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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256화 (외전) (256/641)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 [외전]

256

[베어고릴즈가 꼽은 뉴월드를 시작한다면 꼭 가 보아야 할 명소BEST 10]에서 1위로 선정된 장소.

일부에선 베어고릴즈의 개인적인 친분 탓에 1위가 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직접 와 본 이들은 모두가 인정했다.

황홀하고 아름다운 장소.

사막 한가운데 핀 한 송이의 거대한 꽃.

바로 엘리시아 화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만 이 화려한 아름다움의 내부를 살펴보면 들어서면 조금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었다.

방문자들은 아름다운 기억만을 남기기 위해 애써 외면해 버리는 것들이…….

엘프들의 지독한 종차별.

도심에는 광신자 같은 전럭협들의 무분별한 전도 행위.

반라의 근육질 사내들의 쇠질하는 모습 등등…….

꽃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지만 꽃과 관련 없는 것들이 태반인 곳.

하지만 역시 가장 유명하고 이상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이 미친 도시를 만들어 낸 장본인, 알시아.

황재호!

여전히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은 꽃집 사장이었으니.

하지만 태풍의 눈답게, 재호는 최근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만을 보내고 있었다.

꽃집은 승승장구 중이었고 요즘은 외부에서 시비를 걸어오는 이들도 별로 없었으니까.

정확히는 즉결심판원 소속 전럭협과 엘프 합동 순찰대에 의해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이 조기 진압된 덕분이었지만.

그리고 페르마 사막 어딘가에 숨겨진 키노의 독사과 흑마법사단의 새로운 은거지.

그곳엔 엘리시아 화원 입장에서 가장 위험한 자들이 여전히 잡혀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바로 불곰 길드 잔당과 피스앤러브, 트리플체인, 그리고 이수민으로 이루어진 꽃매미단!

재호를 향한 복수심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그들은 하루하루 엘리시아 화원이 불타는 모습을 상상하며 견디고 있었다.

“엘프만 아니었으면…….”

“알시아가 한국인만 아니었으면…….”

“게임단에서 마주치지만 않았더라면…….”

각종 정신승리와 함께.

하지만 뉴월드 전체를 기준으로 본다면 마왕 토벌전 이후, 약간의 침체기가 찾아온 상황이었다.

어지간한 대형 사건의 중심에 재호가 있었고, 늘 충격적이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였던 사람이 꽃집 운영에만 집중하기 시작했으니 세상이 조용해진 것이었다.

-아, 황재호 미친 거 아니냐? 리얼로 꽃집만 한다고?

└그걸 믿냐? 백퍼 뒤에서 뭔 꿍꿍이 꾸미고 있겠지.

└나도 동의. 꽃집은 연막이고 아마 몰래 뭔가 준비하고 있을 거임.

└근데 요즘 후카 방송이나 메이 방송 봐도 딱히 특별할 건 없던데? 만날 꽃집에만 있어.

└그러니까 방심시키는 거라고 멍청아!

어쨌든 그 정도로 사람들은 재호에게 기대를 하고 있었다.

불닭 수준의 치명적인 매콤함에 익숙해진 이들이 스위트칠리에 만족할 리 없었으니까.

사람들은 이 침체기가 월드와이드 입장에서도 큰 고민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또 다른 시작을 향해 나아가는 한 플레이어에게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위대한 모험가 <베어고릴즈>가 바다 건너 미지의 대륙 <위스트넌>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글로벌 알림에 플레이어들은 불타올랐다.

그리고 기대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대륙에서 이번엔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 * *

헬스장에서 막 워밍업을 끝낸 재호.

이제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 살지만 여전히 우람의 헬스장을 다니는 중이었다.

홍보 차원에서도 그것이 좋다고 생각했기에 내린 결정.

“넌 안 갈 거냐?”

그때 근처에서 쇠질 중이던 완식이 재호에게 물었다.

“후우- 가긴 어딜 가. 이제 워밍업 끝났는데.”

러닝머신에서 내려선 재호가 대답했다.

“아니, 위스트넌.”

“아… 신대륙?”

베어고릴즈가 공표하기 전, 누구보다 먼저 소식을 들었던 재호.

애초에 전직 퀘스트를 통해 조금 더 빨리 다른 대륙의 존재를 알게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위스트넌 대륙 원정에 나설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뭐, 고민이 되긴 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굳이 갈 필요가 있겠나 싶더라고.”

“응?”

“지금 이대로도 난 충분하니까.”

사방이 꽃밭이고 역겨운 땀 냄새 대신 향기만 가득한 지금인데, 굳이 바다 짠내 맡으며 모험을 떠날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인가?

“어차피 고잉헬 호 타면 비린내 안 나잖아.”

완식이 말도 안 되는 핑계라는 듯 대꾸했다.

“그리고 네 입장에서도 안 갈 이유도 없고. 클래스 승급이 걸려 있는데.”

정령화신(精靈花神)

대륙 전체에 천과수 100개를 심는 것으로 승급이 예정되었으나 위스트넌 대륙의 발견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다.

이 욕심 많은 천사놈들은 지금의 대륙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위스트넌까지 욕심을 냈던 것이다.

‘천사들이 타 대륙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몰랐는지도 확인이 안 되긴 했다만.’

어쨌든 재호는 더 이상 타 대륙에 대한 호기심은 남아 있지 않았다.

“왜?”

“뻔하지. 저기서 목표 달성하면 또 다른 대륙이 나타나고. 그거 달성하면 또 다른 대륙. 뉴월드 내에 몇 개 대륙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시작하면 코 꿰기 딱 좋아.”

재호의 냉정한 판단에 완식이 놀랐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너 언제부터 그렇게 계산적으로 움직였던 거냐?”

“언제나 그랬는데?”

“지금까지 해 온 걸 돌이켜 봐. 어디 하나 생각하고 한 짓들이 있는지.”

“…….”

“그리고 사실 이제 기존 대륙 쪽 꽃집 체인은 자리를 잡았잖아? 메이도 너만큼은 아니어도 꽃집 마스터라고 해도 될 수준이고.”

“그야 그렇지.”

완식의 말대로 메이는 이제 단순히 ‘조수’라고 할 수준이 아니었다.

한 명의 어엿한 플로리스트!

재호가 없어도 능히 꽃템 주문 제작이 가능한 실력이었고, 재호 다음으로 엘프나 신목과의 친목을 다진 인물이었다.

“그리고 생각해 봐라. 헬스도 마찬가지야.”

완식은 옆에 놓아두었던 10kg 아령을 들어 올렸다.

“매일 10kg을 들어 올리다가 좀 힘들다고 8kg을 들면 어떻게 되겠냐? 금세 몸은 8kg에 만족해 버리고 10kg까지 들어 올렸던 기억은 잊어버린다고.”

“너무 비약 아니냐?”

“아니, 말이 그렇단 거지. 꽃집을 하겠다고 게임을 시작한 네 열정을 떠올려 봐. 그리고 지금도 그때만큼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혹시 10kg이었던 열정이 8kg가 되진 않았는지 말이야.”

“?!”

“그리고 머지않아 7kg, 5kg, 계속 떨어질 거다. 그때도 여전히 네가 꽃을 사랑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겠냐?”

“…….”

“계속 새로운 자극을 줘야 한다는 뜻이야. 다른 대륙에는 또 다른 꽃들이 있겠지. 그렇게 열정 리필을 해 주지 않으면 넌 언젠가 식어 버리고 말 거다.”

폭풍처럼 쏟아 낸 완식이 크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너…….”

묵묵히 듣고 있던 재호의 입이 천천히 움직였다.

“가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났구나.”

“……티 났냐?”

“완전.”

완식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본 재호.

현재 사람들은 앞다투어 위스트넌 대륙을 향해 배를 띄우고 있었다.

하지만 전문 모험가인 베어고릴즈도 고생 고생하다 난파 직전에야 운 좋게 도달한 곳이 위스트넌 대륙.

항해 기술도 없는 플레이어들이 쉽게 갈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나온 대안은 미드스트 제국이나 크루마 왕국과 같은 거대 국가의 원정대에 합류하는 것.

단, 그 어디도 원정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원래 바다 쪽으론 시선을 잘 두지도 않았던 대륙이라 제대로 된 배나 항해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탓이었다.

“결국 현 상황에서 가장 먼저 위스트넌 대륙에 도달할 사람을 꼽으라면 네가 무조건 1순위야!”

“무슨 근거로?”

“일단 넌 절대 파괴되지 않는 배가 있지. 그것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가잖아.”

고잉헬 호의 최고 장점은 바로 사기적인 내구성.

꽃으로 치장을 해 놓았다지만 본판이 어디까지나 저주받은 배.

그 저주 중 하나가 바로 뛰어난 자가수복력이었으니까.

장거리 항해에 있어 최적의 옵션!

“게다가 심악이도 있잖아. 그 자식 생긴 건 비호감이지만 바다에서만큼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더라.”

심해 악어 역시 바다에서만큼은 강력한 전력으로 꼽혔다.

게다가 혹시나 고잉헬 호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심악이라면 직접 배를 끌어줄 수도 있을 테고.

“그러니까 가자! 가자아! 가자고!! 가자가자가자…….”

“으…….”

무턱대고 애처럼 졸라 대는 완식을 보고 있으니 절로 일어나는 혐오감.

“이, 일단 기다려 봐. 사실 나도 계속 고민 중이긴 했으니까.”

“뭐?! 진짜?!!”

그럴 리가 있나.

함완식의 불쾌한 애교를 보기 싫어서 대충 둘러댄 것이었다.

“그럼 가는 걸로 알고 있는다?!”

“고민 중이라고 했잖아.”

“아잉- 가…….”

휙-

꼴 보기 싫은 표정이 또 나오려 하자 고개를 돌려 버린 재호.

“재호야!”

그때, 막 헬스장을 나온 광호가 재호를 불렀다.

“아, 광호 형.”

재호의 낙하산으로 전럭협에 들어간 그는 어느새 12사도 중 한 명의 자리까지 차지할 정도로 거물이 되었다.

물론 재호는 그런 조직 계보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무슨 일이에요? 전럭협이 또 이상한 짓 한대요?”

“으응? 무, 무슨 소리야?”

“아, 아니에요?”

“다, 당연히 아니지!”

왠지 수상쩍은 반응.

“크흠, 그거 때문이 아니라… 사실 너한테 이런 걸 묻는 것도 이상한데, 혹시 요즘 관장님한테 무슨 일 있어?”

“예?”

난데없이 그게 무슨 소리?

“아니, 요즘 헬스장에 머무는 시간도 좀 짧아지셨고 표정도 어딘가 모르게 어두우시더라고.”

“아… 그러고 보니…….”

확실히 최근 아버지는 어딘가 이상하긴 했었다.

원래 하루 10시간을 헬스장에 머물렀다면 요즘은 9시간 정도.

표정은…….

‘그냥 평소에도 감정 기복이 심한 분이라 별로 신경 안 썼었는데……. 아니지. 그렇게 가볍게 넘어갈 게 아니지.’

재호는 스스로를 반성했다.

헬스장 회원의 입에서 저런 이야기를 들을 동안 자신은 아버지에게 너무 무관심했음을.

* * *

간만에 함께 저녁도 먹을 겸 부모님 집을 찾은 재호.

“어… 재, 재호 네가 여긴 왜…….”

재호가 들어서자 눈에 띌 정도로 당황하는 우람.

“그냥 저녁이나 얻어먹을 겸 왔죠. 왜요?”

식은땀도 삐질삐질 흘리는 우람의 모습.

확실히 어딘가 이상했다.

저런 모습은 어머니 은혜에게 거짓말을 하다 걸렸을 때나 보이는 모습.

“설마…….”

재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 설마라니! 뭐가 말이냐?!”

“아버지 혹시… 무슨 큰 병이라도 걸린…….”

“푸훕-”

그때, 소파에 앉아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은혜가 웃음을 터뜨렸다.

“??”

그녀의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재호.

“엄마?”

“푸후후- 아이고, 참나- 그게 뭐 창피하다고 그러실까?”

“창피해?”

다시 우람을 향해 시선을 옮기는 순간, 재호는 뒤편의 부엌에 눈길이 머물렀다.

방금 요리를 하다 만 듯, 어수선한 풍경.

‘하지만 엄마는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던 것 같고…….’

그 말은 즉…….

“헉?!”

큰 충격을 받은 재호의 얼굴이 우람과 비슷하게 변했다.

창백해지고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까지.

“아, 아버지? 설마 요리를…….”

“이, 이 자식아!! 왜 연락을 안 하고 와서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거야!!”

“아니, 아들이잖아요! 올 수도 있지! 그리고 오히려 충격을 받은 건 나라고요! 아버지! 대체 이게……!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역시 죽을병에…….”

“이놈의 자식이!!”

“푸하하핫!!!”

재호와 우람은 똑같은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봤고 은혜는 정말로 죽겠다는 듯 숨을 헐떡이며 웃어 댔다.

* * *

한바탕 폭풍이 자니가고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후에 재호는 은혜에게 대충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원래 요리를 잘… 했다고요……?”

“잘하기만 했을까? 얼마나 좋아하는데? 저 양반이 너한테 절대 그런 모습 안 보여줄 거라고 얼마나 난리를 쳤었는데.”

“…….”

우람을 바라보는 재호의 눈이 차가웠다.

“그러면서 저한테는 싸움질시키려고…….”

“크, 크흠! 싸움질이라니! 격투기야 격투기!”

그러면서 식탁 가운데에 꽁치 찌개를 내려놓는 우람.

은혜의 말대로 비주얼부터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먹어 보렴. 아마 깜짝 놀랄걸?”

은혜의 말에 조심스레 한 숟가락 떠먹어 본 재호.

호로록-

“으음?!!”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진 재호가 우람과 은혜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 이 맛은…….”

이따금 먹었던 꽁치 찌개와 흡사한 맛!

그렇다는 건 지금까지 자신이 엄마손 표 꽁치 찌개라고 생각했던 게 실은…….

“맛있지?”

“마… 맛있네요…….”

뇌에서 일어나는 인지부조화.

맛은 있는데 이 요리의 주인을 바라보니 도저히 맛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네가 독립해서 나가곤 더 이상 눈치 볼 필요 없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니? 참나, 이렇게 들통이 날 걸 왜 20년 넘게 숨기고 살았나 몰라.”

“크흠! 재호는 나와 같은 길을 가지 않길 바랐던 것뿐이야!”

“대체 그 길이 무슨 길인데요?”

“시꺼!”

듣기에 따라 굉장히 이상하게 들릴 소리였지만 재호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는 아버지를 여러모로 닮은 것 같네…….’

얼굴뿐 아니라 평화롭고(?) 은밀한(?) 취미까지.

하지만 충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띵동-

갑자기 울리는 초인종.

“올 사람 있어요?”

재호가 잠시 수저를 내려놓고 일어나며 물었다.

“아니?”

은혜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요? 그럼 택배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쿨럭!!! 쿨… 켁! 자… ㅁ 케헥!!”

우람이 요란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네?”

“자, 잠깐!!!! 멈춰!!!”

“뭔 소리예요?”

우람을 무시한 채 인터폰 화면을 들여다본 재호.

“어?”

일성 전자 모자를 쓴 사람이 환히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일성 전자 캡슐 설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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