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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게임을 하면서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드래곤!
갑작스러운 드래곤의 등장에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대체 불곰 길드는 어디서 드래곤을 구해왔단 말인가!
초유의 사태에 모두가 넋이 나간 사이, 가슴을 부풀리며 고개를 한껏 젖혔던 드래곤이 성벽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피이잉-
쿠과과과광-!!!!
시커먼 광선이 길게 선을 그리며 성벽을 때렸고, 순식간에 모든 걸 집어삼켜 버렸다.
구르르르-
한참 이어지는 후폭풍.
“크, 크하하하하!!! 이거 제대로인데?!!”
크로킹은 진짜 드래곤의 힘을 확인하곤 크게 웃었다.
“이거면 된다!”
그는 확신을 가졌다.
이거면 반드시 황재호를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룬가 왕국까지 집어삼킬 수 있을지도!
-그래서 내 보물은 어디에 있지?
‘으, 응?’
그때 크로킹을 향해 말을 걸어오는 드래곤 오기크.
-저곳에 내 보물을 훔쳐간 알시아라는 놈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어… 여기보다 좀 더 들어가야 하는데…….’
여긴 어디까지나 재호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
방금 오기크의 일격으로 시원하게 길이 뚫렸으니 전진만 하면 될 터였다.
게다가 더 이상 룬가 왕국도 자신들을 막지 않을 테고.
-뭣?
근데 오기크의 반응이 뭔가 이상했다.
-이 멍청한 놈!! 날 속인 것이냐!!! 분명 이 안에 알시아가 숨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 그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룬가 왕국의 타프카 숲에 숨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당장 눈앞의 성벽 너머에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방금 나는 아무 관련도 없는 놈들을 향해 브레스를 쏘았다는 거냐!
‘상관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덕분에 일은 훨씬 수월해지긴…….
-닥쳐라!!! 이 어리석은 놈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르고!! 크윽!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비틀거리기 시작한 오기크.
이러나저러나 오기크는 왕국의 수호신이었다.
수호의 존재라는 정체성은 가벼운 게 아니었다.
본디 수호 이외의 목적으로 힘을 쓸 수가 없는 것이 오기크.
그것이 이 세계와의 약속이자 규율이었다.
라셀 왕국의 수호신도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인 간섭이 불가했던 것이고.
허나 오기크는 예외 사항이 있었다.
그는 수호신이라기엔 탐욕이 많은데다 얍삽했다.
자신의 힘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대가로 이데란 왕실로부터 보물을 받아 왔던 그.
재물을 통해 세계의 약속을 뒤틀어 버렸고, 그것이 현재 공격의 원동력이었다.
받은 만큼 일한다!
자신이 받은 재물의 값만큼 공격이 가능한데, 방금의 일격으로 일부를 써 버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마법이 걸린 보물은?
당연하게도 그만큼 양이 줄어들었을 테고.
‘뭐, 뭡니까!!! 아까는 그런 이야기가 없지 않았습니까!!’
당황한 크로킹이 항의했으나 순순히 듣고 인정할 상대가 아니었다.
-네놈이 처음부터 똑바로 설명해야 할 것 아니냐!!! 그리고 머리가 달려 있으면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을 텐데? 이 몸과 같은 위대한 존재의 힘을 무제한으로 쓸 수 있을 줄 알았더냐!
‘큭… 그렇지만……!’
-닥쳐라! 대체 알시아란 놈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거짓말을 한 거라면 네놈은 후회하게 될 거다! 내가 성 밖으로 나와 있는 것만으로도 재물은 계속 소모되고 있으니.
‘헉? 아, 알겠습니다!’
크로킹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오기크가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한 것이었다.
‘X발! 타임어택이란 소리잖아!!’
순간 크로킹은 진지하게 의문이 들었다.
대체 황재호가 뭐기에, 플레이어 하나 잡겠다고 이 난리를 시작한 것인지.
그리고…….
‘보물상자는 알시아한테 없는데…….’
복수심에 눈이 멀어 덜컥 드래곤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결과가 어떻든 간에 패배하는 건 자신이 될 것 같은 느낌이 솔솔 들고 있었다.
* * *
레자르 라디부.
본래 이름은 ‘디자르 브레잘’.
라디부 가문의 시작이자 코페이 왕족이라고 그는 자신을 소개했다.
“브레잘의 동생이라고?”
-그렇다. 형님과 난 왕위를 놓고 대립했었으나… 결국은 형님이 코페이의 왕이 되었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광기에 물들어가기 시작한 형님은 결국 악마와도 손을 잡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난 가족들과 가신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도망쳐 와 정체를 숨기고 라디부 가문으로서 살아왔다.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다만 방금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라디부 백작이 브레잘과 같은 혈통인 건 맞았으나 직계 후손인 건 아니었다.
‘뭐, 그 정도는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와전이 될 수도 있지.’
하지만 그 전에 의문이 드는 점은…….
“어떻게 날 바로 알아본 거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상대는 재호에게 말을 걸어왔었다.
의심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틴라이트가 말했었다. 언젠가, 자신의 뒤를 이은 존재가 나타나 이 천과수의 봉인을 풀어줄 것이라고……. 그래서 잠들어 있던 정신이 깨어나자마자 그대가 새로운 정령화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틴라이트 이 인간은 대체 언제적 사람인 거지?’
대체 안 낀 곳이 없었다.
“왜 봉인되었던 거야?”
-부탁을 받았다. 이 천과수의 주인.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에 재호와 다키스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로 스노우 님에게.
쿠우우웅-!!!
“?!!!”
“뭐야?!”
레자르가 스노우를 언급한 것에 놀랄 새도 없이 들려온 폭음!
구르르-
지하 석실은 무너질 듯 마구 뒤흔들리며 아래에 있는 이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흠……. 엄청난 손님이 오셨군.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는 듯한 레자르 중얼거림.
잽싸게 뛰어 올라가 바깥의 상황을 확인하고 내려온 티나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외쳤다.
“아, 알시아 님!! 드래곤이에요, 드래곤!!! 드래곤이 나타났다고요!!”
“티나. 그걸 지금 말이라고…….”
-야! 황재호! 너 살아 있냐?!
-알시아 님!!! 거기 괜찮아요?!
-괜찮습니까? 저도 곧 그리로 가겠습니다!!
-야! 알시아! 지금 길드에서…….
그 순간, 갑작스럽게 재호에게 쏟아지는 귓속말들.
“음?”
타프카 숲은 키노가 펼쳐 놓은 광역 마법으로 인해 귓속말이 차단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귓속말이 된다는 건…….
-드래곤이 그쪽으로 갔대!
-불곰 길드에서 드래곤을……!
-…….
“……진짜?”
재호가 다시 묻자 티나는 잔뜩 신이 나 덩실거렸다.
“아니, 갑자기 무슨 드래곤이야!!”
다키스트는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흠… 드래곤이라……. 함부로 힘을 사용해선 안 될 지고의 생명체가 갑자기 왜 나선 것인가…….
반면, 여유롭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레자르는 재호를 향해 빙긋 웃었다.
-나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허나 지금 이대로라면 어렵겠군.
“무슨 약속?”
-그건 이 사태를 정리한 다음 천천히 이야기하도록 하지. 라디부 가문이 그대에게 힘을 보태어 주겠다.
스스스-
그 말과 함께, 주변에서 사방에서 그들을 포위하듯 ‘무엇’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 * *
크로킹의 예상대로, 룬가 왕국은 더 이상의 무의미한 희생은 원하지 않았기에 그들을 막아서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수도성에서 정예 기사단을 꾸려 출정을 준비 중이었으나, 불곰 길드에선 알 수가 없었다.
덕분에 타프카 숲까지 빠르게 도착한 불곰 길드.
그곳에서 또 한 번 난관을 마주했는데, 바로 문제의 어둠 장막이었다.
-흥. 감히 블랙드래곤 앞에서 흑마법을 자랑하는 것인가! <걷혀라>!
오기크의 용언이 터져 나오자 크게 출렁이는 숲의 어둠.
그리곤 다시 고요해졌다.
-……?
“?”
“??”
-크흠. 꽤 실력 좋은 놈이 만든 모양이군. 좋다. 조금 전은 내 전력의 10%! 이번엔 11%를 사용해 주마!
별로 궁금하지 않은 자세한 정보를 풀어 놓으며 다시 용언을 사용한 오기크.
푸화아악-!!!
퍼센트의 정확도는 알 길이 없으나, 확실히 전력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단번에 걷힌 장막!
-방금의 마법으로 지금까지 총 재물의 12%를 소진했다. 내 한도는 30%이니 그리 알고 있도록.
울컥!
에누리 없이 딱 제 몸값만큼만 일하려는 오기크의 태도에 크로킹은 울컥했다.
방금 전, 첫 공격에 실패한 건 엄연히 본인의 실책 아닌가?
어쨌든 어둠이 걷힌 숲으로 불곰 길드는 진입을 시작했다.
“공동묘지를 찾아라! 알시아는 그곳에 있을 것이다!!”
병사들에게 그리 외쳤으나 사실 오기크가 들으라고 한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하늘을 날고 있었으니까.
-저쪽이다.
다행히 오기크는 덤덤하게 방향을 알려주…….
-1%다.
‘X발.’
쿠우우웅-
먼저 도착해 공동묘지 앞에 내려앉은 오기크.
그 앞을 막아선 여섯 마리의 오우거들이 긴장한 채로 오기크를 노려봤다.
-감히 이 몸에게 하찮은 놈들이 이빨을 드러내는 것인가? 아니, 흑마법 때문에 본능이 먹힌 것인가…….
오기크는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조금 전, 이 일대에 펼쳐진 흑마법도 그렇고 이 오우거들 역시나, 자신조차 쉽게 풀 수 없는 뛰어난 흑마법이 걸려 있었다.
-인간의 실력이 아니로군.
이 흑마법의 주인은 결코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다.
-저놈들은 네 녀석들이 처리해라. 굳이 저 벌레들에게 내 힘을 쓰고 싶진 않군.
오기크는 막 도착한 크로킹에게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혹시나 또 멋대로 재물 원금을 까먹을까 걱정했던 크로킹은 내심 안도했다.
후웅-
“??”
헌데 지켜보는 게 아니라 갑자기 날아오른 오기크.
-난 잠시 주변을 살펴보고 오도록 하겠다.
푸화악!!
그 말을 남기곤 반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괜찮겠지.’
혹시 멋대로 힘을 써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어차피 여기까지 무사히 도착해 길을 뚫은 것만 해도 최소한의 역할은 다 해줬다고 할 수 있었다.
“좋아! 이젠 우리 차례다! 가서 처리해!”
크로킹의 명령에 앞으로 나선 하위 길드원들.
어차피 오우거 정도는 그들로도 충분히 처리가…….
“커헉!!”
“꺽!”
“으악!!!!”
정신없이 털렸다.
평범한 오우거라고 보기 어려운 엄청난 전투력!
“뭐, 뭐야? 왜 저래?!”
“기, 길마님!!! 이거 괴물이에요!!!”
그 한심한 작태에 크로킹은 얼굴을 부여잡았다.
왜 이렇게 믿음직스러운 녀석 하나가 없는지…….
결국 평균 레벨 300의 상위 길드원들이 앞으로 나서 오우거를 상대했다.
그어어어!!!
확실히 하위 길드원과는 다른 퍼포먼스를 보이는 그들.
어둠이라는 장애물이 사라지니 상대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기사단은 공동묘지 안쪽을 포위해! 알시아가 이 안에 있을 거다!!!”
크로킹의 명령에 신속히 움직이는 기사들.
“어? 폐하! 저쪽에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기사 하나가 크게 외쳤다.
그가 가리키는 곳은 공동묘지 한가운데의 건축물.
그 앞에는 매일 밤, 악몽에서 보았던 그 실루엣이 서 있었다.
“진입!!!”
그의 외침에 모든 병력이 공동묘지 안쪽으로 물밀듯이 밀고 들어왔다.
그 탓에 쑥대밭이 된 공동묘지.
그어어어!!!
그 광경에 오우거들은 얻어맞으면서도 비명을 질렀다.
“알시아!!!”
그 비명의 의미는 조금도 고민해 보지 않은 채, 무덤을 밝고 선 크로킹은 당당하게 소리쳤다.
“아, 네가 크로킹이야?”
마침내 만난 재호와 크로킹!
그리고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또시아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ㅋㅋㅋㅋ 기승전황재호네.
└간만에 불곰 길드가 대형사건 하나 물었나 했더니 결국 또 황재호였음ㅋㅋㅋㅋ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재호가 등장한 순간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불곰 길드가 드래곤까지 끌고 오면서 성대하게 오프닝을 치렀지만, 재호 한 명의 등장이 그 이상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바퀴벌레 같은 놈!! 지금까지 네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알아?!!!”
크로킹의 울화가 담긴 외침.
“내가 뭘. 난 가만있는데 항상 너희가 먼저 건드렸잖아.”
“…….”
팩트로 반격을 당하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다, 닥쳐! 어쨌든 넌 오늘 이 자리에서 뒤지는 거다! 알시아 네놈의 퍼스트킬은 우리 불곰 길드가 한다!!!”
“아, 미안한데 그건 안 돼. 내 퍼스트킬은 내가 했거든.”
“……?”
게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낙사했던 재호였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크로킹 입장에선 그저 속 긁는 소리일 뿐.
“빌어먹을 자식!!! 그럼 그냥 뒤져!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를 거다!!!”
재호가 불곰국에 직접 쳐들어왔을 때보다 한 명 한 명의 전투력은 좀 낮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때보다 머릿수가 몇 배나 되었다.
게다가 기사단까지 끌고 왔으니.
“알시아를 죽……!”
쿠드드득-!!!
콰득!!
그때, 갑자기 땅을 뚫고 나타나기 시작한 좀비와 스켈레톤들!
“헉?!”
그리고 재호가 서 있던 석실 입구에서 하나둘, 유령 기사들이 나타나 도열하기 시작했다.
재호가 지상으로 올라오기 전, 레자르는 말했다.
이 지하 석실은 천과수 봉인과 함께, 이곳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이 자신의 영혼을 남겨두었다고.
히히힝-!!!
소름끼치는 말 울음소리.
스으으-
그리곤 찬란한 황금빛을 뿜어내며 유령마를 탄 레자르가 재호 옆에 나란히 섰다.
-드래곤은 없군. 지금 최대한 적들의 머릿수를 줄여 놓는 게 좋겠다.
“좋아.”
재호는 이번에 새로 얻은 아이템들로 완전 무장을 한 뒤, 모종삽과 화염창을 양손에 들었다.
“가자!”
그어어어-
달그락- 달그락-
스아아아-
그 명령과 함께 유령, 언데드 군단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불곰 길드에 달려들었다.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