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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월드나 대회 연습용 서버와 달리, 캡슐 테스트용 공간은 텅 비어 있는 공간이었다.
―아아, 들리십니까?
“네, 들립니다.”
재호는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답했다.
―좋습니다. 이곳에서 하게 될 테스트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싱크로율 테스트, 반응성 테스트, 안정성 테스트.
“어떻게 하면 되나요?”
―먼저 싱크로율 테스트를 진행할 겁니다. 정면에서 랜덤한 포즈를 취한 아바타가 나올 겁니다. 황재호 선수는 그 포즈를 보고 최대한 비슷하게 움직여 주시면 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삐―
신호음과 함께 나타난 무표정한 아바타.
그것은 양팔을 벌리거나 경례를 하는 등, 간단한 동작부터 시작해 춤추는 듯한 행동까지 보였다.
재호는 애써 민망함을 감추며 그 동작들을 따라했으나, 정말 이런 요상한 행동이 테스트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캡슐 밖의 모니터로는 정밀한 데이터가 출력되고 있었다.
이 테스트를 통해 확인하는 건 사용자가 얼마나 정확하게 데이터를 인지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것.
실제로 결과 데이터에선 재호가 하는 동작들이 실제 아바타 동작과 약간의 오차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좋습니다. 다음은 반응성 테스트입니다. 사방에서 원형 과녁들이 나타날 텐데, 황재호 선수는 그 과녁들을 최대한 빠르게 부셔주시면 됩니다.
‘이건 좀 더 직관적이네.’
재호는 거리와 방향 예고 없이, 하나씩 나타난 과녁들을 찾아 부수고 다니기 시작했다.
“와…… 역시 황재호 선수네요. 엄청 빨라요.”
테스트를 진행하던 연구원의 말에 만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하급 캡슐 성능으로도 이 정도니 대회에서 날아다닐 수밖에 없겠지.”
“이거 정말로 물건 하나 제대로 나오겠는데요.”
황재호라는 피지컬 천재가 만들어주는 테스트 결과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오늘의 테스트를 통해 나온 결과는 이번 프로젝트인 프리미엄급 캡슐 성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자, 마지막으로 안정성 테스트를 진행할 겁니다. 게임 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환경과 상황에서 캡슐이 얼마나 제 성능을 낼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과부하가 걸려 캡슐이 꺼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나, 미묘한 성능 저하는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안정성 테스트는 바로 그걸 확인하기 위함으로, 이윽고 주변 환경은 수천 명의 병사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장으로 바뀌었다.
―황재호 선수는 전혀 인식되지 않으니 가볍게 이동하셔도 됩니다.
“아, 네.”
그 말에 재호는 나들이하듯, 주변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다음은 폭풍우 치는 바다입니다.
배경이 바뀌고 재호는 뒤집이 질 정도로 흔들리는 배 위로 이동이 되었다.
―다음은…….
그러고도 몇 번이나 배경이 바뀐 뒤에 테스트는 종료되었다.
―이러면 첫 번째 캡슐의 테스트가 완료된 겁니다.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고작 10분 정도 걸린 테스트.
―하하, 그렇죠? 어차피 필요한 건 프로그램이 모두 기록해 두니까요. 그럼 계속 진행해 보시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죠.”
재호는 그 뒤로 총 열다섯 종류의 캡슐을 연달아 테스트했다.
* * *
보급 라인업부터 최상급 제품, 그리고 개발 중인 것까지 재호가 직접 사용한 결과, 연구진들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희가 나눈 기준과…… 조금 다르게 나왔네요.”
만수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히려 중간 라인업인데 최상급 라인업보다 더 뛰어난 결과가 나온 경우도 있네요.”
“음? 이전엔 안 그랬던 건가요?”
“예. 그 외에도 전체적으로 저희 내부 결과와는 오차들이 크네요.”
“테스트가 제대로 안 된 거 아니에요?”
만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 사용자의 능력 차이겠지요. 뭐, 잘 되었습니다. 애초에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최상급 캡슐 개발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사용자 역시 최고의 선수가 해야겠지요.”
특히 재호의 집중력과 체력은 15개의 캡슐을 테스트하는 내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기에 더욱 객관적이었다.
“일단 오늘은 이 정도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오늘 얻은 결과를 분석해 새로 프로그램을 짜 봐야겠군요.”
“전 그럼 따로 할 건 없는 건가요?”
“예. 앞으로도 황재호 선수는 이런 식으로 한 번씩 테스트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럴듯하게 시작한 것에 비해 재호가 할 건 생각보다 없었다.
‘잘됐네. 이 정도만 하는 거면.’
하지만 재호는 미처 몰랐다.
만수는 재호를 매일매일 불러 붙잡아 두고 싶었으나, 절대 재호를 귀찮게 하지 말라는 한돌의 엄명이 있었다는 걸.
* * *
돌아와 게임에 접속하자 재미있는 소식이 재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제노역 신기록을 세웠대요!”
메이의 말에 재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얼마기에 신기록이라고 거창하게 말하는 거야?”
기존의 기록은 피스앤러브가 세운 1320일이었다.
아니,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추가되며 매일이 기록 갱신이었다.
즉, 신기록의 의미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 새로 들어간 사람이 2000일을 찍었거든요.”
“?”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2000일이나…….
“잠깐. 설마 그거…….”
순간, 재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인물‘들’.
“트리플체인 길드야?”
“네, 맞아요. 거기에 하우스라는 아저씨요. 알시아님 욕을 그렇게 해댔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이스미루 아저씨는 아깝게 하루 차이로 기록을 못 세웠죠.”
하지만 그 기록은 얼마든지 깨질 수 있는 것이었다.
현재 강제 노역소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살아 있는 전설들.
대표 길드 양대산맥.
피스앤러브와 트리플체인!
“……뭐, 언젠가는 정신을 차리고 자존심을 내려놓겠지.”
재호는 그쪽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럼 오랜만에 나도 몸이나 좀 풀러 가 볼까?”
지난 경기 당시, 엘프들과의 대결을 이용해 <사막 투사의 혼> 아이템을 성장시킬 계획을 세웠던 재호.
[등급 : 전설]
[공격력 : 720]
[젊은 시절, 수행을 위해 서대륙 떠돌던 말칸트가 사용했던 전투 너클입니다.
많고 긴 전투로 담금질된 너클은 사용자와 함께 더욱 단단해지고 강해질 것입니다.]
[<결투 선언> : 결투에서 승리할 때마다 공격력이 0.1씩 증가합니다.]
[<분쇄격> : 강력한 정권이 공격 대상이 아닌 후방의 적들에게 범위 고격을 가합니다.]
결투를 통해 강해지는 아이템.
다만 이 결투라는 게 아무하고나 무턱대고 싸운다 해서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필드 PVP가 아니라, 서로가 시스템 적으로 합의된 대결.
과연 그게 엘프들과의 훈련을 통해서도 성립이 되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 * *
“어? 너희도 있었네?”
훈련장을 가니 사만다, 레드, 다키스트가 이미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 알시아님.”
“뭐야? 네가 웬일이야?”
“난 잠깐 실험해 볼 게 있어서. 근데 너희는 왜 여기 있냐? 오늘 훈련 쉬는 날 아니었어?”
개개인의 퀘스트나 레벨링 등을 위해 자유로운 일정으로 개별 훈련을 진행 중인 일성 플라워즈.
오늘은 분명 정해진 훈련일이 아니었다.
“아…… 그게…….”
사만다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리그 둘째 날의 세 경기를 재호 없이 치러 보았던 팀원들.
그리고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자신들이 재호에게 비해 얼마나 약한지 뼈저리게 느꼈었다.
개개인의 전력을 보면 자신들 역시 대회 평균 수준을 상회하지만…… 그럼에도 재호의 발목을 잡는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개인 일정을 빼고서라도 엘프들에게 훈련을 받고 있었다.
“에이…… 뭐 그렇게까지……. 애초에 함완식 걔가 짐짝이었잖아. 그냥 허수아비가 따로 없던데?”
“…….”
“…….”
“…….”
자비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재호의 일침에 팀원들은 침묵했다.
완식이 이 자리에 없는 게 다행이었다.
“그래도…… 알시아님이 계셨다면 완식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기지 않았겠습니까?”
“에이, 그건 알 수 없지. 어쨌든 잘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훈련할 겸 나 좀 도와줄래?”
재호는 엘프들에게 테스트하기 전, 팀원들에게 결투 신청을 해 보고자 했다.
일단 처음 시도해 본 건 고의적인 승부조작.
결투 신청 후, 상대가 고의적으로 패배해 주는 것이었다.
[<사만다>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상대가 결투를 수락하였습니다.]
[상대가 기권하였습니다.]
곧바로 조작을 시도했고, 금방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비정상적 결투입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결투 선언>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였습니다.]
“역시 안 되네.”
“그럼 제대로 싸워 볼까요?”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알겠습니다. 그럼…….”
[<다키스트>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
“??”
사만다와 다키스트가 동시에 재호에게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표정에 담긴 의미를 명백히 달랐다.
“이거 무슨 뜻이야?”
“응? 별 뜻 없어.”
“근데 왜 갑자기 상대를 나로 바꾼 거야? 하필 진짜로 싸운다고 이야기한 직후에 말이야.”
“아니, 아무래도 진지하게 싸우는 게 안 될 것 같으니까. 사만다나 레드하고는 싸워 본 적이 없거든.”
하지만 다키스트는 달랐다.
첫 만남에서도, 두 번째 만남에서도 서로 죽이려고 싸운 사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죽이기 부담이 없단 소리네……. 그게 별 뜻 없는 거야?!”
“뭐, 어차피 정식 결투로는 서로 못 죽이지 않아?”
플레이어 간의 결투는 체력이 바닥이 나거나 항복을 하면 자동으로 종료되며 모든 디버프나 소모된 체력도 회복되었다.
“아니! 기분이 더럽다고, 기분이!!”
[상대가 결투를 수락하였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행동으론 딱히 거부하지 않는 다키스트였다.
“나 진짜 이 악물고 한다? 져 줄 생각 없다?”
“알았어. 그럼 시작한다?”
그리고 5분 뒤.
“맞아! 맞으라고!! 왜 안 맞는데!!!”
다키스트는 첫 번째, 두 번째에 이어 세 번째 대결에서도 똑같은 모습을 재연해 보였다.
[결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결국 재호가 승리했으나…….
[<결투 선언>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실패했다.
“뭐야? 너 진심으로 안 싸운 거 아냐?”
“뭐, 뭐라고?! 누구 놀리냐!”
재호의 말에 다키스트가 울컥했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달려들던 자신의 모습을 봤으면서도 그런 소릴 하니 열 받는 게 당연했다.
“흠흠…… 그나저나 왜 안 되는 거지? 다른 조건이 필요한 건가.”
그렇다면 확인해 볼 상대는 이제 하나.
바로 엘프들이었다.
* * *
엘프들은 흔쾌히 재호의 결투 요청을 받아들였다.
[<다무스>가 결투를 받아들였습니다.]
NPC들은 플레이어처럼 시스템적으로 상호 합의가 이루어지는 게 아닌, 구두로 결투가 성립되었다.
또 다른 점은, NPC가 변심한다면 진짜로 죽을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결투가 종료되어도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 등이 있었다.
“그럼 가겠습니다! 알시아님!”
다무스의 외침에 재호는 긴장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엘프들은 재호라고 해서 전혀 봐주지 않는다는 걸 옛날부터 알고 있었으니.
투쾅―!!
엘프의 강력한 펀치가 재호의 인중을 노리고 쏘아졌다.
쾅― 쾅―!!!
폭발음 같은 소리는 재호가 맞아서 나는 게 아니었다.
다무스의 펀치가 공기를 찢으면서 터져나오는 소닉붐!
“……아니, 저게 말이 돼?”
“뭐, 엘프들이 저희를 봐주면서 상대한 건 사실이잖아요?”
다키스트의 의문에 레드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그건 알아. 내가 말하는 건 그 공격을 모두 피하는 저 괴물 자식이 말이 되냐고!”
휙휙―
최소한의 상체 움직임으로 엘프들의 공격을 회피하는 재호!
그 경이로운 움직임에 팀원들은 물론, 구경하던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으니.
왜 재호가 대회에서 압도적으로 강한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역시 알시아님이십니다! 대단한 움직임이군요!”
다무스의 칭찬에도 재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삐끗하는 순간 한 방에 누워 버릴 만한 강력한 공격들.
플레이어들을 상대할 때나 재호가 피지컬로 우위를 가져갈 수 있지, 엘프들을 상대론 불가능했다.
200 레벨도 안 된 자신은 한 방에 끔살.
그 공격들을 피하며 재호는 반격 타이밍을 계속 살폈다.
‘너무 빨라서 타이밍이 잘 안 보이는군…… 어?’
그 순간 문득, 재호는 한 가지 문제점을 깨달았다.
[<결투 선언> : 결투에서 승리할 때마다 공격력이 0.1씩 증가합니다.]
‘승리’를 해야만 하는 옵션인데…….
‘이걸 어떻게 이겨?’
뒤늦게 깨달았다.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