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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 10분 전.
서버 내 대기실에서 대기 중이던 모든 팀들은 전장 정보를 받아 확인 중이었다.
일성 플라워즈의 출전 선수는 이번에도 완식을 제외한 네 명.
“잠식된 지하 먹이 저장실?”
전장 정보를 받은 재호는 얼굴을 찌푸렸다.
“엄청 귀찮은 게 걸렸네.”
해설자들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팀들이 손꼽은 성가신 전장이 바로 이곳이었다.
시범 리그와 예선에 걸친 모든 전장은 단순 전투의 반복이었다면, 이곳은 퍼즐까지 접목되어 있었다.
각자 다른 위치에서 경기를 시작하며, 그곳에서 최대한 빨리 탈출 방법을 찾아야 하는 전장이었으니까.
“방탈출 좀 해 본 사람?”
재호의 물음에 침묵하는 팀원들.
항상 뉴월드에 접속해 있는 그들이 그런 걸 해봤을 리 없었다.
“뭐…… 그럼 일단 부딪혀 보자.”
어떻게든 되겠지란 마음가짐으로 재호는 전장으로 입장했다.
* * *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다 무너진 공간.
먹이 저장실이라기엔 상당히 규모가 컸고, 오히려 감옥 분위기를 풍겼다.
통로는 단 한 곳이었는데, 그곳은 커다란 철문으로 막혀 있었다.
쾅쾅―
다가가 발로 차 본 재호.
[이 문은 강제로 열 수 없습니다.]
“힘으로 부셔 볼까요?”
레드의 물음에 재호는 고개를 저었다.
대회를 위해 만들어진 장소인데 그렇게 어설프게 되어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이미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이곳은…….
[잠시 후,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2분마다 새로운 웨이브가 시작되며, 10분마다 준보스 급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1웨이브 클리어 시, 2점을 획득합니다.]
바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룰이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시작부터 이 맵이 뜬 거, 우리 저격한 거 아냐?!”
다키스트가 짜증스레 소리쳤다.
예선에서 몬스터만 잡아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던 일성 플라워즈.
이런 고정 점수제가 적용된다면 그때처럼은 절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도 별로 다를 건 없어. 어차피 다른 팀들도 우리랑 같은 입장일 테니까.”
여기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 게 최우선이었다.
“일단 주변을 좀 둘러보자.”
일행은 흩어져 여기저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몬스터 웨이브만 계속 상대하는 건 말이 안 되었으니, 어딘가에 탈출을 위한 힌트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재호에겐 숨겨진 걸 찾는 데 효과적인 칭호도 있었다.
[금고 털이범]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흠……. 특별한 건 안 보이는데.’
당장 눈에 띄는 건 없는 상황.
[첫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쿠구구구―
그리고 마침내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었다.
철컹― 철컹―
철문이 개방되며 웬 바위들이 굴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뭐야 저거?”
허나 자세히 보니 바위가 아니라 거대한 바위 공벌레!
콰드드득―
놈들은 빠르게 굴러다니며 팀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성 플라워즈 입장에선 평소 상대하던 엘프에 비하면 한참 느리게 느껴졌다.
게다가 덩치도 워낙 큰 탓에 움직임이 뻔히 보였다.
다만 골치 아프다고 할 만한 점은 근접 전투는 여의치 않다는 것 정도.
재호는 모종삽이 아닌 파이라의 화염창을 꺼내 들었다.
<투창>
콰아앙―!!!!
일단 때려 박고 본다!
충격에 벽에 처박힌 바위 공벌레.
키이익!!
다행히 몸뚱이 전체가 바위인 건 아닌 모양이었다.
콰드득―!
뒤집어져 꿈틀거리는 녀석에게 올라탄 재호가 창을 깊게 찔러 넣었고, 공벌레는 내장이 불타는 고통에 거칠게 몸부림쳤다.
쾅쾅쾅―!!
거기다 대고 주먹을 내리꽂자 마기 중첩이 쌓이기 시작했고, 화염창의 데미지도 점점 더 증폭되었다.
―문득 든 생각인데 말이죠. 알시아의 주 무기는 대체 무엇일까요?
중계하던 해설자의 의문.
―지금까지 확인된 건 모종삽과 저 화염창이거든요. 이 두 가지도 완전 다른 스타일의 무기인데, 가만히 보면 둘 다 딱히 메인 무기란 느낌은 아닙니다. 지금도 보시면 맨손으로 패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방식의 공격이든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더 무서운 선수라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카운터가 없다는 뜻이니 말이죠. 그리고 사실 그런 모습은 일성 플라워즈의 스타일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중계 화면이 다른 팀원들을 향했다.
이처럼 저돌적인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건 마법사들 입장에선 굉장히 성가셨다.
대부분이 몸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선에서 증명이 되었듯, 일성 플라워즈 마법사들은 달랐다.
치명타를 피하기 위해 몸을 내던지는 건 물론, 순간의 반격도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스킬 쿨타임에 걸린다 싶으면 들고 있는 무기를 휘두르거나 발길질까지!
―격투 마법사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군요.
―저런 공격들이 실제로 효과가 있긴 할까요?
―당연히 데미지 자체는 극도로 낮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큰 것 한 방 한 방도 아픈데, 그 사이사이에 바늘로도 콕콕 찔러댄다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게다가 바늘인 척 찌르다 냅다 칼로 찔러 버린다면요?
―아! 이해했습니다! 저런 모든 행동들이 고도의 심리전으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뜻이군요.
―맞습니다. 몬스터를 상대로는 효과가 반감되겠지만, 상대가 플레이어가 된다면 엄청난 스트레스일 겁니다.
때마침 레드와 다키스트는 각자 공벌레 하나씩을 쓰러트리며 해설자들의 분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사만다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강했고.
* * *
[첫 번째 웨이브를 완료하였습니다.]
[2점을 획득합니다.]
[두 번째 웨이브까지 남은 시간은 1분 12초입니다.]
“이거 너무 빡센데요?”
레드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점점 몬스터는 더 강해질 텐데, 첫 웨이브에만 거의 1분이 걸렸다.
이대로라면 세 번째 웨이브만 되어도 밀리기 시작할 게 분명했다.
“몬스터가 나올 때 잠깐 열리는 문으로 통과해 볼까?”
다키스트의 제안.
“에이, 설마 그렇게 어설프게 했을까요?”
레드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뭐? 내 의견이 어때서! 뭐라도 해 봐야 할 거 아냐!”
“아니, 그렇잖아요. 그렇게 쉽게 해결이 되면 뭐 하러 이렇게 화려하게 지어 놓겠어요?”
“너 이씨……!!”
“둘 다 진정해.”
재호가 두 사람 말렸다.
“마침 이상한 것 하나 발견했어.”
“응? 이상한 거?”
재호의 시선은 땅바닥을 향했다.
“몬스터가 마구 굴러다닌 덕에 바닥의 흙에 가려져 있던 게 드러났어.”
“?”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겠단 표정으로 두리번거렸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금고 털이범> 칭호로 인해 숨겨진 ‘무언가’를 발견하였습니다.]
공벌레들이 날뛰어 준 덕분에 이제야 칭호로 확인이 되었으니까.
<신기루 병사 소환>
스스스―
다섯 개의 인벤토리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던 모래시계.
그걸 꺼내 재호는 수 명의 코페이 병사들을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재호는 빛을 내는 구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의 땅을 다 갈아엎어.”
말만 병사지, 화원 관리자에 가까웠던 그들의 손엔 칼 대신 삽, 곡괭이 따위의 연장이 들려 있었다.
* * *
네 번째 웨이브까지 진행된 상황.
재호처럼 숨겨진 걸 찾아낼 능력이 있는 팀들도 바닥에 뭔가 있다는 걸 알아채고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건 극소수의 팀들만 그러했고, 다른 팀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다음 웨이브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안 좋은 팀들은 아직 네 번째 웨이브도 정리하지 못한 채 다섯 번째 웨이브를 시작하기까지.
쿠구구구―
예고된 대로 등장한 준보스 급 몬스터.
콰아아앙―!
단, 이번엔 통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지면 아래에서.
“으아악?! 뭐야?”
“피, 피해!!!”
거머리처럼 생긴 커다란 몬스터가 수백 개의 이빨을 까닥거리며 선수들을 덮쳤다.
그 와중에 눈썰미 있는 선수들은 몬스터가 뚫고 나온 지하로 커다란 통로가 생겨났다는 걸 확인했다.
“저기다! 저기로 나가야 해!!!”
하지만 그곳으로 가려면 결국엔 몬스터를 처리하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
“최대한 빨리 조지고 나가자!!!”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체되면 또 다음 웨이브가 시작될 테니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탈출해야 했다.
* * *
이후로 이어진 약 10분의 전투 결과, 탈출한 팀은 불과 12팀.
그중에서도 전력 손실 없이 탈출한 건 7팀에 불과했고, 탈출에 실패한 8팀은 20분째에 등장한 또 다른 준 보스급 몬스터로 인해 탈락하고 말했다.
충격적인 전개.
선수들을 곤란하게 만들 걸로 예상되긴 했으나, 설마하니 8팀이나 먹이 저장실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 무슨 대회를 이따위로 기획한 거야?!!”
간신히 탈출한 선수들이 불만을 터뜨렸으나, 그건 리그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었다.
단순히 치고 박고 싸워 이기는 경쟁이 아닌, 생존 경쟁!
즉, 어떤 식으로든 오래 살아남으며 점수를 많이 쌓아야 하는 것이 경기의 룰이었다.
시범 리그와 예선전만 생각했기 때문에 잠시 망각한 것일 뿐.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근데…… 여긴 또 뭐야?”
거대 거머리가 뚫고 온 통로 끝에 도착한 장소는 커다란 공동.
얼마나 큰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사방엔 거대 거머리의 알로 추정되는 것들이 기분 나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땅굴 거머리의 둥지>에 입장하였습니다.]
[알을 자극할 경우, 부화가 이루어집니다.]
“무슨 전장이…….”
“이거 그냥 내내 몬스터랑 싸우다 끝나는 거 아냐?”
“엇? 쉿! 저기 다른 팀 보인다! 몬스터랑 싸우는 중인 것 같은데?”
알을 건드린 모양인지, 사람만 한 거머리 새끼들과 사투를 벌이는 그들.
전투가 이어질수록 다른 알들에게도 자극이 전해져 깨어나는 몬스터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응? 저거 CUSA 팀이네?”
몰래 접근해 상대 팀의 정체를 확인한 그들.
“뒤에서 칠까?”
“아냐. 그냥 저렇게 두자. 점수표 보니 저거 잡는다고 점수가 오르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게다가 괜히 잘못 건드렸다 CUSA와 몬스터의 어그로가 자신들을 향하기라도 하면 더 골치 아파질 수도 있었다.
일단은 생존!
“……그런데 쟤네들 일부러 알 깨우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불현듯,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낀 그들.
“그러고 보니…….”
마치 몰이사냥을 하듯, 각자 흩어져 알들을 깨운 뒤 한꺼번에 처리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대체 왜?
“이쪽으로 몰아!”
CUSA의 주장인 수민은 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한자리에 모여드는 순간.
“좋아! 지금이야!”
CUSA는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거머리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적을 처치하였습니다!]
[적을 처치하였습니다!]
[적을…….]
그리고 이어진 또 다른 알림.
[레벨업하였습니다!]
뜬금없는 레벨업!!!
CUSA가 일부러 몬스터들을 깨우고 다니는 이유가 밝혀졌다.
―이거 참…… 경기가 재밌게 흘러갑니다. 과연 마지막에 살아남는 팀은 어디가 될지…….
―만약 CUSA 팀이 이대로 전력 손실 없이 탈출만 한다면 압도적으로 유리해지겠는데요?
―그렇죠. 단, 문제는 둥지에 진입한 선수들은 저곳을 최종 무대라 생각하고 있단 점이죠. 저기서 탈출하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치명적이에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그 표현에 딱 어울리는 전장이라 할 수 있겠네요. 물론 당사자들이 선택한 건 아니겠지만요.
―그럼 다시, 지상으로 탈출한 팀들을 보실까요?
지상으로 탈출한 팀들?
바로 경기 초반, 비밀 통로를 발견하고 탈출한 일성 플라워즈, 골든 리트리버, 판다즈 세 팀을 일컬었다.
* * *
재호가 소환한 병사들은 능숙하게 삽질을 했고, 곧 나무판자로 덮인 땅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은 충분히 걸어서 이동할 만한 크기였고, 약 5분 정도 이동하자 지상으로 나오는 사다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광대한 원형 경기장.
[먹잇감 투기장]
[먹이 저장실에서 살아남아 탈출한 먹잇감들의 종착지입니다. 당신은 이곳에서 다른 먹잇감들과의 먹이사슬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원형 경기장에는 총 스무 개의 통로가 뚫려 있었다.
아마 기다리면 다른 팀들이 저곳을 통해 나올 것으로 추측되었고, 몇 분 더 기다리자 두 팀이 나타났다.
골든 리트리버와 판다즈.
흠칫―
투기장에서 마주한 세 팀은 서로를 보며 당황했으나, 그건 현 상황에 대한 당혹감은 아니었다.
―정말…… 투기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꽃밭이군요.
모든 선수들이 꽃으로 치장하고 있는 걸 본 해설자는 그리 평했다.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