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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171화 (17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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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큰 것인지, 몸통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점액으로 보였던 것은 괴수의 털로, 화염이 이글거린 탓에 착시가 일어난 것이었다.

커다란 눈동자에는 또 다른 눈알 수십 개가 들어 있었고, 각기의 눈들이 재호와 엘프들을 이리저리 살폈다.

“조, 조심해!!! 괴물이야!!!”

긴장한 채로 대치 중인 불곰 길드가 재호에게 경고했다.

“그건 외모만 봐도 알겠는데?”

<헬트리버>

녀석의 머리 위로 보이는 이름은 그러했다.

크르르―

송곳니를 드러내며 낮게 울음을 흘리던 녀석이 천천히 턱을 들어올렸다.

크으응―!!!

힘껏 내뿜은 콧김.

콰르르르―!!!

그러자 시커먼 화염도 함께 뿜어지더니 주변을 덮쳤다.

“피, 피해!!!”

가장 가까이 있던 불곰 길드 중, 그 누구도 막을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이미 두 명이 저 불길에 닿는 순간 순식간에 재가 되어 버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곧이어 추가 시스템 알림에 그들은 돌이 되어 버렸다.

[<헬트리버>의 시선이 당신의 움직임을 제약합니다!]

[1초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허…ㄱ……!”

화르르륵―!!!!

불곰 길드를 덮친 화염은 순식간에 그들을 체력을 지워 버렸고, 몇몇 길드원들이 또다시 사망했다.

“미, 미친! 무슨 딜이 이래!!!”

“싸, 싸워서 이기라고 있는 놈이 아니잖아!!”

“도망…….”

“못 이기는 게 어디 있어!”

뒷걸음질 치는 그들과는 반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재호와 엘프들!

“미, 미쳤어?! 뭐하는 거야!!”

“저 또라이 샊…… 컥!!”

그 와중에 휘두른 티나의 주먹이 재호의 욕을 사전 차단해 버렸다.

크르르르―

헬트리버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탈탈 털었고, 끈적거리는 불똥이 이리저리 마구 날렸다.

재호와 엘프들은 넓게 흩어지며 그것들을 피했고, 사만다나 다키스트는 방어 스킬들을 이용해 몸을 지켰다.

둘의 피지컬은 재호나 엘프만큼 뛰어나진 않았으니.

“아악!!”

하지만 이내 다키스트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야! 이거 겁나 세잖아!!”

“내 뒤로 와!!”

화염을 다루는 클래스인 탓에 오히려 대부분 스킬의 효율이 증가한 사만다는 정령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어…… 지, 진짜 싸우네?”

“우, 우리도 가자!!!”

애초에 이런 상황에서 한발 담가 보겠답시고 온 그들.

도망가는 건 능사가 아니었다.

콰르르르!!!!

백 명이 넘는 꼬맹이들이 달려들자 제대로 짜증이 난 헬트리버가 몸을 부풀리고 사방으로 화염을 뿜어냈다.

“쳇…….”

투창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공격이 초근접인 재호.

시도 때도 없이 불길을 뿜어대는 녀석인 탓에 접근하는 게 상당히 어려웠다.

그렇다고 악마의 무기이면서 화염을 머금은 파이라의 화염창을 쓸 수는 없었으니.

퓨슈슉―

게다가 엘프들의 강력한 원거리 공격은 헬트리버의 털에 닿는 순간, 순식간에 재가 되어 버렸다.

“헉?!”

그 광경에 재호는 헛바람을 삼켰다.

엘프의 공격은 대악마를 상대로도 위력적이었거늘, 마계의 괴수를 상대로 먹히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물리 공격이 먹히지 않던 흨우 선장처럼, 다른 특수한 공략법이 필요한 상대인가?’

재호는 전투에 이용할 만한 식물이 없나 주변을 살폈으나, 이미 헬트리버의 열기에 모두 타 버리고 없었다.

‘쯧, 내 공격은 어떻게든 때리기만 하면 효과를 볼 수 있을 텐데.’

현재 재호는 정령화를 한 상태로, 대상은 생기의 정령이었다.

[1. 신성 공격력이 추가됩니다.

2. 클래스 스킬에 추가 공력력이 부여됩니다.

3. 적 제거 시, 추가 경험치를 받습니다.]

평소에는 거의 쓰일 일이 없지만, 악마를 조질 때만큼은 이보다 효율이 좋은 게 없었다.

엠베이 숲이 이후로 악마와 싸울 일이 없어서 쓸 일이 없어 잊고 있었을 뿐.

접근만 하면 어떻게든 효과를 보겠지만…….

[너무 가까이 접근하였습니다.]

[강렬한 열기에 체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합니다.]

이러니 불가능했다.

‘그리고 왠지 저놈도 나를 유난히 경계하는 것 같고.’

역시 마계 출신인 만큼, 재호가 극도로 위험한 존재라는 걸 느끼는 것이리라.

“알시아님! 이 녀석 상당히 괴물인데요?”

“저희들의 공격 대부분을 무력화시키고 있어요!”

계속된 공방에도 이렇다 할 소득이 없자 결국 엘프들 입에서도 곤란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실상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는 건 꼰대의 원거리 공격 정도.

속성 자체가 완벽히 상극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반면 헬트리버가 지금까지 한 공격이라곤 두 가지가 전부였다.

콧김 뿜어내기와 몸 털기.

심지어 제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지도 않은 채.

그런데도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였으니, 움직임 하나하나가 재앙이라는 게 딱 이런 걸 뜻하나 싶었다.

“젠장! 내가 한번 가 본다!!!”

결국 답답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 불곰 길드의 탱커 한 명이 방패를 앞세우고 돌진했다.

“알시아 봐라!!! 날 기억해라!!!”

“응? 갑자기 왜?”

당황한 재호.

“나 이만큼 열심히 하니까 나중에 풀어달… 크아아악!!!”

분명 스킬을 사용해 돌진한 그.

헌데 헬트리버에게 닿기도 전에 그의 전신은 순식간에 거센 불길에 타올랐다.

“젠장! 버팔로!!!”

“큭! 기억할게!”

“젠장! 너희 말고!! 알시아!! 보고 있냐!!! 이 녀석은 근접 공격을 하면 안 된…….”

파스스―

그렇게 버팔로라 불렸던 남자는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

어처구니없는 돌발 상황에 재호는 말문이 막혔다.

‘누가 봐도 붙어서 싸우면 안 될 것 같았는데…….’

재호나 엘프들이 괜히 가까이 붙지 않은 게 아니었다.

‘뭐…… 그래도 몸소 확인시켜 줬으니.’

이렇게 된 이상 작전을 바꿔야 했다.

“일단 후퇴!”

동시에 재호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도 떠올렸다.

―메이. 바빠?

도망치는 와중에 귓속말을 보낸 재호.

―아뇨? 막 화원 순찰 마친 참인데, 무슨 일이세요?

―네 도움이 필요해!

* * *

재호와 엘프들이 떠난 교단 방어선.

그곳은 막 발생한 악마 웨이브를 막아낸 참이었다.

“악마들이 멀쩡히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알시아 왕과 엘프들은 당한 것이겠지요?”

레니움 주교의 물음에 푸독은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멀리서 들려왔던 폭음을 생각하면 그들이 함정 구역에 진입한 것 같긴 한데…….”

그런 것치곤 악마 웨이브의 규모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만약 둘이 충돌을 했다면 악마 쪽도 큰 피해를 입었을 게 분명한데, 겉으로 드러나는 전력 감소는 확인되지 않으니.

“게다가 대악마를 잡았다는 건 허명이 아닌지, 악마들이 확실히 그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 게 뒤늦게 걱정되는군요.”

“괜찮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웨이브는 계속해서 일어날 테고, 균열 가까이 갈수록 충돌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

“야! 문 열어!!”

그때, 성문 쪽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두 사람의 시선이 향했다.

“빨리 열라고!! 급해!!!”

“늦으면 안 된다고!!”

밖으로 내보내 달라며 행패를 부리는 몇몇 이들.

“음? 저들은 분명 알시아와 함께 갔던…….”

바로 죽고 고잉헬 호에서 즉시 부활한 불곰 길드원들.

함께 고잉헬 호를 타고 왔던 푸독은 그들을 알아보았다.

“분명 함께 갔었는데…… 왜 이곳에서 다시 나타난 것이지?”

임모탈리언이 죽음에서 벗어난 자들이라고 하지만, 다시 부활하는 데엔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죽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바로 나타나는 건 말이 안 되었던 것이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저들과 이야기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군요.”

푸독은 불곰 길드원들을 향해 다가갔다.

“거기, 자네들.”

“음? 뭐야?”

푸독을 알아본 불곰 길드원들은 살짝 긴장했다.

“자네들은 분명 이곳을 떠나지 않았었나? 어떻게 여기서 나타난 거지?”

“뭐? 그야…… 우린 임모탈리언이니까.”

“내 말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인지 묻는…… 아니지. 그건 굳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군.”

푸독은 고개를 젓곤 말을 바꿨다.

“죽었다는 건, 저쪽에서 전투가 있었단 뜻이겠군.”

“그야 당연하지. 그보다 그런 쓸모없는 걸 계속 물을 거라면 이만 이 문 좀 열어주는 게 어때?”

“아니, 그럴 순 없겠네.”

푸독은 자신의 허리춤에서 검을 슬쩍 앞으로 내밀었다.

“저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라. 그러지 않는다면 그대들은 이곳에서 몇 번이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니.”

“뭐라고?”

그의 은근한 협박에 서로 눈빛을 교환하던 불곰 길드원들.

“설마…… 당신도 알시아를 노리는 건가?”

“당신‘도’?”

불곰 길드의 물음에 푸독의 눈썹이 씰룩였다.

“……어쩌면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할지도 모르겠군.”

푸독의 말에 불곰 길드원들이 씩 미소 지었다.

* * *

다행히 헬트리버는 후퇴하는 재호 일행을 쫓지 않았다.

불을 뿜어내는 하품을 하더니 다시 머리를 처박고 눈을 감은 것이다.

‘만사가 귀찮은 모양이네.’

도망치는 입장에선 천만다행이었다.

“알시아. 이제 어쩔 거지?”

“돌아가는 길을 찾으면 되나?”

불곰 길드원들의 물음에 재호는 고개를 저었다.

“저 뒤로 균열이 보이는데 굳이 돌아갈 필요 없지. 그리고 저 괴물 잡고 싶은 거 아냐? 한입 하고 싶다며?”

“아니, 그야 한입 가능한 상대여야 말이 되지…….”

“우리 입으로 이런 말하기 좀 민망하지만, 그래도 다 랭커 소리 듣는 우리들이야. 그런데 저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괴물은 본 적이 없어.”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는 데다 탱커를 단번에 녹일 정도의 공격력이라니.

“이 정도면…… 파이라보다 더 까다로운 거 아냐?”

파이라 레이드에 참가했던 길드원의 감상에 재호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 게임을 하면서 겪어 본 바론, 클리어 불가능한 건 없어. 정공법이 안 된다면 편법으로라도 분명 방법이 존재해.”

“우리가 너보다 게임 경력이 몇 배는 더 되는데…….”

“긴 경력에 비해 업적은 없나 보지.”

“쿨럭……!”

평범한 길을 걸어온 범재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한마디.

“너희들이 랭커네 간부네 하는 걸 보니 왜 불곰 길드가 그 모양인지 알 것 같다.”

“뭐?!”

“이, 이 자식아! 굳이 왜 그런 소리를……!!”

“뻔하지 뭐. 안 될 거 같으면 도망치고 피하고, 레벨 안 떨어트리고 올라가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겠지. 아냐?”

“그거야 게임을 하면 당연한 거 아니냐?!”

“그러니까 발전이 없는 거야.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해서, 다키스트 정도면 너희 세 명까지는 혼자 상대 가능할걸?”

“야! 그건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세 명은 심하잖아!! 두 명이면 몰라도!”

“…….”

대회를 봤기에 다키스트가 굉장히 강하다는 건 알았다.

그래서 혼자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소리는 아예 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런 거야. 쉬운 길로만 가서는 진짜 더 높은 곳을 볼 수 없지.”

“……설마 네 레벨이 아직 200도 안 된 게 그런 이유냐?”

“음?”

재호는 곧장 이해하지 못했지만, 불곰 저들끼리 납득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리는 너무 몸을 사리긴 했지.”

“레벨이 떨어지면 다시 올리면 될 뿐이었어.”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 안 그래도 흨우 그 자식 만나고 떨어진 레벨이 거의 10은 되는데…….”

“좋아! 이 참에 한번 제대로 조져 보자!! 힘을 키워서 우리도 이름값 좀 키워 보는 거야!!”

서로 으쌰으쌰 하는 꼴을 보던 재호.

―알시아님?

―아, 메이!

그리고 마침, 기다리던 귓속말이 도착했다.

―말씀하신 건 챙겼어요. 이제 바로 가면 될 듯싶은데……. 정말 괜찮을까요? 화원 밖으로는 나가 본 적이 없어서……

걱정스러운 듯한 메이 반응.

―여기 좀…… 살벌한 곳이긴 해도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엘프들도 많아서 죽진 않아.

벌써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어쨌든 죽지는 않았으니까.

―후우…… 좋아요. 준비됐어요.

마침내 메이가 신호를 보냈고.

스으―

“음? 어디 가게?”

재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른 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시 싸울 준비 해야지.”

그러면서 두 팔을 든 재호.

“호출!”

[<정령화장의 조수>를 호출하시겠습니까?]

재호는 수락했고, 바로 앞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메이가 나타났다.

“어? 메이?”

“뭐, 뭐야? 소환 스킬도 있어?”

사만다와 다키스트가 깜짝 놀라 물었다.

“아, 클래스 스킬이에요. 알시아님이 있는 곳으로 소환되는.”

“…….”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상기했다.

메이의 클래스가 <정령화장의 조수>임을.

‘이 정도면 사실 노예 아냐?’란 의문은 속으로만 둔 채.

“근데 메이는 왜?”

다키스트의 질문에 대한 답.

“끙차―”

그것은 메이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커다란 꽃이었다.

“여기요. 불꽁꽁화.”

주변의 열기를 모조리 흡수해 버리는, 심지어 용암의 열기마저도 식게 만드는 꽃!

“좋아! 그럼 다시 출발하자!”

그 꽃을 짊어진 재호가 힘차게 소리쳤다.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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