 상대로 배짱을 부릴 때 들어간 보물들로 만든 것이었다.
[lv.15 황금 골렘]
처음 골렘의 레벨을 확인했을 때, 재호는 두 눈을 의심했었다.
현재 상태에서 최대한 강하게 만든 골렘의 레벨이 고작 15?
하지만 실제 성능이 아주 별로인 건 아니었다.
그저 폭주 상태였던 당시가 말도 안 되는 강력함을 뽐냈던 것일 뿐.
그리고 다행히 모래 병사들과 달리, 골렘은 성장이 가능했다.
바로 보물들을 투자해서!
소환 해제만 하지 않는다면 골렘에는 보물들을 지속적으로 축적 가능했으며, 최대 한계 레벨 역시 마나 능력치에 따라 증가했다.
이론상으론 말 그대로 무한 성장 가능한 현질 소환수!
‘……라곤 하지만 거기 투자할 돈이 당장은 없지.’
쿠웅―
도시로 진입하기 전에 골렘을 멈춰 세운 재호는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오셨습니까?”
엘프들이 환한 얼굴로 재호를 향해 다가왔다.
“잠깐 못 본 사이에 특이한 소환수를 데리고 오셨군요. 힘 꽤나 쓰게 생겼는데요?”
“안 그래도 도시 외곽 경비나 막노동에 쓰면 좋을 거 같다 싶더라.”
2미터가 넘는 높이 때문에 도시 내로 들이는 건 절대 불가능이었다.
그렇다고 소환 해제를 하는 건 더더욱 안 될 일이었고.
“잘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농토를 개간할까 싶었거든요.”
흡족하게 웃으며 말하던 엘프는 이내 뒤쪽에 늘어선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저들은 누구입니까?”
“불곰국 감옥에 잡혀 있던 사람들이야.”
재호는 피스오를 옆으로 불렀다.
“이쪽은 구 이데란의 왕자 피스오고 그 주변엔…… 관계자? 뭐라고 하지?”
“아, 새로운 직원들이군요.”
“……그보단 잠깐 식객으로 지낸다고 하자.”
“자, 잠깐! 식객이라니!”
피스오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직원이란 표현보다 더 별로처럼 느껴지는 게 식객이었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왕족에 대한 예우를……!”
“시끄럽다! 감히 알시아님에게 왈가왈부하는 거냐?! 안일함에 취해 나라를 잃어버린 망국의 왕자가 감히 예우를 바라는 것이냐?!!”
난데없는 엘프의 팩폭에 피스오가 당황했다.
“뭐야? 너희들은 그걸 어떻게 알아?”
재호도 깜짝 놀라 물었다.
“아, 사실입니까? 그냥 넘겨짚었는데.”
“…….”
그렇다기엔 소름 돋을 정도로 정확했다.
“뭐, 보통 망한 나라들은 내부에서부터 골병이 들어 있으니 말이죠.”
“크흑…….”
피스오는 눈물을 쏟았지만 함께 온 왕국의 생존자들의 공감은 얻지 못했다.
그들 역시 왕실 관계자들로 한통속이거나, 피해를 본 입장이었으니.
“그런데 저자들은 왜 굳이 여기까지 따라 왔답니까? 모든 귀족들이 몰살당한 것도 아닐 텐데.”
“어…….”
뒤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을 두고 차마 버림받았단 이야기할 순 없었다.
대체 이데란 왕가가 얼마나 밉상이었으면 모든 귀족, 사촌들이 피스오가 영지로 오는 걸 거절했을까.
결국 갈 곳이 없어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었다.
보물이 많다지만 그 보물을 지킬 힘도 없었고, 그렇다고 거지꼴로 길거리를 돌아다니자니 불곰국으로부터 안전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와! 여기가 엘리시아구나!”
한편 눈치 없이 들뜬 플레이어들은 연신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재호는 얼른 브리즈를 찾았다.
“헉― 헉― 무, 무슨 일이십니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타난 브리즈에게 재호는 감옥에서 꺼내 온 플레이어들을 가리켰다.
“이번에 구출해 온 플레이어들인데 엘리시아에 정착하고 싶대. 아무래도 그런 쪽으론 전럭협이 잘 아니까.”
“아!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맡겨주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엘리시아 정착 희망자들이 제법 늘어나서 정기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거든요.”
“아…… 그래?”
자신이 굳이 신경 안 써도 도시 운영이 알아서 잘 되는 것이라 이해하고 넘어갔다.
“혹시 NPC들 상대로도 그 클래스 수강이 가능한가?”
“물론이죠! 실제로 최근 이곳을 찾아오는 NPC들도 제법 있긴 합니다. 제대로 자리 잡은 사람은 없지만.”
“그럼 저쪽 사람들도 좀 부탁해. 아무래도 당분간 여기 있을 것 같거든.”
“걱정 마십쇼!”
호언장담한 브리즈는 플레이어들과 피스오를 비롯한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
“후……. 일단 이 정도로 해 놓고. 화원엔 별일 없었어?”
“예. 정령들이 즐거워하고 신목께서도 상태가 좋으니 모두 알시아님 덕분입니다.”
환히 웃으며 대답한 엘프.
하지만 꽃집에 있던 메이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하아……. 게임단 관계자라는 사람들이 마구 들이대서 곤란했던 일이 몇 번 있었어요.”
“뭐? 갑자기 웬 게임단 관계자?”
“화원에 머무르고 있던 사람들 있잖아요.”
재호도 알고는 있었다.
헌데 그들이 문제를 일으킬 게 뭐가 있다고?
“뭐 인재 독과점이니 뭐니…… 이상한 소리를 하던데요?”
“?”
대체 뭔 근본도 없는 미친 소리인가?
* * *
사태 확인을 위해 아직 엘리시아에서 살아남은(?) 게임단 관계자들을 만난 재호.
그들이 항의하는 원인은 재호도 전혀 예상 못한 부분이었다.
“전럭협의 캐스팅 금지령을 풀어 주시오!!”
바로 이 터무니없는 요구.
“아무리 그래도 공정한 경쟁을 막는 건 너무하지 않소?!”
“MK답지 않은 졸렬한 행동에 실소가 나옵니다!”
“아니면 뭐 개인 게임단이라도 차리려는 겁니까?”
아니, 대체…….
“그걸 왜 나한테 그래요?”
재호는 어처구니없단 얼굴로 물었다.
“그야 알시아 씨 당신이 그들의 보스니 하는 말이지 않겠습니까?”
“뭔가 착가한 거 같은데, 나는 전럭협과 조금도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전럭협 소속의 플레이어들은 전부 게임단 캐스팅을 거절하는 겁니까?!”
“이야기를 듣기론 길드 가입 조건 중에 외부 활동 금지가 있다고 하던데요?”
그건 브리즈가 알겠지.
―브리즈.
재호는 브리즈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자! 반복해서 외치세요! 나는 쓰레기…… 어? 아, 알시아님! 무슨 일이십니까?
―…….
대체 그의 수업에선 뭘 가르치는 건지…….
―지금 게임단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전럭협 가입 조건에 대해서 따지네.
―아! 그것 말씀입니까? 후후…….
의미심장하게 웃음을 흘리는 브리즈.
―전럭협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이곳 엘리시아에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건 전적으로 알시아님 덕분 아닙니까?
―……전럭협은 옛날부터 있지 않았나? 게다가 엘리시아에 남기로 한 건 너희들이 택한 일이고.
―우리 전럭협은 세계 최고의 게임이라는 뉴월드를 시작하고 노숙자에서 끝날 뻔했습니다. 그걸 구해준 게 알시아님이었죠. 그래서 어떻게 보답할까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바로 알시아님을 위해 게임을 하기로!
―잠깐만. 그러면 결국 전이랑 다를 거 없잖아!
결국엔 럭시 숲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거지 생활에 묶여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
―아뇨! 확실히 다릅니다!
브리즈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이전 전럭협은 어쩔 수 없었다면, 지금의 전럭협은 자의로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선수로 활동해서야 어디 가당키야 합니까?! 전럭협은 알시아님을 위해, 엘리시아에서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길드입니다!
―아, 아니……. 왜 굳이 그런 짓을…….
―저흰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은데.
―하하!! 말리셔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저희는 럭시 숲에서 게임을 접은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뭐라고 해도 듣지 않는 브리즈.
“난 모르는 일이에요.”
결국 재호도 손을 내저었다.
“그 사람들을 게임단으로 캐스팅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하세요. 난 신경 안 쓰니까. 아! 그리고 항의를 할 거면 저쪽에 엘프 상담하는 브리즈라는 사람 찾아가세요. 그쪽이 전럭협 길마거든요.”
“뭣? 알시아 씨가 길마 아니에요?”
“……아닌데요.”
그런 오해를 하는 것도 이젠 이해가 되었다.
전럭협에서 알시아 타령을 얼마나 했을지 예상이 되었기에…….
* * *
쿠웅― 쿠웅― 쿠웅―
사막 위를 걸어 다니는 골렘과 그 위에 올라탄 재호.
그러고 있는 이유는 지하 어딘가에 묻혀 있는 브레잘의 금고를 찾기 위함이었다.
숨겨진 장치가 혹시나 발견될까 싶어 주변을 수색했으나 아무런 특이점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코페이 왕국 자체가 엘리시아 화원 아래에 있었던 것이니 근처에서 발견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흔적이 나오지 않았으니, 사막을 몽땅 뒤져야 할 상황.
‘아냐. 분명 이 근처에 있는데 내가 못 찾고 있는 걸 거야.’
분명 재호는 브레잘의 성 지하에서 금고를 발견했었다.
그게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이동되었을 리 만무했으니, 분명 근처에…….
푸확―
그 순간, 방금 스쳐 지나간 선인장에서 모래가 터져 나오더니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꼬리에 선인장을 달아놓고선 여행자, 혹은 동물들을 사냥하는 <선인장 꼬리 도마뱀>이었다.
쾅―
녀석은 곧장 골렘을 노리고 달려들었으나 단단한 몸뚱이는 가시로 뚫기 무리였다.
쾅―! 쾅―!!!
주먹으로 연달아 내리찍는 단순한 공격으로 반격을 한 골렘.
하지만 재빠른 도마뱀을 잡기엔 무리였다.
“흠…….”
그걸 본 재호는 영 불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역시 너무 느린데.”
민첩한 상대에겐 제 위력을 내지 못하는 상황은 엘리시아로 돌아올 때도 몇 번이나 겪었었다.
물론 자신이 나서 함께 싸우면 딱히 문제될 건 없었지만, 골렘의 성능에 아쉬움이 생기는 건 사실이었다.
탓―
모종삽을 들고 뛰어내린 재호는 골렘의 주먹을 피해 요리조리 기어 다니는 도마뱀의 앞을 가로막았다.
캬악―!!!
콰드득―
쩍 벌린 입이 재호를 덮쳤으나 이미 뒤로 돌아가 도마뱀의 가장 위험한 무기인 선인장 꼬리를 양팔로 단단히 감았다.
카아아아악―!
재호도 상당히 높은 힘 스텟을 가지고 있기에 도마뱀은 일순간 움직임이 봉인되었다.
꿍―
골렘이 도마뱀의 머리를 내리쳐 버렸고, 잠시 정신이 나간 녀석의 꼬리를 커다란 손으로 단단히 움켜쥐었다.
꽝― 꽝― 꽝―
골렘은 꼬리를 붙잡은 채 바닥으로 마구 패대기치기 시작했고, 곧 축 늘어진 것을 확인한 재호가 마무리 공격을 가했다.
푹푹푹―!!
캬아아아!!!!
[<선인장 꼬리 도마뱀>을 처치하였습니다.]
“이렇게 약한 몬스터를 상대로도 단독으론 전투가 안 되니 원.”
좀 더 개량할 필요성을 느끼며 전리품을 챙기던 순간.
“……아!”
재호는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꼬리에 달린 선인장.
비록 용도는 먹잇감 유혹과 휘두르기 정도지만, 재호에겐 큰 영감을 제공해 주었다.
“……골렘에도 꽃을 달 수 있지 않으려나?”
* * *
재호가 생각하기에 골렘은 플레이어보다 꽃 버프를 받기 유리한 조건이었다.
넓은 몸뚱이는 인체와 달리, 단단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었으니.
만약 꽃이 자리만 잡을 수 있다면 아예 움직이는 꽃밭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예상이었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바로 순도 높은 금덩어리 몸뚱이!
그런 몸에선 백날 꽃을 심어 봐야 자랄 수 없을 테니까.
베이스는 금으로 두되, 꽃이 자랄 수 있도록 흙을 섞어야 했다.
‘골렘 자체의 성능이 조금 떨어지기야 하겠지만…….’
여러 꽃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버프가 적용된다면 훨씬 더 효율적이리라.
우선 사막을 떠나 질 좋은 흙들이 많은 럭시 숲으로 향했다.
[<황금 골렘>의 소환을 해제하였습니다.]
[제작에 사용되었던 재물들의 50%가 회수되었습니다.]
보면 볼수록 비효율적인 비율이었다.
50퍼센트가 날아간다니…….
‘효율을 생각해서라도 1레벨 골렘을 만들면서 실험해야겠어.’
집요하면서도 겁 없는 재호의 실험정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