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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170화 (170/641)

170

잔뜩 흥분한 만수는 곧 한 달 안에 캡슐 내장과 외장까지 완성된 시제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황재호 선수는 지금까지 한 것보다 좀 더 바빠질 수도 있겠습니다.”

마케팅을 위한 준비를 하려면 재호는 필수적이었으니.

게다가 아직 진행 중인 리그도 있었고.

“최대한 대회 일정에는 방해되지 않도록 진행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사실 지금도 바쁘긴 엄청나게 바빴지만 대회는 잘만 치르고 있었다.

재호 빠진 채 치렀던 한 경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1위를 놓치지 않았고, 그 결과 종합 1위에 큰 점수 차로 앞서 있었으니까.

“이제 몇 경기 안 남았죠? 일성이 우승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화이팅!!”

“하하…… 감사합니다.”

만수의 배웅을 뒤로하고 돌아온 재호.

“후……. 그럼 가 볼까.”

이제 또 하나의 바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재호는 캡슐에 몸을 뉘었다.

* * *

접속하자 이미 기다리고 있는 팀원들과 엘프들.

오늘은 본격적으로 균열 쪽으로 접근해 볼 생각이었다.

“야, 난 못 간다.”

“나도.”

완식과 진아는 엄연히 옵티마 교단 소속이었던 탓에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그런데…….”

재호의 시선은 한쪽 구석에 쭈뼛거리고 있는 불곰 길드원들.

“너흰 왜?”

“흠흠……. 그…… 저…… 우리도 낄 수 없을까?”

“애초에 우리도 악마 잡으려고 여기 왔던 거야.”

“아직도 그 소리야?”

울컥―

“지, 진짜라고!!! 불곰 길드가 항상 널 노릴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마!”

“무슨 주인공 병이냐! 세상은 네 중심으로 흘러가는 게 아냐!!!”

그들의 말에 재호는 팔짱을 낀 채 고민에 빠졌다.

‘데려가 볼까……?’

푸독 단장와 레니움 주교의 비밀 회동을 엿들은 징징이.

그들은 분명 뭔가 함정을 꾸미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좋아. 같이 가자.”

재호는 결국 수락했다.

“너무한 거 아냐? 진짜 악마 잡으려는 거라니까?”

“난 저번 파이라 레이드에서도 제법 활약했다…… 어?”

당연히 재호가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멈칫했다.

“지, 진짜 껴도 돼?”

“앗싸!!”

그들은 환호했다.

보나마나 이 퀘스트는 규모에 비해 쉽게 클리어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파이라 때와 달리, 엘프가 백여 명이나 있지 않은가?

비록 자신들의 공적은 그만큼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이 지경이 된 마당에 발이라도 담글 수 있다면 백번 이득이었다.

“단, 조건이 있어.”

“조건?”

“뭐, 좋아. 우리도 눈치는 있어. 무임승차는 생각도 안 했으니까!”

“우리가 최전방의 기수가 되어 주지!

그들은 호기롭게 소리쳤다.

자신들의 실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소리였다.

“어? 그래?”

아직 조건은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뭐, 그럼 그렇게 해.”

재호는 그들에게 제시하려던 조건은 삼킨 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재호가 따로 조건을 제시하지 않자 불곰 길드는 또 한 번 배포에 감탄했고…….

‘그냥 주변 수색이나 정찰 정도로 맡길까 싶었는데.’

알아서 포탄이 되어주겠다고 하니 재호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쿠우웅―

그리 크지 않은 성문이 열리고 우르르 나서는 엘프들.

후미에 선 재호는 푸독 단장, 레니움 주교와 악수를 나누었다.

“저 밖으로 나서는 순간, 저희들의 지원은 사실상 어려워집니다. 어렵게 구축해 놓은 성역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 주십시오.”

“폐하의 헌신적이고 용맹한 정신을 존경합니다. 부디 안전하게 복귀하실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 재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마지막으로 성을 떠났다.

떠나는 무리를 위한 각 교단의 약식 기도 의식이 끝난 뒤,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기어코 갔군요.”

“임모탈리언들의 무모함이야 예전부터 유명하지 않았습니까?”

단둘이 남은 레니움 주교와 푸독 단장.

“준비는 잘 되었습니까?”

“물론입니다. 저들은 균열을 닫겠다고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지요. 만약 알시아 왕이 돌아온다면…… 혼자일 겁니다.”

“허허……. 그것 참 가슴 아픈 일이군요. 옵티마께서 굽어 살피시길.”

레니움 주교는 기도를 올렸으나……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리어 있었다.

* * *

푸른산호 섬.

본래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섬으로, 대륙에서 볼 수 없는 독자적인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했다.

“멀쩡한 섬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이곳에서도 다양한 꽃들을 채집할 수 있었을 테니까.

지금은 그저 익숙하고 평범한(?)에 불과한 푸른산호 섬.

“평범해? 이게?”

다키스트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완전 역겨움 그 자체인데?”

주변은 온통 시뻘건 점액질이나 본 적 없는 기이한 식물들로 뒤덮인 풍경.

척 보기에도 악마들이 섬을 장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뭐…… 자주 보던 풍경이라서.”

그래서 재호는 익숙했다.

처음 갔던 엠베이 숲이 이곳과 거의 흡사했으니까.

균열을 향한 행군은 별문제 없이 순조로웠다.

“알시아! 저곳에서 몬스터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저기에 수상한 땅굴이 있다!”

“여기 악마가 있다!!!”

스스로 약속한 대로, 가장 앞에서 적극적으로 정찰을 하는 불곰 길드원들.

다만 대부분 확인해 보면 별것 아닌 것들이었다.

“뭐야, 그냥 짐승이잖아.”

“악마들이 지나다니기엔 너무 작은 땅굴 아니냐?”

“악마가 아니라 꽃이야…….”

이런 상황의 반복.

실제로 악마와 마주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뭐……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지.’

섬 여기저기에 악마들이 쫙 깔려 있을 건 분명했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보나마나 재호와 엘프들 때문.

대놓고 섬을 가로지르는 백 명의 엘프는 어디서든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 미치지 않은 이상 하급 악마가 덤벼들 리 없었다.

줄칸은 교단들이 악마들이 대륙으로 침범해 오는 걸 누구보다 열심히 막고 있다지만, 재호는 그게 진실과 조금은 다르단 걸 알고 있었다.

‘실은 엘프들이 두려워서 그렇지.’

엠베이 숲의 악마들에게 들었으니 신뢰도는 충분했다.

엘프들이 고향을 잃은 건, 약해서가 아니라 신목이 엘프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는 것.

오히려 악마들은 그 당시, 악귀처럼 날뛰던 엘프를 생각하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라는 것을.

‘하지만 이런 순순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지는 않을 테지.’

균열에 가까워질수록 높은 등급의 악마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 여기 뭔가 있어!!”

또다시 저 앞쪽에서 들려온 불곰 길드원의 외침.

재호는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어차피 별것 아닐 테니…….

콰아아앙―!!!!!

“?!!”

갑자기 일어난 폭발!

“뭐, 뭐야?!”

“공격이다!!!”

엘프 무리와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던 불곰 길드원들.

헌데 그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야 공격이라고! 뭐해?”

“그럼 싸워.”

“?”

엘프 쪽에서 돌아온 냉담한 대답.

그 말에 불곰 길드원들은 말문이 막혔다.

“우리가 왜 네놈들을 도와야 하지? 애초에 몸으로 때우겠다고 한 건 너희들 아닌가?”

“알시아님을 죽이려 한 퇴비보다 쓸모없는 놈들이 감히 도움을 요구해?”

“싸우지 않으면 우리가 싸우게 만들어주지.”

살벌한 엘프들의 언사에 그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 이게…… 소문으로만 듣던 엘프들의 본모습…….’

영상이나 소문으로 간접 체험을 해 보긴 했지만 직접 당하니 내상이 훨씬 컸다.

“아… 알았어…….”

“하면 되잖아…….”

결국 쭈굴이가 된 그들은 방금 폭발에 휩쓸린 동료들을 살폈다.

“괜찮아?”

역시나 고레벨 유저답게 죽지는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하, 함정이었던 것 같은데? 그냥 발을 디디는 순간 폭발이 일어났어.”

“뭐야? 지뢰라도 있다는 거야?”

그런 게 뉴월드에 있을 리 없었다.

잠시 행군이 멈추었고, 불곰 길드가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아아앙―!!!

콰앙!!

콰과광!!!!

계속해서 일어나는 폭발.

“……쟤들 대체 뭐 하는 거야?”

재호는 끊임없이 들려오는 폭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 * *

불곰 길드가 몸을 내던져서 확인한 바, 확실히 뭔가가 있긴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무엇이 폭발을 일으키는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재호가 결국 나섰고…….

[<금고 털이범> 칭호로 인해 숨겨진 ‘무언가’를 발견하였습니다.]

“여기 있네.”

너무 쉽게 찾아 버렸다.

“…….”

“…….”

원망 가득한 불곰 길드원들의 눈빛.

“아니……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굳이 우리가 터져나갈 필요도 없었잖아.”

“너희가 자처했잖아? 내가 찾을 거면 너흴 왜 데리고 왔겠어?”

“그,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바로 찾을 수 있으면 훨씬 효율적이잖아!!!”

“뭐, 이렇게 잔뜩 깔려 있을 줄 알았…… 아, 거기! 조심……!”

콰앙―!!!

또다시 일어난 폭발에 불곰 길드원이 휩쓸렸다.

“아무튼 여기 진짜 지뢰밭이네.”

삽을 꺼낸 재호는 바로 앞의 땅을 파헤쳤다.

그러고 꺼낸 건 주먹만 한 폭탄.

[<기초 기계공학>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초 기계공학>

[간단한 수준의 기계공학품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수준의 기계공학품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쓴 경우가 거의 없는 스킬이 절로 활성화되더니 재호가 든 폭탄의 분석을 시작했다.

[현재 수준으로 확인이 불가합니다.]

큰 소득은 없었지만.

‘그래도 기계공학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건 알게 됐네.’

그리고 이 짓을 해 놓은 건 악마가 아닌 사람이란 것도.

기계공학을 다룬다면 악마보단 인간일 가능성이 높았다.

‘교단 쪽에서 한 짓일 가능성이 제일 높긴 한데…….’

문제는 대체 어떻게 이곳에 폭탄들을 심어 놓았냐는 것이었다.

몰래 움직여서 이 일을 꾸민다고 하더라도, 악마들이 우글거리는 장소인데 어떻게?

재호의 칭호를 통해 심어진 폭탄 지뢰의 양을 봤을 때, 고작 몇 명이 처리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악마들이 밟아 터진 것도 딱히 안 보이는 걸 보면 최근에 심은 게 분명한데…….

“일단은…….”

후에 고블린들에게 한번 보여줘 볼 요량으로 몇 개를 더 챙긴 재호.

“됐다. 다시 출발하자.”

“……제거 안 하고?”

“이제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어차피 밟는다고 안 죽잖아.”

‘이걸 다 처리하려면 한세월이라서 안 돼.’

재호의 속마음과 전혀 다른 소리.

불곰 길드원들이 용기를 가지도록 하기 위한 하얀 거짓말(?)이었다.

* * *

펑! 퍼버벙! 펑펑!!!

무식하고 저돌적인 전진.

그리고 끝없는 폭발.

“알시아 이 자식아!!!! 없다며!!!!”

“이 개 같……! 은 나……. 지뢰 탐지견 같은 나…….”

재호를 향해 욕설을 날리려고만 하면 어김없이 꽂히는 엘프들의 살기에 그들은 허겁지겁 말을 주워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나아가던 중, 불곰 길드원들이 뭔가를 발견했다.

“아, 알시아!! 저기 뭔가 있다!”

“뭘 굳이 물어 봐. 그냥 몸통박치기하면 되지.”

“야! 너 이……! 후우…….”

울컥했던 불곰 길드원들은 간신히 인내하곤 몸통박치기…… 아니, 확인을 하러 다가갔다.

바스락―

징그러운 악마초들을 뚫고 나아간 그들.

―……근데 진짜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음?”

잠잠히 있던 징징이가 불쑥 입을 열었다.

주변 환경 탓에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감각을 뽐내는 녀석.

―이건…… 악마 같아!

“악마? 도망가지 않고 남아 있는 악마가 있다고?”

그건 곧 두 가지를 의미했다.

이미 죽은 악마거나 죽어 가는 중이거나.

―……하급 악마가 아닐 수도 있잖아.

“근데 나 대악마도 잡았는데? 그러면 대악마보다 약한 애들은 다 겁먹어야 하는 거 아냐?”

당연히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었다.

크아아아아앙!!!!!

콰르릉―!!!

“모, 몬스터다!!!”

“진짜 몬스터야!!”

불곰 길드의 외침과 함께 폭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고잉헬 호의 선원이 사망하였습니다.]

“?!!”

이렇게 빨리 사망했다고?

[고잉헬 호의 선원이 사망하였습니다.]

또다시 발생한 사망자!

재호는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지뢰밭을 맨몸으로 걸어가도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두 명이 죽었다?

탓―

모종삽을 꺼내든 재호를 필두로, 엘프들이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곧 마주할 수 있었다.

뚝― 뚝―

온몸에서 검붉은 점액이 흘러내리는, 거대한 괴 생명체를…….

그리고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시신들까지.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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