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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 땅굴 사건이 일어난 직후, 곧장 보물 이송을 시도했다면 재호는 고스란히 당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동준과 문성이 번갈아가며 게임을 방해한 덕분에 이송이 미뤄진 게 컸다.
그만큼 재호에겐 차분히 생각해 볼 시간이 생겼으니까.
되짚어 보니 뭔가 이상했다.
정황상 땅굴을 뚫었던 건 액스페이스.
척 봐도 뚫는데 고생한 걸로 보이는 땅굴인데, 본인들이 직접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좀도둑들을 보냈다?
뭔가 꿍꿍이를 가지고 있단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단, 재호가 보물 상자를 들고 고블린 은행을 나선 건 확실했다.
솔직히 고블린들도 100% 신뢰할 수 없었기에…….
하지만 출발한 직후, 재호는 보물 상자를 감추어 두었다.
주변은 산림이었고, 수풀을 헤치고 가던 중, 슬그머니 내려놓았던 것이다.
그러곤 걸음을 옮기는 내내 과장된 움직임을 연기했다.
마치 자신의 인벤토리가 터지기 직전이라 거동조차 힘들다는 듯이…….
콰앙―!!!
재호의 창이 골드투스를 강하게 찌르고 들어왔다.
“윽!”
이미 재호와 한번 싸워 본 바, 그 강함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으나…….
‘그때와는 또 달라……!’
재호가 든 파이라의 화염창의 위력을 처음 겪어 본 탓도 있지만, 움직임 역시 훨씬 날카롭고 예리했다.
‘정상급 선수들과 싸우면서 더 성장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커헉!”
“으아악!!!”
티나와 꼰대의 공격에 주변의 액스페이스 요원들은 하나둘 쓰러져갔다.
이대로 가다간 무조건 전멸!
‘안 돼……! 이대로 소득 없이 지난번처럼 당한다면 난…….’
그녀는 결국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재호가 보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골드투스라고 그런 상황을 가정하지 않았을까?
“다들 후퇴! 플랜 W로 간다!!”
“W? 대체 플랜을 몇 개나 세운 거야?”
재호의 물음은 무시한 채, 골드투스와 액스페이스는 허겁지겁 도망쳤다.
“쫓아가서 잡을까요?”
“됐어. 내버려 둬.”
재호는 무기를 집어넣고 한숨 돌렸다.
“일단은 대기하자. 꼰대야. 가서 징징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와.”
보물 상자를 지키고 있을 징징이.
아직 그걸 회수하는 건 시기상조였다.
적어도 이 숲에 그 보물 상자를 노리는 수많은 적들이 있는 이상.
* * *
와띠스 도적단의 전투는 서서히 절정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테크노 오크들은 강했으나, 머릿수에서 점점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탓에 그들은 마차 주변으로 모일 수밖에 없었…….
“음?”
문득, 뭔가 이상한 걸 깨달은 와띠스.
“왜 우리 머릿수가 더 많은 거지?”
분명 자신들이 밀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쪽수로 밀어붙이기 시작한 상황.
“냄새를 맡은 보물 사냥꾼들이 죄다 전투에 합류를 했는데요?”
“뭐? 언제부터?!”
“좀 됐는데요.”
“이 자식들아! 왜 그걸 말 안 해!!”
“어차피 우리 밀리고 있었잖아요. 같이 싸우다 저 마차에 들이받게 만들죠?”
“……너 똑똑한데?”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골치 아프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한 사람들의 발 구르는 소리.
이윽고 대규모 병력이 전투 현장에 난입했다.
“이 날강도 놈들아!!! 꺼져라! 보물은 우리 불곰국 소유다!!”
바로 불곰 길드!
그들 역시 정보통을 통해 오늘 보물이 실린 마차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부랴부랴 나섰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불곰 길드 역시 머릿수만 많을 뿐, 전력에 실속은 전혀 없다는 것!
크로킹은 길드 소속 랭커들을 움직이려 했으나 그들은 더 이상 속지 않았다.
―아, 이번엔 확실해! 보물들을 털러 가는 게 아니라 훔쳐만 오면 된다고!
―안 해요 안 해! 우리가 그런 식으로 몇 번이나 죽었는지 알아?!
―오크들뿐이래!! 고작 오크들한테 겁먹는 거야?!
―함정일지도 모르잖아! 아무튼 안 가!
그래서 중하위 길드원들을 죄다 동원했다.
그들이야 까라면 깔 수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충분한 보상도 걸었다.
[보물을 되찾는 데 공로를 세우는 자에겐 길드 내 직위를 내려주겠다!]
“와아아아!!!”
“저거다!”
“저 마차만 차지하면 나도 간부다!!!”
“비켜, 비켜! 내가 간다!!”
승진에 눈이 먼 말단 길드원들의 막무가내 돌진!
콰과과과광―!!!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끄아악!!!”
“이, 이거 뭐야? 그냥 평범한 마차 아냐?!”
“넌 눈깔이 있냐?! 우리가 달려들 때부터 불 뿜고 있었다고!!!”
“그럼 넌 왜 왔냐?! 아악!!!”
굽히고 썰리고 다져지고, 아주 다양하게 당하는 불곰 길드원들.
그 처참한 풍경을 지켜보던 와띠스는 미소 지었다.
이런 상황이면 차라리 자신들에게 유리했으니.
* * *
무식하게 들이받는다고 해도 오크들 입장에선 그 자체로도 부담이었다.
아무리 죽여도 적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고, 자신들의 체력은 점점 떨어져 갔으니.
“취이익!! 한계다!!”
“쉰들러!! 우리는 피하겠다!”
결국 오크들은 퇴각을 선택했다.
실제 있지도 않은 보물을 지키겠다고 목숨을 내던질 순 없었다.
“오냐!! 이제 마지막을 제대로 불태우겠구나!!!”
오크들은 마차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고, 몰아붙이던 사람들은 환호했다.
“이겼다!!!”
“저 마차만 남았다!!!”
오크보다 더 강한 화력을 뽐내던 마차지만 단독으로 전투를 하기엔 핸디캡이 많았다.
결국 공략을 당하는 건 시간문제.
그럼 이제 적은 마차를 노리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돌격!! 마차를 확보해야 한다!!”
“와! 띠스!!”
와띠스의 명령에 와띠스 길드원들이 다시 전장에 뛰어들었고.
“불곰도 간다!!”
오크와 싸울 때보다 더한 난장판이 일어났다.
치이이이―
난장판 속에서 들려오는 뭔가 타는 소리.
하지만 사람들은 듣지 못했다.
덜컹―!
갑자기 마차 위가 열리더니 쉰들러가 스프링처럼 튀어나와 하늘을 너머로 날아갔다.
“폭발은 예술이다아아―!!”
저 멀리 날아가며 소리치는 쉰들러.
“?”
“??”
돌발 상황에 모두가 주춤했고…….
번―쩍―!!!
마차에서 뿜어져 나온 섬광이 모두를 집어삼켰다.
콰르르르릉―!!!!
산림의 모든 야생 동물들을 깨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폭발!
고블린 기술력의 정수가 담긴 마차는 그 가치를 확실히 했다.
화앗―
그 충격파는 재호와 티나가 있는 곳까지 미칠 정도.
“끝났나 보네.”
“네. 더 이상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찌이잉― 소리만 들리네요.”
“……괜찮아?”
어쨌든 저쪽은 일단락된 것 같았으니, 이제 이쪽에서 움직일 차례였다.
“보물 상자 챙기러 가자.”
이젠 보물을 털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미 누가 되었든, 미끼는 물었으니까.
* * *
파사삭―
커다란 크레이터만 남은 폐허.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그 충격에서 무사할 수 없었다.
“끄으으…….”
유일한 생존자는 와띠스.
다른 이들과 달리, 300 레벨을 넘겼기에 폭발에서 버틸 수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폭발 진원지로 다가갔다.
“아, 안 돼……. 미친놈들…… 보물을 이렇게 버린다고……? 설마…….”
뒤늦게 생겨난 의문.
“처음부터 여기 없었던 건가?!”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
지금 이 순간, 황재호는 어디선가 진짜 보물을 옮기고 있을 터!
“어?”
하지만 폭발의 중심에 놓인 커다란 상자를 발견한 와띠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체불명의 상자]
“헉?!!”
그는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려 했다.
[특수 잠금이 되어 있습니다. 강제로 개방 시, 파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과서적인 경고.
애초에 이 폭발 속에서도 버틴 걸 보면 힘으로 여는 게 불가능할 것이 분명했다.
‘크큭……. 이거다!’
와띠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황재호 이 독한 자식. 이런 식으로 죄다 쓸어버린 뒤, 보물 상자를 회수할 생각이었구나!’
아마 생존자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한 것이리라.
그는 회복약을 털어 넣으며 상자를 챙기…….
푸욱―!
“컥?!”
그 순간, 등을 찌르고 들어온 강한 일격.
“화, 황재호……가 아냐……?”
자신을 찌른 이는 건블레이드를 든 낯선 여자.
“호호, 고마워. 혹시나 싶어 지켜봤는데 귀찮은 일은 다 해결해 줬네.”
골드투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 상자는 우리가 가져가야겠어.”
“으으…….”
파스스―
결국 재가 되어 사라진 와띠스.
골드투스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상자를 들어올렸다.
묵―직
“흐음……. 역시 이건가?”
재호에게 보물이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된 순간, 그녀는 작전을 변경했다.
크게 세 가지 경우의 수가 있었다.
이중 페이크로, 사실은 마차에 진짜 보물이 있는 경우와 아직 금고에 남아 있는 경우.
마지막으로 제삼의 장소에 숨겨둔 경우.
하지만 이런 요란한 쇼를 하면서까지 금고에 내버려 뒀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다.
제삼의 장소 역시 확인된 바가 없었다.
재호가 고블린 은행으로부터 출발한 직후부터 계속 관찰을 했으나, 별다른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은 파묻거나 노골적으로 숨기는 행동 따위를 하지 않고 은근슬쩍 식생 사이에 버려둔 것이라 보지 못한 것이지만…….
결국 골드투스는 마차 쪽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여기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이번 작전도 완벽히 실패하게 되는 상황.
그런데 척 보기에도 수상쩍은 상자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이 안에 보물이 있다고 확신은 불가능했으나…… 범상치 않은 무게감은 높은 가능성을 점치도록 만들었다.
‘안 그래도 액스페이스 내에서 평판이 많이 떨어졌는데…… 만약 허탕을 친 거라도 이걸로 시간을 좀 끌 순 있겠지.’
내용물을 실제로 확인하기 전까진 골드투스에게 시간이 있었다.
“보물은 확보했다! 철수!”
그녀는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 * *
“끌끌끌……. 미끼를 콱 물어 버렸구먼.”
전투의 잔해만 남아 있을 뿐, 상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걸 확인한 쉰들러.
그는 바쁘게 걸음을 옮겨 기다리고 있던 재호와 티나에게 다가갔다.
“이제 보물은 완전히 그대 것이다. 오크 녀석들이 슈아르 산림 일대를 수색했지만 더 이상 위협이 될 만한 놈들은 보이지 않는다더군.”
“아, 그래? 잠시만.”
재호는 숨겨 놓았던 보물 상자를 챙겨 다시 돌아왔다.
“다른 데 숨겨 놓았던 거냐? 그럴 거면 차라리 은행에 그대로 두면 더 좋지 않았나?”
“야, 너희 고블린을 뭘 믿고?”
“쯧!”
쉰들러는 아쉬움에 혀를 찰 뿐, 부인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재호는 역시나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근데 <폭탄 상자>는 누가 가져간 거야?”
폭탄 상자?
마차가 폭발하고 남아 있던 정체불명의 상자.
그 상자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의 정체는 다름 아닌 폭탄이었다.
마차가 출발하기 전, 재호가 쉰들러에게 급히 부탁했던 게 바로 그것이었다.
보물 상자로 위장한 다음, 그 안에 고블린제 폭탄을 몽땅 때려 넣는 것.
그걸 누가 가져가든 간에 추후, 요긴하게 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준비했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던 도중에 언뜻 보기론 건블레이드를 든 인간이었던 것 같군. 상자를 터뜨리고 싶은 걸 참느라 고생했어.”
“저런. 결국 골드투스가 가져갔군.”
어찌 생각하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긴 했다.
“자, 여기 있다.”
쉰들러는 영 아쉬운 표정으로 폭탄 점화 장치를 내밀었다.
“이건 상자 내부에 각인된 점화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지. 근처에 폭탄 상자가 있다면 그것에 붉은 빛이 들어올 거다. 그때 누르면 마법이 발동하게 되지.”
“그러면 안에 있는 폭탄도 폭발하나?”
“그렇게 되겠지. 사실 그런 잔인한 방식은 우리조차 시도해 본 적 없어서 확신할 순 없다. 이론상 가능은 하지만 과연…….”
그리 말하는 쉰들러의 표정에선 감출 수 없는 호기심이 드러났다.
“추후에 우리가 따로 실험을 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게 되겠지. 그렇다고 해도…… 그 상자에 들어간 폭탄의 양은 비현실적이다. 혹여나 여유가 된다면 터뜨리기 전에 꼭 내게 알려주게나. 그 장관을 놓칠 수 없으니.”
“으응, 그러도록 할게.”
재호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