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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322화 (322/641)

322화

오랜만에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노동자로 참가한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잠시 소란이 일어났다.

“알시아가 갑자기 왜 나타났지?”

“그런 거 궁금해 할 시간에 정신 바짝 차려! 알시아가 나타났다는 건 이곳에 뭔가 일이 터진다는 거니까!”

“와! 나 알시아 처음 봐! 같이 사진 찍어 달라면 찍어 줄까?”

뜨거운 관심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재호는 패로우와 문제의 장소로 향했다.

“알시아 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마침 근처에서 공사 계획을 검토 중이던 지안트가 재호를 반겼다.

“소식 들었습니다. 의문의 동굴이 발견됐다고.”

“아… 하하……. 요즘 무척 바쁘신 것 같아 괜히 신경 쓰시지 않도록 하려고 했는데 결국 말이 새 나간 모양이군요.”

지안트는 일부러 숨기려고 한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어필했다.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현장에 대해선 전적으로 지안트 씨에게 맡겨 놓았었으니까요.”

몰랐으면 그냥 모르고 지나갔을 일.

하지만 알게 된 이상, 돈이 늘 모자라는 거지 엘리시아 화원을 위해서라도 살펴보아야 했다.

모래 아래 묻힌 고대의 보물 왕국의 영토, 그 어디서 잭팟이 터질지 모르니까.

“안을 좀 살펴봤으면 하는데 괜찮아요?”

“물론입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죠. 이쪽입니다.”

지안트를 따라 운하 바닥까지 내려온 재호.

그리고 임시로 막아 놓은 구멍 앞에 섰다.

“이 너머입니다. 모래층 아래 단단한 암반층이라 무너질 걱정은 없지만, 이곳과 이어진 공동 쪽이 우려스럽습니다. 물이 그쪽으로 유입될 경우, 침식이 일어나 일대의 지반 전체가 약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내부에 다른 특별한 건 보이지 않던가요? 도시라든가.”

“예? 도시요?”

지안트는 재호가 한 질문의 의도를 금방 파악했다.

그 역시 코페이 왕국과 황금 장원의 출처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

“아뇨. 여긴 그냥 사방이 막힌 공동과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 공간 자체는 상당히 규모가 크긴 하지만 고대 문명의 흔적은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물론 히든 던전도 없었고요.”

재호는 아쉬운 이야기에 김이 조금 샜다.

우드득-

그래도 혹시 또 모를 일.

판자를 뜯어내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티나, 패로우, 지안트가 차례로 뒤따랐다.

“좀 어둡네. 패로우, 그 녀석 좀 빌려줘.”

살아 있는 등불 헬트리버.

녀석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불꽃이 가장 앞에서 어둠을 몰아내 주었다.

“흠… 뭔가 느낌이 이상하군.”

패로우는 얼굴을 살짝 찡그린 채 말했다.

“어떤 점이?”

“…아닙니다. 제가 착각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야! 괜히 이상한 말로 여지 남기지 말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악마 패로우가 저런 말을 하니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사실 뭐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느낌적인 느낌이라…….”

하지만 패로우의 입에서 나온 건 김이 팍 새는 소리였다.

간단히 말해 그냥 불안하다는 것.

“아, 그럼 왜 괜히 그런 이야기를 해서 찝찝하게 만들어.”

“아니… 그냥 제 혼잣말일 뿐이었는데 폐하께서 들으신 것 아닙니까?”

도리어 억울해하며 패로우는 거세게 항의했다.

“흠흠, 딱히 인위적인 느낌은 안 드는 것 같은데…….”

괜한 헛기침과 함께 재호는 다시 지안트에게 말을 걸었다.

“맞습니다. 조사 결과 자연 동굴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자 폭과 높이가 점점 더 높아지더니 곧 커다란 공동이 나타났다.

역시나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 물씬 나는 동굴이었다.

“드워프들 말론 매장 광물도 전혀 발견되지 않아 개발 가치가 전혀 없다고 합니다. 안쪽으로 더 살펴보기엔 주변 지반이나 공사 현장에 충격을 줄 수도 있어 폭약을 쓸 수도 없고.”

지안트는 동굴에 대해 설명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래서 지금 나온 가장 유력한 방안은 이곳을 흙으로 완전히 메워 버리는 겁니다. 앞으로 이런 장소가 몇 개나 발견될지 모르는데, 그때마다 운하를 우회할 순 없으니 말입니다.”

재호도 지안트의 말대로 하는 게 최선으로 느껴졌다.

이미 최적화 경로로 공사 계획을 잡아 놓았는데, 괜히 비틀면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 부담이었다.

‘잭팟을 기대했건만…….’

하지만 재호는 바로 돌아서지 않고 계속 주변을 살폈다.

지안트나 드워프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칭호로 운 좋게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금고 털이범]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상황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칭호.

사실 이걸로 제대로 된 보물을 찾아낸 적은 극히 드물긴 했지만…….

하지만 일말의 기대는 결국 와르르 무너졌다.

“진짜 아무것도 없네.”

완전 텅텅 빈 공간이었다.

이만한 공동이 있는 게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쯧, 돌아가죠.”

결국 아쉬움을 접고 재호가 돌아섰다.

“응?”

헌데 패로우가 이상했다.

그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미동도 없었는데,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모습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뭐가?”

들어올 때부터 불안한 소리를 하더니 이젠 아예 쐐기를 박으려는 모양.

“이, 이 불안한 느낌이 무엇인가 했더니…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다. 이건 대악마의 잔향이다!!”

패로우는 주춤하며 뒷걸음질 쳤다.

“대악마의 잔향?”

그렇게 말하면 재호 역시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코페이를 망하게 만든 장본인인 칼리토!

이 사막 전체는 그의 저주가 영향을 미친 장소였으니 패로우가 그렇게 느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오랜 시간 지하에 박혀 있어서 쌓여 있던 마력 같은 걸 느낀 것 아닐까?”

하지만 그건 속 편한 생각이란 걸 곧 알 수 있었다.

스아아아-

갑자기 주변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기현상.

사방에서 검붉은 기운들이 일렁이더니 천천히 소용돌이치며 가운데로 모여들었다.

쿠르르-

낮은 천둥소리를 내며 서로 얽힌 그 끈적이는 기운들은 곧 거대한 대좌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곳에 천천히 내려앉은 한 거인.

[탐욕의 대공 칼리토 공작이 고대의 제단을 통해 은밀히 현세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도자기처럼 반짝이는 새하얀 피부.

바닥까지 내려올 정도 긴 귀걸이에 달린 보석들의 광채 탓에 더 희게 보였다.

머리에 쓴 거대하고 화려한 왕관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섯 개나 달린 팔과 손에도 온갖 장신구들을 하고 있었으니.

온몸으로 내뿜는 탐욕!

하지만 재호는 그런 시각적인 강렬함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 이거 어쩌지?’

패로우가 찝찝해할 때부터 불안했다.

게다가 뜬금없이 칼리토와 마주하게 되는 상황은 그 불안함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젠장! 파이라 그 자식이랑 싸울 때도 더럽게 골치 아팠는데!’

하지만 재호가 하나 간과하고 있는 게 있었다.

-누후후! 반갑다! 정령화장!

재호는 전혀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간 차원을 넘어 쌓인 그의 호감도는 상상 이상이라는 것.

마치 고향 친구를 만나기라도 한 듯, 칼리토가 반갑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재호도 조심스럽게 답했으나 돌아온 반응은 또 한 번 의외였다.

-이거 왜 이래? 우린 친구라고!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마.

실제로도 재호를 친구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럴 거면 그런 화려한 치장이나 음산한 효과들은 없애고, 덩치도 좀 줄인 다음에 말을 하든가!’

“…그래.”

하지만 대악마가 까라면 까야지.

재호는 태연히 대꾸했고, 뒤에서 보고 있던 지안트와 패로우는 기겁했다.

‘하라고 진짜 해?’

‘아아… 칼리토 대공께 저런 무례라니……!’

그러나 칼리토는 재호의 대답에 만족한 듯, 흐뭇하게 웃었다.

-누후후, 긴장하지 말라고. 어차피 이런 곳에서 대놓고 소란을 피워 봐야 피차 좋을 건 없으니. 저 윗동네에 사는 재수 없는 녀석들의 관심을 끌고 싶지 않거든.

“아… 그래…….”

말하는 걸 듣다 보니 칼리토는 파이라와 스타일이 상당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존심과 위엄으로 똘똘 뭉친 게 파이라라면, 칼리토는 동네 말 많은 아저씨 느낌.

-하……. 이곳도 오랜만이로군. 설마하니 이곳이 아직 남아 있을 줄은 몰랐어. 물론 엉망진창이긴 하지만 말이야. 아, 물론 그대가 이곳에 발을 들인 것도 놀라운 일이긴 해. 물론 언젠가는 이곳을 찾아올 줄 알고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말이 좀 심하게 많은 칼리토.

“그래서 갑자기 여기서 나타난 이유가 뭔데?”

-응? 이건 내가 나타난 게 아니라 그대가 부른 것이란다. 이 옛 제단과 그대가 온몸에 떡칠을 해 놓은 본좌의 마력이 공명을 일으킨 것이지.

“아…….”

그럴 법도 했다.

재호에겐 브레잘의 왕관도 있었고, 칼리토의 힘을 직접 빌려 온 모래시계도 있었으니까.

-그대는 참으로 인상 깊은 활약을 많이 보여 주었어. 그 멍청한 뚱보는 내 힘을 기껏 받아 가 놓고선 돈놀이나 하고 말이야.

“뚱보?”

-브레잘 말이다 브레잘!

“아… 뚱보였어?”

자신이 본 인간 중, 가장 슬림한 이를 뽑으라면 단연코 브레잘이건만.

‘아, 인간이 아니라 해골이었지.’

재호가 무슨 생각을 하든, 칼리토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누후후.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그대라면 나와 더욱 신나는 일을 벌일 수 있을 것이라고.

슬슬 불안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애초에 악마가 추구하는 가치나 즐거움이 자신과 일치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함께’ 뭔가를 하자고 제안하는 건 재호 입장에선 최악의 전개라 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지금 골치 아픈 퀘스트가 여러 개인데!’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마탑 연합과의 웨이포인트 사업, 대운하, 키노의 흑탑 설립 계획, 게다가 대륙의 재앙을 경고한 아나볼릭 신까지…….

“헉?!”

아나볼릭의 경고를 떠올린 순간, 재호는 불현듯이 깨달았다.

아나볼릭 신, 그리고 라셀 왕국의 수호자 프란케어가 경고한 대륙의 위험.

‘설마 이걸 말한 건 아니겠지? 제발 아니어야 해!’

원하지 않는 끔찍한 전개를 상상한 재호는 입을 쩍 벌렸다.

-…했으면 한다. 이해했느냐?

“…어? 뭐라고?

잠시 충격적인 미래를 그려보느라 칼리토가 하는 말은 전혀 듣지 못한 재호.

헌데 재호의 되물음에 칼리토의 얼굴이 급속도로 딱딱하게 굳었다.

-난 했던 말을 반복해서 말하는 걸 아주 싫어하지. 아무리 친구라 하더라도 그런 농담은 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

이게 어딜 봐서 친구 관계란 말인가?

“뭐라고 했었는데?”

재호는 뒤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 슬쩍 물었다.

“그게…….”

어쩔 줄 몰라 하는 패로우.

-됐다. 오늘 우리가 처음으로 직접 마주한 기념비적인 날이기도 하니 특별히 다시 한 번 말해 주겠다.

고맙게도 칼리토는 친구를 위해 통 큰 선심을 베풀었다.

[*퀘스트*]

[탐욕의 대공 칼리토는 끝없는 욕심 그 자체입니다.

그는 현재 극도로 약화된 마왕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마계의 주인이 되고자 합니다.

하지만 파이라를 제외하면 여전히 건재한 다른 대공들을 그가 혼자 감당하는 건 어려운 일.

그래서 칼리토는 당신에게 ‘친구로서’ 명령을 내렸습니다.

당신이 마계를 텅텅 비도록 다른 대공들을 대륙으로 유인할 것을 말이죠.

그렇다면 칼리토는 힘을 크게 들이지 않고서 마계를 빠르게 장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퀘스트 목표 : 칼리토를 제외한 다섯 명의 악마 대공을 대륙으로 소환.(어려울 경우, 파이라는 제외 가능. 단, 보상 하락.)]

[보상 : 칼리토의 권능 및 <마왕의 친구> 칭호 획득]

[거절 및 실패 시, 코페이의 저주 해제.]

“이런 빌어먹을!”

저절로 튀어나오는 욕설.

설마 했는데 정말로 터져 버렸다.

대륙의 영웅인 자신이 뉴월드 세계를 터뜨릴지도 모를 짓을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안 된다. 당장 저주를 받고 죽더라도 이건 절대 하면 안 된다!’

하지만 그 결심은 칼리토의 입에서 패널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흘러나오는 순간 싹 사라졌다.

-아, 참고로 말하자면 코페이의 저주가 해제되면 이 대지는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 거다. 그렇게 되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대는 잘 알겠지?

“…….”

알다마다.

‘부동산을 완벽히 조졌다는 거 잘 알겠다.’

-그러게 내가 진작 엘리시아로 가자고 했잖아.

주머니 속에서 작게 들려오는 꼰대의 목소리가 재호의 가슴을 아프게 찔러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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