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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댕댕이 목줄? 그걸로 뭘 하겠다고?”
재호는 그가 뭘 말하려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후후, 발상의 전환이지. 결국 자네의 불만은 다양한 무기를 모두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것 아닌가?”
“어… 뭔가 맞는 것 같으면서 묘하게 아닌 설명인데.”
재호의 의구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드렐리어는 말을 이었다.
“사실 너클이라는 무기 자체가 한계가 뚜렷하지. 게다가 이 녀석은 특히나 심해. 무투가들과의 싸움만 인정하는 편식을 보이니. 그렇다면 그 체질을 개선해 버리는 거네. 동시에 자네의 무기 효율 또한 극대화시키면서 말이야!”
그러면서 그는 사슬을 대충 너클에 감아 보았다.a
“자! 뭐가 보이는가?!”
“……아무것도.”
“쯧! 그렇다면 그대의 무기 하나를 내놓아보게!”
재호는 영문도 모른 채 모종삽을 내놓았다.
드렐리어는 역시나 모종삽을 쇠사슬에 대충 감고는 팽팽히 당겨 보았다.
“뭔가 떠오르지 않나?”
“……설마 그렇게 연결해서 휘두르라는 거 아니지?”
“이런 식으로 하나의 무기로 만들어 버리자는 게 요지야.”
“그게 의미가 있어?”
“물론! 나머지 무기 하나까지 양 너클에 각기 이어주면 결국 이건 어떻게 되나? 바로 하나의 무기가 되는 걸세! 세 개가 하나로!”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논리는 아니었다.
굳이 그걸 하나의 무기라고 우기면 말이야 되지만…….
“너무 억지 아냐?”
그런다고 대체 뭐가 달라지는가 싶었다.
“많은 것이 달라지지. 우선 무투가와의 결투만 가능하다는 그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완화할 수 있다네.”
“응? 그게 된다고?”
“당연하지 않은가? 날붙이가 달린 무기로 바뀌는 것인데?”
“…억지 맞잖아!”
재호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변경보다는 추가가 쉽다면서 아예 근본 자체를 바꾸는 작업을 하잖아! 그럴 거면 그냥 손에 끼고 무기를 들…… 어?”
이야기하다 보니 한 가지를 깨달은 재호.
“동시에 사용은… 안 되지…….”
그랬다.
서로 다른 무기는 중복해서 사용이 불가능했다.
헌데 하나의 무기가 된다는 뜻은 곧, 중복 사용이 된다는 소리!
“후후, 바로 그것이지. 이제야 제대로 이해했구먼.”
“…여전히 억지스럽긴 한다만……. 근데 목줄 연구는 다 된 거야? 그냥 막 써도 돼?”
“기본적인 성질 분석은 어느 정도 마쳤고, 지속적으로 연구를 위한 건 따로 빼 두면 되네.”
“그래?”
그렇다면 나쁠 것 없는 제안이다 싶었다.
“그런데 다른 두 무기의 속성이 서로 상극이어도 가능해?”
재호는 파이라의 화염창을 꺼내 보여주었다.
무기를 활성화하지 않았기에 형태는 주먹만 한 화염구 상태였고, 그걸 조심스레 받아든 드렐리어는 이번에도 한참 생각에 빠졌다.
“이건… 아주 마기가 넘실거리는군. 잘못 건드렸다간 정신이 오염되어 타락할 수도 있겠어.”
말칸트의 너클보다 몇 배나 위험한 물건.
“하지만 걱정 말게나. 더 이상 타락할 일도 없는 놈들이 저 위에 많으니.”
본래 다른 사람의 손에 절대 작업을 맡기지 않을 드워프들이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 * *
재호에게 속아 엠베이 숲으로 온 악마 패로우.
그래도 재후가 그의 짬밥을 인정해 준 덕분에 나름대로는 안락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따금 엘프들과 충돌을 일으킬 때가 있긴 해도, 다른 하급 악마들처럼 심하게 당하진 않았으니 뭐…….
투기장도 그가 직접 뛰어드는 경우는 잘 없었다.
그는 슈퍼스타 아레나 설정상, 최강자 컨셉이기 때문이었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아주 귀한 선물을 가져오면) 참가자와 합을 맞춰 주었다.
물론 그가 가진 상징성을 깨트릴 순 없었기에 패로우와 상대하는 이들은 무조건 패배 서약서 작성해야 했고.
그 외에는 다른 악마들을 훈련시키면서 빈둥거리는 일이 전부.
이날도 어김없이 빈둥거리고 있던 패로우는 갑자기 재호가 찾는다는 말에 대장간을 찾았다.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에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대장장이가 되라고?”
“아니, 그냥 잠시만 도와주면 돼.”
재호는 파이라의 화염창을 보여 주며 말했다.
“드렐리어가 이건 아무나 만지면 마기에 타락할 위험이 높다고 하네. 근데 악마인 넌 괜찮지 않겠어?”
“…….”
애초에 타락한 존재니까 타락할 위험이야 없긴 했다.
하지만 강대한 힘에 미치지 않으리란 보장은 전혀 없었다.
<파이라의 지옥불 화염장창>
다른 이도 아니고 대악마 파이라가 쓰던 무기였다.
그 안에 담긴 강대한 힘은 ‘이미 타락한 존재’에게 얼마나 달콤한 유혹일지…….
“그 유혹을 이겨낼 의지는 이쪽에서 심어 줄 수 있으니까.”
재호는 힐끗 뒤쪽에 선 엘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고맙군.”
패로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작된 드워프들과 패로우의 합작.
“어허! 그걸 그렇게 하면 어쩌자는 거냐!!”
“이 자식 눈깔 똑바로 안 떠?!!”
“창끝 겨누기만 해 봐!!! 아주 그냥 용암에다 던져 넣어 버릴 테니까!!!”
드워프들의 고성을 뒤로하고서 광산 쪽으로 나온 재호.
그곳에 자리를 잡곤 간만에 발광종유화를 손질했다.
따앙- 따앙-
광산인 만큼 주변에서 들려오는 곡괭이질 소리.
땅! 땅!
그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열중하는…….
따아아앙!!! 따아아앙!!!!
“?”
소리가 점점 더 강하고 가까워지는 느낌에 재호가 고개를 돌렸다.
흠칫-
곡괭이를 휘두르던 이들은 다름 아닌 투기장 건설에 참가했던 대장장이 플레이어들.
그들은 재호가 자신들을 발견했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 열심히 곡괭이질을 했다.
마치 자신들을 봐 달라는 듯한 그들의 행동에 재호는 난처해졌다.
‘왜 이러는 거지?’
투기장 건설을 도운 대장장이들이란 건 알았다.
그에 대해 감사 인사도 했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왜 자기 뒤에서 우르르 모여서 돌덩이들을 두드리고 있는 것인가?
“흠흠… 어, 어랏?! 알시아 님!! 여기서 뭘 하시는 건가요!”
재호가 영 시시한 반응을 보이자 결국 대장장이 한 명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보다시피 작업 중이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저, 저희도 ‘열심히’ 작업 중이었습니다!!! ‘대장일’의 기본은 역시 훌륭한 재료 아니겠습니까?!”
근데 왜 수십 명이 한곳에서 두드리고 있을까?
“거기 인간들! 뭐하는 거야!”
그때, 갑자기 나타난 고블린이 대장장이들에게 꽥 소리를 질렀다.
“으응? 채, 채광 작업 중인데…….”
“쯧! 요즘 누가 세련되지 못하게 곡괭이질이야! 비켜!”
그러더니 폭탄을 꺼내 척척 설치한 고블린.
콰앙-!
폭발과 함께 광물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
“……….”
더 이상 이곳에서 곡괭이질이 불가능해진 그들은 서로 힐끔힐끔 눈치를 살폈다.
재호는 과연 그들이 뭘 하나 가만히 지켜보았고.
털썩- 털썩-
“?!”
갑자기 무릎을 꿇기 시작한 대장장이들.
“부, 부탁드립니다!!”
“마, 망치질이 하고 싶어요……!!!”
다짜고짜 감정을 호소하기 시작하자 재호는 당황했다.
“갑자기 뭔 소리야! 하고 싶으면 하면 되잖아요.”
“하, 하지만… 알시아 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드워프들은 저흴 쳐다보지도 않는다고요!!”
“……아.”
그제야 재호는 모든 걸 이해했다.
이 사람들이 왜 굳이 투기장 건설까지 참여를 한 것인지도.
‘나한테 잘 보이려고 한 거였어?’
피스앤러브의 테러 이후로 인간에 대한 드워프들의 호감도가 떨어진 건 재호도 알고 있었다.
그게 대장장이들에겐 특히나 치명적인 패널티가 되어 버렸다는 건 이제 막 알아챘다.
“그러니까 나한테 좀 꽂아달라는 거네요?”
“네…….”
“피스앤러브 그 망할 놈들 때문에 저희 대장장이들은 너무 힘들어졌어요! 스킬 레벨을 올리려면 드워프랑 작업하는 게 제일 효과 좋은데…….”
참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갑자기 밥줄이 끊길 위기에 처했으니.
“이야기 정도는 한번 해 볼게요. 미리 말하지만 드워프들은 제가 말한다고 해서 무조건 듣고 하진 않아요.”
“헉! 가, 감사합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대장장이들이 반색하며 외쳤다.
부디 대장간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 * *
재호는 다시 대장간으로 향해 드워프들에게 바깥의 대장장이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흠, 그 녀석들은 우리도 알고 있었지. 이전부터 이 주변을 얼씬거렸으니.”
드렐리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우리들은 인간들은 제재로 들이지 않는다네. 물론 압도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말이야. 허나…….”
하지만 그 전에 드워프들이 생각하는 하나의 조건이 더 있었다.
“바로 근성이지.”
용광로 앞에서 온몸의 녹아내려도 물러서지 않는 근성!
“그 녀석들… 어쩌면 제법 괜찮은 근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대체 어느 지점에서?”
“자네 눈에 들겠다고 저 거대한 투기장 건물을 쌓아 올린 것부터가 보통 근성은 아니지 않겠나?”
“그런 류의 근성도 인정해 주는 거야?”
“물론이지.”
그리 말한 드렐리어는 통 큰 결정을 내렸다.
“좋아. 그렇다면 저들에게 기회를 주도록 하겠네. 저들의 실력을 보고 제법 쓸 만한 놈이 나온다면 제자로 받아들이도록 하지.”
“뭐, 그 부분은 알아서들 해.”
어차피 재호가 관여할 부분은 전혀 아니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제안만 해 줄 뿐.
‘뭐, 이 정도면 대장장이들도 만족하겠지.’
허나, 그건 재호의 착각이었다.
“……예?”
“그, 그게 무슨……?”
돌아온 재호에게 결과를 들은 대장장이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미 말했듯, 제가 드워프들을 강제할 순 없어요. 조금 아쉽긴 해도 기회는 한번 줘 보겠다니까 노력하면 제자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미친.”
무심결에 흘러나온 누군가의 혼잣말.
그리고.
“추, 충성충성!!”
“엉엉! 알시아 님 최고야!!!”
갑자기 재호에게 달려들더니 다리를 붙잡고 오열했다.
“뭐, 뭐야!! 왜이래?! 떨어져 이 인간들아!!!”
“알시아 님!!!”
덩달아 놀란 엘프들도 폭력을 휘두르며 그들을 쳐냈다.
대장장이들이 그런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대장장이 클래스가 얻을 수 있는 최고 영광!
그리고 성장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을 결과를 재호가 들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드렐리어의 말대로, 인간 대장장이들이 드워프의 제자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정말 극소수 중의 극소수.
냉정한 평가로 본다면 이들 중, 그 누구도 드워프의 제자가 될 정도의 실력을 가지진 않고 있었다.
그랬다면 락타디움에서 진즉에 성공했을 테니까.
그들이 바란 건, 그저 대장간 안으로 들어가 어깨 너머로라도 기술 동냥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리고 이 주변에 누구보다 먼저 대장간을 차리는 게 목표였다.
헌데 그걸 한참 넘어 제자가 될 기회를 얻었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감사합니다! 엉엉엉!!”
“엠베이 숲에 뼈를 묻겠습니다!!!”
“충성충성!!”
그들은 과격한 충성 맹세를 일방적으로 쏟아낸 뒤, 허겁지겁 대장간으로 달려갔다.
혹시나 그 잠깐 사이에 드워프들의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니까…….
* * *
재호의 무기들이 마개조가 완료되기 전엔 원정을 나가는 게 어려웠기에 다키스트를 찾아가는 것도 뒤로 미루어졌다.
“너 이씨! 진짜 꼭 와야 한다?!! 꼭! 와야 돼!”
한국을 떠나기 전, 몇 번이나 강조한 다키스트.
그리고 팀의 세 외국인들은 가족들과 재호, 메이, 완식의 배웅을 받으며 한국을 떠났다.
“후! 이제 좀 편하겠네!”
완식은 그리 말했지만, 재호는 할 일이 산더미였다.
일단 급선무는 이사!
재호를 쫓아낸 우람과 은혜.
최근 재호는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를 전세로 구했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으나, 이제는 충분히 가능할 정도로 돈을 벌었으니…….
게다가 조만간에 재호의 이름을 건 신형 캡슐도 발표 예정이었다.
“인생이 이렇게 극적으로 바뀔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재호의 말에 완식이 피식 웃었다.
“임마, 난 알았어. 네가 대박을 칠 거라고.”
“게임 시작할 때 네가 했던 잔소리들 기억 안 나?”
“흠흠…….”
완식인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하, 저도 마찬가지예요. 공부 힘들어서 가볍게 시작한 게임이었는데, 이젠 엄마 아빠가 영양제도 챙겨주면서 게임 시키거든요.”
“가볍게 시작하기에는 캡슐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아?”
“…….”
메이도 함께 침묵에 빠졌다.
“쯧. 재수 없는 놈.”
완식은 툴툴거리며 재호를 비난했다.
“아무튼 빨리 가자. 언제까지 여기서 사진 찍히고 있을래?”
완식은 주변에 쫙 깔린 기자들과 팬들을 보며 말했다.
우르르르-
공항을 빠져나가는 재호 일행을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원.
그렇게 썰물처럼 사라지고 남은 텅 빈 공항, 그곳에 낯익은 얼굴의 남자가 서 있었다.
시뻘게진 얼굴로 몸을 부르르 떠는 그는…….
“수민아, 릴랙스! 표정 관리!”
옆에 선 다른 남자가 그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한때, 한국 최고의 프로게이머라 불렸던 쉐이크 이수민의 초라한 입국이었다.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