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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녹화일이 되어 다 함께 호텔을 나선 팀원들은 방송국에서 지원해 준 차를 타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헌데 특이하게도 촬영장은 방송국이 아닌, 시외의 고급 펜션이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어느새 촬영 소식이 새어 나간 것인지, 수많은 팬들이 촬영 구경을 나와 있었다.
“대박……. 우, 우리 이 정도였어?”
“맨날 대회 끝나면 호텔로 돌아오기만 반복했더니 전혀 몰랐습니다.”
대회장이 아닌 곳에서 수많은 팬과 만난 팀원들이 감동하자 재호는 괜히 미안해졌다.
가만 생각해 보면 언제나 주목 받았기에 무덤덤했지만 상대적으로 조명 밖에 있었던 그들은 느낌이 남달랐던 것이다.
‘……가끔 이런 활동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그리 생각하며 그들은 펜션 안으로 향했고, 메이크업을 마친 뒤 녹화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토크쇼 부분이었다.
이미 토크쇼 주제와 질문지를 받았었기에 대답은 각자 준비했고, 그다지 자극적인 내용도 없어 어려움은 없었다.
“처음 팀이 구성됐을 때만 해도 너무 이상한 구성이라는 말이 많았거든요? 다들 어떻게 만나게 된 건가요?”
진행자의 질문에 먼저 마이크를 잡은 건 재호였다.
“어차피 대회는 레벨 보정이 있으니 인게임 레벨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선수로 활동해 보고 싶어 하는 동료들에게 제안을 하고 모이게 됐습니다.”
“사실 함완식 씨나 아만다 씨는 이전부터 소위 엘리시아 화원의 사천왕으로 알려져 있었잖아요. 헌데 슈타이저 씨나 엠마 씨는 원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이번에 마이크를 넘겨받은 건 레드와 다키스트.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원래 불곰 길드 소속이었습니다.”
“아, 맞아요. 특이하다면 특이한 이력이지요.”
“그렇죠. 사실 불곰 길드가 대외적으로 좋은 이미지는 아니거든요. 알시아님하고 서로 대적 중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적대하면 무조건 죽이는 불곰 길드와 달리, 알시아님은 관용과 포용을 베풀 줄 아는 분이에요! 저를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 주신 빛과 소금과 같은 하느니…ㅁ…!!”
재호는 급히 그의 입을 막았다.
게임 내에서 보인 레드의 광신도적 모습은 이미 유명했지만, 현실에서까지 그런 걸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저 게임 내에서의 컨셉일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가길 바랐던 것이다.
게다가 자칫 종교적 문제로 비화될지도 모를 일이었고.
하지만 그 탓에 완벽하게 패드립이 되어 진행자를 당황시켰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엠마 씨는 어떤가요?”
진행자가 이번에는 다키스트에게 물었다.
“아… 저는…….”
다키스트는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이야 한 팀이고 친해진 상태지만, 이 중에서 따져보면 누구보다 격하게 싸운 상대였다.
오죽하면 결투 실험을 할 때, 자신을 상대로 골랐을까.
그런 자신이 재호와 함께하는 이유?
“인질로 잡혔…….”
재호는 다시 한번 입을 막았다.
“거참 오해할 법한 단어만 잘들 골라서 이야기하네요. 하하!”
“…….”
재호는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레드와 다키스트를 노려봤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질문지였는데 답변은 왜 이따위로 준비해 온 건지.
* * *
약 두 시간에 걸친 토크쇼는 마무리되었다.
편집 후, 실제 방송에선 1부로 방영될 분량이었고 이젠 2부인 게임을 시작해야 했다.
아직 재호와 팀원들은 어떤 게임을 하게 될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앞선 다른 방송들을 보니 두표의 말대로 아주 다양한 게임들로 출연진들을 곤란하게 하곤 했다.
가상 현실 게임부터 시작해 PC나 모바일 게임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나왔었다 보니 예상이 불가능했다.
“자! 오늘 출연해주신 일성 플라워즈 팀을 위해 준비된 게임을 공개하겠습니다!”
잔뜩 들뜬 진행자의 외침.
두구두구두구―
현장에서 준비한 효과음과 함께…….
“짜잔!!”
진행자가 팔을 쭉 뻗어 펜션의 후문을 가리켰다.
“……?”
“??”
어쩌라는 걸까?
“하하하! 다들 당황한 모습이 재밌네요! 하지만 저곳으로 나가 보면 더 깜짝 놀라게 될 걸요?”
그 말을 듣고 재호가 후문으로 향했다.
달칵―
대체 뭔 짓을 해 놓은 것일까?
호기심 가득 안고 문을 연 재호의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펜션 뒤의 넓은 공터에는 거대한 세트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커다란 스폰지 통나무가 붕붕 돌아가거나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커다란 부표 등등…….
“이게 무슨……?”
“엥? 뭐야?”
뒤따라 나온 팀원들도 당황한 채로 이 거대한 세트를 멍하니 바라봤다.
“하하하! 이번에 저희 제작진에서 예산이 몇 배는 오버되어서 시말서 좀 쓰게 생겼죠. 하지만 그만큼 대단한 분들이 오셨으니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진행자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성 플라워즈 여러분들이 하실 게임은 바로 ‘스타트! 드림팀!!’입니다!!”
“???”
아무도 알아듣는 사람 없는 구시대 예능!
하지만 뭘 하게 될 것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브이튜브를 보다 보면 이와 비슷한 외국 챌린지 영상들이 많았으니까.
“어… 게임을 원래 이런 몸 쓰는 것도 하나요?”
재호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뇨! 이번에 저희도 처음으로 시도하는 거랍니다!”
진행자는 당당하게 말했다.
2부 게임에 대해선 제작진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일성 플라워즈, 정확히는 재호가 또 언제 방송을 출연할지 모르지 않는가?
남들도 다 하는 뻔한 콘텐츠로 이 기회를 날려 버릴 순 없었다.
[황재호 선수가 실제로도 그만큼 잘 싸울까?]
회의 도중, 문득 나온 누군가의 의문.
그걸 듣는 순간, 은지수 피디는 손가락을 튕겼다.
“바로 그거야!!”
그건 전 세계 모두가 가진 공통의 호기심이었다.
과연 황재호는 실제로도 싸움을 잘 할까?
물론 그렇다고 실제로 싸움을 붙였다간 고소당할 일.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과거 인기를 끌었던 ‘스타트! 드림팀!’ 방송이었다.
온갖 장애물을 통과하며 골인 지점까지 달리는 타임어택 도전.
이거라면 재호는 물론, 대회에서 뛰어난 움직임을 보이는 선수들의 현실 피지컬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황재호 선수의 피지컬이야 예전에 소매치기 잡을 때 나오긴 했었지만, 직접적으로 보인 적은 없었어!’
은지수 피디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조건 대박이야!’
* * *
처음엔 당황했던 팀원들도 곧 현실을 받아들였다.
아니, 오히려 놀이공원에 온 아이들처럼 들뜨기까지 했다.
“나 이런 거 해 보고 싶었어.”
“물에 빠지는 건 좀 싫긴 하지만…….”
제작진에서 준비해준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그들.
“근데 이거 통과 못 하면 창피해서 어떡해?”
다키스트의 걱정에 재호는 피식 웃었다.
“애초에 그걸 바라고 있지 않으려나.”
“응?”
“뭐, 뻔하잖아. 대회에서 우리 팀 피지컬이 다른 팀들에 비해 압도적이니까. 실제로도 그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이런 걸 준비한 모양인데. 그리고…….”
재호는 골인 지점 앞의 마지막 장애물을 가리켰다.
덜컹― 덜컹―
팡! 팡! 팡!
빙글빙글 돌아가는 외나무다리와 번갈아가며 툭툭 튀어나오며 길을 막는 장애물들.
“저건 애초에 통과하라고 만든 게 아닌 거 같지 않아?”
“……하긴. 네 덩치로는 그냥 지나가는 것도 어려워 보이긴 한다.”
“그냥 호기심만 충족시켜주고 탈락하면 충분하지 뭐.”
재호는 스트레칭을 하며 말했다.
도전 순서는 완식 다키스트, 레드, 사만다, 그리고 마지막이 재호로 정해졌다.
“참고로 제작진에서 제일 운동 잘하는 분이 통과하는 데 3분 20초가 걸렸답니다.”
완식이 출발선에 서자 진행자가 짓궂게 말했다.
“네? 이걸 통과했다고요?”
깜짝 놀란 완식이 물었다.
“당연하죠! 애초에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답니다! 아니면 너무 치사하잖아요?”
…는 거짓말이었다.
아마도 본 방송에선 [이걸 통과하면 사람이 아니라 문어지.]라는 자막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좋아요! 그럼 도전을 외치시고 출발해 주세요!”
진행자의 말에 완식이 팔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도전!!!”
그리고 20초 뒤, 광탈해 버렸다.
“…….”
“……….”
“………….”
팀원들은 물론, 제작진들도 침묵에 빠졌다.
장애물들을 어렵게 만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중후반부에서나 난이도가 급상승했지, 초반은 전혀 아니었다.
이 와중에 유일하게 담담한 이는 재호.
예전부터 완식의 운동 신경이 최악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함완식 쟤는… 원래 저래?”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완식을 보며 다키스트가 물었다.
“응. 쟤 원래 몸치야.”
“그럼 저 근육들은 대체 뭔데?”
“반복 근력 운동은 몸치라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흔들다리에서 탈락하는 건 너무하잖아…….”
그러면서 다음 주자로 도전한 다키스트.
퍽―!
“아악!!!”
철퍼덕―!!
다키스트가 버틴 시간은 2분 30초.
총 10개의 장애물 중, 네 번째에서 탈락을 했다.
완식보다는 훨씬 나은 성적.
뒤이어 도전한 레드는 두 번째 장애물에서 탈락했고, 그 모습을 본 다키스트는 콧대를 한껏 세웠다.
“와하하하!! 이거 참… 다들 뭐하는 거야?”
“넌 게임 속에선 엉망이더니 의외로 몸 좀 쓰네?”
재호의 진심 어린 감탄에 그녀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내가 이 정도라구.”
화기애애한 팀 분위기.
하지만 제작진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이거 안 좋은데…….”
지켜보는 은지수 피디는 생각보다 너무 떨어지는 선수들의 피지컬에 당황한 상태였다.
“그래도 게임의 반 정도는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이건 뭐…….”
이 자체로도 재미라면 재미긴 했지만, 그래도 한두 명 정도는 대단한 움직임을 보여주면 더 좋지 않은가?
“아직 두 명이 남았잖아요. 게다가 황재호 선수가 아직 있으니까.”
스태프의 말에 그녀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좀 더 지켜보자.”
주변의 구경꾼들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최강 피지컬 팀의 현실 피지컬이 고작 이거밖에 안 된다고?
“따로 현실 훈련은 안 한다던 게 진짜였나 봐”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게임 내에서 훈련하는 걸로도 그 정도로 성장이 돼?”
“와……. 그러면 죽어라 격투기 배우는 다른 팀들은 뭐가 되는 거임?”
“그, 그러게……?”
그 사이, 출발선에 선 사만다가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도전!”
그리고 이어진 전개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빠, 빠르잖아?!”
말 그대로 빨랐다.
민첩하고 신속한 움직임을 보이는 사만다는 초반의 장애물들을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지금까지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고, 전혀 기대도 안 했던 활약!
그 결과, 사만다는 일곱 번째 장애물에서 탈락했다.
“뭐야… 너 운동했었어?”
금세 시무룩해진 다키스트가 사만다에게 물었다.
“아… 요즘은 안 해.”
“예전엔 했단 소리구나.”
“응. 군인 되려고 이런저런 훈련은 좀 받았었거든.”
“?!!!”
뜬금없는 고백에 모두가 당황했다.
“구, 군인?”
“네.”
재호의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이 모두 군인이라서 어릴 때부터 군인이 되려고 했었습니다. 뭐, 결국엔 좌절이 됐지만.”
“아… 그래서 그랬었구나.”
“네?”
“응? 아, 아냐.”
재호는 사만다 특유의 각 잡힌 행동이나 말투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 * *
“읏차.”
계단을 올라 출발선에 선 재호.
그러곤 제자리뛰기를 하며 마지막으로 몸을 풀었다.
“기분이 어때요?! 긴장은 안 되나요?”
옆으로 다가온 진행자의 질문에 재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긴장이야 되죠. 저 커다란 망치들을 보세요.”
“하하! 그냥 보면 엄청 위협적이긴 하죠!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저것들 모두 푹신한 스폰지들이니까요!”
“그럼 믿고 막 달려도 되겠네요?”
“글쎄요? 과연 어떻게 될까요?”
거기까지 말한 진행자는 옆으로 비켜섰다.
“첫 판에서 자빠져라!!!”
함완식의 저주가 들려왔고.
“화이팅!! 그래도 주장 이름값은 해야지!!”
“알시아님! 화이팅입니다!!”
“꼭 성공하십시오!!”
다른 팀원들의 응원도 들려왔다.
두근두근―
그리고 지켜보는 은지수 피디의 심장도 기대로 뛰기 시작했고.
“도전!”
낮지만 힘이 느껴지는 외침과 함께, 재호는 힘껏 땅을 박찼다.
그리고 현장의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다.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