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253화 (253/641)

253

파이라의 애병인 화염창을 꺼내든 재호.

목표는 역시나 마계와 연결된 균열.

헌데 파이라의 정수를 사용한 상태에서 화염창을 들자 기존과는 다른 현상이 일어났다.

[<투창> 스킬이 <타오르는 화염 투창> 스킬로 바뀝니다.]

기존 투창 스킬이 저절로 변경된 것이었다.

콰르르-

거의 3미터에 달하는 창이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듯 화염을 거세게 뿜어댔다.

당장 자신을 내던지라는 의지가 느껴졌으니.

“후웁!”

크게 숨을 들이켠 재호는 한 팔에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을 힘껏 밀어냈다.

꾸웅-

재호의 동작은 느렸으나, 마치 로켓이 추진력을 얻는 것처럼 창 뒤쪽으론 불이 뿜어져 나왔다.

“큽!”

그 반발력은 온몸이 보이지 않는 거인의 손바닥에 짓눌리는 것 같았으니.

“크으으악!!”

그것을 이겨내며 재호가 창을 힘겹게 손에서 놓았다.

투쾅-!!

간신히 손을 떠난 창은 재호와 균열 사이의 공간을 찢으며 솟아올랐다.

번-쩍-!!

눈을 뒤덮는 섬광.

그 일격의 후폭풍은 한참 늦게 밀려오기 시작했다.

쿠드드득-

“윽?! 뭐야!”

“서로를 붙잡아요!”

하늘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흡인력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지상의 모두가 서로를 부여잡고 버텼다.

쿠르릉- 콰광!

강한 빛에 눈은 뜰 수 없으나, 귀를 찢는 폭음은 계속해서 들렸다.

‘통했나?!’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 재호 역시 마찬가지.

자신의 손으로 내던진 창이었으나, 그것에 어느 정도의 힘이 실린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대악마의 힘으로 이루어진 ‘균열 폐쇄’의 의지가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랄뿐.

그리고 그 바람은…….

[마계와 이어진 균열이 닫히기 시작합니다.]

* * *

대륙 바깥, 서쪽 바다의 외딴 섬에서 사투를 벌이는 그 시각.

엘리시아 화원에선 은밀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대부분의 전투 엘프들이 리젤란 숲으로 떠난 그때.

강제노역소의 VIP인 트리플체인과 피스앤러브는 모종의 거래를 제안 받았고, 그 거래에 대한 준비를 마친 참이었다.

-모든 준비는 끝냈다.

노역소의 리더를 맡은 닉네임 하우스, 김동준.

그는 이 모든 작전을 계획하고 제안한 존재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상대의 닉네임은 쉐이크.

바로 이수민!

먼 곳에서 엘리시아 화원을 지켜보던 수민은 옆에 선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 우리 ‘꽃매미단’의 첫 활동이군.”

꽃매미단.

오직 황재호를 견제하기 위해서 힘을 합친, 반 엘리시아 화원 조직.

그리고 수민과 대화를 나눈 이는 다름 아닌 크로킹이었다.

라셀 왕국에 잡혀 온갖 고초를 겪은 그에게 남은 거라곤 지독한 복수심뿐.

빠드득-

[1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를 얼마나 세게 갈았으면 피해를 입을 정도.

“오늘 알시아 그 자식에게 쌓인 모든 한을 풀겠다.”

“좋은 자세야.”

그리 말한 수민은 붉은 바탕에 검은 반점들이 찍힌 가면을 꺼내 썼다.

스으으-

동시에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한 또 다른 가면인들.

“가자! 가서 몽땅 태우고 죽여라! 어차피 우린 잃을 게 없으니. 알시아가 쌓아 올린 모든 걸 파괴하는 거다!”

뒤가 없기에 할 수 있는 전략.

한마디로 자폭 공격.

“가자!!”

“꽃을 태우자!!”

기세 좋게 달려 나가는 그들에 맞춰 엘리시아 화원 쪽에서도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화원 내부에 타격을 주려는 꽃매미단의 발악.

하지만…….

“다들 미안하지만 거기서 멈춰줘야겠구나.”

요염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 모두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었다.

“누구냐?!”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했다.

“후후, 이 늦은 시간에 가면을 쓰고 움직이는 걸 보면 결코 좋은 의도는 아니겠구나. 뭐, 애초에 다 듣긴 했지만.”

“?!”

다 들었다?

“공격해! 어차피 우린 죽음이 두렵지 않……!!”

수민과 크로킹이 앞장서서 반격하려 했으나, 곧 움직임이 우뚝 멈추어 버렸다.

[<매혹>에 빠집니다.]

[무기력 상태가 되었습니다.]

[저항이 불가능합니다.]

“뭐, 뭐야?!”

“무슨 디버프가……!”

저항 불가의 강력한 디버프.

그 말은 상대가 엄청난 괴물이란 뜻이었다.

“슬슬 때가 된 것 같아 와 보았거늘, 이런 벌레들이 꼬여 있었구나. 정령화장도 참 피곤한 삶이로다.”

그렇게 말한 상대는 쓰고 있던 후드를 뒤로 넘겼다.

사라락-

“어…….”

“어디서 본 것 같은…….”

왠지 모르게 낯이 익은 얼굴.

방송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은 것이…….

“어어? 저 여자! 드래곤 레이드 때 그……!!”

바로 독사과 흑마법사단의 수장 키노가 엘리시아 화원을 찾아왔다.

* * *

리젤란 숲의 전투는 종료되었다.

섬에는 아직 많은 악마들이 남아 있었으나, 리젤란 숲을 되찾은 이상 잔당을 소탕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숲을 되돌리는 것엔… 오랜 시간이 걸리겠군요.”

엘다는 씁쓸한 표정으로 신목이었던 나무의 부서진 면을 쓰다듬었다.

전투에 승리했음에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엘프들의 마음.

어떻게 해도 기억 속 그대로의 리젤란 숲으로 돌아가는 건 어려울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재호는 상념에 빠진 엘프들에게 입을 열었다.

“이제 필요한 건 모든 걸 바로잡는 노력 아닙니까? 적어도 더 이상 피를 흘릴 필요는 없으니, 우리는 지금까지 해 온 그대로 하면 됩니다.”

그런 어설픈 격려로 해결될 상황은 아니었지만.

“알시아 님…….”

재호를 향한 엘프들의 마음은 사이비 교주를 향한 신도들의 마음과 다를 바 없었다.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저희를 끌고 와 주셨는데, 이렇게 슬픈 표정을 지을 순 없죠!”

“맞는 말이에요! 우리가 새로운 리젤란 숲을 만들면 되는 일이에요!”

재호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180도 달라지는 엘프들의 감정.

그 기괴한 현상에 동료들은 혀를 내둘렀다.

“진짜 사이비가 따로 없어.”

“참… 익숙해질 법도 한데 전혀 안 그렇단 말이야.”

툴툴거리면서도 그들의 눈엔 부러움이 가득했으니.

주변의 이런저런 반응은 무시한 채, 기운 차린 엘프들을 두고 빠져나온 재호가 스피단을 찾았다.

“이제 가야지?”

“…….”

천계로.

하지만 아까 전까지만 해도 없던 새로운 문제가 있었다.

“저기… 알시아 님. 그런데… 제 눈에 알시아 님이 왜 이렇게 악마처럼 보이는 걸까요?”

바로 파이라의 정수를 사용한 후유증이 남은 것이었다.

악명은 15,220을 넘었고, 종족은 반인반마가 되어 버린 재호.

그런 재호를 천계로 데리고 간다?

스피단은 재호가 들어서자마자 대천사들의 창에 구멍이 송송 뚫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에이, 설마.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도 봤잖아?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었어. 설마 대의를 인정 못 해 줄 정도로 천사들이 융통성 없는 건 아니겠지?”

“…….”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아무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천계로 안내나 해 줘.”

“약속입니다? 천계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저는 무슨 일이 생겨도 알시아 님을 도울 수 없다는 거 명심하셔야 합니다!”

“아, 알았으니까.”

“정말, 정말로!”

“알았다고!”

몇 번이나 확답을 들은 끝에 스피단은 신목이 있던 자리로 향했다.

우르르-

“?”

갑자기 재호 뒤에 줄지어 서는 플레이어들과 엘프들.

“어… 뭡니까?”

스피단은 물었고.

“응? 너희도 가려고?”

재호도 물었다.

“헤헤, 천계 간다며? 당연히 가야지!”

플레이어들의 입장은 그러했고.

“저 천사가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혹시나 천사들이 알시아 님을 공격한다면 저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엘프들의 입장은 그랬다.

“아… 이거… 이러시면 안 되는데…….”

난처한 건 스피단 한 명뿐이었다.

“인원을 좀 줄이면 안 되겠습니까? 너무 많습니다.”

“흠. 하긴 내가 봐도 심하긴 하네. 그러면…….”

초롱초롱-

애절한 시선들이 재호에게 향했다.

하지만 붉게 변한 재호의 공포스런 시선에 대부분 금방 고개를 숙여 버렸다.

“지금 나 똑바로 보고 있는 사람들만 데리고 갈게.”

“?!”

그렇게 결정 내리니 재호의 원래 동료들만이 선택되었다.

물론 엘프들은 싹 다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으나, 그들 모두를 데려갈 순 없었으니.

티나를 비롯한 몇 명만 추렸다.

“알시아 님! 제발 저도 데려가 주세요!!”

“다시는 뒤통수 안 칠게요!”

“방금 말한 애 잡아서 뭘 뒤통수쳤는지 확인해 봐.”

“헉?”

말실수를 깨달은 몇몇이 도망치려 했으나, 필요할 때만 귀 밝은 엘프들이 먼저 나섰다.

“으아아악……!”

멀어지는 비명소리에 스피단은 고개를 저었다.

“하아…….”

긴 한숨과 함께 그는 두 손을 모았고.

우우우웅-

여러 차원이 겹쳐져 있는 이곳.

그곳에서 스피단의 신성력이 천상의 경계와 반응을 시작했다.

사아아아-

어디서 시작된 건지 모를 하늘의 빛을 모두가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아아-

또한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도 흘러나왔으니.

확실히 천계로 가는 길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그리고…….”

스피단은 또다시 주의사항을 말했고, 거기까지 들은 재호와 일행이 빛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느낌이 잠깐 들더니 금방 두 발이 지면에 닿았다.

화아앗-

그리고 드러난 찬란한 빛의 세상.

[인간 최초로 천계를 방문하였습니다!]

[명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이미 악명 수치가 너무 높아서 의미가 없군.’

씁쓸한 속마음.

[<천계를 방문한>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천사 및 교단과의 호감도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당신에겐 악마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악명 수치가 너무 높습니다.]

[천사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스피단이 이미 경고했던 부분이었다.

사악-

그때,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천사가 한 명.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재호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결국 왔군. 정령화장이여.”

그는 재호를 알아보았다.

“난 천계의 가장 깊은 감옥, 천심옥의 간수장 방글라우스. 내키지는 않으나… 그대와 천계의 약조를 위해 안내를 해 주겠소.”

“스노우를 만나는 게 맞겠지?”

“……그렇소. 단, 그 죄인을 만나는 걸 허락된 이는 오직 그대 한 명. 다른 이들은 이 근처를 벗어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들었지?”

“응!”

“넵!”

동료들의 대답을 들은 뒤, 재호는 방글라우스를 따라 자리를 벗어났다.

* * *

온통 빛으로 충만한 세상과 달리, 천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천심옥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게다가 온몸을 찌르는 한기까지.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은 땅 아래로 뚫린 시커먼 구멍 앞이었다.

<눈먼 자의 안구> 덕분에 어둠 너머를 볼 수 있음에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구멍.

“……그대는 왜 천계의 중죄인을 만나려는 것이오?”

그때, 방글라우스가 불쑥 물었다.

“굳이 그쪽에게 말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흥. 맞는 말이오. 하지만 이곳을 지키는 수장으로서 하나 경고하겠소.”

그는 은근슬쩍 자신의 기세를 흘리며 말했다.

“본디 천계의 대천사들께서 하신 약속이 아니었다면, 그대는 진작 온몸이 갈기갈기 찢겼을 것이오. 그러니 이곳에서 괜한 짓을 꾸미다 서로 곤란해지는 일은 없도록 하시오.”

“물론이지.”

“…….”

거리낌 없이 답하는 재호를 영 못 믿겠단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

“뭐… 어차피 저곳에서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그렇게 말한 방글라우스는 정체불명의 검은 구멍을 가리켰다.

“이곳이 바로 천심옥. 저 아래에 스노우가 투옥되어 있소.”

“……뛰어내리라고?”

“그렇소.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오. 이곳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공간을 압축시켜 만든 독립 차원. 그대가 발을 내딛는 순간 스노우 앞에 도착할 것이오. 하지만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지.”

“…….”

“나올 땐 내가 그대를 꺼내줄 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시오.”

[상대는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안대로 확인이 가능했다.

‘네임드 이상은 아니군.’

중요한 정보를 얻은 재호는 구멍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후우욱-!

갑자기 반전되는 세상.

그리고 방금까지 있던 시커먼 풍경은 사라지고 빛이 차올랐다.

“?”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의외였다.

천과수 하나가 심어져 있었고, 그 아래의 벤치에 아름다운 여성이 앉아 있었으니.

“드디어 왔구나.”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녀가 말했다.

“틴라이트의 후계자이자 새로운 정령화장이여.”

천계의 용서 받지 못할 죄인 스노우가 재호를 향해 미소 지었다.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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