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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181화 (18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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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두들겨 맞던 테일러는 폭력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나타난 엘프들 덕에 풀려날 수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아!!! 진짜 투기장에 왔다고!!!”

한 맺힌 테일러의 외침이 멀리 있던 재호에게까지 닿았다.

“정리된 모양이네.”

재호의 추측대로, 잠시 후 풀려난 테일러가 근처로 찾아왔다.

―여기야?

―응. 이쪽으로 내려가면 돼.

―내려가? 여기 아무리 봐도 무덤 같은데? 아!

그리 말했던 테일러는 곧 뭔가를 기억해 내곤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방송에 나왔던 대장간이구나. 그 거인이 살고 있는!

―아니, 거긴 아무나 못 가. 내려가다 보면 안내판 있을 거야. 그 표지판을 따라 다른 통로로 가면 전시실이 나와.

―응? 그래? 알았어. 이제 알아서 할게.

―아, 혹시나 싶어 말하는데 슬쩍 시도는 하지 마.

―안 해! 난 좀도둑이 아니라고!!

어쨌든 행동거지나 스타일은 비슷하지 않나?

재호가 떠난 뒤, 테일러는 아래로 내려가 불이 밝혀진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쪽이군.”

재호의 말대로 <아이템 전시실>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헌데 조금 걸어 들어가자 이내 당황스러운 상황과 마주했다.

와글와글―

줄지어 선 수많은 사람들.

그들 모두가 전시실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었다.

“……저기, 여기 왜 이렇게 줄 서서 기다리는 거야?”

테일러는 바로 앞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응? 그야 아이템 구경하려고 그러지.”

“아니, 그건 알겠는데… 왜 이렇게까지 줄 서서 구경하려는 거야?”

“너 뉴비야?”

“?”

테일러에겐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소리였다.

하지만 아무리 불을 밝혀 두었다고 해도 지하 동굴인 탓에 빛은 고르지 않았고, 모든 사람들이 테일러를 알아보란 법도 없었다.

“지금 이게 얼마나 난리인데. 죽치고 앉아서 보고 있는 건 민폐라고. 그러니까 이렇게 줄 서서 차례로 지나가면서 보는 거야.”

“무슨 박물관이야? 그냥 자기가 살 것만 봐도 되잖아……. 어?”

툴툴거리던 테일러는 곧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자신이 엠베이 숲에 온 건 누구보다 빨랐다.

이미 진작부터 관심을 두고 있었고, 그 탓에 재호에게 미리 이야기도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 * *

“와! 대박! 전설 등급 아닌 게 없어!”

“이 검은 형태가 특이한데? 음음, 나중에 제작할 때 참고해 봐야겠어.”

“오! 여기 들어간 재료는 뭐지? 내 스킬로 감별이 안 되는데?”

테일러가 의문을 드러내는 이들은 바로 투기장 건설에 참가했던 대장장이들이었다.

투기장 완성에 맞춰 개장한 아이템 전시실을 방문한 그들.

뛰어난 아이템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경험치가 쭉쭉 올랐다.

그러니 아예 줄지어선 채로 박물관 관람을 하듯, 빙빙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알시아님한테는 언제 물어보지?”

그들이 투기장 건설에 참여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드워프의 작업장에 꽂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물론 재호의 일침을 곡해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아냐! 믿고 기다리면 될 거야! 알시아님이 그런 걸로 사기를 칠 리가 없잖아.”

“맞아. 전럭협 애들을 봐!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기다려서 지금의 위치까지 도달했어!”

재호가 들으면 펄쩍 뛸 소리였다.

“야, 이참에 우리도 그런 연합 하나 만들까?”

“전 세계 엠베이 숲 협회?”

“전엠협?”

“어감이 너무 이상한데?”

“전럭협은 괜찮아서 전럭협이야?”

“엠대협 어때? 엠베이 숲 대장장이 협회.”

“전엠연이나 엠대협이나…….”

고민하던 그들은 결국 이름 짓는 건 포기했다.

나중에 재호가 자리를 만들어주면 그때 하기로만 약속한 채로.

* * *

30분을 기다려 마침내 전시실에 발을 들인 테일러.

그는 개인 방송을 틀어놓고 아이템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자세히 보여주었다.

“보면 알겠지만 다 전설 아이템들이죠. 옵션들도 상당해요. 과연 드워프 장인들이 만든 물건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와 대박! 저기 있는 것들을 다 판다고?

―그냥은 안 팔지. 구매권을 얻으려면 슈퍼스타 아레나에서 쌩쇼를 벌여야 하니까.

―굳이 왜 그런 시스템을 붙인 거지? 그냥 팔면 몇 배는 더 벌 텐데?

―빡대가리라서 그런가 보지 뭐.

―응~ 락타디움도 안 가본 놈들이니까 그런 소리 하지. 드워프들 승질 어떤지 알면 알시아가 머리 겁나 굴렸다는 거 알 수 있음.

―ㅇㅇ맞음. 드워프들은 자기들 아이템을 아무한테나 안 팜. 오히려 알시아 덕분에 조건이 낮아진 거임. 악마들을 두들겨 패서 드워프들을 만족시키기만 하면 구매할 수 있다니까.

―그게 투기장까지 저렇게 거하게 지어서 할 가치가 있는 거냐?

―빡대가리가 여기 있었네. 당연한 소릴 하냐?

―투기장만으로도 발생하는 수익은 상당할 텐데, 만약 흥하면 방송사들도 중계권 좀 따내려고 침 질질 흘릴 거다.

그들의 추측은 제법 정확했다.

오히려 재호가 아이템 구매권을 건 투기장을 열어준 건 허들을 낮춰 준 것.

특히 고레벨 유저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서둘러 엠베이 숲을 찾아오고 있었다.

―근데 저 아이템들마다 표시된 동그라미는 뭐냐?

―글쎄. 뭐 자기들 나름대로 나눠 놓은 등급표 같은 건가?

테일러 역시 그에 대해선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전 세 가지 아이템이 마음에 듭니다.”

전시실을 다 돌아본 테일러는 구매 희망 목록에 세 개의 아이템을 넣어뒀다.

“그다음은 이제 투기장이군요. 사실 구매권을 얻을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지가 않는데요, 지금부터 직접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곧장 투기장을 이동한 테일러는 신청을 마쳤다.

이제 막 시작된 슈퍼스타 아레나인 탓에 대기줄은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어? 넌?”

테일러는 이미 대기 중인 사람들을 보곤 당황했고, 상대 역시 크게 움찔했다.

“버팔로?!”

“테, 테일러?! 네가 왜 여기 있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나야 영지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왔는데… 넌 뭐냐? 왜 여기서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데?”

“어… 그게…….”

아직 투기장 소문은 잘 퍼지지 않아 있는데 대체 이 녀석이 왜 여기 있는 건가?

“어? 그러고 보니 저 안에 있는 놈은… 쿨주먹 아냐?! 뭐야!!! 잠깐만. 저기에는…….”

당황한 테일러.

어쩌다 보니 불곰 길드 정모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다른 불곰 길드원들이 여기 있는 이유.

바로 재호와 한 배를 타고 왔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노예로 구속된 이들은 물론, 자유의 몸이 된 이들도.

물론 라셀 왕국에 내리자마자 욕을 씹어 삼키며 도망치듯 사라진 이들도 있었으나, 이렇게 재호를 따라 슬그머니 온 녀석들도 있었다.

움직였다 하면 사건 사고를 터뜨리는 재호였으니, 이렇게 된 김에 은근슬쩍 빌붙어 볼까 싶었던 것이다.

또한 불곰 길드 소속인 그들이 언제 엘리시아 화원을 가보며, 엠베이 숲을 당당히 가 보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가능했다.

재호의 노예였으니까!!

……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런 것 모두가 자신들의 정신승리에 불과하다는 걸 본인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쿨주먹을 비롯한 자유인(?)들의 경우엔 특히나 더.

“흠흠……. 이렇게 된 이상, 서로 눈치껏 돕자고.”

버팔로의 말에 테일러는 곧장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크로킹 그 자식한테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

테일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꼭 숨길 필요 없지 않나?’

이미 불곰 길드원들이 정체를 숨기고 재호의 화원을 방문하거나, 경매장에서 재호의 물건을 구매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리고 엘리시아 화원의 경우엔 적진 심장부라 길드 수뇌부에서 거부감을 가진다 해도, 엠베이 숲은 조금 달랐다.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드워프제 장비들!

그걸 구할 수 있는 장소지 않은가?

그래서 테일러도 대놓고 방송을 하며 이곳에 왔고…….

“어?”

갑자기 길드원을 만난 탓에 잠시 까먹고 있던 방송.

“진짜 아무튼 크로킹하고 그 주변에 딸랑이들 때문에 개 같다 이 말이야. 자기들은 안전한 곳에 처박혀서 밖이 어떻게 돌아가는 질 몰라.”

“맞는 말이야. 우리를 무슨 노예로 보는 거야? 더러워서 가만히 있지, 그 새끼들 자꾸 귀찮게 하면 언제 한번 제대로 엎어 버려야겠어.”

“…….”

이미 방송엔 다 나가 버렸고, 채팅창은 불을 뿜고 있었다.

‘……모르겠다!’

그래서 테일러는 포기해 버렸다.

* * *

잠시 후, 테일러의 입장 순서가 되었다.

앞서 경기를 치렀던 길드원들 중, 구매권 획득에 성공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 망할! 그 난쟁이 새끼들 대체 합격 기준이 뭐야?!! 개같네!!”

테일러 앞 순서로 했던 버팔로도 씩씩 콧김을 뿜어대며 그런 말을 했었다.

아무래도 드워프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운 듯싶었다.

쿵―

맞은편에 선 악마.

덩치를 커다랗게 키운 악마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테일러를 노려보자 테일러는 절로 긴장이 되었다.

‘제법 강해 보이는데…….’

상대해 본 악마라곤 파이라가 전부니 좀처럼 가늠이 어려웠다.

‘뭐, 어차피 이 투기장에선 승리하는 게 목적이 아니야.’

테일러는 힐끗 심사석에 앉은 세 명의 드워프들을 바라봤다.

똑같이 근엄한 표정, 똑같이 팔짱 낀 자세.

그렇게 테일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후우…….”

테일러는 심호흡하며 자세를 잡았다.

어쨌든 저들을 만족시키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쏟아내야 했다.

‘좋아. 초반부터 간…….’

―야. 힘 좀 빼.

휘청―

그의 각오를 초치는 귓속말.

―알시아?

그는 당황해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곧 관중석 한쪽에 앉아 구경 중인 재호를 발견했다.

―뭐, 뭐야?! 거기서 뭐하는데?

―구경하지.

―아…….

하긴 이 투기장의 주인이었으니.

―근데 무슨 소리야? 힘을 빼라니?

―딱 보기에도 초장부터 싹 다 털어 놓을 생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그…렇지? 그래야 하는 거 아냐?

―쯧. 생각을 좀 해 봐라. 다른 사람들이라고 안 그랬을 거 같냐? 그런데 다 탈락했으면 원인을 좀 분석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

―…….

반박 불가능한 재호의 일침에 테일러는 말문이 막혔다.

하긴, 자신보다 먼저 싸웠던 녀석들도 불곰 길드의 날고 기는 실력자들.

그런데 단 한 명도 통과를 못 한 걸 보면, 포인트를 잘못 잡고 있다는 뜻이었다.

―드워프들이 바라는 건 화려한 싸움이 아냐. 재미있는 싸움이지.

―뭐?

―거기 있는 약골 악마 신나게 두들겨 패는 게 재밌겠냐? 아니면 엎치락뒤치락 싸우는 게 재밌겠냐?

―……이 악마 약해?

―넌 랭커라면서 그 정도 안목도 없냐?

―아니… 악마는 다른 몬스터에 비해 좀 더 강할 수도 있는 거잖아!

―아무튼 잘 좀 해 봐. 그냥 줄줄이 다 탈락해서 이상한 소문 생길까 봐 겁나니까.

―아, 알았어…….

테일러는 시무룩해졌지만, 어쨌든 남들은 얻을 수 없는 대단한 팁을 얻은 것이었다.

‘그럴듯한 싸움…….’

승리가 아닌 심사위원과 관중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퍼포먼스…….

‘……젠장! 그래서 슈퍼스타 아레나냐?!!!’

테일러는 그제야 이 투기장 대회명에 숨겨진 의미를 깨달았다.

* * *

테일러는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화려하고 강력한 스킬로 악마들를 멋지게 제압하는 게 아닌,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테일러 이 새끼 뭐냐? 왤케 못 싸우냐?

―ㅋㅋㅋㅋㅋ개 웃기네. 암살자 아님? 암살자가 개 처맞네.

―불곰 길드도 끝장났네. 랭커고 간부고 꼬라지 보니까.

―근데 꿀잼이긴 개꿀잼 아님? 다른 애들은 악마 걍 조지던데 테일러는 박빙이네.

―어어? 테일러 턱주가리 제대로 맞았다!

―엌ㅋㅋㅋㅋ 다운됨ㅋㅋㅋㅋㅋ

―와 얘 뭐 술 먹고 게임하냐?

―술 먹으면 게임 접속 안 됨ㅇㅇ

―└네다찐…….

―일어나!! 테일러 일어나!!!

―오오!! 일어난다!!!!

―가라!!!

―오! 제대로 카운터!!!

쿠웅―

거의 20분에 걸친 전투 끝에, 테일러는 승리를 거두었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는 테일러는 주먹을 번쩍 들어올리며 승리에 도취된 척했다.

‘망할. 이렇게까지 해야 해?’

일단 나름대로 박빙의 싸움을 벌이긴 했는데…… 진짜로 이런 걸 원한다고?

척―

그 순간, 가장 끝에 있던 드워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버튼 하나를 눌렀다.

[O]

그가 앉은 테이블 아래에 나타난 동그라미 표시.

“?”

그리고 연이어.

[O]

[X]

세 명 중, 두 명에게서 동그라미를 받았다.

“악마를 적당히 봐주는 듯한 느낌이 들긴 했으나, 훌륭한 투지는 느낄 수 있었군. 그렇기에 그대는 두 개의 합격 메달을 받을 수 있소.”

“?”

그러곤 투기장 안으로 들어온 다른 악마가 테일러에게 쇠로 만든 합격 목걸이 두 개를 건넸다.

“??”

왜 두 개?

“작품 전시실을 아래, 합격 목걸이 개수가 표시가 있을 것이오. 그 개수에 해당되는 아이템의 구매 조건을 달성했다는 뜻이니, 그리 아시게나.”

“?!!!”

전시실 내, 아이템 아래에 표시되어 있던 동그라미 표시!

“그, 그게 구매 요구치라고?!!!”

테일러는 마음에 들던 아이템들에 몇 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까…….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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