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엘보 정령화>로 <밀키웨이 정령>을 선택하였습니다.]
[모든 상태 이상 저항력이 증가합니다.]
[반경 15미터 이내의 모든 저주를 대폭 약화시킵니다.]
밀키웨이의 관찰률 100%를 달성하며 사용할 수 있게 된 밀키웨이 엘보 정령화.
전투 스텟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파이라의 저주를 무력화시키는 데엔 최적이었다.
그 결과, 왕실 기사단이 정신을 차렸으니까.
전설급으로 분류되는 파이라를 레이드하기 위해선 네임드 전투 NPC들과 랭커들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굳이 욕심낼 필요 없어.’
마구 들이받고 보는 재호도 자신이 잡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는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저건 무슨 짓을 해도 절대 혼자 못 잡는다.’
―그런 소리를 하기엔 이미 떠난 불쌍한 녀석한테 미안하지 않냐?
“…….”
꼰대의 지적에 재호는 말문이 막혔다.
저승에 잠든 테일러…….
“뭐, 설마 악마일 줄 알았나? 그냥 불로장생초로 장수한 노인인 줄로만 알았지.”
어쨌든 재호는 계속해서 엘보를 시전하며 사람들이 다시 싸울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버프를 제공했다.
“그대는 알시아……!”
“우리를 도와주는 것인가?!”
왕실 기사단이 감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들 다시 힘내서 한바탕 하자고!”
“설마 그대는 저자가 악마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인가?!”
“응? 다, 당연하지!”
잠시 주춤했지만 최대한 빠르게 받아먹은 재호.
“방금 알시아 말 더듬지 않았냐?”
“그냥 격한 동작 계속해서 그런 거 아냐?”
플레이어들은 잠시 의심했으나, 다시 발악하기 시작한 파이라 탓에 바로 잊어 버렸다.
―빌어먹을 정령화장!!!!!
자신의 저주를 무력화시킨 장본인이 재호라는 걸 알아챈 파이라가 아예 재호를 향해 몸을 돌려세웠다.
“어딜!!”
“더러운 손 치우세요!!”
사만다와 티나가 빠르게 튀어나가 파이라를 상대했다.
훨씬 강해지긴 했으나, 작아진 덩치 덕에 대인전을 벌이기엔 오히려 편해진 상황.
“돌격!!”
그에 질세라 왕실 기사단과 플레이어들도 공격을 퍼부었다.
―크아아아악!!!!! 쓰레기들이 감히!!!
벌레에서 쓰레기까지 떨어진 취급!
동시에 파이라에게서 또다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3페이즈까지 있다고?!”
여기서 도대체 또 얼마나 강해져야 만족할 것인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쿠르르르―
이번엔 제대로 작정한 것인지, 하늘에선 시커먼 구름까지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악마 파이라가 마계로부터 자신의 본체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대악마의 강림을 저지하십시오!]
“뭐?!!”
그럼 이때까진 전력을 다한 게 아니었다고?!
한편, 바닥에 엎드린 채 무방비 상태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파이라.
공격을 해야 할 것 같았으나 검은 구름에서 연신 떨어지는 벼락줄기 때문에 아무도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라이! 내가 먼저 가 본다!!”
결국 랭커 한 명이 칼을 뽑았다.
“변신할 땐 기다려주는 거 아니랬어!! 하압!!!”
꽈르릉―!!!!
호기롭게 덤볐으나 다가가는 순간 떨어진 벼락에 그는 재가 되어 버렸다.
“?”
“???”
“한 방?”
현장의 모두가 당황했다.
“바, 방금 일마네 아니었어?”
“맞지.”
“그 녀석 탱커 랭커잖아.”
“…….”
그런데 벼락 한 방에 가 버렸다면…….
이건 못 막는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곤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심지어는 왕실 기사단조차 다가가지 못했으니.
모두가 이대로 악마 귀족이 대악마로서 강림하는 걸 지켜봐야 하나 싶은 순간.
쿵― 쿵― 쿵―
갑자기 지축을 뒤흔들면 나타난 커다란 골렘 하나!
팔 하나가 날아갔음에도 투지를 잃지 않은 녀석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징징아!!!”
재호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항상 구박했는데 설마 이런 식의 멍청한 결정을 내릴 거라곤…….
―흠흠…….
“……?”
어느새 재호 옆에 서 있는 징징이가 민망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저 녀석은 통제 불가능이다. 그냥 자존심이 상해서 눈깔 뒤집고 달려드는 데 나까지 휩쓸릴 순 없지.
“뭐…… 그렇지…….”
충분히 이해는 되는데 왠지 모르게 실망감도 드는 기분.
어쨌든 막무가내로 달려든 골렘을 향해서도 영락없이 벼락이 내리꽂혔다.
콰르르릉!!! 콰과광!!!
확실히 인간보다는 맷집이 강해 골렘은 벼락을 뚫고 파이라에게 도달했다.
기이이잉―!!!
거칠게 회전하는 톱날을 힘껏 파이라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고.
퍼어엉―!!!
골렘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버렸다.
그렇게 만든 건 파이라의 손가락 하나!
―비열한 칼리토에게 전해라. 이 이상 분탕을 치면 내가 직접…….
하지만 파이라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
그리고 재호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잭팟>이 발동됩니다!]
[10초간 흡수한 충격이 두 배의 데미지로 폭발을 일으킵니다.]
“?!!!”
다름 아닌 골렘의 재료로 쓰인 불카의 마법 주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발동되는 꼴을 못 봤는데 지금 이 타이밍에 터진 것이었다.
“도, 도망쳐!!!”
급히 외친 재호는 일행을 끌고 뒤도 보지 않고 도망쳤다.
“어?”
“왜?”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 못 한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갸웃…….
번쩍―
* * *
[대악마 파이라의 강림을 저지하였습니다!]
[명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미드스트 제국에서 당신을 주목합니다.]
[라셀 왕국에서 당신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크루마 왕국에서 당신을…….]
[청색 마탑에서 당신을…….]
[백색 마탑에서 당신을…….]
[옵티마 교단에서 당신을…….]
[…….]
[<대악마의 미완의 정수>를 획득하였습니다.]
[<대악마의 혈액>을 획득…….]
[<파이라의 지옥불 화염장창>을 회득…….]
[…….]
[<대악마 헌터>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악마들은 당신을 보기만 해도 요실금에 걸릴 것입니다.]
[<대륙의 영웅>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중간계의 모든 생명체들이 당신에게 존경심을 가집니다.]
쏟아지는 알림.
이것까진 괜찮았다.
모두 긍정적이었으니까.
일희일비(一喜一悲)라던가?
문제는 그 이후에 뜨는 알림들이었다.
[도시 한가운데서 대폭발을 일으켰습니다.]
[악명이 대폭 증가합니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악명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철의 영웅>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당신을 보는 평범한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투페이스>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귀족들은 당신에게 두려움을 느낍니다.]
[대악마 칼리토가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대악마 파이라가 끔찍한 복수를 다짐합니다.]
[대악마들 사이에서 당신의 이름이 알려집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
“……흠흠, 그래도 레벨은 확실히 많이 올랐네.”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이들을 처리해 버렸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생각보다 폭발 반경이 크지 않은 데다 속도도 느렸다는 점이었다.
눈치 빠른 플레이어나 기사들의 반은 살아남긴 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와!!! 살았다!!!”
“엉엉! 너무 무서웠어……!”
“야, 그래도 보상 엄청 들어왔는데?!”
“나, 나도 대박이야!”
다행히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파이라 레이드를 성공했다는 점에 기뻐했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홀린 것처럼 아리프 대공…… 아니, 그 악마를 위해 싸우지만 않았더라면 일이 여기까진…….”
기사들 역시 재호에게 딱히 원망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을 책망했다.
“흠흠……. 다, 다행이군!”
그리고 재호는 말을 아꼈다.
그냥 이대로 좋은 게 좋은 거란 식으로 흘러가길 바라며…….
“그런데 불로장생초는…….”
사만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알시아님……?”
“…….”
저 불바다 속에서 불로장생초가 멀쩡히 남아 있을 리 없지 않은가?
* * *
라셀 왕국 수도로 복귀한 재호는 라셀과 마주했다.
그녀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증조부로 알고 있던 이가 대악마였단 사실 때문인 듯했다.
“몰랐나 보군요.”
재호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갑자기 외증조부라고 나타난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아마 아주 어린 시절부터 폐하에게 주입된 것이겠죠. 이용해 먹기 딱 좋은 어린애인 데다 불로장생초까지 손에 넣었으니.”
“아! 그래. 불로장생초는 어떻게 되었지? 듣자하니 그곳에서의 전투가 아주 치열했다고 들었는데. 무사히 회수한 것이냐?”
“……물론 구했죠! 하지만 상태가 나쁩니다. 화원으로 돌아가 어떻게든 살려 볼 생각이니 걱정 마시죠!”
재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렇다면 됐다. 후……. 덕분에 한숨 돌렸구나. 비록 소수긴 하지만 왕실 기사단도 다시 돌아왔고. 남은 건 이제 귀족들이겠지…….”
“뭐, 그건 알아서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래. 그대에게 큰 감사를 표하는 바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라셀리우스 7세와의 호감도가 대폭 증가하였습니다.]
[<불로장생초>를 양도받았습니다.]
[라셀 왕국과 동맹 관계가 되었습니다.]
[아리프 토벌에 가장 큰 공적을 세웠습니다.]
[라셀리우스 7세와의 호감도가 최대치에 도달하였습니다.]
“후……. 이제 전투에 참여한 이들의 공적을 정리해야겠구나.
“아 맞다. 전에 폐하한테 칼 휘두른 놈 있죠? 테일러라는 놈인데 녀석이 아리프 정체를 까발리는 데 큰 공헌을 했으니 잘 좀 챙겨주세요.”
“그래, 그렇게 하겠다.”
이번엔 정말 고생 많이 한 테일러.
재호는 라셀에게 확실히 당부 남기곤 성을 떠났다.
그리곤 화원으로 돌아가려고 하려던 찰나…….
“어?”
문득 조금 전 봤던 알림 속에서 이상한 게 끼어 있었단 걸 깨달은 재호.
[<불로장생초>를 양도받았습니다.]
“?!!!”
재호는 입을 쩍 벌렸다.
“왜 그러세요?”
티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잠시 돌아가는 건 미루자.”
“예? 또 할 일이 있습니까?”
“불로장생초 찾으러 가야 돼!”
시스템은 결코 허언을 하지 않았다.
* * *
잿더미만 남은 아리프의 저택.
―흠……. 확실히 희미하게 느껴지긴 한다.
꼰대도 확답을 해 주었다.
―아무래도…… 이 아래 어딘가에 깔린 것 같은데…….
그때부터 삽질이 시작되었다.
골렘을 이용하면 확실하겠지만, 그 통제 불가능한 놈을 꺼내 봐야 사고만 칠 테니 병사들만 불러냈다.
그렇게 모두가 잿더미를 뒤진 끝에…….
“알시아님!! 여기 뭔가 있습니다!”
사만다의 외침에 재호가 급히 다가갔다.
거기엔 지하로 이어지는 길을 막은 철문 하나가 있었다.
쾅―!
티나가 가볍게 부셔 버렸고, 재호는 조심스럽게 아래로 향했다.
“와…….”
절로 흘러나오는 탄성!
“미친, 무슨 함정이 이렇게 많아?!”
눈이 부실 정도로 사방에서 하얗게 반짝이는 함정 표시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부수면서 내려가자 다시 길게 이어지는 통로가 나타났다.
“끝이 안 보이네.”
한참을 걷자 또다시 철문으로 막힌 통로.
쿠당―!!
이번에도 티나의 손에 부서진 철문을 넘어간 재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이번엔 함정 때문이 아니었다.
반쯤 무너진 공간에 힘없이 축 늘어진 은빛 꽃 하나!
[불로장생초]
[관찰 진행률 : 50%]
[은은한 향기만 맡아도 모든 병이 낫는다고 알려진 전설의 꽃입니다.(더 보기)]
[(중략)]
[*효능]
[1. 강력한 회복 효과를 가지고 있으며, 5분간 회복 효율이 300% 증가합니다.
2. NPC에게 사용 시, 모든 질병을 치유하며 신체 연령이 감소합니다.(중복 사용 시, 100% 부작용 발생)]
[3. (미확인)]
“찾았다!!!!!”
진짜 불로장생초였다.
하지만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았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시들어 죽기 직전입니다.]
[빛을 받지 못한 지 2시간이 지났습니다.]
[폭발과 진동으로 뿌리가 약해졌습니다.]
[…….]
상태를 확인한 결과,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원래는 마법으로 유지시키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런 지하에서 살려두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게다가 제법 많은 불로장생초가 있었던 것인지, 무너진 잔해 사이사이로 짓이겨진 식물들도 보였다.
“귀하긴 귀했던 모양이야. 악마가 이걸 남겨 뒀던 걸 보면.”
“그런데 이거…… 괜찮은 겁니까?”
“어떻게든 살려야지.”
풀피리를 꺼낸 재호가 신목이 질색하는 음악을 반복 연주해 주었다.
그리고 꼰대 역시 불로장생초 옆에 쪼그리고 앉아선 기운을 나누어 주었고…….
―넌 저리 꺼져.
징징이는 근처로 얼씬도 못하게 만들었다.
화원이야 생령이 충만하기에 상관없지만, 이런 민감한 상태의 꽃에겐 징징이의 존재는 치명적이었으니.
―그래도 말이 심한 거 아냐?! 그런 나쁜 말을 하면 꽃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그래도 네가 옆에 있는 것보단 나아.
꼰대는 반박할 말이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